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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라지의 비유 묵상

LNCK 2014. 7. 22. 11:02

◈가라지의 비유 묵상          마13:27~30            인터넷 여기, 저기서 스크랩

 

마13:27. 집 주인의 종들이 와서 말하되 주여 밭에 좋은 씨를 심지 아니하였나이까

그러면 가라지가 어디서 생겼나이까

28. 주인이 가로되 원수가 이렇게 하였구나 종들이 말하되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밀은 그리스도를 만나 성령을 받은 사람이고, 가라지는 그런 척 하는 사람입니다.

가라지와 같은 사람을, 불신자로 봐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가라지와 밀은 처음엔 서로 구별이 가지 않기 때문입니다.

 

즉, 신앙인의 모습을 하고는 있지만

마지막에 가서야 참 신앙인이 아니었음이 드러나는 사람이 가라지인 것입니다.

 

 

◑1. 너희가 심판할 권세는 없다.

 

‘주인님, 밭에 뿌리신 것은 좋은 씨가 아니었습니까?

그런데 가라지는 어디서 생겼습니까?’

 

교회에 나오지 않는 사람은 차치하고,

교회에 나온 사람들 중에도 공동체와 함께 잘 사는 사람들이 있는가 하면,

여러 가지 이유와 사정으로 떠나가는 이들도 있습니다.

 

때론 목회자들에게 실망하기도 하고, 때론 같은 신자들에게서 상처를 받기도 하고,

때론 고참 신자와의 관계에서, 때론 공동체의 봉사 때문에

스스로 믿음의 회의를 느껴 함께 하지 못하는 이들도 있습니다.

 

잘 믿다가도, 열심히 하다가도, 행여나 삶에 환난과 실패와 역경이라도 만나게 되면

금방 실의에 빠지기도 하고 좌절하는 것이 우리네 신앙입니다.

 

물론 그런 일을 당하게 될 때 더 굳게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하며,

기도하고 매달리는 사람들도 있지만,

보통의 경우는 믿음의 혼란을 겪게 되는 것이 사실인 것 같습니다.

 

오늘 복음 말씀에서 예수님께서는 하늘나라에 관하여 비유로 말씀하셨습니다.

밀과 가라지에 대한 말씀입니다. 제자들이 밭에 가라지를 뽑아버리려고 하자

예수님께서는 “너희가 가라지들을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고 하십니다.

 

가라지를 없애버리려는 제자들의 열정을 식혀버립니다.

 

여기서 중요한 것은 우리가 해서는 안 되는 일을

예수님께서는 분명히 알려주셨다는 것입니다.

‘너희가 함부로 뽑아서는 안 된다’는 것입니다.

 

밀과 가라지를 분별할 능력이 너희들에게는 없다.. 라고 하신 것이 아니라,

당신 외에는 어느 누구도 심판할 권한이 없다는 말씀입니다.

 

교회조차 용서할 권한은 있지만, 심판할 권한은 없다는 말씀이기도 합니다.

 

주님께서는 늘 우리에게 남을 심판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사랑으로 껴안으라고 하십니다. 일곱 번씩 일흔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하십니다.

 

그러시면서 언제나 자신의 들보를 먼저 보아야 한다고 깨우침을 주십니다.

 

 

◑2. 하나님은 가라지라도 살리시는 분

 

이 비유는 추수 때에 뽑혀 불에 던져질 가라지의 운명을 알리기 위한 것이 아닙니다.

그 반대로, 가라지라도 추수 때까지 두고 보시고, 회개의 기회를 주시는

선하신 하나님에 대하여 가르치십니다.

 

옛날 사회에서 하나님은

가뭄, 홍수, 태풍, 지진 등, 천재지변을 통해,

노하시고 벌을 주시는 분이라고 사람들은 믿었습니다.

 

따라서 우리는 오늘 복음의 비유 이야기를 들으면서

불에 던져지는 가라지의 운명에 더 관심을 보일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의 비유에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것은

밀이삭과 더불어 가라지도 자라게 두는 주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생명을 뿌려서 우리를 살게 하셨습니다.

 

사람은 사람을 판단하고, 쉽게 버립니다.

‘저희가 가서 그것들을 거두어 낼까요?’라고 오늘 비유의 일꾼들은 말합니다.

 

그러나 주인은 ‘가라지를 거두어 내다가 밀까지 함께 뽑을지도 모른다.

수확 때까지 둘 다 함께 자라도록 내버려 두어라.’라고 말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이 하시는 일입니다.

 

가라지는 아무에게도 도움이 되지 않으면서 땅의 양분을 흡수하여 스스로 살고,

자랄 궁리만 합니다. 가라지는 주변의 다른 생명을 위해 전혀 기여하지 않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은 밀 뿐만 아니라, 가라지도,

살리고 자라게 하는 분이십니다.

 

가라지가 추수 때, 뽑혀서 불태워지는 것은

자기가 끝까지 가라지로 남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모두 오만과 편견에 사로잡혀 있습니다.

그러므로 함부로 남을 가라지로 판단해서는 안 됩니다.

 

제인 오스틴은 <오만과 편견>이란 소설로, 영국 문학계에 길이 남게 된 여성 작가입니다.

그 이야기를 소재로 만들어진 영화가 ‘비커밍 제인’입니다.

 

오만과 편견은, 물론 해석하기 나름이겠지만,

제 나름대로는 ‘오만’은 남자 주인공의 특성,

‘편견’은 여자 주인공의 특성을 생각하며 썼지 않나 싶습니다.

 

물론 오만하면 편견도 동시에 갖게 되는 것이기는 하지만 말입니다.

사랑이란 것이 시작되기 전의, 남녀의 마음상태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엘리사벳이라는 주인공은 매우 냉철한 판단력을 지닌 여인입니다.

사람을 첫인상, 사교성, 가치관, 사용하는 언어와 제스처 등으로 정확하게 판단하는 여인입니다.

 

그리고 그 여자에게 걸려들어 가장 안 좋게 판단을 받는 남자가

엄청난 재벌이자 미남인 다아시 씨입니다.

다아시는 물론 돈도 많지만 무표정하고 사교성 없고

거만하게 사람을 깔보는 오만한 인물입니다.

 

그러나 이 둘이 조금씩 사랑에 빠지게 되자,

엘리사벳은 거만하고 오만하게만 보였던 다아시 씨에게서

숨어있던 따듯하고 배려 깊은 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또한 오만하게만 보이던 다아시가

엘리사벳 앞에서는 한없이 낮아지는 겸손한 모습을 보입니다.

 

엘리사벳은 이런 다아시 씨를 보며 지금까지 판단해 왔던 모든 것이

자신의 편견이었음을 체험하게 됩니다.

 

결국 사랑은 둘을 더 겸손하게 만들어

상대를 판단하지 않고 받아들일 줄 아는

한 쌍의 완전체로 만드는 힘을 지녔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오만과 편견이, 

   자칫 남녀의 행복한 만남을 불가능하게 할 뻔 했네요. 

 

◑3. 타인의 허물은, 내 인내를 자라게 합니다. 토마스 A. 켐피스

 

자기 자신이나 혹은 다른 사람에게 도저히 바로 잡을 수 없는

어떤 허물이 있을 때,

그대는 묵묵히 인내하면서, 하나님께서 친히 조치해 주실 때까지 기다리십시오.

 

어쩌면 그것이 그대의 연단과 인내를 위해서

더 좋은 일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세요.

 

우리에게 있어서 인내와 연단 없이

모든 선행이 온전히 인정받을 수는 없습니다.

 

감당하기 어려운 어떤 장애를 만났을 때 그대는

하나님께서 도와 주사 그것을 무리 없이 감당할 수

있도록 기도하십시오. 마6:13; 눅11:4

 

만약 어떤 사람이 한두 번의 경고에도 불구하고

그대의 말에 귀를 기울이지 않으면, 그대는 그와 더불어

논쟁하는 대신 모든 일을 하나님께 맡기되,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며(마6:10),

 

악을 선으로 바꾸시는

하나님의 이름이 모든 주의 종들 가운데서 영광을

받으시도록 기도하십시오.

 

다른 사람들이 어떤 허물과 약점을 가지고 있든 간에,

그대는 참고, 그것을 감당하기 위해 노력하세요.

왜냐하면 그대 자신도 다른 사람들이 감당해 주어야 할

많은 약점을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6:1, 살전5:14

 

만약 그대가 자신이 원하는 모습으로 자기 자신을 개선할 수 없다면,

어찌 그대가 다른 사람들을 그대가 원하는 모습으로

개선 할 수 있겠습니까?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허물은 잘 지적하면서도,

자기 자신의 허물을 고치려고 하지는 않는 경향을 가지고 있습니다.

 

.............

 

우리는 다른 사람들은 회개하라고 호되게 야단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서는 한 번도 야단치려 하지 않습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제멋대로 하면 눈살을 찌푸리면서

자기 자신의 욕망은 억제하려 들지 않습니다.

이와 같이 우리는 이웃과 자신을 공평하게 대하는 경우가 매우 드뭅니다.

 

만약 모든 사람이 한결같이 다 온전하다면,

우리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이웃 때문에 고통받을 일이 무엇이 있겠습니까?

 

그러나 하나님은 이제 우리가 (죄)짐을 서로 지라고 말씀하십니다. 갈6:2

왜냐하면 사실 허물없는 사람은 아무도 없고, 짐 없는 사람도 없고,

혼자 모든 짐을 처리할 만큼 충분한 힘과 지혜를 지닌 사람도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짐을 서로 지며

서로 위로하고

서로 돕고

서로 가르치며

서로 권면해야 합니다. 고전12:25, 살전5:14

 

 

◑4. (용서의) 십자가에서, 생수의 강이 흐릅니다 요19:34

 

▶에스겔 47장에서는 에스겔 선지자에게 다음과 같은 계시가 보여졌습니다.

가장 마지막 때가 되면 예수 그리스도의 교회는,

온 인류 역사를 통튼 그 어느 때보다도 더욱 영광스럽게 될 것이며

더욱 승리를 거두게 될 것입니다.

 

주님의 진정한 몸은 그 능력이나 영적 권위에 있어서

약화되거나 감소되지 않을 것입니다. 절대 그렇지 않을 것입니다.

 

그분의 교회는 권능과 영광의 불꽃으로 전진할 것이며,

그 누구도 알지 못했던 가장 충만한 예수님의 계시를 누리게 될 것입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기록합니다.

“그 지역들의 물고기가 그것들의 종류대로 대해의 물고기같이 심히 많으리라.” 겔 47:10

주님 임재의 차오르는 물속에서, 헤엄칠 성도들의 지체가 드러나게 될 것입니다.

 

차오르는 물에 관한 에스겔의 환상의 근본 토대는 십자가입니다.

우리는 이 이미지의 성취를 요한복음의 말씀에서 볼 수 있습니다.

“군사들 가운데 하나가 창으로 그분의 옆구리를 찌르니, 즉시로 거기서 피와 물이 나오더라.” 요19:34

 

그리고 주님은 이 선지자를 더 깊은, 그리고 더 먼 강물로 계속 나아가게 했습니다.

결국에는 물이 너무 깊고 압도적이었다고 에스겔은 말합니다.

“그것은 내가 건너지 못할 강이더라. 그 물들이 솟아올라 헤엄칠 물이 되고

건너지 못할 강이 되었더라.” 47:5

 

오늘날 내가

이웃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느라,

내 옆구리에서 피와 물이 나올 지경이 될 때,

그것은 생수의 강이 되어서.. 많은 생물들을 먹여 살리는 것입니다.

 

그런데 오히려

가라지를 뽑아버려야 한다고 해서.. 되겠습니까?

‘그러면 우리가 가서 이것을 뽑기를 원하시나이까’ 마13: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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