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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대 위기를 맞았던 하나님의 나라

LNCK 2019. 12. 27. 07:10

최대 위기를 맞았던 하나님의 나라             행15:1~11

06.06.25. 정리, 새길교회 김현주 목사

 

배경 설명

바울과 바나바는 1차 전도여행을 통해 소아시아 곳곳에 복음을 전하고

교회를 세웠다. 13~14.

이 때 이방인 선교 문제를 두고 교회 안에서 논란이 일어났다.

 

모세의 율법이 명하는 할례를 받지 않으면 구원을 못 받는다고

주장하던 무리가 있었다. 15:1

그래서 우군끼리 격렬한 의견 충돌과 논쟁이 벌어졌다.

바울과 바나바와 저희 사이에 적지 아니한 다툼과 변론이 일어난지라 행 15:2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사도들과 장로들이 모두 모여서

소위 예루살렘 공회(총회)’를 열었다.

 

이 때 베드로가 일어나 말했다.

이방인들에게 멍에(할례)를 매지 맙시다.

우리가 저희와 동일하게 주 예수의 은혜로 구원 받는 줄을 믿습니다. 15:11

 

예루살렘 총회는 베드로의 주장을 받아들였다.

그래서 이방인들도 몸의 할례를 받지 않고 믿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됨을

결의하게 되었다.

 

 

최대 위기를 맞았던 하나님의 나라

 

이 본문을 두고, 왜 제가 설교 제목을

최대 위기를 맞았던 하나님의 나라로 잡았는지 아시는가?

 

만약에 당시 총회에서 이방인들이 그리스도인 되는 자격으로 할례

필수적으로 받아야 한다!’ 고 가결했다고 가정해 보자.

그랬다면 오늘날 기독교는 절대 세계적인 종교가 되지 못했을 것이다.

유대교의 테두리를 절대 벗어나지 못한 유대인의 종교로 전락했을 것이다.

 

만에 하나 그랬더라면,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게 하옵소서!’

라는 주기도문의 기도가 이 땅에 이루어지지 못했을 것이다.

 

이런 사실을 생각하면,

그 때가 바로 하나님의 나라가 이 땅에 이루어지는데

최대의, 최악의 위기였다고 볼 수 있다.

 

당시 예루살렘 총회는, 베드로의 이러한 주장을 받아서 결의한 것이

오늘날 교회를 유대인의 종교로 전락시키지 않고, 세계종교로 바꾸어 놓았다.

참으로 위기의 시기에, 천신만고 끝에 올바른 결단을 내린 것이었다.

 

결정의 결과

초대교회는 유대를 넘어 소아시아와 갈라디아로 행 16:5

마게도냐 빌립보를 기점으로 유럽으로 16:6~19:20

로마제국의 심장부인 로마로 전파되게 되었다. 19:21~28:31

 

바로 이방인도 할례를 받지 않고서도 구원을 얻는다.’는 결의 한 줄이

기독교가 세계적 종교가 되는 발판과 디딤돌이 되었다.

기독교가 세계 속에 새 지평을 여는 계기가 되었다.

 

할례를 받아야 한다는 주장의 타당성도 있었다.

할례를 받지 아니한 남자 곧 그 양피를 베지 아니한 자는 백성 중에서

끊어지리니 그가 내 언약을 배반하였음이니라 창 17:14

 

너희와 함께 거하는 타국인이 여호와의 유월절을 지키고자 하거든

그 모든 남자는 할례를 받은 후에야 가까이하여 지킬찌니

곧 그는 본토인과 같이 될 것이나 할례 받지 못한 자는 먹지 못할 것이니라

본토인에게나 너희 중에 우거한 이방인에게나 이 법이 동일하니라 출 12:48~49

 

예수님의 가르침

영접하는 자 곧 그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할례)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서 난 자들이니라 요 1:12~13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육으로 난 것은 육이요 성령으로 난 것은 영이니

내가 네게 거듭나야 하겠다 하는 말을 기이히 여기지 말라 요 3:5~7

 

예수님은 성령(할례)으로 거듭나야 천국에 들어가게 됨을 가르치셨다.

본질은 거듭나는 것이고,

그것의 비본질, 육적 표시는 할례요, 또한 신약의 세례였다.

 

 

본질로 돌아가야

 

육적 할례의 비본질성

바울은 이렇게 말했다.

실제로 할례를 받지 않고도 율법을 잘 지키는 사람은

오히려 할례를 받고 기록된 율법을 갖고 있으면서도

그 율법을 어기는 사람을 심판할 것이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겉모양만 갖추었다고 해서 참 유대인이 아니며

몸에 할례의 흔적을 지녔다고 해서 참 할례를 받았다고 할 수 없다.

 

오직 유대인의 속 마음을 가져야 진정한 유대인이 되며

할례도 법조문(율법)을 따라서가 아니라

성령으로 말미암아 마음에 받는 할례가 참 할례이다.

이런 사람은 사람의 칭찬을 받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칭찬을 받는다. 2:27~29

 

비본질적인 다툼으로 교회를 시비 걸지 말자

우리는 본질적인 것과 비본질적인 것을 구분할 줄 알아야 한다.

어떤 교회는, 비본질적인 문제를 놓고 날 새는 줄 모르고 싸운다.

어떤 사람은, 평생 비본질적인 것을 문제를 삼아서 괴롭게 살아가기도 한다.

 

교회 안에서도, 모태 교인, 세례 교인, 교회를 오래 다닌 직분자라고

마치 유대인 행세를 할 수 있다.

성령으로 진정으로 거듭난 체험을 하지 못하고,

단지 세례를 받았다는 이유로, 구원받은 성도가 되었다는 것은 - 오해다.

그런 사람들이 교회 중직에 많이 포진해 있으면 있을수록 - 장래가 어둡다.

 

 

설교자는 메시지의 회복을 통해,

외적 할례가 아닌, 마음의 할례를 받고서

진정 회개하고, 깨어지고, 성령으로 거듭나서 변화된 알곡 성도가 많아지도록

끊임없이 본질적 부흥을 향해 나아가야 한다.

 

길가, 돌밭, 가시밭 성도는... 교회에 수 십 년 다니는 중에

반드시 거듭나고 변화 받아 누구 표현대로 영에 속한 사람이 되어야 한다.

 

본질적인 것은 무엇인가?

하나님을 경외하고 하나님 말씀을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땅 끝까지 복음을 전하는 일이다.

 

 

초대교회 사도들은 비본질적인 것에 정력을, 시간을 낭비하지 않았다.

그들은 주님의 지상 명령인 복음 전파에 온 몸과 마음을 다 바쳤다.

 

그 때 최대의 위기가 찾아왔지만 - 본질로 돌아갔다.

그래서 오히려 최대의 위기 때, 그것을 잘 정비해서

하나님의 나라는 세계 속으로 확장되어 갔다.

 

사실 기독교의 본질을 한 마디로 정의하기란 매우 어렵다.

또한 그것을 말로 올바르게 정의했다고 하더라도

정말 성령으로 그 내용을 완전히 깨닫기란 더욱 어렵다.

성령으로 거듭남, 거룩한 하나님 형상을 닮아가기, 예배를 통한 임재의 회복,

매일 경건의 시간(말씀과 기도)을 통한 하나님과 동행,

교회 봉사와 교회 세움, 세상 구원을 위한 전도 구제 및 사회참여 등이다.

 

적어도 가내안전, 사업번창은 아닌 것이다. 그 외 비본질적 요소들은

야심적 교회성장, 지나친 개교회주의, 지나친 현세적 축복강조,

교회 내 계급주의 및 기득권 수호, 지나친 헌금 강요, 지나친 교파(우월)주의 등이다.

 

우리는 끊임없이 비본질적인 것들을 배격하고, 본질로 돌아가야 하겠다.

 

지금 우리 사회가, 한국교회가 위기에 빠져 있는가?

그렇다면 본질로 돌아가야 한다.

비본질적인 것에 시간과 정열을 낭비하면 안 된다.

 

초대교회는 본질을 정비한 이후에

그 위기의 순간을 세계 종교로 문을 활짝 여는 디딤돌, 시발점으로 삼았다.

 

지금 위기라고 말하는 이 순간이야말로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기회임을 알고 잘 포착해 나가야 하겠다.

 

우리가 추구하고 붙들어야 할 기독교의 본질이 무엇이며

우리가 버려야 할 비본질적인 요소가 무엇인가 가려내어야 되겠다.

 

지금 이 사회가 경제적으로는 과거에 비해 풍요로움을 누리면서도

영적으로는 위기를 맞고 있다.

 

우리는 헛된 비본질적 세상일에 너무 마음을 쏟아서는 안 되겠다.

주님을 두려워하고, 그 계명을 지키며

복음과 말씀의 본질로 돌아가야 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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