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계시록 17장 P1 계 17:1-18 정낙원 목사 계시록 46강
일곱 머리 열 뿔의 비밀 P1
이 세상은 교회의 운명과 같이 하게 되어 있습니다.
교회가 없으면 세상도 없습니다.
이는 이 세상 자체가 예수그리스도를 위하여 창조가 되었기 때문입니다.
교회는 세상의 축소판입니다.
무슨 말인고 하니, 교회는 그 시대 사회상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회를 보면 그 시대가 보이고, 그 시대상을 보면 교회의 영적 모습을 알 수가 있습니다.
요한계시록은, 교회의 종말과, 세상 종말을 동시에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타락을 통해서, 세상의 타락을 함께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타락은 반드시 종말을 몰고 옵니다.
그래서 성경에서는 ‘타락은 반드시 심판으로 끝이 난다’는 것을
노아 시대나 소돔고모라의 멸망 사건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교회의 타락과 멸망은 구약 이스라엘에게서 그대로 나타나는데
북쪽 이스라엘은 앗수르에게 멸망당하고,
남쪽 유다는 바벨론에게 멸망당하는 것으로 보여 주었습니다.
▲인류 최초에 나타난 세상의 타락과 종말은, 노아 홍수를 통해 보여 주셨습니다.
노아의 때를 일컬어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죄악의 관영함을 혼합으로 표현하고 있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음행입니다.
창6:2절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의 아름다움을 보고
자기들의 좋아하는 모든 자로 아내를 삼는지라”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라는 두 부류의 사람이 나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습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성도가 세상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식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교회를 말하고,
‘사람의 딸’은 세상을 말합니다.
‘교회가 세상과 짝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서에서는, 이러한 것은 하나님 앞에 간음이라고 하였습니다.
약4:4절 “간음하는 여자들이여! 세상에 벗된 것이 하나님의 원수임을 알지 못하느뇨?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되게 하는 것이니라.”
야고보가 누구에게 말합니까?
교회입니다.
야고보가 교회들에게 “교회야! 세상과 짝하는 것이, 영적으로 간음하는 것이고
그것이 하나님에게 원수 되게 하는 것을 모르느냐”고 외칩니다.
다시 말해 그것이 ‘멸망 받아야 할 타락’임을 왜 모르냐고 입니다.
야고보의 경고는, 노아 시대의 경고와 같습니다.
▲성경은 노아 시대를 뭐라고 하는가요?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삼았다고 했는데,
여기서 중요한 어구는 “자기들의 좋아하는” 입니다.
“자기들의 좋아하는” 이라는 말은 십계명 중에서
제 2 계명인 “너희를 위하여 우상을 만들지 말라”는 말 속에
“너희를 위하여” 와 같은 말입니다.
“자기를 위하여” 신을 찾는 것을 우상이라고 합니다.
성경은 왜, ‘자기를 위하여’ 신을 찾는 행위를 우상 숭배라고 합니까?
이는 언약 위반이기 때문입니다.
구원해 준 목적을 위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을 출애굽 시킨 것은, 아브라함과 맺은 언약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백성은 자기를 위하여 살아가는 자가 아니고
하나님의 언약을 위하여 살아가는 자로 부르심을 입었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성도의 구원도 이와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성도가 구원을 받은 것입니다.
그래서 십계명에서 “너희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해서
주 너의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는 너희의 목숨은 너희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것이니까
하나님을 위하여 바치라는 말입니다.
너희는 하나님을 위하여 살아가라는 말입니다.
왜 그런가요?
하나님을 위해서 하나님이 성도를 구원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순전히 하나님의 필요에 의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죄가 뭐냐?
‘자기를 위하여 사는 것’입니다.
예수를 믿어도, 자기를 위하여 믿으면 우상숭배가 됩니다.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으면, 노아 시대 사람들처럼
자기가 좋아하는 자로 아내를 삼는 것과 같습니다.
예수님은 종말의 모습을 ‘노아 시대와 같다’고 하였습니다.
노아 시대를 먹고 마시고 시집가고 장가가고 사고 팔고 라고 합니다.
이건 자기 몸을 위하여 사는 것을 말합니다.
세상에서 먹고 사는 데만 치중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종말의 교회 모습도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자기들의 좋아하는 대로
사람의 딸들을 아내로 맞이한 것과 같이
‘자기를 위하여’ 예수를 믿고 있다는 뜻입니다.
교인들이 교회에 와서, 세상 것을 구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야고보서에서, 세상과 짝하는 것을 간음이라고 하였듯이,
노아 시대에, 하나님의 아들이 사람의 딸과 하나 되는 것은 행음과 같은 것입니다.
그리고 종말에 타락한 교회를 상징하는 음녀를 ‘행음하는 자’라고 하는 것입니다.
▲성경이 말하는 행음이란? 종자가 다른 것이 하나 되는 것을 말합니다.
이건 사람이 짐승과 교합하는 것과 같습니다.
성경에서는 짐승을 하나님을 모르는 이방인으로 말합니다.
그래서 율법에서는 이방인과 결혼하는 것을, 짐승과 교합하는 것으로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레위기에 보면 이방인들의 문란한 성생활을 짐승과 교합하는 것과 같이
동일시하여서 표현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너희는 그들의 성생활을 본받지 말라고 합니다.
‘짐승과 교합하지 말라’는 것은 생물학적 짐승을 말하기도 하겠지만,
그보다는 상징적으로 ‘믿지 않는 자와 혼인하지 말라’는 말과 같습니다.
이러면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들이 사람의 딸과 혼인한 것은
사람이 짐승과 교합하는 것과 같은 것이 됩니다.
영적으로 말하면 하나님의 아들은 사람이고, 사람의 딸은 짐승입니다.
이 둘은 섞일 수가 없습니다.
근데 섞였습니다.
이게 음행이고 타락이고 죄입니다.
▲그래서 노아 시대를 일컬어 죄악이 관영하였다고 합니다.
관영하였다는 것은 그 사고가 온 세상을 뒤덮었다는 뜻입니다.
이는 그 시대상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이건 마치 이 시대가 음란 문화로, 세상을 뒤덮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섞이면 혼합이 됩니다.
노아 시대 하나님의 아들과 사람의 딸이 하나가 된 것은
영적으로 보면 행음한 것이고 종교적으로 혼합한 것과 같은 것입니다.
종말에도 ‘음녀가 많은 물 (즉 세상) 위에 앉은 것’은
교회가 세상의 모든 사상을 다 받아들이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걸 진리 간음이라고 합니다.
물은 세상을 말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구원을 ‘물에서 건짐 받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이게 창세기 1장 2절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창1:2절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초림으로 오셨을 때 ‘흑암에 앉은 백성들이 빛을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이는 죄와 사망 가운데 있는 것이 흑암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 2절의 모습은, 죄 아래 있는 이 세상의 모습을 말합니다.
이 세상은 각종 더러운 영들로 가득한 곳입니다.
각종 더러운 영들이 뒤 덮고 있습니다.
이러한 곳에 하나님의 신은 수면에 운행하고 있습니다.
▲요한계시록 18장을 보면 교회를 일컬어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이는 귀신의 처소’라고 합니다.
“내 백성아 거기서 나와 그들의 죄에 참예치 말라”고 합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그러니까 요한계시록에서는 각종 더러운 영들이 뒤덮은 타락한 세상을
‘물’로 표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을 보면, 용이 하늘에서 땅으로 쫓겨나서
여자의 남은 자손들에게, 뱀이 물을 강같이 토하여서 떠내려가게 하려고 합니다.
이것은 종말에는 교회 안에 뱀 사상이
강물처럼 엄습해 올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 18장에서 타락한 교회인 음녀를 일컬어
‘각종 더러운 영들이 모인 귀신의 처소’라고 정의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창세기 1장 2절에서 혼돈과 공허와 깊음에 빠진 세상을
물에 덥혀 있는 것으로 표현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물의 창일함 가운데서, 빛을 불러냅니다.
이게 구원입니다.
그래서 창세기 1장에서 창조를 섞여 있는 곳에서 불러내어서
빛과 어둠이 분리되는 것으로 말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창조가 섞임에서 분리하는 것이라고 한다면,
타락은 역으로 분리에서 섞임이 되는 것입니다.
분리 된 것이 하나로 섞이는 것을 혼합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종말의 모습이 혼합 주의로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지금은 혼합시대에요.
종교도 혼합종교로 나타나고,
인종도 혼합하고,
문화도 예술도 ‘섞어 문화’에요.
사회에 나타난 것으로 쉬운 예로 든다면,
짐승도 사자와 호랑이를 이종교배 하여 라이거로 만들고,
농산물도 오이와 고추를 이종 교배하여 오이고추를 생산하고,
음식도 한식과 양식이 섞어서 퓨전 음식으로 나타나고,
음악도 국악과 양악이 섞여서 퓨전 음악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사회 전반에 섞임이 보편화 되어서 나타나고 있어요.
심지어 사람도 인간의 과학으로 성전환을 하여서
창조 질서를 파괴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어요.
이 모두가 종말의 징후들이에요.
구원이란? 섞임에서 분리 되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구약 이스라엘을 섞임으로부터 분리하십니다.
이게 출애굽으로 나타났습니다.
출애굽은 이스라엘과 애굽 사람을 분리시킨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출애굽 한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어서, 혼합을 경계시키셨습니다.
이방인과 결혼을 금하고,
두 가지 직조된 옷을 입지 못하게 하였고,
한 밭에 두 가지 종자의 씨를 뿌리지도 못하게 하였습니다.
이것은 너희는 이방인과 하나 될 수 없는
분리된, 즉 구별된 민족이라는 것을 가르치기 위함입니다.
그래서 이방인들이 섬기는 신을 섬기지 말고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 섬기라고 하신 것입니다.
이방신을 섬기는 것을 음행이라고 하는 것도
하나님만 섬기고 살아야 할 자가
이방신을 받아들임으로서 혼합이 되었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신약에서는 진리와 비진리가 섞이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의로 말하면 예수그리스도를 믿는 믿음으로 난 의에다가
인간의 행함도 의로운 것이라고 섞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음녀가 많은 물위에 앉았다는 것은, 온 세상의 사상을 다 받아들이고 있다는 뜻입니다.
이게 이 시대 말하면 ‘종교통합운동’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음녀가 앉은 많은 물을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라고 하지요.
이는 온 세상 모든 인간들의 사상을 다 포용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더 적극적으로 말하면 온 세상 신을 다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이 이 시대 모든 종교에는 구원의 길이 있다고 하면서
종교 통합 운동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큰 음녀를 일컬어 ‘땅의 음녀들의 어미라고 하고,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지요.
‘큰 음녀’는, 종교통합을 일으키는 음녀 노릇을 하는 교회들의 총본산이라는 뜻이고,
‘큰 성 바벨론’이라고 하는 것은
그 음녀가 바벨론과 결탁하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핍박을 일삼죠.
큰 음녀가 붉은 빛 짐승을 타고 있습니다.
붉은 빛 짐승은 요한계시록 12장에 용으로 나타납니다.
근데 이것이 13장에서는 머리가 일곱이고 뿔이 열인 땅의 짐승으로 나타납니다.
용이 땅의 짐승으로 나타난 것입니다.
용은 가상 동물입니다.
가상 동물이란? 인간들에게 감지되지 않는 동물이란 뜻입니다.
그래서 용을 일컬어 옛 뱀 마귀 사단이라고 합니다.
마귀는 우리가 눈으로 볼 수가 없습니다.
그러나 실재합니다.
이것이 역사 속에서 가시적으로 나타날 때는
마귀의 사상으로 무장하여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괴롭히는
적그리스도의 국가로 나타났습니다.
마귀가 국가를 통해서 하나님의 백성들을 핍박하는 일을 행한 것입니다.
큰 음녀가 백성과 무리와 열국과 방언이라는 많은 물 위에 앉아 있다는 것은
온 세상의 종교를 하나로 통합하는 일을, 주도적으로 행사하는 집단이라는 말입니다.
▲이렇게 마귀의 지배 아래 있는 것으로 나타난 제국들을,
일곱 머리 열 뿔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성도들의 피와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한
일곱 머리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알려주신다고 합니다.
6절과 7절을 봅시다.
“또 내가 보매 이 여자가 성도들의 피와 예수의 증인들의 피에 취한지라.
내가 그 여자를 보고 기이히 여기고 크게 기이히 여기니
천사가 가로되 왜 기이히 여기느냐 내가
여자와 그의 탄 바 일곱 머리와 열 뿔 가진 짐승의 비밀을 네게 이르리라.”
사도 요한이 교회라는 이름을 가지고 성도들과
예수 증인들의 피에 취하여 있는 큰 음녀인 여자를 보고서
크게 기이히 여깁니다.
놀랄 수밖에 없지요.
교회가 성도들을 죽이고 있으니까요.
그러자 천사가 요한에게 기이히 여기지 말라고 합니다.
이것은 모두가 하나님의 허락 하에서 일어나는 종말론적 사건이기 때문입니다.
종말의 교회의 타락은 하나님께서 용에게 허락한 사건입니다.
이는 교회 안에 땅에 거하는 자들과, 하늘에 속한 자들을 갈라내기 위한 것입니다.
이걸 심판이라고 하고, 추수라고도 합니다.
그러니까 하나님이 마귀로 하여금
참 성도와 가짜 성도를 갈라내서
참 성도는 하늘 곡간에 들이고
가짜 신자는 땅 곡간에 들이는 추수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많은 분들이 교회의 타락을 이야기 하면 의아해 합니다.
어떤 목사님과 대화를 하였는데 제가 교회의 타락을 이야기 하니까 그 분은
‘교회는 분명히 음부의 권세가 이기지 못하는데,
어떻게 하나님의 교회가 타락을 할 수가 있느냐’고, 동의 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 분은 하나님이 교회를 마귀에게 붙인 것을 이해하지 못하는 겁니다.
오늘 본문 17절과 다니엘 7장을 봅시다.
계 17:17절 “하나님이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저희에게 주사 한 뜻을 이루게 하시고
저희 나라를 그 짐승에게 주게 하시되,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 하심이니라.”
단 7:25절 “그가 장차 말로 지극히 높으신 자를 대적하며
또 지극히 높으신 자의 성도를 괴롭게 할 것이며
그가 또 때와 법을 변개코자 할 것이며
성도는 그의 손에 붙인 바 되어 한 때와 두 때와 반 때를 지내리라.”
하나님이 ‘큰 음녀에게 자기 뜻대로 할 마음을 주어서
한 뜻을 이루게 하신다’고 하지요.
언제까지 하느냐 하면 하나님 말씀이 응하기까지입니다.
이건 마치 요셉이 차꼬에 채워져서 감옥에서 있을 때
하나님의 말씀이 응하기까지 저를 단련하였다고 하는 것과 같습니다.
▲계시록 13장을 봅시다. 4절에서 8절입니다.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므로 용에게 경배하며 짐승에게 경배하여 가로되
누가 이 짐승과 같으뇨, 누가 능히 이로 더불어 싸우리요 하더라.
또 짐승이 큰 말과 참람 된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 두 달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짐승이 입을 벌려 하나님을 향하여 훼방하되
그의 이름과 그의 장막 곧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더라.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죽임을 당한 어린 양의 생명책에 창세 이후로 녹명되지 못하고
이 땅에 사는 자들은 다 짐승에게 경배하리라.”
용이 짐승에게 권세를 주지요.
용이 짐승에게 주는 권세는, 하나님으로부터 위임받은 권세에요.
용은 자기 독자적으로 일하지 못해요.
하나님의 지시에 의하여 움직여요.
욥기 1장 12절에 잘 나타나 있지요.
여호와께서 사단에게 이르시되 내가 그의 소유물을 다 네 손에 붙이노라.
오직 그의 몸에는 네 손을 대지 말지니라. 사단이 곧 여호와 앞에서 물러가니라.”
하나님이 사단에게 욥을 시험하라는 명을 내리지요.
사단은 하나님으로부터 명을 받고서 욥을 시험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잘 보셔야 할 것은, 하나님은 사단에게 욥에 생명을 손 못 대게 합니다.
이는 사단은 성도를 시험은 하여도, 구원은 어쩌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는 시험들 수는 있어도, 구원에서 잘려나가는 일은 없는 것입니다.
이게 믿어져야 해요.
그래야 그 어떤 상황 속에서도 든든해 질수가 있습니다.
용도 마찬가지에요.
용도 하나님으로부터 위임을 받은 권세를, 자기 종인 짐승에게 주는 것입니다.
이 짐승이 바로 오늘 본문에서 말하는 큰 음녀에요.
이 놈이 용으로부터 받은 권세로 무얼 하나요?
하나님을 훼방하고 하늘에 거하는 자들을 훼방하지요.
또한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와 민족을 다스리게’ 되지요.
각 족속과 방언과 나라와 민족은 큰 음녀가 앉은 물이에요.
여기서 잘 보세요.
짐승이 성도들과 싸워서 이기게 되지요.
성도를 이긴다는 것은 성도들을 핍박하고 죽인다는 것입니다.
교회로 말하면 교회를 타락케 한다는 말이에요.
▲8절에 보면, 창세전에 어린 양의 생명책에 녹명이 된 자들은
짐승에게 경배하지 않다가 죽임을 당하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은 짐승을 경배하고 살아남지요.
이게 무슨 뜻입니까?
이는 하나님께서 교회 안에 사단을 풀어서
하늘에 속한 성도와 땅에 거하는 교인을 갈라낸다는 것입니다.
어떻게 하늘에 속한 자와 땅에 거하는 자로 갈라지는가요?
뱀이 거짓 종들의 입을 통해서, 성경을 가지고 땅에 말을 하게 하는 것입니다.
성경을 인본주의로 해석하면, 하늘에 속한 자들은 동의하지 않지만
땅에 거하는 자들은 은혜 받았다고 해요.
이게 이 시대 교회의 현실이에요.
계시록 13장이 그대로 교회 안에서 응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왜 이 시대 이러한 일들이 온 세계 교회 안에서 일어나는가요?
이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의 재림 때가 가까웠기 때문에
마귀로 하여금 교회 안에 진짜와 가짜를 추수하기 위하여, 허락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교회 안에서 목사들이 대 놓고 종교 간에 대화를 하고
인류 평화를 위해서 연대를 해야 한다고 큰 소리를 치고 있는 것입니다.
이걸 일컬어 ‘참람 된 말’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다스려 가는 시나리오에 의하면
지금 이 시대는 세상 끝에 다다랐어요.
세상 끝에는 종말의 징후들이 모든 것으로부터 나타나요.
인간들의 모습 속에서도 종말의 모습이 나타나고,
사회의 현상 속에서도 종말의 모습들이 나타나고,
교회 안에서도 타락의 모습들이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리하여 인간들 입에서 ‘세상 말세’라는 말이 터져 나오게 하는 것입니다.
지금은 신자나 불신자가 다 ‘세상 말세’라고 합니다.
왜 그런가요?
온 세상이 세상 말세의 징후들을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알 것은 요한계시록은 영적인 의미에서는
모든 시대 온 세상에 대한 것이지만
시대 상황적으로는 종말에 일어날 ‘장차 될 일’입니다.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을 담고 있습니다.
이는 종말에 되어질 사건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해석을 하여야 하지만, 여기에 그치면 안 되고
역사의 종말에 일어날 실제적 사건으로도 해석하여야 합니다.
음녀의 음행도, 영적으로는 우리가 세상과 짝하는 것으로 적용할 수가 있어요.
그래서 음녀의 음행을 가지고, 성도들에게 세상과 짝하지 말라고 설교 할 수가 있어요.
하지만 여기에 그치면 안 되어요.
왜냐하면, 요한계시록은 장차 될 일에 관하여 말해주고 있기 때문입니다.
장차 될 일이란? 장차 나타날 사건이란 뜻입니다.
그러므로 요한계시록은 교훈적으로는 우리의 신앙으로 말하지만
실제적으로는 장차 일어날 적그리스도 세력들에 의한 교회의 타락과
이 세상 종말을 동시적으로 보아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해석과 실제적 해석을 둘 다 봐야 합니다.
예수님의 재림이 영적입니까?
장차 일어날 실제적 사건입니까?
실제적 사건이지요.
우리가 천국에 가는 것이 영적입니까?
실제적 사건입니까?
실제적 사건이지요.
그럼 요한계시록이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과 이 세상의 종말과 적그리스도 세력들은
영원한 불 못인 지옥으로 가고
성도는 영원한 천국으로 가는 것이 영적인 겁니까? 실제적으로 일어날 사건입니까?
실제로 일어날 사건이지요.
이것이 전제되지 않으면 요한계시록 해석은, 교훈과 사변적으로 흐르게 되어요.
실제적으로 일어날 사건으로 보지 않을 것 같으면, 요한계시록을 볼 필요가 없어요.
실제 일어날 사건도 아닌 것을 왜 봅니까?
공상 소설 같은 것인데,,,,
분명히 말하지만 예수님의 재림도 실제로 일어날 사건이고,
성도가 천국에 가는 것도 실제적 사건이고,
이 세상이 멸망을 당하는 것도 실제로 일어날 사건입니다.
음녀도 실제로 나타날 것입니다.
실제로 일어날 사건을 은유적으로 표현하고 있을 뿐입니다.
은유로 표현하였다고 해서, 사실이 아니란 뜻이 아니에요.
사실을 은유로 표현하는 것은, 자기 백성들에게만 알게 하고자 하심입니다.
그래서 요한계시록은, 자기 백성들에게 주신 비밀의 책인 것입니다.
물론 지금은 우리 안에서 성령이 몰고 온 영적인 천국을
우리가 영적으로 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예수님이 재림하여서 실제 천국으로 가게 됩니다.
예수님의 부활 승천 후 성령 강림으로는 영적인 천국을 누리고
예수님의 재림 때에는 실제 천국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니까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은, 영적이면서도 실제적인 것입니다.
그렇다고 한다면 요한계시록에서 말하는 예수님의 재림과 천국을
영적인 해석과 실제적 해석 두 가지로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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