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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16

영에 속한 사람, 혼에 속한 사람

LNCK 2016. 5. 20. 15:54

영에 속한 사람, 혼에 속한 사람           고전2:14~15, 유1:18~19           16.05.01.설교녹취, 출처

    

 

 

고린도전서 2:14~15절을 함께 읽겠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은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아니하나니

이는 그것들이 그에게는 어리석게 보임이요, 또 그는 그것들을 알 수도 없나니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되기 때문이라

신령한 자는 모든 것을 판단하나 자기는 아무에게도 판단을 받지 아니하느니라.

 

오늘 이 두 구절이 저희 교회가 가야될 그런 길이 되기를 축원합니다.

또한 빛이 되길 바랍니다.

 

 

고린도전서에 2장에는 극단적인 두 종류의 사람을 말하고 있어요.

 

먼저 육에 속한 사람이 있습니다.

이것이 헬라어로요 프쉬키코스란 단어예요. 신약성경에 딱 3번 나옵니다.

 

프쉬케란 단어는 혼 soul 이란 뜻이에요.

혼에 속한 사람은(자연인, 불신자), 하나님의 성령의 일들을 받지 않아요.

그들은 이걸 알 수도 없고 어리석게 보이게 되요.

그러한 일은 영적으로 분별된다는 거예요.

 

교회의 본질은 허물과 죄로 죽은 우리들을 주님이 살리시는 것인데

2:2절에 불순종하는 사람 가운데 역사하는 공중의 권세 잡은 자가 나오는데,

그것은, 자연인은 영적으로 죽어있다는 거예요.

 

그래서 교회의 본질은 영적인 것이에요.

아담과 하와가 선악과를 먹으면 죽으리라는 말씀을 들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먹고나서 즉시 죽지 않았습니다.

대신에 그들은 주님을 두려워서 숨었습니다. 그것이 (영이) 죽은 거예요.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 영이 죽은 사람은,

주님께 가는 게 싫고 힘든 거예요. 인간은 본질적으로 영적인것이에요.

 

여러분, 인간은 죽을 때까지 이 영의 삶을 살기 위하여 태어난 거예요.

그리고 그 영이 회복되는 게 구원이에요.

 

교회는 본질적으로 영적인 곳이에요.

교회는 본질적으로 착실하게 사는 것과 교육받은 대로 사는 게 아니에요.

 

사람은 수선이 안 되요. 사람은 repair 수선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repent 회개가 필요한 거예요. 그 회개는 뭐예요?

혼의 삶에서 영의 삶으로 옮겨지는 거예요.

그래서 점점점점 더 주님을 예배하게 되는 거예요.

 

그래서 찬송가에 나오죠. “세월 지나갈수록 의지할 것뿐일세

여러분, 처음 구원받기 위해서 믿을 때만 잘 믿는 게 아니에요.

그때부터 때마다 일마다요 점점점점 더 주님을 의지하고

기도를 더 하게되고 예배를 더 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인생이 잘못 되어서 예배를 더하는 게 아니에요.

제대로 될수록 더 예배하게 되는 거예요.

 

여러분 이 예배가, 내가 숨는 에덴동산 수풀이 되지 않기를 바랍니다.

인간은요, 바리새인처럼 말씀보고 기도하고 하는데도

종교 속에 숨을 수가 있어요. 등잔 밑이 어두운걸 아셔야 합니다.

신자는 주님의 등잔 밑, 에덴동산 수풀 속, 교회의 예배 속에 숨을 수 있습니다.

 

여러분 모태신앙인이 예배 한 번도 안 빠지고도, 주님을 평생 안 믿는 거 아시죠?

육적인 사람으로 평생 살아가는 겁니다.

 

바리새인은 구약성경을 열심히 보면서도 주님께 안 나갑니다.

이게 혼이에요. 육적인 사람입니다.

혼은요, 성경을 더 알아가는 데도, 예수님께 나아가지 않고 숨을 수가 있습니다.

 

여러분, 영적으로 우리의 삶이 분별되기 원합니다.

 

근데 왜 번역을 혼에 속한 사람이라 하지 않고, ‘육에 속한 사람이라 했을까요?

 

*육에 속한 사람육신적인 사람과 번역이 비슷해서

둘이 구분이 되지 않으니까, 별로 좋지 않습니다.

 

-전자(프쉬케, soul)는 자기 지, , 의와 이성으로 사는 사람이고, *, 존경받는 마을 유지

-후자(사릌스, flesh)는 자기 육신의 정욕, 안목의 정욕, 이생의 자랑으로 사는 죄인을 뜻하지요. *, 카사노바

 

감사한 것은, 저희 교인 한명이 저한테 <구한말 성경>을 선물했어요.

<구한말 성경>에는요, 고전2:14절을 육에 속한 사람이 아니에요.

대신에 '혈기에 속한 사람'. 이렇게 번역이 되어있더라고요.

 

혈기에 속한 사람’ soulish, 혼적인 사람, 이성적/상식적인 자연인

어쩌면 그게 더 맞습니다. ‘육에 속한 사람보다는요.

그다음에 고전2:15절에 신령한 자는

이것은 구한말 성경에는 '성신에게 속한사람' 이렇게 되있더라고요. 더 맞죠?

 

왜냐면 이 단어는 헬라어로 프뉴마티코스예요.

여러분 이것은 구한말 성경이 훨씬 번역이 잘 되었습니다.

 

사람은 두 종류가 있는데요.

 

혼에 속한 사람은요 *고전2:14절의 육에 속한 사람

종교적인데 구원받지 못한 사람이에요.

 

구원받고 거듭난 사람은 뭐예요?

성신에게, ‘성령에게 속한 사람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집의 일이나, 직장에 나가서 일을 하며 살지만요

무직자냐/직장인이냐.. 그 차이보다 더 중요한 일은

우리 자신들이 혼에 속해있는지’ or ‘영에 속해있는사람인지

이 시간에 살핌이 있기를 바랍니다.

 

사도바울은요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봤어요.

성경을 보기 싫어하는 것만이 혼에 속한 게 아니에요.

사도바울은 어렸을 때부터 성경을 봐서, 가말리엘 문하에 들어갔어요.

그는 자기 자신이, 하나님을 잘 믿는 줄 알았어요.

근데요. 예수님을 대적했어요. ‘혼에 속한 사람이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영에 속한 사람이 아니었지요.

 

제가 젊은 청년 때, 은혜를 받았어요. 막 성경말씀이 재밋어지고 그래서 열심히 읽었어요.

그때 제가 성경을 얼마나 열심히 봤냐면요, 설교를 들으면 느낌이 와요.

저 목사님은 책보고 베낀 것 같다... 저거는 여러 군데를 짜집기 한 거다...

저 분은 기도를 많이 안 하시는구나 요즘...’

 

그때 제가 스스로 정말 잘 믿는 줄 알았어요.

그게 영적으로 분별이 되는 건줄 알았어요.

 

근데 신기한 것은, 제가 판단만 했지, 전도를 안 한다는 것이죠. 점점요...

 

그리고 성경을 좀 아는 사람만 찾아가서 만나는 거예요.

왜냐면 성경을 모르는 사람과 얘기해보면은 답답해요. 얘기가 안 되요.

 

그래서 말씀이 열렸다는 사람을 제가 찾아다녔어요.

그러고도 나는 당시에, 스스로 잘 믿는 줄 알았다니까요.

예수님을 아직 제대로 못 만난 바울처럼 살았던 거죠.

 

당시 제가 은혜를 받고, 성경이 제 눈 앞에 열렸지만,

그래도 온전히 영적인 사람이 되지 못하고,

여전히 혼적인 사람으로 살았던 것입니다.

그러면서도 스스로 대단히 잘 믿는 줄로 착각하고 살았다니까요.

 

청년 사울이, 예수님 믿는 성도들 죽이러 갈 때도 매일 성경 봤습니다.

정한 기도의 시간에 기도했습니다. 근데 예수를 못 알아봤어요.

 

그러던 중 주님이 제게 나타났습니다. 그리고 저를 야단치셨습니다.

주님이 나타나실 때는

-아주 긴급할 때 나타나시거나

-혼내실 때 나타나십니다. (안 나타나셔서, 야단 안 맞는 것이 더 낫습니다.)

 

 

세례요한의 딜레마

 

사가랴에게 자녀가 없었잖아요.

근데 어느 날 지성소에 들어갔다가 나오는데 벙어리가 된 거예요.

그러더니 자기가 천사장 가브리엘을 만났다는 거예요.

근데 아들을 낳을 텐데, 이름을 요하난이라 지어라는 거예요.

 

히브리어 요하난. 긍휼이란 뜻이에요.

 

그러더니 애가 태어났어요. 이름을 요하난으로 지었어요.

헬라어로 요한입니다.

 

그러니까 이 아버지가 있잖아요.

"너는 사무엘처럼 태어난 거야. 성소에서 지시 받아 태어났거든

 

사가랴는 아들 요한이, 그냥 사무엘처럼 주의 성전에 거할 줄 알았어요.

그래서 이스라엘 민족을 구원할 큰 영적 거장이 되는 줄로 기대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애가 자라면서 보니까 패션이 이상해요. 막 낙타털옷을 입고 다니는 거예요.

그러더니 사무엘처럼 성전에 거하는 게 아니라

이 지성소에서 계시받아 태어난 놈이, 광야로 나가 돌아다니고요,

아버지가 너무 가슴 아파하는 거예요.


"...너는 사무엘처럼 태어난 거야...또 어디 가느냐?"

"광야에 가요."

"니가 클린트 이스트우드냐, 돌아와라." 아버지가 이해가 안 되는 거예요.

 

그러더니 얘가 크더니 광야에서 메뚜기랑 들꿀을 먹더니...

광야에서 하나님 말씀이 임했다는 거예요.

그러더니 성전에 돌아온 것이 아니라, 요단강으로 갑니다.

 

거기서 설교하기를, 물속에 들어가서 죄를 고백하면 죄가 용서된다는 거예요.

 

오 마이 갓!... 여러분, 구약에는 이런 말이 나오질 않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은, 여호수아처럼 주님의 성막/전에 거합니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은, 사무엘처럼 주의 전을 떠나지 않습니다.

구약에 나오는 하나님 사람 다윗은요, 주의 전에 거하기를 사모했습니다.

 

근데 얘는 광야로만 돌아다니더니, 하나님 말씀이 임한다는 거예요.

근데 요단강에서 이 이단에게 세례를 받는 사람이 조금씩 늘어나는 거예요.

그랬더니 예수살렘 장로교에서, 요한을 보고 이단이라는 거예요.

       

여러분, 갈릴리에서 예루살렘을 가려면, 갈릴리에서 요단강을 따라 내려와요.

그러면은 세례요한이 세례를 주는 곳에서, 딱 우회전을 하면,

여리고가 나오고, 거기서부터 곧장 올라가면 예루살렘이에요.

그러니까 예루살렘에 제사를 드리러 가는 사람들은 항상 세례요한을 보게 되어 있어요.

 

그런데 어떤 사람은 거기 안가요.

구약성경에 요단강에 들어가란 말이 어딨냐?

저 제사장 사가랴의 아들, 제사장 맞아? 제사장이 왜 광야에 있는 거야?

저거 이단이야 저거..’ 그러면서 세례요한에게 안 가는 거예요.

 

당시에도 육에 속한 사람들은, 세례요한을 못 알아보는 거지요.

그러나 당시에 영에 속한 사람들은, 세례요한에게 나오는 겁니다.

 

그 세례요한이 회개하라!’ 외칠 때,

자기들의 가슴이 막 움직이는 거예요.

그 세례요한의 외침에 대해 끌리는 거예요.

그래서 몇몇 사람들이 거기서 세례를 받는 거예요.

 

그때 청년시절에, 제가 예수님을 안 것이 아니라, 성경지식밖에 없었던 거예요.

전도도 안 하고, 지식만 추구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을 아는 사람은 전도합니다.

예수님 깊이 모르고, 영성만 추구하는 사람은, 성경만 보고 기도만 합니다.

그리고 구령의 열정이나 진지한 관심이 없습니다.

 

여러분 이 교회가 전혀 예수를 모르는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사람들이 존경받고, 그들을 따르는 교회되길 축원합니다.

 

 

주님은 복음을 외쳤지, 진리를 먼저 말하지 않았어요.

 

여러분, 마태 마가 누가복음, ‘진리란 단어가 한 단어도 없는 것 아세요?

없습니다. 검색해도 안 나옵니다.

 

헬라어 전치사 구로 딱 두 단어 나옵니다.

그렇지만 명사로는 한 단어도 안 나옵니다.

 

그러다가 요한복음 1장에서 그분에게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

진리란 단어가 거기에 처음 나와요.

 

요한복음에만 진리 truth란 단어가 많이 나와요.

"진리가 너희를 자유케 하리라" 요한복음이에요.

진리가 무엇이냐?” 빌라도가 물어봤어요. 요한복음이에요.

 

그런데 마태/ 마가/ 누가복음은 진리란 단어가 한단어도 없어요. 안 놀래요?

저는 굉장히 놀랬습니다.

 

여러분, 성경에 주님은, 무엇이 맞고/틀리는지 진리를 논하기 이전에

맞지 않는 사람을 구원하는 긍휼.. 그게 주님의 복음입니다.

 

저희 교회가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을 통해서 따르지 않는교회되길 바랍니다.

*개인 영성(개인적 신비주의)만 추구하고, 전도도 못하는 교회가 되지 않길 바랍니다.

우리는, 죄인들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못 박히신 그리스도를 따르는 거예요.

 

그분은 우리를 대신하여 죄가 되신 분이에요.

영성을 추구하는 사람은 거기 갈 수 없어요, 사형장에.

영성 떨어질까봐요.

 

여러분 영성 있는 사람은, 영성 떨어질까 봐 술집을 못가요.

그러나 여러분이 전도하려면 솔직히 가야됩니다.

*술집 문 닫은 후에, 주인과 종업원 전도하러요.

 

예수님은 세리와 죄인의 친구예요.

우리는 술 마시러 가는 것이 아니라, 술 파는 사람에게 복음을 전하러 가는 거에요.

이게 복음이에요.

 

복음 있는 사람은, 산을 넘어서, 복음이 필요한 사람에게 가는 거예요.

그러나 영성만 추구하는 사람은요. 거기 안가요.

영성 쎈 사람에게 안수 받으러 가는 거예요, 헐먼산으로.

 

여러분 저희 교회가 깊은 영성으로 유지되는 교회가 아니길 바랍니다!

우리 교회는, ‘세리와 죄인의 친구되는 자.’

 

그 의로운 자들(바리새인과 서기관)에게 돌 맞는 여인을 구원하는 자들,

그런 교회되길 축원합니다.

 

이게 영에 속하는 사람이에요. 그런데 이게 참 어려워요.

극단적인 영성을 추구하는 자가, 혼에 속한 자로 계속 남아 있으면, 그는 예수를 죽입니다.

 

여러분, 예수님 죽일 때 협력한 사람들 있잖아요?

다들 말씀과 영성에 일가견이 있는 사람들이에요.

그들이 보기에 절대 예수는 하나님의 아들이 아니라는 거예요.

 

하루는 제가 성경을 보는데, 주님이 제게 내적 음성으로 이러시는 거예요.

"네가 성경을 좀 봤어? 성경이 꿀처럼 달아?

근데, 네가 그 당시에 살았으면, 네가 요단강으로 갈 사람이냐? 예루살렘 성전으로 갈 사람이냐?"

 

그때 제가 막 울었어요. 저는 레위기 말씀을 의지해서 저는 예루살렘 성전에 갈 사람입니다.

나는 요단강에 절대 갈 리가 없습니다.

 

여러분 놀랍게 그 당시에 요단강에 간 사람들은요,

성경을 많이 아는 자가 아니고, 그건 관계없어요.

 

그게 아니라 자기를 지으신 주님을, 내 직장/내 자녀보다 더, 주님을 더 찾는 거예요.

그런 사람들은 자기도 모르게, 절기 때 예루살렘 성전에 올라갔지만,

그러면서도 자기도 모르게 요단강에 가는 거예요.

 

주님이 제게 물어보시는 거예요. "넌 어딜 가겠느냐?"

여러분 성경을 많이 알아도, 혼에 속한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유다서 1:18~19절을 보겠습니다.

 

18. 그들이 너희에게 말하기를 마지막 때에 자기의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이 있으리라 하였나니

19. 이 사람들은 분열을 일으키는 자며 육에 속한 자며 성령이 없는 자니라.

 

여기에 육에 속한 자단어가 나와요. 프쉬키코스.

 

위 본문에서 육에 속한 자, soulish’ 사람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합니다.

 

-경건하지 않은 정욕대로 행하며

-조롱하는 자들

-분열을 일으키는 자

-성령이 없는 자

 

구한말 성경에 우와...깜짝 놀랐습니다.

여러분, 구한말 성경은요 1백 년 전인데요, 헬라어를 아는 분이 번역했어요.

"혼은 있고 성신은 없는 자니라" 이렇게 되어있어요.

 

여러분, 혼은 있잖아요. 이성이 있고, 자기 판단력과 자기 지식이 있어요.

이런 소위 똑똑한 분들은, 조금만 틀린 것에도 못 견뎌 해요. 아주 예민해서요.

 

그게 마치 자기가 진리를 정확하게 따르는 것처럼 보여요.

 

그런데 공관복음(마태, 마가, 누가)에는, ‘진리가 나오지 않는다니까요.

대신에 죄인들을 구원하는 복음이 나옵니다.

 

저와 여러분은, 신학이 뭐가 옳고 그른지 그것도 따져야 하지만,

저 치중해야 할 것은, 죄인들을 구원하는 복음이 되기 바랍니다.

 

여러분 교회에서, 성경지식에 너무 집착하거나,

또는 기도의 영성만을 추구하는 사람을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우리는 진리이전에.. ‘복음을 추구합니다.

우린 영성이전에.. 죄인들을 구원하는 복음의 말씀을 추구합니다.

 

우리는 보좌위의 주님을 알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어디예요? *영성

죄인인 지체 속에 있는 주님을 보기를 원합니다. *복음

 

저는 이것이 이 시대의 하나님의 음성이라고 확신합니다.

저는 이 복음에 내 삶을 걸 겁니다.

진리를 추구하기 전에, 먼저 죄인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겠습니다,

 

뭐예요? 간음하다가 현장에 붙잡힌 여인이 돌에 맞아 죽게 되었어요.

진리는 돌로 쳐서 죽이라고 했어요.

 

그런데 예수님은 진리 앞에 덧붙였어요. '너희 중에 죄 없는 자가 먼저'

 

여러분 이 말을 들은 그 여자를 생각해봐요.

'...저 남자가, 나를 살리려고, 자기는 죽으려고 작정을 했구나.'

 

그 여자가 그날 만난 남자는요,

죄인인 자기를 살리려고, 자기가 대신 죽으려고 한 남자를 만난 거예요.

 

우리는 성경적인 신학, 똑바른 말씀도 중요하지만

그보다 먼저 죄인을 살리는 복음을 전하게 되기를 바랍니다.

 

진리는요 죄인 편에 설 수가 없어요. 더러워질까봐...

근데 복음은요, 은혜는요, 죄인을 건지기 위하여 기꺼이 불속에 뛰어드는

소방수 같은 사람 되길 축원합니다.

 

그러면 여기 교회가, 죄인에게 천국이 됩니다!

여러분, 저희 교회가, 영성 있는 사람이 아니라

잃어버린 영혼에게 관심 갖기를 축원합니다.   *출처의 24분43초까지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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