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의 의미 막14:3~9 출처보기
◑서론 : 복음의 주관적 이해는 안 됩니다.
▶저는 오늘 <복음의 의미>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보려고 합니다.
왜 ‘복음의 의미’냐면, 제가 생각해볼 때,
상당수의 사람들이 복음을 매우 주관적으로 생각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관적이라는 말은 ‘잘못되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람은 본능적으로 주관적일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어, 어떠한 사건이 발생했다고 해봅시다.
사람들은 모두 똑같은 반응을 보이지 않게 됩니다.
각기 서로 다른 반응을 보이는 것이 자연스럽습니다.
그 이유는 사람들은 각자 자라온 삶의 배경이 다르고
판단의 기준 역시 서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저는 이런 차원에서 ‘복음이 주관적으로 이해되고 있다’라고 생각됩니다.
누구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 속에서 복음을 이렇게 이해하고,
또 누구는, 자신이 자라온 환경속에서 복음을 저렇게 받아들이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주관적’이라는 뜻입니다.
이러한 주관적인 생각은 잘못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다시금 강조하고 싶습니다.
그러나 잘못된 것은 ‘내가 이해하고 있는 복음이 전부다’라는 자만심이라고 생각됩니다.
쉽게 말해서, ‘복음’이라는 단어가 들어있는 한구절의 말씀을 가지고,
“이게 바로 복음이다!”라고 하면서, 다른 말씀들에는 눈감아 버리는 것이
‘잘못된 주관적 이해’입니다.
저는 그래서 가끔씩 청년들에게 ‘다른’ 복음의 말씀들도 가르칩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정말 부지런히 읽으십시오. 이것도 복음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에 전인격적인 복종을 하십시오.
하나님의 말씀에 지배당하십시오. 이것도 복음입니다.
▶우리가 무시해온 예수님의 명령
본문 말씀에서 조금 난처한 부분을 발견하게 됩니다.
막14:9절에,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온 천하에 어디서든지
복음이 전파되는 곳에는,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말하여 저를 기념하리라 하시니라.”
우리는 지금까지 신앙생활을 하면서, 그래도 여러 사람들에게 복음을 전해왔었습니다.
그런데 복음을 전하면서 단 한번도 ‘이 여자의 행한 일’을 말한 적은 없었습니다.
예수께서 ‘진실로’ 부탁하셨음에도 불구하고.. 말입니다. 막14:9
그럼 이제부터 우리가 ‘어디서든지 복음을 전할 때’마다,
이 여자의 행한 일도 반드시 말해야만 할까요?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사도행전을 읽어봐도, 또 바울 사도의 서신들을 읽어봐도,
복음 전파의 현장에서 이 여자의 행한 일은 두 번 다시 언급되지 않기 때문입니다.
혹시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의 말씀을 무시했던 것일까요?
저는 그렇게도 생각하지 않습니다.
처음으로 그리스도인이 된 사람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신 글자 그대로를 지키는 것보다,
그 ‘의미’를 깨닫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러한 생각을 2천년이 지난 우리들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우리는 복음을 전하면서, ‘이 여자의 행한 일’을 말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렇다면, 이 여자의 행한 일을 통해서 우리가 깨달아야 하는 ‘복음의 의미’는 과연 무엇일까요? ←문제 제기
▶저는 특별히 마가복음을 중심으로 ‘복음의 의미’를 말씀드릴 것입니다.
이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이것이 복음의 전부다’라는 자만심을 가지지 않기 위해서입니다.
오히려 우리는 마가복음이 가르쳐주는 ‘복음의 의미’를 듣고 더 겸손해지고,
또 한편으로는 건강하게 반응하는 자세를 배워야할 것입니다.
사실 마가 자신 역시 ‘이것이 복음의 전부다’라고
주관적인 생각으로 복음서를 쓰지 않았습니다.
◑본론, 마가의 복음 이해 : 복음에는 치러야 할 대가가 따른다.
※오늘 우리가 믿는 주관적 복음 이해는 ‘대가 없이 무조건 free한 복음’입니다.
복음이 free라고 성경에서 말하는 것은, 예수님이 치르신 십자가의 구속에는, 인간의 공로가 없다는 뜻이고,
이 글에서 '복음에 대가가 따른다'는 뜻은, 제자도의 길, 예수님을 따르는 길에는 대가가 따른다는 뜻입니다.
▶마가의 ‘복음’ 이해
마가복음 1장은 마가복음을 접했던 초기 그리스도인들이
보편적으로 가지고 있던 복음의 의미를 말해줍니다(1:14-15):
“요한이 잡힌 후 예수께서 갈릴리에 오셔서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전파하여, 가라사대
때가 찾고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회개하고 복음을 믿으라 하시더라.”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복음을 전파했습니다.
더 자세하게 말하면 예수님이 말씀하신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다’입니다.
이 말씀을 들은 당시의 모든 사람들은 고개를 끄덕였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운 것’이 정말 ‘복음, 기쁜 소식’이기 때문입니다.
왜냐하면 이 내용은 이사야 40장부터 66장까지 지속적으로 나와 있는 말씀이기 때문입니다(사 52:7):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평화를 공포하며 복된 좋은 소식을 가져오며
구원을 공포하며 시온을 향하여 이르기를, ‘네 하나님이 통치하신다!’
하는 자의 산을 넘는 발이 어찌 그리 아름다운고!”
그래서 마가는 1:2절부터 이사야의 말씀을 인용했던 것입니다. ↑
아무튼 마가는 자신이 주관적으로 복음을 새롭게 만들지 않았습니다.
구약에서부터 내려온 전통 신앙을 마가는 그대로 인정했던 것입니다.
그 핵심은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으라!’였습니다.
그런데 마가는 여기에 빠져서는 안 될 중요한 키워드를 더해서, 복음을 완성시켜 놓습니다.
바로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즉, ‘복음은 하나님의 나라가 가까웠으니,
예수 그리스도를 통해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을 받을 수 있도다!’
그렇습니다. 복음은 예수님과 떨어질 수 없는 바늘과 실인 것입니다.
바로 이것을 마가는 가르쳐주고 있는 것입니다.
특별히 오늘의 본문 막14:3~9절이 그렇습니다.
▶마가의 샌드위치식 전개법
본문을 더 잘 이해하기 위해서는 마가복음의 특징을 미리 파악할 필요가 있습니다.
마가복음의 특징이라고는 했지만, 그리 어려운 내용이 아닙니다.
이것만 염두하고 마가복음을 읽으시면 됩니다: ‘마가는 샌드위치와 같다.’
샌드위치를 만들 때, 두 겹의 빵 속에 고기(패드)를 넣는 것처럼,
마가는 마가복음을 기록하면서, 자신의 메시지 앞뒤로 이야기를 위치시킵니다.
그것이 바로 14:1-2절과 10-11절입니다. (14:3~9절은 고기패드, 전후 구절은 빵) 주1)
마가는 ‘복음의 의미’라는 신앙을 가르쳐주면서,
대조되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줍니다.
1-2절과 10-11절의 사람들은, 하나같이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1-2절은 정치적인 권력을 빼앗기지 않으려는 지도자들이 나옵니다.
10-11절은 경제적인 이득을 얻어내려는 가룟 유다가 나옵니다.
정말로 이들은 예수님과 관련해서 손해 보지 않으려는 사람들입니다.
▶복음은 대가를 치르는 것 (마가의 ‘복음’ 이해)
이러한 관점에서 본문을 읽으면, 이 여자의 행한 일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됩니다.
그것은 바로 철저하게 손해 보는 신앙입니다(4절):
“어떤 사람들이 분내어 서로 말하되 무슨 의사로 이 향유를 허비하였는가?”
예수님은 8절에서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저가 힘을 다했다.”
이 말은 ‘예수님의 몸에 향유를 붓는 것이 힘들었다’라는 뜻이 아닙니다.
이 말은, ‘이 여자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다 바쳤다, 아낌없이 바쳤다,
한마디로 손해보면서 바쳤다’라는 의미였습니다.
이 말은 두 렙돈을 넣은 가난한 과부를 보시고,
‘그 구차한 중에서 자기 모든 소유를 넣었도다’ 하신 말씀과 같은 내용입니다(막 12:41-44).
그렇습니다. 마가는 복음의 의미를 ‘손해보는 것’이라고 가르칩니다.
한 걸음 더 나가면 ‘예수님을 위해서’ 손해 보는 것이 바로 복음의 의미라는 것입니다(8절):
“저가 힘을 다하여 내 몸에 향유를 부어 내 장사를 미리 준비하였으니라.”
마가는 마태복음과 누가복음과는 달리 ‘복음의 의미’를 도전적으로 제시합니다(8:35, 10:29-30):
“누구든지 제 목숨을 구원코자 하면 잃을 것이요
누구든지 나와 복음을 위하여 제 목숨을 잃으면 구원하리라.”
“예수께서 가라사대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나와 및 복음을 위하여 집이나 형제나 자매나 어미나 아비나 자식이나 전토를 버린 자는,
금세에 있어 집과 형제와 자매와 모친과 자식과 전토를 백 배나 받되
핍박을 겸하여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이 두 구절의 말씀은 ‘예수님과 복음을 위하여’
손해 보는 것(물질적+정신적, 모든 것)이 신앙이라고 가르쳐줍니다.
정리하면,
복음은 대가를 치러야만 하는 것입니다.
대가를 치르지 않는 복음은, 복음을 믿는 것이 아닙니다.
바로 위에서 인용한 두 구절(8:35, 10:29-30)을 다시 한 번 읽어 보십시오.
▶말씀을 정리합니다.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너희들도 삼백 데나리온 가격에 맞먹을 가보를 바쳐라’라고
명령하지 않으십니다.
‘전 재산을 바치지 않으면 나를 따라올 수 없다’라고 협박하지도 않으십니다.
‘가족들을 다 버리고 나만 따라오너라’라고 등을 밀지도 않습니다.
이것은 예수님의 말씀을 곡해한 것입니다(고전9:5).
예수님이 말씀하신 바는 이것입니다:
“네가 나를 통해서 너의 욕심만을 채우려 하지 않고,
반대로 너를 희생하면서까지 나를 위해서 산다면,
그것이 바로 복음을 위해서 사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러분, 복음을 위해서 사는 것은 다른 것이 아닙니다.
내 기분에 맞지 않지만, 내 마음이 상하지만, 내가 실제로 손해 볼 수도 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를 희생시켜서
하나님의 통치하심에 순종하는 것이 바로 복음을 위한 삶입니다.
여러분, 이번 한주 하나님의 통치를 받으면서 살아갑시다.
이번 한 주간 복음의 의미를 깨달아 실천하는, 믿음의 용사들이 됩시다.
주1)
‘샌드위치 기법’의 또 다른 예는 막11:12-25
막11:12~14(빵) :15~19(고기 패드) :20~25(빵)
<참고 도서>
-랄프 마틴, 「마가신학」, 이상원 역 (서울: 엠마오, 1993)
-C. C. Broyles, “Gospel(Good News),” in DJG, 285-6.
-Ben Witherington III, The Gospel of Mark: A Socio-Rhetorical Commentary
(Michigan: W. B. Eerdmans, 2001). ▣ 복음 관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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