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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개하고 복음을 믿으십시오 막1:15, 요1:12 출처, 정리
We know not the gospel of Jesus Christ
▲1. 복음을 다시 한 번 점검하십시다.
제 Paul Washer가, 여러분과 만날 기회는 오늘 밤 단 한 번뿐이므로,
꼭 한 번 설교할 기회가 주어질 때는, 제가 늘 그러하듯이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겠습니다.
여기 이 자리에 앉아계신 많은 성도님들은
‘뭐, 복음이라고? 우리는 벌써 복음이 뭔지 다 알고 있는데?’
아마 이렇게 퉁명스럽게 반응하실 것입니다.
그런데 저는 말씀드립니다.
‘아니요, 여러분은 복음을 잘 모르실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아는 것은, 그저 <사영리>와
<하나님에 대해 알아야 할 5가지의 사실> 등입니다.
그런 ‘결단주의’나 ‘지적 동의’를 통해서
복음을 이해하고, 복음을 진정으로 받아들이신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못하고, 복음을 피상적으로 받아들이신 분들도 많습니다.
*관련글 결단주의와 쉬운 복음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서, 내가 복음과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믿고 영접할 때,
그 순간에 주님이 함께 하시고, 성령의 역사로 거듭나는 일도 있지만,
누군가의 전도를 통해서, 내가 복음과 그리스도를 내 마음에 믿고 영접할 때,
그저 도우미(전도자)의 도움에 의해서만, 하나님의 초자연적 역사 없이
내 스스로 결단하고, 영접하는 것은.. 재고가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복음은 내가 결단해서 얻는 것이 아니고,
어떤 주도권, 결정권, 선택권이 나에게 있는 것이 아니고,
전적으로 하나님이 선택, 소명, 은혜, 주권으로 이루어지는 것이므로,
전도가 필요하고, 결신이 필요하지만,
그렇다고 ‘결단주의, 값싼 은혜’는.. 재고를 필요로 합니다.
이것이 무엇인지 아래에서 말씀드리겠습니다.
▲2. 복음을 정립하십시다.
오늘날 복음주의권 교회에서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을 정립하는 것입니다.
한때 신자들의 관심이 온통 ‘교회 성장’에만 초점 맞춰져 있었습니다.
그래서 세미나를 하면.. 그 주제는 언제나 ‘성장’이었습니다.
또 다른 주제나 관심에 신자들의 관심이 맞춰져 있을 수 있습니다.
내적치유, 자기 계발 등등...
그런데 저는,
오늘날 우리 교회에 가장 필요한 것은,
‘복음을 성경적으로 정립’하는 것이라 봅니다.
왜냐하면 제 생각에는 오늘날 우리가 '복음'을 너무 알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3. 결단주의적 복음은 안 됩니다.
보십시오.
전도자가 누군가에게 다가가
‘당신이 죄인인 것을 아십니까?’
그가 ‘예’라고 대답하면,
전도자는 곧바로 다음 질문으로 넘어갑니다.
‘당신은 천국에 가길 소망하십니까?’
‘예’
‘그럼 지금 저를 따라서 예수님을 영접하는 기도를 하시겠습니까?’
그래서 영접기도를 따라하면,
‘이제 당신은 구원 받았습니다!’ 라고 축하해 줍니다.
‘예’ 대답 몇 번 하고,
따라서 ‘기도 몇 마디’ 하면
당장 구원 받았다고, 확인해 줍니다.
이렇게 해서 구원 받을 수도 있지만, 아닐 수도 있습니다. 왜 아닌가 하면요...
(좀 극단적인 표현이긴 하지만, 이해하고 들어주십시오.)
이것은 진정한 복음전도가 아닙니다. 교회로 인도하는 효과는 분명 있을 것입니다.
이런 방식의 전도는, 지금까지 있었던 모든 이단 사상보다
더 많은 피해를 주었습니다.
이런 방식이 왜 잘못인가 하면,
수많은 사람들이,
그들의 삶은 정작 아무 것도 변화되지 않으면서,
그들 자신은 스스로 크리스천으로 믿으며,
살아가고 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그저 단 5분밖에 걸리지 않는
그 어떤 간단한 ‘결단decision’으로 축소시키고 말았습니다.
▲4. 당신은 진심으로 회개했습니까?
자기가 죄인인 것을 '아는' 것.. 그것은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absolutely nothing입니다.
그래서 저는 ‘당신이 죄인인 것을 깨닫습니까?’ 가 아니라,
대신에 이렇게 여러분께 물어보고 싶습니다.
‘당신은 진정으로 회개했습니까?’ 이건 초자연적인 역사로 되어집니다.
진정으로 회개한 사람의 증거는 2가지로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1) 그 후로도 계속 자기 죄를 회개하게 됩니다.
이미 몸을 씻은 사람은, 발을 매일 씻습니다.
그래서 신앙생활 하는 가운데, 매일/매주/매월 회개하면서 신앙생활하는 분은
그가 진정 회개(목욕)했다는 증거입니다. 회개가 라이프스타일이 됩니다.
2) 이전에 자기가 사랑했던 죄악을, 이제는 미워하게 되었습니다.
그 죄성이 여전히 잔존해서 남아있다 하더라도
자기가 스스로 압니다. ‘내가 변화되었다’는 것을!
그리고 그 변화도, 계속 지속적 progressive으로 나타납니다.
▲5. 신앙은 ‘관계’입니다.
저는 ‘천국에 가기 원하십니까, 구원 받기 원하십니까?’ 이런 질문 안 합니다.
그런 질문은 무의미합니다. 대부분의 사람은, 천국 가고, 구원 받는 것을 원하기 때문입니다.
대신에 저는 이렇게 질문합니다.
‘당신이 복음을 전해 받은 이후에,
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당신의 마음속에서
주권적이며 초자연적인 supernatural 역사를 통해서,
이제 하나님을 진정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그 하나님과 진정 교제관계가 당신의 삶에 시작되었습니까?
하나님을.. 세상보다, 죄악보다.. 더 사랑하게 되었습니까?’
복음을 듣고, 그리스도를 영접했는데도,
<하나님과의 관계>가 새롭게 시작되지 않은 사람은,
‘지적 동의’나 ‘결단주의’에 의해서 그냥 자기가 믿은 것뿐입니다.
그 영혼에 주권적이며 초자연적인 supernatural 역사가 일어난 것은 아닙니다.
▲6. 그리스도를 영접함에 대해서도.. 한 말씀 드리기 원합니다.
저 Washer는 ‘영접기도’에 대해서도, 회의적입니다.
‘영접기도’를 뒷받침 해 주는 성경적 근거는,
성경 어디에서도 찾아볼 수 없습니다.
‘아니, 요1:12에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잖아요?’
맞습니다. 그런데 요1:12의 ‘영접’이
단지 전도지에 나오는 영접기도를 따라서 중얼거리는 것이라고,
나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영접 receiving’은
그리스도의 내 삶의 주Lord와 구세주Saviour로 모셔 들여서
내가 그 분의 제자, 종, 자녀로
전적으로 순종해서 사는 삶을 뜻합니다.
비록 완벽하진 않더라도, 그런 삶을 지향하는 것입니다.
그저 1분간 입술로 중얼거리는 것이 아닙니다.
그래서 올바로 ‘영접’하려면,
반드시 ‘진정한 회개와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회개와 믿음’을 통해, 그리스도를 영접한 사람은,
이제 그리스도가 자기 삶에 어떤 액세서리가 아니라,
정말 ‘모든 것’이요, ‘생명의 근원’이 되는 셈입니다. 가장 소중하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당신의 인생을 더 좋게(성공하게) 만드는 그 어떤 분이 아니고,
그리스도는 당신의 전부가 되십니다.
이것이 바로 ‘영접한 사람’의 증거입니다.
▲7. 오늘날 ‘회개’ 없이 복음을 영접하는 사람을 양산하고 있습니다.
사도행전부터 내려오던 기독교 신앙은
반드시 ‘회개를 통한 믿음’이었습니다.
복음서에 소개된 최초의 복음의 시작은 이렇습니다.
‘이르시되 때가 찼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이 왔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막1:15
그러므로 이 자리에 모이신 여러분, 곰곰이 생각해 보십시다.
‘내가 일생에 진정으로 회개한 적이 있는가?
죄의 권능을 무시무시하게 깨닫고, 토해 내듯이 철저히 회개하고,
그 이후로 내 삶이 진정 변화되었나?’
만약 이런 ‘회개’가 없었다면, 하나님께 구하시기 바랍니다.
회개한 사람은.. 삶이 달라지게 되어 있습니다.
반드시 삶에 열매가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회개하지 않고, 자기 결단에 의해서 예수를 믿은 사람은
‘삶의 열매, 삶의 변화’가 나타나지 않습니다.
그를 회개로 인도하는 초자연적 supernatural 역사가 없었습니다.
문제는.. '그가 진정 구원 받았느냐, 천국에 갈 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피상적 회개는 했겠지만, 진정한 회개가 없었다는 것입니다.
자기가 진정 회개했는지/안 했는지
회개한 사람은.. 자기가 확실히 압니다.
회개 안(못) 한 사람은.. 자기가 아리송합니다. 긴가민가 합니다.
아리송하고, 긴가민가 하는 것은.. 회개 안(못) 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내가 영접기도 했다’가 그 기준이 아닙니다.
그건 성경적 근거가 없다고 말씀드렸습니다.
구원의 그 기준은 ‘내가 진정 회개했느냐?’입니다.
기준을 올바로 설정하십시다.
▲8. 정리하면
오늘날 복음주의권 교회가, <복음을 재정립>하는 일이 꼭 필요합니다.
왜냐하면 너무나 많은 사람들이 ‘결단주의’에 의해
자기 스스로 복음을 영접하고, 구원 받았다고 (잘못) 확신하고 있습니다.
그들의 삶은 전혀 변화되지 않았습니다.
물론 구원도 못 받을 가능성이 높다고.., 저는 그렇게 봅니다.
제가 위에서 드린 말씀을 한 마디로 축약하면,
‘회개하고 복음을 믿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사도시대부터 내려오는 전통적인 복음입니다.
다시 말하면, 오늘날의 복음은
‘회개 안 하고 복음을 믿는’ 신자를 양산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범위를 더 축소시킵시다.
‘그럼 나는 회개하고 예수를 믿고 있나요?’
그 증거는
‘내가 지금 지속적으로 회개하느냐/ 안 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성령의 초자연적인 역사에 의해서 자기 결단이 아니라
회개하고 예수를 믿은 사람은,
그 증거가 ‘평소의 삶에서 지속적으로 회개한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진정한 회개의 역사는
초자연적인 성령의 역사이므로, 사람의 힘으로 안 된다는 뜻
그러나 사람의 소원은 도움이 될 것임
우리가 하나님께 구해야 하겠습니다. ‘내가 회개하고 믿도록!’
이렇게 회개하고 예수를 믿는 사람은,
-삶이 변화됩니다. ‘변화되어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늘 회개하니까요.
-하나님과 교제를 지속적으로 가집니다. ‘교제를 가져라’고 말할 필요도 없습니다.
................
2백년 전, 3백년 전만 하더라도
기독교 서적들은 대부분 ‘복음에 대해서’ 였습니다.
스펄전, 청교도, 에드워즈가 쓴 책들은 모두 복음에 관한 것들이었습니다.
‘어떻게 하면 복음을 올바로 이해할 수 있을까?’
‘어떻게 하면 복음을 제대로 설교할 수 있을까?’
‘어떤 것이 진실된 회심인가?’
‘어떻게 하면 우리가 진정으로 거듭난 것을 알 수 있을까?’ - 이런 내용들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늘날 서점에 가셔서,
그러한 복음에 대해 쓰여져 있는 책들이 있는지.. 한 번 찾아보십시오.
아마 대단히 찾기 어려울 것입니다.
오늘날 신자들은,
복음, 회심, 회개, 성화.. 이런 것에 대해서는 별로 관심 없고,
대신에 ‘나를 계발하고, 나를 기분 좋게 하고, 나를 행복하게 하는 어떤 무엇’에 대해
듣기 원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하나님’을 간절히 바라지 않습니다.
대신에 ‘행복한 나, 성공한 내 인생’을 간절히 추구합니다.
그리고 후자를 설교하는 설교자들이 곽광 받습니다.
그래서 ‘복음’을 전한다고 하는데, ‘복음 아닌 어떤 것’을 전하고/듣고 있습니다.
그런 ‘복음’에는 아무 능력이 없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러나 진정한 복음을 듣는 사람들은
반드시 자기 삶이 변화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 삶에 복음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에게 진정한 복음이 회복되기를 간절히 바랍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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