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체적인 기도는 거의 자기 바램이다 롬8:26~27 13.08.18 출처보기
26. 이와 같이 성령도 우리의 연약함을 도우시나니 우리는 마땅히 기도할 바를 알지 못하나
오직 성령이 말할 수 없는 탄식으로 우리를 위하여 친히 간구하시느니라
27. 마음을 살피시는 이가 성령의 생각을 아시나니
이는 성령이 하나님의 뜻대로 성도를 위하여 간구하심이니라
결론부터 말씀을 드리면, 기독교인으로서 기도하면서 살아야 되지 않습니까?
그런데 기독교인이 되어서 기도한다는 그 사실 안에 숙명적으로 들어있는 내용에 의해서,
우리는 기도를 구체적으로 드릴 수 없게 되어 있습니다.
구체적인 기도를 드리고 있다 그러면, 그거는 가짜입니다.
▶제가 언젠가 기도원에 가서, 기도시간을 가지면서
기도원에서 진행 되고 있는 부흥회에 참석을 여러 번 한 적이 있습니다.
그런데 부흥회 예배가 끝나면 각자 개인 기도를 해요.
개인 기도를 하면 뭐~ 아주 예배당이 떠나가지요 (다 통성기도를 하는데).
근데 들을래서 들은 게 아니라, 어느 젊은 여자분인데 결혼을 하신 분 같아요,
기도를 하시는데 그 기도 내용이 귀에 들어오는 겁니다. 이거 뭐 안 들을 수가 없었어요.
그 기도 내용이 그래요,
‘하나님 우리 남편이 자발적으로 기쁨을 가지고 월급을 타면
전부 나한테 그 월급을 한 푼도 예외 없이 맡기게 할 수 있게 해 주세요.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나한테 월급을 다 갖다 주게 해 주세요.
그래서 또 자발적으로 기쁨으로 나한테 용돈을 타서 쓰게 해 주세요.
그리고 시댁에 이제까지 자기 마음대로 베풀던 모든 경제적인 그런 문제를
다 자기가 할 수 있게 해 주시고, 자기가 마음대로 할 수 있게 해 주셔서,
자기도 친정에 그 남편의 월급 중에서 자기가 맡아서 관리하는 중에 베풀 수 있게 해 주세요’
정말 이런 기도, 너무너무 구체적으로..
왜냐하면,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가운데 기도는 구체적이라야 응답도 구체적이다,
기도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마음에 그리고, 그리고 그 마음에서 계속해서
그 기도의 내용, 이루고 싶은 소원의 내용을 바라보라, 구체적으로 바라보라..고 설교하니까요.
예를 들어 아들이면, 서울대 무슨 과를 차석으로 입학하게 해 주세요,
수석으로 입학하게 해 주세요, 이렇게 구체적으로 기도를 드리고,
계속 그 기도의 내용을 소원의 내용을 바라보라는 얘기입니다.
▶저도 그때는 몰랐어요. 긴가 민가 했습니다.
근데 이제는 마음에 확신을 가지고 말씀을 드릴 수 있습니다.
가짜입니다. 그건 기독교인의 기도가 아니고,
그렇게 기도를 하라고 말씀하시는 목사님도, 참 기독교인이 아니시고,
그 말씀을 듣고 그렇게 기도하는 기독교인도 참 기독교인이 아닙니다.
기도는 모든 종교에 다 있어요.
또 종교가 아니라도 간절한 소원을 갖고 그 소원을 계획하고 수행해 나가는 과정 중에,
그 일에 대한 이루고 싶은 것에 대한 간절한 간구가 다 기도가 될 수 있습니다, 넓은 의미로 보면.
그러므로 이 기도가, 기독교인의 기도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
기독교인의 기도가 일반적으로 말하는 일반 종교의 기도와 일반인들의 기도와
어떻게 다른 것인가를 모르면 이거 낭패에요.
왜냐하면, 날마다 기도함을 통해서 우리가 하나님의 사람들로,
하나님의 양자로서 살아갈 수 있는 힘을 받는데,
그 기도가 일반기도와 다른 게 뭔지를 모르고 기도를 하면서,
가짜 기도를 하고 있다 그러면 이거 문제 아니겠습니까? 알아야 돼요.
▶그렇다면 무슨 차이가 있습니까?
기독교의 기도는, 살아계시고 인격체이신 하나님께로 나아가는 행위입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번제의 의미를 지녀야 합니다.
번제의 의미가 뭡니까? 내 마음이 죽어야 된다는 거예요.
하나님께 나아갈 때는, 하나님 이외의 내 마음이 관심을 갖고 있고,
내 마음이 지금 사로잡혀 있고, 내 마음이 사랑하고 있는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내가 죽어야 됩니다.
그게 바로 번제의 의미라는 거예요.
활활 타 죽어야 됩니다.
돈을 사랑하고 있고, 사업문제를 걱정하고 있고,
자녀문제 때문에 마음에 사로잡혀 있고,
이러한 모든 세상 문제들에 사로잡혀 있는 내가, 완전히 타 죽고
온전히 그 어느 것에도 사로잡히지 않은 마음가짐을 갖고서야만 하나님께로 나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사랑하고, 다른 거에 관심을 갖고 있으면서
하나님께 나갈 수는 없어요, 근본적으로 이건 잘못 이해하고 있는 겁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기도를 한다는 것은, 십자가의 기도만이 가능한 것이에요,
십자가의 기도만이.
그 외에는 다른 방법이 없어요.
왜냐하면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 마음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모든 대상에 대해
붙잡혀 있는 상태로부터 빠져나올 수 있기 때문에.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죽음으로써만 이 세상에 대해서, 내 마음이 죽을 수 있기 때문에
십자가를 통하지 않고는 하나님께 나갈 수 없고, 하나님께 나갈 수 없으면 기도드릴 수 없습니다.
▶근데 여기서 두 가지 일이 벌어집니다.
십자가에서 주님과 함께 연합해서 세상에 대해 죽습니다.
이게 기도시간에 일어나야 된다는 거예요.
그러면 세상에 대해서 내 마음이 죽게 되므로
세상일을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가 없게 됩니다.
자, 지금까지 다시 정리합니다.
기독교인의 기도는 하나님께 나가는 행위입니다.
근데 하나님께 나가는 사람의 마음이 하나님 이외의 다른 것에 붙잡혀 있거나,
다른 것을 사랑하고 있는 동안에 하나님께 못 나갑니다.
왜냐하면 마음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 그러셨으니까.
그렇게 되려면 주님의 십자가에서 죽어야 됩니다.
뭐에 대해서 죽습니까?
하나님 이외에, 이 세상 모든 대상들에 대해서 죽습니다.
그것이 애인이라도, 자식이라도, 부모라도 아내 남편이라도,
내 사업이라도, 내 건강이라도, 모든 것에 대해 죽어야 됩니다.
그래야 어떤 것에도 붙잡히지 않은 마음으로라야 하나님께 나갈 수 있습니다.
자, 이렇게 준비되는 과정 중에서 세상에 대해 죽으므로,
세상의 삶에 대해서 절대로 우리는 구체적인 내용을 가지고,
하나님께 기도를 할 수가 없는 거예요. 이게 기독교인의 운명입니다.
▶그게 첫 번째 일이고, 세상을 등지기 때문에 세상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도,
삶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도를 할 수가 없게 돼버리고,
그리고 두 번째는 세상을 등지기 때문에 하나님을 향하게 됩니다.
자, 하나님을 향하게 된다는 것이 무슨 뜻입니까?
하나님을 향하게 되는데 보이지 않아요, 하나님이 들리지 않아요.
지금 하나님이 내게 무엇을 원하시는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러니까 또 구체적인 기도를 드릴 수가 없게 돼버립니다.
이게 바로 기독인의 기도의 운명이에요.
하늘을 향해서도, 땅을 향해서도 구체적으로 기도를 드릴 수가 없어요.
왜냐하면 십자가에서 죽기 때문에.
또 십자가에서 죽음으로서, 보이고 들리고 만져지고 얼마든지 구체적일 수 있는 삶에 대해서 죽음으로써,
삶에 대해 구체적인 기도를 못 드림과 동시에 하늘을 향하게 되는데,
하늘을 향했을 때에 그 하늘은, 하늘에 계신 하나님 아버지는 세상과는 반대로
보이지도 않고 들리시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습니다.
그러니까 또 구체적으로 기도를 드릴 수가 없습니다.
▶자, 그래서 사도 바울이 오늘 읽은 26절 앞에 뭐라고 말씀하시냐 하면,
24절과 25절에 이렇게 얘기하지 않습니까?
‘우리가 소망으로 구원을 얻었으매 보이는 소망이 소망이 아니니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보는 것을 누가 바라리요?' 이렇게 얘기해 버립니다.
그러니까 우리는 맨~ 기도가 보는 것을 바라는 기도였잖아요, 이제까지.
그래서 가짜기도라는 거예요.
보는 것을 누가 바라냐고 그러잖아요, 보는 것을 누가 바라냐?
그리고 25절에 뭐라고 그러시냐 하면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참~ 진짜 답답해 죽겠지요? 막연합니다.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리래요.
그러니까 뭐 구체적인 게 아무것도 없습니다.
▶자, 여기서 정말 기가 막힌 축복으로서의, 은혜로서의 기도의 내용이 나오고 있는 겁니다.
‘만일 우리가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이 소망의 문제를 자꾸 종말론 쪽으로만 생각을 해요.
죽은 다음에 부활해서, 이 세상 종말이 오면 하늘나라 가서 오래 살 것이다.
그것이 우리의 소망이면서 동시에,
그 하늘나라에 대한 소망은 지금도 유효한 겁니다.
그게 어떻게 유효한가 한 번 보세요, 여러분.
참음으로 기다리라 그랬잖아요?
이 참음으로 기다리는 동안 일어나는 일이 뭔지 아십니까?
이게 바로 성령께서 우리를 위해 기도하시는 시간이 된다는 겁니다.
보지 못하는 것을 바라면 참음으로 기다릴지니라, 하고선 곧바로
기도의 이야기를 붙이신 거예요, 사도 바울이.
무슨 뜻인지 아시겠죠?
▶그러니까 앞에는 하나님의 양자됨에 이야기를 했습니다.
그럼 하나님의 양자 됨이라는 건 어떻게 이루어지느냐? 기도로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근데 그 기도의 내용이 어떻게 진행되어야 되느냐를 오늘 말씀하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참음으로 기다리라고 해놨어요.
왜 참음으로 기다려야 됩니까?
우리가 구체적인 내용을 몰라서 참음으로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그 시간에 성령님께서 우리를 위해서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시니까.
성령님이 우리를 위해 구체적으로 기도를 하신다는 이야기입니다.
그러니까, 십자가를 붙잡고 세상에 대해서 죽음으로,
세상 삶에 대해서 구체적인 기도를 드릴 수 없게 되고,
하늘을 향하지만 보이지 않는 하늘에 대해서
우리가 구체적인 기도를 드릴 수 없어서, 십자가 붙잡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세상에 대해서만 죽습니다.
죽는데 시간이 걸려요.
돈 문제, 건강문제, 자식문제, 가정문제, 직장문제
그것에 잔뜩 사로잡혀 갖고 하나님 앞에 나와서,
‘아 이러면 안 되지’ 하고 십자가를 붙잡고 모든 것에 대해 죽는 게 시간이 걸려요.
그리고 기다리고 있습니다.
기다리고 있는 동안에 성령님께서 하나님께,
내게 진짜 필요한 게 뭔지 기도를 하시겠다는 겁니다.
▶자, 그러면 성령님의 기도를 통해서 우리이게 이루어지는 일이 뭘까요?
여러분 도대체가 그게 궁금하지 않습니까?
나는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십자가 붙잡고 기다리고 있으면 돼요.
별 것 하라는 게 아니에요, 대단한 거 하라는 게 아니라,
십자가 붙잡고 기다리는데 성령님께서 기도를 해 주시고,
그 기도가 성령님의 기도이니까 반드시 응답이 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의 기도는 응답이 안 이루어질 때가 있을지라도
성령의 기도는 반드시 이루어지는데, 그럼 그 성령의 기도가 이루어질 때
내게 나타나는 일이 뭡니까? 이게 궁금하지요.
여러분, 보이지 않는 것을 바란다고 그랬잖아요. 근데 성령님께서 기도하신다 그래요.
보이지 않는 것을 바라기 때문에 참음으로 기다리라,
그 기다리는 동안에 성령님께서 기도해 주신다,
기도해 주셔서 나타나는 응답이 뭐겠습니까?
이상한 거예요.
하늘나라가 보이지 않잖아요? 하나님이 보이지 않잖아요?
그런데 이 기도의 생활이 날마다 반복되면서 일어나는 일이 뭐냐 하면,
그 보이지 않는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천국이,
보이는 내 집보다, 보이는 내 아내와 남편보다, 보이는 내 자식보다 내 부모님보다,
더~ 확실하게 현실로 느껴지기 시작한다는 겁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보이지 않는 분이신데,
성령님의 기도를 통해서 내 마음이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고, 만져지지도 않는 하나님이,
만져지는 어떤 것보다, 들려지는 어떤 것보다, 보이는 어떤 것보다도
더 확실한 현실로 내 마음 속에 자리 잡아 가신다는 겁니다.
▶예를 들면 이런 거예요.
다윗과 골리앗의 대치상황이 사무엘 상 17장에 나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이 본문 자체를 늘 다윗과 골리앗이라고 하는 대결구도로만 바라봅니다.
근데 제가 생각할 때는, 이 주제가 다윗과 골리앗이 아니에요.
그 다윗과 골리앗 못지않게 중요한 메인 주제가 뭐냐 하면 다윗과 사울 왕입니다.
다윗과 사울 왕 휘하에 있는 이스라엘 군인들입니다.
다윗과 골리앗보다도, 다윗과 사울 왕을 비교하는 게 더 큰 주제가 되는 이유가 뭐냐 하면,
다윗이 이렇게 얘기합니다, ‘만군의 주 여호와 하나님을 의지해서 나간다!’
그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것은 다윗만이 알고 있었던 단어가 아닙니다.
사울 왕이 알고 있었고, 사울 왕 휘하에 있는 그 수 만 명의 이스라엘 군인이
다 알고 있었던 사실입니다.
근데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단어를 알고 있지만,
다윗과 사울 왕과 그 이스라엘 군인들이 다른 점은 무엇이냐?
똑 같은 선민인데, 똑 같이 하나님 당신을 계시해 주셨는데 다른 점이 무엇이냐?
다윗의 마음속에서는 만군, 이 세상에 만국의 모든 군사력을
사실은 하나님께서 뜻대로 지휘하시고 역사하는 그런 위치에 계시는 그 하나님을,
실제로 마음속에 보이지도 않고 들리지도 않지만 느끼고 있는 겁니다.
그래서 현장에서 그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가동되고 있는 거예요.
믿음이 써 먹어져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근데 사울 왕도 이스라엘 군인들도 다 알아요.
만군의 주 여호와라는 사실을 다 알고 있지만, 그것은 단지 가르침이고
그것은 교리일 뿐이고, 전승일 뿐입니다.
그게 마음속에 실제로 느껴지지 않으니까, 골리앗 앞에서 꼼짝을 못하는 거예요.
근데 실제로 만군의 주 여호와가 나를 선택하신 분이시고,
그 분이 만군의 주라고 하는 것이, 실제로 느껴지게 되면
골리앗이 너무 웃기게 여겨지는 거예요.
덩치 크다고 앞에서 껍적대는 골리앗이 한심해 보일 수밖에 없는 거 아닙니까?
이게 바로, 기도시간에 이루어진다는 거예요, 기도를 통해서.
▶자! 그러면, 이제 한 번 구체적으로 우리가 기도를 하는 상황으로 한 번 들어가 봐요.
사업문제 때문에 너무 힘들어서 하나님 앞에 나왔습니다.
기도를 합니다, 근데 기도를 하는데 어떻게, 뭐로 어떻게 기도를 시작을 할 거에요?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주님께서 나를 부르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십자가에 달린 주님을 바라봅니다.
십자가의 주님을 바라보지 않고,
곧바로 ‘하나님아버지, 나 돈 문제 해결해 주세요, 사업문제 해결해 주세요!’
그러는 것은 가짜 기도라는 거예요, 그런 것은 기독교에 없어요.
하나님께로 나가려고 하는 자는, 반드시 번제 단을 거쳐야 됩니다.
왜요?
내 마음이 다른 것에 붙잡혀 있는 한, 하나님은 나를 만나주시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당신을 내 마음이 첫 번째 대상으로 삼을 수 있는 상태에서만 만나주십니다.
하나님은 두 번째 세 번째 대상이 될 수가 없어요.
그러니까 사업에 붙잡혀서 마음이 사로잡혀서 왔지마는,
정작 기도를 드리려다 보니까 하나님은 사업보다도
먼저 나의 마음의 관심의 대상이 되셔야 하나님을 만나게 돼요.
그러니까 주님의 십자가에서 내 사업에 대해 죽는 게 기도가 되어 버립니다.
사업에 대해 구체적으로 요렇게 해 주세요, 조렇게 해 주세요,
이렇게 기도하지 않고 기도하러 나왔는데, 어? 이게 웬일입니까?
사업에 대해 구체적인 기도는커녕,
오히려 사업에 대해서 마음이 죽게 해 달라는 기도를 드릴 수밖에 없게 돼버려요,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는 한.
자식문제 때문에 하나님께 나와서 기도를 드리는데, 자식이 내 살 아닙니까?
내 살, 내 피와 살이에요.
근데 십자가를 붙잡고 기도를 하려다 보니까,
그 자식을 내 마음에서 떼어 내야 되는 것이 기도의 첫 번째 과제가 되어버리는 겁니다.
그렇게 해서 기도를 합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뭐라 그러시냐 하면, 지금 계속 인용되고 있어요, 매일.
마가복음 10장 29절에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이렇게 얘기하면 선교사님이나, 특별한 사명을 수행하는 사람들만
집이나 아비나 형제나 자매나 전토를 버리는 거로 생각하지요? 아니에요!
누가복음 14장 26절에는 ‘무릇 내게 오는 자가 자기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더욱이 자기 목숨까지 미워하지 아니하면 능히 내 제자가 되지 못한다’ 말씀하십니다.
자, 우리의 하나님께 나가서 드리는 기도의 내용이 다 뭡니까?
부모와 처자와 형제와 자매와 자기 목숨, 내 건강 그리고 집과 전토.
이거 빼 놓으면 기도할 내용이 없어요, 삶에 대해서.
근데 그걸 미워하래요, 그걸 버리래요, 그래야 하나님께 나올 수 있다는 겁니다.
이게 바로 기도에요.
▶왜 우리가 이렇게 기도합니까?
주기도도 가만히 보면 구체적인 내용이 아무것도 없어요.
우리 삶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기도할 수 있도록 가르치신 내용이 없습니다, 거기에는.
그럼 왜 이러는 겁니까?
우리 삶에 대해서는 하나님이 구체적으로 계획을 갖고 계세요.
지금 사업이 막 풍전등화의 위기에 있지 않습니까?
주님께 나와서 십자가 붙잡고 사업에 대해서 죽으면,
사업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계획을 갖고 계십니다.
그러니까, 십자가 붙잡고 사업에 대해서 죽으면서,
내 마음이 하나님께로 향하게 돼서,
기도하고 성령님께서 기도해주심으로 어떤 일이 벌어지느냐?
보이지 않던 하나님과 보이지 않던 천국이
내게 사업보다도 더 앞선 현실이 되어버립니다.
그래서 천국을 딱~ 갖게 됩니다.
하나님 아버지를 딱~ 갖게 되는데 하나님이 누구시냐 하면,
만군의 주요 전능하신 하나님이시요, 천지의 주인이십니다.
천지의 주인이신 하나님을 아버지로,
현실적으로 내 아버지로 딱~ 마음에 갖게 되면서 (성령님의 기도를 통해서),
그러고 나서 사업을 딱~ 봅니다.
제가 예언 할게요.
그렇게 기도가 제대로 이루어지고 나면, 그렇게 전전긍긍하던 사업이 어떻게 보이냐 하면,
망해도 감사 흥해도 내 일이 아니라는 것을 딱 알게 됩니다.
이 마음이 안 생기면, 기도가 잘못 된 거예요.
망해도 괜찮다는 느낌이 들어요. 적어도 기도가 끝나는 그 순간이라도.
기도 끝나고 밖에 나가서 살다 보면, 또다시 사로잡힐지라도,
적어도 기도가 끝난 그 다음 순간에는 제대로 되어진 기도이고,
참음으로 기다리므로 성령님께서 나를 위해 기도하시고,
그 성령의 응답이 내게 주어진다 그러면,
그 응답이 주어지므로 보이지 않는 천국이 내 것이라는 것이 현실적으로 느껴지고,
말로만 하던 하나님 아버지 하나님 아버지가 진짜 현실적으로 내 아버지가 됐을 때,
사업은 망해도 흥해도 오직 하나님의 뜻대로만 이루어지면 최고라는 사실을
우리가 입으로 고백하게 됩니다.
‘망해도 하나님 뜻이면 OK, 흥하더라도 하나님 뜻이면 내 것 아냐,
하나님께서 또 뜻이 있어서 흥하게 하시는 것이야.’ 딱! 고백하게 됩니다.
이게 바로 기독교인의 기도라는 거예요.
▶기독교인의 기도는 뭡니까?
모든 구체적 기도를 버리고, 십자가 붙잡고 하늘을 향하고 기다리는 겁니다.
그러면 성령님께서 구체적으로 하나님께 기도를 드리시므로,
보이지 않고 만져지지 않는 천국과 하나님 아버지가 내 기업이 되고
내 몫이 돼 주시고, 내 안에 현실로 느껴지게 되면서,
그 눈으로 이 세상을 바라볼 때, 나는 자유로워집니다.
자식에 대해서도, 사업에 대해서도, 건강에 대해서도
심지어 내일 죽어도 좋다는 생각이 들어요.
하나님 뜻이면, 오직 아버지의 뜻이 최고이니까 내일 죽어도 상관없다는 생각이 듭니다.
이게 기도라는 거예요.
그러면, 이 세상의 삶에 대해서 구체적인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을 이끌어 가십니다.
그러니까 이 기도가 기가 막힌 기도가 아닙니까, 여러분? 기가 막힌 기도에요.
이 기도로 오늘 하루를, 성령님이 기도하시는 시간을 내 드리고,
성령님의 기도가 응답되어서 천국이 내 것이 되고,
이 세상의 삶은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에 의해서 이끌어져 가는,
하늘의 양자들의 삶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기도하시겠습니다. 하나님아버지, 이 삶에 대한 구체성을 다 십자가에서 못 박게 하시고,
아버지의 사랑을 믿는 가운데 십자가 붙잡고 하늘을 향하여 기다리므로
성령의 기도가 이루어지게 하시고, 응답되게 하시고,
하나님의 구체적인 계획이 이루어지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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