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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시록 13장 / 데이비드 플랫

LNCK 2016. 9. 30. 16:12

계시록 13                 계13:1~18                     TV말씀데이비드 플렛 #143

  데이비드 플랫                                                         이미 승리한 싸움(2)

   


 

제가 처음으로 해외로 여행 갔을 때가 기억납니다.

같이 간 분이 마일리지가 많아서, 소위 말하는 귀빈실에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그분과 함께 걸어갔습니다. 일반 승객들을 아무나 들어갈 수 없었죠.

그들은 모두 바닥에 앉아 있거나, 공항의 불편한 자리에 앉아 있었습니다.

 

그렇지만 우리는, 안락한 자리와 좋은 음식과 음료가 있는 라운지로 들어갔죠.

데스크에 있는 여자 분이 제 표를 유심히 보더군요.

"당신은 이곳에 들어올 자격이 안 됩니다"

 

그분이 그렇게 말하는 순간, 저와 동행한 분이 카드를 올려놓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괜찮아요. 이분은 저와 함께한 동행입니다"

 

저는 미소를 띠며, 그 여자 분을 쳐다봤죠.

그리고 그 여자 분을 지나 안쪽 방으로 들어갔습니다.

 

형제자매 여러분. 여러분이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가려 할 때

천상의 귀빈실로 들어가려 할 때, 원수는 여러분의 눈을 노려보며 말할 것입니다.

"너는 그곳에 들어갈 자격이 없어"

 

그의 말이 맞습니다. 우리에게는 자격이 없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께서 뒤에서 나오셔서 테이블 위에, 그분의 카드를 올려놓으시고

마귀의 눈을 노려보며 이렇게 말씀하실 것입니다.

"괜찮다, 이 사람은 나와 함께한 동행이다"

그리고 웃으면서 그분과 함께 하나님의 임재 가운데로 들어갈 수 있는 것입니다.

 

그것은 오직 그리스도의 탄생, 죽음, 부활로 가능합니다.

그분이 교회를 향한 마귀의 참소를 깨뜨리셨습니다.

 

그렇다면 여러분은 예수님을 구세주로 영접하셨습니까?

여러분의 평생에, 제가 묻고 여러분이 답할 질문 가운데

이보다 더 중요한 질문은 없습니다.

여러분은 예수님을 여러분의 구주로 영접하셨습니까?

 

그게 아니라면 어떻게 악한 자의 참소에 맞설 수 있겠습니까?

죄로 물든 여러분의 공로로 하시겠습니까?

아니면 다른 종교 지도자의 가르침에 기대시겠습니까?

 

모든 역사 가운데 누가 그리스도와 같은 자격이 있습니까?

흠 없는 삶을 살다가 죽음으로 희생하시고

무덤에서 승리의 부활을 하신 이가 어디 있습니까?

 

원수의 참소를 이겨내는 유일한 방법은, 어린 양의 피를 통해서 입니다.

그런데 11절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우리 형제들이 어린 양의 피와 자기들이 증언하는 말씀으로써 그를 이겼으니

그들은 죽기까지 자기들의 생명을 아끼지 아니하였도다' 12:11

 

이 말씀이 무슨 뜻입니까?

요한계시록 12장의 전체 정황을 이해하여야 합니다.

 

사탄은 그리스도를 막을 수 없음을 알고 방향을 바꿔 교회를 공격합니다.

여자’, 즉 그리스도를 믿는 백성이죠.

 

13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여자를 박해하는지라'

 

여기서 요한이 사용한 단어는,

성경 다른 곳에서 '핍박''적대'로 사용됐습니다.

 

15절을 보면, ‘핍박으로 여자를 물에 떠내려가게 하려 한다고 합니다.

 

이 비유는 사탄이 대대적으로 하나님의 백성들을 무너뜨리기 위하여

싸우고 힘쓰고 공격함을 뜻합니다.

 

1세기에도 그랬고, 21세기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마귀, 원수, 옛 뱀은 지금도 그리스도의 교회를 핍박함으로 그분을 대적하고 있습니다.

 

17절에서는 여자의 자손과 싸운다고 말씀합니다.

 

그런데 계시록 12장의 전체 핵심을 놓치지 마십시오.

사탄은 "패배한 적"입니다.

 

오늘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이미 승리한 전투입니다. 잘 들으셨습니까?

우리 삶의 전면과 세상에서 벌어지고 있는 전투는 이미 승리한 전투입니다.

 

이는 인생을 변화시키는 증거입니다.

이곳에 있는 모든 성도들을 담대하게 하는 소식입니다.

 

그래서 요한이 1세기에 핍박 받던 성도들에게

포기하지 말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고 계속해서 복음을 선포하라고 간구한 것입니다.

 

그래서 제가 이 교회에 절대 포기하지 말고

고난 가운데 믿음을 지키고 땅 끝까지 복음을 선포하기를, 간구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치르고 있는 이 전쟁에서, 그리스도께서 이미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186549일 아침에 로버트 리 장군이 율리시스 그랜트 장군을 만나

미국 남북전쟁의 끝에 동의하는 협약에 서명한 것을 기억하십니까?

전쟁이 끝이 났습니다. 평화가 성취되었습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가 앉아 있는 이곳의 남부인 몽고메리에서는

여전히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남북전쟁이 실제로는 끝이 났지만

포트 블레이크리 전투는 여전히 벌어지고 있었습니다.

 

그 전투는 실제였습니다. 병사들은 적을 무찌르기 위해 힘을 다했습니다.

총과 총검은 여전히 위험했으며, 죽음도 여전히 끔찍했습니다.

 

승패는 이미 결정 났지만 전투는 계속되었습니다.

싸움은 이전과 마찬가지로 참혹했습니다.

 

왜냐하면 종전의 평화가, 거기까지 소통되고 이행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이 역사적 사실은, 우리가 처한 이 전투를 조금이나마 이해하게 도와줍니다.

 

승리는 성취되었습니다. 사탄은 패배했습니다.

그러나 지금도 이 땅에서 싸우고 있는 사람들의 생명이 달려 있습니다.

 

평화가 앨라배마 주 남부까지 이르지 못했던 것처럼

예수님의 승리가 이 땅에 완전히 이행되지는 않았습니다.

 

언젠가 그분이 온전히, 최종적으로 그분의 평화를 이행하실 것입니다.

악을 멸망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지금 우리는 전투 가운데 있습니다.

원수의 전략은 그리스도의 피로 사신 평화를 사람들이 경험하지 못하게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이 전투의 전면에 있을 때, 여러분에게 상기시켜 드리기 원합니다.

우리는 승리하기 위하여 이 전투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승리로부터 이 전투를 하는 것입니다. 여기에 크나큰 차이가 있습니다.

우리는 이 전투에서 약자가 아닙니다.

우리는 그리스도 안에서 이 세상의 신을 이겼습니다.

 

버밍햄과 전 세계 여러 족속 가운데, 그리스도의 백성이 되지 못한 자들이 많이 있습니다.

우리는 전투에서 승리한 것을 알기에 담대하게 나아갑니다.

 

우리가 매일 약자로서 죄와 유혹과 싸우는 것이 아닙니다.

그리스도 안에서 이미 이긴 자들로서 싸우는 것입니다.

 

사탄이 패배하고 있습니다. 잘 들으십시오.

심지어 사탄이 성도들에게 가져오는 고난조차도

사탄이 성도들에게 가져오는 핍박조차도

궁극적으로는 우리의 승리로 이어집니다.

 

잘 들으십시오. 사탄이 고난을 통하여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할 때

그들은 우리의 기쁨과 그들의 멸망에 한 몫 하는 것뿐입니다.

 

이해가 되십니까? 사탄은 고난을 통하여 성도들을 무너뜨리려고 시도합니다.

그것은 우리의 기쁨에 한 몫 하는 것뿐입니다.

 

바울이 빌립보서 1장에서 한 말이죠? '내안에 사는 이 예수 그리스도니'

죽음이 어떠하다고요? 죽음도 유익합니다.

 

"사탄아, 나를 죽여라. 죽음이 내게 유익하다" 유익합니다.

이것이 여러분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능력입니다.

 

여러분의 이 땅에서의 죽음은 여러분의 영원한 승리입니다. 놀라운 소식입니다.

 

제가 지금까지 참석한 성도의 장례 예배와, 앞으로 참석하게 될 장례 예배에서

저는 하나의 주제를 선포할 것입니다.

 

죽음과 마귀가 패배하였고 그리스도와 이 성도가 영원토록 통치할 것입니다.

그래서 핍박으로 인하여 고난 받는 분들,

이곳과 세계 곳곳에 여러 가지 일로 고난 받는 분들은 아시기 바랍니다.

 

우리를 멸망시키려는 사탄의 시도는

결국 우리의 영원한 기쁨과 자신의 영원한 멸망에 한 몫을 한다는 사실을

아시기 바랍니다.

 

왜냐하면 언젠가 그의 교회를 멸망시키려는 모든 시도가

자신에게로 향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은 우리가 영원토록 사탄 위에서 통치할 것입니다.

 

12절입니다. '그러므로 하늘과 그 가운데에 거하는 자들은 즐거워하라'

이것은 여섯 환상 중 하나이지만 너무나 멋진 내용입니다.

 

우리는 날아가야 합니다. 비밀 교회 스타일로 하겠습니다.

13장의 두 번째 환상입니다.

 

사탄은 신령한 권세의 아래 있는 체제가 아니라

신령한 권세 자체인 체하는 체제를 통하여 일합니다.

 

131절을 보면 두 번째 환상이 나옵니다.

여기서 사탄, 용이 여자를 향해 진노하는 모습을 보게 됩니다.

 

여자는 '교회'입니다.

순차적으로 진행되는 것이 아님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보다 13장에서 일어나는 일은 사탄이 어떻게 교회를 핍박하고 적대하는지를 보여주는 겁니다.

그 일을 바다에서 한 짐승을 일으켜서 하는 것입니다.

 

당연히 이 용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온갖 추측이 난무하고 있습니다.

이 짐승이 실제 인물인지 또는 특정한 제국인지

또는 세상 체계 배후에 있는 어떤 악한 영인지..

1세기 독자들은 필연적으로 이 짐승을 로마제국으로 받아들였습니다.

로마 황제를 숭배하는 것을 법제화하는 정부라고 여겼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이 짐승을 네로나 도미티아누스와 같은 로마 황제로 여기기도 했습니다.

그리고 21세기 주석가들 중에 많은 사람들은

이 짐승을 요한의 다른 서신에 나오는 적그리스도라고 하기도 합니다.

 

여러 리더들이 나오다가 결국 하나의 리더가 나오는데

그 리더가 반기독교 정부를 통하여

사람들을 하나님에게서 멀어지게 할 것이라는 내용이죠.

 

데살로니가후서에서 바울은 불법의 사람 곧 멸망의 아들이 나타나

자신을 높이고 신이라고 불리는 모든 것과 숭배함을 받는 것에 대항하여

하나님의 성전에 앉아 자기를 하나님이라고 내세울 것이라 했습니다.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이 짐승을 불법의 사람, 적그리스도와 연결 짓죠.

 

또 어떤 사람들은 이 짐승을 특정한 인물이나 제국과 연결 짓지 않습니다.

그보다는 역사 속에서 성도들을 핍박한 다양한 반기독교 정부를

일컫는 것이라고 합니다.

 

세계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백성을 억압하고 핍박한 리더들과 정부를

떠올리지 않을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그런 이들이 많습니다.

그리스도를 따르고 선포하는 것에 반대하는 법을 세우고 있습니다.

저는 후자에 기우는 편입니다.

 

교회사에서 그리스도의 부활과 재림 사이에 이런 이들이 예전에도 있었고

앞으로도 있을 것입니다.

 

마귀는 세상 정부와 리더들과 체계를 사용하여

교회를 억압하고 세상을 기만할 것입니다.

 

그렇다고 해서 특정한 인물이나 특정한 제국이나

특정한 적그리스도나 장차 나타날 불법의 사람을 배제시키는 것이 아닙니다.

 

그런 이들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나타나든지 상관없이

전체적인 요점을 말씀드리는 겁니다.

 

일반적인 핵심은 분명합니다.

그것은 사탄이 신령한 권세 아래에 있는 체제가 아니라

신령한 권세인 척 기능하는 체제를 통하여 일한다는 사실입니다.

 

무슨 뜻인지 알려 드리겠습니다. 본문은 요한계시록 13장이죠.

그런데 로마서 13장에서

하나님께서 세상의 이익을 위하여 정부를 세우신다는 말씀을 기억하세요?

 

그러나 정부가 스스로를 신령한 권세 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신령한 권세처럼 행사하기 시작할 때, 큰 문제들이 일어나기 시작합니다.

 

'하나님 아래에서' 이끄는 것과

'하나님의 자리에서' 이끄는 것에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후자는 극도로 위험합니다. 이것은 세계사와

오늘날 전 세계의 압제적 정부들에서 그 증거를 볼 수 있습니다.

 

교회가 억압당하고 수많은 사람들이 기만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놓치지 마십시오. 정부들이 이렇게 할 때조차도

그들은 스스로를 하나님이라고 또는 하나님을 대적한다고 하겠지만

실제로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주권적인 손 안에 있다는 겁니다.

 

이것이 요한계시록 13장의 요점의 일부입니다.

하나님께서 짐승이 하나님을 모독하고 성도를 이기고 나라를 다스리게 허락하신 것입니다.

 

5절입니다. '또 짐승이 과장되고 신성 모독을 말하는 입을 받고

또 마흔두 달 동안 일할 권세를 받으니라' 13:5

 

'또 권세를 받아 성도들과 싸워 이기게 되고

각 족속과 백성과 방언과 나라를 다스리는 권세를 받으니' 13:7

 

하나님께서 짐승으로 하여금 사람들이 신성 모독하게 이끌고

그분의 이름을 저주하고 그분의 백성을 상하게 하도록 허용하시고 권세를 주십니다.

로마서 1장의 내용과 유사합니다.

 

하나님께서 죄인들에게 자신을 내어주신 것처럼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십니다.

죄악된 정부와 리더들에게 권세를 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모든 일 가운데 주시는 격려를 잊지 마십시오.

오늘날 전 세계의 억압하는 정부 아래서 고난 받는 성도들,

심지어 이 나라에 있는 성도들 어떤 의미에서는

이 정부도 성도들을 적대시하고 있습니다.

 

두려워하거나 떨지 마세요. 하나님께서 주관하고 계십니다.

그분을 신뢰하십시오. 그분을 붙드십시오.

 

정부가 신령한 권세 아래가 아니라, 신령한 권세인 척 기능하기 시작할 때

두려워하지 마십시오. 그 대가가 점점 더 커질지라도 믿음을 굳게 붙드십시오.

속아 넘어가지 마십시오.

 

다음 짐승으로 넘어갑니다. 사탄은 친구처럼 보이지만

원수처럼 말하는 교사(즉 거짓선지자) 들을 통해 속이고

무죄한 이들을 죽임으로써 우상 숭배를 조장합니다.

친구처럼 보이지만 원수처럼 말하는 교사들을 통해 속입니다.

 

세상에서 사탄의 기본적인 전략은 기만입니다.

 

요한계시록 12장과 13장에서 설명된 용, 첫 번째 두 번째 짐승,

이들은 성부 하나님, 성자 하나님, 성령 하나님을 설명하는데 사용된 표현과 비슷합니다.

*Satanic trinity라고 하는데, 삼위일체에 대항하는 삼마일체입니다.

 

그것은 이 짐승들, 용이 하나님의 대체 신처럼 스스로를 설정하고

사람들을 속이려 한다는 겁니다.

 

특히 13장의 두 번째 짐승은 요한계시록 19장에서

심지어 교회 안에서 기만하는 거짓 선지자라고 합니다.

 

13:11절을 한 번 보세요. 한 예가 나옵니다.

'내가 보매 또 다른 짐승이 땅에서 올라오니 어린 양 같이 두 뿔이 있고',

 

'어린 양'에 동그라미 치십시오.

이 단어는 요한계시록에서 29번 사용되었습니다.

 

그 중에 28번 예수님을 '어린 양'으로 일컫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기서 두 번째 짐승이 스스로를 어린 양으로 설정합니다.

 

이 두 번째 짐승은 첫 번째 짐승을 숭배하도록 이끕니다.

사람들을 속이는 것입니다.

 

친구처럼 보이지만 용처럼 말을 합니다. 원수처럼 말을 하는 것이죠.

이 두 번째 짐승(거짓선지자)에 대해서도 온갖 해석이 있습니다.

 

반기독교 정부, 반기독교 경제 정책, 종교적, 사회적 체계, 반기독교 종교,

이단, 다른 종교 등 온갖 추측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핵심은 두 번째 짐승은 속이는데 목적이 있다는 것이죠.

그 과정 가운데 자신을 거부하는 모든 이들을 학살합니다.

 

15절입니다. 여기서 하나님의 궁극적인 주권을 보세요.

'그가 권세를 받아 그 짐승의 우상으로 말하게 하고

또 짐승의 우상에게 경배하지 아니하는 자는 몇이든지 다 죽이게 하더라' 13:15

 

첫 번째 짐승을 경배하지 않는 자는 죽임 당하는 모습입니다.

이 그림이 미래에 어떻게 이뤄질지

현재에 있어서 어떤 의미인지 온갖 해석들이 있습니다.

 

그렇지만 핵심은 분명합니다. 받아 적으세요.

이 세상의 우상을 숭배하기를 거부하는 성도들에게는

항상 치러야 할 대가가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그들의 삶이 쉽지 않을 것입니다.

이 세상에서 우상과 싸울 때 말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이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를 따르면서도, 우리 삶이 이 세상과 동일할 수 있고

세상이 좇는 것과 같은 것을 좇을 수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실이 아닙니다.

 

여러분이 그리스도를 따른다면, 이 세상에서 대가를 치르게 될 겁니다.

이 세상의 흐름을 거스르게 될 겁니다.

이 세상에서 반대에 부딪히게 될 겁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세상의 방식대로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탄은, 적그리스도는, 거짓선지자는

자신을 거부하는 자들을 학살하고, 자신을 따르는 자에게 표식을 줄 것입니다.

 

짐승의 표시인 666은 다양한 방식으로 해석되죠.

ATM 기계와 신용카드가 나왔을 대는 바로 그것이 표식이라고 했습니다.

사람들은 온갖 다양한 방식과 가능성으로 이 내용을 이해해왔습니다.

 

그렇지만 일반적인 그림은 이렇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의 이마에 하나님의 이름이 써 있다고 했습니다.

 

잠시 후 보게 될 요한계시록 14장에 144천이 나오고

요한계시록 7장에서도 이미 보았죠.

 

그렇다면 하나님을 믿기를 거부하고

이 세상의 신들과 우상을 믿는 자들의 이마에 그림이 새겨지고

불완전을 뜻하는 이 숫자가 붙어 있다는 것이 말이 되겠죠.

 

666은 불완전입니다. 그 반대로 숫자 7이 계속 나오는 것처럼 말이죠.

그렇지만 그것은 결정된 차이를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요점을 놓치지 마세요. 인류 역사상 모든 사람은 역사가 끝나는 순간까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 속하거나, 이 세상 방식에 속하거나 둘 중 하나입니다.

 

모든 사람은 둘 중 하나에 속합니다. 둘 중 하나로 표시가 됩니다.

여러분은 어느 쪽에 있습니까?

 

용과 짐승(바다에서 올라운 짐승 13:1)과 거짓선지자(땅에서 올라온 짐승 13:11)는

사람들을 이 세상 방식으로 끌어들이기 위해 힘쓰고 있습니다.

은밀하고 기만적이며 파괴적인 방식으로 말입니다.

 

그런데 바로 그 순간 요한은 지금까지 다른 장에서 그랬던 것처럼

이 모든 일 가운데 교회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네 번째 환상입니다.

성도들은 언젠가는 그리스도 옆에 담대히 서서 큰 소리로 찬양하며

그 안의 완전한 만족을 누릴 것입니다.

 

짐승과 용의 이 모든 기만과 우상 숭배 속에서

이제 144천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요한계시록 7장에 교회가 그리스도 곁에 모여서

그분과 함께 서서 그분께 노래하는 모습이죠.

 

요한이 4절에서 그들을 어떻게 묘사하는지 들어보시죠.

'이 사람들은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하고 순결한 자라'

 

'어린 양이 어디로 인도하든지 따라가는 자며'

이들은 어디든지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라가는 자들입니다.

세상의 우상숭배와 음란 속에서도 말입니다.

 

이것이 요한이 강조하고자 하는 윤리적 핵심입니다.

그는 우상숭배와 음란과 기만이 가득한 세상 속에서

성도들에게 신실하게 어린 양을 따르라고 권면하는 것입니다.

 

13:9절을 보세요.

첫 번째 짐승을 소개한 후에 요한이 바로 어떻게 합니까?

'누구든지 귀가 있거든 들을지어다 사로잡힐 자는 사로잡혀 갈 것이요

칼에 죽을 자는 마땅히 칼에 죽을 것이니 성도들의 인내와 믿음이 여기 있느니라' 13:9~10

 

여기에서 요한이 말하는 것은, 이 세상에서 그리스도를 따르려면

대가를 치러야 하지만, 결코 타협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죽임 당한다고 해도 믿음을 굳건히 붙들라고 합니다.

 

여러분의 직장과 돈을 잃는다 해도 믿음을 굳건히 붙드십시오.

조롱과 따돌림과 압제와 감옥에 갇힘과 죽음이 따른다 해도

어린 양을 따르십시오.

 

왜냐하면 언젠가 그분과 함께 서서 그분께 노래하고

그분 안에 만족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결함에 대한 상급입니다.

 

여자와 더불어 더럽히지 아니했다는 표현은

문자 그대로 독신주의자를 뜻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들은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로서

그들의 생각과 마음을 세상 방식에 내어주지 않은 자들입니다.

 

그들은 세상의 시험과 유혹에도 그리스도를 붙든 자들입니다.

이것이 세상과 타협하지 않는 순결함에 대한 상급입니다.

 

그리고 망설임 없는 복음 선포에 대한 상급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그 입에 거짓말이 없고 흠이 없는 자들이더라' 14:5

 

이는 13장 끝부분에 나오는 거짓 가르침과 대비됩니다.

여기 14장에서는 거짓으로 가득한 세상 가운데

하나님의 진리를 선포하는 성도들이 나옵니다.

 

신실하게 그리스도를 따르는 자들은 그분과 함께 서서

그분께 노래하고 영원토록 그분 안에 만족하게 될 것입니다.

 

타자 J.H.W.