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몇 가지 용어 구분 고후3:18 편집자 글
이 사이트에서 여러 외국 설교를 듣다보니,
제 스스로, 용어를 구분해서 써야 될 필요가 있음을 느껴서, 아래에 정리해 보았습니다. 편집자
◑성령세례, 성령충만, 성령의 기름부으심
성령의 사역에 관하여, 위 3가지로 표현합니다.
다 똑같은 성령의 사역이지만, 굳이 구분하면
(여러 설교에서 들은 내용입니다.)
1) 성령세례 : 성령의 체험을 처음 경험할 때, ‘성령세례’라는 말을 씁니다.
행2장등, 성령충만을 처음으로 받게 되었을 때 ‘성령세례’라고 쓰는 것 같습니다.
예수를 처음 믿을 때, 물세례를 받잖아요.
2) 성령충만 : 처음으로 성령세례를 받은 사람이
그 후로 계속적인 성령을 받는 것을.. '성령충만' 이라고 합니다.
엡5:18절을 영어로 being filled with the Holy Spirit ‘계속적인 성령충만을 받으라’
는 의미로 번역한 영어성경도 있습니다.
성령세례를 받은 성도는,
그 후 매일 같이 성령충만을 사모하고 받는 것입니다.
물세례를, 여러 번 받지 않고 한 번 받듯이 (한 번, 시작이 중요하죠.)
성령세례도, 처음, 한 번 받는 것입니다.
그 후로 반복해서 받는 것은, 성령충만이라고 표현합니다.
3) 성령의 기름 부으심
이것은 ‘사역할 때, 특별히 기름부어지는 성령’을 뜻합니다.
성령충만은, 생활할 때, 성령으로 늘 가득 채워진 상태이고요.
성도가 늘 성령충만한 가운데 살아갑니다.
그러다가 사역할 때(전도, 설교, 찬양 등) 갑자기 불이 임하거나, 은혜가 흐를 때가 있습니다.
그때는 ‘성령의 기름 부으심’이 있었다고 얘기합니다.
이때 ‘성령의 충만함을 받았다’고 말해도 무방하지만,
‘성령충만 받았다’는 “성령으로 재충전 되었다”의 의미가 강하고요.
‘기름부음 받았다’는 특별히 사역과 관련해서,
그 사역을 수행할 수 있도록, 또한 그 사역을 수행하는 시간에 성령이 임하는 것을,
‘기름부음’ 표현을 씁니다.
이런 논지를 뒷받침하기 위해서, 여러 성경적 근거와
신학책을 찾고 뒤져야 하겠죠. 그건 신학자들의 몫으로 남기고
일단 궁금하신 분들을 위하여, 대강 설명을 드려보았습니다.
◑거듭남, 회심, 변화
1) 거듭남 = 본 어겐 = 중생 = regeneration
예수님을 안 믿던 사람이, 자기 죄를 깨닫고, 회개하고 예수님을 믿게 되는 것.
이것은 ‘지적 동의’를 뜻하는 것은 아닙니다.
이것은 영적 베이비로 태어나는 것입니다.
예를 들면, ‘백일잔치’나 ‘돐잔치’에 해당됩니다.
2) 회심 또는 변화
‘회심’이란 말의 의미는 convert, ‘(삶의) 방향을 바꾸다’는 뜻입니다.
‘회개’라는 말과 비슷하죠. 메타노이아도, ‘생각을 바꾼다’는 뜻입니다.
18세기, 19세기, 20세기
많은 신앙의 선배들이, 뭔가 예수 믿은 후에
한 번 "홱 바뀌어야 한다"고 설교하고, 주장했습니다.
그 내용은 다 동일했지만,
그 용어는
-‘거듭나야 한다’ born again
-회심해야 된다.. 등으로 구분 없이 썼습니다.
요한 웨슬리는, 자신이 이런 경험을 하고,
그는 ‘제2의 축복 2nd blessing’ 이란 용어를 만들어서 썼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런데 성경적인 용어로, 가장 근접한 표현은
‘변화’입니다. 영어로 transform입니다. *메타모르포오
롬12:2 여러분은 이 시대의 풍조를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서,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완전하신 뜻이 무엇인지를 분별하도록 하십시오.
여기서 ‘변화’는 로마교인들을 행한 바울의 당부입니다.
불신자 보고 거듭나라는 얘기가 아닙니다.
이미 예수 믿는 기존 신자들, 즉 거듭난 신자들에게
한 번 홱 바뀔 필요가 있다는 말입니다.
▲’변화’ transform과 같은 단어가 쓰인 다른 구절
마17:2, 예수님이 변화산에 가셔서 용모가 변화 되셨습니다.
우리가 천국에서 변화될 모습이기도 하지만,
‘이미 아직’이론 처럼, 지상에서도 우리가 닮아가서 변화되어야 할 모습입니다.
고후3:18 우리는 주님과 같은 모습으로 변화 하여, 점점 더 큰 영광에 이르게 됩니다.
이것은 영이신 주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위 구절도, 변화는, 이 지상에서부터 시작되어져야 함을 가리킵니다.
이런 변화에는, ‘어떤 터닝포인트, 어떤 계기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성령세례로 봅니다.
◑‘율법’은,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주신 것인가요?
많은 분들이 산상수훈을 설교하면서
‘산상수훈은 사람이 도저히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알게 하려고 주신 것이다.. 라고 설명합니다.
주로 장로교에서, 일부 목회자들이 그런 신학을 갖고 있습니다.
그래서 ‘행위에서가 아니라, 믿음으로 의롭게 된다’는 신학과 딱 맞아떨어지게 됩니다.
그리고 마5:48절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와 같이 온전하라’는 구절은
Be perfect (온전하라) 입니다.
신자는 ‘하늘 아버지처럼 절대 퍼어팩 할 수 없으니,
산상수훈은, 지키라고 주신 게 아니라,
‘못 지킨다는 것을 깨달아라’고 주신 것이라고 설명합니다.
▲반론/ 시내의 교통법규를 ‘지키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제정한 것입니까?
세상에 모든 법규는, 지키라고 제정하는 것이지
‘지키지 못하는 것을 깨닫게 하려고’ 제정하는 법규는 없습니다.
산상수훈도 지키라고 주신 것입니다.
십계명의 재해석이죠.
계명을, 외모가 아니라, 마음 동기에서부터 지키라는 것입니다.
‘산상수훈’을 지키지 못하는 것으로 분류한다면,
십계명까지 함께 폐기해야 합니다. 그건 잘못이죠.
그럼 온전하라 Be perfect는 뭐냐하면,
‘완벽하라’는 뜻이 아니라,
헬라어로 어근이 teleo인데 ‘장성하라, 성숙하라’는 뜻입니다. ☞'완전하라'의 의미
‘하늘 아버지처럼 장성, 성숙해서.. 산상수훈을 지키라’는 뜻입니다.
어떻게 그렇게 할 수 있습니까?
변화되어서, 성령충만 받아서, 믿음의 장성한 분량에 이르러
그 산상수훈의 삶을 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완벽주의는 아니지만요.
‘산상수훈을 지키지 못한다’라고 설교할 때
‘이신칭의’ 신학에는, 맞아떨어질지 모르나
오늘날 세간에 ‘율법 폐기론, 무율법주의’가 문제가 되고 있는데,
그것과 같이 갈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만 구원 받고, 그것으로 끝이다!’ .. 이렇게 될 수 있는데,
이렇게 가르치면, 그건 성경을 오해한 것입니다.
이신칭의는 맞지만, 무율법주의는 잘못입니다.
또한 신자는 ‘산상수훈을 지키지 못한다’라고 설교할 때
‘믿음의 성숙에 이르지 못한다’라고 가르치는 것과 같습니다. 그건 잘못이죠.
하나님이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그건 주변 이방민족들과 구분되는, 하나님 백성됨의 뚜렷한 고상함이었습니다.
신약에서 하나님은 산상수훈을 주셨습니다.
신약의 십계명입니다. 하나님 나라의 계명(율법)입니다.
그것을 지킴으로써, 신자는 주변 이방인들과 뚜렷히 구별되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성령의 충만함으로, 믿음이 장성한 자는, 그것을 지키는 것입니다. 자원해서 기쁨으로요. <김지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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