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침체에서 빠져 나오기 욥3:1~26 스크랩, 출처
◑침체, 우울증
▲제 친구 목회자들 중 상당수가 건강을 위해
월요일마다 테니스나 골프, 자전거타기, 등산을 합니다.
그런데 저는 허리와 목디스크로 인해 그들과 어울리지 못합니다.
사람이 스스로 안하는 것이 아니라, 할 수 없어서 못하게 되면
마음이 울적해질 수도 있겠구나 하는 느낌이 듭니다.
이런 현상을 Depression, 침체, 우울증이라고 표현하기도 합니다.
Depression이란 정서적 침체, 의욕상실을 말합니다. 기운이 빠졌다는 뜻입니다.
즉 ‘용기와 희망과 자신감을 잃어버린 상태, 또는 기가 꺾인 상태’입니다.
좀 더 다양하게 풀이하면 이렇습니다.
침울한 감정, 실망감, 슬픔, 만성적 피로, 권태, 무관심, 분노, 죄책감, 영적 퇴보,
의욕상실, 신앙의 저하 등을 말합니다. 몸과 마음의 탈진을 뜻합니다.
그 동안 명랑하게 살던 사람이 어느 순간부터 울적하게 되는 현상을 말합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힘든 상황이 오래 지속되다보면 디프레션에 빠질 수 있습니다.
경제적으로 어렵고, 몸이 오랫동안 아프거나 만성적 질환이 계속되다보면
의기소침해질 수 있습니다.
하는 일이 잘 안되고, 계속 악순환 되다보면 의욕상실에 빠지게 됩니다.
너무 오랫동안 힘들면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자연환경에서도 햇볕이 부족한 그늘진 곳에서 사는 사람이
우울증에 많이 걸립니다.
이처럼 삶의 현실에서 자주 느끼는 depression은 누구에게든지 찾아오는 현상입니다.
심지어 믿음이 훌륭한 하나님의 사람들도 침체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다윗이나 예레미야 선지자도
깊은 절망과 흑암의 침체 속에서 시달리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잘 아는 모세, 엘리야, 사도 바울도
영적 침체를 경험하였습니다.
한때 영국교회에 놀라운 부흥을 일으켰던 찰스 스펄전 목사님도
깊은 슬럼프와 침체에 빠진 적이 있습니다. 그는 이렇게 솔직하게 고백합니다.
‘나는 오늘 영국 런던에서 가장 큰 교회인 메트로폴리탄 성전에서 웅장하게 설교하고 있지만,
내 마음의 상태는 고뇌와 상심으로 시달리고 있습니다.
나의 영성은 바람에 나부끼는 깃발처럼 흔들리고 있으며,
나의 영성은 이상하게 저하되고 있으니 여러분께서 기도해주시기 바랍니다.’
그처럼 훌륭하고 존경받는 스펄전 목사님도
이렇게 심각한 영적 침체를 경험하였던 것입니다.
종교개혁자 마르틴 루터도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하여
지옥의 문턱까지 경험하였다고 고백합니다.
그래요. 믿음이 좋은 사람도 마음이 가라앉을 수 있습니다.
영성이 저하될 수 있습니다. 심령이 우울해질 수 있습니다.
◑본문/ 욥의 우울증
▲이런 현상이 욥기 3장에서는 매우 실제적으로 나타납니다.
욥은 육체적 고통과, 정신적 공허로 인해
서글픈 외로움과 영혼의 어두운 밤을 맞이하였습니다. 마음이 황폐해졌습니다.
사람은 누구든지 힘든 상황이 오래 계속되면 침체될 수밖에 없습니다.
이것이 욥기의 적나라한 메시지입니다.
성경은 정직합니다. 욥의 훌륭한 점을 칭찬하면서도, 그의 약점도 있는 그대로 노출시킵니다.
욥은 재산을 잃고, 건강도 잃고, 자녀도 잃고, 자기가 가진 모든 것을 다 잃었습니다.
그래서 그도 인간으로서, 정서적인 우울함과 영적 침체에 빠진 것입니다.
욥은 자기를 위로해주러 온 친구들의 건장한 모습 앞에서
자기 초라한 모습과 비교해보니
자신이 너무나 서글프고 처량하게 느껴졌습니다. 감정적 혼란을 겪었습니다.
마음이 착잡하고 가슴이 답답해졌습니다.
신앙적 회의가 느껴지며, 자학 증세까지 찾아왔습니다.
그렇습니다. 자기 자신을 남과 비교할수록.. 스스로 위축되고, 자괴감에 빠집니다.
이처럼 욥은 망가진 몸과 멍든 심령으로.. 절망의 심연 속으로 가라앉은 것입니다.
더구나 하나님은, 욥이 왜 그처럼 혹독한 시련과 고통을 당해야 하는지
단 한마디도 말씀하지 않으셨습니다.
이유도 모르고, 목적도 모르는 고난 중에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초점 없는 고난이 우리의 영혼을 더욱 침잠케 합니다.
의욕을 상실케 합니다. 심령을 황폐케 합니다.
그래서 욥은 자신의 처지가 너무나 처량하여 깊은 침체 속으로 들어간 것입니다.
▲욥기 3장을 자세히 보면
욥은 자학증세 현상으로 세 가지 부정적인 의문을 표출합니다.
첫째, 왜 내가 태어났나?(1~10절)
둘째, 왜 내가 살아났나?(11~19절)
셋째, 왜 내가 살아야하나?(20~26절)
욥은 자기의 생일을 저주하면서.. 내가 왜 이 땅에 태어났는지 항변합니다.
그리고 엄마가 자기를 출생할 때, 차라리 죽었으면 더 좋았을 것이라고.. 비관에 빠집니다.
더 나아가서 그는 지금처럼 처참하게 고생하며 사는 것보다
차라리 죽는 게 더 낫다는.. 염세주의에 빠져서 말합니다.
자기가 태어날 때 어머니의 무릎이 자기를 받지 않았더라면
자기는 이미 죽어서 평안히 쉬고 있을 텐데.. 라고 우울한 탄식을 합니다.(12~13절)
엄마가 자기를 임신했을 때 차라리 낙태되었거나 죽었더라면
이런 고생을 안했을 것이라는.. 염세적 한탄을 합니다. 죽음 예찬론자가 되었습니다.
그래서 욥은 고통이 부재하는 영원한 세상을 더 부러워하기 시작합니다.
죽음이야말로 가장 안전한 도피처로 해석했던 것입니다.
16절부터 이어지는 탄식의 노래입니다.
인생이 너무 힘들다보니 욥은 자기 운명을 스스로 개탄하며 비관적 회의에 빠집니다.
그는 갈수록 깊은 슬럼프 상태에 도달합니다.
욥기3장의 마지막 절은, 이렇습니다.
『내게는 평화도 없고, 안정도 없고, 안식마저 사라지고, 두려움만 끝없이 밀려오도다!』욥3:26
한 마디로 그는, 죽으려야 죽을 수 없는 자기 신세가 한탄스러웠던 것입니다.
◑욥의 침체의 근본원인
우리는 여기서 침체의 근본요인이 무엇인지를 분석해 낼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 욥기 3장을 자세히 관찰해보면
우리가 어떤 단어를 많이 사용할수록 침체에 빠지는지 정확하게 규명해줍니다.
▲1.「나」에게 집중할수록 침체되기 쉽습니다.
욥은「나」라는 말을, 욥3장에서 20번이나 반복합니다.
욥기 3장은 온통 「나는, 내가, 나에게, 나를」입니다.
‘내가 왜 이런 운명이냐, 왜 나에게 이런 불상사가 일어나느냐?’라는 질문을
수없이 반복합니다.
오늘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생각과 기준을 「나」에게 집중할수록.. 우울해지고 의기소침에 빠집니다.
스스로 영혼의 어두운 밤(dark night)으로 들어갑니다. 먹구름 인생을 살게 됩니다.
기독교 사상가 파스칼은 이점을 깨우쳐줍니다.
“불행의 원인은 늘 내 자신이 만든다. 몸이 굽으니까 그림자도 굽는다.
어찌 그림자가 굽는 것을 한탄할 것인가? 나 이외에는 아무도 나의 불행을 치유해 줄 사람이 없다.”
그래요. 「나」에게 초점을 맞출수록 스스로 왜소해지고 의기소침합니다.
▲2.「왜」라는 부정적 의문을 품을수록 침체되기 쉽습니다.
욥은 「왜」라는 말을 6번이나 반복합니다.
‘왜 내가 태어났는가? 왜 내가 살아났는가? 왜 내가 이렇게 살아야하는가?’
라는 회의적 질문을 반복하다 보니..
스스로 위축되고 낙심합니다.
저는 성경을 통해 얻는 중요한 원리적 해답이 있습니다.
「왜」 주여, 현실이 왜 이렇습니까? 라는 부정적 질문을 할수록 회의를 느끼게 됩니다.
그러나「어떻게」 주여 이 상황에서 제가 어떻게 할까요? 라는 긍정적 질문을 할수록
희망이 솟아납니다.
현대인들 20명 중 한명은 우울증으로 시달리고 있다고 합니다.
상당히 많은 사람들이 먹구름 낀 인생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삶의 의욕을 상실하고, 명랑함 대신 울적함으로 침체되어 살아가고 있습니다.
안개 속을 달리는 자동차처럼 불안과 긴장으로 시달립니다.
그래서 점점 더 절망의 구덩이로 빠져들고,
체념과 자학 증세를 보이며 마음이 황폐해집니다.
그러나 우울증을 너무 과민하게 해석할 필요가 없습니다.
어떤 심리학자의 표현대로 ‘우울증이란 마음의 감기’에 불과합니다.
영혼의 감기는 간단하게 치료받을 수 있습니다.
미국의 설교자 찰스 스윈돌은 디프레션을 매우 긍정적으로 해석합니다.
“디프레션은 나를 남루한 옷을 입은 선지자로 만들어 준다.
처음에는 초췌하게 보이지만, 어두운 골짜기를 통과하고 나면
하나님의 사람다운 영적 기개가 높이 드러나게 해준다.” 참 멋진 해석입니다.
우리는 고통의 현실에서 마음이 혼란스러워지면
마치 하나님께서 더 이상 돌보시지 않는다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내 인생이 여기에서 끝난다고 스스로 체념하고 좌절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당신에게서 등을 돌리지 않으십니다.
루마니아의 기독교 지도자 코리 텐 붐 여사는 자주 이렇게 외쳤습니다.
「하나님이 건저내지 못하실 정도로 깊은 절망의 구덩이는 없다.」
◑자신을 보지 말고, 하나님을 바라보시라!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의 환경, 내가 지금 처한 어두운 상황,
나의 초라한 모습에 집중하지 말고
인생의 위대한 조각가가 되시는 하나님을 늘 바라보아야합니다.
쉬운 진리인데도, 자주 잊어버립니다.
그러므로 잊어버리지 않고, 늘 기억하도록.. 경건의 훈련이 필요합니다.
▲다윗도 인생이 너무나 험난하고 힘들어, 영적 침체와 디프레션에 빠지기도 했으나,
그가 침체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비결은 간단합니다.
하나님만 바라보았기 때문입니다.
그는 자기 영혼을 향하여 이런 역동적인 믿음을 선포합니다.
『내 영혼아 네가 어찌하여 낙심하며 어찌하여 내 속에서 불안하여 하는가?
너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나는 그가 나타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내 하나님을 여전히 찬송하리로다.』시42:11
다윗은 시62:5에서 이렇게 노래합니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나의 영혼이 잠잠히 하나님만 바람이여, 나의 구원이 그에게서 나~는도다.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나의 소망이 저에게서 나~는도다.
오직 주만이, 나의 반~석, 나의 구~원이시니.
오직 주만이 나의 산~성, 내가 요동치 아니하리.♪
우리가 하나님만 바라보며 산다면
우리는 더 이상 인생을 고행으로 살지 않고, 여행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바라보며 사는 만큼 우리는 의기소침과 무력감에서 해방됩니다.
우울함이 아닌, 명랑함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회의적이 아닌, 희망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비관적인 아닌, 낙관적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빈곤의식이 아닌, 부요의식으로 살아갈 수 있습니다.
▲욥이 나중에 영적 침체에서 헤어 나올 수 있었던 원동력도.. 바로 여기에 있습니다.
자기를 바라보는 것을 중단하고,
주님을 바라보았을 때입니다.
『내가 가는 길을 오직 그분이 아시기에,
그분이 나를 단련하신 후에는 내가 순금같이 되어 나올 것입니다.』욥23:10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삽더니,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욥42:5
오늘도 우리가 영혼의 어두운 밤을 통과하는 만큼
행복의 새봄을 맞이할 줄 믿으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모든 아픔을 치료해 주십니다.
치료 후에는 이전보다 훨씬 더 고결한 성품의 사람으로 승화시켜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실의와 좌절의 골짜기에서 끌어내어 주십니다.
축복의 정상으로 올려다 주십니다.
하나님은 여전히 당신에게 행복한 미래로 나갈 수 있는 새 힘을 주십니다.
▲오늘 욥기 3장은 우리에게 너무나 큰 위로가 됩니다.
하나님은 욥의 디프레션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꾸짖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욥의 탄식을 그대로 받아들이십니다. 가슴으로 이해해 주십니다.
욥이 잘 회복되기를 기다려주실 뿐입니다.
욥기의 주제는 욥의 인내라기보다, 하나님의 인내입니다.
욥이 성숙될 때까지.. 욥38장까지.. 하나님은 인내로써 욥을 기다려주십니다.
하나님은 오늘도, 고통 중에서 신음하는 자들의 애환을 다 들으시고 이해해주십니다.
다만 어서 속히 침체에서 헤어 나오기를 원하실 뿐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통해 보혜사 성령님을 보내주십니다.
성령님은 우리에게 위로의 영으로 오십니다. 회복의 영으로 찾아오십니다.
새 기운을 불어넣어주십니다. 어둠의 세력을 몰아내어 주십니다.
그러므로 오늘 우리는 인생의 어두운 밤에도 침체에 빠지지 않고 살아갈 수 있습니다.
침체에서 헤어 나올 수 있습니다.
더 이상 울적하게 살지 않고, 명랑하게 살아가는
행복한 그리스도인이 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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