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ITkx6W4ThfM
◈종말시대와 교회 마24;14~22 출처보기 영어녹취록
The Church and the End Times / David Pawson 60분 강의를 둘로 나누어 대강 번역, 녹음합니다.
※주제 요약
교회의 미래, 종말시대의 교회 모습에 대해, 한국에서 지금까지 되어진 전망은,
하나님의 나라도 갈수록 더 크게 부흥하고, 사탄의 나라도 더 크게 부흥하는
양 진영이 함께 부흥하다가, 그리스도의 재림으로 결국 승리하게 된다는 논리였습니다.
이에 대해 파슨 박사는, 종말시대의 교회는, 성경에 예언된 대로 핍박을 당하면서, 그런 와중에서 성장하면서,
마24:14절의 세계복음전파의 사명을 결국 감당하게 되리라고 봅니다.
그러므로 핍박 때문에, 크게 양적인 성장은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하지만 질적으로 성장한 교회가, 환란을 통과하면서, 사명은 더욱 크게 감당할 것으로 내다봅니다.
우리는 ‘마지막 때’라는 설교 시리즈를 통해서
1강에서 ‘대환란’에 대해 살펴보았고요.
2강에서 ‘이스라엘과 종말 시대’에 대해 살펴보았고요,
지금 3강에서는 ‘교회와 종말 시대’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우리가 지금 21세기 초기를 살고 있는데, 금세기가 최후 종말이 될 것인가,
아니면 22세기가 이어질 것인가.. 우리는 잘 모릅니다.
만약 종말이라면, 상황이 현재보다 더욱 좋아질까요? (후천년설적 견해)
상황이 현재보다 더욱 나빠지면서 종말을 맞이할까요?
미래에 되어질 종말론에 대해, 크게 보면, 낙관론과 비관론이 있습니다.
둘 다 극단적 견해라고 보는데요, 우리는 그 중간 어디에 위치해 있겠죠.
어쨌든 한 번 살펴보십시다.
◑낙관적 견해 (후천년설)
이런 낙관적 견해도 다 틀린 것은 아닙니다. 이런 점도 일부 있습니다.
그러나 이게 마치 전부인 것처럼, 극단적 자세를 갖는 것은 현명하지 못합니다.
▶종말이 되어 갈수록, 교회가 점점 더 커지고, 지금보다 상황이 더 나아지리라고 보는 견해입니다.
교회뿐만 아니라, 세상 사람들도 형편과 상황이 점점 더 나아지라라고 보는데요.
이런 면이 있겠지만, 이런 면 한 가지로만 보는 것은 극단적입니다.
신학적으로 이것을 <후천년설>이라고 부릅니다. *천년 후 재림설
후천년설 신봉자들은, 예수의 이름으로, 재림 전에
교회가 세상을 계속 정복해 나갈 것을 믿습니다.
그래서 “온 세상이 기독교화”되어서, 그걸 예수님께 자랑스레 보여드릴 것으로 내다봅니다.
물론 세상 모든 사람이 기독교인이 되기는 어렵겠지만,
기독교인들이 세계 속의 주류가 되어서, 세상 나라들 중에서 governments of the nations
영향력을 미치며 이끌어나가는 방향으로, 점점 나아갈 것을 예상합니다.
그래서 교회가 더욱 왕성해지고, 세상 나라들 가운데서도 더욱 주도적 영향력을 미치는 가운데,
주님의 재림이 일어날 것이라 보죠. 재림 전까지 그런 분위기가 계속 되리라 봅니다.
▶특히 19세기~20세기 초까지, 많은 사람들이 후천년설을 따랐습니다.
예수님의 재림 전까지, 교회나 사회가 점점 더 발전하리라는 견해였죠.
그래서 이 세상에 “천년왕국”이 이루어지고, 그 다음에 재림이 올 것으로 보았습니다.
천년왕국이란, 교회가 이 세상을 다스리는, 승리하는 그 기간인데,
재림 전에 먼저, 이 세상에 이루어진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성경에 ‘천년’은 나와도 ‘천년 왕국' 이란 단어는 나오지 않습니다.
계20:7 ‘천년’이 차매 사단이 그 옥에서 놓여..
이런 구절에 근거해서, 사단이 없는/승리하는 천년왕국이 있을 것이라고 보는 거죠.
정말 교회가, 마치 중세시대처럼,
온 세계를 다스리는 그런 후천년설적인 천년왕국이 장차 도래할까요?
그렇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
그 후에 주님이 오실 거라면, 아마 주님은 수 백 년이 지나도 못 오실 것 같아요.
과학, 의학, 교육의 발달로, 세상이 점점 더 좋아지리라고 보는 낙관론인데요.
▶이 후천년설이 왕성하게 믿어졌던 시기는, 대영제국 시절입니다.
그때는 정말 기독교국가 대영제국이 전 세계에 널리 퍼져나갔습니다.
말 그대로 ‘해가 지지 않는 제국’이었죠.
세월이 좀 더 흐르면, 전 세계가 ‘대영제국 기독교국가’가 될 것 같아 보였습니다.
그때 영국 학교에, 큰 세계지도가 걸려 있었는데,
대영제국은 빨강색으로 표시했습니다. 그 빨강색 대영제국이 온 세계에 퍼져있었습니다.
이렇게 대영제국이 확장되니까,
기독교 선교도 덩달아 분위기가 아주 고취되었습니다.
영국교회는 19세기에, 세계선교의 주역이었고,
영국 식민지 국가들에, 즉 전 세계에 선교사들을 내보냈지요.
군대가 보내지고, 그들을 뒤따라 선교사가 들어갔던 것입니다.
*대영제국 어디든지 영국 사람이 가서 살았고, 거기엔 교회가 세워졌지요.
비록 원주민 선교는 아직 아니라 하더라도, 외형적으로는 교회가 전 세계로 확장되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그때 찬송가도, ‘우리가 전세계를 선교하자’는 찬송이 많이 지어졌고,
불려 졌습니다.
뭔가 이런 식으로 나가면, 이 세상에 천년왕국을 이룰 것 같은 분위기였습니다.
그렇게 대영제국의 확장과 함께, 후천년설의 낙관주의가 널리 인정을 받게 된 것입니다.
장차 미래에, 전 세계가 ‘기독교 왕국’이 될 것 같은 분위기였죠.
그때 빅토리아 여왕 시대의 선교사들은, *1837~1901재위
그런 후천년설 적인 생각을 아마 다 갖고 있었을 것입니다.
저도 어릴 적에 이런 찬송을 불렀던 것을 기억합니다.
‘해가 비취는 곳마다 주님이 다스리실 것이며, 주님의 선교여행도 계속 나아갑니다.’
한마디로 말하면 낙관주의입니다.
기독교가 온 세상을 정복해서, 기독교 국가(천년 왕국)가 될 것이고,
그제야 비로소 예수님이 오실 것으로, 미래를 내다보았지요.
▶이 후천년설은 “부흥주의, 부흥운동”과도 직결되었습니다.
*여기서 말하는 ‘부흥’이란, 회개의 부흥이기 보다는, 양적 팽창을 뜻합니다.
그런 낙관주의 가운데, 종말이 될수록, 교회가 더 부흥되리라고 보았지요.
그 가운데 ‘늦은 비 운동’ 등 여러 형태의 부흥운동이 나타났습니다.
이스라엘이 추수 전에, 늦은 비가 내리는데,
이스라엘은 이른 비는 10월에, 가을에 내려서, 씨앗을 싹 틔우고 자라게 하며,
늦은 비는, 봄에 내려서, 열매를 여물게 합니다. 우리랑 반대지요.
어쨌거나 늦은비는, 추수 전에 내리는, 열매를 맺게 하는 비입니다.
성경에 ‘이른 비와 늦은 비를 주신다’는 구절이 있는데, 욜2;23, 렘5:24
이 구절을 상징적으로 해석해서, 농사가 잘 되는 것뿐만 아니라,
영적인 추수가 일어나리라고 보았지요.
‘추수 전’에 ‘늦은 비’가 내리듯이
즉 추수는, 세상 끝이고, 그 전에 즉 재림 직전에,
‘늦은 비의 부흥’이 예언되어있다고 보았지요.
그 외에도 여러 다른 이름의 비슷한 운동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의 생각의 바탕에는, 세상 끝과 주님의 재림 전에,
뭔가 큰 부흥이 있을 것이라는, 그런 후천년설 적인 생각이 깔려 있었지요.
그리고 수많은 사람들이 교회로 들어올 것이라고 기대했습니다.
*이런 부흥을 꼭 부정한다는 것이 아니라, 부흥운동이 일어나면 좋죠.
다만 이런 부흥이 ‘외적 성장’ 방향으로만 나아갈 때는, 고려사항들이 있죠.
그런데 19세기부터 특히 유행한 ‘후천년설’은, 사실 외적 성장 위주의 낙관론이었습니다.
물론 주님은, 당신의 집이 가득 차기를 원하십니다.
주님도 비유에서 ‘사람들을 강권해서 데려다가 내 집을 채우라’고 하셨잖아요.
저 파슨도, 교회들이 사람들로 가득차기를 바랍니다.
예수님 말씀처럼, ‘저 먼데 가서도 사람들을 데려와서 내 집을 채우라’고 하신 것처럼,
선교지의 교회들도, 현지인들이 가득가득 차기를 진심으로 바랍니다.
▶그런데 발전을 위해서 비평적인 관점으로 보면,
저 파슨은, 종말에 거대한 부흥이 있을 것이라는 견해에, 좀 의심을 가집니다.
성경에 ‘내 집을 채우라’ 이런 구절도 있지만, 또 반대 측면의 다른 구절도 있거든요.
<낙관론>을 전체 다 부정하는 것은 아니고,
낙관론 하나만 붙들면, 극단적이 되고 말죠.
성경을 두루두루 보자는 것입니다.
아래에, 그와 반대되는 <비관론>을 자세히 살피겠지만,
우리는 어느 한 쪽에 올인해서, 극단적인 신자가 되지 말고,
양쪽을 다 보는 균형 감각을 가져야 한다는 것이죠. 성경이 둘 다 말씀하니까요.
▶그런데 19세기 영국에서 발전한 <낙관적 종말론>이
20세기 미국에 와서 더 큰 꽃을 피웠습니다.
제 파슨이 느끼기에 미국의 신은 ‘성공’입니다.
미국 신자들은, ‘교회도 성공해야 된다’는 생각이 강합니다.
한때 일부 미국 신자나 교회들은
‘성공하는 교회, 부흥하는 교회’를 항상 모델로 삼고 나아갔습니다.
그런데 묻고 싶은 것은,
과연 무엇이 ‘진정한 성공’인가요?
그저 양적으로 성장하면, 그게 성공인가요? 아니죠.
거기에 질적인 성장도 함께 고려되어져야 하는 거죠.
◑(미래 종말시대의 교회에 대한) 비관적 견해
▶지금 영국 신자들은, 현재 교회가 점점 줄어들고 있으며,
결국은 미래에 교회가 거의 없어질 것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많습니다.
악담이 아니라, 현재 실정을 보면.. 미래를 그렇게 예측하게 되는 거죠.
그런데 그들이 위안을 받는 것은,
지상의 교회가 있고, 또한 천상의 교회가 있다고 믿기 때문입니다.
신학자들은 지상의 교회를 ‘전투적인 교회’로, 지상에서는 계속 싸워야 하니까요.
천상의 교회를 ‘승리한 교회’로 부르죠. *Militant church, Triumphant church
지금 지상의 교회는 죽을 쑤지만,
그래도 천상의 교회만큼은 승리한 교회라서.. 거기서 위안을 찾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런 교회에 대한 비관적 견해가,
영국의 현실 가운데서 나온 것이라면, 우려할 만합니다.
지금 영국의 도시에는 어딜 가나 교회건물들이 있습니다.
그런데 그 교회들은, 점점 문을 닫고 있으며,
교회는 텅텅 비고 있으며, 그래서 빈 교회가 결국은 다른 용도로 팔려나갑니다.
그러면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라고 신학자들이 부르는데,
영국의 교회들은, 지금 전투에서 점점 지고 있는 것은 아닌지요.
‘천상의 교회는 승리한 교회’요, ‘지상의 교회는 전투하는 교회’인데,
비관론에 휩싸인 많은 신자들이
‘지상에서는 어쩔 수 없어도, 천상의 교회는 승리하고 있으니 괜찮다’는 식으로
자기합리화를 할까봐, 제가 염려합니다.
*그러니 19세기 낙관론도, 영국의 현실 가운데서 나온 것이며
20세기 후반의 비관론도, 영국의 현실 가운데서 나온 것이네요.
▶제가 한 번은, 모든 모임에 나갔다가
잘 나가는 사업가 한 분이, 제게 다가와서 이런 말을 걸어왔습니다.
‘당신은 어떤 사업을 하시죠?’
‘저는 설교자입니다.’
“죽어가는 기관에 속해서, 일을 하시는 느낌이 어떠신지요?”
“무슨 말씀인지요?”
“보세요, 지금 교회는 어느 도시에 가나 다 죽어가고 있잖아요.”
표면적으로만 보면, 그의 관찰은 맞다고 볼 수도 있습니다.
그렇지만 제가 말했지요.
“제가 속한 교회가 죽어가고 있지만, 한편으로는 경이로운 속도로 성장하고 있습니다.”
“그래요? 무슨 교회인데요?”
“예수 그리스도의 무형적/우주적 교회인데요.”
그는 그런 교회를 이전에 한 번도 생각해 본적이 없는 것 같이 당황해 했습니다.
“파슨씨, 그게 정말입니까?”
“그 교회는 매 1분마다 60명씩 신자가 생겨나고 있지요.
거기에 60을 곱하면, 매 1시간마다 신자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계산되시죠?
거기에 24를 곱하면, 매 하루마다 신자가 얼마나 늘어나는지 계산되시죠?
거기에 7을 곱하면 1주일, 거기에 4를 곱하면 1달, 거기에 12를 곱하면 1년!
당신의 사업에 그만큼 많은 고객을 확보하고 계시나요?
그런데 당신이 ‘죽어가는 기관’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까?”
제가 계속 말했습니다. “당신의 사업과 저희 사업이 다른 점이 한 가지 있는데,
당신은, 사람이 죽으면 고객을 잃지만, 우리는 사람이 죽어도, 고객을 잃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논쟁에서 이기면, 전도는 힘들게 됩니다.
그는 제 말뜻을 잘 이해 못 하는 것 같았어요.
교회는, 사람이 죽어도 신자를 잃어버리지 않습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의 천상의/우주적 교회에 속해 있으니까요.
그가 죽으면, 다른 교회로 옮겨가는 것일 뿐이지요.
그러나 영국 사람들은, 지금 영국의 교회가 사라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실제로 어느 옥스퍼드 대학교수는, 영국의 교회의 사망을 예언했습니다.
어쩌면 ‘영국교회’는, 그런 길로 갈수 있을 런지도 모르지만,
그러나 ‘그리스도의 교회’는 결코 그렇지 않습니다.
※그러니 종말의 교회 모습에 대해, 이런 부정적 시각이 팽배하지만,
우리는 극단에 치우쳐서는 안 되고, 균형을 가져야 합니다.
저 파슨은, 교회의 미래에 대해 비관적이지 않습니다.
저는, 교회가 죽어 없어지게 되리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은, 하나님의 교회이기 때문입니다.
성경도,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역사의 마지막 시대까지 사라지지 않을 것은,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입니다.
같은 이유로, 이스라엘도 사라지지 않을 것은,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입니다.
뭐든지 하나님의 것은, 영원히 있을 것입니다.
아무도 그것을 파괴하지 못할 것입니다.
제가 이제까지, 미래 종말시대의 교회에 대해, 두 가지 극단을 말씀드렸습니다.
하나는 극단적 낙관주의이고, 하나는 극단적 비관주의입니다.
그런 요소들이 일부 사실이지만,
우리는 그 가운데서, 균형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균형/ 핍박 중에 성장하는 소수 교회
▶예수님은 눅18장에서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인자가 올 때에, 믿음을 보겠느냐?”
종말이 될수록, 부흥한다는 구절도 있지만,
종말이 될수록, 믿음이 식어진다는 구절도 있습니다.
“생명으로 인도하는 길은 좁고 협착해서 찾는 이가 적음이라”
낙관주의자들은, 겨자씨만한 작은 숫자가 세상을 뒤집을 것처럼 바라지만,
비관적으로 보면, 말세 때는, 오직 작은 숫자만 예수님을 기다릴 것이란 말입니다.
서구의 기독교에서는, 실제로 그런 비관적 징후들이 속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종말로 갈수록, 교회는 초대교회처럼 닮아가게 되리라고 봅니다.
초대교회는 숫자적으로 소수였고, 모든 지역에서 핍박을 받았지만,
그 가운데서 성장했습니다. *비관적, 낙관적 모습을 다 갖고 있네요.
더욱 신기한 것은, 로마제국이 부활하는 것 같아요.
*계시록에 ‘바벨론’이 나오는데, 그건 로마제국을 가리키지요.
<글레디에이터>라는 영화도 만들어져 인기를 끌었고,
사람들은, 비록 영화이긴 하지만, 로마시대처럼 검투사들이 서로를 죽이고
원형경기장에서 야생동물에게 잡아먹히는 것을 보며 즐거워했지요.
그렇지만 크리스천이 공개적으로 핍박당하는 영화들을 보면서,
그런 일들이 또 일어날지 모르므로, 우리는 준비하는 자세를 가져야 합니다.
영화 말고도 비디오 게임을 보면,
예수님 당시의 고대 로마제국의 야만적 행위들을, 새롭게 부활시키고 있습니다.
이런 일에 무의식중에 학습된 사람들이, 현실 세상에서 이런 일을 저지를까 염려됩니다.
제가 보기에, 종말 시대의 교회는, 전 세계적으로 핍박 받는 소수 minority 교회가 될 것 같습니다.
예수님도 “너희가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을 것이다”고 말씀하셨잖아요. 마24:9
사람들은 모두 사랑받고, 환영받기를 원하지
미움을 받거나 배척을 당하는 것은 싫어하고, 끔찍한 일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말씀이니, 반드시 그렇게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 교회는 더욱 성결해지고, 내적/질적으로 부흥할 것이기에,
저는 실망하지 않습니다.
말세가 될수록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겠으나” 마24:12
동시에 예수님은 이런 말씀도 하셨습니다.
마24:14 이 천국복음이 모든 민족에게 증거되기 위하여 온 세상에 전파되리니
그제야 끝이 오리라
크리스천들은 한편으로는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겠지만,
한편으로는 그 와중에 마24:14절, 복음전파의 완성, 선교의 완성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참고로, 크리스천들이 모든 민족에게 미움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그 민족의 양심이기 때문입니다.
그들이 그 민족을, 좋은 방향으로 도전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런 양심적인 사람들을 싫어하지요.
그리고 올바른 삶의 도전, 이런 것을 사람들은 미워합니다.
그래서 참 크리스천들은 점점 더 인기를 잃어갈 것입니다.
▶예수님의 또 다른 말씀, ‘알곡과 가라지’비유를 보십시다.
가라지는, 독성의 잡초를 말합니다.
알곡과 가라지가 같이 자랍니다. 자랄 적에 겉으로 보면, 거의 비슷합니다.
그런데 언제 차이가 갈라지느냐, 열매를 맺을 때입니다.
그래도 그들은 여전히 한데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가 가정하기로는, 사탄의 나라가, 하나님의 나라와 한데 섞여서 자란다는 겁니다.
한동안 자랄 때는 모르지만, 열매를 맺을 때가 되면 극명하게 표시가 납니다.
본색이 드러난다고 해야 될까요?
그런데 같이 자라기 때문에, 한데 섞여 있기 때문에
둘 사이에 긴장이 생기고, 갈등이 나타나게 되지요.
그래서 제가 보기에 미래의 교회는, 물론 자라나고 성장합니다.
그러나 증가하는 핍박속에서 성장하는 것이며,
그런 핍박이, 마24:14절, 세계복음화의 완성을 가속시킬 것입니다.
지금 오늘날에도, 세계 교회 가운데 핍박 받는 교회들이 있습니다.
그들은 알곡처럼 성장하고 있습니다.
핍박이 없는 곳에서, 성장하는 교회들이 있는데,
그들은 양적인 성장이지요.
핍박이 아니라, 다른 어떤 사회적 요인 때문에 양적으로 성장하는 것인데,
양적 성장이 꼭 절실한 필요는 아닌 것 같아요.
그러나 외부적 핍박은, 교회를 내부적으로/질적으로 성장시킵니다.
양적으로는 오히려 일시적으로 감소될 수도 있어요.
이런 일들이, 종말이 되어질수록, 교회에 일어나리라고, 저는 내다봅니다.
그래서 핍박받는 초대교회가, 로마제국을 정복시켰듯이
핍박받는 말세의 교회가, 전 세계를 복음화하는 마24:14절을 완성할 것입니다.
교회는, 핍박을 받을 것이지만, 참 교회로 질적으로 성장하면서
세상에 복음을 전파하는 귀한 사명을 감당하게 될 것입니다.
▶그래서 종말의 시대는, 점점 더 대환란으로 나아가면서,
세상도 이전에 없던 환란과 재앙을 받게 되겠지만,
그러니 자연재해는 물론이요,
성경에 예언된 전쟁, 기근, 전염병 등이 전지구적으로 발생할 것입니다.
영어로 하면, universal trouble입니다. 전지구적 환란입니다.
그 가운데 교회는 전지구적으로 박해를 받게 될 것입니다.
영어로 universal persecution입니다.
마24:22 그날들을 감하지 아니할 것이면 모든 육체가 구원을 얻지 못할 것이나
그러나 택하신 자들을 위하여 그날들을 감하시리라
◑세대주의적 전천년설
그러므로 교회의 미래는, 지금보다 더욱 더 힘들어 질 것입니다.
그런데도 일부 거짓 가르침이 있었는데,
그것은 교회가 대환란을 겪지 않고, 대환란 전에 공중으로 휴거된다는 가르침이었습니다.
소위 말하는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인데요,
*‘전천년설’은, 무천년설과 아울러 종말론의 하나로 받아들여지지만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은 비성경적으로.. 이제 거의 인정되고 있습니다.
▶그래서 미국이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많이 따르고 있으므로,
이에 대해 잠시 설명을 드리려고 합니다.
1830년대에, 완전히 기발한 개념이 탄생했습니다.
그 전에까지 교회는, 모두 ‘환란통과설’을 전통적으로 믿고 있었습니다.
종말에 대환란을 겪게 될 것을 믿었지요.
그런데 그 당시에 영국인, 아일랜드 더블린에 살고 있던 존 넬슨 다비 Darby 라는 사람이 있었는데,
그가 주장한 신 개념의 종말론이, 그 이후 미국의 주류 종말론이 되어버렸지요.
그는 영국 성공회 출신입니다.
제가 이 이론의 문제점을 말씀드리는 이유는,
이제는 미국에서, 이 이론이 전 세계로 수출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미국이 20세기에 세계선교를 제일 많이 했으니까요.
이 이론은, 예수님의 재림이 두 번 있을 것이라고 주장합니다. *한 번이 맞습니다.
첫 번째 재림은 비밀스럽게, 개인적으로 오실 것이고 *새로운 설
두 번째 재림은 공개적으로 임하실 것인데요. *기존의 재림설
첫 번째 재림, 그 비밀스런 방문을 통해서,
참 신자들을 공중으로 데려가신다는 겁니다. 소위 휴거를 통해서요.
*휴거 (携擧 끌 휴, 들 거) 영어로는 rapture, 잡아챈다는 뜻
그래서 계4:1절 시점에서 공중재림/휴거가 일어나면
교회는, 그 후의 7인, 7나팔, 7대접 재앙을 받지 않게 되고,
지상에 남은 불신자들만 그런 대환란을 다 겪게 되리라고 가르칩니다.
이 이론이 인기를 끈 것은,
신자들로 하여금, 대환란을 겪지 않게 하고, 그걸 피하게 해 준다고 가르치니까
사람들이 끌릴 수밖에 없지요.
그런데 교회는, 신자들로 하여금 대환란을 대비하도록, 십자가의 강한 용사로 키워야 하는데,
대환란을 피하여 휴거된다고 하니, 신자들을 다 약골로 만들어버리는 것이지요.
이러다가 나중에 진짜 대환란이 닥치면, 배도할 사람들이 많아질 것을 우려합니다.
▶그런데 이 이론이 널리 퍼지게 된 것은,
다비 형제가, 미국으로 건너가서 사이러스 스코필드 라는 변호사를 전도했는데요.
이 스코필드 라는 사람이, <스코필드 성경>을 편찬했는데,
톰슨 성경처럼, 성경 아래에다 주석을 넣은 것이지요.
스코필드는 그 주석성경에, 다비의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을 끼워넣은 것입니다.
그런데 무슨 연유인지 이 <스코필드 성경>이 미국에서 제일 잘 팔리는 성경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스코필드 성경>을 통해서
전 미국에 전파되었습니다.
그리고 미국에서 20세기 초에 시작된 오순절 운동도
스코필드 성경과 함께 성장했다 라고 말할 수 있을 정도로,
오순절파도, 이 이론을 받아들이고, 널리 전파했습니다.
참고로, 성경에 무슨 주석을 달거나, 소제목을 붙이는 것을, 저 파슨은 거부합니다.
성경 말씀 자체가 희석되거나 오도될 수 있으니까요.
그 유명한 달라스 신학교도, 이 이론을 그대로 받아들였고요.
할 린지 Hal Lindsey 같은 기독교 작가도, 이런 신학을 담은
Left Behind 버려진 이란 책을 써서, 이 신학의 전파에 기여했지요.
심지어 이 신학은, 유대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래서 미국의 크리스천 시온주의자들도, 이 종말론을 따르게 되었는데요.
이 이론이 유대인 전도에도 전혀 도움이 되지 않는 겁니다.
복음주의 크리스천이 이스라엘에 가서 전도를 하다가,
‘당신들은 다 휴거되어 공중에 올라가고,
지상에 남은 우리 유대인들은 대환란을 당한다고요?’
무엇보다 이 사상의 폐해는, 대환란을 통과하지 않는다고 가르치니,
이렇게 배웠던 신자들이, 나중에 실제로 대환란을 통과하게 되면,
아무런 준비가 안 되어있으니, 그 중에 배도자가 속출할 것입니다.
그래서 미국이 이 종말론에 다 미혹되었고, 이제 선교운동을 통하여 세계를 현혹하고 있습니다.
성경은 종말을 대비하는 성도, 환란과 핍박을 참고, 견디고, 뚫고 나가라고 가르치는데,
이 종말론은, 그런데 대환란이 오기 전에, 예수님의 공중재림으로 공중으로 휴거된다고 가르치니,
장차 다가올 대환란에 대해, 전혀 준비를 시키지 않는 것입니다.
그런 가운데 이 종말론(세대주의적 전천년설)이 가지는
큰 오류가 있다고 봅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엉뚱한 걸 준비하고, 대비하게 만드는 거죠.
대환란을 대비해야 할 터인데, 있지도 않을 공중재림과 휴거를 준비하도록 만드는 겁니다.
*휴거는 있습니다. 대환란 후에 진짜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말이죠.
그런데 사람들이 왜 이런 종말론에 열광했느냐,
그게 사람들의 정서에 쉽게 받아들여졌기 때문입니다.
지옥을, 사람들의 정서상 원하지 않으니까, ‘지옥이 없다’는 이론을 만들었듯이,
대환란도, 사람들의 정서상 원하지 않으니까, ‘대환란 전에 휴거되고,
그것은 불신자들이나, 유대인들이 통과한다’고 가르치는 이런 종말론을
사람들이 쉽게 받아들인 것입니다.
환란을 통과한다는 설이 있고, 환란을 피한다는 설이 있는데,
그 양갈래길에서, 사람들은 대부분 자기가 믿고 싶은 쪽을 선택한 것입니다.
0:00~31:28 출처보기
'분류 없음 > 2015' 카테고리의 다른 글
씻어서 엎어 놓은 그릇 (0) | 2015.09.13 |
---|---|
사단이 번개 같이 떨어지는 것을 (0) | 2015.09.11 |
돌아온 칠십인 (0) | 2015.09.09 |
종말시대와 대환란 / David Pawson (0) | 2015.09.08 |
아나니아와 삽비라 사건이 중간에 끼인 이유 (0) | 2015.09.06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