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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961 목숨도 모자라, 옷까지 취한 사람들

LNCK 2007. 11. 13. 13:37
 

◈목숨도 모자라, 옷까지 취한 사람들    요19:23~24




어떤 관광객이 아우슈비츠 수용소를 방문하고는, 기절해버렸다고 한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도 모자라, 그들의 머리카락, 옷까지 다 빼앗았는데

그렇게 산더미처럼 쌓인 머리카락, 소지품과 옷가지 등을 보고서

이것이 모두 억울하게 죽은 사람들의 소지품이라고 생각하니

그 자리에서 기절해버렸다는 것이다.


그런 책 내용을 읽으면서, 비슷한 경우가 성경에 나온 것을 발견했다.

목숨도 빼앗고, 그것도 모자라서 그의 남은 소유물까지도 빼앗는 경우이다.



군병들이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고 그의 옷을 취하여 네 깃에 나눠 각각 한 깃씩 얻고

속옷도 취하니 이 속옷은 호지 아니하고 위에서부터 통으로 짠 것이라...


이런 일이 일어난 것은 그렇게 되리라고 말한 성경 말씀을 이루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가지려고 제비 뽑나이다.”  요19:23~24



▲작은 이익 밖에 눈에 안 보이는 사람들

예수님은 지금 십자가에 달려서 정말 살을 찢는,

또한 가장 아픔을 참기 힘들다는 뼈가 으스러지는 고통 중에 계신다.


그런데 그 아래서 어떤 사람들(군병들)은 그런 예수님의 고통에는 아랑곳없이

예수님의 옷을 나누어 가지는 일에 혈안이 되어 있었다.

그들의 관심은 지금 누가 죽든지 말든지 상관없는 일이다. I don't care!

오직 내 작은 이익, 그것을 얻는 것 외에는 아무 것도 보이지 않는다.


그래서 예수님의 겉옷은 4명이 나눠가지고,(아마 4부분으로 분리가 쉬었던 모양)

속옷은 제비 뽑아서 당첨된 한 명이 차지했다.

그는 아마 만세를 불렀을 것이고, 다른 사람은 그를 부러운 듯 쳐다보았을 것이다.


지금 근처에 죽어가는 사람이 있는데, 그 신음 소리가 쉴 새 없이 들려오는데,

그들 눈에는 오직 ‘자기 이익’만 보인다. 다른 관심은 아예 없다!


그들은 예수님의 옷을 유가족에게 돌려줄 생각도 전혀 하지 않는다.

고인의 유품은 돌려주는 것은, 최소한의 예의가 아닌가! 

그러나 지금 자기들 눈앞에 보이는 것은, 자기 이익 말고는 아무 것도 없다.


▲이런 사람들도 내가 구원해야 하나!

그런 기가 막히는 장면을 내려다보시는 예수님의 억한 심정이 어땠을까?

‘이런 머저리, 불한당, 날강도들을 위해서도 내가 죽어야만 하나?

내 목숨이 너무 억울하다!’ 하셨을 지도 모른다.

0.1초간은 그러셨을 런지도 모른다.


그러나 예수님은

‘저들은 저들이 하는 일을 알지 못하나이다!’ 라고 하시며 넘어가셨다.

예수님은 얼마나 나를 그렇게 참아주셨는지 모른다.

‘저는 저가 하는 일을 알지 못합니다!’ 하시면서 넘어가 주셨다.


그래서 오늘 내가 무사히 살아있는 것이다.

아마 이것, 저것 일일이 따지셨다면... 무사하지 못할 사람 세상에 많을 것이다.


예수님의 생전 말씀이 생각난다.

속옷을 가지려는 자에게 겉옷까지 주라!

이 말씀은 악한 자를 대적하지 말라는 뜻이다.  마5:39

이처럼 예수님은, 비록 악인들이라 할지라도, (보통은) 너그러우셨다.



▲1. 기꺼이 손해를 볼 줄 알아야

우리도 살다 보면, 간혹 저런 ‘옷을 나눈 군병들’ 같은 사람을 만날 때가 있다.

작은 자기 이익을 위해서는 물불을 가리지 않고,

오직 눈에 자기 이익만 보이는 사람들이다.


특히 해외에서는, 작은 자기 이익을 취하기 위해,

한국인 사업주를 배신하고 당국에 신고하는 일이 비일비재하게 일어난다.


‘예수님을 닮는다, 십자가의 삶’이란 것은 말은 쉽다.

그러나 누가 예수님처럼 자기를 배신하여 고소하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소유물까지 다 빼앗아 나눠가질 궁리를 한다면

이 세상에 ‘예수님을 닮겠다. 십자가를 지겠다’고 자원할 사람이

과연 몇 명이나 있으랴?


오늘날 ‘교회가 십자가를 잃어버렸다’고 말하는 것은 바로 이것이다.

절대 자기 손해를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 때문이다.


자기 손해 또는 이익이 걸린 일에는, 결사적으로 싸운다.

절대로 조금도 손해를 봐서는 안 되기 때문이다.


근래 2~3년 사이에 나는, 이렇게 공격을 당하고도

그것도 모자라서 내 옷까지 나눠가지려는 사람을

넉넉히 용납한 적이 있는지... 

이 말씀을 묵상하면서, 자신을 한 번 겸허히 돌아보게 된다.



▲2. 손해 볼 때, 십자가의 부활이 일어난다.


“그들이 자기들끼리 내 옷을 나누고 내 옷을 가지려고 제비 뽑나이다.”

이 말씀은 구약 말씀을 마태 기자가 인용했다.


구약시대에 혹자는(아마 다윗?), 사람들이

자기를 곤경에 빠뜨리고 그것도 모자라

자기 옷까지 나눠 갖는 기가 막힌 일을 몸소 당했다.

(요셉도 구덩이에 빠질 때, 비슷한 일을 당했나?)


어쨌든 그들은 그 때 자기들이 당하는 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의 섭리 속에 그들의 당한 일은

<메시야의 길을 예비>하였고,

<예수님의 십자가를 예언하는 사건이요, 성경의 기록>이 되었던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도

자기 목숨뿐만 아니라, 자기 옷까지 기꺼이 내어주는 사람들이 있다면,

오늘날 자기 자신은 잘 모르지만,

시간이 지나면 그런 사람들을 통해서

오늘도 하나님 나라의 신비한 역사가 계속될 것이다.


예수님을 찌르고, 그 옷을 나눠가진 자들 중에 몇 사람은

나중에 회개하고 신자가 되었을 것이다. 왜냐하면,

스데반을 죽이는데 가담한 사울은 후에 사도바울이 되었고,

대동강변에서 성경을 건네주는 토머스 선교사를 죽인 자도 나중에 신자가 되었기 때문이다.

하나님 나라의 역사는 항상 신비하게 진행된다.

 

천국에 가면, 나는 모르는 사람인데, 그가 나를 아는체 한다는 얘기가 있다.

내가 핍박한 사람이다. 그가 변화, 영화되어서 내가 척 몰라보는 것이다.

또한 나를 핍박한 사람이다. 그도 변화되어서 천국에 왔기에... 내가 몰라본다.

 

성경에 '그를 찌른 자들도 볼 터이요' 라고 했는데, 계1:7

그가 변화되어서 주님을 보는 것인지, 아니면 죄인으로 주님을 보는 것인지

후자에 무게가 있지만, 전자가 될 가능성도 있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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