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인된 인도자 눅6:39~42 09.06.21. 설교 대강 녹취
◑1. 비판은.. 스스로 맹인된 인도자가 되는 것임을 깨달아야 한다.
예수께서 비유로 이렇게 말씀하신다.
또 비유로 말씀하시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할 수 있느냐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지 아니하겠느냐 눅6:39
이 말씀은, 눅6:37~42의 문맥상, 누군가를 판단/비판하는 사람에게 하시는 말씀이다.
비판할 자격이 없는 사람이, 다른 사람을 비판하고 훈계하는 것은
마치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는 것과 같다는 일이다. 우스운 일이다.
<내가 맹인이다>는 사실이다.
그래야 누군가를 구덩이에 빠뜨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하고, 누군가에 대해 정죄적이 되려고 할 때,
나도 그 비판받을 사람과 똑같이 비판받을 사람임을 잊지 않도록 하라.. 는 말씀이다.
▲맹인이 다른 맹인의 손을 잡고, 길을 인도해 주는.. 전제
다른 말로, 남을비판할 때의 전제
① <상대방이 맹인>이라고 판단 내렸을 때.. 남을 비판한다.
자기가 맹인이라고 스스로 판단하는 사람은
절대 다른 맹인의 길을 인도하려고.. 시도조차 하지 않는다.
② <자기 자신을 정상>이라고 판단 내렸을 때.. 남을 비판한다.
따라서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하는 사람은
자기는 비판받을 만한 것이 별로 없다는 것을 전제로 .. 남을 비판하는 것이다.
그가 스스로 ‘내가 비판할 자격은 없지만’이라고 말 하더라도
실제로 남을 비판한다는 것은
자기 속에서 ‘내가 남을 비판할 자격이 있다.’, ‘나는 비판받을 만한 것이 없다’는
전제 아래서.. 남을 비판하게 된다.
따라서 누군가를 비판하고 있다는 것은
내가 비판하는 사람에 대하여 ‘이러쿵 저러쿵’ 말을 하고 있지만
사실은 자기 자신에 대하여 말하고 있는 것이다.
‘내가 누군지 아니? 나는 비판받을 사람이 아니야!’ 이렇게 스스로 말하는 것이다.
남을 비판하는 그 순간에!
▲남을 비판하는 것은, 자신이 의인임을 드러내는 것
<성전에 올라간 바리새인과 세리의 기도>를 살펴보면 눅18:10~14
세리가 기도할 때는.. 다른 사람에게 관심이 없다. 바리새인에게 관심이 없다.
오직 하나님께만 기도한다.
그런데 바리새인이 기도할 때는..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자꾸 세리를 본다.
그리고 세리에 관해 말한다. ‘저는 저 세리와 같지 아니하고...’
이것은 사실은 자기에 대해 말하는 것이다. 자기는 의인이라고...
그러니까 바리새인이, 세리에 대해 죄인이라고 비판하는 순간,
그 본질은 ... <자신은 의인>이라고 나타내고 있는 것이다.
비판의 본질이 바로 이것이다.
남을 비판하는 그 순간
바로 자기가 의인이라고 드러내는 것이다.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신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심판하러 이 세상에 왔으니
보지 못하는 자들은 보게 하고, 보는 자들은 맹인이 되게 하려 함이라 하시니
바리새인 중에 예수와 함께 있던 자들이 이 말씀을 듣고 이르되 ‘우리도 맹인인가?’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가 맹인이 되었더라면 죄가 없으려니와
본다고 하니 너희 죄가 그대로 있느니라. 요9:39~41
저를 포함한 우리들은
‘당신은 아무 것도 몰라, 그러니까 내가 시키는 대로 해야 돼!’ 라고 말할 때가 있다.
적어도 내가 다른 사람을 볼 때 ‘저 사람들은 아무 것도 몰라’ 라는 생각이 들 때,
즉 위의 바리새인처럼 ‘내가 본다’고 말할 때
예수님 말씀은, ‘너는 맹인이다’는 것이다.
반대로 내가 ‘저는 볼 수 없습니다. 나는 맹인입니다. 나는 아무 것도 알지 못합니다.’
라고 말할 때, '진실로 보게 된다'는 예수님의 말씀이다.
그러니까 내가 누구를 ‘잘 본다고 생각하고 판단하는 그 순간’
‘나는 맹인’이 된다는 것이다.
시력이 좋다는 사람일수록, 맹인이 될 가능성이 크다.
(분별하지 말라는 뜻은 아님. 남을 죽일 목적으로 판단하는 것을 가리킴)
▲판단과 비판을 조심해야 한다.
우리는 어릴 때, 한국 선수들이 올림픽이나 축구 경기에 힘을 쓰지 못하는 것은
김치와 된장을 먹었기 때문이고,
외국 선수들이 힘을 잘 쓰는 것은.. 고기를 먹었기 때문이라는 말을 들었다.
그런데 요즘은 ‘김치의 발효과학’ 등이 속속 밝혀지면서
김치와 된장 등이 얼마나 훌륭한 음식인지.. 뒤늦게 깨닫고 있다.
물론 조상들이 무슨 과학적 근거에 의해 김치를 담근 것은 아니었지만,
이제 와서 과학적으로 조사해 보니.. 김치만큼 좋은 음식이 없더라는 것이다.
마찬가지로, 오늘 우리가 안 좋다고 비판하는 것이
나중에 시간이 지나면, 매우 훌륭한 것으로 밝혀질 수도 있으므로
판단과 비판을 매우 조심해야 한다.
▲자신이 맹인임을 잊지 말라
나만 지혜로운 사람이라고.. 절대 생각해서는 안 되고
그만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절대 생각해서도 안 된다.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질 수 있다는 말씀을
예수님이 굳이 하시는 이유는
<자신이 맹인임을 잊지 말라>는 교훈을 주시는 것이다.
자신이 정말 맹인임을 인정한다면
나는 섣부르게 누구를 인도하려고 덤벼들지 못한다.
내가 맹인임을 안다면
누군가에게 과감하게 ‘너는 이렇게 해야 돼!’ 라고
단정적으로/ 비판적으로 훈계하지 못 한다.
설교를 들을 때도 마찬가지다.
설교를 들을 때, 설교에 대해 비판적이 되는 것은 .. 자기 잘못이다.
자기가 성경 지식이 많아서, 그래서 설교가 내 귀에 들리지 않는다면
그 지식은 자기 눈을 가린 것이다. 자기가 먼저 맹인이 된 것이다.
어쨌든 우리는 비판자의 자리에 서게 될 때,
내가 먼저 맹인이라는 사실을 꼭 기억하자.
그래야 비판을 조심하게 된다.
◑2. 윗사람을 비판하지 말라 눅6:40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 못하나,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눅6:40
내가 누구보다 잘난 척 해도, 그래서 그를 비판하는 점이 있다 해도
사실 전체를 놓고 보면, 나는 그 보다 훨씬 더 못한 사람인 경우가 많다.
간혹 스승을 비판하는 제자가 나올 수 있으나,
사실 전체를 놓고 보면, 스승이 훨씬 나은 것이 사실이다.
우리가 윗사람을 비판할 때, 조심해야 한다는 것이다.
그 점에 있어서는 스승의 과오가 혹시 있을지라도,
제자가 그 선생보다 높지(잘나지) 못하고,
무릇 온전케 된 자는 기껏 그 스승과 같다는 말씀이다.
▲옛날에 <굿 윌 헌팅>이란 영화에서 본 장면이 인상적이었다.
거기에 한 젊은 천재가 나온다.
윌 헌팅(Will Hunting: 매트 데이몬 분)은 20년을 살아오면서
누구의 간섭도 받아본 적이 없었다. 세상에 대해 적대감을 가진 청년이었다.
그가 잘 하는 것은, 책을 보면, 머리가 좋아서, 내용을 다 암기해 버린다.
그러니까 지식으로 이 청년을 당해 낼 수가 없다. 모든 것을 다 안다.
윌은 MIT 공대에서 강의실 바닥 청소 일을 할 때 말곤
대학교 정문 근처에도 가본 적이 없다.
그러나 노벨상을 수상한 교수들조차 혀를 내두를 만큼 어려운 문제들을
싱거울 정도로 간단하게 풀어버린다.
그러한 그도 결코 우습게 상대하지 못할 인생의 스승을 만나게 된다.
그러나 그토록 머리가 비상한 윌도 어쩌지 못 하는 게 한 가지 있다.
폭행죄로 재판을 받게된 윌은 수감될 위기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윌의 유일한 희망은 심리학 교수인 숀 맥과이어(Sean McGuire: 로빈 윌리암스)이다.
숀은 윌이 가진 내면의 아픔에 깊은 애정을 갖고 관찰하면서
윌에게 인생과 투쟁하기 위해 필요한 지혜를 가르쳐 준다.
그 심리학 교수 숀이 윌에게 이렇게 말한다.
‘내가 볼 때, 너는 어린애에 불과해.
내가 2차대전에 대해 네게 묻는다면, 그것을 발단/전개/결말에 대해
너는 모든 외운 지식을 총동원해서 잘 대답할 수 있겠지.
그러나 너는 전쟁터에서 총에 맞아 죽어가는 전우의 눈빛을 알고 있니?
너는 미켈란젤로의 천정벽화가 그려져 있는 시스틴 성당에 들어가서
그 냄새나 분위기를 느껴본 적이 있니?
너는, 아침에 잠자리에서 일어났을 때, 네 옆에 누워있는 아내에게서 느껴지는
신비한 감동을 네가 알고 있니?
만약 모른다면, 너는 아직 아무 것도 모르는 어린애거든?’
저는 그 영화를 보고 크게 깨달았다.
책에서 경험할 수없는 놀라운 지식이 있다는 것이다.
그래서 공부를 많이 한 사람도.. 절대로 겸손해야 한다는 것이다.
만약에 젊은 목회자가, 자기가 단순히 성경적/신학적 지식이 좀 더 많다고
나이 든 성도들을 존경하는 마음 없이 으스대며 설교한다면
그는 큰 잘못을 범하는 것이다.
소경이 눈 뜬 사람들을 인도하는 격이 되는 것이다.
▲제가 세계적인 소프라노 신영옥 씨의 인터뷰 기사를 읽고 감동받았던 적이 있었다.
그 분은 그 때 당시만 해도 개인레슨을 받고 있다고 했다.
‘아니 세계적인 소프라노가 지금도 레슨을 받는다니...!’ 가히 충격적이었다.
그렇다. 사람은 일평생 배우는 자세로 살아야 한다.
그런 사람이 그리스도의 제자의 정신이다.
제자는 배우는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그리스도를 배우는 일은, 일평생 걸리는 작업이다.
무릇 온전하게 된 자는 그 선생과 같으리라 눅6:40
그리스도와 같이 온전하게 되기 위해서, 일평생 배워가야 하는 것이다.
나는 맹인에 불과하다고 생각하면서...
◑3. 들보의 교만 눅6:41~42
어찌하여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는 보고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는 깨닫지 못하느냐
너는 네 눈 속에 있는 들보를 보지 못하면서 어찌하여 형제에게 말하기를
형제여 나로 네 눈 속에 있는 티를 빼게 하라 할 수 있느냐
외식하는 자여 먼저 네 눈 속에서 들보를 빼라
그 후에야 네가 밝히 보고 형제의 눈 속에 있는 티를 빼리라 눅6:41~42
내가 누군가를 비판하려고 할 때,
사실은 그 사람이 나보다 훨씬 더 성숙한 사람일 수 있다는.. 교훈의 말씀이다.
비판하기 전에, 그 사실을 먼저 명심하라는 것이다.
자기는 (대)들보beam가 있고, 남의 눈에는 티가 있다는 것을!
내가 누구를 비판하려고 할 때,
사실은 다른 모든 면을 놓고 볼 때,
그는 전반적으로 나보다 훨씬 더 훌륭한 사람인 것을 알 때
내 비난의 정도가 조정될 수 있는 것이다.
‘들보’는 교만이다.
내 눈에 교만이 가득 들어차 있는 사람이, 남의 눈에 티를 비판한다.
자기 눈에 들보가 한 때 있었으나, 그것을 빼 낸 사람은
남의 눈에 티를 볼 때, 그렇게 심하게 비판하지 않는다.
자기 눈에도 한 때 들보가 있었음을 알기 때문이다.
내가 교만한 가운데, 남에게 훈계하는 것은 .. ‘네 팔뚝 굵다’ 하지만
내가 한 때 들보가 있었던 사람이라고, 그래서 겸손한 가운데 훈계하는 것은
.. 상대로 하여금 내 훈계에 귀를 기울이게 한다.
▲저(설교자)는 비판적인 사람
강남교회 송태근 목사님이 저희 교회에 설교하러 오셔서 이런 말씀을 하셨다.
‘제가 제 자신을 돌아보니까 상당히 부족한 사람인데,
성도들이 잘 봐 주셔서 제가 목회를 계속 하고 있습니다.’
저도 마찬가지 심정이다.
저희 성도님들이 저보다 연륜도 많으시고, 훨씬 더 많이 아시고, 더 뛰어나신 데도
겸손히 저를 따라주셔서, 모난 저를 잘 용납해 주셔서
제가 오늘까지 목회하고 있다...
▲마치는 말
물론 종종 우리들은 ‘내가 비판할 자격은 없지만’ 하면서.. 결국에는 비판한다.
비판을 잘 하는 사람이, 비판을 참는 것은
마치 몸에 가려운 곳을 긁지 않고 참는 것처럼, 대단히 참기 어려워 한다.
비판/지적하는 말을 꼭 하고 넘어가야, 속이 후련해지는 것이다.
그러나 비판/지적으로 이룰 수 있는 일이.. 거의 없다는 것을 동시에 염두에 두어야 한다.
오히려 성경은, 그것이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다가 둘 다 구덩이에 빠지는 것과
똑같은 결과를 가져올 것을 증거 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마음과 입술에서는
끊 없이 누군가를 비판하고, 깎아내리고, 그래야 될 것 같은
그래야 뭔가 내 존재가치가 확인되는
그런 미숙한 마음이, 저와 여러분 모두에게 얼마간이라도 있다.
그래서 ‘비판하지 말라’는 말씀을.. 우리는 끊임없이 들어야 한다. ▣ 크리스천 인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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