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 요20:19 06.04.16. 류영모 목사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박 집사님의 갈등
믿음 좋은 박 집사님은 지난 몇 주간 동안 특별새벽기도회 빠짐없이 참석했다.
사순절 기간동안 예수님이 내 죄를 담당하셨음을 깊이 묵상했다.
또한 부활절이 이르러, 주님의 부활을 분명히 믿고 확신했다.
그런데, 그 믿는 신앙이 자신의 현실 생활과 아무런 연관성(보상)이 없었다
는 사실에 박 집사는 마음이 아팠다.
지난 특별새벽기도회 동안 누구보다 열심히 참석해서 기도하며 매달렸다.
그런데 직장을 잃었던 남편의 취직은 여전히 감감 무소식이었다.
말썽쟁이 아들의 성적은 기대만큼 쑤욱 올라가지도 않았다.
예수님의 부활을 분명히 믿지만, 그에게 부활이 현실에서는 무슨 의미인가?
이것은 박 집사님의 갈등뿐만 아니라, 모든 성도들과 동일한 갈등이요,
또한 요 21장, 부활 후에도 갈릴리에서 고기 잡던 제자들의 갈등이었다.
◑1. 찾아오시는 부활의 주님
▲울고 있는 마리아를 찾아오심
요 20장에 보면,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일 먼저 무덤가에 울고 있는
마리아에게 나타나셨다. 마리아는 예수님의 부활을 기대조차 하지 않고
그들의 관습대로 시신에 기름을 바르기 위해 무덤을 찾아갔었다.
무덤문은 굴려져 있었고, 예수님의 시신을 누가 훔쳐 간 줄로 여겼다.
그래서 절망 가운데 그 곁에서 울고 있었다.
바로 이 때 주님이 마리아를 찾아오셨다.
원인 모를 절망과 불안 가운데 계신 분,
오늘 아침 부활하신 주님이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이다.
▲불안에 떠는 제자들을 찾아오심
요 20장에 부활하신 주님은 제자들이 모여 있던 다락방에 찾아오셨다.
제자들이 유대인들을 두려워하여 모인 곳에 문들을 닫았더니 요 20:19
그들은 다락방 깊숙한 곳에 모여 앉아 무엇을 했는가?
아무것도 안 했다. 그냥 두려워 떨고만 있었다. 왜?
예수님을 못 박아 죽인 로마의 공권력이,
제자들까지 잡아서 십자가에 못 박을지 모른다는 소문이 파다했던 터였다.
그들은 다락방 문뿐만 아니라, 마음의 쇠 빗장 까지 걸어 잠그고 있었다.
바로 이 때 예수님이 그들을 찾아오셨다.
문을 두드리신 것도 아니고, 제자들이 문을 열어준 것도 아니고
문을 부수고 들어오신 것도 아닌데,
부활하신 예수님은 제자들 가운데 서 계셨다.
저희가 놀라고 무서워하여 그 보는 것을 영으로 생각하는지라 눅 24:37
“놀라고 무서워하여...” 라고 당시 정황을 기록하고 있다.
점잖케 표현해서 그렇지, 리얼하게 표현하면
“귀신인줄 알고 혼비백산했다” 이다.
두려워 떨고 있는 제자들에게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19
그리고 그들을 안심시키기 위해 못 박힌 손과 옆구리를 내밀자
“주님이시구나!” 제자들은 깜짝 놀라며 반가워했다. 요 20:29
동시에 얼마나 송구하고 민망했을까?
주님이 잡히실 때 제자들은 뿔뿔이 흩어졌다.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주님은 고통 중에 부르짖으실 때
제자들은 대부분 자신들의 신변을 염려해서 그 자리를 피했다.
힘없는 여인들과 이름 없는 제자들이 주님의 장례를 치를 때에도
소위 사도라는 제자들은 나타나지 않았다.
이런 제자들에게 주님이 찾아오셨으니... 죄송하지 않겠는가.
주님은 배신자들을 책망하거나 꾸중하시려고 찾아오신 것 아니었다.
찾아오실 때 예수님은 이미 깨끗이 용서하시고 찾아오셨다.
예수님은 재차 말씀하셨다.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요 20:21
이렇게 두 번씩 말씀하신 것은, 첫 번째는 만나는 인사말 이라 치더라도
두 번째는, 죄송해서 고개를 못 드는 제자들을 깨끗이 용서하신다는 뜻이다.
죄책감 갖지 말고, 평안하게 살아라는 뜻이다.
▲심지어는 불신 청년 사울에게까지 찾아오셨다.
맨 나중에 만삭되지 못하여 난 자 같은 내게도 보이셨느니라 고전 15:8
부활하신 주님은 아나니아를 만나셨다.
그리고 사울 청년을 만나서 안수하고 그의 눈을 뜨게 하라고 지시하셨다.
또한 ‘그는 복음을 전하기 위해 택한 나의 그릇’이라고 하셨다.
오늘도 부활하신 주님은, 복음전파를 위해 꼭 필요한 사람들을 찾아오신다.
그리고 만나주신다.
이 복된 부활절 아침, 여러분은 주님께 꼭 필요한 사람들이 되시기 바란다.
하나님 나라에 유용한 존재들이 되시기 바란다.
언제든지 예수님은 여러분을 만나주실 것이다.
▲오늘도 찾아오시는 예수님
오늘도 예수님 믿고 교회를 다니지만 평안이 없으신 분들이 있다.
설교를 들어도 은혜를 못 받고 도리어 두려움에 시달리는 분이 계신가?
오늘 부활절 날, 부활의 희망을 갖지 못하고 절망에 사로잡힌 분이 계신가?
주님 이미 부활하셨는데, 못난 제자들처럼, 주님 죽으신 것처럼
절망과 탄식을 늘어놓는 분 계시는가?
-주님께서 여러분을 (불쑥) 찾아와 주시기를 축원한다.
그리고 “너희에게 평강이 있을지어다!” 라며 소망과 은혜를 주실 것이다.
◑2. 그물질 하던 제자들을 찾아오심
그 후에 예수께서 디베랴 바다에서 또 제자들에게 자기를 나타내시니
나타내신 일이 이러하니라 요 21:1
여기 우리는 주목시키는 두 단어가 있다. “그 후에 와 또”
앞서 요 20장에서 부활하신 예수님이 나타나셨다.
21장에 “그 후에 또” 나타나신 것이다.
▲시몬 베드로가 “나는 물고기 잡으로 가노라” 하매
저희가 우리도 함께 가겠다 하고 나가서 배에 올랐으나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 21:3
베드로가 사명을 져버리고 타락해서 물고기 잡으러 갔다고 생각하겠지만
그것만은 아니었다.
제자들이 주님과 함께 있을 때는, 모든 생계 문제를 주님이 해결해 주셨다.
이제 예수님과 떠나 있고, 예수님 부활하셨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그들의 절실한 생계 문제가 가로 놓여 있었다.
그러자 맏형 격인 베드로가 큰 짐을 느꼈던 모양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해결 안 되니까 베드로가 ‘내가 한 번 해 보겠다’며
앞장서서 나선 것이다.
그런데 유감스럽게도 물고기가 한 마리도 잡히지 않았다.
이 밤에 아무 것도 잡지 못하였더니 요 21:3
이처럼 우리도 부활하신 예수님을 만났는데
취직도 안 되고, 빚더미도 여전히 해결되지 않는다.
특별새벽기도 때 분명히 은혜를 받았는데, 여전히 사업은 제자리걸음이다.
현실의 문제는 그대로 남아있다.
제자로서도 실패하고, 어부로서도 실패한 그야말로 캄캄한 “밤”이었다. 21:3
절망과 좌절이 엄습해왔다. 피곤에 지쳐 있었다.
물고기조차 제자들을 비웃는 듯 보였다. ^_^
그날 밤, 과거에 예수님과 함께 지내던 것이 그리워지기도 했다.
▲애들 수준의 신앙
그 때 예수님이 찾아오셨다.
얘들아, 너희에게 고기가 있느냐 21:5
여기서 얘들아! children 라고 부르신 것은, 단순한 호칭을 떠나서
지금 제자들이 하는 행동과 생각이 애들 수준이라고 볼 수도 있다.
그들은 주님이 부활하신 것을 믿었다.
그러나 지금 내 곁에 안 보이신다. 육체로 안 계신다.
그러므로 내 직장, 생계, 가정, 학교생활 문제를 해결하는 데는
부활하신 주님이 아무런 영향력을 미치지 못 하신다.
말씀이 어디 갔는지, 기도가 어디 갔는지,
성경적 진리의 가치관이 어디 갔는지...
내 재주, 내 방법, 내 꾀만 남아 있다.
애들 수준의 신앙생활이라는 것이다.
예수님 부활하셨다. 그래서 내 모든 죄의 문제, 죽음의 문제를 해결하셨다.
내 인생의 궁극적 문제를 해결해 주셨다.
‘내 생명을 너희 위해 내 놓았는데, 어찌 각양 좋은 은사를 주지 않겠느냐?’
예수님의 이 복음의 말씀, 은혜의 말씀을 믿었어야 했었다. 롬 8:32
적어도 이런 질문들이 제자들의 고민이 되었어야 했었는데...
‘어떻게 부활의 능력이 내게 나타날 수 있을 것인가?’
‘어떻게 부활의 소식을 작은 예수가 되어서 전하며 살 수 있을 것인가?’
물고기 잡으러 간 것 - 잘못된 것 아니다.
땀 흘리며 일하고 공부하는 것이 무슨 잘못인가?
그러나 그 방법이, 가치가, 목적이, 이유가
예수 없는 인생, 복음 없는 인생,
말씀 덮어 두고, 기도 덮어 두고,
내 방법, 내 재주, 내 꾀 - 이런 것들만 남아 있다면
그것이 바로 애들 수준의 신앙이라는 것이다.
▲인생 실패의 밤을 지내고 계시는 분이 있는가?
사업의 빈 배를 안고 목 놓아 울어야 하는 분이 계신가?
영적으로 비틀거리는 자기 모습을 바라보며 실망하신 분이 있는가?
얽히고설킨 문제 때문에 몸과 마음이 지친 분이 계신가?
실망과 좌절에 지친 ‘빈 그물’ 들고 살아가고 계신가?
-그래서 주님이 당신을 버렸다고 생각 하시는가?
‘이제는 믿어도 더 이상 소용없다. 깨끗이 믿음 생활을 포기하자.’
‘내 살길 내가 찾자. 예전에 버렸던 그물을 다시 한 번 챙겨보자.’
이것이 애들 수준의 생각이라는 것이다.
부활하신, 살아계신 주님이 당신을 찾아오실 것이다. 믿으세요!
그리고 애들 수준을 벗어나라고 권면하신다.
이제는 내가 살아도 예수 방법대로 살고
손해를 봐도 예수 방법대로 보고
이 방법대로 살다가 내가 죽어도 예수 방법대로 살겠다!
-이런 각오가 우리에게 필요하다.
▲예수님 왜 찾아오셨을까?
①우리를 사랑하시기 때문이다.
빈 그물 들고 새벽 바다에서 괴로워하는 그들을 내버려 둘 수 없어서
주님 찾아 오셨다.
‘내가 너희를 고아와 같이 버려두지 않고 너희에게로 오리라’ 요 14:18
세상에 아무도 도와 줄 사람이 없는, 친구도 자녀도 없는 사람 계신가?
그런 외로운 사람에게도 부활하신 예수님은 찾아오신다.
②주님이 제자들을 찾아오신 것은, 제자들에게 사명이 있기 때문이다.
베드로가 그물을 내려야 할 곳은 갈릴리 바다가 아니었다.
죄악의 파도가 넘실거리는 예루살렘 거리에 그물을 내려야 했다.
세상에 조그만 어려움에 부딪히면
인생의 목적도, 내 인생의 비전과 사명도 온데 간 곳 없어지고
될 대로 되라는 식으로 살아서 되겠는가.
아니다, 그럴수록 우리는 예수께로 돌아와야 한다.
왜 찾아오셨을까? 축복주시기 위해 찾아오셨다.
주님께서는 사랑하는 사람들이 실패한 채로 버려지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제자들이 빈 그물 들고 인생의 바다에서 허우적거리는 것을 원치 않으신다.
그 빈 그물 채워주시기 위해 예수님 찾아오신다.
◑3. ‘오른 편’이란 ‘예수 편’이다.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요 21:6
▲“오른 편”이란?
시간적으로, 포기하지 말고 다시 던지라는 것이다.
장소적으로, 고기가 있는 곳에 던지라는 것이다.
영적으로, 예수 편에 던지라는 것이다.
마 25장에, 주님께서 재림하셔서 세상을 심판하실 때
양들은 오른 편에, 염소들은 왼 편에 두라고 얘기하신다.
오른 편은 구원의 편이요, 왼 편은 멸망의 편이다.
지혜자의 마음은 오른 편에 있고, 우매자의 마음은 왼 편에 있다 전 10:2
지혜자 곧, 주님을 믿는 사람은 오른 편이다.
우매자 곧, 믿지 않는 사람은 왼 편이다.
주의 우편에는 영원한 즐거움이 있나이다. 시 16:11
그러니까 천국 가치관은 오른 편이다.
세상 가치관, 세상 꾀는 왼 편이다.
▲네 생애의 방향을 전환하라
성경은 언제나 오른 편을 예수님 편, 구원의 편으로 묘사한다.
베드로는 지금 고기 잡겠다고 바다로, 세상으로 나갔다.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고도, 주님을 등지고 나아갔다.
오른 편에 던지라는 것은 네 생애의 방향을 전환하라는 것이다.
예수 편으로 돌아오라는 것이다.
사명 버리고, 주님 버리고, 천국 버리고 세상으로 나가지 말라는 것이다.
먼저 그 나라와 그 의를 구하라!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먼저 구하라는 것이다.
네 인생의 주사위를 예수 편으로 던지라는 것이다.
말씀 중심, 기도 중심, 신앙 중심, 예수 중심으로 살라는 것이다.
현실에 조그만 문제에 부딪히면, 마치 예수님이 아니 계신 냥
신앙이 없는 것인 냥, 말씀이 아무런 능력이 없는 것인 냥
네 멋대로 살지 말고, 그럴 때 일수록
부활하신 예수님, 살아계신 예수님, 살아있는 말씀, 기도의 능력
성령의 능력을 믿고 살라는 것이다.
▲3년 전 베드로는 이곳에서 고기 잡는 그물을 던졌었다.
그 때도 고기를 못 잡고 있었을 때, 깊은 데 그물을 던지라는 말씀을 듣고
순종했더니 그물이 찢어질 만큼 많은 고기를 잡았다.
잡고 보니, 이 분은 물고기를 다스리시는 분임을 깨달았다.
파도를 잔잔케 하시는 것을 보니, 바다를 다스리는 주인이시고
천지우주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시며,
물고기를 쫓아버리기도 하시며, 물고기를 잡히게도 하시는 분이셨다.
“주여 나를 떠나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
자기를 발견하고 예수님을 발견했다.
그 때 예수님은 “나를 따르라”고 했다.
그 때 베드로가 따랐던 모습을 성경은 이렇게 증거하고 있다.
“모든 것을 버려두고 예수를 좇으니라.” 눅 5:11
물고기를 버렸다. 그물도 버렸다. 배도 버렸다.
세상 가치를 버렸다. 세상 방법을 버렸다.
지금까지 살아온 자기 꾀와 재주를 버렸다. 그리고 예수님을 따랐다.
3년 동안 따라다녔다. 부활하신 예수님도 만났다.
그런데 먹고 사는 문제에 부딪히자 베드로는
배설물처럼 버렸던 그것을 다시 챙겨들기 시작했다.
이것이 왼편의 삶이라는 것이다. 망하는 길이라는 것이다.
예수님은 살아계신다.
여러분이 어떤 삶의 환경에 처한다 할지라도, 여러분을 찾아오실 것이다.
만나 주실 것이다. 그 분을 버리고 살지 말라는 것이다.
▲신기록
그물을 배 오른편에 던지라 그리하면 얻으리라 하신대 이에 던졌더니 21:6
고기가 많아 그물을 들 수 없더라. 잡은 고기가 153마리라...
153마리란 뜻은 신비한 의미가 있다기보다는
아마 베드로 혼자 잡은 물고기중에 신기록이었던 모양이다.
그래서 특별히 숫자를 세어 기록했다.
여러분, 찾아오시는 부활하신 주님을 만나서, 오른편에 그물을 내려서
인생에 신기록이 수립되시기 바란다.
이제까지 한 번도 경험하지 못한, 대 기록이 수립되시길 바란다.
사업과 직장에 축복받아서 주님께 크게 헌신하고,
구령사업에 크게 헌신하는, 대 기록이 세워지게 되시기를 바란다.
여러분의 사업과 직업의 성공을 통해
많은 영혼들을 '잡아서' 주께 인도하는 대 기록의 비전을 꿈꾸시기 바란다.
그물에 가득한 고기(영혼)를 잡는 꿈을 다시 회복하시기 바란다.
사업과 직장을 통해, 잘 되면 잘 되서 더 즐겁게 헌신하고,
반대로 고난이 많으면 그래도 인내로써 헌신해서,
주님의 물고기들을 많이 기르고, 주님의 양떼들을 많이 치는 비전을
재다짐, 재헌신하게 되시기를 바란다. 부활하신 주님과 만남을 통해서...
▲찢어지지 않은 그물
큰 고기가 153마리라. 이 같이 많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아니하였더라 21:11
신기록이 수립되었으나 그물이 찢어지지 않았다.
세상 그물은 고기가 안 잡히거니와, 잡혀도 걸핏하면 그물이 찢어진다.
출세했다고 하나 건강이 찢겨지는 사람,
성공했다고 하나 행복이 찢겨지는 사람,
성공했다고 하나 인격이, 가정이, 신앙이 갈기갈기 다 찢겨지는 사람...
그러나 예수 방법대로 이룬 성공은, 그물이 찢겨지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삶이 어려우면 어려울수록 예수 방법을 선택하시길 바란다.
말씀으로 돌아오시길 바란다.
인생의 어떤 막다른 골목에 처했다 할지라도
예수 버리고 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기도 포기하고, 신앙 버리고 살려고 하지 마시기 바란다.
부활하신 예수님은 결코 우리를 버리지 않으신다.
오른 편에 그물을 던집시다.
애들 신앙을 버립시다.
아멘, 부활하신 주 예수여! 어서 제게 오시옵소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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