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님의 얼굴을 구하고 바라보기 시작할 때 고후3:18
데이빗 윌커슨
※아래는 요약본이고, 풀버전은 http://blog.daum.net/rfcdrfcd/15976638
*4분 50초부터 시작합니다
바울은 "우리가 다 수건을 벗은 얼굴로 거울을 보는 것 같이 주의 영광을 보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
고 기록하였습니다"(고린도후서 3:18).
여기서 "변한다"는 뜻의 "화하여"라는 단어의 희랍어 원어는 변형을 의미합니다.
이 단어는 변화, 변형, 변신을 의미합니다.
지성소에 들어가 그 시선을 그리스도께 열정적으로 고정하는 자는
누구든지 변화를 받습니다. 환골탈퇴가 일어나는 것입니다.
그러한 자는 끊임없이 예수님의 성품을 닮아 예수님처럼 변화되어 갑니다.
여러분 중에도 주님의 임재 가운데 자주 나아가는 분이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도 주님과만 보내는 시간에도 불구하고 변화를 느끼지 못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실상은 변화가 이미 일어나고 있는 것입니다.
분명 무엇인가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변화를 받지 않고는 그 어느 누구도 끊임없이 그리스도의 영광을 목도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한 말 중 마지막 구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저와 같은 형상으로 화하여 영광으로 영광에 이르니 곧 주의 영으로 말미암음이니라"(고후3:18).
성령께서 우리를 변화시키는 사역을 행하시는 것입니다.
그 앞의 구절을 주목해 보십시오.
"주는 영이시니 주의 영이 계신 곳에는 자유함이 있느니라"(고린도후서 3:17).
여기서 바울이 이야기하는 바를 아시겠습니까? 그는 우리에게
"너희가 그리스도의 얼굴을 볼 때 변화의 자유를 발견하게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 가운데 거하므로 우리는 성령께 우리의 삶을 통치하도록,
성령의 의사대로 우리에게 행하시도록 자유를 드리는 것입니다.
이것은 "주님, 제 의지는 주님의 것입니다.
어떤 대가를 지불하더라도 저를 예수님의 형상으로 변화시켜 주십시오"
라는 복종의 행위입니다.
우리가 주님을 볼 때 가장 먼저 우리 눈에 보이는 것은
우리 자신이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지 않았느냐 하는 것 입니다.
우리가 얼마나 스스로를 의롭게 여기는지는 중요치 않습니다.
성령께서 우리가 얼마나 그리스도의 영광에서 멀어져 있는지,
우리가 얼마나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있는지,
얼마나 우리의 육으로 무엇인가 이루려고 애쓰고 있는지를 우리에게 보여주십니다.
그러나 "우리가 그리스도를 바라보기 시작할 때" 자연스러운 역사가 시작됩니다.
우리는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해 모든 의를 이루셨음을 보게 됩니다.
그리고 우리가 거룩해지기 위해 결코 어떤 수고를 하거나 땀을 흘릴 필요가 없다는 것을 알게 됩니다.
진정으로 우리는 변화 받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우리가 무엇을 해서가 아니라 성령의 역사를 통해서 말입니다.
성령께서 우리 안에 변화라고 하는 영광스러운 과정을 시작하신 것입니다.
이제 "약속에 의해, 성령에 의해" 모든 것이 이루어졌습니다.
우리의 역할은 그저 주님의 임재 가운데 나아가 우리의 눈을 그분께 고정하고
주님의 임재 가운데 머물러 있는 것뿐입니다.
우리는 우리 믿음의 창조자요 완성자이신 주님께 모든 신뢰를 드려야 합니다.
주님의 영을 통해서 주님은 끊임없이 우리를 그리스도의 형상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자신은 성령으로 충만하다고 공언합니다.
그러나 저는 성령께서 여러분의 삶을 통치하고 계시는지를 증명할 수 있는 시험이
하나 있다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그리스도의 성품"이 여러분 안에서 점점 증가하고 있느냐 하는 것입니다.
만약 성령께서 완전히 통치하고 계시다면
그리스도의 성품이 불쑥 늘어나지는 않을 것입니다.
주님의 임재로부터 물러나거나 후퇴하는 일도 없을 것입니다.
도리어 여러분은 끊임없는 변화가 점점 더 많이 일어나는 것을 경험할 것입니다.
그리고 이러한 변화의 증가는 단지 울부짖을 때나 시험의 때에만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것은 항상 일어날 것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영이 이루시는 변화는 영속적이기 때문입니다.
성령의 역사에는 정체(stagnation)란 존재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변화는 주로 우리의 시험과 고난을 통해서 옵니다.
바울은 "우리가 이 보배를 질그릇에 가졌으니 이는 능력의 심히 큰 것이 하나님께 있고
우리에게 있지 아니함을 알게 하려 함이라"(고린도후서 4:7)고 기록하였습니다.
어떻게 우리의 연약한 그릇이 그리스도의 영광스러운 성품을 담아 드러낼 수 있을까?
특별히 우리가 시험을 당할 때에 말이야? 라고 의문을 가지실 분도 있을 것입니다.
우리는 성령께서 어떻게 우리를 변화시키실지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우리의 삶 속에 어떤 방법을 사용하시기로 정하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우리가 알고 있는 것은
모든 고난과 시험은 변화를 일으키기 위해 의도되었다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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