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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팔 소리를 들어라, 나팔 소리를 울려라

LNCK 2008. 12. 16. 08:13

◈나팔 소리를 들어라, 나팔 소리를 울려라        민10:1~10    설교 녹취

 

 

▲인생 순례 여정의 동반자, 하나님

민수기의 교훈은, 우리 인생을 <여행>으로 비유하고 있다.

어떤 여행이든지, 그 여행의 성공과 실패는

종종 ‘누구와 함께 하는 여행인가?’에 따라 좌우된다.

 

아무리 힘든 여행이라도, 동반자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면,

그 여행은 힘들지 않다.

 

‘광야’와 같은 우리 인생의 여정에,

하나님은 우리 동반자가 되어주기 원하신다.

‘그저 함께 있어주는 것’이 아니라, 우리를 ‘그저 지켜보시는 것’만 아니라,

내 속에 임재하셔서,

내 안내자가 되어주시고, 내 동행자가 되어주시기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내게 임재하실 때, 내 인생의 방향을 가르쳐 주신다.

내 인생의 속도를 가르쳐 주신다.

내가 멈춰서야 할 때와, 움직일 때의 타이밍을 가르쳐 주신다.

이것이 바로 민9장의 <구름기둥의 교훈>이다.

 

▲‘신비적 방법’과 더불어 ‘인간적 방법’을 둘 다 사용하신다.

하늘에 떠 있어야 할 ‘구름’이, 땅에 까지 내려온 것은 초자연적인 현상이었다.

이렇게 하나님은 우리를 때로는 초자연적/신비적으로 인도하신다.

 

그러나 ‘나팔을 불어서’ 우리를 인도하실 때, 그것은 보다 자연적/인간적 이다.

인간이 나팔을 만들어야 하며, 인간이 나팔을 불어야 하기 때문이다.

 

그렇다. 하나님이 우리를 인도하실 때는,

<신비적 방법>과 더불어, <인간적, 합리적> 방법을 통하여도 인도하신다.

 

<하나님>은 우리를 주권적으로 인도하시지만,

그것을 따르고, 순종해야할 책임은 <인간>에게 있다.

그래야 역사가 나타난다.

 

다시 말해서, 민9장의 구름기둥은 <하나님의 지도력, 주권>에 무게가 있다면,

민10장의 나팔은 <인간의 지도력, 노력>쪽에 강조점이 있다.

 

9장이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이라면,

10장은 인간과 인간 사이의 커뮤니케이션 문제를 다루고 있다.

 

▲눈으로 보는 임재, 귀로 듣는 임재

행2장, 오순절날 성령이 강림하셨을 때, 두 가지 현상을 기록한다.

①각 사람 위에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보였다.>  ... 보이는 임재

②하늘로부터 급하고 바람 같은 <소리가 있었다.>  ... 들리는 임재

 

광야 이스라엘도 마찬가지였다.

①구름은.. 눈으로 보는 하나님의 임재였다... 보이는 임재

②나팔소리는.. 귀로 듣는 하나님의 임재였다... 들리는 임재 

 

오늘날 우리 삶 속에

눈에 보이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도 하고, (환상)

귀에 들리는 하나님의 임재가 있기도 하다. (신비한 음성)

 

이런 것을 보고 듣는 사람은, 아무리 힘든 광야의 여정이지만,

힘들지 않게 그 길을 기쁘게 갈 수 있다.

 

▲오늘 내가 듣는 나팔소리는?

나팔소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상징하는 것이다.

사도요한이 성령이 충만하여, 하나님의 음성을 들었을 때,

그 음성은 마치 나팔소리와 같았다고 말씀하고 있다. 

 

나는 주의 날에 성령께 사로잡혀 있었는데,

내 뒤에서 나팔소리와 같은 큰 음성을 들었습니다. 계1:10

 

이 세상은 ‘소리’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다.

만일 우리가 하나님의 소리에 의해 움직여지고 있지 않다면,

지금 우리는 세상의 소리, 사탄의 소리, 나 자신의 소리에 의해 움직이고 있다.

 

우리 귀에 생생한 성령의 나팔소리가

내 생활 가운데, 우리 공동체 가운데, 울려 퍼지게 되기를 축원 드린다.

 

▲제사장들이 은나팔을 불었듯이, 오늘날 주의 종들이 (은)나팔을 불어야 한다.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지 못하고 방황하며,

하나님의 나팔소리(음성)를 듣지 못해서 좌충우돌 해맬 때,

교회와 주의 종들은, 민수기 제사장들이 그랬듯이

분명한 나팔소리를 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서 백성들이 그 나팔소리를 듣고

올바른 방향을 잡아서, 질서 있게 행진할 수 있도록... 인도해 나가야 한다.

 

▲소리, 입이었던 선지자들

세례요한이 출현해서 세례를 베풀며 회개를 외치자,

산헤드린에서 조사가 나왔다. ‘당신은 누구요?’

 

‘나는 빈들에서 외치는 소리요!’

세례요한은, 하나님의 임재하심을 전달하는 소리였다. 그 역할에 충실했다.

 

민수기의 나팔‘소리’, 세례요한의 광야의 ‘소리’와 더불어

예레미야는 자기를 주님의 ‘음성’을 대언하는 ‘입’이라고 소개했다. 렘1:9, 15:19

 

오늘 우리 공동체는 과연 어떤 ‘소리’를 내고 있는가?

우리 순모임이, 서로가 서로에게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되기를 사모해야 하겠다.

‘정신이 번쩍 나는 영혼을 향한 경종’ 말이다.

 

우리 강단에서 흘러나오는 모든 메시지가

시대에 갈 길을 제시하고, 개인에게 경종을 울리는

‘하나님의 나팔소리’가 되기를 축원 드린다.

 

▲(하나님의) 구름의 인도함을, (인간의) 나팔소리로 바꾸어 불었다.

하나님이 나팔을 직접 부신 것은 아니다. 제사장들이 나팔을 불었다.

 

(그러면 하나님이 어떻게 나팔을 불어라고 일일이 지시하셨을까?

구름의 인도를 보고, 아마 모세와 제사장들이 알아서 불었을 것이다.)

 

그러면 12지파, 2백만 백성들은, 그 신호체계를 존중하고,

그것을 따르고, 그럼으로써 큰 공동체가 질서 있게 하나님의 인도를 따랐다.

 

어느 사회건, 사회의 신호체계가 무너지면, 사회가 공황상태에 빠진다.

가정에서는 ‘대화’라는 신호체계가 무너지면, 가정이 무너진다.

 

만약 회막 위 구름이 떠올라 움직이기 시작했을 때,

2백만이 한꺼번에 각자 알아서 움직였다면.. 일대 혼란이 일어났을 것이다.

 

그러나 그들은 나팔소리를 따랐다.

동편이 먼저 움직일 때까지, 남편, 서편, 북편 진은 기다려주었다.

공동체적 질서를 지켰다.

 

내가 구름을 먼저 보았다고 해서, 자기가 알아서 먼저 움직이지 않았다.

개인플레이 하지 않았다.

 

▲소리를 듣지만, 공동체와 함께 움직인다.

내가 어떤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느꼈다고 할지라도,

가정이라는 공동체를 무시하면 안 된다.

가족과 함께 기도하고, 가족과 함께 기다리고, 가족과 함께 움직임이 중요하다.

 

내가 어떤 하나님의 임재를 체험했다 할지라도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함께 기다리고, 함께 움직이는 것이 굉장히 중요하다.

 

공동체 전체에 주신 신호체계를 무시하면서,

자신이 받은 개인적 영감이 ‘하나님의 소리’라고 주장하는 것은

(소수의 경우 올바르기도 하지만) 대개의 경우, 잘못된 것이다.

 

▲내 귀에 들리는 소리가 사탄의/세상의/성령의 소리인지 분변하는 기준 6가지

 

①그것이 성경과 일치하는가?

하나님은 이미 말씀하신 내용과 틀리게 말씀하지 않으신다.

 

②그것이 내가 더욱 예수님을 닮아가도록 만드는 것인가?

왜냐면 하나님의 뜻은, 우리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이 목표를 이루기 위해서, 하나님은 우리 삶을 인도하고 계신다.

 

③그것에 대하여 교회 가족들, 성도들이 동의하는가?

여러분, 우리는 성숙한 믿음의 가족들의 조언이 필요하다.

모두가 아니라는데, 자기만 그렇다고 주장하는 것은.. 조심해서 다시 살펴야 한다.

 

시간을 두면서 그 열매를 볼 때,

자기가 개인적으로 들은 음성이, 하나님의 음성(나팔소리)이 아닐 수도 있다.

공동체 안에서, 함께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

 

④그것이 나의 책임에 대해 말하고 있는가?

어떤 경우에는, 자신에 대한 하나님의 음성은 전혀 듣지 못하고,

다른 사람만 염려하는 사람이 있다.

 

자신의 책임이 전혀 들어있지 않는 하나님의 음성은... 없다.

자신의 책임에 일단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⑤그것이 정죄하고 저주하는 것인가?

아니면 뉘우치게 하고, 회개를 불러일으키는 것인가?

 

하나님은 결코 우리를 쓸모없다고 저주하지 않으신다.

우리에게 ‘변화가 필요하다’고 말씀하실 뿐이다.

사탄은 우리를 정죄하고 고소하지만,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고 회복시키신다.

 

⑥그것이 하나님의 평강을 가져다주는 것인가?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무질서, 어지러움, 불화가 아니라

결국에는 질서, 평화, 조화를 가져다주신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기억하시게 하는 나팔

적과 싸울 때 나팔을 불면, 하나님께서 기억하시고 구원하신다고 하셨다. 민10:9

 

‘기억하신다’는 단어의 뜻을 보다 잘 이해하기 위해,

같은 단어가 쓰인 다른 구절을 찾아보면 다음과 같다.

 

①창30:22, 하나님이 라헬을 생각하신지라 하나님이 그를 들으시고 그 태를 여신고로

하나님께서 라헬을 생각하셨다. remembered

하나님이 그 기도에 응답하셨다는 뜻이다.

 

②출2:24~25, 하나님이 그 고통 소리를 들으시고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세운

그 언약을 기억하사 이스라엘 자손을 권념(remember, 기억)하셨더라

  

하나님께서 뭘 깜빡 잊어버리셨다가, 다시 기억나셨다는 뜻이 아니다. 

하나님은 (창15장의) 그 언약을 한 번도 잊어버리신 적이 없다.

<때가 차매, 하나님의 방식으로 이루시는 것>을 가리켜 ‘기억하셨다’라는 말을 쓴다.

 

민10:9절의 ‘기억하신다’는 뜻은 의 뜻에 더 가깝다.

그들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는 뜻이다.

 

오늘날 우리가 낼 수 있는 나팔소리는 <기도>하는 것이다.

우리가 기도시간에 내는 <신음소리>가 하나님의 도우심을 구하는 나팔소리다.

내 작은 신음소리를 하나님은 <기억하실> 것이다.

 

③십자가의 한 강도는 주의 나라 임하실 때 나를 기억해 주십시오 라고 탄원했다.

여기서 ‘기억’은.. 구원해 달라는 탄원을 뜻한다. 눅23:42

 

<08.11.23. 인터넷설교 녹취   *원제목 : 출발의 나팔소리       이재훈 목사 설교 녹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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