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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일라 땅으로 간 다윗

LNCK 2017. 2. 7. 17:50

그일라 땅으로 간 다윗             삼상23:1-5                 17.01.22.스크랩, 출처

   


오늘은 나의 신앙이 어떤 신앙의 모습인지를 다윗의 삶을 통해서 점검하고,

주님께서 주시는 귀한 음성을 듣기를 원합니다.

 

본문 배경 설명

 

다윗이 블레셋 장군 골리앗을 물맷돌로 이긴 사건을 잘 아실 것입니다.

다윗이 블레셋의 장군 골리앗을 이기자, 사울왕은 다윗을 사위로 삼고

이스라엘의 모든 군대를 그에게 맡깁니다.

다윗은 사울의 군대장관이 되어 전쟁에 나가는 것마다 승리를 하게 됩니다.

 

이렇게 되자 백성들의 마음이 사울보다 다윗에게로 쏠리면서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라고 노래를 부르게 됩니다.

 

상황이 이렇게 되자 사울은 다윗을 시기하고 질투하는 마음이 생겨서

다윗을 죽이려고 합니다. 왕궁에 같이 살면서 기회만 있으면 다윗을 죽이려 하는데

갑자기 창을 던져서 죽이려는가 했고,

다윗이 그때그때마다 위기를 면하게 됩니다.

 

사울이 다윗을 죽이려하자 다윗은 결국 도망자의 신세가 되기로 마음을 먹고

자기를 따르는 몇몇의 참모들과 군사들을 이끌고 사울을 피해 왕궁을 떠납니다.

 

하루는 동굴로 하루는 산으로 하루는 황무지로 매일매일 죽음의 공포를 느끼면서

사울이 보낸 군사들의 추격을 받으면서 하루하루를 살아가게 됩니다.

 

모압 땅으로 피신 갔다가, 헤렛 수풀가로 되돌아오다

여러분, 이스라엘 땅은 우리나라 강원도 정도밖에 안 되는 좁은 땅입니다.

이렇게 좁은 땅덩어리에서 사울이 3천 군사를 이끌고

사울을 잡기 나라를 온통 쥐 잡듯 뒤지고 있는 상황입니다.

 

결국 다윗은 유다 땅에 더 이상 머물 수 없어서

이웃나라 모압 땅 미스베로 도망을 간 적도 있습니다.

 

다윗이 깊은 고민 끝에 이방나라 모압 땅 미스베로 도망을 가자마자

하나님은 갓 선지자를 다윗에게 보내서

하나님께서 통일 왕국을 통치할 자로 다윗인 너에게 기름을 부었는데

그런 자가 어떻게 언약의 땅을 버리고 이방 땅인 모압의 미스베로 와서

너의 지혜와 너의 힘으로 너의 몸을 숨기려하느냐? 당장 유다로 돌아가라!’

 

강하게 질책을 하며 다윗을 유다로 돌아가라고 명령을 합니다.

 

이 명령을 받고 다윗이 순종을 하여 돌아온 곳이, 바로 헤렛 수풀가입니다.

그래서 지금 다윗이 헤렛 수풀가로 머물러 있는 상황입니다.

 

헤렛 수풀가는 사해 왼쪽 유다 경계 지점에 있는 지역입니다.

아둘람 동굴과 그일라 사이에 있는 수목이 우거진 산입니다.

 

다윗이 갓 선지자의 말에 순종해서, 유다 땅으로 돌아오기는 했지만

내륙 깊숙이 들어가지 않고,

유다 국경 지역에 머물면서, 소위 납작 엎드려있었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않고, 몸을 피신한 상태로만 있었던 거죠.

 

내륙지방으로 들어가면, 바로 사울에게 발각될 것이고

붙잡혀 죽게 될 것이 불 보듯 뻔했습니다.

 

바로 이 상황에서 본문 삼상23:1절 말씀이 전개되고 있습니다.

 

사람들이 다윗에게 전하여 이르되 보소서 블레셋 사람이 그일라를 쳐서

그 타작마당을 탈취하더이다 하니삼상23:1

 

지금 헤렛 수풀가에서 납작 엎드려 복지부동하고 있는 상황에서

서쪽에 있는 블레셋이 유다 땅 그일라로 침공해 들어왔다는 소식을

누군가가 다윗에게 전해주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스라엘의 왕은 사울입니다.

블레셋이 유다로 침공해 들어왔으면, 이러한 상황에서

그일라 주민을 지켜주고 보호해 주어야 할 사명이 누구에게 있습니까?

사울 왕이 마땅히 블레셋을 막고 그일라 주민을 보호해야 합니다.

 

다윗은 이럴 때 어떻게 해야 합니까?

복지부동하고 가만히 납작 엎드려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다윗이 어떻게 합니까?

이에 다윗이 여호와께 묻자와 이르되 내가 가서 이 블레셋 사람들을 치리이까?

여호와께서 다윗에게 이르시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을 치고 그일라를 구원하라 하시니” 23:2

 

상식적으로 생각해도 그일라 주민을 위해 내가 블레셋을 맞서 싸워야 할까요?

하나님께 묻고 있는 다윗도 이상하고,

이렇게 묻고 기도하는 다윗에게 그일라 땅으로 가라고 하시는 하나님도 이상합니다.

상식적인 차원에서 이해가 되지 않는 상황입니다.

 

바로 이런 상황에서 다윗의 참모들이 어떻게 하는가? 3절입니다.

다윗의 사람들이 그에게 이르되 보소서 우리가 유다에 있기도 두렵거든

하물며 그일라에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군대를 치는 일이리이까 한지라

 

다윗의 참모들이 현실 상황을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유다 땅 헤렛 수풀가에 납작 엎드려 있기도 버거울 판인데

우리가 어떻게 그일라 땅에 가서 전쟁을 할 수 있습니까?’

 

참모들이 이렇게 말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여러분, 그일라 땅이 어디에 있는가 하면

헤브론 땅에서 13키로 떨어져 있는 곳입니다.

 

쉽게 그림언어로 말하자면 우리나라로 말하면 대전정도입니다.

다시 말하면 내륙 깊숙한 곳입니다.

 

이러한 상황 때문에 다윗의 참모들은

거기에 가서는 절대 안 된다고 말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약 다윗의 군대가,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과 전쟁을 벌인다면,

영락없이 사울에게 붙잡힐 상황이었습니다. 내륙 깊숙한 지역이니까요.

 

다윗이 참모들의 말을 듣고 생각해 보니, 참모들의 말이 일리가 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묻습니다. 4절입니다.

 

다윗이 여호와께 다시 묻자온대, 여호와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일어나 그일라로 내려가라 내가 블레셋 사람들을 네 손에 넘기리라 하신지라

 

여러분, 다시 하나님께 나아가 묻는다면, 여러분이라면 어떻게 묻겠습니까?

저 같으면

하나님, 블레셋과의 전쟁에서 승리를 약속하셨는데

이번에는 그것 말고,

우리가 그일라 땅으로 갔을 때

사울의 손에서도 우리를 지켜 주시겠습니까?’

 

저라면 이렇게질문 할 것 같습니다.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 앞에 두 번째 나가서,

첫 번째 물었던 기도를 똑같이 합니다.

, ‘사울의 손에서 구원해 주시겠습니까?’를 묻지 않습니다.

 

이 다윗의 두 번째 물음에 하나님은 어떻게 대답을 하십니까?

이번에도 가라 블레셋을 네 손에 넘기겠다고 말씀합니다.

첫 번째 대답과 같습니다.

 

이렇게 해서 다윗은 하나님께서 가라 하신 명령을 받들어

반대하는 참모들을 설득하여

결국 그일라 땅으로 가서 블레셋과 싸워 그일라 주민들을 구원했다는 이야기입니다.

 

삼상23:5 “다윗과 그의 사람들이 그일라로 가서 블레셋 사람들과 싸워

그들을 크게 쳐서 죽이고 그들의 가축을 끌어 오니라

다윗이 이와 같이 그일라 주민을 구원하니라

 

이 사건은 이렇게 해피엔딩으로 끝이 난 것처럼 보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두절만 내려가 7절에

 

다윗이 그일라에 온 것을 어떤 사람이 사울에게 알리매

사울이 이르되 하나님이 그를 내 손에 넘기셨도다

그가 문과 문 빗장이 있는 성읍에 들어갔으니 갇혔도다

 

그일라 땅에 가게 되면 이런 일이 벌어질 것이라고 참모들이 미리 예측하고,

가면 안 된다고 했지 않습니까?

 

문과 문빗장이 있는 곳에 들어왔으니 갇혔도다.’

한마디로 내륙 깊숙한 곳에 왔으니, 독안에든 쥐가 되었다는 말입니다.

사울이 다윗을 그토록 잡기를 원했는데 정말로 잡을 기회를 포착하게 된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이야기의 최종적인 마무리는 14절에서 끝납니다.

 

다윗이 광야의 요새에도 있었고 또 십 광야 산골에도 머물렀으므로

사울이 매일 찾되 하나님이 그를 그의 손에 넘기지 아니하시니라

 

사울이 아무리 붙잡으려고 해도

하나님은 사울의 손에 다윗을 넘기지 않으셨다는 것입니다.

 

적용

 

혹시 내가 이 다윗 상황이었다면 과연 어떻게 했을까요?

헤렛 수풀가에 머물러 기도하며 미래를 준비하며

하나님께서 준비하고 계시는 하나님의 때가 올 때까지

군사 훈련하며 기도하며 복지부동하며 납작 엎드려 있겠는가요?

 

아니면 그일라 땅으로 가되 사울에게 거의 붙잡힐 듯한 상황,

죽음의 공포를 매일 매일 느끼며 도망은 다니되

붙잡히지 않는 은혜를 경험하겠는가요?

 

아마도 제가 그 상황이었다면 하나님의 때를 기다리면서

헤렛 수풀가에 머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일라 땅을 까면 사울에게 잡혀 죽게 될 것이 분명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여기서 다윗은 왜 그일라 땅으로 갔을까요?

이 문제를 깊이 생각해 보아야 합니다.

 

이스라엘 나라에 관한 영토에 관한 가장 정확한 정보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은

사울의 군대 장관인 다윗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다윗은 사울의 군대장관으로 수십 차례 전쟁을 하면서

백전백승한 장수이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결국 다윗이 그일라 땅으로 가기로 마음먹었을 때,

자기의 삶과 인생이 본격적으로 도망자의 삶이 되며

삶의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고난의 행군 자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꿰뚫어보고 그일라 땅으로 간 것이라는 말씀입니다.

 

다윗의 이 모습이 무엇입니까?

신구약 성경을 정통하는 하나님을 전심을 다하여 사랑하고

하나님을 온 마음을 다하여 경외했던 사람들이 선택한 신앙의 모습이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하나님의 명령과 하나님의 뜻을 받드는 데 있어서

자기의 삶과 인생과 삶의 기반 전체를 내 던지며 헌신하며 순종했던 것이

우리 믿음의 선진들이 하나님을 섬겼던 방법이었습니다.

 

내가 그 길을 선택했을 때,

내 삶과 인생과 내 사역과 모든 것이 총체적으로 흔들리고

까딱 잘못하면 죽음의 자리까지 내몰린다는 것을 이미 꿰뚫어 보고,

알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것이 주의 길이라고 판단했을 때는

그 길을 묵묵히 가는 것,

이것이 믿음의 선열들이 걸어갔단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걸어 가야할 신앙의 목표가 되어야 할 줄 믿습니다.

 

   지금 나의 신앙의 모습이 어떤 모습입니까?

   혹시 이 모습과는 완전 정반대의 모습이 아닙니까?

 

   열심히 주님을 위해 섬기고 봉사하고 주를 위해 헌신하면

   하나님은 내 삶을 축복해 주셔서 많은 사람들에게

   존경받고 사랑받는 삶이 되게 해 달라는 그런 신앙의 모습은 아니냐는 것입니다.

 

사도행전 20장에 보면 사도 바울이 에베소에서의 사역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장면이 나옵니다.

 

그때 성령님이 친히 나타나셔서 사도 바울의 길을 예언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에베소에서 사역을 끝내고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는 사도 바울을 향하여

성령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셔서 이렇게 예언하십니다.

 

너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너를 기다리고 있는 것은 결박과 환난이다.’

여러분, 이 말은 너 이번에 예루살렘으로 올라가면 붙잡혀서 죽는다는 것입니다.

 

성령님이 나타나셔서 앞길을 이렇게 예언하신다고 한다면

우리는 당연히 어떻게 이 예언을 받아들이겠습니까?

 

아 하나님께서 이번에는 올라가지 말고. 좀 있다가 올라가라고 신호를 주시는구나

당연히 우리는 이 예언을 이렇게 받아들일 것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이 예언기도가 끝이 나자마자 사도 바울이

사도행전 전체에서 가장 감동적인 신앙고백을 토해 놓습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의 복음을 증언하는 일을 마치려함에는

나의 생명조차 귀한 것으로 조금도 여기지 아니하노라할렐루야!

 

지금 다윗이 그일라 땅으로 올라간 모습과

사도 바울이 예루살렘으로 올라간 모습이,

똑 같은 신앙의 모습입니다.

 

이 모습이 하나님을 사랑하고 경외했던 사람들이 걸어갔던

믿음의 선배들의 삶의 모습입니다.

 

이들에게는 하나님과 어떤 거래를 하고자 하는 마음이 전혀 없었습니다.

주를 위하여 수고하고 고난 받고 어려움을 겪는 그 자체를

자신의 생애의 영광과 기쁨으로 생각하고 살았던 분들이 우리의 믿음의 선진들입니다.

 

여러분, 월요일 돈 벌로 밖으로 나가는 아버지는 어떤 마음일까요?

월요일 집을 나서면서 주님, 좋은 직장과 좋은 사람들과 함께

돈을 벌게 하시니 할렐루야! 하나님 감사합니다. 하나님께 영광을 돌립니다.

이런 아버지 보셨습니까?

 

월요일 아침 피곤한 몸을 이끌고 나가면서

내가 올해까지만 하고 그만둬야지하면서도

가족들 때문에 102030년 견디어내지 않습니까?

 

오랜 세월이 지나 자녀들이 철들면서

그런 아버지를 전심으로 사랑하고 존경하는 마음 갖지 않습니까.

 

우리 성도들의 실존도 이와 똑 같습니다.

우리가 걸어가는 믿음의 길은 이 세상에서 고난의 길이요 가시밭길입니다.

이 세상에 믿음의 길은 발붙일 곳이 없는 삭막한 광야와 같습니다.

 

그래서 사도 바울은 믿음의 아들 디모데를 복음의 현장에 보내면서

복음과 함께 고난을 받으라고 말씀합니다.

이 세상에서의 성도의 실존은 눈물이요 한숨이요 답답함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자신의 삶과 인생이 본격적으로 도망자의 삶이 되며

삶의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고난의 행군 자체가 될 것이라는 것을

명백하게 꿰뚫어보고도.. 그 길을 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하나님이 가라 하셨기에 죽음의 공포를 매일매일 느끼지만

하나님이 지켜주시고 보호해 주시는

붙잡히지 않는 하나님의 은혜를 순간마다 누리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이 은혜는 눈물을 감사로 한숨을

찬양으로 답답함을 기쁨으로 바꾸어 줍니다. 바로 이 은혜를 경험하기 위해서입니다.

 

여러분, 오랫동안 지속적으로 아버지로서 엄마로서 자녀로서의

자리를 지키고 믿음생활을 유지하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바로 그 자리가 저와 여러분의 그일라 땅이요 예루살렘입니다.

그 자리가 어떤 시련과 아픔과 곤고함이 있다 할지라도

그 자리에서 끝까지 그때그때마다 주시는

이 세상에서는 도저히 경험할 수 없는 하나님의 놀라운 은혜를 경험하며

믿음의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믿음의 성도들이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