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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의 골짜기

LNCK 2012. 10. 8. 19:46

◈운명의 골짜기                           삼상17:41~49              12.09.16.설교녹취


 

2002년 월드컵 기간 중에 제가 이발하러 갔습니다.

머리를 잘라주는 스타일리스트 여성이,

한국 축구팀을 응원하는 상징인 붉은색 티셔츠를 입고 있어서

자연스럽게 <축구 응원>에 관한 대화를, 그 여성과 제가 나누게 되었습니다.


그는 자기가 ‘붉은 악마’(한국대표 축구팀 스포터즈)의 회원이며,

저녁에 시청 앞에 가서, 거리 응원을 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제가 호기심이 나서 물어보았습니다.

‘시청 앞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모이는데, 사람들의 식사와 화장실이 불편하지 않느냐?’고 물었더니

그들 응원팀은, 응원에 열중하기 위해서,

식사나 물을, 아예 참고 안 마신다고 말했습니다.


제가 또 물어보았습니다.

‘경기장에 직접 가서 응원하는 것도 아니고,

시청 앞 거리에서 응원하는데, 그 응원에 얼마나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까?’


그랬더니 그 ‘붉은 악마’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저는 우리의 거리 응원에, 효과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우리들의 기가 선수들에게 전달되어, 그들이 이길 것이라 생각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의 여성들이, 축구를 이렇게 좋아한다는 사실에 놀랐고,

또 응원의 효과를 이처럼 신뢰하고 있다는 사실에 또한 놀랐습니다.


다윗이 골리앗과 싸우러 운명의 골짜기로 내려갈 때,

이스라엘 군대가 지켜보기는 했겠지만, 응원했으리라고는 생각하지 않습니다.

다윗을 응원하지 않고, 그냥 지켜보았을 것입니다. 구경했을 것입니다.


응원을 하기 위해서는, 정신이 같아야 합니다. 같은 기spirit를 가져야 합니다.

그 스타일리스트 말이, 자신의 기가 선수들에게 전달될 것이라고 말한 것처럼,

응원을 하려면, 같은 마인드를 가져야 되는데,


다윗이 아직 어린 소년으로서, 골리앗과 싸우러 내려갔다는 말은,

그 이외에는 싸울 사람이 없었다는 말입니다.

싸울 사람이 다윗 밖에 없는 상황에서, 무슨 응원을 할 여유가 있었겠습니까.

응원도 뭐가 비등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엘리야 선지자가 바알의 선지자들과 갈멜산에서 영적 전쟁을 벌일 때,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여 지켜보기는 했겠지만,

그들이 엘리야를 응원한 것은 아닙니다. 누가 이기는지.. 지켜본 것뿐입니다.


오히려 전달되는 것이 있었다면, 다윗의 사기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달되었겠지..

그 반대는 아니었을 것입니다.


응원해주는 사람이 있으면 좋습니다. 하지만 없어도 됩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달리셨을 때, 누가 예수님을 응원한 것이 아닙니다.

모세가 홍해를 가를 때, 누가 모세를 응원한 것이 아닙니다.

다니엘이 사자굴속에 던져졌을 때에, 누가 다니엘을 응원해 주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역사는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응원하고, 좋아하고, 찬성하느냐에 좌우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 안에 계신 성령님이 응원해 주시는 것만으로도 족합니다.

내게 믿음이 없다면, 만인이 나를 응원한다고, 없었던 믿음이 생기는 것이 아니고,

내 안에 믿음이 있다면, 만인이 나를 반대한다고 해서, 그 믿음이 꺾이는 것도 아닙니다.


본문에서 다윗이 이기느냐, 골리앗이 이기느냐 하는 것은, 사실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다윗이 골리앗을 이기더라도,

골리앗과 같은 장수들은 또 얼마든지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또 이스라엘이 이기느냐, 블레셋이 이기느냐.. 이것도 중요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앞으로 전쟁은 계속 될 것이기 때문에,

이 전투에서 이스라엘이 이기든, 블레셋이 이기든,

전쟁은 앞으로 계속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럼에도 본문의 이 전투가 중요한 이유는,

하나님의 이름이 걸려있기 때문입니다.


‘과연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시느냐, 이스라엘을 도우시느냐’ 하는 것을,

증명하는 실험장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 전투의 승패로 말미암아, 이스라엘 백성의 신앙이 좌우될 수 있는,

그러한 아주 중대한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도 이것을 심각하게 여기시는 것이고,

다윗도 중요하게 여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의 승리나, 한 사람의 패배가 중대한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그것을 통해서, 많은 사람들의 신앙이 좌우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이름과 거룩함이 거기에 걸려 있습니다.


한경직 목사님, 지금은 소천 하셨지만, 그런 목사님이 한 분 계심으로써,

한국 기독교의 상징적인 인물이 되셨습니다. 많은 사람들에게 귀감이 되셨습니다.


그 분 한 분의 삶과 신앙이, 결코 한 사람의 삶과 신앙으로 끝나지 않고,

많은 사람들에게 힘이 되고, 많은 사람들에게 신앙의 모범이 되는 것이

바로, 이 사실을 보여줍니다.


본문에서 다윗은 이 사실을 깨닫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가 골리앗과 싸우러 나가면서,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 것입니다.


‘너는 칼과 창과 단창으로 내게 오거니와, 나는 네가 모욕하는 이스라엘 군대,

하나님의 이름으로 네게 가노라’

그는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고 말했습니다.


이 말은, 다윗이 자기의 승리를 위하여, 하나님의 이름을 들먹이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이름과 영광이.. 자신의 승패에 좌우된다는 말입니다.


이것은 사람이 아무 때나 할 수 없는 말입니다.

하나님의 영광이 사람의 행위에 좌우될 수 있는 매우 드문 경우요,

매우 거룩한 순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다윗은 비록 소년에 불과하지만,

이 순간만큼은 어린 소년의 자격이 아닌, 하나님의 종의 자격으로,

하나님의 권세를 입고서, 마치 하나님이 직접 내려가시는 것처럼,

다윗이 하나님의 이름으로 내려간 것입니다.

그것이 ‘내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간다’는 말의 뜻입니다.


저는 본래적으로 철학적인 마인드를 가졌기 때문에,

하나님의 말씀을 읽고 해석할 때, 철학적으로, 신학적으로 분석하고, 해석하고,

깊이 생각하고 깨달은 것을, 성도님들께 나눠드리려고 노력합니다.


그런데 정말로 여러분의 신앙을 도울 수 있는 것은, 신학이 아니고,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것 같은, 한 번의 믿음의 경험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에 대하여, 끊임없이 말하고, 끊임없이 이론과 신학과 교리를 말하지만,

이론은 믿음을 낳지 못합니다. 이론의 한계가 여기에 있습니다.


지난 2천년동안 신학적으로 계속 발달해 왔지만,

신앙이 성장했다고는 말하기 어렵습니다.


우리가 신학을 연구하고, 학문이 발달하고, 지식이 늘었지만,

그렇다고 우리의 영성이 발전했다고 말하기 어렵습니다.


오직 다윗 한 사람이, 물매를 손에 쥐고, 운명의 골짜기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의 승리는 전설이 되었고, 영적인 선언문이 되었습니다. spiritual statement!


바로 46절이 그것입니다.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고..!’


얼마나 멋있는 말입니까.

‘온 땅으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했습니다.


다윗이 ‘여기 전장터에서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다’ 라고 말한 게 아니고,

‘온 세상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을 알게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여기에는 중대한 통찰력이 있습니다.

우리 모두는, 하나님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압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로 오는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의 질문은,

하나님이 계시는 것뿐만 아니고, 나와 함께 하시느냐 하는 것입니다.


다윗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신 줄 알게 하겠다’고 말한 것처럼

하나님이 우리 집과 함께 하시느냐..

하나님이 교회와 함께 하시느냐..

하나님이 이 나라와 함께 하시느냐..

그 증거를 어디서 볼 수 있느냐.. 이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질문입니다.


하나님이 내 삶과, 내 자녀의 삶과, 우리 민족의 역사에, 얼마만큼 개입하시느냐..

the intervention of God, 하나님의 개입하심,

이것이 우리의 구체적인 궁금증입니다.


왜냐하면, 그 증거가 우리 눈에 밝히 보이지 않을 때가 많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시지만, 우리가 깨닫지 못할 때가 많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개입하심을 어느 정도 느끼는 순간은,

-사고를 당할 뻔했을 때, 사고에서 죽을 뻔 했을 때,

-큰 어려움을 당할 뻔 했을 때,

그 때 우리는, ‘오 하나님이 정말 계신가보다..!’ 이렇게 느낄 수 있지만,

그 이외의 경우에는, 하나님이 인간의 역사에 어떤 일을 행하시는지..

어떻게 개입하시는지.. 우리 눈에 감춰져 있을 때가 많습니다.


그래서 우리의 생각에는,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하나님이 개입하신다면, 왜 세상에 불의를 내버려 두실까?

-왜 명백한 이단들을 빨리 처리하시지 않으실까?

-왜 세상에는 부조리가 끊이지 않는 것일까?


생각은 생각을 낳고, 질문이 꼬리를 뭅니다.

우리 머릿속에 개미가 기어 다니듯이.. 우리가 오리무중 혼란에 빠집니다.


그런데 이때 다윗은 확실하게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온 땅에 확실히 보여주었다’는 것입니다.


성경은, 예수님이 하신 일을 책으로 기록했다면,

세상에 둘 곳이 부족하리라고 말했는데,

우리는, 우리의 신학적 이론과 학문으로 가득 채워서, 세상에 둘 곳이 없도록 만들었습니다.


2천년의 기독교 신학은 발전을 거듭해 왔지만,

그것이 우리의 믿음을 자라나게 해 주지는 못했습니다.

오죽하면 ‘초대교회의 믿음으로 돌아가자!’고 말하겠습니까.


신학박사 학위가 10개 있는 사람이, 신학교 문턱에도 가보지 못한 권사님보다

믿음의 능력을 모를 때가 있습니다.

우리 머릿속에 수많은 생각이, 우리 영혼을 성숙하게 하지 못했고,

우리의 믿음을 키워주지 못했습니다.


오히려 우리의 생각을 단순하게 할 때, 믿음의 역사가 가능합니다.

단순함.

단순함이 열쇠입니다.


최근에 저희 교회가 <창립 12주년 음악회>를 가졌습니다.

음악회 한 번 하려면 기자재가 많이 필요하고, 음향시설, 조명 등, 많은 장비가 필요합니다.

보니까, 스위치만 해도 수십 개였습니다.

그런데 그 모든 것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인다는 보장이 없습니다.

시설이 많을수록, 발생할 수 있는 문제가 많아지는 단점이 있습니다.


그래서 저희 교회는, 주일 예배만큼은, 가급적 심플하게 드리려고 합니다.

주일 예배시간에 사용하는 것은, 이 마이크 하나밖에 없습니다.

만약에 마이크가 작동 안 하면, 제가 육성으로 하면 됩니다.


다윗이 이것 저것을 많이 생각했기 때문에, 골리앗과 싸우러 내려간 것이 아니고,

그는 원래 정식으로 이 전투에 참여한 사람이 아니고,

아버지 심부름으로, 형들에게 줄 도시락을 배달하러 전쟁터에 왔다가,

골리앗이 하나님의 이름을 모욕하는 말을 듣고,

이스라엘 군대 중에 그와 싸울 사람이 없는 것을 보고는,

자기의 물매를 들고 싸우러 (엘라 골짜기로) 내려간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나를 사자의 발톱과 곰의 발톱에서 건져 내셨은즉,

나를 이 블레셋 사람의 손에서도 건져내시리라..’

이것이 다윗의 단순한 논리입니다.

이 단순한 논리에서.. 엄청난 담대함이 비롯된 것입니다.


아마 사울 왕을 비롯한 이스라엘 군대가, 다윗을 보고 놀랐을 것입니다.

‘믿음이 저렇게 역사하는구나! 저렇게도 싸워서 이길 수가 있구나!

저렇게 효과적인 방법이 있구나! 나는 왜 저렇게 하지 못했을까.’

 

지각이 있는 사람이라면 생각해야 합니다.

‘나도 저렇게 하면 되겠구나.. 저 정도는, 나도 할 수 있겠구나..!’

‘아, 믿음은 저렇게 사용하는 것이구나!’ 하고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믿음을 배우는 가장 좋은 방법은, 믿음이 있는 사람을 보고, 배우는 것입니다.

믿음을 가르치는 가장 좋은 방법도, 이론이 아닌,

내가 믿음을 사용하는 것을 남들에게 보여주는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고, 사도들도 그렇게 했습니다.

오늘날 우리 자녀가 믿음을 갖기를 원한다면,

내가 먼저 믿음으로 사는 모습을 보여주어야 합니다.

믿음의 능력을 경험할 수 있게 해 줘야 합니다.


◑다윗처럼, 믿음이 나를 통해 역사하도록 하기 위해서는..


▶1. 사명감이 주어져야 합니다.

다윗은 자기의 영광을 위하여, 싸우러 골짜기 아래로 내려간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이름의 영광을 위하여 내려간 것입니다.


이방인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을 모욕하는 것을 보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내려갔습니다. 올바른 명분에서 시작해야 합니다.

 

즉, 하나님의 감동을 받아야 합니다.

나의 불붙는 마음만 갖고 되는 게 아닙니다.


위로부터 감동이 주어져야 하고,

그에 따른 계획이 있어야 합니다.


 

다윗에게는, ‘하나님이 저 골리앗을 오늘 내 손에 붙이소서

 

온 땅에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계심을 알게 하실 것이다’는 믿음이 임했습니다.


▶2. 충분한 경험이 있어야 합니다.

‘내가 들에서 양을 칠 때, 곰이나 사자가, 양을 움켜잡으면,

내가 따라가 그것을 치고, 양을 건져 내었고,

사자와 곰이 나를 헤치려 하면, 내가 사자의 수염을 잡고 그것을 쳐죽였나이다..’

(마치 타잔 같습니다.)


비록 그가 사람과 싸워본 경험은 없지만,

양을 지키면서 사자와 곰과 싸워본 경험이, 다윗에게는 충분한 준비가 된 것입니다.


충분한 경험이 필요합니다.

많은 사람들이, 마음은 원이로되 실패하는 이유가, 경험이 없기 때문에 그렇습니다.

 

     다윗에게는 성령이 주시는 계획과 전략이 있었습니다.

     사울 왕의 갑옷과 무기는 너무 무거웠고, 자기에게 맞지 않았기 때문에

     자기 손에 익은 물매와 물맷돌 5개를 가지고 내려갔습니다.


다윗의 유리함은, 기동성이었습니다.

골리앗은 몸이 육중하고, 갑옷이 무겁고, 투구가 무겁고, 그는 기동성이 없었는데,

다윗은, 가볍고, 그리고 돌맹이 5개만을 가지고 전장터로 내려갔습니다.


왜 골리앗은 한 명인데, 돌맹이는 5개를 가지고 갔을까요?

골리앗을 물리친 후에, 그의 형제들이나 다른 용사들이 덤벼들 것을 대비해서 그랬을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하나님이 주신, 마음속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혈기가 아닙니다. 감정이 아닙니다. 마음속에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이렇게 하면 될 것 같다..’는 믿음이 있어야 합니다.

그런 믿음이 내게 있는지, 없는지는.. 내가 먼저 압니다.

 

 

▶3. 그 믿음을 입술로 고백하고, 실천에 옮겨야 합니다.

 

여기에 우리의 부족함이 있습니다.

믿는 사람은 많은데, 자기의 믿음을 고백하는 것을 주저합니다.


내 마음에 믿음을 입으로 말해야 합니다. 거기에 믿음의 능력이 나타납니다.


그리고 믿음을 실천에 옮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입으로 고백하는 차원까지만 하고, 실천하기를 두려워하는데,

믿음의 실천은, 다윗에게 운명의 엘라 골짜기로 내려가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정말 두렵지만,

거기에서 믿느냐 의심하느냐의 판가름이 납니다.

 

다윗이 혼자 물맷돌을 가지고 이 운명의 골짜기로 내려가서,

그 물매를 던지는 것이.. 바로 믿음을 실천에 옮기는 것입니다.


돌을 물매로 던지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할렐루야!

나머지는 하나님이 알아서 하십니다. 할렐루야!


다윗이 물매를 던졌더니, 하나님이 그 돌이 골리앗의 이마를 향하여 정확히 날아가게 하셨습니다.

이게 인류 최초의 스마트 폭탄입니다. 레이더나, 레이저로 유도한 것이 아닌데,

성령이 그 돌맹이를 유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믿음을 실천으로 옮기고, 하나님은 그 믿음대로 이루어지도록 도우십니다.


다윗이 만민이 보는 앞에서, 이스라엘 군대와 블레셋 군대가 지켜보는 가운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했더니,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블레셋 앞에서 다윗을 높이셨습니다.


다윗은 하나님이 살아계신다는 것을 증거하고,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함께 하신다는 사실을 증거했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 전체의 신앙이 회복되는, 영적인 부흥을 경험했던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너를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반대로 너희가 사람들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너를 하나님과 천사들 앞에서 부인하리라 말씀하셨습니다.

다윗과 똑같은 상황이, 오늘 우리 각자에게도 주어져 있다는 뜻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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