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리 없이 다녀간 사랑
태양은 말없이 비치며 열을 내고 이슬은 햇살이 따스운 가을철에도 조용히 내린다.
나도 내 처소에서 가만히 지켜보리라 이사야 18:4
내가 살고 있는 아파트 베란다에 오이 한 포기를 심었다.
오이를 심은 커다란 화분을 햇볕 잘 드는 창가 쪽에 두었다.
정성껏 물을 주었고, 거름도 주었다.
햐... 꽃이 피었다. 노란 오이꽃이 피었다.
그런데 문제가 생겼다.
오이 열매가 생기려면, 오이꽃 위로 나비나 벌이 놀러 와야 한다.
아파트지만 3층이기 때문에 (높지 않아서)
나비나 벌이 놀러올 수 있을 거야...
베란다에 있는 창문이란 창문은 모조리 열어 두었다.
활짝활짝 열어 두었다.
거실에 숨죽이고 앉아 오이꽃을 아무리 지켜보아도
나비와 벌은 보이지 않았다.
하루가 다르게 오이꽃은 삐들삐들 시들어갔다.
괜한 욕심을 부린 거라 생각하며
시들어 버린 오이꽃을 들여다보았다.
햐... 그런데 오이꽃 밑동에
아주아주 조그만 오이가 맺혀 있었다.
언제 다녀간 것일까...
이른 아침이었을까, 캄캄한 밤이었을까,
나도 모르는 사이에
나비와 벌이 팔랑팔랑, 부웅부붕
다녀간 것이다.
사랑이 몰래 다녀간 것이다.
그대여... 오늘 하루도 애썼다.
하지만 우리가 애썼기 때문에
오늘 하루를 살아낸 건 아니다.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소리 없이 우리 곁을 다녀간 사랑이 있었기 때문에
우리는 오늘 하루를 살아낸 것이다.
눈 감으면 들리지 않는가.
소리 없이 다녀간 발자국 소리가...
사랑의 발자국 소리가...
<이철환「곰보빵」 pp.142~143
주님(성령님)도 소리 없이 우리 거처를 다녀가십니다.
그리고 얼마 후에 열매가 맺히는 것을 봅니다.
'분류 없음 > 2006' 카테고리의 다른 글
졸지 않는 임무 (0) | 2006.09.18 |
---|---|
335 희미하게 찍힌 사진 (0) | 2006.09.16 |
333 사탄의 속임수 (0) | 2006.09.14 |
332 나를 찾아주실까? (0) | 2006.09.13 |
330 여러 날 후에 찾으리라 (0) | 2006.09.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