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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살전5:1~6, 엡5:14 14.06.22 영어출처, 한글출처
로버트 하이머스 DON’T SLEEP – AS OTHERS DO!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살전5:6
사도 바울은 여기서 “주의 심판의, 재림의 날”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시기는 “큰 환난” Great Tribulation 이 시작되는 때이며,
또한 “갑작스런 멸망”이 닥치는 때가 될 것임이.. 성경의 전반적 증거입니다.
예를 들면 갑작스레 ‘해산의 진통’이 닥치는 것처럼
고통이 갑자기 올 것을 말합니다.
그래서 ‘주의 날’이 올 때, 수 백 만 명의 사람들이 미처 준비가 안 되어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많은 교회들도, 이 고민과 고통의 시기가 시작되면, 많이 실패할 것입니다!
물론 신자들은, 그런 성경의 예언에 대해 알고 있기 때문에,
바울 사도는 그들에게 “어둠에 있지 아니하매”라고 말했습니다.
‘형제들아 너희는 어두움에 있지 아니하매
그 날이 도적 같이 너희에게 임하지 못하리니.’ 살전5:4
그러면서도 동시에 사도바울은
다음과 같은 우리 두 귀를 울리는 권면을 줍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살전5:6
무슨 뜻입니까?
데살로니가 교인들이, ‘어둠에 속하지는 않지만’ 5:5
즉 주의 날이 그들에게 도적같이 이르지 못할 것이지만,
그 날이, 그들에게, 임산부의 산고처럼은 예기치 않게 닥치지는 못할 것이지만,
‘졸며 잘 수는 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이것은 오늘날 진정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자는” 것이 가능하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1.에서
물론 또한 거듭나지 않은 사람들이 잘 수도 있는 것을 말합니다.
나는 오늘아침 이 두 그룹에 대해서 다 말하겠습니다. ◑2.에서
◑1. 거듭난 사람들을 향해,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진실로 거듭난 기독교인도 잠을 잘 수 있습니다.
이 사실에 어떤 의문도 제기할 수 없습니다.
이것은 열 처녀의 비유로 분명하게 보여줍니다.
“신랑이 더디 오므로 열 처녀가 다 졸며 잘 새..” 마25:5
여기에 슬기로운 다섯 처녀도, 미련한 다섯 처녀도
‘다 졸며 잘 새..’ 라고 명백히 증거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것이 오늘날 많은 기독교인의 모습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들은 졸고/ 자고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일부의 기독교인의 모습이고
심지어는 우리 교회에서도 볼 수 있습니다.
기독교인도 잠을 자고 있으면서도, 심지어 이것을 자신이 모를 수도 있습니다.
만약 당신이 “나는 잠을 자고 있는지도 몰라!”라고 말한다면
이것은 바로 당신은 잠자고 있지 않다는, 깨어있다는 증거입니다.
그런데 정작 잠을 자고 있는 사람들은, 그것을 모릅니다.
당신은 깊은 잠에 빠지고도, 그것을 모를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여기 있는 교회의 당신의 친구들도, 다 같이 함께 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만약 어떤 사람이 당신을 깨우려고 한다면, 당신은 그들이 하는 말을 거부하고,
그들을 공격할 것이며, 당신은 그들이 너무 비판적이라고 생각할 것입니다.
▶영적인 ‘졸림’ 상태는 아주 위험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당신은 마치 깨어있는 것 같지만, 많은 것을 ‘조는 상태에서’ 행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졸면서도 대화를 이어갑니다. 나중에 물어보면 대화 내용을 하나도 모릅니다.
그러면서도 그들은 아주 가슴이 따뜻한 사람인 것처럼 말합니다.
이것은 기도할 때, 더욱 확실히 보여집니다.
그들은 기도를 할 때, 영적으로 졸며, 자고 있습니다.
그들은 자기가 목소리를 내면서 기도를 하기에, 졸지 않고 있다고 여깁니다.
그러나 그들은 같은 기도를 반복해서 말합니다.
기도를 하기는 하지만, 정말 기도를 드리고 싶은 깊은 열정이 없습니다.
그것은, 영적으로 졸며 자는 상태의 기도인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만 잠만 자는 것이 아니고, 그들은 모임에서 대표기도를 하면서,
다른 사람들까지 잠자게 합니다.
그들의 목소리는 진지함과 열정이 없습니다.
그들은 “아멘”을 통해서, 다른 사람들이 대표로 기도하는 것을 협조하지 않습니다.
그리고 다른 사람들이 큰소리로 살아있는 것처럼 기도하면,
그들은 졸림에서 깨어나, 깜짝 놀라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찬송가를 부르면서도 자고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그들의 마음의 진심으로 부를 때,
그들은 졸면서 그냥 가사를 읊조리는 것입니다.
그들의 입술은 움직이나, 그들의 마음은 거기 있지 않습니다.
그래서 찬송 인도자는 그들에게 “진심으로 부르세요!”라고 반복하고 있습니다.
이런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잠자고 있다는 것을 알기에 너무 어렵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기도를 하고, 찬송을 부르지만
거기에는 아무런 열성이 없고, 그들은 벌써 영적으로 잠들어서 죽어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졸면서도 걷고 있습니다.
소위 “몽유병”이란 것입니다.
당신은 졸면서 전도하러 나간 사람을 본적이 있습니까?
어떤 사람들은, 전도하러 나가서, 영혼의 열매를 거두어서 돌아옵니다.
그러나 또 어떤 사람들은, 전도하러 나가서
아무런 열매를, 하나도 못 거두고, 빈손으로 돌아오기도 합니다.
왜 그럴까요?
그들은 영적으로 잠들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새로운 사람들이 교회로 나왔을 때
그들을 신경써주고, 마치 자신의 집에 온 것 같은 느낌으로 도와주는 사람들이 있고
그들은 깨어있는 신자들입니다.
또 다른 사람들은, 자고 있어서, 이런 모든 일에 자기 관심이 아예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하나님의 일을 하기에, 너무 잠에 깊이 빠져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걸어가는 것 같지만’ 사실은 졸며, 자고 있는 상태입니다.
▶나는 오늘날 너무 많은 설교자들이 잠을 자고 있어서 두렵습니다.
그들은 한 구절씩 풀어서, 성경공부 식으로 계속 설교하지만, 자기가 졸면서 그럴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회중들이, 그 졸리는 설교를 거의 듣지 않는다는 사실을,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비록 많은 신자들이, 매 주일 교회에 꼬박꼬박 와도,
그들은 아직도 거듭나지 않았을 수 있습니다!
이런 목사들은,
주변 교회의 다른 목사가,
졸며 자는 신자들을 깨우는 설교를 하는 것에 대해서, 두려워하고 있습니다!
그런 목사들은, 그의 신도들이 깨어나는 것을, 원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들은 잠든 양들이, 잠든 상태로 교회에 계속 다니는 것에 대해서 다행으로 생각하고
‘반쯤은 죽은’ 설교/성경공부에 대해서도,
성도들이 듣는 모습으로 앉아 있는 것을 보면서.. 안심합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십시오!
오늘날 많은 교회들이 왜 죽어 가는지 정말 당연합니다!
본문의 바울의 경고대로, 꾸벅꾸벅 졸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 결과, 신자들의 삶에 있어서, 정말 육욕과 죄들이 드러나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졸거나 자는 교회의 대표적 특징은 ‘기도 모임’이 없거나, 아주 희박합니다.
세월이 흐를수록, 기도모임 시간은, 하나 둘씩 점점 사라지거나 축소됩니다.
아니면, 원래 기도 모임이었던 시간이, ‘주중 성경공부’로 바뀌어 졌습니다.
제 Hymers 가 한 번은, 다른 교회에 갔다가, 어떤 사람이 대표기도를 하는데,
정말 죽은 사람처럼 기도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영혼이 완전히 죽은 상태에서, 기도하는 것입니다.앞으로 시대가, 점점 그렇게 될 것입니다.
기도는 하는데.. 기도가 아닌 거 말입니다.
오늘날 교회에서, 정말 진실로 기도를 하는 사람들이 거의 없습니다!
있기는 있지만, 대단히 드뭅니다.
우리 교인 한분이, 다른 교회에 예배드리러 간적이 있습니다.
그 분은 일어서서, 남자처럼 담대하게 기도하였습니다.
그러나 그 교회 목사님께서, 그에게 ‘조용히 하라’고 했습니다.
그 교회 목사는, 진실로 기도하는 우리 성도님을,
마치 죽은 사람처럼, 잠을 자고 있는 사람처럼 기도하길 원했던 것입니다!
▶그래서 정말 우리나라 미국이 지금 점점 붕괴되는 것은 당연합니다!
조지 바나가 말하듯, 88%의 젊은이들이
그들이 25세가 되기 전에 교회를 떠나고 “다시 돌아오지 않는다”고
조사결과를 발표한 것은, 과장이 아니라 당연한 말입니다.
“하나님 우리를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들은, 지금 자고 있고, 그 사실조차도 깨닫지 못합니다!
주 하나님, 우리 교회의 많은 교인들을 깨워주시고
다른 교회처럼 그렇게 안 되도록 도와주시옵소서!”
우리는 본문의 말씀을 암송하며, 앞으로 계속 기도하십시다.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살전5:6
▶저희 교회의 장로이신 캐이건 박사는, 제게 이렇게 말했습니다.
다른 목사님들이 우리교회에 와서 설교하는 것을 아주 좋아한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우리 교회 신도들은 그들 의자에 똑바로 앉아서, 집중해서 듣고,
가끔씩은 진심어린 박수도 치며 화답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바로 깨어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오직 깨어 근신할지라!”
어떤 한 목사님은, 나에게,
자기 교회에 나이 드신 여성분들에게, 예배시간에 만약 박수를 치라고 권면하면
그 나이 드신 여성분들은, 다른 교회로 떠나버릴 것이라고 했습니다. (너무 전통적이라서)
그의 말을 들은 나는 “그들을 잠든 다른 교회로 보내십시오. 거기가 그들의 자리입니다!
죽은 예배를 드리고 싶으면, 성공회 교회로 가게, 그들을 보내 드리십시오!”
◑2.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자지 말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나는 맨 앞줄에, 어린 아이들이 앉아있는 것을 보기 좋아합니다.
나는 이 아이들이 어릴 때부터,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그리스도를 사랑하길 기도합니다.
그러나 나는 지금 우리 교회의 청년들을 주의 깊게 살펴보고 있습니다.
지금은 우리교회에 나오지만, 아직 구원받지 못한 젊은 청년들에게 설교합니다.
“성경에서 당신들에게 말씀합니다,
그러므로 이르시기를 잠자는 자여, 깨어서 죽은 자들 가운데서 일어나라.
그리스도께서 네게 비취시리라 하셨느니라” 엡5:14
이것은 ‘이렇게 하라’는 명령이지만, 하나님께서 당신을 일깨워주지 않으면
당신은 깨어날 수도, 죽은 자들 가운데서 살아날(일어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깨워주셔야, 내가 잠자는 가운데서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는, 다만 하나님이 그렇게 해 주시도록, 기도해야 하는 것입니다.
▶사람은 본성적으로 죄인입니다.
이것은 당신이 알 수도 없고, 구원받으려고 이해할 수도 없습니다.
‘회심에 대해’
제가 아무리 자세히 성경을 풀어서 설명해도
당신은 끝까지 이해하지 못합니다.
당신은 간단한 복음을 수 십 번 들었지만, 아직도 영적 소경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을 받지 아니하나니, 저희에게는 미련하게 보임이요.
또 깨닫지도 못하나니, 이런 일은 영적으로라야 분변함이니라.” 고전2:14
우리는 당신에게, “예수님께로 나아 오십시오”라고 말합니다.
그러나 당신은, “하지만 어떻게 내가 그분께 나아올 수 있나요?"라고 말합니다.
나는 당신에게 많이 말했지만
당신에게 도움이 되게 설명해 줄 수 없습니다. 그 이유는,
당신은 성령님으로 깨어나야 하지, 우리의 설명으로는 아무런 소용이 없습니다!
위 고전2:14절을 다시 곰곰이 읽어 보십시오.
▶제2차 대각성 운동 때, Thomas Charles (1755-1814)는 말했습니다,
“깨어난 거의 모든 사람들은… 사람을 미치게 할 정도의 아주 강한 고통과…
큰 고통을 호소하며 울고, 죄와 위험한 상태를 느끼고, 그들의 영혼을 우려하며…
자비를 외친다” 주1)
이것이 하나님께서 보내신 부흥 때에, 많은 사람들에게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이 한 사람이 거듭날 때 똑같이 경험하는 일입니다.
*소위 radical conversion 극단적 회심이라 말하는데, 이게 진짜 거듭남입니다.
영혼을 잃어버린 죄인이 “죄의 각성과 심판의 위험을 느끼고,
주님의 용서와 자비를 구할 때”
곧 그리스도에게 나아오게 되고, 구원을 받는 일이 일어납니다.
이것은 어떻게 일어날까요?
기독교 집안이 아닌 곳에서 자란 사람들에게는, 보통 이런 과정을 통해서
그의 구원이 일어납니다.
▶이 회심 conversion 에 대해, 내가 읽은 책 내용을, 알려드리겠습니다.
그 젊은이는 교회에 관심이 없고, 농구만 좋아했습니다.
그는 목사님으로 부터 교회에 나오도록 초대받았습니다.
그가 교회에 다니는 이유는, 농구를 연습하기 위해서였습니다.
설교는 그에게 의미가 없었지만, 그래도 그는 교회에 왔습니다.
시간이 지나자, 교회는 그에게, 농구보다 더 중요하게 되었습니다.
얼마 더 지나서 “구원”이라는 단어가 그의 마음에 꽂혔습니다.
그것이 무슨 뜻이든, 그것이 자신에게는 없다는 것을 알았습니다.
그는 그가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것을, 아무에게도 알리고 싶지 않아서
목사님과 상의도 안하였습니다.
그는 “좋은”사람이 되려고 결정했고, 그 후로 욕설을 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아무리 그는 시도해도, 좋은 사람이 되지는 못했습니다.
그는 자신의 힘으로는, 자신을 바꿀 수 없다는 사실을 알고 놀랐습니다.
그는, “내가 처음으로 착한 사람이 되기 위해서 시도했을 때
그것은 실패로 끝났습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그때, 그는 하나님과 예수님에 대해서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예를 들면, ‘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돌아가셨을까?’
그는 이런 생각을 예전에는 절대 하지 않았지만
지금은 그에게 이것이 너무 중요했습니다.
그는, “나는 새로운 세상이 나에게 열리면서
내가 아주 혼란에 빠진 젊은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마지막으로, 죄에 대해서 죄책을 느끼게 되었고,
그는 설교 마지막에, 초청에 응답하고 상담을 받으러 갔습니다.
그는, “이것은 아주 감정적인 경험이었습니다”라고 했습니다.
(지식적이 아니라, 자기 마음에서 어떤 변화가 일어났다는 뜻입니다.)
그는 예수님을 그날 밤 믿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일이 50년 전에 일어났지만, 그는 이것을 아주 생생히 기억하고
“이것은 나의 삶과 나의 영원한 운명을 바꾼 경험이다”라고 했습니다.
그는 지금, 수 십 년 동안 개혁파 (리폼드) 교회 목사로 사역하고 있습니다.
나는 그가, 자기의 거듭난 경험을, 책으로 쓴 이유를 알 것 같습니다.
‘당신도 깨어나서 나와 같이 구원받기를/회심하기를 원합니다!’ 주2)
▶내가 이 간증을 읽으면서
내 자신의 거듭나는 경험과, 아주 비슷하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소위 극단적 회심 radical conversion 이라 불리는데,
보통은 강한 죄책과, 강렬한 회개를 동반한 거듭남을 뜻합니다.
이런 회심론에 반대하는 분들도 있는데,
그런데 미국의 1, 2차 대각성 운동, 그 앞서 17세기 스코틀랜드의 부흥 등,
부흥운동의 거의 대부분 지도자들은,
전부가 공통적으로 이 ‘극단적 회심’을 체험했습니다. 그리고 성도들에게 권합니다.
(제 Hymers의 회심 체험을 계속 간증하겠습니다.)
나의 이웃은, 나를, 침례교회로 같이 인도했습니다.
나는 그들이 나에게 잘해줬기 때문에, 난생 처음으로 교회에 가게 되었습니다.
나는 설교를 이해하지 못했지만 “구원”이란 단어를 배우게 되었습니다.
나는 내 삶을 깨끗이 하려고 노력했고
내가 선교 사역을 하겠다고, 공식적으로 발표도 했습니다.
나는 이것이 구원을 받을 수 있는 길이라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이런 것들이 제게 도움이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선교사가 되기로 결심하고, 중국 침례교회를 갔습니다.
그리고 이것도 아무런 도움이 되지 않았을 때
나는 아주 절망스러웠고, 죄에 깊이 빠져있는 생각 중에
바이올라 대학교를 가기로 결심했습니다.
거기서 나는 Dr. Charles J. Woodbridge의 설교를 들을 때,
그리스도께서 나에게 내려오셨습니다.
그리고 나는 그를 믿었고, 그의 피로 나는 구원을 받고, 의롭게 되었습니다.
그 이전에, 나는, 강단 초청에 응해서 “앞으로” 여러 번 갔지만, 여전히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 이전에, 나는, 나의 삶을 그리스도께 몇 번이나 헌신하였으나, 구원받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어느 시점에, 예수님 그분께서 나에게 오셨을 때
그는 나를 그의 자비와 은혜로, 나의 죄에서, 그의 피로 씻어 주셨습니다!
▶나의 간증과 개혁교회 목사님의 간증이 무엇이 같습니까?
우리 모두 교회에 초대받아서 갔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기독교 가정에서 자라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우리 모두, 교회 사람들이 친절해서, 계속 갔습니다.
하지만 설교는 우리에게 의미가 없었습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받지 못한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우리 모두 진실한 기독교인이 되려고, 착한 삶을 살려고 노력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모두 실패했습니다.
우리는 죄를 느끼게 되었을 때, 죄책을 강하게 느끼게 되었을 때,
우리는 예수님을 믿음 안에서, 회개하고, 구원을 얻고 평안을 찾았습니다.
처음에 우리는 교회에 왔지만, 진정한 믿음이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결국 우리는, 영혼을 잃어버린 죄인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그리고 성령님께서, 우리를 예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모두 예수님께로 오는 “방법”을 몰랐습니다.
우리가 죄를 느끼고 깨어났을 때, 성령님께서 우리를 그에게 인도하셨습니다.
이것은 은혜로 말미암아, 성령님께서 인도하셔서,
우리는 그리스도의 보혈로 죄 사함을 받았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성령님께서 역사하시도록,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 설교의 2단락의 제목이,
아직 거듭나지 못한 사람들이
“자지 말도록, 깨어나도록” 기도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그러나 교회에서 태어나고 자란 사람들은 어떻게 거듭납니까?
여기 그들의 간증이 있습니다.
아래는 우리교회에서 최근에 회심한, 한 청년의 간증 중 일부입니다.
나는 심신이 피곤해서 쉬려고 잠을 자려 하였지만, 잠이 잘 오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의지를, 점점 꺾으시기 시작하였습니다. 성령의 역사가 시작된 것입니다.
주일 아침이 되어서, 나는 정신적으로 그리고 영적으로 많이 지쳐있었습니다
그러나 나는 하나님을 향한 싸움은, 더욱 강력하고 강하게 되었습니다.
설교가 시작되면서, 나는 눈을 감고 턱을 꽉 물으면서
나를 가득 채우고 있던 고통과 죄의 감정을 물리적으로 저항하려고 했습니다…
나는 내가 '사악한 죄인의 최악'이란 것을 알고 있었지만,
설교를 들으면서도, 나는 그리스도의 부르심에 항복하지 않았습니다..
나는 하나님 앞에 부패하고 신성하지 않은 모습을 느꼈습니다..
내가 죄지은 일들은 점점 줄어들었지만, 내가 죄인이라는 인식은 점점 커졌습니다.
목사님께서 예수님을 믿으라는 말을 했습니다..
Hymers 목사님은, 나에게 그리스도를 믿고 그분에게 오라고 당부하였습니다.
나는 그렇게 하고 싶었지만, 나는 내 자신을 그렇게 내버려 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에, 내가 어떻게 예수님을 믿을 수 있을까 하고 생각하는 순간,
나의 가장 큰 죄는, 내가 바로 예수님을 무조건 거부한 것이란 것을 알았습니다.
심지어 그렇게 내가 시도해도…내가 나의 의지로 예수님을 믿으려 했지만,
나는 이것조차도 그를 거부하고 있었습니다.
내가 예수님을 믿으려고 많은 노력을 해도, 나는 그렇게 할 수 없었습니다.
나는 희망이 없었고, 패배자로 느껴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부르고 계셨습니다..
그러나 나는 고집스럽게도, 나의 의지로 그를 믿으려 하고 있었습니다.
갑자기, 설교중 들었던 말이 나의 귀에 부드럽게 들렸습니다,
“그리스도께 항복하십시오! 그리스도께 항복하십시오!”
그 순간, 내가 거부하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로 인해서
십자가에서 고통당하신 것이 나의 가슴을 사로잡았습니다.
비록 내가 그의 적이었지만
하나님의 오직 하나뿐인 아들은 나를 위해 천국에서 죽으러 오셨습니다.
이 생각은 나의 마음의 깊은 곳에 생각을 부쉈습니다.
이 순간 나는 예수님께 항복하고 그를 믿었습니다.
나는 나에게 있었던 모든 것을 포기하고, 단지 그를 믿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 나를 받아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를 데리고 가셨습니다.
그는 내가 그를 거부했다고, 나를 거부하지 않으셨습니다.
가장 힘들었던 것은, 어떻게 그리스도께서 나를 구원해주시고
용서해 주시는 것이 힘든 것에서 온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내가 그리스도를 계속 거부한 것이었습니다.
이것은 거의 내가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도록 허용한 순간
그는 그때 바로 나를 그의 보혈로 씻어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것은, 나의 의지로 하는 것이 아니고,
단지 나 자신을 그에게 항복하는 것입니다!
내가 거듭난 그 순간은, 정말 간단하고 나는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었습니다.
이것은 모두 은혜로 이루어졌습니다…
나는 내 자신을 다해서 예수님을 사랑하고,
오직 그로 인해서 평안을 가질 수 있게 되었습니다.
누군가 그들의 죄를 알고 예수님께서 그의 보혈로 그들을 깨끗히 씼어주는 것이
필요하다는 것을 느끼길 바랍니다!
오, 오늘 아침 당신은 이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나는 환영하시는 주님의 목소리를 듣습니다,
갈보리에서 흘렀던 주님의 보혈로 깨끗해 집니다.
내가 지금 옵니다, 주님! 주님께로 지금 갑니다!
나를 갈보리에서 흘린 보혈로 씻어주시고, 깨끗히 해주소서.
(“I Am Coming, Lord” by Lewis Hartsough, 1828-1919).
“그러므로 우리는 다른 이들과 같이 자지 말고..”
지금 바로 상담실로 가십시오.
강당 뒤로 가시면, Dr. Cagan이 당신을 그곳으로 모시고 기도하고 상담해 주실 것입니다.
오늘 누군가 예수님을 믿을 수 있도록 기도해 주십시오. 아멘.
............................
주1)
Paul E. G. Cook, Fire From Heaven, EP Books, 2009, p.34.
주2)
Stephen Smallman, What is True Conversion?, P & R Publishing, 2005, pp. 8-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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