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신의 실상을 똑바로 파악한 자 (빛 가운데 거하는 자)
그의 형제를 사랑하는 자는 빛 가운데 거하여 자기 속에 거리낌이 없으나
요일 2:10
한때 저는 제 자신이 의롭다고 착각하고 살던 때가 있었습니다.
누구보다도 열심히 새벽기도회에 참석하고,
집사로 섬기던 교회에서 가장 많은 헌금을 하며,
개척교회 예배당을 적잖게 세워주고,
불우한 학생들의 등록금을 대어 주면서
‘나는 정말로 괜찮은 사람’이라고 착각하던 때가 분명히 있었습니다.
그럼에도 십수 년이 흐른 뒤에도, 저 자신을 마치 걸레 같은 존재로
고백할 수밖에 없는 까닭이 있습니다.
주님의 빛 속에서 되돌아보았을 때 지난날의 저는 걸레 같은,
아니 걸레보다 더 추하고 쓸모없는 존재였음을
비로소 깨달았기 때문입니다.
겉으로는 그처럼 의롭게 행동하던 그 순간에도
제 마음속에는 흉측한 탐욕과 이기심이 넘치고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 탐욕과 이기심을 성취하기 위해
주님을 이용하려 했던 것, 그것이 당시 제 신앙의 실체였습니다.
당시의 저는 주위로부터 인정받던 젊은 사업가였습니다.
제가 힘을 다해 달려가던 길은 결코 불의한 길이 아니었습니다.
수고하고 땀 흘린 대가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만만치 않았습니다.
그것은 저의 긍지요, 자랑이요, 자부심이었습니다.
교회 내에서는 교인들로부터 인정받는 청년 크리스천이었습니다.
제직회 서기로, 회계로, 교회학교 교사로, 성가대원, 선교회 회장으로,
누구보다도 더 정열적으로 헌신과 봉사를 다 하였습니다.
저는 자타가 인정하는 거룩한 성도였습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빛으로 저를 조명해 보았을 때
제 자신이 추잡한 창녀였습니다.
허망한 욕망을 위해 나의 영혼과 인생을 송두리째 팔아먹은
창녀 중에 창녀였습니다.
세상의 창녀는 생존을 위해 창녀가 되지만,
저는 단지 더 먹고, 더 지니고, 더 즐기기 위해 창녀가 된 자였습니다.
세상의 창녀는 자신이 창녀임을 아는 자각이라도 있지만,
저는 창녀이면서 자신이 창녀임을 인식하지 못하는
창녀보다 못한 창녀였습니다.
그렇다면 목사가 된 지금에는
저 스스로 자랑할 만한 존재가 되었겠습니까?
그렇지 않습니다.
제 삶 속 깊은 곳에 아직까지 배여 있는 창녀의 잔재를 발견하고
소스라치게 놀란 적이 한 두 번이 아닙니다.
제 마음에는 여전히 칭찬받지 못할 더러운 생각들이 가득 차 있습니다.
위선적인 저 자신의 모습으로 인해 수없이 절망합니다.
그래서 저는 세상의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떠날 수가 없습니다.
이 진리의 빛, 생명의 빛을 버릴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이 빛 속에 거하기 위해 기도로, 말씀으로
제 자신을 훈련시킵니다.
이 빛 속에서 자신의 실상을 바로 파악하게 된 저는
이 빛의 절대적인 가치를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다시 말해서 이 빛 속에 거할 때에만,
이 빛의 인도하심을 따라 다시는 죄를 범하지 않을 수 있음을
제 삶의 경험으로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제겐 예전에는 없던 자랑거리가 생겼습니다.
빛이신 예수 그리스도 바로 그분이십니다.
- 이재철 목사님 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