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전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 P1 계3:14~22 12.01.07
허운석 선교사 / 제8회 LDI 청년 수련회 전체특강
◑딸 수산나의 간증
그래서 제 수산나가 아버지 부재시에,
아버지 대신 아마존 검은강 신학교에 가서 일을 하게 됐는데.
예전에는 선교사의 딸로 그냥 가서 아버님의 일을 도왔지만
혼자 갔을 때는 제가 책임을 많이 가져야 되기 때문에
부모님께 보고 배운 대로 하니까, 저는 정말 죽은 듯이 기도해야 했었고
어떻게 그들이 신학생들이니까, 그냥 제가 선생님으로서 가르치는 과목도 있지만
영적으로 그들과 함께 해야 하고, 가르쳐줘야 되기 때문에, 쉽지 않은 일이었어요.
제가 보고 느낀 것은, 첫 번째로 저희 부모님에 대해서 많이 생각하게 됐어요.
부모님이 어떻게 이 사역을 시작하였고
또 얼마나 많은 기도와 그들의 수고가, 여기 이 자리에 이르게 하였나..
같은 많은 생각을 하면서
저희 부모지만, 선교사로서 몇 명 안 되는 분들이라 생각해요.
이만큼 주님을 사랑하셨기에, 또 저와 제 동생이 주님을 알게 되었고
또 정말 세상과 겸하여 주님을 섬기는 게 아니라
정말 순수한 사랑으로 주님 앞에 엎드리신 저희 부모님을
저는 영적인 선배로서 정말 존경합니다.
그러면서 거기에서 신학생들과 같이 지내면서
제가 정말 무서운 선생님으로서 저희 어머님보다 더 무섭게..
어머님이 싸움닭이셨는데,
저희 신학생들은 신학생들이지만, 또한 문명인이 아니기 때문에
학교의 룰이나 규칙 같은 것들을 인식하지 못하기 때문에
때로는 야단을 치면서 가르쳐야 하는데..
제가 많은 생각을 하는 도중에, 제일 좋은 건 ‘성경을 쓰는 게 아닐까..
성경을 쓰다 보면 주님의 말씀도 알게 되고, 깨달음도 있을 것이다..’
그래서 잠언으로부터 시작해서, 조금 잘못한 애들은 잠언 절반만 쓰고,
더 잘못하면 잠언 다 쓰고..
새벽 기도를 좀 늦게 왔다 그러면 시편 119편을 쓰게 했는데요. (웃음)
어떤 학생들은 정말 밤새 써서, 볼펜이 다 닳도록 써서 가지고 오는 학생들도 있어서
정말 벌을 내렸지만, 고마웠고 저도 배우게 되는 점도 많았던 것 같아요.
제가 야단을 치고 그래도, 같이 웃어주고 저를 받아준 그들에게도 참 감사하다고 생각해요.
그렇게 재밌게.. 정말 선교지에서 정말 힘들죠.
너무나 덥고, 물리고, 몸도 가라앉고, 너무 습도가 심하니까
몸이 젖어있는 것 같이 느껴지고..
하지만 너무나 그들과 형제처럼, 정말 친자매처럼 같이 지내니까
같이 밥 먹고, 같이 웃고, 같이 회개하고..
그러면서 이제 제 아버지의 사역이 아니라, 같이 동참하는 사람으로
그들을 정말 제 형제로 받아들이게 되었어요.
예전에는 너무 그들이 우리 부모님을 못 살게 하는 것 같고.
그러면서 정말 밉고,
저희 어머님도 아프시고, 아버지도 병 들어가는 것을 보면서.
‘저 원수 같은 놈들이 우리 부모님을 말려 죽이는구나..’ 그렇게 생각했는데.
이제는 ‘저들도 내 형제니까, 잘들 고쳐놔야 부모님이 덜 고생하시겠구나.’
그래서 정말 재미있게 그들과 있다가 왔습니다. 감사합니다.
◑허운석 선교사 설교 시작
제가 늘 가슴 속에 깊이 생각하고 사는 게 있어요.
‘장화(부츠)가 아니라, 군화를 신은 신부!’
잔느 귀용이라는 분이 이런 얘기하셨어요.
‘신부복(웨딩드레스)을 입기 위한 조건이 군화를 신는’ 거예요.
영적인 결혼식 예복은, 반드시 군화를 신은 사람이어야만
주님의 신부복을 받을 수 있다는 거예요. 어떤 의미인지 아시겠습니까?
영적인 전쟁을 할 줄 아는 사람만이, 주님의 신부가 된다는 것이죠.
전쟁이라는 것이 얼마나 치열합니까.
내가 죽을 수도 있고.. 그만큼 승리를 위한 대가가 엄청난 것이죠.
▲요한계시록의 말씀을 읽도록 하겠습니다.
요한계시록 3장 14절부터 22절까지의 말씀입니다.
14. 라오디게아 교회의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충성되고 참된 증인이시오
하나님의 창조의 근본이신 이가 가라사대
15. 내가 네 행위를 아노니 네가 차지도 아니하고 더웁지도 아니하도다.
네가 차든지 더웁든지 하기를 원하노라.
16.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더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내치리라.
17.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도다.
18. 내가 너를 권하노니 내게서 불로 연단한 금을 사서 부요하게 하고
흰 옷을 사서 입어 벌거벗은 수치를 보이지 않게 하고, 안약을 사서 눈에 발라 보게 하라
19. 무릇 내가 사랑하는 자를 책망하여 징계하노니, 그러므로 네가 열심을 내라 회개하라.
20. 볼찌어다 내가 문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로 더불어 먹고 그는 나로 더불어 먹으리라.
21.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내 보좌에 함께 앉게 하여주기를
내가 이기고 아버지 보좌에 함께 앉은 것과 같이 하리라.
22.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찌어다. 아멘.
우리가 창세기를 읽으면서
하나님이 창조하신 일주일 동안의 사건들이
우리에게 구원을 하나님이 이루시는 순서입니다.
그 일주일 간 있었던 사건들이, 나에게도 똑같이 그 순서대로 재창조된다고
하는 것을 잊지 않으셨으면 좋겠습니다.
아까 사회자 교수님이 저를 소개하시면서
제가 폐암 수술하고, 2006년도에.
그리고 다시 작년(2011) 3월에 제가 재발해서
6개월에서 1년 산다고 그러면서, 다시 항암치료를 하면서, 말기 암 통증이 제게 있었죠.
요즘 제가 생각을 더듬으면서 이런 생각을 해봅니다.
‘작년 이맘때에 얼마나 절망적인 통증을 느꼈었던가..’ 그 시간을 제가 뒤돌아봐요.
말기 암 통증은 4월초 즈음에 없어졌어요.
하나님이 어느 분을 통해서, 그 분이 저를 위해 기계도 사시고 하시면서
저를 도와주셔서, 제가 말기 암 통증으로부터 해방을 받게 됐습니다.
*양시영 내과의 광양자 치료로 잠시 통증이 없어짐.
제가 1년 동안 통증이 있었습니다. 말기 암 통증이라는 것은
24시간 중 잠드는 시간 약간을 제외하고서는, 면도칼로 살을 자른다고 생각하면.. 얼마나 아프겠어요.
그 고통을, 잠자는 시간 빼고서는 쉼 없이 계속 받았습니다.
‘그 시간 속에서 하나님이 무엇을 나에게 말씀하고 계셨던가..’
주님은 제게 아무 얘기도 안하셨어요.
그러나 주님은 제게 이렇게 얘기하시는 것 같았어요.
‘네가 이 시간 속에서, 네 고통이 말해주는 사건 속에서, 내 마음을 읽어줬으면 좋겠다.
네가 내 마음을 알았으면 좋겠다. 내 터지는 마음을,
내가 너를 사랑하는 이 마음을 네가 알아냈으면 좋겠다. 성령을 통해서 알아냈으면 좋겠다.’
제가 욥기를 읽으면서, ‘하나님 내가 처리되어져야 할 부분이 무엇입니까?
당신이 내게 원하는 것은 무엇입니까?’
오늘 설교 제목이 뭐죠? <순결한 사랑이 되게 하소서>죠.
우리 예수님의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순결/순전함입니다. 그렇죠?
그 무엇도 아닙니다. 순결한 마음입니다.
진정한 부흥이라는 것은 무엇일까요?
진정한 부흥을 외면적으로 이룩해놓은 것이 현대 교회입니다.
이것이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우리가 이 세대에 살고 있고, 우리가 불감감적인 그러한 심령으로
주님 앞에 서 있는 이 시대가 바로 라오디게아 교회입니다.
순결함을 잊어버린 교회입니다.
순수한 사랑을 잊어버리고 주님을 배반한 거죠.
그런데 이 분들은 ‘우리는 아무 것도 부족함이 없다.’
인간적인 권력과 생각에서 나온 모든 것으로서 만반의 준비를 교회에서 갖추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틀 안에서 안식하는 거죠.
‘우리는 다 충성했다. 우리는 다 됐다. 이만큼 컸다. 부족한 것이 없다. 모든 것을 가졌다.’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시죠. ‘아니다. 내가 너를 토해버리고 싶다.’
사람이 토한 것을 다시 먹을 수 있습니까?
토한 것을 다시 주워 먹을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나를 토해내시면
나는 다시금 주님의 입으로 들어갈 수 없다는 것입니다.
▲저는 한 가지 하나님께서 제게 주신 것이 무엇이냐면 “떠는 은사”예요.
몸으로 떠는 은사.
성경을 보고 너무나 무섭고 너무나 떨려서, 그냥 후들후들하는 은사가 있어요.
너무나 두렵고 너무나 힘들고
‘하나님, 어떻게 해야 합니까?’
아마 수 만 번을 기절하고, 수 만 번을 죽었다 살아나는
그러한 산고를 겪어냈던 생이었던 것 같습니다.
제가 아마존에서, 저는 육신적으로는 하나님 앞에 참 충성한 사람인 것 같아요.
제가 작년에 벌써 아마존을 두 번이나 갔다 왔으니까요.
말기 암 환자가, 아마존을, 몸 성한 사람도 몇년 만에 한 번 가도 힘들어 죽겠는데,
암 환자가 두 번이나 갔습니다. 그것은 무슨 힘일까요? 사랑입니다.
사랑의 힘이 그렇게 두려움을 모르는 겁니다. 오로지 사랑만이 보일 뿐입니다.
사랑하는 예수님이 내 형제들 속에 계시기에
그 예수님 때문에, 견딜 수가 없어서 그냥 아마존으로 가는 겁니다.
제가 마치 백치 같은 사람이에요.
내일 일은 아무 것도 알려고 하지 않거니와, 또한 잘 몰라요.
머리가 그렇게 하얗게 됐어요.
그러니 저는 오로지 사랑에 의해서 움직여지고 싶은 사람이고
‘그렇게 움직이게 도와주십시오!’ 하고 뒤늦게 간구할 뿐입니다.
이번에는 제가 아마존에서 돌아오다가, 목숨이 끊어지는 것이 아닌가 하는
그런 절박한 마음도 들었습니다. 몸이 말을 듣지 않아서요.
제가 아마존 신학교에 가서 새벽 기도를 인도하는데, 제가 한 시간 반 동안 설교를 해요.
아마존을 떠나 있는 그 동안, 밀린 말들이 얼마나 많겠어요.
그것도 수업을 여덟 시에 시작해야 하니까, 일곱 시에는 설교를 끝내야만 해요.
아침식사를 7:15분 정도에 시작하는데, 제가 밥 먹는 시간을 뺏을 수는 없으니까.
그래서 새벽 5시에 시작해요. 그리고 찬양하고.
찬양을 하되 아주 온 마음을 다해서 드립니다.
제가 좀 모진 게 많아요. 찬양을 어설프게 한다 그러면
‘다시 하세요! 이게 뭐하는 것이에요! 다시 하세요!’
제가 그러면 우리 형제들 깜짝 놀라서 다시 힘을 내죠.
그러니까 저는 그냥 언니예요, 또는 엄마니까. 사랑하니까 그렇게 할 수 있어요.
그런 게 폭정이죠. 폭군이고(웃음).
제가 강의는 모세오경을 그렇게 좋아해요.
모세오경을 강의하는 마음이 너무 행복한 거예요.
창세기서부터 신명기까지. 한 장 한 장 다 읽어요.
읽고 의미를 설명하고. 그리고 레위기서,
그 다음 성막에 대해서, 성막이 예수님의 그림자라고 하는 것,
그런 설명을 하는 것이, 제가 너무나 기뻐요.
예수 그리스도에 대해서, 제가 그러한 영적인 내면의 삶을
성막을 통해서 설명하고
아담의 생명과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요셉과 다말과 레아와
그러한 예수님의 조상이었던 분들의 모습들 속에,
십자가의 그림자들이 다 들어 있잖아요.
그러한 모습들을 제가 설명할 때, 우리 신학생들이 기가 막히게 알아듣는 거예요.
그런데 저는 한국에 와서, 알아듣는 사람을 많이 못 봤어요.
우리 아마존 형제자매들은 그렇게 잘 알아듣는데,
한국에서 얘기하면 ‘몰라 몰라, 난 안 들려!’ 그렇게 얘기하세요.
그러니 하나님이 ‘약한 자를 들어서 강한 자를 부끄럽게 하시고
무지한 자를 들어서 지혜로운 자를 부끄럽게 하시는’ 하나님의 지혜는 탄복할 만한 것입니다.
▲그리고 이제 목사님이, 저희 남편이, 제가 아마존에 오랜만에 왔으니까
제게 주일 낮 예배 설교도 시키세요.
그런데 브라질은 저녁 예배가 본 예배에요.
주일 낮 예배는 성경공부 시간이에요. 그래서 성경공부를 하죠.
제가 우리 형제들을 어떻게 들볶아서 주님을 따라가게 할 것인가..
제가 브라질 말 중에서 잘 사용하는 ‘소까’라는 말이 있어요.
‘절구에 찧는다’ 이런 말이에요.
그래서 제가 ‘가루가 되어야 된다, 우리는 소제로 드려져야 된다.
그러니 우리는 가루가 되어야 한다!
어떻게 가루가 되느냐, 야단을 많이 맞아야 한다!’
야단을 많이 맞고 책망을 많이 받고 권고를 많이 받는 것이, 바로 절구에다 찧는 겁니다. 할렐루야!
그러니 이제 우리가 정말 주님의 사람이 되어가는 과정을
그런 십자가의 내면의 여정에 대해서 상징을 통해서 설명하고
주일 날 또 얘기하고. 책망하고. 벌주고. 그런 일이 있어요.
여기 한국에서는 벌 못 주잖아요. 그런데 거기서는 돼요.
형제들이 간음을 하잖아요. 그러면 앞에 나와서 얘기해요.
‘저는 간음을 했기 때문에 성찬에 참석하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6개월 징계를 받고 나면 앞에 나와서
‘저는 이제 6개월이 지났습니다. 징계를 받는 동안 이렇게 심경의 변화가 있었습니다.’ 간증합니다.
그러니 우리는 참 성경대로 사는 거예요. 세상에! 구경 오십시오.
어디가 성지겠어요? 주님 계신 곳이 성지 아니겠어요!
안 열리던 망고도 많이 열리고요.
▲너무 놀라운 사건이 하나 있었어요.
우리 형제 하나가, 예전에 길거리에서 살던 인디오 애가 있는데.
완전히 깡패. 그런데 깡패도 아니고 조무래기 있잖아요.
훔치고, 그런 짓만 하는 아이였어요.
머리도 닭벼슬처럼 해서 빨갛고 파랗고.
제가 그 형제를 보면, 사람의 영혼이 없어진 것 같은 거예요.
그 형제를 보면 제가 늘 무서운 거예요.
그리고 ‘주님, 그 형제를 살려달라고.’
그리고 그 아이에게는 말 한 마디도 할 수가 없어요.
너무나 상처로 찌들어 있기 때문에,
어떤 좋은 말도 그 아이에게는 슬픔이고 수치고 모욕이기 때문에.. 그 어떤 말도 함부로 못하는 거예요.
어떻게 할 수 없으니 제가 지옥이 돼서,
걔 마음의 지옥이 내 마음에 와서
그런 지옥을 제가 살아주는 거죠, 대신해서.
제가 그 아이만 살살 피해 다녔어요. 너무 괴로워서요.
그런데 어느 날은. 새벽 네 시 반 정도 되면 아이들이 나와서 새벽 기도를 시작해요.
수업을 밤 열 시까지 하는데, 열한 시에 잠자요. 그럼 몇 시간 자겠어요.
그런데 그렇게 일찍 나와서 기도를 해요.
하나님이 역사하시니까 사람들이 피곤을 모르는 거예요.
그렇게 나와서 새벽기도를 할 때
캄캄한데, 제가 누가 기도를 안 하는가 다닐 때가 있어요.
어느 날은 제가 그들이 기도를 하는 걸, 다니며 보고 있었어요.
그런데 누군지는 모르고. 누군가 제 손을 콱 잡으면서.
"도나 후치." (룻 부인)
제 호칭이 거기서 ‘도나 후치’에요.
그 청년이 "(자기 목 뒤를 두드리며) 여기, 여기를 때려주세요.
나 좀 때려주세요. 저 회개하고 싶습니다. 그런데 회개가 안 열립니다.”
너무나 제가 충격을 받은 겁니다,
나는 그 아이가 무서워서 요리조리 피해 다녔는데.
그 아이는 저를 기다렸던 거예요.
그래서 제가 ‘그래, 기도하자.’
제가 다른 사람의 몸을 만진다거나 하면, 그 사람 속에 있는 것을 덧입을 때가 많아요.
사람에 따라서 제 목소리가 가 버리기도 하고,
아주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을 만나면
목소리가 굉장히 명랑해져요. 맑은 물소리처럼 되는데,
무거운 사람 만나면 얘기하다가도 목이 쉬어버려요. (그런 은사가 있습니다.)
제가 이 은사를 깨닫게 된 것은, 오래 예수님을 믿는 시간 속에서
그렇게 됐구나 하는 것을
제가 30 몇 년이 지난 후에, 제가 느끼게 된 거예요.
‘이것이 이렇게도 되는구나’ 하는 것을 알았으니
여러분들은, 제 개인적 경험을 듣고서, 시험 들지는 마세요.
그래서 그렇게 했더니, 그 형제가 너무 너무 많이 울었어요.
그런데 제 손바닥에 칼이 달렸다 그래요, 우리 애들이. *은사?
제가 두 번만 쳤다 그러면
그냥 등이 쪼개지는 것처럼 아파서 대성통곡하고 우는 거예요.
아프다가 울다가, 제게 도움을 요청한 거예요.
그런데 이 아이는 보통 독한 애가 아니잖아요. 사람도 죽이고 막가파였잖아요.
그 독이 튀어나오려면 어떻게 해야겠어요. 그 속에 악이 너무 대단하잖아요.
그래서 기도하면서 제가 등을 쳤어요.
그랬는데 은사로 자기가 너무 아프니까 몸이 막 뒤틀리는 거죠.
그래서 제가 여러 번을 터치하며 기도해 주었어요.
그랬을 때 그 아이가 그렇게 회개가 터지면서 서러워하면서
‘하나님, 저를 살려주세요. 내 영혼을 붙잡아주십시오.’ 그러면서
그 아이가 주님의 존전 앞으로 다시 나와서, 갓 태어나는 모습을 보면서,
‘아, 이것이구나!’
▲여러분 생각해보셨나요. 저는 자주 생각해요.
‘주님의 존전 앞에 내 영혼이 있는가?’
참 무서운 말이에요. ‘주님의 존전 앞에 내 영혼이 있는가.’
이것(주님 앞에 있음)은 참 비밀스러운 얘기에요. 아주 비밀이에요.
있다가도 없고, 나타났다가 사라지기도 하고...
저는 그런 체험을 많이 했어요. 이건 굉장히 신비스러운 얘기에요.
그런데 요한계시록에 나오듯이, 내가 주님을 떠날 때 어떻게 되겠어요?
주님의 존전 앞에서 사라지는 것이죠.
그것은 내 의지가 주인이 된다는 거잖아요.
내 의지를 주님 앞에 굴복시켜서 살아가는 것이 우리잖아요.
그런데 내 의지가 독립할 때는 애굽으로 내려가는 거죠.
그러니 아브라함이 묻지 않고애굽에 내려갔어요.
묻지 않고 많이 사람들 간에 분쟁도 하잖아요.
그럴 때마다 독립적인 의지를 사용하면
주님의 존전에서 떠나간다는 얘기죠.
자신이 분명히 하나님의 뜻, 하나님의 의지에
우리는 모든 것을 승복시키는 사람이잖아요.
내가 손해가 된다 할지라도, 내가 목숨을 잃을 지라도,
내 의지를 승복시키는 것. 내 자신을 부인한다는 것.
주께서 내게 짊어주신 십자가를 지는 거잖아요.
이것이 제자의 삶이잖아요. 제자의 삶의 조건이잖아요.
그렇지 않다고 하면, 우리는 제자가 될 수 없다는 거죠.
주님의 존전 앞에도 없는 거예요.
여러분의 마음이 허망해질 때 많죠.
허망해져서 여러분의 마음이 나빠질 때도 있잖아요.
(이 얘기는 그만할래요. 너무 멀리 가는 것 같아서...)
▲그래서 이제, 우리 현대 교회들이
제가 아마존에서 한국 교회를 나와 보면, 너무 이상한 거예요. 너무 이상해요.
아마존은 녹색의 지옥이에요. green hell입니다.
하나님이 지구의 허파를 보전하시기 위해서, 정말 무시무시한 천사들을 두셔서 지키게 하셨어요.
사람들이 근접하지 못하도록요.
지구의 산소를 공급하도록 하시기 위해서,
하나님이 태초에 아마존을 지으셨어요.
그러니 그 영역을 침범하는 자들이, 치러야 할 대가는 여간 큰 게 아니에요.
그런데 그 곳이 저에게는 낙원이잖아요. 지금은 나 자신을 다 내줬어요.
벌레들한테도 나를 내주고, 더위한테도 내 자신을 내주고.. (내가 죽어도 상관없다는 뜻)
그 생활에 제가 적응하는데 7년 정도 걸린 것 같아요.
처음에는 미치고 환장할 지경이었어요.
이곳이 지옥인지 아닌지, 죽었는지 살았는지
내 자신을 어떻게 할 수가 없더라고요.
그 세월을 받아들이는데, 7년 정도 걸렸어요.
벌레에 너무 많이 물릴 때는 상상을 초월하는 독이 몸에 들어오잖아요.
‘그것을 기쁨으로 사랑하게 해주십시오’ 까지 가는데, 흘렸던 눈물이 7년인 거예요.
왜냐면 복음을 위해서. 복음이 복음 되게 하기 위해서.
우리들은 그 곳에서 견뎌야 하잖아요.
견뎌내지 못하면, 복음을 전할 기회가 없어지는 거잖아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전하기 위해서, 철저히 대가를 그 땅에 지불하는 거죠.
그런데 이제 우리가 김철기 선교사님이랑 저랑, 한 게 한 가지가 있어요.
그건 미치도록 기도했다는 거예요. 미치도록 죽도록 기도했다는 거예요.
목숨을 불사하고 기도를 17년 정도 했다는 거예요. 미칠 환경이었으니까요.
그 싸움이 너무나 길고 혹독했죠. 그 땅이 회복해서 망고가 다시 열릴 때까지.
이것은 제 목숨이 끊어질 뻔 했었고.
제 자녀들이 그 많은 고통을 받아야 했고.
무지무지한 일들을 겪었는데,
우리를 그곳에서 쳐내기(쫓아내기) 위해서, 얼마나 사탄이 분노했겠어요.
저 인간들이 여기 있다가는, 많은 영혼들이 하나님께 돌아오게 되니까,
갖가지 방법으로 저희를 쳐내려 한 거죠.
▲그래서 선교사들에게, 사탄이 응답을 잘해주잖아요 우리에게.
너무 척척해줘요.
일 초도 안 걸려서 사탄은 우리에게 응답을 준답니다.
선교사가 선교지를 떠나고 싶을 때에, 얼마나 사탄이 기쁘겠어요.
그때는 즉시 응답을 해주는 것입니다.
어떤 응답이냐면 “합리화”를 할 수 있는 조건을 주는 거예요.
‘사람들 앞에서 나는 그곳을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하는 것.
그래서 사람들 앞에서 나는 꿇릴 게 없어.. 하는데, 자기 합리화입니다.
이것이 바로 사탄이 준 응답입니다.
너무나 무서운 거예요. 생각해보세요.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었어요.
그가 심령의 매임(올라가라는 부담)을 받고 가는 중에,
빌립의 딸들도 예언하는 자들이었고, 특별히 아가보가 예언했죠.
‘당신은 올라가지 마소서. 가면 이렇게 결박 됩니다.’
그런데 바울은 올라갔어요.
예언을 받았는데, 그 예언을 무시하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셨어요.
그럼 바울은 하나님을 거역하신 건가? 어떻게 생각하세요?
우리는 그런 성경 구절에 대해서 깊게 주님께 여쭤봐야 해요. ‘주여 가르쳐 주시옵소서!’
(그런데 그 가르침을 받는 시간이
십 년이 걸릴지 이십 년이 걸릴지 우리는 몰라요.)
▲제가 암에 걸려서 폐를 자르고, 인간이 받을 수 있는 극치의 고통을 받게 하셨어요.
그것이 저에게 은총이었어요.
제가 멀쩡하게 있는 것이 뭐냐면
제가 모든 것에, 언제나 무엇에나, 주님을 항상 느끼고 싶었기 때문에
어떠한 일에나 무엇에나 어떠한 것에서나
모든 것을 주께서 주셨다고 하는..
그래서 아주 기쁜 마음으로 다 받아드렸어요.
그것이 승리의 길이었어요. 저에게는.
(그 고통을 제가) 사랑했어요.
왜냐하면, 아주 고귀한 선물로 받아들였어요.
하나님이 나에게 암을 주셨을 때, 저한테도 많은 문제가 있었어요.
무지함과 게으름도 있었고요.
제가 암을 겪으면서 너무 쓸데없는 걸 많이 하나님의 성전에다 집어넣었어요.
이 혀의 즐거움을 따라서, 너무 나쁜 짓을 많이 했어요.
제가 아프고 나서 죽게 되니까, 음식을 통해서
하나님을 너무나 많이 거역한 것에 대해, 생각하게 됐어요.
여러분이 무심코 배를 채우기 위해 먹고 있는 음식들이
여러분을 죽이고 있다는 것.
사탄이 교묘하게 돈을 벌기 위해
여러분을 이용하고 있다는 것.
그런 것도 여러분이 한 번 깊게 생각해야 해요.
▲그러면서 제가 깊은 고독과 고통을 겪는 중에
욥과 같은 고통은 아니지만.. 욥에게 일어났던 사건들을 보면서,
‘욥이 받은 고난과 고통을 나도 받게 해주셔서
참으로 나는 특별한 존재구나. 하나님 앞에서 나는 특별한 사람이구나.’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 그 사랑은, 언제나 <잔인한 사랑>이에요.
나에게는 항상 <잔인한 자비>에요. 이상하죠?
하나님의 사랑은 어둠 속에 계시고, 너울 속에 계세요.
왜냐면 우리가 어둠 속에 있기 때문입니다.
주님은 숨겨져 계시기 때문에,
우리가 그 하나님을 만날 수 있는 길은 쉽지 않아요.
그래서 제가 암의 고통을 통과하면서
제가 예수 그리스도의 식탁에 앉게 됐어요. 할렐루야.
그 분의 상 앞에 앉아서
그 분이 베풀어주시는 음식을, 제가 먹는 것을 느끼게 됐어요.
주님은 너무나 사랑하셔서, 저를 그렇게 앉혀놓고 싶었던 거예요.
그런데 저는 대체적으로 일을 많이 했던.. 은사가 많은 사람이에요.
제 소원이 뭐냐면,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제 앞에 정말 있다면
저는 그를 몹시 책망할 거예요.
그 용기를, 아직까지도 제가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이 적기 때문에
아직 안 가지고 있다는 거예요. 그것이 제 숙제에요.
내가 사람을 기쁘게 하랴, 하나님을 기쁘게 하랴.
내 명성이 중요한가, 내 불명예가 중요한가.
이 싸움에서 제 자신을 항상 돌아보고 있어요.
‘지금 무엇을 내가 두려워하는가?’
사람을 두려워한다면 하나님을 부인하는 거잖아요. 여러분은 어떻게 생각하세요?
여러분들이 그냥 들어두세요.
여러분이 이 다음에 육십 살, 칠십 살이 되면
‘선교사님이 그때는 좀 이상한 얘기를 하는 것 같았는데.. 이런 얘기였구나’
하고 생각하실 수 있을 것 같아요.
제가 주님의 잔인한 사랑을 받으면서
의심 없이 그 분이 베풀어주시는, 그 모든 고통과 아픔을 기꺼이 껴안으면서.
하나님이 제게 베풀어주신 것이 무엇이냐면
하나님의 식탁에 앉아서 왕의 식탁에 앉아서
그 분의 살과 피를 먹고 마신다는 거예요.
그 대가로 제게 그것을 베풀어주셨답니다. 할렐루야!
▲그래서 말씀드렸지만 창세기에 ‘태초에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이 말씀을 시작해서, 제7일에 안식하시잖아요.
이 과정이 내 심령 속에서 재창조가 될 겁니다.
그러니 여러분이 창세기 7일 동안의 창조 과정을 잘 보세요.
‘이것이 내 심령 속에 일어나고 있고
이 과정 중에 재창조가 되는 과정 속에 있다는 것을
여러분이 성령님께 의탁하면서 가르침을 받을 때에
여러분들은 너무나 놀라울 겁니다. 할렐루야.
우리는 회개했다고 생각해요.
제가 한 가지만 얘기해드릴게요.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지으셨어요.
그런데 이 땅이 어디에 있었죠? 물속에 있었잖아요.
하나님이 땅과 하늘을 지으셨어요. 그런데 땅이 물로 덮여있었어요.
그런데 하나님의 신은 그 수면 위에 운행하셨어요. 성령님께서.
이런 모든 하나하나 과정이 지금 내 생에
그렇게 재창조되어져 가고 있는 그런 것을 느끼셔야 해요.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더라.’
잔느 귀용은 그런 얘기를 했어요. 제가 그 분의 책을 정말 좋아해요.
그 분처럼 하나님을 순결하게 사랑하는 이가 없기 때문에
제가 그 분을 사랑한답니다.
그 분이 만났던 예수님을 저도 만나고 싶은 욕심이 굉장히 많습니다.
그 분은 ‘창세기의 그 물을, 회개하는 자의 눈물’이라고 했어요. 회개하는 자의 눈물!
그래서 우리가 진정으로 회개할 때 주님이 오세요.
그 때 누가 오세요? 가라사대 ‘빛이 있으라’ 하셨죠.
빛 되신 주님이 오시잖아요.
이게 흑암의 수면 위로 성령이 운행하신 후에, 빛이 나타난 과정의 해석입니다.
여러분이 깊이 생각하셔야 합니다.
▲그리고 여러분들이 팔복도, 여러분의 신앙의 과정이잖아요.
제가 주님에게 한 가지 권면 받은 게 있어요. 그것이 뭐냐면
‘네가 이제 받을 건은 핍박밖에 없다.
핍박이, 네가 나를 사랑했고, 네가 내 자식이라고 하는 증거다.’
이런 얘기를 하셨어요.
그러면 왜 핍박을 받게 돼요? 왜 핍박 받는다고 생각하세요?
‘왜 허 선교사가 존경을 못 받을망정 핍박을 받아야 하는가?’
왜 그렇다고 생각하시죠?
이삭이 여러분들한테는 사랑스럽지만, 에서에게는 이삭이 어떻게 되죠? 어떤 상대가 됩니까?
에서는 교회 바깥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안 믿는 사람들이 에서입니까?
에서는 어디에 있죠? 네, 교회 안에 있습니다.
갈라디아서에서, 에서는 누구를 상징하고 있어요? <종의 자식>.
그 다음 이삭은 누굽니까. <약속의 자식>이죠.
그러면 종의 자식은 무엇입니까?
어제 어떤 권사님과 제가 통화를 했어요.
좀 위험한 이야기인데요, 잘 들어 보세요.
‘자유’라는 것, 그리고 ‘아들의 영’이라는 것을 좀 소개하고 싶어서.
제가 남의 이야기를 할 수 밖에 없습니다.
이 분이 우리 사역을 굉장히 사랑하셨어요.
그래서 이 분이 우리 사역에 헌금도 하시고 그랬어요.
이 분이 병원선에 관한 선교보고를 들으시고, 선언을 하셨어요.
‘내가 우리 아파트가 팔리면 500만원을 아마존에 헌금하겠습니다.’
그런데 이 아파트가 4년이 지나도 안 팔리는 거예요. 일산에 있는 아파트가.
어제 그 분이 나한테 이런 얘기를 하시는 거예요.
‘선교사님. 내가 감정으로 선언을 했는가요?
내가 이걸 팔면 선교지에 헌금을 빨리 보내고 싶은데
왜 하나님이 이 아파트를 안 팔리게 하시는 걸까요. 내가 잘못 선언한 걸까요?’
그래서 제가 이렇게 얘기했어요. 잘 들으셔야 합니다.
‘권사님, 헌금 안 하셔도 됩니다. ‘권사님이 하나님의 자녀인데
하나님께 기도하셔서 주님, 저 지금 못하겠습니다. 그런 자유함을 가지십시오.’
그랬더니 ‘아닙니다. 저는 꼭 해야 합니다. 서원한 것을 꼭 갚겠습니다.’
이렇게 얘기하시는 거예요.
그래서 제가 묵상하면서 주님께 말씀드려봤어요.
‘주님, 정말 그런 하나님이십니까?’ 여쭤봤어요.
‘정말 당신 자녀가 500만원 헌금하지 못해서, 안달하고 고통에 빠져 있습니다.’
주님이 얘기하십니다. ‘괜찮다.’
하나님 아버지는 ‘종의 아버지’입니까, ‘아들의 아버지’입니까.
그런데 왜 이 권사님은 그토록 아버지를 무서워하시죠. 왜 그토록 무서워하시는 거죠?
아직 아들의 영이 그 안에서 크지 않으신 겁니다. 아직 성장을 못하신 거예요.
그래서 아담의 원죄, 그 두려움에서, 그가 아직까지 해방을 못한 거죠.
▲그러면, 우리가 주님을 더 기쁘게 해드리는 건 뭐냐면
내가 악을 행해서, 아버지를 더 괴롭게 한다는 거예요.
500만원 드리는 것보다.
우리는 하도 구박을 받고 자라서, 그냥 아버지가 무섭잖아요.
뭐만 하면 맞아죽을 것 같은, 그런 떨림이 있잖아요.
우리가 자유로워졌음에도 불구하고 그런 숨어있는 습관이
우리를 두렵게 할 때가 많아요.
그런 선교사 되기로 서원하고서, 안 해도 된다.. 그런 뜻은 아니고요.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다.. 라는 것이죠.
‘아들과 아버지의 관계’에서 하나님을 이해해야지, ‘종과 주인의 관계’가 아닙니다.
그런 아들의 인격적 관계에서, 우리가 하나님을 더 사랑하게 되겠죠.
얼마나 주님이 사랑스럽겠어요. 늘 나를 받아주시고 용서해주시는 하나님.
그러면, 암 환자인 허운석 선교사의 얼굴처럼 조금 괜찮게 된다, 이런 겁니다.
여러분, 지금 제 모습이 병에 찌들려 있는, 환자의 모습 같습니까? 아니죠?
그렇지만 사실 저는 지금 장이 굉장히 많이 아파요. *폐에서 장으로 전이
그리고 폐도 아파요.
그런데 상관 안 해요. 그러나 저도 두려움이 없겠어요?
하루에 여러 번 지옥 갔다가 천국 갔다가 그래요.
‘허운석 선교사는 믿음이 좋으니까 늘 천국에 있겠지.’ 천만의 말씀입니다.
허 선교사는 더 유치한 사람이에요. 그래서 주님이 믿음을 더 주신 거예요.
쟤는 저 정도 안 주면 도저히 인간이 안 될 것 같아서 은혜를 주신 거예요.
이렇게 좋으신 하나님이세요. 그러니 저도 하루에 몇 번씩 고민해요.
슬퍼하고 깜짝 놀라고.
내가 주님 앞에 가는 것은 염려가 없어요.
‘할렐루야, 주님 왔수다!’ 이렇게 할 거예요, 제가.
‘주님, 가만히 안 둘 거야 하나님 나라로 가면.’
제가 어느 때는 이렇게 하나님 앞에서, 자녀로서 투정을 부릴 때도 있습니다.
▲제가 아주 율법적인 사람이었어요. 무시무시한 사람이에요, 제가.
저는 아마 주님 사랑하는데 누구한테 지라 그러면 아마 제가 죽을 거예요.
그렇게 주님 사랑하는데 열심히 하는 사람인데요.
그렇게 주님에 대해서 많이 알지는 못했던 것 같아요.
그런데 믿음의 승리라는 것이 뭐냐면
내 하나님을 있는 그대로, 사랑의 하나님으로 믿어가는 거예요. 할렐루야!
여러분들 그렇게 믿음으로 주님을 사랑이시라고 받아들일 때에
그 분의 환한 얼굴이 살짝 보이는 거예요.
요단강이 갈라지듯이, 그 분의 아름답고 선하시고
우리를 너무 너무 사랑하셔서..
‘내게 500만원 헌금 안 해도 돼, 아가야!’ 이러시는 하나님이에요.
‘그 놈의 500만원을 가지고 네가 그렇게 진상을 하는데 아주 지겹다, 인간아.’
안 그러시겠어요?
내 마음도 그런데, 하나님의 마음은 오죽하시겠어요.
‘야야, 괜찮다.’
그러면 그 사랑을 받은 사람이, 그런다고 5백만원 떼 먹겠어요?
‘주님, 조금만 기다리세요. 제가 돈이 생기면 얼른 드릴게요.’
이렇게 자녀와 부모의 관계, 인격적인 관계라는 겁니다.
그러니 우리는 우리의 지성으로, 우리의 관습으로 하나님을 제한하고
어둠 속에 스스로 갇히는 거죠. 이게 ‘종의 영’이에요.
▲그래서 다시 본론으로 돌아가서, 계3:14절 읽어볼게요.
‘라오디게아 교회 사자에게 편지하기를 아멘이시요.’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아멘이십니까?
그런 모든 사건 속에 여러분 아멘하실 수 있겠습니까?
어떠한 곳에서도 아멘하시겠습니까?
그 분은 아멘을 받으시기에 합당하신 분입니다. 할렐루야.
내가 원하든, 싫어하든, 좋은 것이든,
내 마음에 들든지, 안 들든지, 모든 것에 우리는 아멘이어야 합니다.
허 선교사가 암을 허락받았는데요.
내가 게을렀던지, 나빴던지, 생활습관이라던가 무지함 때문에 몸을 엉망으로 만들었지만
주님께서 제게 암을 허락하신 거죠.
이것은 성경에 있는 얘기죠.
허락함이 없이는, 우리가 받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능히 합력하여 나에게 유익을 주실 수 있기에 허락하신 겁니다.
이 믿음을 여러분이 가지셨습니까?
주님이 나에게 이것을 주실 때에는
주님이 이것을 통해서 큰일을 행하실 것을 여러분이 믿으십니까?
여러분들이 기적을 체험한다는 것이 뭡니까? 바로 그것이에요.
*어떤 상황이든지 주님이 내게 허락하신 것으로, 달게 받는 것입니다.
만약 이렇게 ‘아멘의 믿음’이 있다면,
여러분들은 모든 것에서, 어떠한 것에서도 주님을 느낄 수 있어요. 할렐루야!
욕스럽고, 불명예스럽고, 정말 싫고, 모욕적이고, 너무나 낙심되고.
이 가운데서도 나는 충분히 주님을 느낄 수가 있어요.
그 어느 것도 나를 더 이상 낙심시킬 수가 없습니다. 아멘?
여러분 기억하셔야 해요. 이것이 우리의 믿음입니다. 아멘!
▲제가 암을 앓고 나서 참 좋아하는 찬양이 있는데.
한국에도 있는데, 잘 안 부르더라고요.
♬누가 끊으리오♪ 그렇죠?
거기에서 여러분들이 주의할 게 하나 있어요. 거기에 비밀이 하나 있는데,
바울 사도가 기록해놓으신 성경 구절을 인용하신 게 있어요.
로마서 8장을 봅시다. 로마서 8장 36절.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여기에서 이런 얘기하시잖아요.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으리요 환난이나 곤고나 핍박이나
기근이나 적신이나 위험이나 칼이랴(로마서 8장 35절).
기록된바 우리가 종일 주를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며
도살할 양 같이 여김을 받았나이다.’
왜 갑작스럽게 이 얘기를 하셨는가.. 우리는 생각해야 합니다.
그러니까 내가 어떠한 사건에서 어떠한 일에서
내가 주님을 위하여 죽임을 당케 되는 일입니다.
왜요? 살아나기 위해서요.
예수님 앞에서 살기 위해서요.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살게 하시려고 주신 일입니다.
왜 칼과 핍박과 고난과 죽음을 보내시느냐.
죄에 대해 죽고 의에 대해 사는 것을 맛보게 하시려고. 할렐루야!
이것이 살과 피요, 기적입니다. 할렐루야.
너무나 놀라운 일 아니겠어요?
우리는 죽음도 주님의 사랑에서 우리를 끊어낼 수 없다는 겁니다.
*위 동영상 처음부터 60분까지 녹취, P2에서 계속합니다.
타자 JH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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