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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6

356 유사 그리스도인

LNCK 2006. 10. 10. 10:08


◈유사 그리스도인   (삼상 24:16-17)     


 

아래 책은 청교도 목회자 매튜 미드 Matthew Mead 1629~1699 의 책을

지평서원이 [유사 그리스도인] 이란 이름으로 출판한 책에서 발췌한 내용이다.

회개에 관한 심도 높은 통찰력을 보여주며, 청교도 신학과 신앙을 엿보게 한다.

 

 

*출처: http://blog.daum.net/bible3/7537234 (1항)
 

 

아래는「유사 그리스도인」이라는 책을 읽고 발췌한 내용입니다.

요즘은, 북핵 사태로 인한 국가적 위기 상황에서

나 자신부터 하나님께 자복하는 것이 애국이라는 취지에서 이 글을 찾아서 올립니다.

남을 지적하는 것이 결코 아닙니다. 이 글을 남에게 들이대지 맙시다.



▲1. 죄에 대해 울며 슬퍼하지만 여전히 회개치 않을 수 있다


사울왕이 그랬다. “사울이... 소리를 높여 <울며> 다윗에게 이르되 나는 너를

학대하되 너는 나를 선대하니 너는 나보다 의롭도다” (삼상 24:16-17)

그는 자기 죄를 뉘우치고 슬퍼했다. 그러나 돌아서서 여전히 그 죄를 반복했다.


에서도 한 그릇 식물을 위해 장자의 명분(하나님이 주신 기업)을 팔았다.

그 후에 그는 <눈물을 흘리며> 구하되 버린 바가 되어

회개할 기회를 얻지 못했다(히12:16).


에서는 눈물까지 흘렸지만, 성경은 ‘버린 바가 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다.

(물론 죄에 대해 슬퍼하며 눈물을 흘리며 진정한 회개에 이르는 경우도 많다)

 

▲2. 회개의 애통은

죄의 사악함과 그 더러움에 대한 뼈저린 자각으로 이루어져야 한다.

그런데 죄로 인해 망한 자기 신세타령 때문에 울어서는 안 된다.


물론 신세타령으로 울 수도 있겠지만,

죄의 사악함에 대한 애통이 동반되지 않는 신세타령은

진정한 회개의 애통이 <아니다>.


참된 회개의 애통은, ①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했음 ②성령을 근심케 했음

③그리스도의 몸인 교회를 더럽히고 상처 입힘 등에서 나온다.


애통이 가장 많은 곳은 아마 지옥이 될 것이다.

거기의 애통은 신세타령과 죄로 인한 결과(영벌)에 대한 후회이지,

진정한 회개의 애통은 아닐 것이다.

혹시 거기서 만에 하나 진정한 회개의 애통을 하더라도 때는 이미 늦다. 


▲3.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고백하더라도 진정 회개치 않을 수 있다.  

사울은 다윗에게 자백하고도 또 죄를 범했다.

그는 “내가 어리석은 일을 하였으니 대단히 잘못되었도다”(삼상 26:21)며

죄를 고백했지만, 그 죄를 떠나지 않았다.


가룟 유다도 죄를 고백하였지만 회개치 않았다;

“내가 무죄한 피를 팔고 죄를 범하였도다”(마 27:4)

그는 뉘우쳐 불의의 삯을 도로 돌려주기까지 했다.

그러나 그는 사하심을 얻지 못하고 도리어 자살을 선택했다.


하나님과 사람에게 죄를 고백한 이후에도 그 죄를 떠나지 못하고, 

마음과 행위로 계속 죄를 즐길 수 있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4. 어떤 사람은 회개하되 습관적으로 한다.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주일 날 교회 와서 거저 습관적으로 회개한다.

자기 영혼(마음) 속에서 죄의 무게와 짐을 느끼며

중심으로부터의 애통함이 없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5. 어떤 사람은 작은 죄는 고백하지만 큰 죄는 숨긴다.


▲6. 많은 사람들이 죄를 고백하지만, 그것은 죄로 인한 곤경에 처했을 때뿐이다.

바로는 종종 “내가 하나님과 너희에게 득죄하였다”고 고백했지만,

그것은 곤경에 처했을 때였고, 곤경을 임시로 모면키 위한 인스턴트 고백이었다.


물론 곤경에 처했을 때라도 회개해야 하지만,

곤경이 모면되고 나서 즉시 바로처럼 마음이 싹 달라진다면

그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7. 어떤 사람은 죄를 고백하지만, 죄를 없앨 의도는 전혀 없다.

회개하고서도 계속 반복해서 죄를 짓는다면 그것은 회개하지 않은 것이다.


▲8. 남에게 드러난 죄는 버려도 비밀스런 죄는 계속 간직할 수 있다.

피부에 드러난 상처는 치료받아도,

몸 안에 드러나지 않은 농양이 있으면 결국 죽는다.


▲9. 행하는 죄보다 생각하는 죄가 더 무섭다

행하는 죄는 남들에게 지탄도 받으면서 쉽게 회개에 이를 수 있다.

그러나 실제로 죄를 범하지 않더라도

마음과 생각으로 계속 죄를 유지하고 즐기는 것은 더 악한 것이다.

그것은 내면의 세계(본질, 본성)가 전혀 그리스도인으로 변화되지 않았다는

증거다. 또는 양심이 화인 맞아 마비되었다는 증거다.


감정 속에 품고 있는 죄도 행위의 죄만큼 회개해야 한다.

진정 회개한 사람은, 마음으로도/감정적으로도 죄를 품지 않는다.

왜냐면 본성이 거룩하게 변화되었고, 그 마음에 거룩한 씨가 있기 때문이다. 

 

▲10. 죄를 미워하지만 여전히 죄인일 수 있다.

압살롬은 이복형제 암논이 자기 누이 다말에게 행한 죄를 미워했다.

그렇지만 그는 암논을 죽이는 죄를 범한다.

죄를 미워하지만 여전히 죄인인 사람이 많다.


▲11. 모든 죄를 미워하기보다는 특정한 몇 가지 죄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다.

사람들은 각자 문화와 생장 환경에 의해, 특별히 혐오하는 죄목이 있고

반대로 관용하는 죄목이 있다.

한국에는 거짓말, 위증, 교만, 점치기 등이 관용되는 죄목에 속한다.

반대로 유교적 전통과 일치하는 죄목은 크게 다루어진다.

그러나 진정 회개한 사람은 성경적 기준에 의해 모든 죄를 미워하고

그것을 버리려고 노력한다.


▲12. 죄를 다시는 범치 않겠다고 ‘결심/약속’하고도

다시 죄를 범하는 것은 진정한 회개가 아니다.

그것은 아직 본성으로 죄를 철저히 미워하지 않는다는 증거다. 

종종 병들면 회개했다가 건강을 회복하면 다시 범죄하는 경우가 발견된다.

(그렇다고 ‘결심/약속’ 안 하면 안 된다. 우리는 부단히 ‘결심/약속’해야 한다).


▲13. 진정한 회개는 사람의 근본이 변화되는 것이다.

비록 근본이 변화된 사람도 역시 죄의 유혹을 받고 죄를 짓지만,

그러나 계속적인 죄를 짓지 않는다. 그는 반드시 ‘즉시’ 회개하고 돌이킨다. 


▲14. 진정 회개한 사람은 그리스도 안에서 늘 자라간다progressed.

그러나 진정한 회개를 하지 않는 사람=가짜로 회개하는 사람은,

그런 신앙 인격적 성장이 거의 없다.

<『유사 그리스도인』pp. 77~97. 매튜 미드 저, 지평서원

                        

회개도 하나님의 은혜로 되어지는 것입니다.

그런 은혜를 주님이 주시기를 바랍니다.


◎1992년 미국 성도들을 대상으로 한 설문 조사에 의하면,

성도들의 신앙 성장에 가장 장애/유혹이 된다고 답한 것은 다음 순서와 같다.   


1위. Materialism. 물질주의

2. Pride. 교만

3. Self-centeredness. 자기중심주의

4. Laziness. 게으름

5. Anger/Bitterness. 분노와 쓴마음

5. Sexual lust. 성적 욕망(공동 5위)

7. Envy. 질투심

8. Gluttony. 탐식/음식의 무절제

9위. Lying. 거짓말


또한 응답자들은 하나님과 교제의 시간을 게을리 할 때(1위),

육체적으로 피로할 때(2위) 더 쉽게 죄의 유혹에 빠진다고 답했다.


또한 기도생활 할 때(1위),

죄와 타협할 수 있는 어중간한 장소를 피할 때(2위),

성경 공부에 참여할 때(3위),

주변에 누군가 멘토링의 관계에 있을 때(4위)

죄의 유혹을 잘 이길 수 있다고 대답했다.


◎ 그 외 인터넷 자료

*만약 우리가 회개하기를 다음 날로 미루면,

회개해야 할 날(=회개 안한 날)이 하루 더 많아지고,

용서받은 날(=회개한 날)은 하루 더 적어진다.

If we put off repentance another day, we have a day more to repent of,

and a day less to repent in. 


*어떤 사람이 진정한 ‘믿음’ 없이 진정한 ‘회개’는 불가능하다.

회개와 믿음은 불가분의 관계다. 절대로 분리되어 각각으로 역사하지 않는다. 

Can true repentance exist without faith? By no means.

But although they cannot be separated, they ought to be distinguished.


*믿음 없이 진정한 회개는 일어나지 않는다.

바꾸어 말해서 진정한 믿음을 가진 사람은 반드시 진정 회개한 사람이다.

자연인이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 돌아올 때,

회개의 역사와 믿음의 역사는 동시에 일어난다.

한 개만 따로 떨어져서 역사하지 않는다.

(진정한 회개가 동반되지 않는 믿음은 참 믿음이 아니라는 뜻)

Moreover, true repentance never exists except in conjunction with faith, while on the other hand, wherever there is true faith, there is also real repentance. The two are but different aspects of the same turning--a turning away from sin in the direction of God...The two cannot be separated; they are simply complementary parts of the same process. 


*회개를 강조해야 하지만, 회개를 너무 강조한 나머지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를 무시하면 안 된다.

죄용서 받는 것이 회개라는 인간의 공로가 아니라,

일차적으로 그리스도의 대속의 은혜라는 사실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된다.


◎교도소 전도 다니시는 권사님의 간증

교도소에서 제일 기뻐하는 사람은 짧은 형기를 살고 빨리 출소하는 사람이다.

그러나 정작 더 기뻐하는 사람이 있는데,

그는 다름 아닌 사형에서→무기로 감형된 사람이다.

무기수로 평생 교도소 담장 안에서 일생을 마치는 것도 비통한 일인데,

그는 자기 생명이 연장된 데 너무 감격하고 기뻐한다.

사형 받는 날이 언제인지 몰라서 날마다 순간 순간 뿌리칠 수 없는

죽음의 공포 속에서 떨며 살았었는데, 이제 그 공포가 떠난 것이다.....


이 사실은 우리에게 시사하는 바가 크다.

우리는 모두 지옥 영벌의 사형수 신세였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대속을 통해, 우리를 사형→무기로 감면이 아닌,

사형→무죄로 감형해 주셨다.

우리가 어찌 크게 기뻐하고 기뻐해야 되지 않겠는가...    

 

[주제별 분류] 죄, 복된 회개 http://blog.daum.net/bible3/753723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