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를 위하여 수고하고 진력하라 딤전4:6~10 15.10.04 출처
▲도입/ 예전에 문화체육부 장관을 지냈던 유인촌 씨가
당시 어느 월간지에서 인터뷰를 했던 내용이었다고 기억됩니다.
유 장관은 평소에 건강관리를 철저히 하는 사람으로 소문이 나 있었는데
기자가 그에 대해서 질문을 했던 것입니다.
그때 유 장관의 대답 중에 하나가 ‘결혼한 중장년 남자는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자기관리를 해야 하며, 특히 당뇨병에는 절대로 걸리지 않도록 조심해야 한다.
왜냐하면 당뇨병은 치료는 할 수 있지만 삶의 질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결과적으로 자기 아내와 자녀에게도 피해를 주기 때문이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저는 그 말이 참 인상 깊고도 크게 공감되었습니다.
물론 건강관리는 어느 누구에게나 필요한 일이지만,
특히 ‘가장’으로서의 책임을 가진 사람이라면,
자기 가족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자신의 건강을 지켜야 한다는 그 ‘동기’가
매우 감명 깊게 들렸기 때문이었습니다.
이처럼 가장이 자신의 사랑하는 가족을 생각해서라도,
혹은 젊은 남녀가 자기 애인을 위해서라도
자기관리를 하면서 더 건강하고 아름답게 되고 싶어 하는 것은
우리 신자의 신앙생활에도 그대로 적용됩니다.
즉 정말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라면
그 주님 앞에서 자신을 더욱 신실하고 아름다운 신앙인으로 가꾸어 가려고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이라고
사도 바울이 디모데에게, 그리고 성령께서 우리에게 말씀해 주고 있는 사실입니다.
◑1. 말씀을 가르치려고 수고하는 가운데, 자기 자신도 영적으로 성장하게 됩니다.
즉, 자기 자신이 제일 먼저 말씀의 수혜자가 됩니다.
딤전4:6 “네가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면 그리스도 예수의 선한 일꾼이 되어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훈으로 양육을 받으리라”
디모데전서는 선배 목회자인 바울이 후배 목회자인 디모데에게
교회를 어떻게 관리하고 성도들을 어떻게 키울 것인지에 대하여
구체적으로 교훈해 준 목회서신입니다.
선배 목사가 후배 목사에게 목회에 대하여 가르쳐 줄 때
가장 대표적이고도 중요한 주제가 무엇이 되겠습니까?
그것은 두말할 것 없이 바로 ‘말씀선포의 사명’입니다.
물론 바울에게 있어서도 예외가 아니었습니다.
본문의 6절부터 16절까지 이어지는 구절들은 바로 그것,
즉 목사로서 교인들에게 어떻게 말씀을 가르쳐야 할지에 대하여 교훈해 주고 있습니다.
이것은 이 문단에서 여러 차례 반복되는 표현,
“이것으로 형제를 깨우치라”로부터 시작하여 4:6
“명하고 가르치라”, :11
“가르치는 것에 전념하라”, :13
“가르침을 삼가 이 일을 계속하라”는 말들을 보아서도 명백합니다. :16
그처럼 말씀을 가르치는 사명에 충성을 함으로써
“선한 일꾼”으로 인정을 받게 되는데,
여기서 ‘선한’이란 그 사명에 임하는 진지하고도 겸손한 자세를 강조하며
‘일꾼’이란 그야말로 열과 성을 다하여 섬기는 충성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그런데 그런 ‘선한 일꾼’이 되는 자는, 그처럼 자신의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가운데
그 본인 역시 절로 누리게 되는 부가적인 이득이 있다고 했습니다.
그것이 바로 “믿음의 말씀과 네가 좇은 선한 교육으로 양육을 받으리라”는 말씀입니다. 딤전4:6
“믿음의 말씀”이란 ‘사람이 믿으면 구원을 얻게 되는 복음’을 가리키며,
“선한 교육”이란 ‘믿게 된 신자가 신행일치의 삶을 어떻게 살아야 하는지를 가르쳐 주는 교육’을 뜻합니다.
그런데 그처럼 디모데가 그런 말씀을 전파하고 그런 교훈을 가르치는 가운데
누군가가 “양육을 받으리라”고 했습니다.
지금 우리가 읽고 있는 개역성경의 번역을 보면
이 두 번째 부분의 주어가 분명치 않아서
마치 디모데가 말씀으로 깨우쳐 주는 “형제”
즉 교인들이 그런 양육을 받게 되는 것처럼 되어 있지만,
원문을 보면, 여기서 양육을 받게 되는 대상은 *영어성경만 봐도 분명합니다.
이 문장의 “네 you” 즉 바로 디모데 자신임을 분명히 알 수 있습니다.
그래서 표준새번역 같은 성경에 보면
“그대가 이런 교훈으로 형제자매를 깨우치면,
그대는, 믿음의 말씀과 그대가 지금까지 좇아온 좋은 교훈으로 양육을 받아서,
그리스도 예수의 좋은 일꾼이 될 것입니다.”라고 주어가 명확히 번역되어 있습니다.
간단히 말해서 ‘가르치는 자’ 자신이 스스로도 가르침을 받아 성장하게 된다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런 일이 일어나게 되는 것입니까?
그 대답은 바로 “네가 좇은”이라는 말씀 속에 있습니다. *follow
디모데는 그냥 교인들에게 말로만 가르치고 끝나는 것이 아니라,
자기가 전하는 복음과 교훈을 자기 자신부터 ‘좇으면서’,
즉 실천하면서 가르쳐야만 했습니다.
바로 그런 과정을 거칠 때에 디모데는
자기로부터 가르침을 받는 그 어떤 다른 형제보다도
먼저 자기 자신부터 ‘교육을 받고 양육을 받게’ 되어 있었던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 “양육”이라는 단어의 의미도 ‘아기를 키우다.’가 아니라
‘어려서부터 훈련하다.’라는 뜻입니다.
즉 바로 다음 문단에 이어서 나오는 ‘연습’과 가까운 뜻의 단어이며,
따라서 ‘네가 양육을 받을 것이다.’라는 말씀은
바로 ‘네 자신에게도 훈련이 될 것이다.’라는 의미인 것입니다.
▲사실 자기가 남에게 가르치는 말씀이,
먼저 자기 자신에게 은혜를 주고 자신을 변화시키는 성장의 능력으로 나타나지 아니한다면,
그런 말씀이 다른 사람에게, 무슨 효과로 나타날 수가 있겠습니까?
그것은 그야말로 옛날 글방의 훈장 선생님이 ‘하늘 천 따 지’ 하면서
똑같은 내용을 천편일률적으로만 가르치는 것이며,
실로 듣는 사람에게는 지루하기 짝이 없는 내용이 될 수밖에 없습니다.
하지만 같은 선생이라고 해도, 가르치는 교수 자신이
연구를 통해서 무언가 새로운 것을 발견하고 체험하면서
그것을 학생들에게 가르칠 때에는
그 교수에게나 학생에게나 그 강의가 얼마나 더 흥미가 있으며
그 강의실에 얼마나 더 생기가 넘쳐흐르겠습니까?
이것은 말씀 전파의 사명을 받은 목사뿐 아니라,
교회를 통해 어떤 사명을 받았든지 간에 그 사명에 충성하는 성도는
다 똑같이 체험하게 되는 사실입니다.
목사가 정말 설교 말씀을 잘 준비해서 성도들을 풍성하게 먹이면
그 이득은 우선 자기 자신의 영혼부터가 만족스럽고 살찌게 되는 축복으로 나타나는 것처럼,
전도사가 심방을 하면서 교인의 한 영혼 한 영혼을 진심으로 아끼는 마음으로 정성껏 돌보게 되면
그런 사역을 통해 자신의 심령부터 놀라운 은혜와 기쁨으로 충만케 되는
일석이조의 효과가 반드시 나타나게 됩니다.
장로 역시 ‘생애 최고의 것과 전부의 것을 다 바쳐서’ 교회를 섬기면,
바로 그런 충성스러운 사명 수행을 통해 ‘교회의 감독’으로서의 영력과 권위가 절로 더해지게 되며,
집사가 각종 ‘헌금’과 ‘봉사’와 ‘구제’를 위해 기도의 눈물과 수고의 땀방울 하나를 더 떨어뜨리게 될 때에
‘아름다운 지위’와 ‘믿음에 큰 담력’을 점점 더 얻게 되는 것입니다.
이것은 평신도에게도 꼭 마찬가지입니다.
교회 등록한 지 얼마 안 되는 교인이었지만
전도사님의 권유로 새소식반을 위해 방을 제공하는 봉사에 참여하게 될 때,
처음에는 그야말로 어쩔 수 없이 시작했던
그 일이 얼마 지나지 않아서 자신의 신앙생활의 전반에 걸쳐서
급속도의 성장을 나타내게 만들었다는 것은
교구헌신예배에서 정말 자주 듣게 되는 간증이 아닙니까?
철부지 같던 아들도 군복무를 마치고 제대하면 의젓한 어른이 되어 돌아옵니다.
왜냐하면 국방의 의무라는 신성한 사명을 수행하는 가운데
육체적으로뿐 아니라 인격적으로도 절로 성숙해지기 때문입니다.
그런 까닭에 군생활이란 비록 힘들기는 하지만
‘썩는 것’이 결코 아니라 결과적으로 국가와 본인 양자에게 좋은 일입니다.
신자가 교회의 일원으로서 맡겨진 귀중한 사명에 충성을 다하는 것 역시
교회를 부흥시킬 뿐 아니라, 본인도 성장시키는 일거양득이 되는 것입니다.
▲세상의 불신자들 중에는 자신을 더 아름답게 보이려고
‘얼굴에 칼을 대기도’ 하며 ‘아예 밥을 굶는’ 사람도 있습니다.
하지만 역시 진정한 아름다움은, 운동을 하고 땀을 흘리는 가운데
조금씩이지만 점점 더 튼튼하고 멋지게 되는 건강미에 있지 않습니까?
마찬가지로 성도는 ‘사명을 위해 땀과 눈물을 흘리며 일하는’ 가운데
진정한 성화의 성장, 즉 다른 성도들에게 절로 흠모를 받고
무엇보다도 주님의 눈에 진짜로 아름답게 보이는
‘거룩한 하나님의 자녀’로 자랄 수가 있음을 깨닫고,
교회를 통하여 각자 받은 사명에 충성을 다함으로써
자신도 양육을 받아 더욱 ‘그리스도의 장성한 분량’까지 성숙해 가는 성도들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2. 신자는 ‘개인적인 경건생활’에 ‘진력’함으로써
금세와 내세에서 유익을 누리게 됩니다.
딤전4:7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를 버리고 오직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
8 육체의 연습은 약간의 유익이 있으나 경건은 범사에 유익하니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느니라.”
“망령된”이란 ‘사악한, 속된, 영적으로 무가치한’이란 뜻입니다.
“허탄한”은 ‘노인들이 아이들에게 꾸며낸 이야기를 들려줄 때와 같은 허풍스러움’을 가리킵니다.
‘그리스 로마 신화’들은 오늘날에는 문학적인 가치가 있는 고전으로 읽히고 있지만,
당시에는 마치 진짜 실화인 것처럼 사람들의 마음을 미혹하는 ‘망령되고 허탄한’ 이야기였습니다.
그리고 그런 신화에 바탕을 두고 만들어진 이단의 교훈에
마음을 빼앗기는 일이 초대교회 안에서도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그런 ‘신화와 끝없는 족보에 착념하는’(딤전 1:4) 일을
버리고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고 명한 것이었습니다.
▲여기서 “경건”이란 ‘(사람이 아닌)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과
경외의 자세를 지키는 것’을 가리킵니다.
“연습”이라는 말은 당시 헬라로마 사회에서 흔히 벌어지던 각종 경기에 출전하기 위하여
‘거치장스런 옷을 벗고 맹훈련하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 기독신자들 역시 마귀의 미혹적인 ‘신화’에 마음을 빼앗기지 않고
신앙생활의 경주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필수적으로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해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 ‘경건의 연습’ 다시 말해서 ‘경건의 훈련’이란
바로 말씀을 생활에서 체험하는 것,
언제 어디서나 기도에 항상 힘쓰는 것,
어떤 상황에서도 주일을 성수하는 것,
예수님의 이름과 그 몸 되신 교회를 위한 고난과 박해를 달게 받으면서 이기는 것 등이 됩니다.
▲이런 경건의 연습은 결코 하루아침에 완성될 수 없습니다.
육체의 단련도 매일 꾸준히 해야 성과를 거둘 수 있듯이,
경건의 훈련 역시 하루도 빠짐없이 지속적으로 ‘진력’할 때에
차츰차츰 그 진보의 결과를 보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런 노력이 일단 결실을 맺게 되면 그 효과는 대단합니다.
“육체의 연습” 즉 신체단련도 물론 “약간의 유익”이 있지만,
그것은 그저 이 현세에서 인간사회에서만 약간의 효과를 발휘할 뿐입니다.
하지만 경건은 “범사에 유익한” 것이어서
“금생과 내생에 약속이 있는” 엄청난 효력을 발휘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이런 말씀과 기도와 봉사와 충성을 통한 경건생활은
그것을 단련하는 성도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서 더 멋진 자녀로 나타나게 해 주며,
그렇게 된 성도는 금세에서 하나님과의 화평의 관계를
더더욱 깊고 뜨겁고 강력하게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런 경건한 성도가 장차 저 천국에서 온갖 복락을 누리며
영생하게 될 것은 두말할 필요도 없으며, 그것이 바로 ‘내세의 상급’이 됩니다.
▲교인이라 하면서도 여전히 ‘망령되고 허탄한 신화에만 착념’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공부보다는 애들이나 보는 만화책이 더 재미있고
구역예배에 참석하는 것보다는 그 시간에 텔레비전 앞에 앉아서
주말 연속극을 보는 것이 더 즐거운 것입니다.
그런 교인의 신앙생활에 성장이 이루어질 리는 만무하지 않겠습니까?
그처럼 ‘경건에 이르기 위한 연습이 조금도 없는 교인’은,
마치 운동은 조금도 하지 않으면서 편식하며 간식만 찾아 먹는 사람처럼
‘뱃살만 찌고 신체는 허약해지는’ 약골 교인이 될 수밖에 없는 것입니다.
특히 교회의 직분을 무슨 ‘경건생활의 계급’으로,
더 중요한 직분에 임직 받은 것을 ‘경건생활의 승진’처럼 오해하지 말아야 합니다.
▲연예인들이 스타가 되었다고 몸 관리를 하지 않으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그 공인으로서의 인기나 명예는,
그것을 얻을 때보다 훨씬 더 급속도로 추락하게 될 것이 뻔합니다.
스타가 되었으니 오히려 이전보다 훨씬 더 죽어라고 노력해야
스타로서의 입지를 유지할 수 있을 것이며
또한 현재보다 더 유명하고 인기 있는 연예인으로 발전할 수 있을 것이 아니겠습니까?
마찬가지로, 교회에서 공적 직분을 얻게 되었으면
개인적 경건생활에는 그 이전보다 갑절로 ‘진력’하는 것이 마땅합니다.
스스로 뼈를 깎는 듯한 ‘경건의 연습’을 하지 않는 목사,
매일의 새벽기도회를 즐거움으로 할 줄 모르고
그저 담임목사의 눈치 때문에 어쩔 수 없이 나오는 전도사,
금요 철야기도회는커녕 수요밤 예배에조차 얼굴도 내밀지 않는 장로나 장립집사,
자신의 입부터 조심하면서 오직 기도에만 힘쓰지 아니하고
젊은 여집사들을 야단치는 따위를 두고 권사의 권위라고 착각하는 권사,
이런 사람들은 자기 자신이 교회의 공인으로서 교인들의 눈에
그 얼마나 ‘못 생긴, 매력 없는, 아니 꼴불견인’ 모습으로 보이고 있는지를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미국의 링컨이 대통령에 당선된 직후 내각을 구성하면서
어떤 부서의 장관을 맡을 사람을 찾고 있을 때였습니다.
그러다가 누군가의 추천을 받은 한 사람을 만나게 되었는데,
링컨 대통령은 그를 만나자마자 면접도 하지 않고 돌려보내었습니다.
주변에 있던 사람들은 당연히 그 이유를 궁금해 했는데,
링컨은 ‘얼굴이 마음에 들지 않아서’라고 설명했습니다.
대통령 쯤 되는 사람이, 어떻게 사람의 얼굴만 보고 성급한 판단을 내릴 수 있느냐는 비판이 들리자,
링컨 대통령은 “40세 이후의 얼굴은 자기가 만든 얼굴이다.”라고 대답했다는 것입니다.
즉 사람의 나이가 40세 정도 되면 그때까지 어떻게 살아 왔는가 하는 것,
다시 말해서 그 사람의 인격이나 내면의 모습이 그 얼굴에 고스란히 나타난다는 의미였습니다.
‘경건의 연습’이야말로 우리 기독신자의 내면의 아름다움을 키우는 유일한 방법이 아니겠습니까?
오직 매일의 경건, 꾸준한 연습을 통해서만이 저와 여러분은
교회에서 인정받는 직분자로, 아니 주님께로부터 더 사랑받는 매력 있는 자녀로 성장될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이 ‘경건에 이르기를 연습하라’는 말씀에서 ‘연습’이라는 단어는
문자 그대로 영어의 'exercise'라는 단어입니다.
자신의 건강을 지키고 남들 앞에서 매력 있는 몸매를 유지하기 위해서
매일 헬스클럽에서 땀을 흘리면서 운동하는 사람들처럼,
매일 자신의 ‘경건의 골방’에서 말씀의 실천과 기도의 생활화에 부단한 연습을 함으로써
금세의 교회 안에서도 칭찬과 흠모를 받는 아름다운 성도가 되고
내세에 약속된 상급과 면류관까지 받아 누리는 성도들이 꼭 되시기를 바랍니다.
◑3. 모든 사람들이 다 받을 수 있지만, 모든 사람들이 다 못 받습니다.
담전4:9~10 “미쁘다 이 말이여 모든 사람들이 받을 만하도다
10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진력하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
“미쁘다 이 말이여”라는 말씀은 ‘이 말은 틀림없는 사실입니다’,
‘진짜로 그렇습니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면서 이런 ‘충성의 수고’와 ‘경건의 진력’을 통한 성화의 성장은
“모든 사람이 다 받을 만한” 말씀이라고 했습니다.
무슨 특별한 은사나 달란트가 있어야 될 수 있는 일이 아니라,
적어도 참된 신자라면 모든 사람이 다 받을 수 있는,
아니 반드시 다 받아들여야만 하는 말씀이라고 한 것입니다.
▲하지만 정말 이것이 ‘모든 사람이 다 받을 만큼’ 쉬운 것이겠습니까?
“수고”라는 말은 ‘애쓰며 노력하는 것’을 가리키며
“진력”이란 ‘극심한 박해와 고통까지도 극복하고 인내하는 것’을 강조하는 말입니다.
사람은 누구라도 쉬고 싶어 하지, 땀 흘리기를 원하지는 않습니다.
‘대강 철저히’라는 군대 용어처럼 얼렁뚱땅 빨리 해치우고 싶어 하지
죽을 고생을 하면서 차근차근 진력해 나가는 일은 다들 싫어하기 마련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도대체 어떤 신자가 정말 이런 ‘수고와 진력’을 기꺼이,
아니 즐겁게 행할 수가 있겠습니까?
그런 봉사와 경건을 통하여 자신을 아름답게 성화시키는 노력에
그야말로 전력투구할 수 있게 만들어 주는 결정적인 동기가 과연 무엇이겠습니까?
그것이 바로 본문 10절의 말씀
“우리 소망을 살아 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는 말씀에 있습니다.
바로 저와 여러분이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게 되는 소망이 이루어지는 날,
우리 ‘믿는 자들의 구주’가 되시는 그 예수님을 친히 대면하여 만나게 될
그 날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때 우리는 예수님 앞에서 정말 ‘아름답고 멋있게 보이는’
신부로 서야 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가족들 앞에 건강하고 믿음직한 가장이 되기 위해서도
매일 꾸준히 유산소 운동을 합니다.
연인의 눈에 멋있는 남친, 매력적인 여친이 되고 싶다는 그 한 마음 때문에
아침마다 몇 킬로미터씩 조깅을 하거나
자기 전에 윗몸 일으키기를 하는 것입니다.
하물며 저와 여러분이 이 ‘흠 없고 점 없는 어린 양’ 예수님,
죄와 아무 상관없으신 이 너무나도 멋진 신랑 예수 그리스도 앞에 서게 될 날을 정말 기다리고 있다면,
그 분 앞에서 부끄러움 없이 서기 위해서
지금부터 조금씩이라도 꾸준하게 자신을 ‘아름다운 주님의 신부’로 예비하는
‘영적 자기관리’를 해야 하지 않겠습니까?
‘사명을 위해 수고하는 땀을 흘리고,
자기만의 골방에서 경건에 이르기 위해 부지런히 연습하는 것’만이
저와 여러분을 예수님 앞에서 착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칭찬 받는 성도로 성장시키며
천국에서 영원히 주님의 사랑을 받을 수 있는 매력적인 신부로 단장시키는 것입니다.
그러니 정말이지 천국에는 다 진짜로 ‘멋진 선남선녀’들밖에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얼굴이나 육체미를 과시하는 세속적인 미남미녀들이 아니라
바로 성화의 결과 예수님과 똑같이 된 ‘영화의 미’를 간직한 성도들입니다.
그런 면에서 우리 경향교회는 미인을 만들어 주는 성형외과나
연예인들의 몸을 만들어 주는 헬스클럽이 아니라,
천국에 입성할 ‘충성스럽고 건강한 사명인, 아름답고 멋진 경건자’를 단련시키는
영적 도장과도 같은 곳이 아니겠습니까?
아무쪼록 이 ‘모든 사람이 받을 만한 미쁘신 말씀’을 가슴에 새기면서
‘사명을 위한 수고’와 ‘경건의 연습에 진력’함으로써
우리의 구주 예수 그리스도의 거룩하심과 아름다우심과 존귀하심을
날마다 점점 더 닮아가는 멋진 신전인격자로 성장해 가시기를 축원합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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