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단이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보았느니라 눅10:17-20 15.09.06스크랩, 출처
▶자동차를 모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자동차에 대해서는 잘 모릅니다.
그냥 차를 타고 시동을 걸어서 운전하는 것만 알지 자동차의 내부에 대해서나,
자동차의 엔진에 대해서 알려고 하지도 않고 알 필요도 없습니다.
신앙생활도 마찬가지라고 생각이 됩니다.
사람들은 예수님을 믿겠다고 하고, 또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나 신앙 자체에 대해서나 믿음의 성격에 대해서나 영적인 것에 대해서는
알지도 못하고 알려고 하지도 않습니다.
그래서 목사가 영적인 것에 대하여 말을 하면 무표정한 얼굴로 쳐다봅니다.
평소에 생각하지 않던 이질적인 것이기 때문이에요.
차라리 영화 <스타워즈>의 매니아들은 "포스"에 대해서나 아는데,
그리스도인들은 영적인 포스에 대하여 알지 못합니다.
왜 대다수의 성도들이 영적인 것에 대하여 무지하냐?
이것은 본인들에게도 잘못이 있고, 그들의 영적 스승들에게도 잘못이 있고,
그리고 하나님도 잘 하시는 것 같지 않습니다.
인간에게 주어진 시간을 가지고 왜 그 대부분의 시간을 육신을 도모하는 데에
소모하느냐 하는 것이 이유에요.
성도들이 일주일에 대부분의 시간을 육신적인 일에 쓰다가
일주일에 한번 교회를 와서 말씀을 들으려고 한다면
목사가 마음이 석자라도 말할 수 있는 데는 한계가 있는 것입니다.
그저 일반적인, 성도들 마음에 평강을 줄 수 있는 그런 말씀을 전하는 것으로
그칠 수밖에 없습니다. 안 됐기 때문에. 모처럼 교회를 왔는데 위로가 될 말한
말이라도 해줘서 보내려고 하는 것이 목사의 마음이에요.
평소에 마주칠 기회가 많아야 이런 저런 말씀을 가르칠 수가 있지.
일주일에 단 한번 얼굴을 보면서 어떻게 구체적인 것을 가르칠 수 있겠습니까?
▶그러면 하나님에게도 책임이 있지 않느냐? 하는 질문을 할 수도 있습니다.
하나님이 늘 우리와 함께 계시는 것은 사실이지만
우리가 영적인 것을 배울 수 있는 기회를 주시는 것 같지는 않아요.
오히려 그 일을 목사들에게 일임하시는 것 같습니다.
하나님도 힘든 일을 기피하시는 것 같아요. 이건 어디까지나 저의 인상일 뿐입니다.
실제로 그렇다는 말은 아니에요. 제가 받은 인상이 그래요.
차라리 연예인 같은 직업은 사람들이 평소에 원하는 것을 주기 때문에
인간의 성정과 부합하는 면이 있지만, 목사들은 사람들이 불편해 하는 것,
귀찮아하는 것, 원치 않는 것에 대해서 말해야 되기 때문에 힘듭니다.
마치 배울 의사가 없는 학생들을 데리고 가르치려는 선생과 같이
느껴질 때가 있는 것입니다. 서로가 힘든 것 입니다.
오바마 대통령이 자기 각료들에 대해서 말하기를,
자기는 각료들과 자주 회의를 할 필요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 이유는 각료들이 그 분야의 최고의 권위자들이기 때문에, 우등생과 같다는 거예요.
그래서 스스로 자기 일을 잘할 줄 알기 때문에, 자주 만날 필요가 없다는 말을 했는데
그러나 세상에 우등생은 드물고, 대부분의 학생들은 그렇지 않습니다.
신앙인도 그런 면이 있습니다.
강물을 거슬러 올라가는 것은 힘듭니다.
흐르는 대로 함께 따라가는 것이 쉽지요.
영적인 것을 가르치는 것은, 인간의 육신의 본성을 거스리는 것이기 때문에
힘이 드는 것입니다.
대다수의 성도들이 배울 의지가 없는 건 아니에요. 믿을 의지가 없는 건 아니에요.
다만 평소에 육신을 쫓는 것이 너무 익숙하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생소하게 여기고 불편해 합니다.
그것이 신앙생활에 결정적인 장애물이 됩니다.
▶현대문명은 육신적이고, 이해타산적이고, 감각적인 만족에 익숙한 인간을 양산했습니다.
고난의 경험이 사람의 영혼에 깊이를 더해 줄 수는 있지만,
고난의 경험 자체가 영적인 배움을 대신 할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건 중요한 것입니다.
고난을 겪는다고 영적인 깊이가 생기는 것은 아니에요.
영적인 은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자를, 사도바울이 뭐라고 부르는지 아십니까?
"무지한 자, 무식한 자"라고 부릅니다 (고전 14:24).
무식한 자라는 말은 은사를 받아본 적이 없는 사람이에요.
왜 성도들 중에 무식한 자들이 많으냐?
(1) 인생의 관심 대부분이 육신적인 것에 있기 때문이에요.
제가 비판하려는 의도로 이 말씀을 드리는 것이 아닙니다.
사람은 먹고 사는 것만으로도 바빠요. 지칩니다. 그 이외의 일에 관심을 갖기가 어려워요.
칼 융이 말하기를 "마귀가 우리를 바쁘게 하는 것이 아니고, 바쁨 자체가 마귀다"라고 했어요.
(2) 신령한 것을 가르쳐줄 사람이 없습니다.
옛날에는 그나마 시어머니가 며느리에 손을 잡고 새벽기도를 나가기라도 했는데,
요즘은 어느 시어머니가 그렇게 할 수 있겠습니까?
옛날에는 교회에서 부흥회를 하면 일주일 내내 했습니다.
새벽에도 모이고, 낮 공부를 하고, 저녁에 집회를 하고
일주일 내내 부흥회를 했는데, 지금은 그런 부흥회를 하는 교회가 없어요.
옛날에는 답답한 문제가 있으면 기도원에라도 올라들 가서 기도라도 했습니다.
평소에 기도 안 하던 처녀들도 결혼을 앞두고는 기도원에 올라가서 기도했어요.
그러나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회는 부흥회도 없고, 기도원에도 가지 않고,
신령한 것을 배울 기회가 없습니다.
(3) 신령함이란 일회적 경험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지속적인 영적인 삶으로 가능하기 때문이에요.
▶사도바울이 로마서 8장에서 인간을 세 종류로 부류하는데,
첫째는, ‘육에 속한 자’가 있다 그랬어요. 고전2:14
육에 속한 자는 거듭나지 못한 사람이에요.
그는 육에 속했기 때문에 영적인 것을 말하면 알아듣지 못합니다.
두 번째는, 하나님의 영으로 인도함을 받는 자. 8:14
이런 자들은 성령으로 거듭났고 성령을 쫓아 행하는 신앙인을 말하는 것이고,
세 번째 ‘육신대로 사는 자’가 있다 그랬어요. 이 세 번째가 문제에요. 8:5
이들은 거듭나기는 했는데,
평소에 성령을 쫓기 보다는, 육신대로 사는 성도를 일컫는 것입니다.
평소 우선순위와 관심사가 영적인 데 있지 않습니다.
아무리 성령으로 거듭나고 성령체험을 했다고 하더라도
육신이 좋고 육신에 대해서 관심을 기울이고,
육신을 쫓는다면 하나님의 영의 인도를 받기가 어려운 것입니다.
▶여러분 왜 제가 방언을 강조하는지 아시기를 바랍니다.
장로교 목사로서 방언을 강조하는 것이 적법하냐? 장로교 맞느냐? 치우치는 것이 아니냐?
어떤 이들은 성경에 예수님이 방언했다는 구절이 없는데, 왜 방언을 강조하느냐?
라는 질문을 하기도 합니다.
예수님이 방언했다는 성경구절은 없지만 "나를 믿는 자들에게는
이러한 표적이 따르리니 새 방언으로 말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신앙을 가르치는 데에 있어서는 내가 속한 교단이 좌우하는게 아니에요.
우리가 그 교단에 충성하는 게 아니에요. 예수님에게 충성하는 것입니다.
교단은 어디까지나 교회에 조직을 위해서, 편의에 의해서, 필요에 의해서 생긴 것이지만
교단이 우리의 신학과 우리의 신앙을 좌우할 수 있는 시대는 지나갔습니다.
우리는 교단의 제자가 아니요. 예수님의 제자에요.
교단의 신학을 가르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치는 것입니다.
▶제가 방언을 강조하는 이유는, 그것이 성도들을 영적인 세계에
눈을 뜨게 하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세계에 문을 열어줍니다.
이전에는 만 가지 말을 해도 납득할 수 없었던 영적인 것들에 대하여
방언을 함으로써 문이 열립니다.
방언은 다른 은사들을 가지고 옵니다. 그래서 방언을 하게 되면 방언통역을 하게 되고,
방언통역을 하게 되면 예언을 하게 되고, 예언을 하면서
다른 은사를 얻을 수 있는 기회가 열립니다.
방언을 처음 하는 사람의 방언을 통역하면, 대부분이 그 사람이 뭐라고 기도하는지 아십니까?
이건 여러분이 겪어보지 않으면 모릅니다.
방언이 처음 터지는 사람에 방언을 통역하면 열이면 열 사람,
그동안 얼마나 마귀에게 묶여 있었는데 예수님이 풀어주셨다는
그런 기도를 합니다. 놀라운 일이에요.
열이면 열. 처음 방언이 터지는 사람의 하는 기도 내용은
“내가 그동안 얼마나 영적으로 묶여있었는데 예수님이 나를 자유하게 하셨다”는 내용입니다.
▶ ♬오, 나의 영혼이 벗어났도다, 사냥꾼의 올무에서 새같이, 오 올무가 풀어졌네, 해방되었네"♪
이 복음성가는 제가 고등학생이었을 때에 다니던 교회에서
고등학생들을 가르치시던 이명자 선생님이 가르쳐 주신 것입니다.
정말 성령 충만한 선생님이이에요. 그러기 때문에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풀어나는 것이 뭔지를 아는 분이셨습니다.
대다수의 성도는 그냥 알지도 못하고
"오, 우리 영혼이 벗어났도다" 내용을 모르고 따라 부르는데
여러분 우리의 영혼이 사냥꾼의 올무에서 벗어나는 경험을 해봐야 됩니다.
마귀가 우리의 영혼을 누르고 있었는데
예수님의 능력으로 말미암아 벗어나는 경험을 해봐야 됩니다.
우리는 이런 것을 가르칠 줄 아는 많은 선생님들이 필요합니다.
신령한 것을 아는 영적인 스승이 필요해요.
▶그러면 방언을 하기 전에는 마귀에게 묶여 있었다는 말이냐?
그럼 그 사람이 그리스도인이냐? 구원을 받기는 한 것이냐?
이것은 신학적인 해석이 필요한 부분인데,
그만큼 우리가 영적으로 무지하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우리가 왜 평소에 그렇게 영적으로 무력했겠습니까?
왜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하고 영적으로 평소에 무력합니까?
그 이유는 구원은 받았을지라도 마귀에게 눌려있었기 때문이에요.
마귀가 우리를 눌러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들었기 때문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묻습니다. 예수님이 내 맘속에 들어오셨는데
어떻게 마귀가 나를 누를 수 있다는 말이냐?
그 이유는, 예수님에게 100프로 주도권을 드리지 않았기 때문에 그러한 것입니다.
마치 회사 인수합병에 비교하면 예수님에게 100프로 지분을 드려야 되는데
50프로만 드려요. 나머지 50프로는 내가 갖는다고 생각하는데
주님께 드리지 않는 그 지분을 통하여 마귀가 우리를 누릅니다.
그렇다고 우리를 지옥으로 끌고 간다는 말은 아닙니다.
우리를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만듭니다.
성령이 우리에게 충만하게 임할 때에 그 마귀가 누르던 것이 끝나고
우리가 영적으로 사냥꾼에 올무에서 풀어나는 것을 경험할 수가 있어요.
그러면서 이전에 알지 못했던 영적인 능력이 우리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할렐루야.
▶오늘 본문에서 예수님이 말씀하시기를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라고 말씀하셨어요.
우리가 평소에 읽지 않는 성경구절이에요.
많은 사람들이 이 성경구절을 가르치지 않아요.
여러분에게 이런 성경구절을 가르칠 목자가 있다는 것을
축복인줄로 아시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우리 모두에게는 영적인 씨름이 있습니다.
영적이 씨름. 눈에 보이지 않는다고 실감하지 않는 게 아니에요.
우리가 느낍니다. 여러분이 영적으로 무기력하게 느끼는 것.
그 자체가 영적인 씨름이 벌어지고 있다는 증거에요.
누군가가 여러분의 발목을 잡고 있는 것 같을 때,
두려울 때, 마음은 원이로되 육신이 연약할 때 영적인 씨름이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리고 아마 이런 주제에 대하여 불편하게 생각하고, 두려워하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해야 될 성경구절이 바로 이것입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길 사단이 하늘로서 번개까지 떨어지는 것을 내가 보았노라”
누가 사단을 하늘에서 번개같이 떨어지게 하셨느냐?
예수님이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이 그렇게 선언하신 것입니다.
우리가 사단을 번개같이 떨어지게 해야 되는게 아니에요.
예수님이 이미 그렇게 하셨습니다. 이미 예수님이 사단을 이기셨어요.
그 사실을 우리가 믿어야 돼요.
예수 안에 거한다는 말은 예수님의 승리, 예수님의 이루신 일,
예수님의 능력, 예수님이 얻은 영생 이 모든 것이
예수님 안에 있으므로 말미암아 우리 것이 된다는 말이에요.
그러므로 사단을 이길 수 있는 비결은 예수님 안에 거함으로 말미암는.
우리가 사단을 떨어지게 해야 되는게 아니에요. 우리는 그런 힘이 없지요.
예수님이 그것을 하셨습니다.
▶그러기 때문에 예수님 하신 말씀이
"내가 너희에게 뱀과 전갈을 밞을 권세를 준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뱀과 전갈을 악령을 뜻하는 것입니다.
뱀과 전갈을 어떻게 하는 권세를 주신다고 했습니까? 밟을 권세.
지금 한번 여러분에 오른 발로 힘껏 밟아보세요.
여러분 집에 날파리가 벽에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딱! 때려잡지요.
벽에 모기가 앉아 있으면 어떻게 합니까? 딱! 때려잡지요.
그러지 않으면 누군가를 물 것이니까요.
마귀도 마찬가지에요. 두려워 말고 예수님의 이름으로 밟아버려야 됩니다.
"너희를 해할 자가 결단코 없으리라!"
예수님 안 믿는 사람은 어떻게 사는지 알 수가 없어요.
자기 손해입니다. 자기 손해에요.
▶ ♪예수 이겼네, 예수 이겼네, 예수 사탄을 이겼네.
나도 이겼네, 나도 이겼네, 나도 사탄을 이겼네.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예수님 권세 크도다! 예수님 권세 내 권세.♫
우리의 의로움으로 말미암아 권세를 얻는 게 아니고,
예수님이 이 권세를 부여하시는 것입니다.
예수님으로 말미암아 이 권세를 얻는 것입니다.
그럼으로써 우리가 예수님의 이름으로 귀신을 쫓아내리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이것이 영적인 전쟁이에요.
우리가 얼마나 더 영적으로 무기력하고 무지한 삶을 살겠습니까?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야 됩니다! 여러분이 영적인 잠에서 깨어나지 않는다면
제가 주님 앞에 꾸중을 받을 것입니다.
저는 분명히 여러분에게 말씀드렸어요. 육신만을 쫓는 삶을 회개하고
성령을 쫓으라. 신령한 것을 사모하셔야 됩니다. 기도하셔야 됩니다.
그렇게 하면 여러분을 오랫동안 지배하던 영적인 무기력함에서 벗어나게 될 것입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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