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했던 모세 출33:11~23 출처보기
데이빗 윌커슨 목사님 설교 정리
https://www.youtube.com/watch?v=3tLkBLwd3Ds
▶1. 하나님과 친밀했던 모세
출33:11은 이렇게 말합니다.
“주께서는 마치 사람이 자기 친구와 이야기하듯 모세와 얼굴을 마주 대하여 말씀하시니라” face to face
신34:10에도 이렇게 말합니다.
‘모세는 여호와께서 대면하여 face to face 아시던 자요’
이 구절들은 모세가 하나님과 나누었던 놀라운 친밀함을 뜻합니다.
그런데 단지 몇 절 뒤에는 모순적으로 이렇게 쓰여져 있습니다.
“또 이르시되,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이는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을 것임이니라.” 33:20
모세가 하나님과 대면하여 교제한 친밀함이 있었지만,
하나님이 전부를, 모세에게 보여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는, 모세와 공유할 수 없는 거룩함이 있으셨던 것입니다.
그러나 어쨌든 모세는,
보통 사람이 절대 도달할 수 없을 정도로.. 하나님께 친근히 대면하여 face to face 나아갔습니다.
모세가 대면하여 하나님을 본 것은 <사랑의 하나님>이었습니다.
그러나 33:20에서 말하듯이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을 것이다' 하신 것은
<의로우신 하나님>을 뵈올 때 입니다...
▶처음에 친밀하신 하나님만 알았던 모세
모세는 모든 날들을 하나님의 임재 속에서, 그분 알기를 구하며 지냈습니다.
주님께서는 그런 모세를 친구로 인정해 주셨습니다. 33:11 ↑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을
그 어떤 사람도 보지 못했던 것처럼 보았다고 (또는 알았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모세는 그가 하나님과 함께 보냈던 충실한 시간 때문에
하나님의 마음에 대한 친밀한 지식과 이해를 얻고 있었던 것입니다.
(오늘 당신은, 모세처럼, 하나님의 마음을 느끼고 있습니까?
그것은 깊은 친밀감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회중이 범죄할 때, 모세는 하나님과 더 깊이 교제하는 기회가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은 주님을 대적하여 불경스러운 죄를 저질렀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모든 보물을 녹여서 우상, 즉 금 송아지를 빚었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우상의 주위를, 광란 속에서 춤추고 돌며 숭배하였습니다.
이스라엘의 우상숭배는, 금송아지를 숭배하는 그 이상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장막에, 작은 우상을 숨기고 그것들을 숭배하였습니다.
“너희가 몰록의 장막과 너희의 신 레판의 별
곧 너희가 경배하고자 하여 만든 형상들을 떠메고(개역, 받들었음) 다녔은즉” 행7:43
이 모든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불러 일으켰습니다.
그분께서 모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나를 홀로 내버려 두라.
내가 그들에게 맹렬히 진노하여 그들을 진멸하고..” 출32:10
▶2. 지도자는, 백성의 죄를 자신과 동일시합니다.
중요한 것은, 모세는 나머지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범죄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는 그 모든 시간 주님과 함께, 시내 산에서 있었습니다.
그래도 모세는 여전히 그 백성들의 행동에 책임을 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로서,
그는 이렇게 말하며 백성들의 죄를 자신과 동일시했습니다.
그리고 그 죄의 책임을, 지도자인 자기가 지기 원했습니다.
“이 백성이 자기들을 위하여 금으로 신들을 만들어 큰 죄를 범하였나이다.” 32:31
“그러나 합의하시면 이제 그들의 죄를 사하시옵소서.
그렇지 않사오면 원컨대 주의 기록하신 책에서 내 이름을 지워 버려주옵소서.” 32:32
▶모세는 예수님의 모형을 보여줍니다.
(오늘날에도 지도자는 이렇게 예수님의 모형이 되어야 합니다.)
이 장면에서, 모세는 단지 이스라엘의 지도자 그 이상을 보여줍니다.
그것은, 장차 이 세상에 오셔서, 백성의 죄를 대속하실 그리스도의 모습입니다.
이것은 모세가 하나님의 마음을 알아드린 것입니다.
하나님은 의로우셔서, 죄악을 반드시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사랑하셔서, 죄악을 용서해 주십니다.
모세는 그 의로움과 사랑,
하나님의 두 속성을 모두 충족시키고 있습니다.
자기를 의로 심판하시고, 백성들을 사랑해 주십시오.. 라고 부탁합니다.
모세가 이런 놀라운 기도를 드릴 수 있었던 것은,
그가 아버지의 마음을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아버지는,
모세와 같은 중보자를 원하고 계셨습니다.
모세는, 그리스도의 예표로서
그런 (두 가지를 다 원하시는) 하나님의 마음을, 충족시켜 드렸습니다.
모세는, 하나님 앞에서, 백성들을 비방하지 않았습니다.
사실상 영적으로 미숙한 성도들이
가장 쉽게 범하는 죄가.. 비방입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모르는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비방합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는 성도는.. 하나님 앞에서 성도를 중보 합니다.
후자가 ‘영적 지도자’입니다.
▶3. 계속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했습니다.
‘주의 길을 내게 보여 주사 주를 알게 하시고..’ 출33:13
여기서 모세는, 광야에서 길을 잃어버려서
무슨 길을 가르쳐 달라는 뜻이 아닙니다.
‘길을 보여 달라’는 뜻은,
주님의 ‘방향 direction/ 매너/ 마음’을 보여달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주님을 알게 해 달라’는 것입니다.
모세는 이렇게 말했던 것입니다.
“하나님, 저는 당신의 마음을 알아야 하겠습니다.”
▶지도자는, 주의 길(주님의 마음)을 알기 소원하는 사람입니다.
그래야 주님의 뜻대로, 주의 백성들을 인도할 것 아닙니까!
당신은 당신 자신에 관해.. 저에게 보여주셔야 합니다..
라고 모세는, 간절히 주님께 매달렸던 것입니다.
오늘날 내 관심, 내 기도는
너무 <내 중심적>이지 않나요?
모세의 관심, 모세의 기도는
철저히 <하나님 중심>이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알기 원하고
<하나님의 길>을 보여 달라고, 간절히 애원했던 것입니다.
우리가 기도할 때,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 주님과 대화가 힘든 것은..
늘 기도의 주제와 관점이 <나 중심적>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우리의 신앙이 높이 올라가서
내 기도의 주제와 관심이 <주님 중심>으로 점점 성숙되어질 때,
주님과 친밀한 교제, 대화가 가능하게 될 것이고,
모세처럼 대면하지는 못해도,
멀리서나마 하나님을 대면하는
그런 영적인 지도자가 될 것입니다.
▶계속해서 모세는,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했습니다.
출33:18 ‘모세가 이르되 원하건대 주의 영광을 내게 보이소서.’
그때 하나님은, 엄하게 진리를 말씀하십니다.
33:20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모세가 하나님의 영광을 보기 원한 것은,
그 믿음과 소원이 갸륵하긴 했지만,
대단히 위험한 모험이었습니다. 자기 목숨을 내놓아야 했습니다.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부흥과 심판이 같이 온다'는 말이 있는데,
하나님께 가까이 가서 그 영광을 볼 때, 자기 목숨이 위태해진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너무 거룩하시므로, 죄인인 사람이 너무 가까이 갈 수 없는 것입니다.
(의로우신 하나님을 뵈을 때 그렇습니다.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
하나님께서는 바위 가운데 틈을 내셨고
모세를 그 가운데 안전하게 두셨습니다.
그분께서는 그의 종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내 영광이 지나갈 때에 내가 너를 반석 틈에 두고,
내가 지나도록 내 손으로 너를 덮었다가 손을 거두리니
네가 내 등을 볼 것이요 (의로우신 하나님의) 얼굴은 보지 못하리라.’ 출33:22~23
▶4. 여기서 윌크슨 목사님은 독특한 해석을 하고 있습니다.
출32장의 금송아지 사건과, 33장의 ‘모세를 바위 틈에 숨기시는 사건’을
연결해서 해석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금송아지 우상을 섬기며, 방자히 행했습니다. 32:1~8
-그러자 일차적으로 레위지파가 칼을 빼서, 백성들을 심판했습니다. 32:26~28
-모세는, 자기 이름을 책에서 지워주시고, 백성을 용서해 달라고 합니다. 32:32
-계속해서 하나님은, 너희는 올라가라. 나는 너희와 함께 가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33:3
-백성이 이 준엄한 말씀을 듣고 슬퍼하여, 한 사람도 자기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합니다. 33:4
지금 상황은,
아직 금송아지 사건으로 인해, 하나님의 노가 완전히 풀리지 않으신 상황입니다.
그래서 계속 모세가 하나님께 간청하고 애원하는 것입니다.
등을 돌리신 하나님을, 마음을 돌려놓으려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애원합니다.
‘주의 길을 보이소서. 이 백성을 주의 족속으로 여기소서!’ 33:13
‘주께서 친히 가지 아니하시려거든, 우리를 이곳에서 올려 보내지 마옵소서!’ 33:15
‘주님의 영광을 제게 보이소서!’ 33:18
▶결국 하나님은 심판하시며, 동시에 사랑하셨습니다. (두 가지 속성을 다 보이셨습니다.)
모세를 바위 가운데 두시고, 하나님이 그 앞을 지나가셨습니다.
이것은, 등을 돌리셨던 하나님이
모세의 계속되는 간청을 받아들이시고, 다시 가까이 돌아오신다는
다시 관계를 회복하시겠다는.. 그런 의미였습니다. 윌커슨 목사님의 설교가 그렇습니다.
그러면 모세가 죽어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33:20 네가 내 얼굴을 보지 못하리니 나를 보고 살 자가 없음이니라 때문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죽지 않았습니다.
그 '반석'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며 상징적으로 해석하면 그렇습니다. 고전10:4
또 하나님께서 친히 손으로, 모세를 덮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33:22
(그러므로 우리는 늘 반석이신 예수님께 피해야 합니다.)
모세는, 범죄한 백성을 대표해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대면했으나,
죽음의 (심판)을 받지 않고, 하나님의 보호를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이
금송아지 우상숭배로 범죄한 백성을 (모세를 대표로) 심판하시지만,
동시에 사랑으로 보호해주시겠다는 표시였습니다.
▶그래서 다시 관계가 회복됩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너는 돌판 둘을 처음 것과 같이 다듬어 만들라.’ 34:1
-이 말씀은 관계 회복이 시작되었다는 뉘앙스를 줍니다.
관계가 회복된 가운데, 모세는 하나님께 간청합니다.
‘주여 내가 주께 은총을 입었거든 원하건대 주는 우리와 동행하옵소서.
이는 목이 뻣뻣한 백성이니이다. 우리의 악과 죄를 사하시고 우리를 주의 기업으로 삼으소서.’ 34:9
그러자 하나님은 새롭게 언약을 세워주십니다. 너희를 용서하고, 받으셨다는 표시입니다.
‘여호와께서 이르시되 보라 내가 언약을 세우나니..’ 34:10
그렇게 새롭게 맺어진 언약의 내용중에 이런 내용이 나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행할 일이 두려운 것임이니라' 34:10
이 말씀은, 이렇게 해석할 수 있습니다.
“참으로, 내가 너의 안에 둘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함이라.”(Helen Spurrell)
'너희가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하겠다' 는 뜻인데, 문맥상 맞는 해석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의로우심과 사랑하심의 두 면을 다 깊이 깨달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 온전한 주의 백성이 될 수 있습니다.
▶마치는 말
금송아지 사건으로, 백성들의 회개가 결코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모세는, 끈질기게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
결국 모세는, 범죄한 백성을 대표해서
의로우신 하나님을 대면했으나, 그래서 심판 받아 죽을 뻔 했으나,
하나님이 그를 바위틈에 숨기시고, 그를 손으로 덮어주심으로써
즉, 사랑의 하나님을 동시에 만남으로써.. 기적적으로 살아남습니다.
그리고 출34장에서,
하나님과 이스라엘 백성 사이에, 새로운 언약이 세워집니다. 34:10
하나님이 그들을 완전히 용서하셨다는 표입니다.
결국 모세가 알았던 하나님의 마음은
의로움과 사랑이 함께 공존하는 마음이었습니다.
이것은 두려운 하나님이십니다.
회개는 생각만큼 쉽지 않습니다.
그러나 중보자 모세는 포기하지 않았습니다.
끊임없이 주의 길(마음)을 구했고,
주의 영광을 다시 보기 원했습니다.
그리고 그의 청원은 받아들여졌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바위(그리스도) 가운데 두셨습니다.
모세 자신이 죽을 뻔한 위기를 가까스로 넘겼습니다. 반석이신 그리스도로 인하여!
(이상 윌크슨 목사님의 설교를, 그 의미를 파악해서 정리해 보았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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