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순교자와 남겨진 그 가족 이야기 2043

LNCK 2009. 8. 20. 16:07

◈순교자와 남겨진 그 가족 이야기                  롬8:28                       -09.08.09.설교스크랩/출처-

     

                                                                                

   

◑주기철 목사님의 아드님들


주기철 목사님의 순교에 관한 일화와 간증들은 많이 소개되었고,

그래서 오늘은 저희 집안의 이야기,

즉 주기철 목사님의 후손들이 어떻게 되었는지를 여러분에게 소개하겠습니다.


저(주승중 교수님)는 어려서부터 계속해서 주기철 목사님의 아들들

즉, 저의 아버님과 큰 아버님들의 어려웠던 시절에 대한 이야기를

많이 들으면서 성장했습니다. 그 이야기를 잠시 나누어 보려고 합니다.


▲장남은 순교

주기철 목사님의 장남인 주영진 전도사님

해방 후 평양 근교 김제라는 곳에서

그 당시 벌써 500여명 출석하는 김제교회의 담임목회를 하면서,

그 당시 교역자가 없는 평양 산정현 교회의 저녁 예배 설교를 하시다가,

1950년 6.25전쟁이 터진 한 달 뒤인 7월에

공산당에서 잡혀가 생매장 당하고 말았습니다.

(아버지 주기철 목사님의) 대를 이어 순교를 한 것이지요.


주 목사님이 해방 전에 1944년도에 순교하셨으니까,

약 6년 만에, 주목사님의 장남이 또 이어서 순교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저희 집안에는 순교자가 두 분이 있습니다.         

한 분은 저의 친할아버님 되시는 고 주기철 목사님이고,

또 한 분은 저의 백부님이신, 고 주영진 전도사입니다.       *백부 : 큰아버지


▲남겨진 가족들은 도대체 무슨 잘못이 있습니까?

그런데 제가 이렇게 할아버님 주목사님의 고문당한 이야기,

그리고 그 ‘아들들 4형제’가 엄청나게 고생한 이야기들을 듣는데,                       

언젠가 한번은 제 마음속에 한 가지 풀리지 않는 의문이 생겼습니다.

그리고 이 질문은 아주 오랫동안 저를 괴롭혔습니다.

그것은 바로 이런 질문이었습니다.


‘할아버님 주기철 목사님은, 믿음을 지키고 순교하심으로써 순교의 면류관을 쓰셨지만,

사실 엄밀하게 말하자면, 남은 가족들은 그로 인하여 버림을 받은 것이 아닌가?


사랑하는 남편이, 사랑하는 아버지가 하루가 멀다 하고 붙들려 감옥에 들어가시고,

그리고 그 교회는 강제로 문이 닫히고,

그리고 가족들은 평양의 그 추운 겨울에, 영하 20도의 추위 때 사택에서도 쫓겨나

갈 곳이 없어 헤매고, 도대체 남겨진 가족들은 무엇이란 말인가?’


▲2남 주영만 님에 얽힌 일화

추운 겨울에 먹을 것은 없고, 방은 냉방인데,

주목사님이 감옥에 들어가시면, 사모님은 금식기도를 선포하십니다.


그러면 그 추운 겨울에, 방에 불도 안 때고,

음식도, 쌀 한 톨도 어디론가 싹 치워버리십니다.

(물론 먹을 것도, 뗄 감도 없었지만...)


그리고 일주일 금식기도를 선언하십니다.

그러면 그 때에 오산학교에 다니시던 주 목사님의 둘째 아드님은

겨울 방학 때 집에 오면


어머니(주목사님의 사모님, 사별후 재취)가 매일 같이 금식기도 해야 한다면서

밥도 제대로 안주니, 어머니에게 대들면서 (전처와 4남1녀 낳고, 오정모 사모님과는 자녀 없었음)  

“어머니, 왜 이렇게 매일같이 금식기도를 강요하십니까?

그리고 이제 겨우 초등학생들인 동생들을 왜 이렇게 굶기십니까?”

이렇게 항의를 하고 집을 뛰쳐나갔습니다.


그 당시 아래로 동생들이 2명 더 있었는데,

3남은 초등학교 5-6학년 나이였고,                    

4남은 초등학교 1~2학년 나이였습니다.                 


그래서 3남과 4남은, 집에 남아 밤새워 기도한다고 기도하다가,

추워서 서로 부둥켜 앉고 있다가 쓰러져 잠이 들곤 했습니다.


그러면 어머니와 다투고 집을 나간 둘째 아드님은

집에 살짝 들어와서 동생들에게

‘화장실 서까래에 풀빵 얹어 놓았느니 그것을 먹어라’고 하면서,

 

추운 밤에 화장실 간다고 나가서

동생 둘이서 꽁꽁 얼은 풀빵을 녹여가면서 먹었다는 일화가 있습니다.

(그 외에도 물론 무수한 이야기들을 제가 듣고 자랐습니다.)


▲3남, 주영해 장로                                                  

저(주승중 교수)는 주기철 목사님의 셋째, 주영해 장로의 아들입니다.

그래서 저는 어렸을 때부터 할아버님 주기철 목사님 이야기,         

그리고 큰 아버님 주영진 전도사님의 이야기를

부모님과 삼촌들로부터 아주 자세하게 들으면서 자랐습니다.


그 추운 겨울에 평양 사택에서 쫓겨나 몇 년 동안 11번도 더 이사 다닌 이야기,

추운 겨울에 온 가족이 바깥에서 거적떼기 깔고 지내던 이야기,

밀가루, 수수자루 던진 이야기,

소망교회 은퇴 권사님 만난이야기,

동네 방앗간에서 이삭 줍던 이야기,

죽 한 그릇이 하루 식사였고, 굶기를 밥 먹듯 했습니다.


▲주목사님의 사모님(오정모)도 곧 소천

주목사님이 1944년도에 순교하시고,

1945년 해방 후 1년 만에 주목사님의 사모님마저 소천 받고 난 다음에,

그 아드님 4형제들은 고아원으로, (나무로 들통을 만드는) 공장으로 뿔뿔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

 

     주목사님이 몇 달 간 감옥살이를 하고 가석방이 되었을 때

     감옥을 나온 남편에게 한 첫 마디가 "승리요?"였습니다. 감옥에서 신앙승리를 했느냐는 것입니다.

     그리고 두 번째 한 말은 "다시 감옥에 갈 준비를 하시오."

    

     주목사님이 마지막 감옥살이를 4년 정도 하셨습니다.

     몸이 극도로 쇠약해서 일경이 오정모사모에게 통지하여 주목사님을 모시고 나가라고 했습니다.

     그러나 오정모 사모님은 감옥에서 순교해야 한다며 거절했습니다.

     순교 전날 오정모는 주목사님을 면회했습니다. 그리고 말했습니다.

     "어머니와 아이들은 내가 책임질테니 목사님은 순교하시오. 목사님이 순교하셔야 한국교회가 삽니다."

 

▲졸지에 고아가 된 아드님들

그래서 그 아드님들은 교육도 제대로 받지를 못했습니다.

저희 아버님 같은 경우에는 초등학교를 졸업하는 데도

무려 7개 학교를 옮겨 다닌 끝에 겨우 사설학원을 졸업했습니다.


학교에서 아침조회 때, 동방요배 안한다고, 순악질 목사 자식들이라고 퇴학당했습니다.

오정모 사모님께서도 절을 하지 말라고, 자녀들을 결국 학교에서 자퇴시키셨습니다.


이렇게 제 선친(3남)께서는 여러 번 퇴학당한 끝에

17살에 겨우 사설 학원 같은 곳을 졸업했습니다.

 

▲4남, 주광조 장로  

4남 주광조 장로님은, 14살이 될 때까지 학교 문턱에도 못 가보았습니다.

영락교회 은퇴장로이십니다.

(자녀는 4남 외에도 1녀가 있었다고 합니다)

 

▲순교자의 남겨진 가족은, 도대체 뭔가요?

그런데 저는 그런 이야기를, 삼촌들로부터 들으면 들을수록

제 마음속에는 아까 그 질문이 더욱 짙게 다가왔습니다.

‘도대체 할아버지는 그렇게 해서 순교의 면류관을 쓰셨지만,

결국 가족들은 버림받은 것이 아닌가?’ 라는 이 질문이 해결되지가 않았습니다.


제 질문에 대한 응답을 제가 받았습니다.



◑주기철 목사님, 가족을 부탁하시고, 하나님이 가족을 돌봐주시다.


사실 제가 이 질문(순교자의 남은 가족은 어떻게 사나?)을 해결함 받은 것은

제가 철이 들고, 신학을 하고, 목사가 된 후도 아니었습니다.

제가 이 문제에 대한 하나님의 응답을 받은 것은

제가 결혼 한 후에 아이들을 키우면서

어느 날엔가 갑자기 하나님께서 제게 깨닫게 해 주셨습니다.


아이들의 아버지가 되어보니,

그제야 비로소 할아버지의 그 때의 심정이 어떠했을까를

조금이나마 이해할 수 있게 되었던 것입니다.


▲남겨진 가족의 고통

사실 저는 그 질문을 하면서

할아버지 주기철 목사님에 대한 일종의 분노의 마음이 있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쉽게 8순의 어머니와 아내와

어린 자식들을 다 내버려두고

자신만의 믿음의 길을 갈 수 있단 말인가? 차라리 자식을 낳지나 말지... ’


3남인 제 선친의 생애를 생각하면, 더 화가 났습니다.

1927년~1945년 18년 동안 그 온갖 고생을 다 했습니다.

교육도 제대로 못 받고, 해방 후에 형제들이 뿔뿔이 흩어졌습니다.


6. 25를 겪고 부산으로 피난을 간 고아들은,

밤에는 한정교 목사님이 운영하던 부산 구포의 애린원이라는 고아원에서 잠을 자고,

낮에는 (나무로 들통을 만드는) 공장에서 일하면서 겨우 입에 풀칠을 했습니다.

폐병에 걸려 노숙자처럼 길거리에서 죽을 뻔 했습니다.


그래서 제 선친의 생각을 하면,

솔직히, 젊은 시절에는, 할아버님 주목사님에 대한 울화가 치밀어 올랐습니다.


▲순교자 주목사님의 고민

그러나 그것(자식을 팽개친 것)은 사실이 아니었습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는 당신의 어머니와, 아내와

자식들을 그렇게 쉽게 버리고 가신 것이 아니었습니다.


할아버님께서 이 문제로 인하여 얼마나 고통과 번민 가운데 있었는가 하는 것을

제가 미처 깨닫지 못했던 것이었습니다.


저는 언젠가 저의 아이들을 보면서

할아버님께서 마지막으로 남기신 유언과도 같은 설교가 생각이 났습니다.

그리고 그 설교를 읽다가 얼마나 울었는지 모릅니다.


그 설교는 <다섯 가지 종목의 나의 기도> (마5:11-12, 롬8:18, 롬31-39)

라는 설교였습니다.


그 분은 참으로 비통하고 안타까운 마음으로 눈물을 흘리며 이 설교를 하셨습니다.

그러나 그는 또한 결연한 모습으로, 하나님 아닌 우상 앞에 절대로 절하지 아니하고,

주님을 위하여,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자신의 목숨까지 주님의 제단 앞에 바칠 것을 비장한 모습으로 설교하였습니다.


그리고 그 날 이 설교를 들은 2천여 명의 평양 산정현 교회의 교인들은

눈물바다를 이루었다고 합니다.

제가 오늘 그 설교의 3번째 대지를 여러분들에게 읽어 드리겠습니다.


<노모와 처자와 교우를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는 80이 넘은 어머님이 계시고, 병든 아내가 있고, 어린 자식들이 있습니다.

아들로서의 의무도 지중하고, 가장으로서 아비 된 책임도 무겁습니다.


1) 자식을 아끼지 아니하는 부모가 어디 있으며,                              <어머니를 주님께 부탁>

부모를 생각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내 어머님이 나를 낳아 애지중지 키워주시고, 가르쳐 주신 은혜 태산같이 높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하지 못하고 잡혀 다니는 불효자의 신세, 어머님 생각이 더욱 간절합니다.


내 어머님이 금지옥엽으로 길러주신 이 몸이, 남의 발길에 채이고 매 맞아 상할 때,

내 어머님 가슴이 얼마나 아프실까!

춘풍추우 비바람이 옥문에 뿌릴 때, 고요한 밤 달빛이 철창에 새어들 때,

어머님 생각 간절하여 눈물 뿌려 기도하였습니다.

어머님을 봉양한다고, 하나님의 계명을 범할 수도 없습니다.


주님 십자가에 달리실 때, 당신의 아픔도 잊으시고,

십자가 밑에서 애통하는 어머님 마리아를, 제자 요한에게 부탁하시던 주님 심정

어떠하였습니까?

십자가 밑에서 가슴 치며 애통하시는 성모 마리아의 아프신 가슴 어떠하였을까?

오! 당신 어머님을 요한에게 부탁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도 부탁합니다.


불효한 이 자식의 봉양보다, 무소불능하신 주님께, 내 어머님을 부탁하고,

나는 주님 자취를 따라 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사랑하는 나의 어머님을, 80이 넘어 늙으신 내 어머님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2) 남편이 아내를 사랑하고, 아내가 남편을 연모하는 것은 인지상정입니다.               <아내를 주님께 부탁>

내 아내는 병약한 사람으로 일생을 내게 바쳤지만, 나는 남편 된 의무를 못합니다.

병약한 아내를 버려두고 잡혀 다니는 이 내 마음 또한 애처롭습니다.


오! 주님께서 당신의 신부되시는 어린 교회를 뒤에 두고 골고다로 나가시는 심정이

어떠하셨습니까? 병든 내 아내도 주님께 부탁하고                                                  *유방암

불초 이 내 몸은 주님의 자취! 주님의 눈물 자취를 따라가렵니다.

연약한 나를 붙들어 주옵소서.


3) 세상에 제 자식을 돌보지 않는 자 어디 있으며,                                                   <자식을 부탁함>

자기 아버지를 의지하지 아니하는 자식이 어디 있겠습니까?

나도 네 명의 아들이 있고, 그 중에는 어린 것도 있습니다.


아버지로서 자식을 키우고 가르칠 의무를 다하지 못하고,

우는 어린 것들 뒤에 두고, 잡혀 다니는 마음 또한 애처롭기 그지없습니다.

아버지가 나라에 역적으로 잡혀 죽으면, 그 자식들이 어디서 어떻게 살 수 있겠습니까?

짐승도 제 새끼를 사랑하거늘, 어린 자식 떼어 두고 죽음의 길을 떠나야 하는

이 내 마음 끝없이 비참합니다.


주님 십자가를 지시기 전날 밤에, 당신의 자식 같은 제자들을 앞에 모으시고

위로하시는 말씀 한 마디 한 마디가 눈물 어린 말씀이었고, 교훈하시는 말씀, 말씀이 피 끓는 소리였습니다.


어린 자식과 같이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고,

십자가에 달리시는 주님의 마음 어떠하였을까?

연약한 제자들을 뒤에 두시고, 골고다로 향하신 주님께 나의 자식을 부탁합니다.

어미 죽은 어린 자식들을 주님 품에 부탁합니다


4) 나에게는 주님께서 맡기신 양떼, 나의 사랑하는 교우들이 있습니다.                      <교우들을 주님께 부탁>

그런데 나는 저들을, 내 양떼들을 뒤에 두고 다시 돌아오지 못할 길을 떠나야 합니다.

험한 세대, 악한 세상에, 이리 떼 가운데 내 양들을 두고 가야 합니다.

맡기나이다. 맡기나이다. 내 양들을 대목자장 되시는 예수님의 손에 맡깁니다.


나의 어머님도 주님께 부탁합니다. 나의 병든 아내도 주님의 손에 부탁하는 것이

이 못난 사람의 도움보다 좋을 줄 압니다.

나의 어린 자식들을 자비하신 주님의 품에 두는 것이

변변치 못한 아비의 손으로 기르는 것보다 복될 줄로 믿습니다.


나의 양떼도 선한 목자 주님께 부탁합니다.

병들고 상한 자를 주님이 싸매어 주시고, 길 잃고 헤매는 자를

주님 손수 인도하여 주시고, 낙심하고 범죄 한 자를 주님의 보혈로 사유하여 주시옵소서.

악하고 험한 세상에 양떼를 두고 가는 이내 마음 차마 못 할 일입니다.

저들이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지날 때 주님 지켜 주시옵소서.


나의 늙으신 어머님과 나의 병든 아내를 주님께 부탁하고

나의 어린 자식들과 나의 사랑하는 양떼들을 자비하신 주님께 부탁합니다.

그리고 나는 마지막으로 이 산정현 강단을 떠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주님을 따라, 주님을 따라 주님의 피 자취를 따라가려 합니다.


나의 사랑하는 교우 여러분, 나는 내 어머니, 내 아내, 내 자식들을

여러분에게 짐 되게 할 마음은 없습니다. 다만 무소불능하신 하나님께 부탁합니다.

여러분, 사람이 제 몸의 고통은 견딜 수 있으나,

부모와 처자를 생각하고 철석같은 마음도 변절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어린 자식의 우는 소리에, 순교의 길에서 돌아선 자도 허다합니다.


인간의 얽히고 얽힌 인정의 줄이여, 나를 얽어매지 말라.

주님 따라가는 나를 얽어매지 말라.

부모나 처자를 예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예수께 합당치 아니합니다.”


▲순교자의 피맺힌 절규를.. 하나님이 응답하시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저는 주목사님의 이 설교를

이제 홀로되신 8순이 되신 제 어머니와                     *제 주승중 교수 부친, 3남 주영해 장로는 이미 소천

저의 가족들을 바라보면서 비로소,

이 설교가 얼마나 피맺힌 설교였는가 하는 것을 조금이나마 깨닫습니다.

 

그리고 이제 와서 너무나도 분명하게 깨닫는 것은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당신의 종의 이 피맺힌 설교와 기도를 들으셨다는

사실입니다.


주기철 목사님은 주님의 십자가의 길을 따라 가기 위하여

눈물로 노모와, 아내와, 자식들, 그리고 교인들을.. 하나님의 손에 맡겼습니다.

그리고 하나님께서는

주목사님의 기도를 하나도 빠짐없이 들어 주셨습니다.

이것이 중요합니다. 바로 이 사실 때문에 제가 오늘 이 설교를 소개한 것입니다.


4남 주광조 장로님

당신이 그 어려운 상황 속에서 오늘에까지 이르게 된 것은

정말 하나님의 보호하심과 은총이 아니었다면

도저히 이루어 질 수 없는 일이라고 말입니다.


아버지는 순교하시고, 해방 후에 어머니(오정모)마저 유방암으로 돌아가시고 난 후,

누구 하나 돌보아 주는 이가 없었습니다.

 

그래서 어린 형제들은 뿔뿔이 흩어져서 고아원으로,

(나무로 통을 만드는) 공장으로 갈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리고 6.25를 겪었습니다.

얼마나 많은 고생을 했는지

어린 시절 장로님께서는.. 2번씩이나 자살을 하려고도 했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마다 하나님께서는 장로님을 지켜주셨고,

마침내 당신의 종의 간구를 들으사 영육 간에 많은 복을 내려 주셨습니다.


언젠가 주광조 장로님이 이런 말씀을 하셨습니다.

“고아였던 내가, 아무런 세상적인 힘도, 권력도, 배경도 없던 내가

오늘 이 자리에 온 것은 정말이지 기적이고, 하나님의 은혜였다.

하나님께서 내 아버지의 피맺힌 기도를 들으셨기 때문이다”고 말입니다.


지금 장로님은 영락교회 은퇴 장로로, 극동방송 고문으로 섬기시면서

여생을 주님만을 위하여 헌신하고 봉사하고 계십니다.


▲3남, 주영해 장로, 그 아들 주승증 교수 집안

그리고 저의 집안도 그렇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저희 집안도 영적으로 놀라운 복을 주셔서,

제가 목사가 되고, 저의 누님 셋이 다 사모가 되었습니다.

매형 세분이 다 목회자로 주님을 섬기고 있습니다.


저희 자녀와 조카들도.. 많이 주의 종의 길을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제 앞으로도 더 많은 주의 종들이 나올 것입니다.

생각해보면 정말 하나님의 은혜요, 하나님의 보호하심이 아니었다면,

이 모든 일들이 이루어질 수 없는 것들입니다.


※주기철 목사님께서 지어주신 아드님들의 별명:

1남 : 루터(주영진 전도사/ 순교),

2남 : 어거스틴(주영만),

3남 : 사무엘(주영해 장로),

4남 : 다윗(주광조 장로)



결국 결론은 이것입니다.

우리 하나님은 당신의 종이 주님의 뜻을 이루기 위하여 순교의 길을 가면서,

피눈물을 흘리며 절규했던

“노모와/ 사랑하는 아내와/ 자식과/ 양떼들을 주님께 맡기는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그리고 다 응답해 주셨습니다.

 

그래서 오늘 제가 여러분 앞에서

이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하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여러분들은 여러분의 자녀들에게 무엇을 물려주려고 하십니까?

집문서 입니까? 땅문서 입니까? 아파트 등기부입니까?

좋습니다. 그런 것들을 물려 줄 수 있으면 좋겠지요.


그러나 그런 것들은 1대를 넘어가지 않습니다.

우리는 진정 무엇을 물려주어야 하겠습니까?

신앙의 유산, 바로 신앙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뜻을 위하여 헌신하고,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섬기고 봉사하는 그 모습, 그 신앙의 모습을 유산으로 물려주어야 합니다.

우리가 주님의 몸된 교회를 위하여, 그리고 한국교회를 위하여

더 나아가 이 민족을 위하여 무릎 꿇고 눈물로 중보기도하는 그 신앙의 모습,

그 기도의 유산을 물려주어야 합니다. 그것이 진정 우리의 자녀들에게 복된 것입니다.       ▣ 핍박 과 순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