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수님의 프러포즈 요21:15~17 설교스크랩
▲제가 하나님께 너무나 감사한 것은, 하나님은 실패자를 들어 쓰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 말에 오해가 없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사랑이 많으시니, 실패자도 쓰신다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실패자만 쓰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것이 너무나 감사한 것입니다.
이 말씀에 선뜻 아멘이 되지 않고 고개가 갸우뚱하실 분도 있으실 것입니다.
한경직 목사님은 한국 교회를 대표하는 목사님이셨고.
기독교계의 노벨상인 템플턴 상을 받으신 분입니다.
그런데 그 한경직목사님은 일제 시대 신사 참배를 하셨던 분입니다.
템플턴 상을 받는 자리에서 자신이 고백한 사실입니다.
일제 시대를 청산하는 문제로 사회에서 아직까지도 논란이 많습니다만
한국 교회 성도들에게 있어서, 신사참배를 했느냐/안 했느냐는 것은
그가 참 신앙인이냐/아니냐를 구별하는 기준으로 여길 정도로 중요한 문제입니다.
그런데 신사 참배를 하지 않아 일제 시대에 옥고를 치른 목사님들도 많은데,
하나님께서는 왜 신사 참배를 했던 한경직 목사님을 들어서
한국교회의 표상으로 만드셨을까요?
교만한 자보다, 실패해서 겸손해진 자를 쓰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누구나 한경직 목사님을 기억하기를 온유하고 겸손하신 분이라 합니다.
아마 한경직 목사님은 자신이 신사 참배했던 죄인이요 실패자인데,
주님의 은혜로 쓰임 받는다는 것을 평생 명심하였던 것 같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목사님을 그렇게 큰 종으로 사용하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실패자가 아닌 사람은 없습니다. 다만 못 깨달을 뿐입니다.
고전1:27-29, 세상의 미련한 것들을 택하사 지혜 있는 자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고
세상의 약한 것들을 택하사 강한 것들을 부끄럽게 하려 하시며
하나님께서 세상의 천한 것들과 멸시 받는 것들과 없는 것들을 택하사
있는 것들을 폐하려 하시나니
이는 아무 육체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하지 못하게 하려 하심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분명히 알아야 할 것은 실패자가 아닌 사람은 없다는 것입니다.
자신이 실패자요 죄인임을 깨달은 사람이냐,
아니면 자신의 실패와 부족함을 감추고
오히려 자기를 자랑하려는 교만한 자이냐... 만 있을 뿐입니다.
▲자신을 포장하지 않기로 했습니다.
저는 실력 있는 자, 성공한 목사가 되려고 몸부림쳤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럴수록 제 마음은 계속되는 긴장과 좌절과 열등감과 두려움으로
고통스러웠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런 저를 구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찾으시는 것은 실패자라는 진리를 깨닫게 해 주신 것입니다.
더 이상 제 자신을 꾸미거나, 제가 성공한 사람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드러낼 이유가 전혀 없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제 약한 것, 다른 사람보다 부족한 것, 미련한 것을 쓰시겠다고 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은 오직 나를 대신하여 십자가에서 죽으신
예수님을 사랑하는 것뿐이었습니다. 그것은 제게 놀라운 복음입니다.
▲비로소 자격을 갖춘 베드로
왜 하필 베드로일까요?
오늘 본문은 예수님께서는 승천하시기에 앞서. 예수님을 대신하여
교회와 성도들을 맡아 목양할 책임을 베드로에게 맡기시는 장면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질문이 생깁니다. 하필 왜 베드로인가? 하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실패자입니다.
그런데도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이 엄청난 사명을 맡기신 이유는 무엇입니까?
어떻게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사람 보는 눈이 없으신 것입니까?
그러나 예수님은 정확하게 사람을 보고 계셨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께서는, 이제 베드로가 자격을 갖추었다고 보셨기 때문입니다.
도대체 베드로가 무슨 자격을 갖추었다는 것입니까?
베드로는 자신을 믿지 않는 자가 된 것입니다.
아니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나 같은 자가 무슨 자격이 있나?’
그런 베드로가 주님의 택함을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세 번이나 물으시고
그 때마다 “내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세 번째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 물으실 때, 베드로는 가슴이 저렸을 것입니다.
‘정말 내 마음을 주님 앞에 드러내 보일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그리고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일이 생각났을 것입니다.
“주님, 제가 비록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한 고개를 들 수 없는 죄인이지만,
제 마음으로 주님을 사랑합니다.
저를 주님이 다시 찾아주시고 제게 사명을 맡기신 주님을 저는 정말 사랑합니다.”
그렇게 세 번째 고백을 하고, 베드로가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한 죄를 씻어주시고,
교회와 양떼들을 베드로에게 맡기셨습니다.
▲여러분, 베드로가 예수님으로부터 그 사명을 받고 베드로는 어떻게 살았을까요?
베드로도 한 때는 자신이 실패자라고는 꿈에도 생각지 않았던 때가 있었습니다.
베드로는 당당했고 자신이 있었습니다. ‘나는 끝까지 예수님을 따라갈 수 있다!
주여, 다 예수님을 버릴지라도 저는 죽을지라도 예수님을 버리지 않겠나이다!’
그랬던 사람이 베드로입니다.
베드로는 자기가 실패자라고는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지금 베드로는 자기가 실패자라고 하는 사실을 부인할 수가 없습니다.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던 이 사실을 잊을 수가 있겠습니까?
그랬기 때문에 어려운 일이 올 때마다, 그가 큰 문제를 만날 때마다 베드로는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하는 그 고백으로 사명의 자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에게 닥친 십자가를 외면하지 않았습니다.
결국은 베드로를 통하여 하나님은 교회를 세우셨고,
위대한 일을 이루실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평생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며 살았을 것입니다.
그것이 베드로의 능력이었습니다.
▲사랑과 용서의 사람으로 변화된 베드로
여러분, 베드로가 사역하는 동안에, 배신을 얼마나 많이 당했을까요?
베드로 속을 썩이는 사람을 얼마나 많이 만났을까요?
그러나 그 어떤 사람을 만나도
베드로가 이제 누구를 배은망덕하다, 배신자라고 정죄할 수 있겠습니까?
자신이 예수님을 세 번이나 부인했었지만 용서받은 사람입니다.
전혀 자격이 없었는데 사도로 세움받았습니다.
그는 어떤 사람도 용서하고 사랑하며 살았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베드로에게 사명을 맡기실 수 있었던 것입니다.
베드로가 쓴 성경을 읽어 보면 베드로가 어떤 사람이 되었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베드로는 정말 용서의 사람이오, 사랑의 사도가 되었습니다.
벧전3:8-9, 마지막으로 말하노니 너희가 다 마음을 같이하여 동정하며, 형제를 사랑하며,
불쌍히 여기며, 겸손하며, 악을 악으로 욕을 욕으로 갚지 말고 도리어 복을 빌라
이를 위하여 너희가 부르심을 받았으니 이는 복을 이어받게 하려 하심이라
벧전4:7-8,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우리는 여기서 알게 됩니다. 진정한 그리스도인은 용서의 사람, 사랑의 사람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그러한 사람이 되기까지 인도하시고 가르치시고 기다리십니다.
여러분의 삶 속에 우리 주님의 역사가 나타나고, 복을 누리려면 명심하셔야 합니다.
여러분이 완전한 용서의 사람, 진정한 사랑의 사람이 되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여러분을 그렇게 인도하고 계십니다.
▲김창인 목사님의 공개 회개
일제 시대 소위 옥중 성도라고 불리는 분들은 핍박 중에 믿음을 지켰습니다.
그것은 매우 귀했으나 참 안타까운 것은, 해방 후, 일부 옥중 성도들이
자신들만이 한국 교회의 진정한 지도자로 자격이 있다고 주장하며
한국 교회를 분열 시키는 중요한 역할을 하였습니다.
교만과 비판의 사람들이 되었던 것입니다.
일제 시대 때 신사 참배했던 목사들은
전부 교회 강단에서 내려와야 된다고 주장했습니다.
그래서 한국 교회는 그 때부터 분열되기 시작했습니다.
2005년 4월 8일 한국 복음주의협의회 월례 조찬 기도회에서
충현교회를 담임하셨던 김창인 원로 목사님이 공개 회개를 하셨습니다.
“1945년 해방 후 개신교는 일제 때 신사 참배 문제를 놓고
장로교와 고려파로 분열했는데, 이를 막지 못한 책임이 나에게 있습니다.
광복 직후 평양, 부산 등에서 몇몇이 모여 재건 교회를 하면서
함부로 입을 열어 다른 사람들을 저주했습니다.
우리가 교만해지면서 판단력이 어두워졌고 사랑이 없어져 (생각이 다른 사람과는)
밥도 같이 먹을 수 없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마귀당’이라고 공격했습니다.”
참으로 비통한 고백을 했습니다. 김창인목 사님은 마지막으로
“하늘나라는 회개한 자만 간다고 했습니다. 저를 용서해주시길 바랍니다.”며
목이 메인 채 고백을 마쳤을 때, 백발이 성성한 원로 목사의 통한에 찬 고백에
참석한 사람들은 큰 박수를 쳤습니다. (한경직 목사님과 거의 동시대 어른입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기다리십니다. 우리가 진정으로 은혜의 사람,
용서의 사람, 사랑의 사람이 되기를 기다리십니다.
왜냐하면 그 때부터 역사하실 수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 십자가’ - 주님을 사랑하면 질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용서와 사랑의 사람이 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먹이라” 하셨습니다.
여기서 양이란 사람을 말합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가 져야 할 십자가 중에 가장 어려운 십자가가 ‘사람 십자가’입니다.
오늘 우리 중에 ‘사람 십자가’를 지고 고통당하는 분이 있으실 것입니다.
우리가 무슨 힘으로 ‘사람 십자가’를 지고 갈 수 있습니까?
예수님께서 베드로에게 “내 양을 맡긴다.” 하시면서 요구하신 것은
오직 주님을 사랑하라는 것이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주님을 사랑하는 것이 열쇠입니다. 능력입니다.
‘사람 십자가’는 주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질 수 있는 것입니다.
이 고백 속에서 사람 십자가를 질 수 있는 능력이 생깁니다.
영원한 사랑과 행복의 비밀입니다.
제가 사역이 힘들고 사람 때문에 지치고 포기하고 싶을 때마다
주님께 나가서 기도했습니다.
“하나님, 더는 못합니다. 하나님, 이것이 제 한계입니다. 더 참을 수가 없습니다.”
그 때마다 주님께서는 제게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셨습니다.
그러면 아무 말을 못하였습니다.
저는 어떤 <사람> 때문에 힘들다고 했는데,
왜 주님은 <주님을> 사랑하느냐고 물으시는지, 어떤 때는 정말 답답했습니다.
그러나 그 질문으로 모든 위기를 이겨 나갔습니다.
그런데 나중에 ‘나를 사랑하느냐?’ 고 물으신 그것이
제게 말할 수 없는 복이라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예수님의 프러포즈
여러분, 내가 모든 사람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으면 좋을 것 같습니까?
아닙니다. 내가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들을 때가 좋습니다.
만약 지하철에서 험상궂고 낯선 사람이 불쑥 내게 다가와
다짜고짜 ‘사랑한다’고 고백하면... 황당할 것입니다.
만약 친하지도 않은 사람이, 교실 벽에 ‘OO(나)를 사랑한다’고 적어놓으면
기분이 좋지 않게 됩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그 사람이 나를 사랑한다고 할 때,
그 사랑의 고백이 귀한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는 누구에게나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지 않습니다.
내가 정말 사랑하는 사람에게 가서 '나를 사랑하느냐?'고 묻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나를 사랑하느냐?” 고 하셨습니다.
그 말은 “사실은 예수님이 먼저 베드로를 사랑하신다”는 뜻입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우리 모두는 하나님으로부터 이미 사랑의 프러포즈를 받았습니다.
여러분, 주님의 십자가가 나를 위한 십자가로 믿어지십니까?
그렇다면 주님의 프러포즈를 받은 것입니다.
“내가 너를 사랑한다.” 십자가를 쳐다볼 때 마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사랑한다는 고백을 받았습니다.
▲나의 고백도 중요합니다.
그러나 아직 중요한 것이 남았습니다.
그것은 이제는 우리가 주님께 사랑을 고백할 차례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하나님, 저도 하나님을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사랑합니다.” 대답을 드린 사람입니까? 이 점이 중요합니다.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라고 하는 고백에
여러분에게 닥친 모든 시험을 이기는 능력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으로 인생이 바뀝니다.
다윗이 그랬고, 모세가 그랬고, 요한이 그랬고, 본문의 베드로가 그랬습니다.
예수님을 사랑한다는 고백이 영원한 사랑과 행복의 비밀입니다.
▲요한복음의 결론.. 예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 되는 것
이제 요한복음 설교의 마무리입니다. 요한복음의 결론이 무엇입니까?
어떤 사람이 예수님을 영접하면, 결국 베드로처럼 되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는 “주님, 저는 목사로서 자격이 없습니다.”하며 눈물로 기도할 때가 있었습니다.
그 때 주님께서 말씀하셨습니다. “네가 그것을 인정하느냐?”
“예.”
“그렇다면 그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대하여라!” 하셨습니다.
‘진정한 회개’란 어떻게 하는 것입니까? 고민하는 성도들이 많습니다.
이제 알아야 합니다. 진정으로 회개하였다는 말은
다른 사람의 죄를 보고 용서하는 사람,.. 즉, 사랑하는 사람이 되었다는 것입니다.
성도 여러분, 이 시간에 우리가 하나님 앞에 섰습니다.
주님께서는 남편을 사랑하느냐? 아내를 사랑하느냐? 아이들을 사랑하느냐?
김 집사를 사랑하느냐? 부모님을 사랑하느냐? 교인을 사랑하느냐?
직장에서 동료들을 사랑하느냐? 묻지 않으십니다.
“네가 나를 사랑하느냐?”고 물으십니다.
“예수님. 사랑합니다!” 하고 반복하여 고백해 보십시오.
예수님을 사랑하는 사람이, 모든 사람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언제 가슴이 저리도록 “주님, 제가 주님을 사랑합니다.”
이 고백을 뜨겁게 해보셨습니까?
“주님, 자격 없는 사람, 도무지 용서받을 수 없는 죄 용서받았고,
저 때문에 주님이 십자가 지셨고, 정말 주님을 사랑합니다.
제가 주님께 드릴 수 있는 고백은 이 하나 밖에 없습니다.”
오늘 이 시간에 그 고백을 주님께 하십시다.
<08.09.21. 인터넷설교 스크랩, 축약 *원 제목 : 영원한 사랑과 행복의 비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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