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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73 모두가 일등 되는 평가방식

LNCK 2006. 7. 17. 07:50
 

◈모두가 일등 되는 평가방식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6~27



▲‘경쟁’이 기본인 세상 평가방식

요즘 중산층 가정은 한 집 건너 조기유학을 보낸다고 한다.(약간 과장이겠지만)

조기유학을 가서 일찍부터 선진 학문을 배우는 일은 좋은 일이다.

그런데 싫지만, 억지로 조기유학을 보내는 가정이 많아서 안타깝다.


중학생인데, 학교 성적이 하위권이라서...

고 1인데, 이렇게 가다가는 도저히 괜찮은 대학을 못 들어갈 것 같아서... 


요즘도 상대평가로 전교 몇 등 하는 식으로 평가를 낸다고 하니

소수를 승리자로 만들고 다수를 패배자로 만드는 ‘이상한’ 평가방식이다.


그렇다. 우리가 사는 세상의 평가방식은

피라미드 구조를 만들어 놓고 끊임없는 상호 경쟁을 강요한다.

학교에서도 덕과 정의를 가르치지만, 그것은 승리를 기본 바탕으로 한다.

공부는 꼴찌하면서 덕과 정의가 있으면 그게 무슨 소용이 있느냐고 한다.


날 때부터 죽을 때까지 끊임없이 경쟁하는 정글의 법칙이 난무하는 세상...

우리 어릴 때는, 돈 있는 집은 녹용을 달여서 조그만 애들에게 먹였다.

투실투실하게 체중 더 나가라고... 그 때는 뚱뚱한 아이가 ‘승리자’였다.

학교를 졸업하더라도 연봉 경쟁, 승진 경쟁, 외모 경쟁

결혼 하더라도 자녀 공부 경쟁, 아파트 평수 경쟁, 자동차 배기량 경쟁...


교회에서도 일부 목회자는 성도들 간에 ‘충성경쟁’을 은근히 부추긴다.

그러면서 그것을 뛰어난 리더쉽이라고 스스로 자랑한다...


소수의 승리자와 다수의 패배자를 양산하는 세상의 평가 방식...



▲예수님의 평가방식은 놀랍다. 모두를 일등 만들어주신다...


①모두가 높은 사람 될 수 있다.

세상에서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은 당연히 높은 사람으로 인정받는다.

문제는 그런 사람이 (‘대한민국 1%’ 라는 광고 카피처럼) 소수라는 것이다.

(저는 이 광고 카피를 들으면 안타깝다. 99%를 낙오자 만드니까!)


너희 중에 누구든지 크고자 하는 자는 너희를 섬기는 자가 되고

너희 중에 누구든지 으뜸이 되고자 하는 자는 너희 종이 되어야 하리라

마 20:26~27


그러니까 누구든지 높은 사람 될 수 있다. - 남을 섬기기만 하면...

그러므로 우리는 자기 신세 한탄할 필요 없다.

열심히 남을 섬기고... ‘나는 높은 사람이다!’ 라고 자체 평가하면 된다.

1%가 아니라, 100% 모두가 높아질 수 있는 방식이다. 할렐루야!


②가난한 서머나 교인들을 보시고, 부요하다고 하셨다.

환난과 궁핍 가운데 고생하던 사람들을 보시고

실제로는 부유한 자로 치켜세우셨다. 계 2:9

주님이 립 써비스를 하셨을 리는 만무하다.


이번에 릭 워렌 목사님 방한 설교 중에, 현실과 영생을 비교할 때

한국에서 가장 먼 곳을 영국 런던이라고 가정할 때

한국에서 영국까지 줄자를 길게 늘여 뜨려 놓았을 때

현실은 그 줄자의 1mm 정도밖에 되지 않는다는 표현을 쓰셨다.

그만큼 현실은 짧고, 영생의 삶이 길다는 뜻이다.

또한 우리 <이생의 삶은 영생의 삶에 대한 준비>로 규정하셨다.

 

주님은 먼 영생의 삶까지 동시에 보셨다.

그러니까 믿음은 좋지만 세상에서 잠시 가난한 서머나 교인들을 향하여

‘실제로는 부자야!’로 칭찬하셨고,

반대로 세상에서 부자지만 믿음이 식었던 라오디게아 교인들을 향해서는

‘실제로는 가난해!’라고 실상을 알려주셨다. 계 3:17


‘세상에서 가난하면 무조건 부자다’가 아니라,

‘세상에서 믿음은 좋은데, 가난하면’....이다.


어쨌든 이 글의 주제는, 주님은 가난한 자를 멸시하지 않으신다.

가난한 자도 얼마든지 부자로 인정해 주셨다.


부자는, 부자니까 사회에서 당연히 부자로 인정받는다.

그런데 가난한 자는, 가난하다고 멸시하지 않으셨다.

가난하다고 이민 갈 필요 없다.(이런 분도 있다)

가난한 자도 부자로 인정해 주신다.

그래서 모두가 일등 될 수 있는 길을 - 복음 안에 열어 놓으셨다.


③가난한 과부가 두 렙돈 헌금 드렸을 때

예수님은 그를 칭찬하시면서 누구보다도 많은 헌금을 드렸다고 하셨다. 눅 21:3


부자가 헌금 많이 하는 것은 당연히 많이 하는 것이다.

그런데 가난한 과부가 헌금 하는 것도... 많이 드렸다고 하셨다.

가난한 과부의 처지에서 보면, 많이 드린 것이 맞다.



주님의 가르침이 정말 놀랍다.

세상에서 가난한 자도... 얼마든지 부자 될 수 있으며

세상에서 출세 못한 자도... 얼마든지 높아 질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기독교 사상’으로 의식화 작업을 해서

스스로 행복하게 살고

또한 남들을 행복하게 만들어야 되겠다.(무시하지 말자)


개신교회에서 굳이 경쟁사회적 승리, 성공주의를 가르칠 필요는 없다고 본다.

그것은 학교나 사회에서 많이 가르치니까...


몇 해 전에 저는 ‘무슨 경영 이야기’라는 인터넷 사이트를 읽고 깜짝 놀랐다.

거기 나온 예화와 논지가 설교와 너무 비슷했고, 솔직히 설교보다 더 나았다.

물론 우리가 거기서도 배울 점이 많지만, 도배가 되면 안 되겠다.

지금은 대부분 복음적인 설교로 많이 바뀌어서 다행이다.


천주교회는 그런 것 안 가르치는데도 사람들이 줄지 않는다.

예수님의 고난과 부활, 살과 피 등 지루한(?) 이야기만 매 주일 반복하고 있다.

 

<김지윤 


 

▲아래는 인터넷에서 발췌한 글

만약에 우리의 열심

욕망이나 비교의식처럼 보이거나

그것이 다른 사람에게 나쁜 경쟁의식을 일으킨다면

그 누구도 우리에게 박수를 쳐줄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만약 우리의 성공

다른 사람의 질투심이나 분노를 일으키거나

그것이 이기적 어떤 것으로 보여 진다면 우리를 축복하지 않을 것이다.

 

열심이나 성공은 좋은 것이다.

그러나 만약에 우리의 그것이 다른 사람을 불행하게 만든다면

그것들은 더 이상 우리에게 좋은 것이 될 수 없다.

(저자는 경쟁적 피라미드 식 열심과 성공의 폐해를 잘 지적했다)


그러므로 중요한 것은 우리가 겸손한 사람이 되고

다른 사람들에게 유익한 사람이 되는 것이다.

그것이 열심이나 성공보다 더 중요한 것이다.

 

*[한글2002]에 저장하시려는 분들은  http://blog.naver.com/yhbgyhb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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