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VI-9yu44ED0&feature=youtu.be
◈영원한 구원 에 관한 다른 측면 빌2:12~15 source
Zac Poonen ‘Eternal Security’
◑성경은 두루 보아야 합니다
사단이 광야에서 예수님을 시험하면서
성경을 인용 할 때, "기록하였으되"라고 말한 것은,
성경의 한 면만 인용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도 ‘기록하였으되’ 하시면서, 다른 측면의 구절을 제시하심으로써
말씀의 균형을 이루셨습니다. 마4:6~7
새에 두 날개가 있어서 균형을 잡고 날 듯이,
성경적 진리도 같은 방식으로 언제나 균형을 이루어야 합니다.
<영원한 구원 eternal security>에 관한 교리를 생각할 때
우리는 “하나님의 주권”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위대한 두 진리 사이에서
균형을 찾아야합니다.
따라서 다른 성경 구절과 비교하지 않고
성경 한 구절 하나만 취하면,
우리는 틀린 결론에 도달하여 거짓을 믿게 될 수도 있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다른 구절을 무시하고 성경 구절 하나만 인용함으로써
사람들에게 거짓된 희망을 주면서 사람들을 속입니다.
성경의 교리에 대한 많은 잘못된 이해는
성경 구절을 다른 성경 구절과 비교하지 않음으로써 발생합니다.
◑하나님의 <선택>과 인간의 <자유의지>의 양면성
하나님께서는 사람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고,
아무도 그분을 믿도록 강요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나 그는 영원 전부터 누가 그분을 믿고, 누가 믿지 않을 것인가를 아십니다.
그러므로 구원에 있어서 ‘선택 election’은
그의 예지 foreknowledge에 기초를 두고 있습니다.
벧전1:2 ‘곧 하나님 아버지의 <미리 아심>을 따라 성령이 거룩하게 하심으로
순종함과 예수 그리스도의 피 뿌림을 얻기 위하여 택하심을 받은 자들에게..’
Elect according to the foreknowledge of God the Father
이것은 하나님 맘대로, 임의의 선택은 아닙니다.
하나님은 선택의 자유 없이 행성들을 만드셨습니다.
그리고 행성들이 수천 년 동안 하나님의 행성을 운행하시는 법에 순종 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거룩하거나 죄가 없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자유의지를 주셔서 동물을 창조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양심’이 없습니다.
그래서 그들도 거룩하다거나,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우리에게서 ‘양심 conscience’ 을 없애버리신다면,
우리는 동물처럼 될 수 있습니다.
도덕적인 선택이 불가능하므로 거룩해질 수도 없고, 죄인도 될 수 없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우리의 자유의지 free will 를 없애 버리면
우리는 로봇처럼 될 것이며 다시 우리는 거룩하거나 죄가 없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가 신자가 된 후에도
결코 자유 의지를 빼앗지 않습니다.
우리가 ‘영원한 구원 eternal security 의 교리’를 바로 이해하려면 이 진리를 알아야합니다.
이 교리가 극단으로 치우쳐서,
‘믿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떠나는 것은 불가능하다’로 기울어지면
신자들을 선택의 자유가 없는 로봇으로 축소시킵니다.
이 교리가 맞지만, 그런 뜻은 아니라는 것입니다.
구원의 영원성은 맞지만,
즉 하나님이 한 번 구원하시면, 영원히 구원하신다는 말은 맞지만.
그 의미에 ‘인간의 양심’과 ‘자유의지’적 요소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그 의미를 기계적으로, 과학 공식처럼 해석해서는 안 됩니다.
▲고후9:7에는 ‘하나님은 즐겨 드리는 자를 사랑하신다’고 나와 있습니다.
물질이든지, 순종이든지.. 하나님은 강제하지 않으시고
신자들이 즐겨 자원해서 드릴 때, 기뻐 받으신다는 의미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헌신을 강제로 받아내지 않으십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존중하십니다.
지금 우리가 그리스도를 따르도록 선택했지만, 나중에 우리가 배신할 때도
하나님은 막지 않으실 것입니다.
우리는 동물이나 로봇과 달리 인격체이고, 우리 자유의지를 존중하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시고, 그 구원의 능력 역시 전능한 것이어서
하나님이 한 번 사람을 구원하시면, 끝까지 그 구원을 견고히 지켜나가시지만
그런 신학을 지지하는 구절이 성경에 여러 군데 나오지만,
골고루 양 면을 다 봐야 합니다.
성경의 다른 구절에는, 하나님은 우리의 자유의지를
절대 존중하십니다. 무시하지 않으십니다.
인간에게도 자기 선택과 결정에 책임이 따르는 것입니다.
▲죄 사함은 하나님의 놀라운 선물입니다.
그러나 사람은 그 용서를 받기 위해, 그것을 받기로 선택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누구에게도 그 용서의 은혜를 강요하지 않습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사람들에게 강제로 용서를 베푸셨다면
세상의 모든 사람들이 용서 받고 구원 받을 것입니다.
그럼 좋을지 모르지만, 그런 것은 로봇에게나 가능한 일이지, 사람은 아닙니다.
성령충만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은 신자들로 하여금 성령으로 충만하도록 강요하지 않으 십니다.
신자들은 그것을 구해야합니다. 원하면 받을 수 있지만, 강제는 아닙니다. 요7:37~39
하나님은 성령을 보내실 것을 약속하셨지만,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자동으로 성령충만케 될 것을 약속하진 않았습니다.
그 약속은 또한 그대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렇다 해도 우리가 자동으로 성령충만 받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에게 자유의지가 있기 때문입니다.
요3:16절도,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누구든지 저를 믿으면 멸망치 않고 구원을 얻으리라’ 약속하셨지만
그렇다고 세상 모든 사람들이 자동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지금 우리가 살피는 주제인 ‘하나님의 구원의 영원성, 확실성’도
하나님은 한 번 구원 받은 사람을, 영원히 구원받도록 인도하시지만
‘자유의지를 가진 인간’이란, 성경의 다른 측면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죠.
◑출애굽의 예
하나님께서는 이집트에있는 이스라엘 장로들에게 두 가지를 약속하셨습니다.
1) 그분은 그들을 이집트에서 이끌어 내실 것과
2) 그분은 그들을 가나안으로 데려 올 것이라고 하셨습니다. 출3:17
출3:17 내가 말하였거니와 내가 너희를 애굽의 고난 중에서 인도하여 내어 1)
젖과 꿀이 흐르는 땅 곧 가나안 족속, 헷 족속, 아모리 족속...의 땅으로 올라가게 하리라 2)
그러나 그 두 장래 약속 중 첫 번째만이 장로들의 삶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처음 것을 믿었고, 두 번째 약속을 믿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민14:22~23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삶에서 <자동적으로 성취되지 않습니다.>
*이 부분에서 ‘우리 구원의 영원성, 안전성’을 염두에 두십시오.
우리가 그 약속들을 받으려면, 우리는 그 약속들을 믿어야합니다.
야고보가 말했듯이 우리는 의문의 여지없이 믿음으로 구해야합니다.
‘의심하는 사람은 바람에 흔들리고 흔들리는 바다의 파도와 같습니다.
그러한 사람은 주님으로부터 아무것도 얻지 못할 것입니다’ 약1:6~7
이렇게 약속을 믿는다는 말은,
하나님의 약속에 우리의 자유의지로 순종해서 나아간다는 뜻입니다.
만약 그랬다면, 이스라엘 장로들은 위 두 가지 약속을 모두 이루었을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들은, 믿음이 연약했기 때문에
1)번 약속인 출애굽은 이루었지만,
2)번 약속인 가나안 입성은 이루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분명히 약속하셨는데도... 말입니다.
하나님은 전능하셔서, 주권적으로 그 약속을 분명히 이루실텐데도.. 말입니다.
◑빌립보서 2:12절은 ‘두려움과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라’고 명령합니다.
그렇지만 빌1:6절은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그리스도 예수의 날까지 이루실 줄을 우리가 확신하노라’
위 2:12절은 <너희가> 이루어가라고 말씀하시고
1:6절은 <하나님이>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구원을 이루어 가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양 면을 다 봐야 하겠습니다.
‘영원한 구원 eternal security’을 강조하시는 분들 가운데,
빌1:6절 한 면만 강조하시는 분이 있는데, 그래서는 안 됩니다.
반대로, 알미니안주의는 빌2:12 한 측면만 또 강조할 수도 있습니다.
성경을 두루두루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나가라’ 하시면서
이어지는 구절에 ‘모든 일을 원망과 시비가 없이 하라’고 하십니다. 빌2:14
이 구절의 원래 의미는, ‘크리스천의 생활에서 원망과 시비 없이 살라’가 아니라
‘너희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원망과 시비 없이
즉 grumbling and complaining, 불평과 불만이 없게 하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구원을 이루어가는 과정에서 ‘불평과 불만이 있습니까/ 없습니까?’
우리 성경적 표현으로 ‘원망과 시비가 있습니까/ 없습니까?’
당신은 떳떳하게 ‘나는 불평불만 없이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습니다!’
라고 증거할 수 있습니까?
만약 그렇지 못하고 당신에게 원망과 불평이 있다면,
이것은, 하나님이 당신 속에서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지 않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은 하나님 편에서 할 일을 충실히 하십니다.)
당신이,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지 못하는 것입니다.
즉 성령님과 동역해서 불평과 원망의 죄를 벗어나야 하는데...
그렇지 못하면, 출애굽만 하고 가나안 입성을 못한 이스라엘 장로들처럼 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자기편에서도 자유의지로 열심히 자기 구원을 이루어가는 사람은
빌2:15절에 도달하게 되는데요,
빌2:15 ‘이는 너희가 흠이 없고 순전하여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대 가운데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세상에서 그들 가운데 빛들로 나타내며..’
지금 당신은, 어그러지고 거스리는 세상 속에서
‘하나님의 흠 없는 자녀’로 빛을 발하고 있습니까?
만약 그렇다면, 당신은 두렵고 떨림으로 구원을 이루어가고 있는 것이 맞습니다!
◑다른 영역으로 <회개>와 관련해서 생각해 보십시다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회개하는 능력을 부여하십니다. 행11:18
하나님은 모든 사람이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벧후3:9
그러나 그렇다고 모든 사람들이 회개하는 것은 아닙니다.
대부분의 사람들 (신자조차도)은 회개하라는 성령의 속삭임에
즉각 반응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회개로 역사하시지만
사람들은 회개로 따라주지 않습니다.
그래서 모든 사람이 회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이지만, 벧후3:9
그 전능하신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 제대로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만 사람을 구원하십니다.
그는 모든 사람이 구원 받기를 원하십니다. 딤전2:4
그런데 사람들이 구원받지 못한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들의 삶에서 역사하시는 일에,
죄인들이 자기 자유의지로 적극 응답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에 저항합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그들 속에 역사하시는 일을, 따르지 않습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한 번 구원, 영원 구원>에 관해서는
사람들이 자기 멋대로, 자기 편한대로 이해하고 있습니다.
롬6:23절에 의하면, 이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 gift입니다.
*개역에는 ‘하나님의 은사 gift는 그리스도 예수 우리 주 안에 있는 영생이니라’
그런데 직전 구절인 22절을 보십시오.
롬6:22 ‘그러나 이제는 너희가 <죄에게서 해방되고, 하나님께 종이 되어>
거룩함에 이르는 열매를 얻었으니 이 마지막은 영생이라’
영생은 선물이지만, 이 선물은
-죄에서 해방되고 (하나님의 거룩케 하시는 역사에 자기가 자유의지로 순응하고)
-하나님께 종이 된 자들이 받는 것입니다.
우리는 영생은, 믿는 자들에게 거저 주시는 선물 – 이 한 측면만 보는데요,
성경을 두루두루 볼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한 구절만 떼서 보지 말고요!
바꾸어 말하면, 자기 죄에서도 해방되지 못했고
자아를 죽이고 하나님의 종이 되지 못한 자들은,
그 <거저 주시는 선물인 영생>이 주어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구원의 영원성’과 관련해 생각해 볼 성경구절들
성경에는 ‘구원의 영원성’을 지지하는 구절들도 여럿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 반대 측면의 구절들도 아주 많이 있습니다.
마음을 비우고 어떤 선입견도 없이
그저 이 구절들이 어떻게 증거하고 있는지 살펴보십시다.
우리는 두루두루 성경을 봐야 하는 것입니다.
▲1. 요10:27~29
‘내 양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는 저희를 알며 저희는 나를 따르느니라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저희를 주신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사람들은 위 구절에 근거 ‘한 번 구원 영원 구원’ 교리를 주장하고, 또한 믿습니다.
왜냐면 ‘내가 저희에게 영생을 주노니 영원히 멸망치 아니할 터이요
또 저희를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고 말씀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위 구절을 자세히 보시면, 아무나 그렇게 영원히 구원 받는게 아니라
어떤 조건 condition이 있습니다.
그 조건이란 ‘내 음성을 들으며, 나를 따르는 양’입니다.
자기는 ‘주님의 음성을 듣지도 않고, 주님을 따르지도 않으면서’
그저 지적동의로 예수를 믿으면서도, 자기 구원의 영원성을 확신해서는 안 됩니다.
여러분이 예수님 품안에 계속 머무는 동안, 아무도 여러분을 거기서 빼낼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여러분이 자유의지로, 그 품안에서 스스로 뛰쳐나오면서도
‘내 아버지는 만유보다 크시매 아무도 아버지 손에서 빼앗을 수 없느니라’
를 외칠 수는 없다는 것입니다!
▲2. 마24:11~13
‘거짓 선지자가 많이 일어나 많은 사람을 미혹하게 하겠으며
불법이 성하므로 많은 사람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보십시오, 예수님의 말씀입니다.
‘끝까지 견디는 자만 구원 얻는다’입니다.
한 번 구원 얻었으니, 영원히 얻었다.. 가 아니라,
세상에 불법이 성행하고, 예수님께 대한 사랑이 식어지더라도
그렇게 노아의 시대와 같이 다 넓은 길을 가더라도
끝까지 인내하면서, 참고 견디면서, 자기 신앙의 절개를 지키는 사람만
구원을 얻게 된다.. 입니다.
한 번 구원 받았다고 자동적으로 끝까지 가는 것은 아닙니다.
▲3. 마6:14~15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면 너희 천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시려니와
너희가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면
너희 아버지께서도 너희 과실을 용서하지 아니하시리라’
위 구절은 산상수훈인데, 즉 신자들에게, 제자들에게 하신 말씀입니다.
제자라도 사람의 과실을 용서하지 않으면, 하나님도 용서하지 않으신다.
즉, 자기 구원을 잃어버린다는 뜻입니다.
같은 내용이 마18장의 비유에도 나옵니다. 마18:23~35
자기는 왕에게 1만 달란트를 탕감받고도,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용서하지 않은 이유로
그는 다시 감옥에 갇히고 말았습니다. 지옥을 뜻합니다.
예수님은 그 비유를 이렇게 결론지으십니다.
‘너희가 너희 형제를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하늘 아버지께서도 너희에게 똑같이 하시리라” 마18:35
예수님을 한 번 믿으면 영원히 구원 받을 것 같지만
성경은 두루두루 봐야 한다고 했습니다.
신자라도, 이웃을 진심으로 용서하지 않으면
그는 구원받지 못할 것을, 예수님은 가르치고 계십니다.
▲4. 롬8:12~13
‘그러므로 형제들아 우리가 빚진 자로되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 것이 아니니라
너희가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을 것이로되 영으로써 몸의 행실을 죽이면 살리니’
여기 ‘형제들아’ .. 신자들을 가리킵니다.
그 신자들도, 육신에게 져서 육신대로 살면.. 반드시 죽는다..
영적으로 죽는다는 뜻인데, 결국 구원받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적으로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이 롬8:13절은 창2:17절을 바울이 인용한 것인데요,
거기서 사탄은 미혹하기를 ‘(선악과를 먹어도) 너희가 죽지 아니하리라’ 했습니다.
오늘날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적으로 결코 죽지 않는다’라고 가르치는 것은
어쩌면 에덴동산에서 뱀의 꾀임과 같습니다.
우리는 그 미혹에 넘어가는 아담과 하와 같이 되어서는 안 됩니다!
▲5. 히3:12~14
‘형제들아 너희가 삼가 혹 너희 중에 누가 믿지 아니하는 악심을 품고
살아 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까 염려할 것이요
오직 오늘이라 일컫는 동안에 매일 피차 권면하여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됨을 면하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으면
그리스도와 함께 참예한 자가 되리라’
여기도 ‘형제들아!’로 시작하는데, 불신자가 아니라 믿는 형제를 뜻합니다.
이 말씀은 ‘신자도 악한 마음을 품고
살아계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질 수 있음’을, 그 가능성을 경고합니다.
‘너희 중에 누구든지 죄의 유혹으로 강퍅케 될 수 있음’을 경고합니다.
그리고 신앙생활이란, 한 번 구원 받으면 영원히 보장되는게 아니라
‘우리가 시작할 때에 확실한 것을 끝까지 견고히 잡아야’ 한다고 권고합니다.
마치 내가 가진 소중한 구원을, 마귀가 빼앗아가고, 죄가 털어가려고 할 때
그것을 소중히 지키며, 내가 꽉 붙잡고 놓치지 말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안 그러면 놓칠 수도 있다는 뜻이죠.
▲6. 히6:4~6
‘한번 비췸을 얻고 하늘의 은사를 맛보고 성령에 참예한바 되고
하나님의 선한 말씀과 내세의 능력을 맛보고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는 자기가 하나님의 아들을 다시 십자가에 못 박아 현저히 욕을 보임이라’
배도한 신자들에 대한 경고인데요,
너무 ‘한 번 구원 영원 구원’ 신학에 의거해서, 이 구절을 끼워맞추려 하지 마시고
그냥 위 구절을 겸허하게, 마음에 아무 선입견 없이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면 됩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구원 받은 자도 타락할 수 있다는 뜻입니다.
믿음의 상당한 경지에 올라간 사람도, 자칫 잘못하면 구원 못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물론 진정 회심하고 구원받은 사람이, 타락하고 돌이키지 못하는 경우,
그 퍼센트는 아주 낮겠지요. 그러나 그럴 가능성은 있다는 것입니다.)
위 구절에 ‘타락한 자들은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나니’
이 구절도 진짜 100% 회개 못한다고 볼 필요는 없습니다.
그들이 회개를 거부하고, 죄에 계속 머무는 동안에는
다시 새롭게 하여 회개케 할 수 없다는 뜻이죠.
그러나 자유의지가 있습니다.
위 구절도 ‘7번씩 70번 돌이켜도 용서하신다’는 구절과 병행해서 같이 봐야 합니다.
▲7. 계3:5
‘이기는 자는 이와 같이 흰 옷을 입을 것이요
내가 그 이름을 생명책에서 반드시 <흐리지 아니하고 bolt out>
그 이름을 내 아버지 앞과 그 천사들 앞에서 시인하리라.’
이 말씀은 예수님이 교회에 주신 말씀인데,
예수님은 한 번도 빈 말로, 공갈로, 겁주거나 협박하지 않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리스도의 경고를 심각하게 새겨들어야 합니다.
그리고 스스로 생각해봐야 합니다.
‘아,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도 흐려질 수 있는구나, 즉 지워질 수 있는구나!’
생명책에 관해서는, 예수님이 우리 중 그 누구보다 더 잘 아십니다.
주님은 처음과 끝을 다 아십니다.
주님은 마지막에 ‘이기는 자’와 그렇지 못한 자가 있을 것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나 자신부터
내 이름이 생명책에서 지워질 수도 있다는 사실을 인정하고 두려워해야 합니다.
‘이기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그런데 계20:15에는 ‘누구든지 그 이름이 생명책에서 발견되지 않는 자는
불 못에 던져진다’고 했습니다.
우리는 어린아이와 같이 단순하게 이런 예수님의 경고를 믿어야 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하나님의 말씀에는 오류가 없다고 믿습니다.
그 성경의 무오류성을 믿으면서도,
실제 자기 삶에 있어서는, 자기가 원하는 것은 받아들이고 믿고,
자기가 원치 않는 부분은, 무시하거나 뛰어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그들은 오류가 없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받아들이기 보다는,
오류가 가득한 자신들의 생각으로, 무오류의 말씀을 재단하고 있습니다.
이런 자들은 ‘이기는 자, 생명책에 이름이 기록된 자’가 되기 어렵습니다.
▲마치는 말
우리 영생의 문제는 정말 중요합니다.
우리는 신학적 주장을 받아들이되, 성경이 말씀하는 바 그 반대편 주장도
겸허하게 같이 받아들여야 합니다.
그래서 성경을, 성령의 인도와 조명으로 깨달아야지,
성경을 학문과 논리로만 접근하다가는, 오류에 빠집니다.
유다서 24절에는, ‘주님이 우리를 넘어짐(실족)으로부터 지키신다’고 말씀합니다.
아멘입니다. 주님은 반드시 자녀된 우리를 넘어짐으로부터 지키실 것입니다.
그러나 마라톤의 주자는 우리들이고,
주님은 코치가 되십니다. 코치로서 곁에서 우리를 지키시는 것입니다.
자유의지를 가진 주자가, 경주를 포기하고 스스로 넘어진다면,
그래서 다시 일어나기를 거부한다면.. 코치는 어쩔 수 없습니다.
그래서 같은 장인 유다서 21절에는 이렇게 말씀합니다.
‘하나님의 사랑안에서 너희 스스로 자신을 지켜라’ 유:21
"KEEP YOURSELVES in the love of God"
선수인 우리가 자신을 지키고, :21
코치이신 하나님도 우리를 지켜주시는 것입니다. :24
그때 하나님은 우리를 마지막까지 지키실 것입니다.
그래서 ‘영원한 구원’, 또는 ‘한 번 구원 영원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영원한 구원’을, 한 쪽 면만 보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 됩니다.
신자와 그리스도와의 관계는
신랑과 결혼을 기다리는 신부의 관계로 비유됩니다. 고후11:2, 계19:7
그런데 그 다음구절인 고후11:3절에서 바울은
‘사탄이 우리를 미혹해서 우리가 그리스도께 대한 헌신에서 멀어지게 될까봐 두려워했습니다.
그래서 예를 들기를, 하와가 에덴동산에서 사탄에게 미혹된 것처럼
너희 신부들이 미혹될까 두렵다’고 말했습니다. 고후11:3
그래서 결국 하와는 에덴동산에서 쫓겨나고 말았죠.
오늘날 우리 성도들은 그리스도께 약혼자들이요,
천국을 향해 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경고처럼, 약혼자들이 사탄에게 미혹될 수도 있다는 것입니다.
그러면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하와처럼 쫓겨나는 것입니다.
만약 신부가 세상과 짝해서 죄를 짓고 마치 음녀처럼 행한다면,
신랑은 그런 음녀와는 결혼을 거부하실 것입니다.
실제로 계시록17장에는 ‘음녀’가 나오는데,
구약성경에 비추어 해석하면, 그건 바로 ‘신앙을 팔고 세상과 짝해버린 <교회>’
를 의미합니다. 음녀는 교회 또는 교인이지, 세상 불신자가 아닙니다.
구약의 ‘음녀’에 비추어 해석하면 반드시 그렇습니다.
이렇게 바벨론화 되어버린 ‘음녀’는, 계시록 17장을 참조하십시오.
반드시 주님에 의해 거부당할 것입니다. 신부로서 쫓겨나는 거죠!
당신이 주님을 진정 사랑한다면,
다른 신자들이 세상과 짝하여 살며 죄를 짓더라도
당신은 신랑을 위해서 자신을 순결하게 지켜나가야 합니다.
‘마지막 때에 많은 사람들의 사랑이 식어지리라’ 경고하셨습니다.
이건 신자들을 향해 말씀하신 것입니다.
불신자들이야 아예 사랑이 없는데, 뭐가 식어지겠습니까.
‘그러나 끝까지 견디는 자는 구원을 얻으리라’ 마24:11~13
그런데 살후2:10~11절에 보시면, 희한한 말씀이 나옵니다.
‘우리가 거짓을 믿을 때, 하나님이 우리로 하여금 미혹을 당하게 허락하신다’고 나옵니다.
우리가 사탄의 거짓 진리를 따를 때, 하나님이 그걸 허락하신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경고로 받아들여야 합니다.
하나님이 처음부터 우리가 미혹받도록 허락하시는 게 아니라,
처음에는 우리를 권고하시고, 경고하시다가도,
우리가 계속 돌이키기를 거부할 때, 하나님도 어찌하실 수 없다는 뜻입니다.
말세에 그렇게 미혹을 따라갈 사람들이 있을 것을, 경고하시는 것입니다.
여러분, 구원에 관해 말세에 지금 유행하는 미혹이 무엇입니까?
사람들이 뻔히 죄를 밥먹듯이 짓고 있으면서도,
그래도 회개도 하지 않고,
‘자기 죄로부터 구원’받지도 못하면서도 *죄된 습관을 끊는 것을 뜻함
그래도 자기가 지적 동의 수준의 믿음을 가졌으니, 구원 받을 것으로
착각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사탄의 미혹입니다.
그리고 그렇게 한 번 받은 구원을 (사실은 받은 것도 아니죠)
또한 영원히 구원 받은 것으로 착각하고 있다는 현실입니다.
계속 그렇게 잘못 믿으면
하나님도 그걸 그냥 놔두신다고, 내버려두신다고
‘거짓 진리를 믿게 하신다고’ 살후2:10-11절은 경고합니다.
모든 예수님의 제자들은, 즉 성심으로 예수님을 닮아가고 따르는 자들은
그들의 구원은 견고하며 영원합니다, 아멘!
그러나 동시에 성경은 또한 이렇게 경고합니다.
‘선 줄로 생각하는 자는 넘어질까 조심하라!’ 고전10:12
But let him who thinks he is standing take heed, lest he fall!
조심하지 않으면 넘어진다는 뜻입니다. 타락한다는 뜻입니다.
귀 있는 자는 들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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