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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의 유랑자들

LNCK 2015. 7. 9. 08:43

하나님의 유랑자들              11:8              2014.02.16.출처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8

 

유랑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지를

교훈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되던 어느 날문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순종하느냐불순종하느냐.. 양자택일해야 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제가 금년에 77세입니다아브라함과 비슷한 나이인데요.

그런데 저보고 옆집으로 이사 가라고 해도 끔찍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옛날에가족과 조카 롯과사람들과가축들을 이끌고

이방 땅으로 간다는 것은아주 어려웠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이 어려운 명령에 그냥 순종한 후

175세 때 세상을 떠날 때까지시종 똑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하나님께서 보장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너는 복이 될 것이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보장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하나님께서 그의 사람들에게 주신 공통적인 약속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보장 하나가 있어요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도야곱에게도모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주저할 때도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

모세를 불러내어 출애굽의 장정을 맡겼습니다.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사도들에게도 주님께서 똑같이 말슴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임마누엘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이 보장이 항상 반드시 우리가 만사형통하고건강하고,

순탄대로를 걸어갈 것이란 뜻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그날부터,

자기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11:8절처럼,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손자 야곱이우여곡절 끝에애굽까지 갔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몇이냐?’

대답이 제 나그네길 세월이 130년입니다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야곱에게 여러 차례 약속하시고 보장하셨어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당사자인 야곱은자기 130년 일생을 회고하면서 한 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보면군데군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중요한 삶의 대목마다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고노예가 되었고하인이 되었고관리자가 되었고

옥에 갇힙니다.

애굽 총리가 되긴 했지만실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가 살았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을 받았지만,

그러나 출애굽 40년 광야의 행진 속에서그가 겪은 고초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가나안 입성그 자체는 못했습니다느보 산에 올라가서,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고그는 느보산에서 자기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랑자들이 복음전파의 도구였습니다.

 

사도들이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온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거의 사도요한을 제외하고는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로 갔고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했고,

안드레는 우크라이나빌립은 히에라폴리스,

바돌로메는 아르메니아에서도마는 인도에서다대오는 이란에서

열심당 시몬도 이란에서막달라 마리아는 프랑스 남부까지 흘러갔습니다.

 

프랑스 남부 엑생 프로방스에 가면막달라 마리아의 기념관과 유적이 있습니다.

 

마가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습니다.

지금 이태리 베니스에 마가의 성당이 있지만,

그건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유골을 훔쳐다가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한 후에예루살렘 교회의 교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기독교는교회는

이 세상에 지리적 중심지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유랑하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랑은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중세 초부터 유럽 대륙의 복음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이리 저리 떠돌아다녔던 유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복음화 되었습니다.

 

400~800년까지 이르는서부 유럽과 중앙 유럽의 복음화

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고트 족에 의해서 포로와 노예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납치되어간 사람들이

그 땅으로 가서그들 대부분이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복음화를 위해서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복음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킹 족이 유럽을 침략하고수도원을 파괴하고교회를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납치당해 갔던 수도사들이또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스칸디나비아 지역 복음화에 위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도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흘러온 유랑자들이었습니다.

 

 

<유랑의 교회>

 

제작년 4월에 제가동남아시아에서 모이는

인도차이나 반도 한국 선교사 대회에 가다가일본에 잠시 들렀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지역에지금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한 번 보기 위해그 지역을 제가 방문했습니다.

 

쭈욱 며칠 돌아본 후에일본 기독교 동북지역 재해대책본부가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그 사무실에서책임을 맡은 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 2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이야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그 아래 층 구석에 서재가 있었고그 유리창에 책 광고하는 포스트가 붙어 있었습니다.

<유랑의 교회그 제목이 제 마음을 갑자기 사로잡았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후쿠시마 지역에 있는후쿠시마 제일침례교회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좋은 예배당 가지고편안하고 기쁜 신앙생활을그 교회가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가 닥쳤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죽고피신했고일본 전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가족을 찾아친지를 찾아수용소를 찾아

그리고 그 교회로동네로지금까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그들에게 현실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집을 떠나 전 일본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이깨달은 최고의 은혜는,

비록 집은 없어지고더러는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고

재물을 잃어버렸고교회 건물도 없고일본 전역에 흩어져 버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주안에서 하나인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을감사하게 생각한다.. 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예배당에 모여서누렸던 특별한 은혜들,

건물시설제도프로그램 등등 특별한 은혜들,

교인끼리 서로 얼굴과 맞대어 이야기하고같이 차를 마시고같이 식사하고,

같이 교제하던..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이 모든 것들이 다 없어졌어요.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어요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있을 때는 그것을 몰랐었지요.

 

이제 다 흩어져보니없어지고 난 후에야

서로 생각하고그리워하고기도하는 것

 

비록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함께 찬양하지는 못하지만

때를 따라 같은 주님을 찬양하며..

 

그러나 공동체다그리스도 안에서이것이 교회다..

그 진리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한다체험했습니다.”

그런 내용이 책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저자 목사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성경을 읽을 때,

출애굽바벨론 포로생활유배생활,

초기 교회의 성도들이 박해를 받아 온 사방에 흩어지고,

숨어 다니고 했던 이런 이야기들을

성경에서역사에서 읽었지만단순한 그것은 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쓰나미로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체험하다 보니까,

모든 이런 이야기들이 새롭게실감 있게느껴지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행진했고.. 그런데 단순히 그게 아니에요.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이 유랑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그 어린 것들은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병든 사람들은 어떻게 치료받았을까연로한 노인들은광야에서 어떻게 돌볼 수 있었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지냈을까죽은 후에 장례를 지내고 무덤을 만들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길을 또 가야했던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까?’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포로생활유배생활자국에서 쫓기고 숨어 다니던 디아스포라 성도들의 처지를

쓰나미를 통해서조금이나마 실감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은혜였습니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유랑하지만생동적인 교회

 

유랑의 교회여기서 오늘 유랑이라는 말

유랑이라는 이 사실을우리가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답게 존재하고 사역하기 위해서는,

유랑이라는 이 말이이 역사적 사건들이이 사실들이참으로 중요합니다.

 

유랑생활은많은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만없어서는 안될 것만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가 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까?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비본질적인 것을 중하게 여기고.. 그런 거죠.

 

로마제국 하에서 박해 받던 초기교회가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약 5천만 로마제국 인구 중에약 5백만명 정도가 기독교인이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10% 엄청난 숫자입니다.

 

거듭되는 박해 속에서,

가시적인 연락교류가 없었던 그런 시대에

어떻게 10%정도의 신자들이 있었던가요?

교회는 계속 내용적으로 부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이 1930년대 말에 전쟁에 휘말렸습니다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났습니다.

그때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중국 기독교인의 수가 약 75~80만이었습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고바로 내전에 돌입했습니다. 1947년에 공산화되었습니다.

1977년 말에 개방이 시작되기 까지 약 30년 동안중국교회는 비참하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폐쇄되었고교회지도자들은 감금되거나처형되거나,

강제노동소용소에 보내졌습니다.

 

공개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책찬송가도 출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30년이 지났습니다그런데 1970년대 말에개방을 하고 보니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교인들이 중국에 있었습니다.

 

로마제국과 중국교회의 역사는,

우리들에게우리의 선교와 우리의 교회에 중대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선교사들과 대조적인 교회가 필요없다는 뜻인가?’

라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박해받고이리저리 쫓겨 가고공식적인 선교활동이 금지된 시기에

오히려 생동력을 가지고교세가 증가했다는 사실을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 핵심적인 이유는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해 때문에교회가 비본질적인 것들지위교권명예건물시설 등등

이 비본질적인 것들을 박탈당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냥 본질적인 것말씀,

여러분 중국교회의 형편을 우리가 잘 아는데요,

그 기간 동안 성경이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성경들을 머리에 담고 있었습니다.

혹은 필기해서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말씀.

 

기도믿음소망사랑성도의 교제.

이런 것들을 고수함으로써순결하고 생기 있는 교회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 역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교훈입니다역사적 교훈은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유랑의 교회>라는 책이 한국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기적을 이루는 교회그렇게 붙였습니다.

 

유랑의 교회’, 그 제목이 기적을 이루는 교회’ 이렇게 바뀐 거예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이 제목을 보면서,

이렇게 제목을 바꾼 이유와 의도가 출판사 쪽에 있겠지만,

 

제가 오해인지는 모르지만어쩌면 오늘 우리 교회의 성향을 드러낸,

우리 교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은 사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랑의 교회기적을 이루는 교회,

기적행운성공자기만족자기소원성취..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설교하고,

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괜찮아요.

 

그런데 예수 믿으면 그렇게 된다.. 등등 이런 식으로 강조하면서

섬김과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기피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징벌처럼 가르치고

설교하는 듯한 교회들이 적지 않고

 

그런 교회들에 오히려 어떤 경우로 보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오늘의 이 현실,

 

유랑의 교회기적을 이루는 교회

그런 좀 착잡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에어떤 사람들은 종교가 아편이라 그랬습니다.

그런 경우진정한 교회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시고 약속하신 복을

구분할 수 있겠어요?

 

러시아에 세인트 피터스버그(상뜨 빼째스부르그도시에 가면,

베드로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시많은 큰 교회들이 있고,

기독교 건물들이 많고장식들도 많고기독교 예술품들로 충만한 이 도시에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이 일어나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성공했습니다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것입니다.

 

왜요그때는 그랬어요. ‘종교는 아편이다.’ 그 말이 먹혀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왜요기적성공평안서우너성취자기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소원성취!

예수 믿으면 그것이 은혜받은 증거다그것이 은혜다.

 

물론 그럴 수 있죠그러나 그것만이 아닌데..

 

마치는 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디아스포라 교회가 대부분 한국이라는 본토친척아비집을 떠난 이들의 교회입니다.

 

지리적 이동이주에 본질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유랑인가아닌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갈바를 알기 어려운 이 세상에우리의 삶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니까하루 후의 일을 모르는 겁니다.

 

저는 오늘 이 주일에여기서 설교해야 되는지어제 오후까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선한목자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며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지식이나 자기 경험이나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믿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만사를 그분에게 위임하고,

그냥 순종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유랑자들의 공동체로

남은 역사를감당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고그래야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신령한 복을 나누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이곳에 귀한 교회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남은 세월동안가진 것에 만족하고이 세상의 어떤 것에 우리가 집착하고,

축적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날마다 순종하면서

전진하며 움직이는 참으로 유랑하는 귀한 공동체가 이 교회를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선한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하나님의 유랑자들              11:8              2014.02.16.출처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 기업으로 받을 땅에 나갈쌔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갔으며.. 히11:8

 

유랑자들에게 약속하십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오늘 본문은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이하나님의 사람으로 살기 시작하는 이야기입니다.

믿음의 후손인 우리가 어떻게 하나님의 사람으로 살 수 있는지를

교훈하는 기록이기도 합니다.

 

아브라함이 75세 되던 어느 날문득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순종하느냐불순종하느냐.. 양자택일해야 하는 명령이었습니다.

 

제가 금년에 77세입니다아브라함과 비슷한 나이인데요.

그런데 저보고 옆집으로 이사 가라고 해도 끔찍할 것 같아요.

 

그런데 그 옛날에가족과 조카 롯과사람들과가축들을 이끌고

이방 땅으로 간다는 것은아주 어려웠던 일이었을 것입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가나안으로 이주했습니다.

아브라함이 믿음의 조상으로 일컬어지는 것은이 어려운 명령에 그냥 순종한 후

175세 때 세상을 떠날 때까지시종 똑같이 하나님께 순종하는 삶을 살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한 가지 하나님께서 보장한 것이 있습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너는 복이 될 것이다. (복의 근원이 될 것이다)’ 보장하셨습니다.

 

성경에 보면하나님께서 그의 사람들에게 주신 공통적인 약속 한 가지가 있습니다.

보장 하나가 있어요그것은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것입니다.

이삭에게도야곱에게도모세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모세가 출애굽을 주저할 때도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겠다

모세를 불러내어 출애굽의 장정을 맡겼습니다.

 

선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사도들에게도 주님께서 똑같이 말슴하셨습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가지고내가 세상 끝 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겠다.

천하만민에게 복음을 전하여라.’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임마누엘 내가 너희와 함께 하겠다는 약속입니다.

 

그러나 이 약속이이 보장이 항상 반드시 우리가 만사형통하고건강하고,

순탄대로를 걸어갈 것이란 뜻은 아닙니다.

 

아브라함은 하나님의 명령을 순종한 그날부터,

자기로서는 예측할 수 없는 하루하루를 살게 되었습니다.

 

11:8절처럼, ‘아브라함은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갔다고 했습니다.

 

그의 손자 야곱이우여곡절 끝에애굽까지 갔습니다.

애굽의 왕 바로가 물었습니다. ‘네 나이가 몇이냐?’

대답이 제 나그네길 세월이 130년입니다험악한 세월을 보냈습니다.’

 

하나님께서야곱에게 여러 차례 약속하시고 보장하셨어요.

내가 너와 함께 하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당사자인 야곱은자기 130년 일생을 회고하면서 한 마디로

험악한 세월을 살았습니다’ 라고 표현했습니다.

 

요셉의 일생을 보면군데군데, ‘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셔서

그런 말씀이 나옵니다하나님께서 요셉과 함께 하셔서..

중요한 삶의 대목마다하나님께서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러나 요셉은 형들에게 팔렸고노예가 되었고하인이 되었고관리자가 되었고

옥에 갇힙니다.

애굽 총리가 되긴 했지만실로 파란만장한 일생을 그가 살았습니다.

 

모세도 마찬가지지요. ‘내가 정녕 너와 함께 하리라.’ 약속을 받았지만,

그러나 출애굽 40년 광야의 행진 속에서그가 겪은 고초는 말로 다할 수 없습니다.

 

그가 그렇게 원했던 가나안 입성그 자체는 못했습니다느보 산에 올라가서,

멀리 가나안을 바라보고그는 느보산에서 자기 일생을 마감했습니다.

 

 

유랑자들이 복음전파의 도구였습니다.

 

사도들이예루살렘을 떠났습니다온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리고 거의 사도요한을 제외하고는 순교했습니다.

 

요한은 에베소로 갔고베드로는 로마에서 순교했고,

안드레는 우크라이나빌립은 히에라폴리스,

바돌로메는 아르메니아에서도마는 인도에서다대오는 이란에서

열심당 시몬도 이란에서막달라 마리아는 프랑스 남부까지 흘러갔습니다.

 

프랑스 남부 엑생 프로방스에 가면막달라 마리아의 기념관과 유적이 있습니다.

 

마가는 애굽의 알렉산드리아에서 순교했습니다.

지금 이태리 베니스에 마가의 성당이 있지만,

그건 상인들이 알렉산드리아에서 그의 유골을 훔쳐다가 옮겨놓은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의 전통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한 후에예루살렘 교회의 교우들이 사방으로 흩어졌습니다.

그날 이후 오늘까지기독교는교회는

이 세상에 지리적 중심지가 없습니다.

 

다만 하나님의 부르심에 응답하고인도하심에 순종하며,

유랑하는 하나님의 공동체로 세계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이 유랑은주님 오실 때까지 계속될 것입니다.

 

중세 초부터 유럽 대륙의 복음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하며이리 저리 떠돌아다녔던 유랑하는 하나님의 사람들에 의해

복음화 되었습니다.

 

400~800년까지 이르는서부 유럽과 중앙 유럽의 복음화

로마 제국을 침략했던 고트 족에 의해서 포로와 노예와 여러 가지 모습으로 납치되어간 사람들이

그 땅으로 가서그들 대부분이 로마 제국의 기독교인들이었기 때문에

그곳의 복음화를 위해서큰 역할을 한 것입니다.

 

스칸디나비아 지역의 복음화도 마찬가지입니다.

바이킹 족이 유럽을 침략하고수도원을 파괴하고교회를 파괴하고

많은 사람들을 납치해 갔습니다.

 

납치당해 갔던 수도사들이또 그리스도인 여인들이

스칸디나비아 지역 복음화에 위대한 영향을 끼쳤습니다.

 

미국으로 건너온 청교도들도본토 친척 아비 집을 떠나 흘러온 유랑자들이었습니다.

 

 

<유랑의 교회>

 

제작년 4월에 제가동남아시아에서 모이는

인도차이나 반도 한국 선교사 대회에 가다가일본에 잠시 들렀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지역에지금 교회는 어떻게 되었는가사람들은 어떻게 살아가는가?

한 번 보기 위해그 지역을 제가 방문했습니다.

 

쭈욱 며칠 돌아본 후에일본 기독교 동북지역 재해대책본부가 있는 교회를 찾아가서

그 사무실에서책임을 맡은 분과 여러 가지 이야기를 나누었던 적이 있었습니다.

 

작은 교회 2층에 사무실이 있었습니다이야기를 마치고 내려오는데

그 아래 층 구석에 서재가 있었고그 유리창에 책 광고하는 포스트가 붙어 있었습니다.

<유랑의 교회그 제목이 제 마음을 갑자기 사로잡았습니다.

쓰나미가 강타한 후쿠시마 지역에 있는후쿠시마 제일침례교회 목사님이 쓰신 책입니다.

 

좋은 예배당 가지고편안하고 기쁜 신앙생활을그 교회가 해 왔었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갑자기 쓰나미가 닥쳤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죽고피신했고일본 전역으로 흩어졌습니다.

가족을 찾아친지를 찾아수용소를 찾아

그리고 그 교회로동네로지금까지 돌아갈 수가 없습니다.

꿈에도 상상할 수 없었던 비극이그들에게 현실로 들이닥친 것입니다.

 

집을 떠나 전 일본에 흩어져 있는 교우들이깨달은 최고의 은혜는,

비록 집은 없어지고더러는 가족들이 세상을 떠났고

재물을 잃어버렸고교회 건물도 없고일본 전역에 흩어져 버렸으나

 

그럼에도 불구하고우리가 주안에서 하나인 공동체로서

교회의 본질을 깨닫게 된 것을감사하게 생각한다.. 는 것입니다.

 

그 이전까지는예배당에 모여서누렸던 특별한 은혜들,

건물시설제도프로그램 등등 특별한 은혜들,

교인끼리 서로 얼굴과 맞대어 이야기하고같이 차를 마시고같이 식사하고,

같이 교제하던.. 너무나 당연하게 여겼던 이 모든 것들이 다 없어졌어요.

 

생각해보니 당연한 것이 아니었어요하나님의 특별한 은혜였습니다.

있을 때는 그것을 몰랐었지요.

 

이제 다 흩어져보니없어지고 난 후에야

서로 생각하고그리워하고기도하는 것

 

비록 얼굴과 얼굴을 대하여 함께 찬양하지는 못하지만

때를 따라 같은 주님을 찬양하며..

 

그러나 공동체다그리스도 안에서이것이 교회다..

그 진리를 알게 된 것을 기뻐한다체험했습니다.”

그런 내용이 책에 적혀 있었습니다.

 

그 저자 목사님께서 그런 이야기를 하셨어요.

 

성경을 읽을 때,

출애굽바벨론 포로생활유배생활,

초기 교회의 성도들이 박해를 받아 온 사방에 흩어지고,

숨어 다니고 했던 이런 이야기들을

성경에서역사에서 읽었지만단순한 그것은 지식이었습니다.

 

그런데 자기들이 쓰나미로 이렇게 비극적인 상황을 체험하다 보니까,

모든 이런 이야기들이 새롭게실감 있게느껴지고 깨닫게 된 것입니다.

 

출애굽이스라엘 민족이 광야를 행진했고.. 그런데 단순히 그게 아니에요.

 

광야 40년 이스라엘 백성이 유랑하는 동안,

아이들은 어떻게 태어났을까그 어린 것들은 어떻게 자랄 수 있었을까?

병든 사람들은 어떻게 치료받았을까연로한 노인들은광야에서 어떻게 돌볼 수 있었을까?

사람이 죽으면 어떻게 장례를 지냈을까죽은 후에 장례를 지내고 무덤을 만들고

다시는 볼 수 없는 그 길을 또 가야했던 이들의 심정이 얼마나 비통했을까?’

이런 것들을 알게 된 것입니다.

 

포로생활유배생활자국에서 쫓기고 숨어 다니던 디아스포라 성도들의 처지를

쓰나미를 통해서조금이나마 실감나게 알게 된 것입니다.

그것이 참으로 은혜였습니다.” 라는 고백을 했습니다.

 

 

유랑하지만생동적인 교회

 

유랑의 교회여기서 오늘 유랑이라는 말

유랑이라는 이 사실을우리가 주목하기를 바랍니다.

 

인간답게 살기 위해서는하나님의 사람답게 살기 위해서,

하나님의 교회답게 존재하고 사역하기 위해서는,

유랑이라는 이 말이이 역사적 사건들이이 사실들이참으로 중요합니다.

 

유랑생활은많은 것을 포기해야 됩니다가질 수가 없습니다.

가장 필요한 것만없어서는 안될 것만 가지고 사는 것입니다.

 

역사 속에서 교회가 왜 부패하고 타락했습니까?

너무 많은 것을 가지고비본질적인 것을 중하게 여기고.. 그런 거죠.

 

로마제국 하에서 박해 받던 초기교회가

313년 콘스탄틴 대제에 의해서마침내 신앙의 자유를 얻게 되었습니다.

그때 어떤 역사가들의 기록에 의하면

약 5천만 로마제국 인구 중에약 5백만명 정도가 기독교인이었다.. 라고 기록했습니다.

10% 엄청난 숫자입니다.

 

거듭되는 박해 속에서,

가시적인 연락교류가 없었던 그런 시대에

어떻게 10%정도의 신자들이 있었던가요?

교회는 계속 내용적으로 부흥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중국이 1930년대 말에 전쟁에 휘말렸습니다선교사들이 중국을 떠났습니다.

그때 선교사들의 보고에 의하면중국 기독교인의 수가 약 75~80만이었습니다.

 

1945년에 전쟁이 끝나고바로 내전에 돌입했습니다. 1947년에 공산화되었습니다.

1977년 말에 개방이 시작되기 까지 약 30년 동안중국교회는 비참하게 핍박을 받았습니다.

 

교회는 폐쇄되었고교회지도자들은 감금되거나처형되거나,

강제노동소용소에 보내졌습니다.

 

공개적으로 모여서 예배를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성경책찬송가도 출판할 수 없었습니다.

 

그런 세월이 30년이 지났습니다그런데 1970년대 말에개방을 하고 보니

그 전보다 훨씬 더 많은 교인들이 중국에 있었습니다.

 

로마제국과 중국교회의 역사는,

우리들에게우리의 선교와 우리의 교회에 중대한 도전을 주고 있습니다.

 

선교사들과 대조적인 교회가 필요없다는 뜻인가?’

라는 심각한 질문을 우리에게 던지고 있습니다.

 

교회가 박해받고이리저리 쫓겨 가고공식적인 선교활동이 금지된 시기에

오히려 생동력을 가지고교세가 증가했다는 사실을우리가 어떻게 설명해야 하는가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요.

그 핵심적인 이유는우리가 이렇게 볼 수 있습니다.

박해 때문에교회가 비본질적인 것들지위교권명예건물시설 등등

이 비본질적인 것들을 박탈당하거나 포기할 수밖에 없었습니다가질 수가 없었어요.

 

그냥 본질적인 것말씀,

여러분 중국교회의 형편을 우리가 잘 아는데요,

그 기간 동안 성경이 출판되지 않았기 때문에,

많은 성도들은 자기가 기억하는 성경들을 머리에 담고 있었습니다.

혹은 필기해서 나눠 갖고 있었습니다말씀.

 

기도믿음소망사랑성도의 교제.

이런 것들을 고수함으로써순결하고 생기 있는 교회로 존재할 수 있었습니다.

살아 역사할 수 있었습니다.

 

역사적 교훈입니다역사적 교훈은하나님의 교훈입니다.

 

<유랑의 교회>라는 책이 한국말로 번역되었습니다.

그런데 제목을 <기적을 이루는 교회그렇게 붙였습니다.

 

유랑의 교회’, 그 제목이 기적을 이루는 교회’ 이렇게 바뀐 거예요.

제가 이 책을 통해서이 제목을 보면서,

이렇게 제목을 바꾼 이유와 의도가 출판사 쪽에 있겠지만,

 

제가 오해인지는 모르지만어쩌면 오늘 우리 교회의 성향을 드러낸,

우리 교회의 문제를 그대로 드러낸 상징적인 작은 사건이 아닐까..

그런 생각을 했습니다.

 

유랑의 교회기적을 이루는 교회,

기적행운성공자기만족자기소원성취.. 이런 것들을 강조하고설교하고,

그 자체는 나쁜 것은 아닙니다괜찮아요.

 

그런데 예수 믿으면 그렇게 된다.. 등등 이런 식으로 강조하면서

섬김과 수고와 희생과 고난을 기피하고

오히려 그런 것들은 하나님의 징벌처럼 가르치고

설교하는 듯한 교회들이 적지 않고

 

그런 교회들에 오히려 어떤 경우로 보면 훨씬 많은 사람들이 모여드는

오늘의 이 현실,

 

유랑의 교회기적을 이루는 교회

그런 좀 착잡한 생각을 가졌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래서 전에어떤 사람들은 종교가 아편이라 그랬습니다.

그런 경우진정한 교회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사명을 감당할 수 있겠어요?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허락하시고 약속하신 복을

구분할 수 있겠어요?

 

러시아에 세인트 피터스버그(상뜨 빼째스부르그도시에 가면,

베드로의 이름으로 지어진 도시많은 큰 교회들이 있고,

기독교 건물들이 많고장식들도 많고기독교 예술품들로 충만한 이 도시에

무신론 공산주의자들이 일어나혁명을 일으켰습니다.

성공했습니다러시아 공산주의 혁명이 성공한 것입니다.

 

왜요그때는 그랬어요. ‘종교는 아편이다.’ 그 말이 먹혀들어갔기 때문입니다.

왜요기적성공평안서우너성취자기이기적인 자기중심적인 소원성취!

예수 믿으면 그것이 은혜받은 증거다그것이 은혜다.

 

물론 그럴 수 있죠그러나 그것만이 아닌데..

 

마치는 말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은 갈바를 알지 못하고그 길을 믿음으로 걸어갔다고 했습니다.

이 디아스포라 교회가 대부분 한국이라는 본토친척아비집을 떠난 이들의 교회입니다.

 

지리적 이동이주에 본질적인 의미가 없습니다.

믿음으로 순종하는 유랑인가아닌가.. 이것이 중요합니다.

갈바를 알기 어려운 이 세상에우리의 삶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니까하루 후의 일을 모르는 겁니다.

 

저는 오늘 이 주일에여기서 설교해야 되는지어제 오후까지도 몰랐습니다.

우리가 갈 바를 알지 못합니다.

이 세상에서 선한목자이신 주님을 믿음으로 순종하며나아가야 합니다.

 

아브라함의 믿음은지식이나 자기 경험이나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믿는 것이 아니고

인격적으로 하나님을 의지하고만사를 그분에게 위임하고,

그냥 순종한 믿음이었습니다.

 

이 교회가 하나님의 유랑자들의 공동체로

남은 역사를감당해 나가시길 바랍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고그래야 다른 사람과 이 세상에

하나님께서 약속하신신령한 복을 나누는 교회의 사명을 감당하는 길이라 믿습니다.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이곳에 귀한 교회를 일으켜 세워주신 것을 감사드립니다.

남은 세월동안가진 것에 만족하고이 세상의 어떤 것에 우리가 집착하고,

축적하는 그런 삶이 아니라하나님의 부르심과 명령에 날마다 순종하면서

전진하며 움직이는 참으로 유랑하는 귀한 공동체가 이 교회를 인도해 주시기를 원합니다.

선한목자되신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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