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전을 향해 빌3:12-16
▲누가 늙은인가?
바울이 빌립보서를 썼을 때 나이는 60세 전이었다.
당시 수명으로는 비교적 늙은 나이 축에 속한다.
그런데도 바울의 마음속에는 미래를 향한 벅찬 열정이 꿈틀거리는데...
내가 아직 잡은 줄로 여기지 않고, 앞에 있는 푯대를 향하여 쫓아가노라... 빌3:13
꿈과 비전이 없는 사람은, 나이가 젊었음에도 불구하고, 늙은이다.
꿈과 비전에 사로잡힌 사람은, 나이가 늙었음에도 불구하고, 젊은이다.
바울처럼 꿈과 비전을 향해 열정적으로 달려가는 ‘젊은’ 인생이 되려면?
◑1. 현재에 대해 창조적 불만 빌3:12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빌3:12
60세 노령의 베테랑 사역자 바울이 가졌던 현재에 대한 창조적 불만이다.(↖)
성도는 아무리 일생동안 열심히 일했더라도, '나는 아직 멀었다!'고 고백한다.
▲데이빗 월커슨의 창조적 불만족
그가 미국 펜실베니아의 어느 시골 골짜기에서 목회를 하고 있던 어느 날,
텔레비전에서 마약과 폭력에 침몰해 가는 청소년들을 보고 불만족을 느꼈다.
돌연 그는 시골 목회지를 사임하고 홀홀 단신으로 뉴욕의 문제아들을 향했다.
당시 1960년대는 히피 열풍으로 미국 청소년들이 몸살을 앓고 있었다.
후에 그의 사역초기 모습을 생생히 담은 The Cross and the Switchblade
「십자가와 깡패들」이 15개국 이상에 1천5백만 부 이상 출판되었다.
탈선청소년들이 어떻게 그리스도께로 회심하게 되었는지의 과정과 사역경험을
담은 간증적 자서전이다.
http://www.davidwilkerson.org/hislife/the_cross_and_the_switchblade.html
한 시골 목회자가 가졌던 창조적 불만족이,
당시 미국을 사회적 도탄(히피운동)에서 건져내었다.
▲현실안주 의식 타파
‘이만하면 됐지 뭐, 그냥 여기서 만족하고 살면 됐지...’
이것은 위험한 생각이다.
그때부터 인생은 늙기 시작한다. 뒤로 후퇴하게 된다.
창조적 불만이 ‘불평불만’과 다른 점은 - 창조적 대안을 찾아서 제시한다.
그것은 개인과 교회의 역사를 바꾸는 위대한 변혁의 힘이 된다.
◑2. 미래에 대한 확고한 목표 빌3:14
푯대를 향하여....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좇아가노라 빌3:14
▲푯대는 다른 말로 <부르심, 소명>이다.
하나님이 나를 부르실 때, 단순히 구원만을 목적하신 것이 아니다.
나에게 소명도 주셨다.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해 소원을 두고 행하신다. 빌2:13
사람에겐 존재의 목적이 있어야 ‘잘’ 살 수 있다.
내 몸을 던져 죽을 수 있는 목적-소명-이 없다면, 인생은 공허하다.
*보편적 소명(1차적 소명)
지상명령 성취, 복음 전파 하는 것 등 모두에게 공통적인 소명.
성도는 세상에 복음을 전하기 위해 ‘먼저’ 부름 받은 도구다.
구약시대의 유대인처럼.
*특별한 소명(2차적 소명)
보편적 소명이란 커다란 테두리 안에서,
우리 각자는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은사, 재능, 소명적 목표를 찾아야 한다.
사도 바울은 <이방인 전도의 소명>을 철저히 인식하고 살았다.
◑3. 소명을 향한 집중적 헌신 빌2:13
많은 사람들이 인생의 목표를 정하지만, 그 목표에 도달하지 못한다.
단지 소수의 사람들만 목표에 도달한다. 그 차이는 '집중력'이다.
▲한 가지 목표
내가 <오직 한 일>one thing, 앞에 있는 그것을 잡으려고 쫓아가노라 빌2:13
‘좇아간다’란 말뜻은, 굶주린 사냥개가 먹이를 발견하고
시선과 에너지를 집중해서 달린다는 뜻이다.
모진 시련이 닥치더라도 내 달음질이 너무 열정적이라서
그것을 훌쩍 뛰어넘는다.
요즘 말로 ‘선택과 집중의 원리’다.
여러 개를 좇아가다가는 한 가지도 못 미친다.
그러니까 확실한 한 방향을 선택해서 집중적으로 좇아갈 때 결실이 있다.
◑4. 우리 교회의 비전
▲비전을 찾다
우리 교회는 지난 7년 동안 놀라운 성장을 거듭해 왔다.
그러나 이런 성장의 축복 속에서, 우리는 마음속으로 진지한 질문을 품었다;
‘사람만 많이 모이는 교회, 그것이 과연 무슨 의미가 있을까?
우리는 이 모아진 힘과 자원을 가지고
어떻게 하나님의 나라에 기여할 수 있을까?’
그것 때문에 우리는 기도하며 주님의 인도하심을 구했다.
이제 우리는 주께서 보여주신 비전-새로운 고등학교를 세우는 것-을 보았다.
▲교육의 절망적 위기 현상
어떤 신문 기사에는, 이 땅의 교육은 <절망>이라는 단어까지 썼다.
과거 군부 독재시절에 사람들은 자유를 찾아 정치이민을 떠났다.
그 이후에 우리는 달러를 벌기 위해서 전 세계로 경제이민을 떠났다.
오늘날 사람들은 교육이민을 떠나고 있다.
한국의 이 교육현실 앞에 내 자식들의 미래와 운명을 맡길 수 없다는 판단
때문에, 자식들을 해외로 보내기 시작했다.
▲민족적 학교
개화기 역사를 돌이켜보면 우리 가슴을 뜨겁게 하는 학교가 있었다.
남강 이승훈 선생에 의해 시작된 오산학교다.
지금 기독교적 가치관, 성경적 비전의 명맥을 이어가고 있는 학교가 있다면
아마도 거창고등학교, 안산동산고등학교, 그 외에도 더 있을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들은 거창까지 자기 아이들을 유학 보내는 분들도 있다.
이런 학교들이 이 땅에 더 많이 세워져야 한다.
그래서 우리교회는 고등학교 법인을 시작하려고 한다.
▲우리의 비전
만일 진정한 성경적 가치관으로 무장된 젊은이들을 우리가 양육할 수 있다면,
가슴속에 펄펄 끓는 신앙과
민족에 대한 사랑을 가진 젊은이들을 길러낼 수 있다면
우리의 자녀들을 외국에 내다 맡기는 일은 사그라질 것이다.
이것은 하나님 나라와 우리민족을 위한 얼마나 좋은 기여가 될 수가 있을까!
이 학교를 통해 민족의 상처를 치유하고,
세상을 변화시키는 역사가 일어날 것이다.
그렇다면 주님께서 우리에게 보여주신 이 새로운 비전을 향해서,
푯대를 향해서
우리 앞에 어떤 시련과 어려움과 장애물이 있어도 항해를 계속합시다!
<01.03.11. 인터넷 설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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