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은혜의 통로가 된 느헤미야 2031

LNCK 2009. 8. 12. 23:49

◈은혜의 통로가 된 느헤미야                  느5:1-19                           -08.11.14.설교스크랩-

                                                                                        *원제목 ; 재테크, 돈을 물 쓰듯 하라

 

▲예루살렘에 고리대금업이 발생하다.

오늘 본문 느5장은, 에스라의 2차포로 귀환을 통해서 성전이 재건되고

하나님의 율법과 율례가 알려졌습니다.

그리고 이제 예루살렘 성 외곽에 성벽을 재건하는 일을

지금 이 느헤미야가 와서 하고 있는 중에 일어난 일입니다.


바로 앞장(느4장)까지는 산발랏과 도비야 같은 외부의 적들이 방해를 놓았습니다.

그런데 느5장에서는, 내부에서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데 동의한 사람들 사이에서 이 문제가 발생했습니다.

유대공동체 자체가 붕괴될 위험까지도 보이는 그런 심각한 문제가 대두됩니다.


뭐냐 하면 페르시아의 지배 하에서, 그 페르시아의 제5관구에 속하는

이 예루살렘 유대 땅 (사마리아 포함) 역시 나라에 세금을 내야 합니다.


그런 와중에 거기 있는 유다인들 부자들에 의해서 고리대금업이 성행하고

                         우리는 밭과 포도원으로 돈을 빚내서 왕에게 세금을 바쳤도다.  느5:4

그리고 채무를 이행하지 못한 유대인들의 자녀들이 종으로 팔려가고

                               이제 우리 자녀를 종으로 파는도다. 우리 딸 중에 벌써 종된 자가 있고,

                               우리의 밭과 포도원이 이미 남의 것이 되었으나   5:5

그래서 슬픔에 처한 그들이, 아내와 함께 크게 부르짖어 원망했다고 해요. 5:1


그래서 이 이야기를 듣고 느헤미야가 크게 분노했으나

자기의 감정을 잘 절제하고, 부자들을 불러다가 잘 얘기를 하게 됩니다.


너희의 행위가 옳지 못하다...

옳지 못한 이유는 이방인들이 보고 얼마나 웃을 거냐/비방할 거냐...  5:9

꾸짖기도 하고, 타이르기도 합니다.


▲이방인들의 비방

왜 이방인들이 보고 웃습니까? 아니 성전을 세워 놓고

그곳에 임재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기 위하여 세상을 등지겠다고 성벽을 쌓은 사람들이..

아니 무슨 일이냐.. 그 속에서 세상을 재현하다니 깔깔대고 웃을 것이 아닙니까?


기껏 성전을 바라보고 살겠다고 결심하고는 너희들끼리 모여서

너희들 안에서 세상을 재현하냐?

그 속에서 고리대금업을 하고, 너희의 형제들의 자녀들을 빚을 갚지 못한다고

종으로 삼고... 웃긴다는 겁니다.


그럴 바에는 뭣 하러 성벽을 쌓느냐는 겁니다. 살아가는 방식이 우리와 똑같은데.


요즘 교회 같아요. 교회라는 울타리 안에서 세상과 똑같이 살아갑니다.

그 짝이 난거에요.

그러니까 이방인들이/교회 밖의 사람들이, 교회알기를 아주 졸로 알아요.


▲샘물은 넘쳐서 흐르게 되어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 중요한 문제가 대두가 됩니다.

자 보세요. 성전이 세워졌어요.

성전에서 뭐가 나옵니까? 하나님의 은총과 하나님의 영이 물처럼 흘러나옵니다.


거기가 샘물이에요. 성전이 샘물의 원천이 되어서

거기로부터 하나님의 영이 하나님의 기운이 샘물처럼 솟아올라 납니다.


그러니까 성전에 눈길을 주고 있는 사람, 자기 마음의 눈길을 주고 있는 사람을 통해서

하나님의 기운이 샘물처럼 흘러들어 옵니다.

즉 하나님의 기운이 하나님의 영이 물처럼 내안에 흘러 들어왔어요.


예수님은 생수라고 그러셨죠? 그 생수가 내 안에 들어왔어요.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은 막혀 있습니다.

이 때 내게 임한 이 하나님의 생수가... 넘쳐흐르게 됩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성벽을 넘쳐서, 바깥으로 흘러나가는 것이에요.


▲나는 생수의 통로, 그런데 내게서 막혀버릴 수도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샘물이 계속해서 흘러들어올 수가 있겠습니까?

어떻게 해야 샘물이 계속해서 성전과 성벽 바깥으로 넘쳐서 흐르겠습니까?

(겔47장에, 생수의 강이 성전에서 흘러나야 넘쳐흐를 것이 이미 예언되어있습니다.)

 

하나는, 내가 열린 통로가 되어서, 생수가 계속 흐르도록 해야 하는 것이고,

또 하나는, 내게서 그 샘물이 막히지 않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요한계시록에 새예루살렘 성이 나오는데, (본문의 예루살렘 성과 비슷합니다.)

그것을 상징적으로 볼 때, 그리스도의 신부, 즉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계21:9~10 

 

성전(예수님, 계21:22)으로부터 나온 생수가 

계속 내게로(성벽, 성으로) 흘러 들어와야 넘칠 것 아닙니까?

그런데 어떻게 해요? 나한테서 막혀버려요.

나한테서 막히지요? 그러면 생수가 더 이상 흘러가지 않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됩니까? 오늘 본문에 보니까

너희가 이웃과의 관계를 하나님을 경외함으로 행할 것이 아니냐? 라고 이방인들이 비웃습니다. 5:9

그러니까 이웃과의 관계를 등한시하면...

생수가 넘쳐 흐르기는커녕, 이방인들에게 비웃음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다시 말하면, 성전으로부터 하늘의 생수가 내게로/성벽으로 임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이웃에게로 뻥 뚫려야 흐름이 계속 흘러가면서 계속 나온다는 겁니다.


예루살렘 성이 생수로 넘쳐나면서 드디어 성벽을 넘어서

이방세계로 하나님의 생수가 퍼져 나갈 수 있다는 것이에요.


나 한사람이 받습니다. 그리고 그것이 이웃에게로 흘러가야 합니다.

넘쳐나서 흘러가게 예정되어 있습니다. 내게서 막히지 않으면요.


▲내가 생수의 통로인지/아닌지 알 수 있는 시금석 - 물질의 사용처             *시금석 - 시험하는 돌

여러분, 바람이 눈에 보이지 않지만,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고서

바람이 분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성령의 바람이 임의로 불 되 어디서 부는지 알 수 없지만,

성령으로 난 사람은, 나뭇가지가 흔들리듯이.. 그 증거가 반드시 나타납니다.


그 증거 중에.. 강력한 것 한 가지가 .. 물질입니다.

물질을 사용하는 법을 보면 (나뭇가지가 흔들리는 것을 보듯이)

그 사람에게 성령의 바람이 불고 있나/ 없나 ... 알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나를 통해서 물질이 강물처럼 흘러가고 있으면, 성령충만한 사람이고,

나를 통해서 물질이 꽉 막혀 버렸으면, 생수의 공급도 막힌 사람입니다.

다시 말해서, 생수의 통로가 되는 사람은.. 동시에 물질의 통로도 되는 것입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생수는 내게 임해서 이웃에게로 계속 흐르는데

이웃에게로 성령의 생수가 흘러갈 때에

반드시 내게 있는 물질도 함께 실려서 흘러가게 되어 있습니다.


오늘 내 주머니의 물질이

타인에게로/ 나 이외의 영역으로 흘러가고 있습니까?

아니면 내 가족 이내의 영역에서만 흘러가고 있는지요?

그것이 ‘성령의 통로’의 시금석이 된다는 것입니다.


돈이 내게서 다른 사람을 향하여 흘러가지 않잖아요?

그것은 하나님의 성령/생수가 내 쪽에서 멈춰진 것이에요.


    당시 느헤미야 5장 상황이 그처럼 된 것이지요.

    우리는 페르시아에서 포로로 잡혀온 너희의 형제들을

    포로 신분에서 속량하느라고 난리를 벌였는데

    너희는 어떻게 너희형제를 종으로 삼느냐고? 느헤미야가 물어보는 겁니다.

    

     그래서 이방인에게 도리어 비방을 받고 있는 처지인데,

     그 성령의 생수가 이방인에게로 흘러갈 수 있겠습니까? 도리어 욕을 먹고 있는데요...


여러분, 바늘 가는데 실 따라가듯이,

성령의 생수가 흘러가는데, 우리의 물질도 함께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물론 물질 이외에도, 시간/재능 등 내 모든 것이 함께 따라가게 되어 있습니다.


이웃에게로 갈 수 있도록, 옆에 사람에게 갈 수 있도록...

그것이 내게서(예루살렘 성벽) 막혀 버리면.. 위로부터 공급이 끊어질 것입니다.

성령의 공급도 물론이요, 물질과 다른 자원의 공급도.. 점점/완전히 끊어질 것입니다.


▲자기가 '은혜의 통로'가 되었다고 기도하는 느헤미야   5:19

느5장 후반부에서 느헤미야는

자기가 총독으로서의 권한을 충분히 다 사용하지 않은 것을 말합니다.'

 

총독이면 마땅히 자기가 총독으로 다스리는 그 지역사람들에게

세금을 얻을 그런 자격과 권한이 있습니다.

여기 15절에 보면 양식과 포도주와 또 은 사십 세겔이 나옵니다.

이것들은 총독이 자기 몫으로 하루에 합법적으로 거둬들일 수 있는 세금입니다.

그런데 그런 거 다 안했다는 거예요.


그리고 자기가 갖고 있는 재산을, 페르시아에서 모아 놓은 재산을 갖고 와서

오히려 날마다 송아지를 잡고 닭을 잡아서 사람들에게 베풀고 살았다는 겁니다.


그런데 마지막에 뭐라고 기도를 하냐면

19절, 내 하나님이여 내가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이렇게 기도합니다.

이 기도의, 간구의 뉘앙스가 어떻게 느껴져요?

‘내가 이렇게 잘 했습니다. 그러니까 내게 갑절로 다 갚아주소서!’

이런 뜻일까요? ... 아니라는 겁니다.


이 얘기는

‘하나님 아시지요? 내가 이웃을 향해 뚫어 놓은 통로가 있음을 아시지요?

언제나 이웃을 향하여 흘러가실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내게 임하시면, 나를 통해 이웃으로 흘러가실 수 있도록

통로가 사방으로 뚫려 있는 것을 아시지요? 그러므로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라는 뜻입니다. 

 

'이 백성을 위하여 행한 모든 일을 기억하사 내게 은혜를 베푸시옵소서' 라는 말씀의 뜻을

다시 한 번 잠시 묵상해 보세요!

 

‘그러므로 하나님 내게 마음 놓고 임하셔서, 당신이 원하시는 대로

내 주변의 사람들에게 하고 싶으신 대로.. 마음대로 흘러가게 하세요.

하나님의 마음대로 흘러가게 하세요!’ 이런 뜻입니다.


‘내게 은혜를 베푸소서’ 한 것이

‘제가 그만큼 썼으니까, 이제 제 주머니 두둑하게 불려 주세요!’ 라는 뜻이

아니란 말입니다.

우리가 항상 그런 눈을 갖고 있으니까, 성경을 그렇게 해석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만약 자기 주머니 불릴 마음으로, 느헤미야가 많은 물질적 선행을 앞서 베풀었다면,

느5장에 나온 고리대금을 한 부자들과.. 근본적으로 큰 차이가 없습니다.

둘 다 더 부자되려고 했다는 공통점을 갖게 됩니다.)


진짜 은혜 받은 사람은.. 자기 것을 다 드리면서도, 어떤 보상을 요구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이 다 알아서 보상해 주시겠지만, 그것 바라보고/그것 기대해서

느헤미야가 자기 동족을 도운 것은 아니라는 것이죠!


그래서 5:19절 해석을,

give and take식으로/보상심리로 해석해서는 안 된다는 말입니다.

성령 받은 사람이.. 자원해서 성령/은혜/생수/물질의 통로가 되게 되어 있습니다.


▲그렇지 않으면, 털려서 빈손이 될 수도 있습니다.    5:13


내가 옷자락을 털며 이르기를, 이 말대로 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모두 하나님이 또한 이와 같이 그 집과 산업에서 털어 버리실지니

그는 곧 이렇게 털려서 빈손이 될지로다 하매

회중이 다 아멘 하고 여호와를 찬송하고 백성들이 그 말한 대로 행하였느니라. 느5:13


느헤미야가 부자들에게 이 말을 하면서, 자기 옷을 탁 탁 털어요.

만약에 여러분이 이웃을 향하여 이렇게 열어놓지 않으면

지금 허락하신 모든 재산을

하나님이 옷에 먼지를 털어버리듯이 빈털터리로 만들어버릴 것이다.

하나님이 털어버리시면.. 반드시 그렇게 되고말 것입니다! ... 라고 말합니다.


지금 그 사람 당사자들을 위해서 충직한 조언/진실을 말해 주는 것이지,

느헤미야가 그들을 협박하는 것은 결코 아닙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이/은혜가 내 안으로 들어오시면, 반드시 흘러나가셔야

새로운 은혜와 새로운 생수가 내게 흘러 들어오는데,

그 흐름은 반드시 물질을 싣고 갑니다.


내가 물질을 붙잡고 있는 한, 이 흐름은 막혀 버립니다.

물질의 순환이 안 되니까, 물질의 공급이 위로부터 막혀 버립니다.


이 때 하나님의 새로운 생수의 흐름 역시

내게 유입되지 않는다는 사실을 기억합시다.

 

십자가 신앙으로 돈에 대한 애착을 못 박고,

우리 삶이 물질을 선순환 시키는 축복의 통로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그 때 동시에 은혜/생수/성령의 통로도 되는 것입니다.

 

내 창고에 모아두기 위해.. 받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흘려보내기 위해.. 받는 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내 창고와 내 통장이 점점 커지고

내 자동차가 점점 커지고 내 집이 점점 커지는 것이 은혜가 아니라,

이웃에게, 이방 세계에 더 많이 흘려보내는 것이.. 은혜라는 것입니다...

 

    느헤미야는 예루살렘 성벽을 쌓는 사명을 감당했습니다.

    문자적으로는, 건축사역을 했지만

    영적으로는, '백성들의 무너진 행실/마음/인격의 담'을 새로 쌓는 것이었습니다.

    느5장에서, 느헤미야는, 백성들의 내부적으로 허물어진 담(고리대금, 이웃 불화)을

    어떻게 잘 수습해 나가는지 보여주고 있습니다.

   

     계시록에서 성전은.. 하나님/예수님을 가리키고, 그래서 성전 재건은 '여호와 신앙'의 재건이요,

     성(성벽)은.. 성도들을 가리킵니다. 그래서 성벽 재건은 '성도들 삶'의 재건이 되는 셈입니다.

     느헤미야는 5장 말고도, 계속해서, 성도들의 무너진 삶을 재건하고 있음을 다른 장에서도 보여 줍니다.

  

                                                                                                                ▣ 꿈, 비전, 소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