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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66 짐승의 표 P2

LNCK 2016. 7. 6. 07:46

666 짐승의 표 P2                   13:11-18          스크랩, 출처




어떤 이들은 요한계시록에 나타나는 내용들은 모두가 상징적인 것들이기 때문에


영적으로만 해석을 하여야 한다고 하면서 역사성을 간과합니다.

아니에요. 이건 지혜롭지 못한 겁니다.

 

물론 모든 성경은 영적으로 해석하여야 합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주는 것을 영적으로 해석하는 것이지

그런 사건 자체가 없다는 말이 아닙니다.

 

사건은 껍데기와 같습니다.

그 사건 속에는 영적 의미가 알맹이처럼 담겨져 있습니다.

하나님은 역사적 사건을 가지고, 영적인 말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시작을 하면서 요한계시록의 성격을

지금 있는 일(현재)’과 장차 될 일(미래)’이라고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1:19

 

그러면서 실제 내용은 전부 상징들로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상징을 통해서 장차 될 일을 설명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장차 될 일이고, ‘반드시 속히 될 일이란 사건으로 나타난다는 뜻입니다. 1:19, 1:1

 

그러므로 우리는 요한계시록의 상징들이

역사 속에서는 어떤 사건이 되어서 나타나게 되면

그 사건 속에 담겨진 영적인 의미를 읽어내게 되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해하세요.

이 세상 역사는 일 년이라는 싸이클로 계절의 순환으로 진행되고 있습니다.

일 년은 봄 여름 가을 겨울로 진행이 됩니다.

이게 순환 되면서 역사가 흘러가고 있습니다.

 

이 세상 역사는 시작과 끝이 있습니다.

하나님은 이걸 일 년이라는 계절로 담아 두었습니다.

만물은 창세전 언약을 펼쳐 보이기 위해서 창조가 된 것이므로

그 언약이 완성 되면 이 세상은 종말을 맞이하게 됩니다.

 

창세전 언약을 일 년이라는 것으로 이해해 봅시다.

일 년은 사 계절로 구분이 되어 있습니다.

계절마다 특징이 있고 나타나는 현상들이 다 다릅니다.

 

봄에는 새싹들이 피어나는 모습들이 있고,

여름은 숲이 우거지고 무더운 모습들이 있고,

가을은 단풍이 들고 추수하는 모습들이 있고,

겨울은 낙엽이 떨어지고 추운 모습들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 속에 펼쳐가는 창세전 언약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봄에 씨처럼 뿌려지는 시기가 있고,

여름처럼 이삭이 나서 풍성하게 자라가는 시기가 있고,

가을처럼 곡식이 익어서 추수하는 시기가 있고,

겨울처럼 곡간에 들어가서 안식하는 시기가 있어요.

 

역사의 흐름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창세전 언약이 역사 속에서 전개되어 가면서,

이 세상의 모습도 그 시기마다 나타나는 사회 현상들이 다릅니다.

 

제국의 흥망성쇠를 보면 망할 징조들이 잘 나타나고 있어요.

국가가 망할 때 항상 그 징후들이 사회전반에 나타났습니다.

반목과 갈등과 부패와 타락으로 망국의 징후들이 나타납니다.

 

드라마를 통해서 보면 신라가 망하고, 고려가 망하고, 조선이 망할 때를 보면

망국의 징후들이 사회전반에 나타나게 되는 것과 같습니다.

이걸 사회현상론이라고 합니다.

 

이 세상도 마찬가지에요.

망할 징조들이 인간들 세상에 나타납니다.

흔히들 사회가 혼란스럽고 나라가 시끄러우면 하는 말이

세상 말세야! 나라가 망할 징조야!’ 라고들 합니다.

교회가 망하려면 망할 징조들이 나타납니다...

 

예수님은 마태복음 24장에서 종말에는 이러한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이라고 하면서

이를 세상 끝의 징조라고 하셨습니다.

그 징조들을 세 가지 현상론으로 말씀 하셨습니다.

 

첫째가 거짓 그리스도들이 출현하는 교회의 타락을 말씀 하셨습니다.

둘째로 기근과 지진과 온역과 같은 천재지변을 말씀 하셨습니다.

세 번째로 사랑이 식어져서 민족이 민족끼리 짐승처럼

서로 죽고 죽이는 전쟁을 한다고 하였습니다.

 

지금 이 시대가 바로 그러한 때입니다.

세 가지가 복합적으로 전 세계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세상사람 모두가 이구동성으로 말세라고 외칩니다.

 

예수님이 초림으로 오셨을 때 구약 교회는 썩을 대로 썩었어요.

오죽 했으면 강도의 굴혈이라고 하였겠어요.

 

요한계시록에서 종말의 교회를 음녀라고 하면서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이들이 성도들의 피에 취하였다고 합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예수님의 재림의 모형입니다.

영적 상태가 똑 같다는 말입니다.

예수님의 초림은 구약 교회의 종말이고,

예수님의 재림은 신약교회의 종말입니다.

 

성경 속에는 종말의 모습들이 많이 담겨져 있습니다.

어떤 모습이냐 하면, 극심한 타락의 모습입니다.

종말은 심판성을 담고 있습니다.

 

노아 때도 그랬고,

소돔 고모라 때도 그랬고,

바벨론에 멸망당할 때도 그랬고,

예수님의 초림 때도 그랬습니다.

 

그럼 예수님의 재림이 임박한 이 시대의 교회 모습이 어떠할까요?

타락의 극치를 보여주고 있겠지요.

 

교회의 타락이란? 세속화입니다.

교회가 세상 가치를 추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구약 이스라엘의 역사나 신약의 교회사를 보면 언제 타락하느냐 하면

세상 가치가 들어 왔을 때입니다.

 

교회는 하늘에 속하였어요.

예수님의 피로 맺은 새 언약으로 세워진 곳입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하늘에 이야기가 증거 되어야 하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가 증거 되어야 해요.

 

그런데 마귀는 거짓 선지자들을 교회 안에 풀어서 땅의 이야기를 하게 하고

인간의 의(세속적 가치 포함)를 좇아가도록 미혹하게 하였어요.

 

땅에 가치로 하늘에 가치를 가리고

인간의 의로 예수그리스도의 의를 가리게 하였어요.

 

여기에 필연적으로 하늘에 속한 자

땅에 속한 자들 간에 전쟁이 일어나게 됩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의 전쟁이야기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기 백성들을 하늘로 데리고 가고,

마귀는 자기 백성들을 땅에 붙잡아 두고자 해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에서는,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과

땅에 거하는 자들로, 교회 안에서 두 부류의 교인들로 구분하고 있는 것입니다.

 

마귀는 자기 백성들을, 땅의 것으로 이 땅에 붙잡아 두고자 합니다.

땅에 붙잡아 두자면 어찌 해야 할까요?

땅의 것을 주어서 붙잡아 둡니다.

 

사도 요한은, 땅의 것을,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것들은 전부 세상으로부터 좇아 온 것으로서, 그 속에 하나님의 사랑이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을 마귀가 예수님에게 주겠다고 한 것입니다.

 

마귀가 사십일을 주린 예수님을 찾아 왔어요.

떡을 주면서 예수야~! 너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서 그럼 이것 받어, 그랬어요.

그러자 예수님이 난 떡으로 살지 않고 하나님 말씀으로 살어, 라고 합니다.

마귀가 다시 천하만국의 권세와 영광을 보여주면서 내게 절을 해, 그럼 이거 줄게, 그럽니다.

이에 예수님이 싫어, 나는 하나님만 경배 할래, 그러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보아야 할 것은 이걸 시험이라고 한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성령에 이끌려서 광야로 나갔어요.

그리고 마귀로부터 시험을 받은 것입니다.

 

그리고 사십일을 굶었어요.

사십일을 굶은 사람 앞에 마귀가 떡을 들고 온 겁니다.

당연히 고맙다 하고 받아먹어야 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거절했어요.

 

왜 예수님이 거절했나요?

이는 마귀가 떡으로서 하나님의 아들 됨을 시험을 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아들의 정체성을 확인하는 시험인 겁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떡을 먹어야 살아요.

그런데 이것이 신앙의 시험으로 나타나면, 떡 보다 말씀을 택하여야 합니다.

 

이러한 각도에서 666을 접근하셔야 해요.

666을 뭐라고 하나요?

매매수단이라고 합니다.

 

이것 안 받으면 매매를 못합니다.

이건 먹고 사는 일에 반드시 필요한 것입니다.

목구멍이 포도청인 사람은 반드시 받아야 합니다.

 

떡을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받고, 말씀을 생명으로 사는 사람은 안 받아요.

666하늘에 거하는 자땅에 거하는 자를 구별해 내고, 심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되지 않고

땅에 거하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13:8

*그게 다 짐승의 표를 받는 것이지요.

 

표란 자기 소유를 표시하는 행위입니다.

과거에는 노예들을 사고팔았어요.

주인이 돈을 주고 노예를 사 오면 자기 소유를 낙인을 찍어서 표시를 해 놓았어요.

 

16절을 보면 땅에서 올라온 짐승이 사람들의 이마나 오른 손에 표를 한다고 하지요.

이는 짐승의 소유라는 말입니다.

누구의 표인가 하면 바다에서 올라온 짐승의 표입니다.

 

앞서서 말씀 드렸지만 마귀는 하나님을 모방한다고 했습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을 모방합니다.

하나님도 자기 백성들에게 표를 하십니다.

이걸 마귀도 땅에 거하는 자기 백성들에게 표를 하는 것입니다.

 

계시록 7장을 봅시다.

 

7:1 “이 일 후에 내가 네 천사가 땅 네 모퉁이에 선 것을 보니

땅의 사방의 바람을 붙잡아 바람으로 하여금 땅에나 바다에나 각종 나무에 불지 못하게 하더라

 

하나님께서 이 땅에 바람을 불게 합니다.

바람이란, 환란을 말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바람을 불기 전에 이스라엘의 12지파 중에서

각 지파 별로 일만 이천 명씩 하나님의 인을 칩니다.

 

이렇게 인을 치는 것은 하나님의 소유라는 표식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인을 친 자들은 내 것이니 손 대지 말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전쟁을 하기 전에

먼저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인을 쳐 놓고서는

전쟁을 맡은 천사에게 권세를 주어서 환란을 일으키게 하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출애굽 할 때 장자들을 죽이는 심판을 단행하기 전에

먼저 어린 양의 피를 문에다 발라 놓게 한 후에 죽임을 집행하는 천사들을 보내서

문에 어린 양의 피가 발라지지 않는 집에 들어가서 장자들을 죽이도록 하신 것과 같습니다.

 

그러니까 종말의 재앙도, 출애굽 때 애굽에 장자가 죽는 재앙과 같은 것입니다.

 

종말의 재앙은 출애굽과 같습니다.

창세전 언약이 완성이 되면 하나님은 이 세상을 멸망하십니다.

멸망하기 전에 하나님은 자기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칩니다.

인을 치는 이유는 구별하기 위함입니다.

 

하나님은 이 세상을 멸망시키기 이전에, 천사들을 하늘 이 끝에서 저 끝으로 보냅니다.

보내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은 천상으로 빼내십니다.

다 빼내고 난 후에, 이 세상은 소돔 고모라처럼 불로 태워버리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4장을 봅시다.

 

14:1 “또 내가 보니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섰고 그와 함께 십 사만 사천이 섰는데

그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과 그 아버지의 이름을 쓴 것이 있도다

 

어린 양이 시온 산에 서 있습니다.

시온 산이란? 천국을 말합니다.

시온 산에 어린 양과 십사만 사천 명이 함께 서 있습니다.

십사만 사천 명의 이마에 어린 양과 아버지의 이름이 써 있다고 하지요.

이들을 일컬어 여자로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정절을 지킨 자라고 합니다.

 

여자가 누구인가요?

계시록 17장에 나오는 음녀이고 13장에서는 짐승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과 마귀가 교회 안에서 각각 자기 소유를 표시해 둔 것입니다.

하늘에 속한 자는 이마에 어린 양과 하나님의 이름이 쓰여 있고

땅에 거하는 자들의 이마에는 짐승의 이름이 쓰여 있는 것입니다.

 

666은 짐승이 땅에 거하는 자들을 자기 소유라고 표시를 해 둔 것입니다.

짐승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는 자들에게 표를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66 짐승표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백성들은 절대로 받지 않아요.

구약을 보면 표가 어디에서 어떤 의미로 사용 되었는지 알 수가 있습니다.

 

에스겔 9:4~6절을 봅시다.

이르시되 너는 예루살렘 성읍 중에 순행하여 그 가운데서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로 인하여 탄식하며 우는 자의 이마에 표하라 하시고

나의 듣는데 또 그 남은 자에게 이르시되 너희는 그 뒤를 좇아 성읍 중에

순행하며 아껴보지도 말며 긍휼을 베풀지도 말고 쳐서

늙은 자와 젊은 자와 처녀와 어린 아이와 부녀를 다 죽이되

이마에 표 있는 자에게는 가까이 말라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그들이 성전 앞에 있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하더라

 

하나님이 살육하는 기계를 잡은 자들을 어디로 보내는가요?

예루살렘 성읍이지요.

성소로 보내지요. 내 성소에서 시작할지니라 하시매

 

심판을 성소에서 시작하라고 하지요.

늙은 자들로부터 시작해서 남녀노소 가리지 말고 다 죽이라고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하나님의 집을 심판하는 것입니다.

이게 종말에는 교회의 심판으로 나타나는 것입니다.

 

적그리스도는 항상 교회 안에서 활동해요.

이단들이 누구를 미혹하던가요?

교회 다니는 사람들을 미혹해요.

여기에 누가 넘어가던가요?

진리에 서 있지 못하는 자들이 넘어가요.

 

표도 마찬가지에요.

교회 안에 가짜들을 심판하기 위하여 행하는 것입니다.

성소 안에 이마에 표를 한 자들과 표 하지 않은 자들이 섞여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이마에 표 있는 자들은 절대로 가까이 하지 말고

표 없는 자들만 심판하라고 합니다.

 

이렇게 되면 교회 안에 두 부류가 섞여 있음이 되지요.

 

에스겔이 본 환상은 지금 식으로 말하면 교회에요.

왜 교회로 보내는가요?

교회 안에 진짜와 가짜를 갈라내고 심판하기 위함입니다.

 

심판하기 전에 먼저 예루살렘의 가증한 일을 보고서

탄식하며 우는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라고 합니다.

 

교회의 가증한 일이란 세속화입니다.

인간의 의가 판을 치는 것입니다.

이건 요한계시록 17장에서는 음녀의 가증한 일을 보고서 우는 성도들을 말합니다.

 

이 시대적으로 말하면 교회의 타락을 보면서 애통하는 자들을 말합니다.

이들이 바로 하나님께 인 맞은 자들입니다.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성도는 교회의 타락을 보고서 아파하고 애통해요.

 

육적 신자들은 진리에는 관심이 없어요.

그래서 교회가 진리가 증거 되지 않아도 아파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지만 성령이 그 안에 거하는 성도들만이 교회가 세속화 되면 탄식하게 되는 것입니다.

이러한 성도들이 인을 맞은 자들입니다.

 

성령이 하나님의 인이에요.

그러므로 성령 받은 성도는 음녀를 따르지 않아요.

거짓 선지자들이 말을 따르지 않아요.

 

종말에 되어질 일을 기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 666 짐승표 이야기가 나온다는 것도

심판을 염두에 두고 하는 일이라는 것을 알 수가 있습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는 자들은 다 짐승 표를 받게 되는 것입니다.

 

반대로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도 않을뿐더러 666 짐승표를 받지도 않아요.

 

666 짐승표는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아니한 자들이 받아요.

그러니까 하나님께서 마귀에게 심판 받을 자들에게 표시를 해 두라고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은 천국으로 데리고 갈 자기 백성들의 이마에 인을 치고,

마귀는 지옥으로 데리고 갈 자들의 이마에 표를 하는 것입니다.

 

이 얼마나 신이 나는 일인가요?

성도에게는 이처럼 신 나는 일이 없어요.

하나님이 자기 것이라고 소유를 하는데 어찌 신이 안 납니까?

당연히 신이 나야지요.

 

제가 요한계시록을 시작하면서 그랬지요.

요한계시록은 두려운 책이 아니고 위로와 소망을 주는 책이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에게 소망을 주시려고 환란 속에 있는 교회들에게

천상의 세계를 보여주신 것입니다.

 

너희가 비록 이 땅에서 핍박을 당하고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그것은 저주가 아니라 축복이라는 것을 알려주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666이 가시적으로 나타난다고 하여도 호들갑을 떨 것이 아니에요.

도리어 ~ 성경대로 응해져 가는구나!’ 하고 기뻐해야 합니다.

 

성경대로 하나님은 666이 나타나기 전에, 먼저 자기 백성들에게 인을 쳐 주세요.

그러니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666 짐승표가 나타난다고 하여도 걱정 할 일이 아니지요.

 

분명히 말하지만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는 666을 받지 않아요.

왜냐하면 666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하늘에 거하는 성도들은 666이 나타나도 두려워 할 것이 아닌 것입니다.

 

그럼에도 이 시대 극단적인 종말론 자들은, 요한계시록을 두려운 책으로 만들어 놓았어요.

666를 가지고 공포심을 조성하고 있어요.

마치 666을 안 받는 무슨 비법이라도 있는 냥 떠들고 있어요.

이것은 자기 안에 엄습하는 두려움을 애써 감추려고 하는 위선에 지나지 않아요.

 

두려워 한다는 것은 땅에 속하였다는 증거에요.

하늘에 속한 자는 두려워하지 않아요.

사랑 안에 두려움이 없고 온전한 사랑은 두려움을 내어 좇아요.

그러니 그 안에 온전한 사랑을 받은 성도는 두려워하지 않아요.

스데반처럼 죽음 앞에 서도 당당해요.

 

이건 우리의 의지나 각오로 되어지는 것이 아니고 성령이 그렇게 해 주세요.

죽음은 죄와 사망 권세 아래 있는 자에게 두려운 것이에요.

죄와 사망 권세를 벗어난 성도에게는 두려운 것이 아니에요.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주 안에서 죽은 자들은 복 된 자들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모두가 다 죽어요.

신자이든 불신자이든 다 죽습니다.

누구에게 죽임 당할 것이냐가 중요합니다.

짐승의 출현은 땅에 거하는 자들을 추수하기 위함입니다.

 

말이 추수이지 육에 속한 자들은 땅에서 붙박이처럼 떠나지 못하게 하고

주류로 살게 하려는 것입니다.

실제로 이 땅에서 뽑힘 당하는 자들은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입니다.

그래서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서 이긴다고 하는 것입니다.

짐승이 성도와 싸워서 이긴다고 하는 말은 성도들이 짐승에게 죽임 당한다는 것입니다.

 

13장에서 말하고자 하는 것은

어린 양에게 속한 자들은 짐승으로부터 죽임 당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13장의 주제는 짐승이 하나님에게 속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과 싸워서

이기게 된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이 짐승에게 경배치 않고

또한 666 짐승표를 받지 않고 짐승에게 죽임을 당하더라고 하는 것입니다.

 

짐승의 시대에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으면 죽음 뿐이에요.

살려면 짐승에게 경배하여야 합니다.

 

그런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 된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아요.

물론 666 짐승표도 받지 않아요.

 

그럼 당연히 핍박을 당하든지 고난을 당하든지 죽임을 당하게 되어 있어요.

그래서 믿음이 필요하고 은혜가 필요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시고 은혜를 주세요.

 

이게 중요한데 잘 이해하세요.

사람들은 짐승에게 죽임 당하는 것을 저주라고 여기는데 아니에요.

아니에요. 도리어 축복이에요.

 

짐승에게 죽임 당하지 않으면 하나님의 진노를 받게 되어요.

하나님은 성도들을 짐승에게 붙여서 다 예수그리스도처럼 죽임 당하게 만들어서

천국으로 데려가는 일을 하시는 것입니다.

이게 두 증인들의 죽음으로 보여 주셨잖아요.

 

두 증인들이 무저갱으로부터 올라오는 짐승에게 죽임을 당했는데

하나님이 사흘 반 후에 예수님처럼 부활을 시켜서 하늘로 데리고 가셨잖아요.

 

또 다시 말씀드립니다.

요한계시록은 성도들에게 너희가 죽어도 사니까 염려하지 말라는 것을 말해주고 있어요.

이걸 제일 먼저 혜택을 본 사람이 사도 요한이에요.

 

사도 요한은 지금 밧모 섬에 유배당하고 있어요.

죽어가고 있어요.

그런 그에게 하늘에 모습을 보여주고 위로하고 있는 것입니다.

천국을 다녀온 사도 요한이 죽음을 두려워했을까요?

아니에요. 도리어 기뻐했어요.

 

이렇게 생각하세요.

하나님과 마귀는 각각 자기 소유에게 표를 합니다.

이렇게 되면 표를 받은 자들은 상대로부터 공격을 당하게 되어 있습니다.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는 마귀로부터 공격을 당하고,

666 짐승표를 받은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공격을 당합니다.

하나님의 인을 맞은 성도는 마귀로부터 죽임당하고,

666 짐승표를 받은 땅에 거하는 자들은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

 

마귀는 이마에 어린 양의 이름이 적힌 자들만 죽여요.

반대로 하나님은 이마에 짐승의 이름이 적힌 자들에게 진노를 끌어 부어요.

 

재미있는 것은 마귀로부터 죽음을 당하는 성도들은 천국으로 가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죽임을 당하는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지옥으로 갑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주 안에서 죽은 자는 복이 있다고 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이 증거하는 것은 이 땅에서 죽임 당한 성도들이

천국에서 영원토록 주와 함께 거한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예수 잘 믿으면 죽음도 피해 간다는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고,

그 반대로 예수 잘 믿으면 죽는다는 것을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죽음은 천국에서 영원히 사는 것이므로 복된 것이라고 하는 것입니다.

죽더라도 낙망하지 말아야 하는 것은 천국에서 영생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이 천상의 세계를 집중적으로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죽음 이후의 세상이 있으니 안심하라고 위로하고 격려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봐라!

죽었지만 산 자가 되어서 세상 위에 계시지 않느냐?

너희 앞선 믿음에 선진들을 보아라!

믿음을 지키다가 죽었지만 저렇게 살아서 영원토록 왕 노릇하고 있지 않느냐!

그러니 너희도 예수 때문에 죽임을 당한다고 하여도 슬퍼하지 말고 영원히 사는 것이니 기뻐하라고 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또 중요한 이야기를 합니다.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는 666 표를 받지 않고

살아서 예수님을 영접할 자들도 있습니다.

 

이들은 하나님께서 666을 받지 않도록 해 주십니다.

환란 속에서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이 재림을 하실 때 죽지 않고 데려감을 당하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20:4절을 봅시다.

 또 내가 보좌들을 보니 거기 앉은 자들이 있어 심판하는 권세를 받았더라.

또 내가 보니 예수의 증거와 하나님의 말씀을 인하여 목 베임을 받은 자의 영혼들과

또 짐승과 그의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아니하고 이마와 손에 그의 표를 받지도 아니한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로 더불어 천 년 동안 왕 노릇 하니..”

 

보세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다가 목 베임을 당한 영혼들이 있고,

우상에게 경배하지도 않고 표를 받지 않은 자들이 살아서

그리스도와 함께 천년동안 왕 노릇 한다고 합니다.

 

두 부류가 있지요.

목 베임을 당한 자들과 살아서 있는 자들이 있습니다.

목 베임을 당한 자들은 교회사 속에서 믿음을 지킨 성도들이고,

살아 있는 자들은 예수님이 재림하실 때 살아난 성도들을 말합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은 이 둘에게 모두 적용이 되는 것입니다.

교회사 시절에는 믿음으로 살다가 죽임을 당하는 성도들에 관한 이야기이기도 하고,

예수님이 재림 하실 때 살아 있는 성도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는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요한계시록은 시대마다 적용하는 것이 다르다고 한 것입니다.

이걸 영적인 것과 실제로 이야기 하였습니다.

 

다행이 우리가 살아 있을 때 예수님이 오시면 우린 죽지 않고 데려감을 당할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당장 예수님이 재림 하시지 않으면

우리는 마귀로부터 고난당하다가 죽임을 당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저는 지금은 아직 적그리스도가 나타나지 않았고

예수님의 재림 때가 아니므로

짐승과 666 짐승표 이야기는 영적인 것으로 해석을 하는 것입니다.

 

교회사 시대로 해석하여서 비록 믿음을 지키다가 이 땅에서 고난당하고

버려짐을 당한다 하여도 슬퍼하지 말고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위로와 소망을 가지라고 하는 것입니다.

 

심정적으로는 곧 예수님이 재림하신다는 자세로 살아야 합니다.

하지만 예수님의 재림은 때와 기한이 차야 일어나는 일입니다.

 

그 때를 우리는 알 수가 없습니다.

다만 징조를 보아서 때를 예측 할 뿐입니다.

지금은 예수님이 오실 수 있는 환경이 조성 되어가고 있는 때입니다.

 

그러므로 지금은 예수를 잘 믿으면 죽지 않는다는 말 보다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것 때문에 손해를 보고 불이익을 당할 수가 있더라도

그것은 실패가 아니라 영광된 것이라는 것을 가르쳐야 하는 것입니다.

 

믿음으로 살면서 고난당하고 살아가는데 손해를 보는 일이 일어나더라도

슬퍼하지 말고 천국에 소망을 삼고 이겨내라는 것입니다.

 

이게 요한계시록을 초대교회로부터 주신 목적입니다.

초대교회 성도들은 예수를 믿는 것 때문에 실제로 죽었어요.

이들을 위로하고 소망을 주시기 위해서 죽음 이후의 세상인 천국을 보여 주신 것입니다.

 

죽음이 끝이 아니라 새로운 세상으로 옮겨 가는 것이므로 기뻐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초대 교회 성도들은 요한계시록을 통해서 위로와 소망을 받았어요.

 

초대교회는 예수 때문에 칼과 창에 찔려서 죽었어요.

그러나 지금은 그런 일은 없어요.

예수 믿는다고 죽이지 않아요.

 

다만 믿음으로 살다가 보면 세상 영광도 버리고

물질적 가치를 버려야 하는 아픔들을 당합니다.

 

물질만능 시대에 물질에 가치로 살지 않는 것은 고난입니다.

지금은 영적인 의미에서 물질적 가치로 사는 자는 666을 받은 것이고,

물질적 가치로 살지 않고 말씀에 가치로 살면 666 짐승표를 받지 않는 것입니다.

 

교회에 와서도 세상 영광을 꿈꾸고 물질적 가치로 산다면 그는 666 짐승표를 받은 사람이에요.

땅에 속한 자이기 때문에 예수 앞에 나와서 떡을 구하고 세상 영광을 구하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속에 성령이 와 계신 성도는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은 입을까 라는

세속적 가치를 얻고자 예수를 믿지 않아요.

 

도리어 이 세상에 속하지 아니한 자로서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고 살아요.

이러한 사람이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성도들입니다.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었다고 해서 이슬 먹고 살지 않아요.

여전히 밥을 먹어야 해요.

 

그러나 성도는 비록 돈을 벌지만 그것을 목적으로 하지 않아요.

내 나라는 이 세상에 속한 것이 아니요 라는 자세로 살아요.

그러므로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하늘에 속한 성도들은

이 세상에서 있는바 족한 줄 알고 하루 하루 감사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말씀과 떡을 던져 보면 각 자의 정체성이 드러나요.

땅에 거하는 자는 떡을 좇아가고, 하늘에 속한 자는 말씀을 좇아가요.

교회 안에는 떡에 가치로 사는 자와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가 있습니다.

떡에 가치로 사는 자는 666표를 받은 자이고,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는 하나님의 인을 맞은 성도에요.

 

666 짐승표를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게 하지요.

이마는 그 사람의 정신을 나타내고 오른 손은 그 사람의 삶을 말해요.

그럼 지금은 머리 속에 떡에 가치 즉 세속적 가치를 품고 사는 자들은 짐승의 표를 받은 것과 같아요.

 

쉬운 말로 어리석은 부자처럼 정신머리를 떡에 가치로 가득차 있고

손발이 떡을 쫓아가는 사람으로 살고 있으면 이마와 오른 손에 표를 받은 것이 되어요.

 

그럼 그 반대로 떡(세상 영광)에 가치로 살지 않고

머릿속에 하나님의 약속을 믿음으로 살아가는 사람은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사람인 것입니다.

 

세상 속에 살면서 세상 것을 누리지 못함이 고난입니다.

이게 교회사 시대에는 목 베임 당하는 것과 같은 아픔인 것입니다.

하지만 천국에 소망이 있기 때문에 세상과 타협하지 않고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

 

이게 신앙이에요.

스스로에게 물어 보세요.

내가 사는 이유가 무엇인가?

 

나는 이 세상의 떡을 위해 살고 있는가?

아니면 천국에 대한 소망과 창세전 언약이 이루어져 가는 기쁨으로 사는가?

 

내가 사는 이유가 현세적이고 떡이면 영적으로 이미 짐승표를 받은 것이고,

내가 사는 이유가 내세적이고 말씀이면 영적으로 하나님의 인을 맞은 것입니다.

떡이 살아가는 의미인 사람은 666 짐승표를 받을 수밖에 없어요.

 

신자와 불신자도 이와 같습니다.

각자 살아가는 의미가 달라요.

불신자는 세상 영광을 구하고, 신자는 하늘에 영광을 구해요.

불신자는 떡이 살아가는 의미이고, 신자는 말씀이 살아가는 의미에요.

 

이 의미를 잘 이해 하셔야 해요.

예수 믿는 사람은 떡 안 먹도 산다는 말이 아니에요.

육신을 가지고 있는 자는 떡을 먹어야만 살 수가 있어요.

그러나 떡에 가치로 살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이 모습이 그대로 초대교회 성도들에게 나타났어요.

성령이 임하고 나자 그 동안 떡에 가치로 살던 사람들이 말씀에 가치로 사는 자로 거듭나게 된 것입니다.

 

그 모습이 교회에 가난한 형제들을 위하여 자기 제물을 내어 놓는 것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이게 바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은 자들의 모습인 것입니다.

성령이 임하고 나니까 물질을 모으던 것에서 성도들을 섬기기 위하여

내어 놓는 것으로 가치관이 달라진 것입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에요.

이마에 성령의 인침을 받은 성도들은 떡에 가치로 살지 않고 말씀에 가치로 살아요.

반대로 이마에 하나님의 인을 맞지 않은 자들은 교회에 나와도 떡에 가치로 살아요.

이러한 사람들은 666 짐승 표를 받은 것입니다.

 

666 짐승표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가짜 그리스도인들을 뽑아내기 위하여

사단에게 넘겨 준 것입니다.

 

마귀는 666 짐승표로 자기 백성들을 추수해요.

그래서 창세로부터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되지 않은 자들은 모두가

짐승에게 경배하고 그 표를 받게 된다고 말하는 것입니다.

  

기도합시다.

하나님 아버지, 참으로 혼란스러운 때입니다.

지혜를 주셔서 말씀을 잘 분별 할 수 있게 해 주시옵소서.

또한 징조를 볼 수 있는 눈도 열어주어서 때를 알게 하여 주옵소서.

 

온전한 사랑 안에서 두려움 없이 종말의 때를 살게 하시고

주님 오심을 사모하면서 하루를 천년처럼 천년을 하루처럼 살아가게 하옵소서.

주께서 능히 악한 자의 손에서 건져 주심을 믿고 담대함으로 살아가게 하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