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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을 뜨고 살아야지요

LNCK 2016. 6. 29. 08:25

눈을 뜨고 살아야지요         계1:1~19, 합2:19               출처보기

    

 

 

아시는 것처럼 요즘에는 트위터의 시대라고 할 만큼 수많은 사람들이 트위터를 사용합니다.

어떤 모르는 사람들이 만명, 이만명 팔로워가 따르고, 그게 순식간에 퍼져나가지요.

 

근데 거기에 씌여진 글들이 대개, 그렇지 않은 분들도 계시지만 얄팍한 글들이예요.

그저 한 불과 3,4 문장정도.

그리고 사람의 뇌 신경을 팍팍 건드리면서, 얄팍한 그런 생각들을 전파합니다.

 

다 가벼운 얘기들이예요. 솔직히 말해서 좀 까불어요.

인생이 그렇게 가벼운 거는 아니지 않습니까.

 

인생은 원래 무게가 있고, 존재가 소중하고

그리고 그 가치로 따지면 천하에 이렇게 위대한,

우리 하나님이 지으신 위대한 존재가 없습니다.

 

그런데 생각들을 별로 많이 안 하는 시대입니다.

존재라는건 원래 고민이 있어야 합니다.

나는 생각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이 있을만큼

자기 존재에 대한 고민이 있을 때, 그 고민은 나쁜 것 만은 아니죠.

 

나의 삶의 존재에 대해서, 내가 누구냐?

도대체 내 삶이 어디서부터 왔고, 도대체 나의 destiny(운명, 예정)가 뭐냐?’

 

이런 존재에 대한 고민은 깊은 고민이 필요해요.

그런데 우리가 생각하는 건 너무 얄팍합니다.

그냥 시류에 휘말려서 그냥 되는대로...

 

여러분 우리 목회자들 사이에 종종 쓰는 영어단어가 있습니다. GTT.

뭔지 아십니까? God's Time Table. ‘하나님의 시간표라는 거죠.

 

하나님의 스케줄대로.

누가 뭐라 해도, 우리가 좋아하던 안 하던 내 마음에 들던 안 들던

그 스케줄 좀 바꾸십시오.” 아무리 설사 얘기해도 끄덕도 안하시는 God's time table!

 

GTT대로 온 우주는, 온 하나님의 세계는 진행중이라고 하는 것이지요.

우리 눈에 보이는 게 전부가 아닙니다.

히브리서 11장에 있는 말씀처럼 눈에 보이지 않는 것이 참된 세계예요.

 

그저 우리가 아무 소리나 하고, 정말 까불고 그저 이것저것 내 멋대로 살고 하지만,

아니요! 그렇게 오늘을 살아서는 안 되는 것이죠.

 

더욱이 많은 역사적 사건들, 또 오늘의 현실 current situation을 보면

정말 지금은 우리 그리스도인들이 지난주에 시작한 시리즈처럼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살아야 될 날입니다.

 

오죽하면 반복해서 이 제목을 다시 설교하겠습니까.

오늘이 마지막 날처럼 살지 않고,

다 얄팍하게 까불며 그저 제 멋대로 살며 끝내는 인생은 아니잖아요.

얼마나 소중한 하나님의 영적인 존재들이예요.

 

내가 알든 모르든 보십시오.

이 우주적인 사건은 도도하게 지금 하나님의 God's time table대로 진행 중입니다.

심판이 한 쪽에서 진행 중입니다. 한 쪽엔 지옥이 펼쳐집니다.

 

한 곳에는 성령의 파워가 역사를 움직이고 있습니다.

또 한쪽에서는 악령의 세계가 펼쳐지고 있는 중에 있습니다.

 

우리 믿는 자들이 예수 이름으로 인하여 영생을 얻게 하신 것이 진행 중인가 하면,

또한 하나님 앞에 불순종하고 싸가지 없이 사는 그러한 인생을 향해서

영벌이 펼쳐지고 있는 것이지요.

 

어떻게 살아야 되는가?’ 우리는 번민해야 합니다.

존재는 충분히 고민으로 다시 그 존재가치를 되살릴 수 있는 것입니다.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주여 살게 하소서.”

 

특히 여러분 이 시대. our generation, this generation은요,

두 눈을 감고 살아서는 살수가 없어요. 눈 감고 살아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오늘 이 새해를 맞이하고도, 주 앞에 나와 예배하는데

사실상 오늘에 되어져가는 모든 상황들을 아예 볼 생각도 안하고,

두 눈감고 사는 것은 아닙니까? 물어보셔야 되요, 직접 자신에게.

 

도스토예프스키가 <죄와 벌>이라고 하는 유명한 소설을 썼습니다.

제가 라스콜리니코프라고 하는 그 주인공 이름까지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습니다.

고등학교, 대학교 때 얼마나 탐독을 했었는지요.. <죄와 벌>.

 

죄가 있으면 인간의 양심부터가 고통스러워서

그 뒤에 벌을 받는 의식이 따라온다는 것이지요.

인간의 고민, 존재에 대한 고민이었습니다.

 

그러나 요즘에는 <죄와 벌> 같은 그런 소설은 안 나옵니다.

그런 소설 안 써요. 요즘엔 <죄와 벌>이 아니라 <죄와 악>입니다.

죄가 터지는 곳에 더 악이 쏟아지고, 악이 더 쏟아지는 곳에 죄가 더 저질러지고..

 

여러분 로마서 1:21절만 봐도 이 시대가 하나님을 알되

하나님으로 영화롭게 아니합니다. 안 해요.

하나님을 알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 안 해요.

오히려 그 생각이 허망하여지고... hopelessness. 아예 소망이 없는,

미련한 마음으로 어두워지고. 정확하게 이 세대예요.

 

이 시대는 로마서 128절에 보는 것처럼

저희가 마음에 하나님을 두기를 싫어하죠.

 

요즘에 뭐 하나님 싫어해요. 예수 이름 듣기도 싫어해요.

십자가 눈에 보고 싶지 않아요. 끌어내리라고 그래요.

저희가 하나님을 마음에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이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셔서,

그들이 합당치 못한 일을 다 저지르고 살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크리스천 되어갖고 안 보고 싶어서 눈 감습니까? 눈 감고 살아요?

눈만 감고 살면 차라리 안 봐서 괜찮습니까?

아니요. 그렇지는 않죠.

 

눈감고 산다고, 내가 안 본다고,

심판을 피할 수 있다는 말인가요?

 

지금 이렇게 캄캄한 죄와 악이 끝을 모른채 더 퍼져나가고 퍼져나가는 이 삶 속에서

우리 자녀들을 끌어안고, 눈 감고 그저 나만 깨끗하게 산다고 해서 벗어날 수 있나요?

 

아니요. 두 눈을 감으면 안 되는 때입니다, 지금은.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살려면, 눈감고 살아서는 안 되는 때이죠.

 

그렇다고 이 세대가 한 눈만 뜨고 살면 된다는 말입니까?

그것도 아닌 것 같습니다. 그것도 아니예요.

왜냐면 한 눈만 뜨고 살기에는 너무 부족합니다.

 

오늘 1장 이곳 저곳에 나오는 관련구절을 제가 인용하는데

13절에 보면 이 예언의 말씀을 읽는 자와 듣는 자들과

그 가운데 거룩한 것을 지키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이 말씀이 계시록에 적혀진 것들을 읽고, 보고, 깨닫는 자들이 복이 있나니.

왜냐하면 때가 가까웠음이라.’

 

. 때가 가까웠습니다. 지금 한 눈만 뜨고 한 눈은 감은 채 편하게 살 수 있는때도 아닙니다.

 

18절에 보면 주 하나님이 가라사대 나는 알파와 오메가라.

이제도 있고 전에도 있었고 장차 올 자요. 전능한 자라.'

전에도 계셨고 지금도 계시고.. 이제 그 오시는 분이 계세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을 사도요한에게 쫙 보이시니깐

그 요한이 마음을 열고 눈을 뜨고 그걸 바라보면서

맨 마지막 요한계시록 22장에 말하고 있어요. 아멘 주여. 오시옵소서. Lord, come. Maranatha!”

 

오시는 분이 있어요. 한 눈 세상을 향해서 쳐다보고,

또 한눈 주일날마다 주님 십자가 보고. 그래서 한 눈은 여기 걸고, 한 눈은 저기 걸고.

신앙은 그런 것은 아닙니다.

하나님의 GTT. God's time table을 그런 식으로 따라갈 순 없는 것입니다.

 

그래서 오늘 본문에 17절부터 1819절에 보면

그 죽은 자가 주 앞에 엎드리니깐 내게 손을 얹고 가라사대 두려워말라.

내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I'm the begining and the ending.”

 

내가 처음이요, 마지막이다. 내가 곧 부활하여 산 자라. 내가 전에 죽었었노라.

볼지어다. 이제 세세토록 살아있어 사망과 음부의 열쇠를 가졌노니...”

 

나야말로 지금 너희가 바라보지 아니하고, 너희 중에 관심이 없는 사람들이 많아졌지만

No matter what 상관하지 않고

하나님의 도도한 God's time table은 진행중이라는 것입니다.

사망과 음부의 천국과 지옥의 권세를 key를 주님이 쥐고 계신다는 것이지요.

 

그러므로 내 본 것과, 이제 있는 일과, 장차 될 일을 기록하고

그걸 믿고 따라가라는 것입니다.

 

제가 40일 대각성기도회 시작할 때, 첫날 설교가 <농담입니까, 진담입니까?>

아마 두고두고 우리 마음속에 기억되리라고 봅니다.

그때로부터 40일 대각성은 확 불이 붙기 시작했습니다.

 

롯이라는 사람. 그가 소돔과 고모라의 성에 있었지만

그의 사는걸 보면 한쪽 눈은 소돔과 고모라를 향해서.

사실 그 쾌락, 그 인간의 누리는 향락들, 사실 인간의 본성에는 그게 흥미롭습니다.

"아 저렇게들 노네. 저렇게 재밋네."

 

그래서 우리 크리스찬도 어떤 그런 것들 흉내내고 싶어하잖아요.

이 소돔과 고모라. 그쪽을 향해서도 한쪽눈을 뜨고,

 

그러나 아브라함의 조카로, 믿음의 조상의 출신의 가정으로 여호와 하나님을 알고 믿고 있어요.

그래서 여호와 신앙으로 한쪽 눈을 뜨고, 한쪽 눈은 이쪽을 볼 때는 감고.

눈을 깜박이처럼, 이쪽 저쪽 번갈아 떠서 보는 것입니다.

 

그 소돔과 고모라가 이제 하나님께서 부를 내려 유황으로 다 태워버리시겠다고...

지금 뭐 소돔과 고모라가 오늘의 현실이거든요.

그때도 오죽했으면 그냥 진노하셔서 불태워버리시겠다고 그러니까

그 경고와 예언을 이 사위들이 뭐라 그랬어요? "그게 농담인줄로 여겼더라."

 

농담이요? 하나님 말씀은 농담으로 쓰지 않으셨어요.

우리하고 농담 하자고 농담으로 쓰신 책이 아닙니다, 성경이.

 

한절이라도 농담될 수가 없어요.

'일점일획이라도 빼지도 않고 더하지도 않겠다'고 주님이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사실 얼마나 우리에게 처절하게 한 구절이라도 중요한지요...

 

저희 집에 난데없이 개가 한마리 더 생겨가지고,

저희 딸이 그렇게 애지중지하던 개인데

자기 집에서 기를 형편이 못되어 가지고, 난데없이 저희 집으로 데려왔어요.

 

솔직히 좀 예쁘긴 해요. 그러다가도 제가 막 바쁜데 졸졸 따라다니면서 귀찮게 하면,

제가 발로 배때기를 한번 밀어버릴 때가 있죠.

 

그런데 아내가 성경을 집에서 읽고 앉아있는데.

잠언을 읽다가 그 구절이 딱 눈에 들어왔나봐요.

 

그 다음부터 제가 개를 구박이라도 하려고 하면,

그러면 꼭 옆에 다가오는 거예요. 그리고 잠언 1210절을 읽어줘요.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까지도 돌아보나,

악인은 그렇지 아니하니 악인의 긍휼은 잔인함이니라.”

 

이걸 고대로 외워가지고 하는 거예요.

제가 발로 개를 못 밀게 하는 거예요.

 

그 구절을 들으니까 의인은 그 육축의 생명까지 돌아봐야 의인이다.”

그래서 제가 개를 보고 , 예쁘다.” 그랬더니

이게 또 도를 넘어가지고, 제가 서재에 앉아있으면 무릎 위에까지 올라와요.


그 만큼 말씀은 받아들이면 효과가 있는 것이예요.

 

근데 하물며 육축의 생명, 개를 돌아보는 그 정도겠어요?

지금 하나님의 God's time table이 진행중인데...

영생과 영벌, 심판과 지옥, 영적인 세계의 확장과 하나님의 나라의 역사가 진행되고 있고,


그리고 한쪽에서는 악령의 어두움의 영이 진행되는데

 

time table속에 있는 우리들이 정말 눈감고 살겠어요?

한쪽 눈만 뜨고 보면서 신앙생활 따라가겠습니까? 그렇게 못합니다.

그래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그렇게 살아야죠.

 

여러분 그래서 이 시대는 두 눈을 뜨고 있습니까?’

하고 우리 피차에 그리스도인들끼리 물어봐야 되요. “두 눈을 열고 있습니까?

두 눈을 열고, 다 눈을 뜨고, 제대로 보고 있습니까?”

 

육신의 눈, 마음의 눈, 영의 눈. 다 두눈 뜨고 살아도 모자랄 지경이예요.

그런데 두 눈 감고 귀찮은거 안보고, 나만 그저 의인으로 살겠다.”

그거 안 통합니다.

 

한쪽 눈만 가끔씩 떴다가 말았다 하면서, 하나님 그 세계를 보겠다고...

그거 가지고 절대로 될 일이 아닙니다.

 

다 마음의 눈, 심령의 눈, 믿음의 눈, 육신의 눈을 다 뜨고

열심히 눈으로 보고 따라가도 모자랄 지경인데. 파수꾼이 되야죠.

 

시편 1306절에 유명한 말씀 같이 읽어보십시다.

파수꾼이 아침을 기다림보다 내 영혼이 주를 더 기다리나니

참으로 파수꾼의 아침을 기다림보다 더하도다.”

 

밤새워 지키는 파수꾼이 애타게 아침을 기다림처럼.

두 눈은 부릅뜨고, 아침을 기다리고 있는 파수꾼보다 더하게,

하나님의 time table, 타임스케줄.

 

지금 역사가 조선일보가 말하고 뉴욕 타임스가 말하고 워싱턴 포스트가,

저 파리의 무슨 신문이 말하는 그런 식으로 이루어지는 게 아닙니다.

그런 거 하나 상관없어요.

 

북한의 김정일이 죽고 김정일이 3대 세습을 하고, 그래서 군사 퍼레이드를 벌이고

, 세습을 안정시키고... 다 소용없는 일이예요.

하나님의 time table대로 진행 중이기 때문에

우리에게 중요한것은 하나님의 성령의 역사가 진행되는 것을

곳곳에 낱낱이 지켜볼 수 있는 열정을, passion을 가지고.

그리고 파수꾼처럼 하나님의 time table에 동참하고 따라가는 것이지요.

 

그래서 계1:1절에 보니까

그 천사들, 그 일을 그 종들에게 반드시 속히 될 일들을 종들에게 보이시려고

요한을 통해서 계시록을 썼다기록되어 있습니다.

 

7절에 보니까 여기 이렇게 말했죠.

각인의 눈이 구름타고 오시는 그를 볼터이니 모든 족속이 그를 인하여 애곡하리니 그러하리라 아멘.’

하면서 속히 그분이 오고 계심을 말씀하세요.

    

 

그래서 여러분 3가지를 적용 application으로 말씀드립니다.

 

한 가지는 '두 눈을 뜨고' 하나님의 time table에 동참하기 위해서는

첫째로, 잠에서 깨야 됩니다.

성경은 늘 우리에게 =이라고 역사합니다.

 

게으름=잠들고 있는것입니다.

쾌락?’ 그거 잠들어 있는거예요.

교만?’ 인생의 교만 그것처럼 깊은 잠이 없어요.

하나님은 그걸 다 이라고 보세요. 다 잠들어 있어요.

 

그런데 잠에서 깨어나라는 것이지요.

이사야서 5117절에 있는 말씀처럼

오늘날 이 세대가 얄팍하고 까불고 마셔대고 놀아나고 돈 좀 생기니까

한국사람들 정말 눈뜨고 못볼지경이라고 하는 그 졸부들의 모습들이 펼쳐지고

그리고 온 땅에 그것이 넘쳐흘러서 서로 시기하고 미워하고 부러워하고

이렇게 사는게 삶에서 연락하고 쾌락하는 것들.

그 잠에서 깨어나라는 거예요.

 

이사야서 5117절은 이렇게 표현합니다.

여호와의 손에서 그 분노의 잔을 마신 예루살렘이여.

여호와의 손 앞에서 그 분노의 잔을

그 쾌락과 분노의 막대로 사는 그 잔을 마셔버린 예루살렘이여 깰지어다!

깰지어다! 일어날지어다! 이미 너희가 비틀비틀 술 취한 걸음으로

큰 하나님의 분노의 잔을 너희가 마셔버렸도다.’

 

잠에서 깨라.” 는 것이 오늘의 이 시대의 통찰력이예요.

다윗이 늦게 잤거든요. 원래 다윗은 그러지 않았는데요..


우리 가운데도 아마 그런 분들 계십니다 

전에 신앙생활 할때 보면, 그 전에 1520년 전만해도 안 그랬거든요.

근데 요즘에 너무 죄의 잠, 무관심의 잠, 불순종의 잠, 교만의 잠, 다 잠들었어요.

나태의 잠. 그 잠에서 깨지 않으면 눈뜨고 살질 못해요.

 

그래서 이 다윗을 봐도 잠이 그러질 알았는데,

슬슬 늦게 일어나서 잠 늦게 자고 깨가지고 보다보니까 안 볼걸 봤고,

그리고 그 여인과 죄를 저지르고, 그게 사무엘하 11장인데

 

그 다윗이 잠자다가 부스럭하고 깨서 그 일을 저질렀는데

그 다음 다음 장에, 벌써 다윗의 아들 중에 예뻐하던 압살롬이 반란을 일으킵니다.

 

잠에서 깨지 않고 두 눈뜨고 살지 않으면

이 사탄의 세계와 하나님의 세계가 부딪치는 이 현장에서

정말 피 튀기는 이 신앙생활의 현장에서, 두 눈 뜨고 살지 않고 잠들어 있으면,

여러분 그 집안에 벌써 아들들부터

그 다음 다음 장에 그 사건이 터져나갑니다. 무서운 화가 따라옵니다.

 

남들 보고 뭐라고 얘기할 것 없습니다.

하박국 219절에 보면 이런 말씀이 심지어 적혀있습니다.

너희가 나무더러 깨라하며 딱딱한 돌 더러 일어나라 일어나라 하는도다.’

그렇게 돌과 나무들 보고 깨어나라고 하는 너희가 오히려 화 있을진저그랬습니다.

 

정말 하나님의 말씀이... "여러분이여 깨어나십시다." 하고 말하는 저 부터가 깨어나지 않으면

제가 화 있을진저!

 

이 말씀을 들은 우리들이 함께 이 시대를 통찰하면서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그것이 어떤 잠이든지 교만의 잠이든지,

물질이 부해서 안락한 잠이든지,

깨지 않는 너희가 문제라는 거예요.

 

자식들 보고 깨라, 이 집사, 저 집사, 저 장로보고 깨라. 그렇게 말하지 말고

너 자신이 먼저 깨지 않으면 화 있을진저..’ 그 말씀 하시는 것이지요.

 

오늘이 마지막 날인 것처럼, 두 눈을 뜨고 깨어서 대비하라는 것입니다.

그만큼 지금 속히 오고 계십니다.

 

마지막 날의 싸인들이 사방에 넘쳐흐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급박해요.

전에 저희 살던 아파트에서 워싱턴 D,C 아직 결혼하기 전에

제가 어머니 모시고 여동생과 함께 아파트에 살고 있었는데,

 

우와... 그 밤을 생각만 하면 지금도 오금이 떨리는 것 같아요.

다 불 끄고 밤 11시가 넘어서 잠들러 들어갔는데

갑자기 그 밤에 저희 집 아파트의 문이 쾅쾅쾅쾅 뭘로 두드리는지

너무 세게 두드려요.

 

그래서 너무 놀래가지고 이렇게 나가가지고 보니깐

키가 장때 같은 사람이 서 있어요. 그래서 문을 이렇게 열었더니 경찰이 서 있는 거예요.

그런데 그 경찰이 뭐라고 하냐면 문을 제가 열자마자 "Fire! fire! get out!"

 

근데 그때 제가 미국에 온지 얼마 안 되서 영어가 잘 안 되었거든요?

금방 머리에 안 들어오더라구요. "Fire, get out!"

 

제 어머니가 따라 나오시더니 뭐래?’ 그때 영어가 딱 들어옵니다.

"불이예요. 나가래요."

 

그래서 제가 보니깐 뒤쪽에서 불이 나가지고 막 번져나갑니다.

허겁지겁 다 뛰어나갔어요.

뛰어나갔다가 조금 있더니 벌써 연기가 확 저희 집까지 덮치더라고요.

 

저희 어머니가 그 연기를 보시더니 안된다고, 뭐 하나라도 꺼내와야 한다고

그냥 뛰어들어 가시더니 조금 있다가 베개 하나를 들고 나오시더라고요.

 

그 와중이 되면, 사람이 경황이 없어서, 영주권 찾으러 들어가셨다가 베게 들고 나오신 거예요.

근데 지금도 제가 그 문 두드리는 소리, "Fire, get out!"

그날 그 policeman에게 제가 얼마나 감사한 줄 아세요?

 

문을 똑똑똑 하주 젠틀하게 누가 두드려서 문을 딱 열고

police man이 있기를 "Yes sir. What’s up?" "무슨 일입니까?"

"Sir, I want you to know that. A fire is spreading out this apartment building.

I think you have to consider. Do you get out or stay here ok? It's up to you. Spend some time."

만약 그렇게 젠틀하게 말했다면, 저희가 다 죽어서 여기에 없어요.

 

"Get out! fire!" 얼마나 강렬하게 하는지

그 길로 뛰어나와가지고 지금 살아 있잖아요.

 

여러분, 잠에서 깨는 것. 이렇게 깨워야 됩니다.

오늘 제가 바라기는 이 자리 오늘 예배하는 자리가

여러분의 깊고 깊고 길었던 잠을 성령께서 깨워주시는 그 시간 되기를 축복합니다.

 

여러분이 잠에서 깨어나기를 원하시면 깨어나십시오!

내가 잠에서 깨어날 때 얼마든지 두 눈을 뜨고

하나님의 God's time table을 따라가실 수 있다고 믿으시면 아멘 하십시다!

3번 아멘 하십시다! “아멘 아멘 아멘!”

 

이것은 누굴 쳐다볼 일이 아닙니다.

저 자신을, 그리고 여러분 자신을 쳐다볼 일입니다.

잠에서 깨야 되요. 두 눈 떠야 되요.

 

그리고 동시에 성령이 깨우셔야 내가 눈을 뜹니다.

여기 110절의 말씀이 "주의 날에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그러잖아요?

내가 주의 날에 성령에 감동하여 내 뒤에서 나팔소리 같은 것이 나는 것을 들었다는 것을.

 

그리고 성령이 감동시켜주셔서 내 눈으로 뭘 봤어요?

'일곱 금촛대'를 보게 되었다는 것입니다. 1장에 쭉 나오는 구절들입니다.

 

그리고 일곱 금촛대. 일곱개 교회를 상징하는 그 금촛대 사이에

옷이 질질 끌리고 다니시는 인자와 같이 보이시는 즉 예수님과 같이 보이시는 분이

그 촛대 사이로 움직여 다니시는 걸 눈으로 봤다는 거예요.

 

성령이 감동해서 깨워내니까, 안 들리던 게 들리고, 못 보던 것이 보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요 이것이 참 중요한 사실이예요.

"내가 성령에 감동하여 일곱 금 촛대와 또 촛대사이에 인자같으신 이..."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은 41절에 보면 이 이후에 내가 보니”,

성령에 감동한 가운데 내가 보니.”

51절에 보니까 내가 보매.”

61절에 보니까 내가 또 보매.”

71절에 “again I saw, 내가 다시 또 보매.”

계속해서 요한계시록은 보매... 보매... 보더니, 보았더니...”

 

성령이 우리를 깨워내셔서 인생의 눈 깨우시고 심령의 눈 깨우시고

우리를 절망의 잠에서 나태와 쾌락의 잠에서 깨워내시고

영적인 눈을 뜨게 하셔서 보게 하시고 듣게 하신 것이죠.

 

그래서 이 요한계시록 5장부터 보면 일곱 인, Seven seals’ 라고 하는

붙었던 것들이 한 페이지씩 한 챕터씩 열어집니다.

‘Seal, 이 뜯어질 때마다 기이하고 놀라운 일들이 터져 나옵니다.

 

8장에 보면 일곱 나팔이 불기 시작합니다. ‘Seven trumpets.’

그래서 한 트럼펫이 불때마다 상상할 수 없는 그 계시록의 환상들이 펼쳐 나옵니다.

 

그리고 저 16장에 보면 일곱 대접. 큰 대접을 쏟아붓습니다.

천사가 달려와가지고 이 대접 하나씩을 부을 때마다

거기서 어마어마한 끔찍한 재앙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어요.

 

하나님의 time table입니다.

우리의 의견과 우리의 인생의 편안함에 상관하지 않고 진행중이신 하나님의 ‘GTT’.

‘God's time table’이예요.

 

그 후에 성령에 감동된 눈으로 144천의 영광스런 성가대 보죠.

하늘로부터 강림하시는 어린양이 눈 앞에 펼쳐지는

그 재림의 광경이 미리 보이게 하시는 거예요.

성령이 깨워야, 내가 눈을 뜨고 봅니다.

 

주여, 우리 성도들부터 민족의 제사장 교회로!

사람이 쓴 역사로 쳐다보지 아니하고

정치가들이 말하는 우리 민족의 역사를 말하지 아니하고

하나님이 성령이 쓰시고 기획하시고 진행하시는 그 time table 볼수있도록,


성령이여 우리 모두에게 오셔서 이 교회에 목사들을 장로님들 권사님들 집사님,

온 성도들의 눈을 떠 주시옵소서.

성령이여 나의 눈을 활짝 깨워 보게 하여 주옵소서.

주여, 나의 눈을 열어주소서. 성령이여, 내 눈으로 보게 하옵소서.”

 

이 사건이 2012년에 우리가 가장 역사하는 그 역사가 되기를 바랍니다.

여러분이 이 20121년동안 강렬하게 깨어나서 성령이 깨어나서

하나님의 역사를 이루는 성가대가 되기를 축원합니다.

 

성가대든지 주일학교 교사든지 다 성령이 우리를 깨워주시도록 기도해야되요.

그리고 오셔서 깨워주시는거죠.

 

또 한가지는 차원을 높여야 눈이 보입니다. 차원을 높여야 눈에 보이는 것입니다.

19절을 한번 보시면요,

 

나 여호와는 너의 형제요, 예수의 환란과 나라요. 참음에 동참하는자라.

하나님의 말씀과 예수의 증거로 인하여 그 다음에 하는 말이 밧모라고 하는 섬에 있었더니..”

 

에베소에서 비교적 편안하게 오랜 세월동안 에베소 목회를 하고 있던 그가

하나님이 그를 옮기셔서 유배 보내셔서 한 섬에 쳐박아 넣으셨습니다.

 

심지어 교회 전승에 의하면 엄청난 배고픔을 끔찍하게 겪었다는 기록이 있습니다.

환란의 장소였고 배고픔의 고통의 장소였어요. 그런데 그 밧모 섬으로 옮기셨습니다.

 

여러분 깊은 해석이 필요합니다.

에베소에서 보이지 않던 에베소에서 본적이 없고 들은적이 없던 이 계시록의 위대한 환상이

편안한 에베소에서 옮기셔서, 배고프고 고통당하는 고독한 밧모섬에 왔을 때

그 밧모섬에서 보이고 들렸다는 사실입니다.

 

차원을 높이신것입니다. 고생하고 고난에 떨어지게 하신것이 아니라

그의 영적인 차원을 높이신 것입니다. 위치를 이동시키신 것입니다.

 

때때로 하나님은 여러분과 저의 위치를 이동시키세요. 보이게끔.

전에 안 보이던 게 보이게끔.

 

고난, 환란, 고통.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여러분이요 산 밑에 있으면 안 보이잖아요.

산 위로 점점 올라가는 것은, 고난이라는 스텝을 밟으면서

산 위로 올라가고 차원을 높이는 것이, 다 하나님의 나라가 보이는 것이지요.

 

장소도 하나님의 나라, 하나님의 환상, time table이 보이지 않는 곳이 있으면 이동하셔야 되요.

한국에 계셨다가 여기 얼바인으로 오셨기 때문에

계시록에 하나님의 형상이 환상이 보이시면 잘 보신 겁니다. 위치 이동 잘 하신 것입니다.

 

사람도요 늘 그 사람들 속에 있음으로 해서 하나님 나라, 하나님 뜻도 보이지 않고

미래도 안 보이고 재림하시는 주님에 대한 경계심도 준비함도 나타나지 않고

맨날 교회도 뭐라뭐라 그러고, 뭐 말한것 보는것 마다 맨날 그 속에 뭉쳐있으면요

그 사람들 좀 떠나야 되요. 스스로 위치 이동해야 되요.

 

여기 이쪽에 오히려 하나님 나라를 보이게 하고 하나님의 역사를 time table을 보게 하는

그 사람들 속으로 여기서부터 여기로 위치 이동해야 내가 사는 길이예요.

눈을 뜨는 길이예요.

그래야 밧모 섬에 옮겨왔던 사도 요한처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맨날 그 사람들 그 속에 1530년 똑같이 있으면 그 모양 그대로예요.

요한 사도 위치이동한 후에 장엄한 미래, 영광 그리고 환란의 미래.

그러나 재림으로 오시는 어린양의 광경! 그 환란의 현장인 밧모섬에서...

 

놀라운건요 사도 요한보다도 우리는 더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때는 밧모섬에서 굳이 성령이 깨어주셔서 보았지만

지금은 그가 보았던 모든 것이 성경에 기록되어 있기 때문에

하나님의 God's time table은 이미 우리 눈앞에 와 있습니다.

계시록에 와 있습니다.

 

우리가 굳이 밧모섬까지 갈 필요가 없어요.

지금 성령이 깨우시고 우리가 잠에서 깨어나면

우리 눈앞에 지금 활짝 눈앞이 펼쳐져있습니다.

우리가 굉장히 유리한 입장에 있습니다.

그래도 당신도 볼 수 있고, 저도 볼 수 있고, 하나님 나라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해 전에 제 작은 누님이 오셔서 요세미티까지 관광을 시켜드렸습니다.

그래서 요세미티로 모시고 올라가는데 그 몇시간을 올라가다가

이제 차 속에서, 옛날에 그 시골에서 살아온 걸 돌이켜보면서 얘길 하잖아요?

 

근데 저도 막 산길에다가 요세미티 올라가는 길에 제가 얘기를 했어요.

"나도 뭐 속이 아픈게 없는줄 알어 누나?

나도 내가 집안에서 맨날 우스갯소리하고 그냥 그랬지만 나도 상처가 깊어.

나도 섭섭한게 있다고." 막 그러면서 이제 얘기를 한 거예요.

 

그러니깐 옆에서 "지가 뭘 고생했다고..." 그러면서 갔어요.

그래서 제가 막 산 고개를 넘어서면서 그런데

내가 지금 안했던 얘기인데 정말 마음에 쌓인게 있어 막 얘기를 하는데

갑자기 제 옆자리에 앉은 누님이 "!" 하는 소리가 들려요.

 

제가 무슨 얘기를 하는데 반응이 없어요.

그래서 왜그래?” 하고 쳐다보니까 그 산고개 언덕을 넘어서는 때인데

그 앞에 그 장엄한 요세미티 빙하 돔있죠?

그 어마어마한 광경이 쫙 펼쳐지는 겁니다.

 

거기에 "!" 무슨 잡소리, 뭐 섭섭한 소리, 다 소용 없어요.

그까짓것 다 아무것도 아니예요.

그 앞에 펼쳐지는 하나님의 Glory 하고 awesomewonderful God!

하나님의 그 장엄한 자연의 그 세계만 봐도 그런데..

 

제가 평생에 그 기억이 있습니다.

우리 피차에 부부끼리 뭐 이사람 저사람 별 소릴 다 하고 그러잖아요.

아무것도 쓸데없는 소리들입니다.

 

오히려 그 요한이 보았던 밧모섬의 그 광경.

지금 내가 성령으로 눈을 뜨고 볼수만 있다면

That's good enough!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얼마든지 살아갈 수 있는 것이지요.

 

여러분 바라기는 금년이 우리 모두에게 밧모섬처럼 되어서

그 요한 계시록에 하나님의 time table을 보며

오늘이 마지막 날이듯이 살 수 있는 새로운 몸가짐으로

심령의 자세로 돌아서기를 주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아멘.

 

기도하십시다. 하나님 아버지여 도와주옵소서.

성령으로 우리의 눈을 뜨게하여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 이름으로 축복하며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타자 KBH