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적지도자 5 상생의 지도자 / 잭 푸닌 - YouTube
◈영적지도자 5. 상생의 지도자 눅6:22~26 출처, 정리
A Spiritual Leader 5. Balanced By The Body Of Christ
▲서론 및 주제.
영적인 지도자는, 자기가 아무리 유능하고 뛰어나도,
자기 사역은, 그리스도 몸의 일부만 감당하고 있을 뿐이지,
그리스도 몸이 전 영역을 다 카버할 수는 없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인식합니다.
자기 분야에서는, 최고가 될 수 있어도
전체 분야를 총괄하는, 유일한 최고 지도자는, 결코 될 수 없는 것입니다.
아무리 뛰어난 지도자라도, 그리스도가 아닌 이상, 사람은 그렇게 할 수 없습니다.
그래서 성숙한 영적 지도자는,
자기 사명, 자기 은사, 자기 분야의 일을 성실히 최선을 다해 감당하되,
자기 사명과 자기 분야가 아닌, 다른 영역에 있어서는,
기꺼이 도움 받을 줄도 알며,
자기가 다른 지체와 협력을 할 수밖에 없다는 사실을.. 겸허히 인정하게 됩니다.
이것이 바로 오늘 제 푸닌이 말씀드리려고 하는 ‘사역자의 균형’입니다.
내가 온 몸을 다 카버할 수 없고, 나는 몸의 일부 지체로 사역할 뿐이며,
몸이 균형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나도 제 몫을 감당해야 하고,
또 다른 사람의 존재와, 사역과, 기여도를.. 내가 인정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렇지 못하고, 스스로 ‘독불장군, 또는 천상천하 유아독존’ 식으로
은연중에라도 자기를 그렇게 스스로 높인다면,
그는 교만의 미혹을 받은 것이며, 사탄의 영향력을 받은 것입니다.
‘균형을 잃어버린 지도자’인 것입니다.
◑1. 다른 지체가 잘 되어서, 내가 잘 된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부름 받은 사역자들도
각각 다른 직임과 임무가 있습니다. 은사와 부르심은 사람마다 각각 다릅니다.
그 각각의 사역자는, 자기 맡은 분야에서는 최선을 다 한다 할지라도,
자기 분야 하나만 갖고서는, 전체 그리스도의 몸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눈’이 역할을 잘 하려면, 눈 자기자신만 잘 해서 되는 것은 아니고,
입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한 입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눈은 위장의 도움을 받아야 하고, 또한 눈이 위장에게 도움을 주기도 합니다.
만약 오늘날 내가 ‘눈’의 역할을 잘 감당하고 있다면,
사실은 그것은 몸의 다른 지체들이, 눈을 도와주었기 때문입니다.
입이 영양분을 먹어 주었고, 손이 숟가락 움직이는 수고를 해 주었고
위장 이 양분을 소화시켜 주었고, 신장이 자기 역할을 제대로 해 주었기 때문입니다.
‘눈’은 그렇게 입과 위장과 손과 신장의 도움을 받아서.. ‘눈’이 된 것입니다.
물론 그것은 입, 손, 위장, 신장도 마찬가지입니다.
서로 도움을 주기도 하고, 서로 도움을 받기도 합니다.
오늘날 만약에 내가 성공했다면,
그것은 많은 사람들, 많은 지체들, 많은 기관들의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된 것입니다.
정말 나는 ‘잘 차려진 밥상에 숟가락 하나 더 놓은 것’에 불과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항상 내가, 여러 지체들로부터, 도움을 받고 있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래서 절대로 자고할 수 없습니다. *自高
▲그리고 나아가 ‘내가 사는 길’은
내가 스스로 혼자만 잘 하는 것도 필요하지만,
끊임없이 다른 지체를 도우는 길입니다.
입과, 손과, 위장과, 간장이 잘 살아야.. 각 지체가 각각 다 활성화되어야
눈도 잘 활동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만약 눈 내 주위의 지체들이, 활성화되지 못하고, 시들시들 죽어가고 있다면..
그것은 장차, 나 (눈) 역시 시들시들 죽어가게 된다는.. 선행지표입니다.
왜냐하면 몸의 각 지체들은
서로 양분과 역할을 잘 주고 받는 가운데서.. 모든 지체가 다 잘 되든지
서로 양분과 역할을 잘 주고 받지 못하는 가운데서.. 모든 지체가 다 병 들어가는지..
다른 지체는 다 병들어 가는데.. 우리 지체만 잘 되고 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한 10년~20년 지나 보십시오.
다른 지체가 다 병들어가고 있으면,
결국은 그 파장이, 내 지체에게도 반드시 미치게 되어 있는 것입니다.
각 지체가 함께 어깨동무 스크럼을 짜서 있는데,
다른 사람이 다 주저앉는데, 나 혼자 서 있을 수 없습니다. 그건 말이 안 됩니다...
그러므로 ‘눈’이 사는 길은,
여기서 ‘눈’을 예로 들고 있지만, 다른 각 지체도 마찬가지입니다.
장기투자를 하는 것입니다. 먼 미래를 내다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다른 지체, 몸의 다른 기관들이.. 열심히 살아나는 것입니다.
그러면 결국 ‘눈’인 나도.. 동반 성장하게 되어 있습니다.
경제 원리도 이와 같을 것입니다. 그래서 ‘동반 성장’이라는 말이 유행하고 있습니다.
한쪽만 불균형적으로 성장하다보면.. 결국에는 동반 하락하게 되어 있습니다.
음식점 한 집 있는데, 옆에 다른 음식점이 더 들어오면,
서로 경쟁자가 아니라, 더 잘 될 수 있습니다.
음식점 컴파운드, 음심점 집합지(먹자 골목)를 이루어.. 더 잘 될 수 있습니다.
▲한국에 1980년대 전후로 약 20년간, 선교단체들이 대단히 부흥했습니다.
CCC, 네비게이토, IVF, JOY, UBF 등의 선교회들이 매우 활발했습니다.
대학을 졸업한 직장인들도, 선교회에 많이 가입해서, 활동을 했습니다.
그때 지역교회들도 매우 활발했습니다. 지역교회들과 선교단체들은
서로가 은혜를 주고받으면서, 서로의 부족함을 보충해 주면서
동반성장을 한 것입니다.
그런데 대학생 선교회들의 지도자들이, 대거 신학교로 들어와서 목회자가 되었습니다.
지역교회에서 ‘거기는 교회가 아니다’ 라고 비판한 점도 있었고,
또한 선교회 staff들이, 목회자의 신분을 얻고 싶었는지도 모릅니다.
어쨌거나 ‘대학생선교회’가 주춤하면서
‘지역교회’까지 주춤하게 된 것은, 사실입니다.
동반 성장의 선순환/ 상승작용이 일어난 것이 아니라,
동반 하락의 역기능적 (악)순환이 일어난 것입니다.
오늘날에도 혹시 ‘우리 교단이 최고다. 우리 교회가 최고다. 우리가 최고다’ 하면서
다른 지체들을 무시하고, 말라 죽게 하려는 시도가 만약 있다면..
그거야말로, 사탄 편에 서는 것입니다.
◑2. 오늘날 ‘상생의 지도자’가 필요합니다.
▲오늘날 쓰임 받는 영적인 지도자는, ‘상생의 길’을 도모하는 사람입니다.
현대의 개인주의적 문화에서, 모두가 자기가 잘 되려고 안간힘을 쓰고 있습니다.
자기가 잘 되기 위해서,
심지어는 다른 지체를 ‘경쟁자’로 여길 수도 있습니다. 이건 마귀적인 생각입니다.
성경은 상생의 길, 지체가 서로 도와주어서 잘 되는 길을 가르치고 있는데,
마귀는 ‘저 사람이 무너져야, 네가 잘 될 거야’ 하는, 인간적 생각으로 유혹하고 있습니다.
‘저 사람이 인정받는 동안, 나는 무명일거야’ 하는 생각은,
정말 그리스도를 진실로 새롭게 만나서 거듭나야 하는 사람입니다.
오직 예수님 한 분만, 왕/ 제사장/ 선지자의 직임을 모두 한 몸에 지니고 계십니다.
그렇지 못한 사람들은, 아무리 뛰어난 베스트 지도자라 할지라도
‘몸의 한 지체’에 불과합니다. ‘몸의 한 지체’로서 뛰어난 베스트 지도자인 것입니다.
그런데 진짜 뛰어난 베스트 지도자는
이제 ‘상생의 길’을 모색하고, 도모할 줄 아는 지도자입니다.
나 혼자로서는, 절대 자기 개인기로는 승리할 수 없는 시대가 되었습니다.
이제 마귀와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하고, 하나님 나라를 도래하게 하기 위해서는
끊임없이, 내 주위의 다른 지체들을, 도와주어야 합니다.
기도로 도와주고, 격려로 끌어주고, 말씀으로 도와주어야 합니다.
그가 오늘날 우리 시대가 필요로 하는, 진정 성숙한 영적 지도자입니다.
그렇게 상생하게 될 때.. 모두가 동반 성장하게 되는 것입니다.
교단이 같으면 좋고, 한 교회에 서로 같이 소속되어 있으면 좋지만,
그런 형식적 결속이 꼭 없어도, 무방합니다.
‘서로 교제 관계 fellowship’ 으로 계속 지내면 됩니다.
서로 원수 맺고, 싸우고, 상호 비방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서로가 서로의 존재를, 상호 인정해주는 것입니다.
‘우리만 순수하고, 우리만 정통이고, 너희는 다 가짜다’ ... 이건 안 됩니다.
우리 몸에 ‘눈’과 ‘허파’가 서로 떨어져 있지만,
서로 존재감을 인정하고, 서로 협력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됩니다.
물론 ‘혈액’처럼,
몸의 각 기관을 돌아다니며, 곳곳마다 양분을 공급하는 사명자도 있고요,
또는 ‘관절’처럼,
지체와 지체를 이어주고 연결하는 사명을 가진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은, 서로 따로 떨어져 있지만,
각자 자리에서, 자기 고유의 사명을 성실히 감당합니다.
◑3. 자기 고유의 사명에 만족하십시다.
신실한 주의 종이, 하늘로부터 비교적 일찍 부름을 받았다면
그것은 자기 사명을 일찍 다 마쳤기 때문입니다.
(자기 사명을 다 하지 못한 분들은, 길게 오래 살 수도 있습니다. 천국이 더 좋은데 말입니다.)
▲여러분, 몸의 각 기관들은, 자기 고유 기능, 즉 자기 사명이 있습니다.
그리고 오직 자기 기능, 그것에만 죽도록 충성합니다.
위장은 소화시키는 일.. 그것 하나에만 충성을 다합니다.
위장이, 뭐 입처럼 노래를 부를 필요는 없습니다.
위장이 소화시키는 자기 일을 제쳐 놓고, 입이나 코가 해야 될 일을 한다면..
우리 몸은 큰일 나게 됩니다.
위장이 할 줄 아는 그 단 한 가지 일.
(물론 다른 기관, 다른 장기도 마찬가지입니다만, 위장을 예로 듭니다.)
그것 하나로는, 별로 빛을 못 봅니다. 크게 주목을 받지 못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위장은, 자기사명을 충실히 다 하면서
똑같이 자기사명을 충실히 다 하는 허파, 간장, 신장 등
다른 지체들과 어울려서.. 결국은 아름다운 작품을 이루어내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는, 이런 성경적 의식으로 무장해야 합니다.
과거에는 매스미디어가 없어서, 별로 그런 폐해가 없었는데,
오늘날 매스미디어는, 한 가지 역기능이 있는데,
‘소수의 스타’를 만들어낸다는 것입니다.
매스미디어 특성상, 다수를 스타로 만들어 낼 수는 없습니다.
TV 연속극에도, 영화에도, 출연하는 사람이, 계속 나오게 됩니다.
그러니까 오늘날 많은 사역자들은, 비록 자기가 ‘스타’가 아니더라도
자기가 사는 도시에서 ‘뜨는 목회자’가 아니더라도,
자기 고유의 역할, 사명에 충실함으로서
자기 스스로, 자부심과 만족과 감사를 느껴야 하는데...
자기는, ‘위장’으로서의 자기 ‘단품 사명’을 잘 감당하고 있으면서도 *단품 메뉴에 비유한 말
스스로 자부심/ 만족/ 감사를 느끼지 못하고,
늘 자기비하/ 불만족/ 불평을 가지는 사역자들이 있습니다.
꼭 남 탓을 하자면, 매스미디어 때문이고,
실제로는, 우리 각자가 아직 믿음이 견고하지 못해서
‘내 단품 사명’ 감당하는 것은.. 뭔가 어설프게 보입니다. (이건 잘못된 생각입니다.)
주님의 몸, 하나님의 나라는
몸의 모든 지체와 기관이 연합해서, 하나의 큰 ‘모자이크’와 같은 그림을 완성한다는
그런 개념이 부족하기 때문에...
오늘날 내가 늘 불만족하게 살게 된다는 것입니다.
우리 각자는, ‘모자이크’의 한 부분을 채우는, 한 조각일 뿐이지
나 혼자가, 전체 모자이크를 다 채울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만 빼고요!
▲그렇게 ‘자기 기능, 고유 역할’에 만족했다면
이제는 다른 지체의 ‘기능, 역할’을 보고서, 인정/ 만족할 수 있어야 합니다.
‘왜 저 사람은, 저것 밖에 못 하는가?’ .. 그게 아니라
‘저 사람이, 저 사명을 충실히 감당하는 것은.. 전체 모자이크를 조각하는 일에
저 한 분야가, 저 한 사람이 절실히 필요하구나!’ .. 하는 안목을 가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다른 지체들을 자꾸 살려야 합니다.
자기 주위 사람들을 자꾸 죽이려 하고, *비방+
‘우리 공동체만 잘 되겠다’고 하는 것은.. 그야말로 마귀가 주는 생각입니다.
▲저 푸닌도, 제게 한정된 limited 사역만 하려고 할 때,
어떤 때는 한숨이 나올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정신을 차리고 보면, 그게 정상입니다.
우리 각자는 모두, 예외 없이, 모두가 제한된 limited 사역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자기 사역의 한계와 범위를 인정하고,
그 범위를 벗어나는 사역에 대해서는
괜히 against(반대)해서는 안 됩니다.
내 사역만 진리이고, 다른 사역은 모두 불 필요한 사역으로 여겨서도 안 됩니다.
오히려 성숙한 지도자는, 다른 사역에 대해서 존경하고 높이 평가합니다.
그 지체가, 결국은 나를 도우는 지체이고,
모든 지체들은, 서로서로 의존하고 있다는 사실을, 그는 잘 알기 때문입니다.
각 지체는, 자기 혼자 스스로, 결코 충족하거나, 완전해 질 수 없습니다.
무지개가 일곱 빛깔이 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한 두 빛깔로는, 무지개가 될 수 없습니다.
저 지체는, 나의 대적이 아니라,
나의 불충분을 서로 보충해주는, 보완적 존재라는 사실을 결코 잊지 말고,
우리는 상생의 길로 향해 나아가야 할 것입니다.
저 푸닌은, 이런 사실을 깨닫고는.. 마음에 평안을 누리게 되었습니다.
아무리 사람들이 나를 비방하고, 나를 몰아내려 해도
‘나는 그리스도의 전체 몸에 꼭 필요한 일부분’이라는 사실을
제 스스로가 깊이, 인식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일부 사람들이 제게 ‘당신은 왜 고작 그것밖에 못 하느냐?’
‘당신은 더 큰 사역을 할 수 있고, 왜 더 광범위한 사역을 하지 못하느냐?’
하고 지적해도, 제 마음이 평안합니다.
나는 내가, 몸의 한 지체요, 일부분임을 깨닫고, 내 사명에만 충실하면 된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동시에, 내가 스스로 너무 큰 욕심을 내지 않아도.. 마음이 편안해졌습니다.
내가 뭘 혼자서 모자이크를 완성하는 것은 아니고,
나는 나의 최선을 다 하는 것뿐이요,
전체 그림과 모자이크는, 우리 주님이,
다른 ‘조각’들과 함께, 전체를 완성하시기 때문입니다.
▲구약에도 보면, 선지자들은 정말 자기 사역이 제한된 것이었습니다.
따르는 자기 소속 신자들도 거의 없었고, 그 활동 범위도 넓지 못했습니다.
그러나 ‘선지자 사역’은, 구약 그 시대에, 정말 꼭 필요한 부분의 사역이었습니다.
선지자 중에, 팔방미인이 되어서
이것도 잘 하고, 저것도 잘 한 선지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가, 자기 사명 한 가지만 잘 감당했는데도.. 그는 잘한 것이었습니다.
오늘날 가만히 보면,
‘외교적인 설교자 diplomatic preachers’들이
팔방미인이 되려고 하고, 모든 면에 있어서 부족함이 없는
그런 완벽한 사람의 이미지를.. 보여주려고 하는 것 같습니다.
▲저는, 하나님께 받은 제 고유한 사명이 무엇인지
그것을 발견하기까지, 15년이 걸렸습니다.
제가 20세에 거듭난 이후로, 15년이 지나서야,
하나님이 제게 주신 고유한 사명이 무엇인지.. 명확하게 알게 되었습니다.
(물론 빨리 깨닫는 사람도 있을 수 있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속에, 늘 짐이 되는 사역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우리가 이런 ‘자기 고유 사명’을 발견하는데 장애가 되는 것은
자꾸 <균형 잡힌 사역>을 하고자 하는 생각 때문입니다.
다른 말로, 팔방미인으로서, 한 군데도 빠짐이 없는
두루두루 잘 하는 사역자가 되려고 하다가..
결국은 아무 것도 잘 하지 못하는.. 두루뭉실한 사역자가 되고 만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주시는 ‘고유한 사명’은
아주 <불균형>적인 것이 될 가능성이 아주 큽니다.
그리고 <전체 균형, 밸런스>는
다른 사역자와 함께, 연합해서 맞추는 것입니다.
그래서 진정한 사역자는, 자기 고유분야에 아주 열심을 내면서도
늘 겸손할 수밖에 없습니다.
왜냐하면 자기는, 자기 고유분야에 전문가이지만,
그 외 다른 분야로는, 아무 짝에도 쓸모 없기 때문입니다.
반드시 다른 지체와, 다른 분야와 연합해서 퍼즐이 맞춰져야,
제 구실을 비로소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숫자에 너무 바더 되지 마시기 바랍니다. *bother: 괴로움 당하다
예수님도, 12제자, 70명, 120제자... 거기까지가 예수님 사역의 ‘등록신자’라 볼 수 있습니다.
많이 모이는 것이, 좋은 것이지만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정말, 예수님처럼,
재생산이 가능한 12제자를 키워놓을 수 있다면.. 여러분은 성공한 사역자가 됩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사실 2~3명을 키우기도 쉽지 않다고 말들을 합니다. 그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자꾸 몇 백 명, 몇 천 명에 바더 되지 마십시오.
19세기까지만 해도, 대부분 교회들은 많이 모여야, 고작 몇 백 명 이었습니다.
세상에 아직 도시화가 진행되지 않았고,
마이크도 없었고, 큰 체육관이나 강당도 아직 없었고,
우리가 알고 있는 대부분의 위대한 설교자들은
몇 십 명, 많으면 2~3백 명 모아놓고 집회를 했습니다. (19세기 중반까지)
당신의 사역은, 수 백 ~ 수 천 명을 모으지 못해서.. 실패한 것이 아니라,
재생산이 가능한 ‘12제자’를 만들지 못해서.. 실패하는 것입니다.
수 십 년 설교하고 사역을 하지만,
큰 건물을 짓지 못해서.. 실패가 아니라
당신을 존경하고, 당신을 본받기 원하는.. 핵심제자 2~3명이 없어서.. 실패인 것입니다.
<아래는 번역 생략. 각자 읽어보세요!>
Never judge the success of your labours by your popularity. Jesus pronounced a woe on all those who were "popular" with the people, because that was the identifying mark of a false prophet (Luke 6:26). So if you’re a very popular preacher you could be a false prophet! on the other hand, Jesus told His disciples to rejoice when everyone spoke against them, because that was one of the marks of a true prophet (Lk.6:22,23).
Do you really believe what Jesus said here?
Remember that every true prophet in Israel’s history and in church history was a controversial figure, who was hounded and hated and falsely accused by the religious leaders of his time.
There has not been a single exception to this rule - whether it be Elijah and Jeremiah in Old Testament times, or John the Baptist and Paul in the first century, or John Wesley and Watchman Nee in more modern times.
So we should never gauge the eternal success of our labours by how popular we are!
We shouldn’t gauge the success of our labours by statistics either - by how many people raised their hands in our meetings or how many people we preached to etc.,
Going by statistics, we would have to say that Jesus’ ministry was a total failure, because at the end of His ministry, He had only 11 men to present to His Father (John 17). But the success of His ministry was seen in the type of people those eleven disciples were! They were worth far more to God, and could accomplish more for God, than eleven million of today’s half-hearted, money-loving, compromising, worldly "believers".
I’ve felt that if I could produce eleven people of the calibre of those first apostles, in my whole life, my ministry would be a glorious success. But it’s not easy to produce even two or three such people. It is far easier to gather a crowd of worldly compromisers who "believe in Jesus", but who do not love Him with ALL their hearts.
In every movement that God started in Christendom during the last 20 centuries, decline set in by the time it entered the second generation and it no longer remained the same vibrant, fiery movement that it was when started by its founder. Why?
One reason was that the second generation began to be taken up with numbers. They thought that their increasing in number was the proof that God was blessing them.
But the fastest growing groups in the world in recent years have been the cults and fundamentalist-groups of other religions. What does that prove? Just this - that numerical growth is no proof of God’s blessing.
God calls us to concentrate on the ministry He has given us in Christ’s Body and at the same time, to work in cooperation with others who have different ministries. It is impossible to evaluate accurately the results of our ministry, because we are part of a team - the Body of Christ.
All we need to ensure therefore is that we are faithful to the task God has given us to fulfil.
▲‘그리스도의 몸’은 종합병원에 비유할 수 있습니다.
환자가 몸이 아파서 병원에 가면,
내과, 외과, 이비인후과, 방사선과 등 많은 부서가 나눠져 있어서
그 환자를 적절하게 도와주게 됩니다.
병원에는 의사가 많지만, 각자가 하는 임무가 각각 다릅니다.
안과의사는, 하루 종일 환자들의 눈만 들여다봅니다. 다른 일은 하지 않습니다.
치과의사는, 하루 종일 환자들의 치아만 치료합니다. 내과나 외과 치료는 하지 않습니다.
안과의사는, 자기가 아무리 명의이지만, 자기가 의사 중에 최고라고 생각할 수 없습니다.
또는 ‘뭐니뭐니 해도 우리 몸의 각 기관 중에는, 눈이 최고로 중요해!’ 라고도 말할 수 없습니다.
눈이, 우리 몸에 매우 중요한 것은, 두말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눈이 최고로 중요하다’ 라고는 말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두뇌, 심장, 위장, 간장, 대장 등
몸의 다른 기관들도, 눈과 똑같이 중요하기 때문이고,
눈이 병이 나면, 사람이 편안하게 살기 힘들지만,
몸의 다른 기관이 탈이 나도, 사람이 편안하게 살기 힘든 것은, 마찬가지이기 때문입니다.
'분류 없음 > 2017' 카테고리의 다른 글
영적지도자 7. 다른 사람을 책임짐 (0) | 2017.09.14 |
---|---|
영적지도자 6. 복종을 통해 깨어진 사람 (0) | 2017.09.14 |
영적지도자 4. 하나님의 음성을 들음 (0) | 2017.09.13 |
영적지도자 3. 하나님을 두려워 함 (0) | 2017.09.11 |
영적지도자 2. 하나님을 아는 사람 / 잭 푸닌 (0) | 2017.09.08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