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irty Pillow of Adonuram Judson
John Walsh
그들은 아도니람을 몇 걸음 더 끌고 갔습니다.
그리고 버마인의 나무집 안으로 던졌습니다.
아도니람은 천정을 쳐다보니
긴대나무가 가로질러 설치되어 있었습니다.
그는 탄식했습니다. “또 다른 감옥으로 왔군”
아도니람은 거의 1년간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영국이 버마에 전쟁을 선포할 때부터 투옥된 것입니다.
버마 왕은, 모든 외국인들을 스파이로 단죄했습니다.
그래서 아도니람과 다른 선교사들은 끌려와서
사형수들을 가두는 곳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버마에서 가장 극악한 죄수들과 함께 갇힌 것입니다.
거기엔 긴 대나무 막대가 천정에 설치되어 있었는데
수인들은 발에 쇠 족쇄가 채워진 채
밤에는 족쇄가 공중의 대나무에 잡아매인 채 지내야 했는데
그 높이는 1.2미터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그렇게 머리가 땅으로 향하여 밤새 잠을 자야 했습니다.
그 집은 낮에도 컴컴했습니다.
왜냐면 창문이 없었으니까요.
그들은 하루에 10분 정도만 바깥 태양아래 나갔고
다시 감옥에 들어왔는데 인분과 살 썩는 냄새가 진동했습니다.
버마인들은 죄수들에게 음식을 주지 않았습니다.
그렇지만 아도니람의 아내 앤이 격일로 음식을 조금씩 가져 왔습니다.
아도니람은 아내의 얼굴은 볼 수 없었지만, 목소리는 들을 수 있었습니다.
아내의 목소리는 아도니람에게 격려가 되었습니다.
왜냐면 적어도 그녀가 다른 감옥에 있지 않다는 뜻이니까요.
사실 그런 감옥은 아내가 살 수 없는 곳이었거든요.
무엇보다 그녀는 출산을 앞두고 있었습니다.
하루는 그가 아내에게 말했습니다.
“버마어 신약 번역본은 어떻게 되었소?
그들이 그걸 없애버렸소, 아니면 그걸 당신이 가지고 있소?”
아도니람은 버마어의 체계를 세우는데 9년이 걸렸고
그 다음에 신약을 버마어로 번역했습니다.
“아뇨, 제가 숨겼어요. 그 번역본을 땅속에 파묻어 두었는데
오래는 못 갈 것 같아요. 아마 썩어 없어질 겁니다. 어떻게 할까요?”
“그럼 아주 더러운 베개를 하나 찾으세요.
그 속에 신약 번역본 원고를 넣고 바느질해 버리세요.
반드시 아주 더러운 베개이어야 하오.
그러면 경비병들이 그 베개를 빼앗지 않을 것이요.
그걸 내게로 가져다 주시오!”
곧 그는 베개를 상으로 받았습니다.
그는 그 죽음의 감옥에서 11개월을 지냈는데 공포스런 곳이었습니다.
그 후 선교사들은 밖으로 꺼내져서 발의 족쇄를 풀고
어느 곳으로 이동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아도니람도 그곳을 떠나려는데, 한 경비병이 그의 베개를 빼앗아
쓰레기더미 위로 던져버렸습니다.
나중에 그곳에 불이 붙여지면, 그의 일평생 수고와 그의 삶의 이유가
사라질 것입니다.
그들은 8마일을 걸어서 이동해야 했는데
그들의 발이 흉하게 상처나서
더 이상 걸을 수 없었습니다.
4마일이 지난 후 그들은 모두 쓰러졌습니다.
더 이상 걸을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들은 알았습니다. 못 걸으면 처형이라고요.
그러나 상관치 않았습니다. 이제 칼에 맞아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그때 갑자기 소달구지나 나타났습니다.
절뚝거리던 그들은 그 달구지에 태워졌습니다.
그래서 4마일을 더 갔습니다.
새로 옮겨진 대나무 오두막 감옥에서
그들은 다시 족쇄에 채워졌고
밤에는 다리가 들어올려졌습니다.
이제 아도니람은 개의치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정신을 잃었습니다.
그 밤에 그는 꿈을 꾸었는데,
아내가 자기에게 기대었고
그녀는 딸을 안고 있었습니다.
그러고 꿈은 확 사라졌습니다.
아침이 되자 그는 꿈이 아니라는 것을 깨달았죠.
아내가 수인들 모두가 먹을 수 있는 음식과 함께
딸 마리아를 안고 왔습니다.
아내는 매일 음식을 더 가져왔습니다.
사실 한 버마 신자가 요리사였고
그는 음식을 많이 준비해주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은 의약품도 가져오고 수인들이 건강을 되찾도록 돌봐주었습니다.
아도니람은 알게 되었습니다.
버마가 영국과의 전쟁에서 패했고
국왕은 선교사들이 죽기를 원하지 않았습니다.
두 나라 사이에 조약을 맺는데 통역이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시간이 지나서 아도니람과 아내 앤, 아기 마리아는 집으로 가게 되었습니다.
그들의 집은 완전히 기울어져 있었지만
다시 세울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의 일생의 작업(신약번역본)이 소실된 것이죠.
그런데 며칠 지나서 한 버마 교인이 찾아왔습니다.
그녀는, 다른 사람들처럼, 수인들이 감옥에서 나와서 어디로 갈 적에는
이제 곧 처형당하러 가는 줄로 생각했답니다.
그래서 그녀는 감옥집 안으로 들어가서
뭔가 유품을 찾을까 해서
이 위대한 분, 복음을 전해준 분의 유품요.
그때 그녀는 더러운 베개를 발견했습니다.
그녀는 급히 그 베개를 취해서 몰래 자기 집으로 왔습니다.
그녀는 그 베개를 빨래하려다가
그 속에 뭔가 있다는 사실을 알게 되었습니다.
베개를 열어보고 깜짝 놀랐습니다.
버마어 신약성경 번역본이 거기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오 그녀는 그것을 소중하게 간직했습니다.
아도니람과 앤은 서서, 이 낯선 버마 교인이 하는 이야기를 들었습니다.
결국 그 여자 교인은 “여기 제가 그것을 가져왔습니다.
당신께 돌려드리려고요!”
아도니람은 신약성경 번역본을 받았습니다.
그는 나머지 성경의 번역도 끝냈습니다.
오늘날까지 버마 신자들은 이 위대한 분을 존경합니다.
그들에게 복음을 전해 준 첫 번째 선교사요
또한 오늘날까지 그들은 여전히 아도니람 저드슨이 번역한
성경을 읽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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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아도니람 저드슨은
16세 때 프로비던스, 현재 브라운 대학 입학해서
1807년 19세 때 졸업했고,
이듬 해 1808 절친 친구의 사망을 계기로
주님께 돌아와, 앤도버 신학교 입학하게 됩니다.
그 후 1810년 6월 27일 선교사로 자신을 헌신하고
1812년 2월 19일 인도 캘커타로 떠납니다.
선교사로 떠나기 직전에
1812년 2월 5일 앤 해슬턴과 결혼을 하게 됩니다.
<편/ 구애 편지 넣고>
이렇게 24세에, 저드슨은 앤과 결혼식을 마치고 2주 후에 인도로 향하는 배를 탑니다.
그렇지만 당시 인도는, 미국인인 그의 선교를 환영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그는 1812년 7월 13일 버마 랑군에 정착을 하게 됩니다.
이렇게 해서, 24세의 청년 새신랑 아도니람 저드슨과
한 살 어린 그의 부인 앤 해슬턴은, 신혼을 버마 랑군에서
선교사역을 하면서 출발하게 되는데요.
버마에 온지 5년 후인 1817년에, 최초로 마태복음 번역을 끝냅니다.
버마에 온지 7년 후인 1819년에, 처음으로 버마인에게 세례를 주게 되는데
그이 이름은 Moung Hau (멍 하우)입니다.
그러던 중 버마에 온지 12년 후인
1824년에 영국과 버마 사이에 전쟁이 일어납니다. *Anglo-Burmese War (1824–1826)
전쟁이 발발한 후 약20개월 후 감옥에서 풀려난 아도니람은
버마 편에서, 영국과 협상하는 통역을 감당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협상이 난항에 부딪히고 다시 전쟁이 일어납니다.
아도니람 저드슨은 재투옥을 당하는 고난을 당합니다.
결국 전쟁은 4년 만에, 1826년 경에 끝납니다.
아도니람도 다시 자유의 몸이 되었습니다.
▲그런데 이 시기에 아도니람에게 또 다른 고난이 찾아왔습니다.
버마에 온지 14년 후인, 1826년에,
그의 아내 앤 해슬턴이, 21개월의 투병 끝에 소천한 것입니다.
6개월 후에 셋째 딸도 죽음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아도니람은, 가족을 잃는 슬픔에 굴복하지 않고
1827년부터 버마의 몰매인 으로 이사한 후 구약 번역을 시작합니다.
드디어 버마에 온지 22년 후인
1834년에 버마어로 신구약 번역을 끝냅니다. 그의 나이 46세 때였습니다.
20년간이나 번역에 몰두했다는 뜻이죠.
1834년 아도니람은 Serah H. Boardman (세라 보더먼)과 재혼합니다.
그런데 1845 미국을 방문하러 가던 뱃길에
두 번째 부인 배에서 질병으로 사망하게 됩니다.
질병으로 두 아내를 떠나보냈던 아도니람은
1846년에 Emily Chubbuck (에밀리 척벅)과 세 번째 결혼합니다.
그러던 중 1850년 경, 버마 왕은 저드슨을 강제 출국 시킵니다.
1850년 미국 오는 배에서 아도니람은 4월 12일 소천해서
하나님의 영광의 품으로 들어가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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