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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님을 닮은 삶의 능력 / 프랜시스 프랜지팬

LNCK 2018. 4. 20. 13:49

예수님을 닮은 삶의 능력        고전 2:16                 출처

프랜시스 프랜지팬  



 

비난(비판)이 아닌 중보

진정한 기도는, 죄악의 한 가운데에서도, 사랑의 마음이 싹틀 때 가능해진다.

기도는, 정죄하는 마음이 사라지면서 상대방의 죄악을 덮어주고 싶을 때 드리는 것이다.

예수님의 수준까지 올라가라고 하나님은 교회를 부르셨다.

예수님은 예루살렘에 대하여 임박한 심판의 경고를 하셨지만,

그들에게 유죄선고를 하지는 않으셨다.


주님은 그 도시의 죄악상을 꾸짖지만 않으셨고, 그 도시를 위해 눈물도 많이 흘리셨다.

예수님만이 우리의 유일한 표본이다.

교회를 파고드는 기독교인들의 분노는 하늘로부터 오는 것이 아니다.

문제는 어떻게 사회의 죄악을 지적해 내느냐가 아니다.

진짜 문제는, 그러한 문제 구덩이 속에서 어떻게 그리스도를 드러내느냐 하는 것이다.


우리의 목표는 이 땅에서 그리스도를 대표하는 것이다.

우리가 더 오랜동안 죄인들을 용서하지 못하고,

부패하고 타락한 세상에 대해서 불평, 불만 가운데 머물면 머물수록,

그리스도의 성품으로부터 멀어진다.


일단 우리의 마음이 굳어져 버리면, 모든 것이 딱딱하게 되어 있다.

그러면 성령님의 역사가 물 흐르듯이 흘러갈 수 없게 된다.

진실로, 우리가 이 세상에서 억울하게 당했을 때, 제일 먼저 찾아 뵐 분은 예수님이다.

예수님 안에서만 바른 태도를 유지할 수 있고,

죄인들의 정치적 사회적 폭력에 대한 바른 반응을 보일 수 있는 능력이 생기기 때문이다.


일단 하나님이 내리시는 지시를 받은 후에 비로소,

우리는 우리에게나쁜 짓을 한 그 인간들을 제대로 처리할 수 있게 된다.

진정한 영성의 척도는 우리가 죄인들에 대해서 얼마나 분노하고 있느냐에 달리지 않고

얼마나 그리스도를 닮았느냐하는 데 있다.

 

단 한 사람

너희는 예루살렘 거리로 빨리 다니며 그 넓은 거리에서 찾아보고 알라

너희가 만일 정의를 행하며 진리를 구하는 자를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5:1)


하나님은 "한 사람이라도 찾으면 내가 이 성읍을 용서하리라" 고 말씀하셨다.

불경한 도시에 사는 단 한 사람의 경건한 사람 때문에, 하나님은 진노를 멈추신다는 것이다.

불경한 사람들 중에 거하는 단 한 사람의 의인으로 말미암아, 자비를 향한 문이 열린다.

지역 사회, 가정, 학교, 이웃에 대한 돌보는 마음을 가진 한 사람의 수고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주시는 축복의 문이 열린다.


의롭지 않은 세상 가운데, 의로운 사람으로 머물러 있는 단 한 사람의 모습을

하나님은 아주 중요하게 생각하신다.

창궐하는 악에 대해서 굴하지 않고 거기에 물들기를 거부하는 단 한 사람만 있어도...

절망, 불안, 공포, 불신앙에 반항하는 단 한 사람의 믿는 사람만 있어도, 하나님의 진노는 연기된다.


당신이 바로 그 한 사람이 되길 바란다.

불경건한 과거와 하나님이 축복해 주시는 미래 사이에 끼어서

중보(교량)의 역할을 담당하는 그 한 사람이 당신이 되지 말라는 법이 없다!


긍휼은 진노를 딛고 일어선다.

긍휼은 비판을 억누르고 승리한다.

어떤 한 사람이라도 긍휼한 마음으로 중보기도를 드리면,

그리스도의 부드러운 열정이 세상 가운데로 흘러 들어오게 되어있다.


예수님이 진정 누구인지를 알기 원하는가?

예수님은 평생 중보의 삶을 살아온 분이시다(8:34).

물론 세상에 마지막 심판이 있을 것이지만,

예수님은 그 마지막 심판 날만 고대하며 기다리고 계신 분이 아니시다.


예수님은 늘 긍휼을 구하는 기도를 드리고 계신다.

왜냐하면 그것이 바로 예수님의 기본 품성(속성, 본질)이기 때문이다.

그리스도 예수는 바로 우리 안에 이미 내재한 신적인 품성의 현현이다.


그러므로 예수 그리스도가 가신 길을 따라가면, 우리 인간들의 운명이 완성되게 되어있다.

그리고 교회에서 죄인과 죄악이 넘치는 세상을 향한 중보의 기도들이 드려질 때마다,

그리스도의 본질이 드러난다.

 

주님, 주님께 불순종하는

죄인들의 죄를 지적하며 진실을 말할 때에도,

오직 사랑에 의해 동기를 부여받고,

긍휼로 마음이 끌리고, 구원에 불붙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님, 나를 도와주셔서,

진리뿐만 아니라 은혜도 전하게 하시고,

내가 말할 때마다 하나님의 진실된 마음이 전달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주 예수님, 기도의 능력을 무시했던 저를

용서하여 주시옵소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열정적으로

긍휼을 세상에 나타내기를 갈망하시는지를

이해하지 못하는 저를 용서해 주소서.


주님, 주님께 긍휼을 구하며 평생 울부짖는 자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제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손으로 만지는 것을 기반으로

판단하지 말게 하시고, 오직 하난님의 긍휼하심으로

온 세상을 바라보게 하소서.


주여 주님의 긍휼하심의 계시로 내 영혼을 깨우시고,

하나님의 긍휼하심 위에 제 인생을 건축하게 하소서.

 

◑진리의 극치

우리의 삶 속에서 그리스도를 닮은 태도를 보이는 것은

이 세상을 구원하신 구세주와 동일한 동기를 가지고 살아가는 것을 뜻한다.


이는 자기를 못 박은 원수들에 대해서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라고 중보기도를 드리는 그러한 태도이다(23:34).


그러한 신앙인격의 자질은 오늘날 참으로 보기 드문 것이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마음을 닮아가려면,

우리들은 생각, 태도, 마음의 동기들을 재정립해야 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마음과 일치되어, 예수님같이 생각하고

예수님같이 행동하도록 까지 훈련되어야 한다.


이러한 과정은 일생 지속되는 과정이다.

이러한 과정 속에 있는 사람들은 남을 판단하는 영을 받지 않고

다른 사람을 불쌍히 여기는 구속의 영을 받게 된다.


참으로 감사하게도, 믿는 자들은 그리스도의 마음에 가까이 다다가갈 수도 있고

그리스도의 마음을 소유할 수도 있는 특권을 받았다(고전 2:16).


예수님이 생각하시는 것과 동일하게 생각하는 것은

교리적으로 올바른 지식을 갖는 것을 뛰어 넘는 것이다.

"너희 안에 이 마음을 품으라 곧 예수 그리스도의 마음이니"(2:5)


이러한 것은 새로운 패러다임이다.

즉 예수님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새로운 관점이라는 것이다.


그리스도의 형상을 닮은 인간으로 변화되는 것은 진리의 극치이고,

계시의 끝이며, 하나님의 뜻의 완성이다.

예수님과 신약 성경을 한마디로 요약하자면 바로 예수님 닮은 삶이다.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의 지표이다. 모든 사도들의 가르침은

창세기 1:26-27 이 그리스도를 닮은 삶이 이루어지면서 온전히 실현되는 것에 대한 지침이다.


그러므로 단순히 천국으로 가기 위해서 거듭나는 것뿐만 아니라,

그리스도를 닮기 위해 거듭나는 것이다.

다른 기독교인들과 연합해야 하는 이유는, 그것이 편리하기 때문이 아니라,


여러 사람이 모여 하나가 된 그리스도의 몸을 통하여

예수님이 스스로를 가장 잘 나타내시기 때문이다.


우리들은 제 2의 창세기를 이루는 인간들이다.

하나님을 닮은 형상으로 만들어져 가는 인간들이라는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