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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나님을 자랑한 다윗

LNCK 2009. 5. 15. 13:38

 

 

◈하나님을 자랑한 다윗              시34:1-10               -09.04.13.설교스크랩/출처-


◑다윗의 여호와 자랑이.. 명쾌하게 이해가 안 돼요!

 

▲온통 여호와를 자랑하고 있는 다윗

 

1절,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리이다.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이다.

 

2절,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3절, 여호와를 광대하시다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1~3절 전체가 자랑이에요.

송축하는 것도, 찬양하는 것도,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것도.. 다 자랑하는 겁니다.

‘어쩌면 여호와를 이렇게까지 자랑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이 들어요.

 

▲시34편의 배경

이러한 여호와를 자랑한다는 다윗의 이 시편 34편의 배경은

도대체 어떤 것일까 궁금해요.

 

본문에 <아비멜렉 앞에서 미친 체하다가 쫓겨난 다음에 지은 시>라는 제목이 붙어있습니다.

 

여기서 ‘아비멜렉’이라는 말은 블레셋의 왕을 통칭하는 이름입니다.

이 단어는 그러니까 애굽의 바로 왕과 같은 것이지요. 바로.

바로가 왕인 것처럼 블레셋에서는 아비멜렉이 왕인데

그 왕의 이름은 ‘아기스’였습니다. 가드 왕 아기스.

 

여러분, 기억하시죠?

사울 왕이 다윗을 잡아서 죽이려고 쫓아다닐 때,

다윗이 도피생활 초기에 자기 몸을 의지하기 위해서 블레셋 땅으로 들어갑니다.

왜냐하면 이스라엘 영토 전역은 사울의 촉각 안에 다 걸려들기 때문에.

 

그런데 아기스 앞에서, 그의 신하들은

‘사울이 죽인 자는 천천이요, 다윗이 죽인 자는 만만이다’는 노래를 인용합니다.

 

그러자 다윗이 아기스 앞에 서 있는 자리가 갑자기 너무 두려웠어요. 

거기서 순간적으로 탈출을 생각해낸 방법이.. 미친 사람 행세해서 침을 질질 흘리는 거예요.

자기 턱수염에 침을 질질 흘리면서, 미친 사람처럼 대문을 손으로 끅끅 긁었습니다.

 

다윗이 얼마나 연기를 잘했는지.. 아기스가 당장 쫓아내라고 명령합니다.

그래서 풀려난 거예요.

그리고 난 다음에 지은 노래가 바로 시34편입니다.

 

▲배경을 알고 나서 보니, 말이 안 되는 ‘여호와 자랑’

그런데 여러분 너무 우습지 않아요?

 

3절, 보면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하며 함께 그의 이름을 높이세.

4절, 여호와께 간구하매 응답하시고 모든 두려움에서 나를 건지셨도다.

 

광대하신 여호와가 건져주신 것 치고는.., 너무 말이 안 되잖아요?

미치광이 짓을 하면서 침을 질질 흘리고 대문간에 가서 대문을 벅벅 긁고...

이런 처절하다 못해 참담한 상황에서.. 여호와를 자랑하는 것이.. ‘글쎄요?’ 입니다. 

 

그리고 이어서 보세요.

5절, 그들이 주를 앙망하고 광채를 내었으니, 그들의 얼굴은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아니 ‘얼굴에 광채가 나고 부끄럽지 아니하리로다’ 하는 이 말이

지금 미친 짓을 하면서 굴욕적으로 침을 질질 흘리고 쫓겨난 다윗에게

맞기나 한 겁니까?  (‘그들’.. 다윗이 자기를 3인칭 복수 ‘그들’에 포함시킨 것으로 보임)

 

이게 도저히 안 어울려요.

도대체 지금 이게 다 무슨 말일까요?

제 같았으면요, 그렇게 구사일생으로 살아나왔으면

이렇게는 시를 못 지을 거 같아요.

 

이 시는, 다윗이 골리앗을 이긴 다음에 지어서 불렀어야.. 상황이 합당하죠!

그런데 미친 척하고 침을 질질 흘리고 가서 대문간을 북북북 긁고.

이렇게 굴욕적인 모습을 띤 상황에서.. 이런 노래가 과연 상황에 맞느냐는 거예요.

 

 

◑다시 발견한 하나님을 노래하다

 

▲미친 척 한 그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다시금 <하나님>을 찾아낸 것이에요.

심리적으로 영적으로 어떤 상태에 있었기에

그 사건을 통해 다시 하나님을 찾아내는 겁니까?

- 바로 <자랑>에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에요.

 

다윗이 용감하게 골리앗을 죽이고 명성을 떨치게 됩니다.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그것이 어느듯 다윗의 마음속에, 자아의식의 일부로 자리 잡은 것이에요.

 

그런데 보세요, 여러분.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라는 다윗의 바로 그 자랑거리 때문에

아기스 왕 앞에서, 아기스의 신하들이, 다윗을 죽이도록 권면하게 됩니다. 

삼상21:11~12

이때 다윗이 깜짝 놀라는 것이에요.                    

 

 

▲미친 척 한 그 사건을 통해서... 다윗은 다시금 <자기 자신>을 찾아낸 것이에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요’ 라는 노래 속에서의 다윗의 이미지와

정반대의 이미지, 완전히 벌레 같고/ 치사하고/ 비겁하고/ 굴욕적인 다윗의 모습이

연출되도록 만드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윗이 골리앗을 향해 나갈 때

‘나는 만군의 주 여호와의 이름으로 나가노니’ 라고 말하고 승리를 쟁취해냈을 때

그 놀라운 승리의 순간이... 그만 다윗의 마음에 강하게 뿌리 박히고

다윗의 자아의식에 바탕이 되어버렸다는 것이에요.

 

그것을 뿌리째 뽑아버리신 거예요. 하나님께서.

 

다윗이 너무 무서워 두려워 떨었다는 거예요. 두려워서.

 

아니, 아기스 왕 앞에서도, 골리앗 앞에서처럼 담대하면 되잖아요.

‘내가 비록 여기 왔지만, 블레셋 왕 아기스야. 전쟁의 승리는 만군의 주 여호와께 있다.’

어차피 과거에 골리앗을 물리칠 때도, 자기 눈 앞에 군대가 보인 건 아니지 않습니까?

그러나 다윗은, 이 자리에서, 과거의 골리앗 앞에서와 정반대의 '극심한 두려움'을 느낍니다. 

 

 

▲자기를 자랑하면... 하나님이 낮추신다.

여기 본문에 보면 여러분 이런 말이 있어요.

7절, 여호와의 천사가 주를 경외하는 자를 둘러 진치고 그들을 건지시는도다.

 

이게 골리앗 때 상황이라 볼 수 있어요. 천사는 눈에 보이지는 않아요.

그런데 여호와의 천사가 진치고 건진다고 다윗이 믿었던 거예요.

 

그러면 왜 아기스 왕 앞에서도, 왜 이렇게 노래하지 못했습니까?

반대로 왜 미친 척하고, 굴욕적으로 침을 질질 흘립니까?

 

마음에 두려움이 확 생겨버렸습니다. 마음에 왜 두려움이 생겼습니까?

그동안 자기 자랑을 하며/느끼며/(남들이 칭찬해 주는 것을 그대로) 인정하며 살아왔으니까!

자기 자랑에 문제가 있다는 거예요.

 

‘사울은 천천이고 다윗은 만만’이라는 말은, 다윗의 자랑의 뿌리였습니다.

일개 목동이 전국에 유명세를 타고 있는 명사가 될 수 있었던 주제가에요.

다윗의 명성을 알리는 주제가(로고송)였습니다.

 

그런데 바로 그 자랑스런 주제가가, 아기스 왕 앞에서는

다윗을 죽음의 경지로 몰아넣어버리고 맙니다. 죽음의 위협으로.

 

‘골리앗을 이기고, 다른 전쟁에서 이긴 것이 자기가 잘 해서 그렇다’는 자랑을 품고 살 때

하나님은 다윗을 사정없이 낮추어 버리십니다.

우리도 마찬가집니다. 그래서 성도의 자기 자랑은 ‘독약’입니다.

 

▲다시 발견한 자기 자신.., 그것을 발견케 해 주신 하나님을 찬양하다

여호와하나님에 의해서 주어진 것들을 내가 자랑할 때

반드시 나는 패망의 길로 접어들게 되요.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로다’ 하는 자랑이 오늘 내게는 없습니까?

 

주변에서 누가 그렇게 추켜세워도, 나는 빨리 그것을 부인해야 합니다.

잠자코 있는 것은, 내가 그 칭찬을 인정한다는 뜻입니다.

 

자기 찬양의 노래 때문에, 아기스 앞에서 다윗은 엄청나게 두려워합니다.

그리고 구사일생 빠져나온 것이에요. 빠져나오고 나니까 어떻게 되요?

‘나는 이렇게 쓰레기 같고, 벌레 같은 사람이구나!’

‘나의 굉장한 대장부의 모습, 아, 이것이 빈껍데기 같구나.’

‘내가 성공했던 것은, 온전히 하나님께서 받쳐주셨기 때문이었구나.’

이런 사실들을 새롭게 깨닫습니다.

 

 

다윗은 다시금 자기의 본래의 자리.

 

벌레 같은 자리, 무력한 자리, 아무것도 아닌 목동의 자리로 돌아가자마자

하나님이 보이고 하나님이 느껴지고 하나님의 광채가 빛나고 그러면서

입을 열어 노래한 겁니다. 여호와를 송축하라. 내 입술로 항상 주를 찬양하라.

 

▲내 영혼이 여호와를 자랑하리니 곤고한 자들이 이를 듣고 기뻐하리로다.  (2절)

‘곤고한 자들’이라는 말은.. ‘비천한 자들’입니다.

비천한 자들이 왜 이를 듣고 기뻐합니까?

 

내가 (미친 사람 행세 하는) 비천한 사람이라는 의식이 있는 자라야만

하나님과의 결합이 가능해지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낮게 낮게 바닥에 깔리지 않는 한.. 아무것도 내 힘으로 할 수 없고

작은 장애 앞에서도 무릎을 꿇을 수밖에 없고,

내 능력이 제로요. 아무것도 없다고 생각하는 바닥에 깔려있는 사람들에게만

하나님은 자랑거리가 되어주시기 위하여 다가오십니다.

 

 

◑하나님을 자랑한 다윗

 

▲지금 다윗은 하나님을 자랑합니다. 자기를 자랑하지 않습니다.

 

-여호와를 항상 송축함이여 (1절)

-내 영혼이 여호와로 자랑하리니 (2절)

-나와 함께 여호와를 광대하시다 하며 (3절)

 

‘내가 머리가 좋아요. 아이큐가 대단합니다. 그러면 그 아이큐를 자랑하지 말고

그 아이큐를 허락하신 분, 하나님을 자랑하세요.

 

예를 들면, 사도바울이 아그립바 왕과 베스도 총독 앞에서

‘여러분도 나와 같이 되기를 원한다’ ... 이렇게 자랑했거든요.

그런데 바울이 자랑거리가 있어야 자랑하지, 지금 뭘 자랑합니까?

‘나같이 되기를'... 어딜 나같이 돼요? 나같이 됐다가 망하라는 겁니까?

 

그러나 사도바울이 자랑하는 이유가 뭡니까?

내 속에 있는 하나님을 자랑하고, 예수그리스도를 자랑하고 있는 거예요.

 

▲세상을 자랑하기 원하는 우리들

하나님이 내 자랑거리가 될 만큼, 내게 실감나게 느껴져야 되는데

하나님을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별로 안 생기는 게.. 우리 문제입니다.

 

공부 잘하는 자식과 하나님 중에.. 누가 더 자랑하고 싶습니까?

하나님은 막연하지요. 봄 날 아지랑이 같아요. 아른아른합니다.

이게 우리의 문제라는 거지요.

 

내게 있는 것, 나와 함께 있는 것 중에

하나님보다 위대하고, 하나님보다 좋은 것이 무엇이 있어요?

그럼 당연히 그걸 자랑해야 되잖아요. 그런데 우리는 하나님을 자랑 안 해요. 아니 못 해요. 

 

공부 잘하는 자식은 내가 가지고 싶고,

돈도 내가 가져서 자랑하기 원하고

외제차도 내 것이 되기를 원하고

명품도 내게 자랑거리가 되기를 원하는데

하나님이 내게 자랑이 된다는 건.. 아직 신앙이 어려서 별로 의미가 없어요.

(그런데 다윗은 하나님으로 송축하고 자랑했다니까요? 시34:1~3)

 

하나님, 하나님 자신은 내게 자랑이 안 되도 좋으니까

그저 돈 주시고, 건강 주시고, 형통 주세요.

그러면 그거 받아서 자랑하고 싶어합니다.

우리가 지금 이 마음으로 살고 있는 거예요.

 

▲오늘날, 진정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어요? 우리 중에 과연 몇 명입니까?

여러분, 아가서를 읽어보세요.

술람미 여인이, 얼마나 주님으로 비유되는 자기 연인을 자랑하는지...!

그런데 우리는, 그렇게 자랑 못하는 것입니다. 왜냐면 술람미 여인만큼 정이 안 들었어요.

 

우리가 돈을 벌고 싶은 만큼,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으며,

공부 잘하는 자식을 원하는 만큼, 하나님을 원하는 사람이 누가 있습니까?

 

그런데 하나님이 성도에게 세상 자랑거리를 조금 주실 때도 있지요.

하나님이 조금 주시면 성도가 어떻게 됩니까?

그거 자랑하느라고... 결국 그 자랑이 자기에게 독약처럼 되지요.

그게 나를 죽음의 자리로 몰고 가거든요. (다윗이 아기스에게 갔던 것처럼)

 

여러분, 특별한 일과 특별한 사건, 뭐 아니면 특별한 물건, 특별한 소유,

이런 것이 아니라,

삶 전체에 걸쳐 나를 이렇게 허락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자랑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그게 보약이에요.

 

▲세상을 자랑하지 않으려면, 십자가에 나와 세상을 함께 못 박아야 합니다. 갈6:14

외모, 돈, 아이큐, 판단력, 뿐만 아니라 자녀, 남편, 모든 자랑거리에 대해서

십자가에서 완전히 죽으시면

오직 자랑할 것이 주님 십자가와 하나님 한분 밖에 없을 것이에요.

 

그런데 이상한 것은

하나님이 내 마음에 충만해지면서

모든 것이 행복해지고 모든 것이 잘 되면서

시편 23편의 고백이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자랑하면서 ‘부족함이 없다’고 고백하는 다윗

시편 23편뿐만 아니라,

오늘 본문 34편에도, <부족함이 없다>는 말씀이 나옵니다.

 

9절,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10절,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다윗이 지금 부족함이 없을 수가 없거든요? 그런데 부족함이 없다고 말합니다.

 

여기서 눈여겨 볼 것은, 10절의 ‘젊은 사자’가 2절에 ‘곤고한 자/비천한 자’와 대비되어 있습니다.

 

젊은 사자는.., 사자 중에서도 특히 젊은 사자는

세상적인 모든 자랑거리를 다 갖고 있는 상징적 존재에요. 짐승의 왕입니다.

젊은 사자에게는 강한 발과 이빨과 갈퀴가 자랑거리일 것입니다.

늙은 사자는 아무 힘이 없어요.

 

그런 젊은 사자도 ‘궁핍하여 주린다’고 말합니다.

사자의 사냥 성공률은 10~20%에 불과하니까요.

 

그러나 비천한 자에게는.. 하나님이 자랑거리이지만

세상 자랑거리가 아무 것도 없지만,

그 비천한 처지로 인해서 하나님만 찾게 되고

결국은 ‘부족함이 없는’ 삶을 살게 되는 것입니다.

 

젊은 사자(10절)와 비천한 자(2절).. 그 대비가 놀랍지 않습니까?

 

▲‘젊은 사자’ 시절에 망한 다윗

여러분, 다윗이 언제 망하는 길로 들어갑니까?

 

-백성계수 했을 때, 백성의 수가 많은 것을 자랑하려고 백성의 수를 계수했을 때,

-밧세바와 동침 사건과 이어서 압살롬의 모반사건.

 

이러한 위기들은 다윗이 30세에 왕이 되어서 한참 잘 나갔을 때,

마치 '젊은 사자'처럼 혈기 왕성했을 때 일어났습니다...

(본문의 ‘사울은 천천이요 다윗은 만만이다’ 면서 찬양 들었을 때를 포함해서)

 

 

.................................. 전략된 이 설교문의 서두 부분 ..........................................

 

▲도입 예화

제 자신에게 영적으로 아주 귀중한 격언과 같이 인상지어진

이솝우화가 하나 있습니다.

 

사슴이 호숫가에서 호수수면에 비친 자기의 모습을 보게 됩니다.

어느 동물에게서도 그렇게 아름다운 뿔은 있을 수가 없지요.

사슴 뿔.. 사람이 봐도 아름답지 않습니까?

 

그래서 그 뿔로 인한 자긍심과 마음에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가득 찹니다.

그래 자기 눈을 아래로 점점 내려오면서, 시선이 가늘고 긴 다리에 머물게 됩니다.

뿔에 비하면 다리는 너무나 보잘것없고 빈약합니다.

그래서 그 다리의 생김새가 못내 아쉽습니다.

 

그런데 저쪽 먼 곳에서 사자가 사슴을 향하여 달려오는 것을 발견하고는

잽싼 날씬한 다리로 껑충껑충 뛰어 도망갑니다.

도저히 사자가 그 사슴을 잡아낼 길이 없습니다.

얼마나 다리가 탄력 있게 튀어 도망가는지, 사자가 도저히 잡을 수가 없어요.

 

그래서 거의 사자의 위협을 벗어날 쯤, 숲 속으로 들어가서 깡충깡충 뛰다가

그만 그 뿔이 수풀에 걸려들고 맙니다. 걸려서 버둥거리고 있는 동안에

사자가 어슬렁어슬렁 걸어와서 사슴을 잡아먹게 되었다는 것이에요.

 

▲사람이 자랑 없이 어떻게 삽니까?

자랑.., 좋은 겁니까? 나쁜 겁니까?

 

<나쁜 것>이라고 말하기에는, 자랑이 없는 삶을 생각하면

‘오아시스 없는 사막’ 같은 느낌이 들어요.

자랑꺼리가 없다는 것처럼 삶에 무미건조한 것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마음에 아, 누구를 붙들고 정말 자랑하고 싶은 꺼리가 없어요.

삶에 어떤 탄력이 생기겠으며 마음에 기쁨이 없다는 거예요. 기쁨이.

기쁨의 꺼리는 거의 자랑꺼리라는 말과 일치하게 됩니다.

 

‘내가 너무너무 기뻐할 일이 있는데, 그걸 자랑하고 싶은 마음이 전혀 안 생긴다...’

이건 좀 이상한 거 같아요.

‘자랑이 없는 생애?’ 보람도/ 기쁨도/ 신선함도... 아무것도 없는 거지요.

 

그런데 성경 곳곳에는 자랑이라는 말에 대해서

상당히 부정적인 뉘앙스를 띠고 경고를 하는 부분들이 군데군데 있습니다.

 

이 자랑이라고 하는 게 여러분, 보약입니까? 독약입니까?     

 

                                                                                

*원제목 : 자랑, 보약인가 독약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