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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2007

하늘의 유전 발굴 2925

LNCK 2011. 3. 22. 19:05

 

◈하늘의 유전 발굴                    출3:1~12                 07.03.15. 블로그 스크랩, 출처



▲하늘의 유전 개발하기

‘검은 황금’이라고 불리우는 유전이 중동 땅에 묻혀 있고,

캐나다, 미국, 러시아에도 묻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들이 모르고 사는 것 중의 하나는

‘하늘에 유전이 있다’는 것은 잘 생각하지 못합니다.


그 하늘의 유전을 어떻게 발굴할 수 있을 것인가요?

어떻게 하늘의 유전에서, 무한정한 에너지를 공급받으며 살 수 있을 것인가요?


▲비전이 없는 사람을 택하십니다.

그런데 성경은 유감스럽게도

에너지 자체를 공급받기 위한 동기를 가지고는

절대로 하늘의 유전을 발굴하게 해 주지 않습니다.


또 내 마음 속에 떠오른 드림, 내가 갖고 있는 비전..

이런 것을 이루기 위해서

하늘의 무한한 에너지원인 '하늘의 유전'을 발굴하도록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어떻게 하늘의 유전이 발굴할 수 있는가요?

 

죄송한 말씀입니다만,

그 발굴을 우리가 목적으로 삼고 있는 동안에는

하늘은.. 하늘의 무한한 에너지원을 제공하지 않더라는 것이에요. (발굴 못 합니다.)


     본문 ‘모세의 소명 이야기’를 가만히 봅니다.

     자, 하나님이 모세를 부르십니다. 출애굽을 시키라고 부르십니다.

     3백만 명의 히브리 노예들을 애굽에서 이끌어 내려고 모세를 부르십니다.


그 3백만의 노예들이, 대제국 애굽의 하부 경체를 떠맡고 있었습니다.

3백만 명이란 숫자는, 미국의 인구를 2억이라 볼 때, 7분의 1에 해당합니다.

지금 뉴욕, LA에는 멕시칸, 중남미에서 온 라틴 사람들이

미국 경제의 하부 구조를 떠맡고 있습니다.


식당 설거지, 배달원, 청소부 등

미국 백인들이 하지 않는 온갖 잡일을 다 떠맡고 있습니다.


마찬가지로 대제국 애굽에서도,

경비도 들지 않고 밥만 먹여주면 부릴 수 있는 노예들을 부려가면서

대건축업과 경제구조를 유지하고 있는 애굽에서


모세가 혈혈단신 혼자 들어가서, 그 사람들을 모두 이끌어낸다는 것은

있을 수가 없는 일입니다. 고이 보내줄 리가 없지요.


무엇보다 모세는

이승만, 김구, 김좌진과 같이.. 나라의 독립을 꿈꾸던 사람도 이제는 아닙니다...



◑‘모세의 소명’ 사건에서, 3가지 특징을 발견합니다.


▲1. (앞서 말씀드렸듯이) 모세는 동족을 노예상태로부터 이끌어내려는

대업에 대한 ‘비전’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요새 사람들이 ‘비전’을 좋아하는데, 모세는 완전 거꾸로 살았습니다.

하나님께서 임하셔서 ‘애굽으로 가서, 내 백성을 이끌어 내라!’ 하실 때

“맞습니다. 그게 바로 제가 평상시 갖고 있었던 생각이고, 비전입니다.”

모세는 그렇게 말하지 않았어요.


‘뭘 이루고 싶다, 뭘 하고 싶다,

하나님이 능력 주시는 자 안에는 능치 못할 일이 없다’

라는 마음을 전혀 갖고 있지 않았습니다.


민족의 고난에 대해 모세는 ‘Its not my business. 내 일이 아니어요.’

그건 어디까지나 하나님의 일이고, 모세는 아무 관심 없습니다. (관심 없을 수 밖에요)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하나님의 선교를 위해서, 하나님의 대업을 위해서,

제게 갑절의 능력을 주시옵소서!” 이런 기도를, 모세는 해 본적이 없다는 것이에요.


이게 소명의 첫째 요소라고 저는 생각합니다.


하여간 이 세상에서 뭔가 대단한 일을 해보려고 꿈꾸고 있는,

인간의 모든 마음의 뒤를 다 캐보면

결국은 뭐라고 감언이설로 거창하게 설명해도

다 ‘자기 욕망의 표현’이에요. ‘내가 뭘 이루고 싶다’ 이거에요.


아무리 ‘민족복음화’를 힘껏 외쳐도,

성도를 남의 교회로 주지는 (보내지는) 않습니다.

헌금은 더더욱 안 됩니다. 헌금은 절대로 본 교회에만 드려야 합니다.


너무 이상적인 이야기 같지만,

모든 교회와 목회자들이 발 벗고 나서서,

‘침체에 빠진 다른 교회를 도웁시다!’ 라며 서로 나서면,

정말 침체에 빠진 한국 교회가 살아날 것입니다.


실제로 선교사가 자기가 직접 모금하는 것보다,

동료 선교사를 위해 모금 fund raising 해 주는 일이.. 10배로 쉽다고 합니다.

‘제 선교지로 헌금 보내 주세요!’는 어렵고, 결과도 미미하지만


‘제가 아는 훌륭한 선교사(타인)에게 헌금 보내 주세요!’ 하면..

사람들이 헌금을 쉽게 보낸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서로 서로 그렇게 하면 될 것 아닙니까!

지역 교회도 마찬가지일 것입니다.


(‘자기 비전/욕망의 표현’에서 말이 좀 빗나갔습니다.)


하여간 사람들은 ‘뭘 하지 않는 것’을 더 쉽게 생각할 것 같지요?

아니에요. 하지 않는 것이 훨씬 더 어려워요.

뭘 하지 않으면 못 견디는 게.. 사람입니다.


목회하면서 느끼는 것은

가만히 있으면서.. 지금의 현실 이대로를 그냥 바보인 것처럼 가만히 있으면서,

하나님과 더불어 하늘로부터 오는 은혜로 만족해가면서,

하나님을 알게 되었다고 하는 것에 만족해하면서..

그렇게 사는 사람은, 제가 이제까지 못 봤어요.


그냥 뭐든지 해야 돼요.

이루어야 되고, 해야 된다는 강박관념이 있어요. 불행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그런 강박관념을 가지고, ‘이거 해야 된다. 저거 해야 된다’ 라고 말하는 동안에는

하나님이 그를 쓰시지 않습니다. 저는 그렇게 믿어요.


그래서 교회에서 무슨 신임 회장단이 선출되면..

또 쳐다보는 사람의 가슴이 조마조마 합니다.

괜히 무슨 일 한답시고, 사정을 더 어렵게 만들어 놓기 쉽거든요.


지금 우리나라에서도 지자체에서 수백 억 들여서 무슨 사업 추진했다가,

돈은 돈대로 허비하고, 사업은 애물단지로 남아서 자연경관까지 해치는,

그런 ‘의욕이 과했던 사업’들이 많듯이 말입니다.



▲2. 두 번째로 모세는 ‘자기는 할 수 없다’고 말합니다.

당연합니다.

세계 최강대국 애굽이, 순순히 노예들을 다 풀어줄리 만무합니다.


모세가 소명을 수행할 때

'하늘의 유전, 하늘의 에너지'는

모세가 애쓰고 힘쓰고 ‘노력’하는 데서 찾아지지 않았습니다.


떨기나무 불꽃에서 하나님이 나타나십니다.

이게 ‘하늘의 유전’을 표현하시는 거예요. ↙


▲떨기나무 불꽃에서 얻는 통찰력

'떨기나무 불꽃'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불은 불인데, 그 떨기나무에 붙어 있는 불이, 떨기나무를 태우질 않습니다.


무슨 얘기입니까? 세상의 불과 다른 불이라는 거예요.

'하늘의 에너지원'이라는 것이에요.


세상의 불들은.. 떨기나무를 태워서 재를 만들어야.. 에너지가 발산합니다.

우리 몸속에도 지방이 축적되어 있지 않습니까?

운동을 하면, 그 지방이 분해되면서(타면서) 에너지가 발산합니다.

이게 ‘세상의 불’입니다.


그런데 이 ‘하늘의 유전’에서 나오는, ‘하늘의 불’은,

떨기나무는 재가 되지를 않는 채로 불이 계속 붙어 있습니다.

이게 바로 '하늘의 에너지'의 특성이라는 것이에요.


여러분, 이해력이 빠르신 분은,

여기서 ‘모세의 태도’와 ‘하늘의 불’을 얼른 매치 시키십니다.


하나님께 소명을 받는 모세는, 지금 완전히 ‘떨기나무 불꽃’ 같습니다.

'하늘의 불'이 임했는데, 너무 덤덤합니다.

모세는 전혀 불에 살라지지 않습니다.

자기를 태워 에너지를 내지 않는 것입니다.


'하늘의 불'이 붙었는데, 자기는 맨정신으로, 보통사람으로 있습니다.

전혀 흥분하지 않는다는 말입니다. 전혀 자기 야망을 불태우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역설적으로,

이런 사람이.. 하늘의 에너지원, 하늘의 유전을 발굴한다는 것입니다.

모세처럼요! 


내가 갖고 있는 재능, 내가 갖고 있는 재산, 내가 갖고 있는 능력

이런 것들이 없어서..

하나님이, 하나님의 일을 수행하시지 못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일은..

하늘의 유전에서부터 내려오는 하늘의 에너지를 가지고

일이 진행 되는 것이에요. 그 에너지를 사용하는 것이에요.


예를 들어서, 3백만 명 중 장정만 60만 명입니다. 광야에서 40년을 삽니다.

그러면 3백만 명이 생존한다는 자체가 에너지를 소모해야 됩니다.

삶의 열량이 필요하잖아요. 칼로리가 필요하지 않습니까?


그래서 우리는 음식을 먹습니다.

또 그 에너지가 제대로 돌아가기 위해서, 신진대사를 위해서 물을 마십니다.


그런데 사막은.. 물 한 모금, 음식 하나 만들어 먹을

그 어떤 재료도 나질 않는 땅입니다.

그런데 거기서 3백만 명이 입고 먹고 마시면서 40년을 살아갑니다.

그 에너지가 어디서 나온 것입니까? ‘하늘의 유전’에서 나온 것이에요.


모세가 출애굽을 인도해서, 가나안 땅에 아직 들어가지 않았습다만

광야에서 살고 있는 자체가.. 정말 기적이에요.

‘하늘의 유전’에서 에너지가 나오는 것이에요. 땅에선 아무런 에너지원이 없었습니다.


먼저 우리가 틀린 것은..

하나님 앞에서 ‘내가 무엇을 자꾸 하려고’ 하는 겁니다.


하나님이 등 떠밀어 보낼 때까지, 아무 것도 안 하는 것이고,

하나님이 아이디어를 주셔도 ‘내가 이걸 어떻게 할 수 있겠습니까?’

라고 말하는 마음상태가 되기 전까지는

이게 진짜 소명인지/ 아니면 내 욕망의 표현인지.. 우리는 구분을 못 합니다.


‘내가 이루고 싶다!’ ... 이런 건 (소명일수도 있지만) 아직  소명이 아니지요.

야망일 가능성이 더 높습니다.

 

참된 소명은 .. 분명히 때가 되면, 하나님께서 하늘에서 에너지를 주십니다.

내가 갖고 있는 어떤 재료를 쓰는 게 아니에요.


▲3. 네 신을 벗으라!

(지금까지 ‘수동적’ 자세를 말씀드렸습니다만,

이 단락은 ‘능동적’ 자세를 말씀드리겠습니다.)


본문에「네 신발을 벗으라」는 말씀은

‘내가 해야 되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떨기나무 불꽃은, 내가 붙일 수 없잖아요?

그 하늘의 에너지를 끌어 들일 수가 없어요.

그리고 출애굽 사건도, 내가 계획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내가 할 수 있는 것은.. ‘신발을 벗는 일’이에요.

신발 벗는 곳에, 바로 하늘의 유전이 있고, 그리고 그 곳에 소명이 주어집니다.

 

 

그러나 내가 진정으로 신발을 벗을 수 있는 그 순간에

바로 하늘의 유전이 연결되고

떨기나무 불꽃이 일어나고 있는 것이에요.


신발을 벗으면 보일 거예요.

그리고 하나님의 일이 보이게 됩니다.

(신발을 벗어도 ‘하나님의 일’이, 내 눈에 안 보이면.. 그건 소명이 아닙니다.)


당시에는 노예들만 신발을 벗고 다녔어요.

신발을 벗는다는 것은.. 모세가 노예가 된다고 하는 뜻입니다.

「너의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5절)

 

 

노예란 제로되는 겁니다. 내 비전 제로, 내 욕망 제로, 내 소원 제로, 내 판단 제로.

눈에 보이는 것들 앞에서.. 내가 다 죽는 거예요.

그리고 주인과의 관계 이외의 사람들의 말은 이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는 겁니다.


어떻게 이 신발을 벗겠습니까? - ‘나는 날마다 죽노라’입니다.


신발 벗는 곳이 ‘하늘의 유전’이에요.

유전 탐사하는 곳은 어디든지 가능합니다.


사막에서도 괜찮고, 비옥한 곳 어디서든지 상관이 없는데..

발에서 신을 벗는 그 때, 그 발 밑에 그 지점 위에서부터

'하늘의 유전'은 열리게 되는 것이에요.


여러분, 사도바울은 이렇게 말합니다. 「나는 날마다 죽노라」


위에서 말씀드린 소명의 세 가지 요소 중에서,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은, 

날마다 자기 신을 벗는 겁입니다.

그리고 날마다 노예가 되는 것이고, 날마다 새롭게 시작하는 것입니다.

자기 욕망 제로에서 출발하는 것이에요. 내 판단 제로에서 출발하는 것이에요.


제발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현실에 대해서, 내가 판단하지 마시고

하나님께 물어보세요.

그래서 하나님이 허락하시는 이야기들을, 내가 이야기했을 때

상대방이 안 받아들이는 것은 그건 상관하지 마세요.


관철시키려고 노력할 것 없고, 그냥 그 사람에게 푸시하지 마세요.

그런데 그냥 그 사람을 위해서 기도하면 되지요. 나머지는 하나님의 몫입니다.


이렇듯 신발을 벗는다는 얘기는.. 날마다 죽는다는 얘기입니다.


날마다 신발을 벗으면 어떻게 됩니까?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날마다 내일의 삶의 현장으로 보내시고, 그게 소명이 되는 거예요.


사도바울의 날마다의 삶을 보세요.

아시아에서 선교하려고 했는데 선교의 문이 막혀버려요.

그러니까 어쩔 줄을 모르고 계속해서 노력해 보지만.. 안 됩니다.

그러다가 꿈에서 마게도냐 사람이 부릅니다. 그러니까 유럽으로 건너가는 겁니다.


사도바울은 유럽을 선교하겠다고 하는 비전이 있었던 사람이 아니에요.

그냥 날마다 신발을 벗었을 뿐입니다. 오히려 비전을 없앴어요.

그러니까 하나님이 비전을 보이십니다. '유럽으로 건너와라..'


그래서 매일 사명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에요.

내가 소명을 불러일으키는 게 아니라

사실 어쩌면 사명이 계속 주어지고 있어요.


예수님 믿은 다음에 내게 일어나야 될 제일 좋은 일은, 천당가는 겁니다.

그런데 왜 지금 이 세상에 남아 있습니까?


이미 소명이 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것이에요.

소명의 일은 주어지고 있는데.. 우리가 자기 욕망 때문에 깨닫지 못하는 것이지요.


그 일을 깨닫는 방법이 뭡니까? 신발을 벗는 거예요.

 

어떻게 신발을 벗습니까?

 

십자가에서 못 박혀 죽었음을 고백하고, 그런 자기 자신을 깊이 묵상하는 것입니다.
이때 하나님이 사명을 주시는 거예요. 하나님이 보내십니다.

 

     기도/ 비록 내가 아무 것도 갖고 있지 않아도

     하나님의 무한정한 일은 하늘의 에너지가 내려와 되는 것이지

     나의 어떤 요소들을 태워서 발산되는 에너지로 되는 것이 아님을 배웠습니다.


     오늘 하루 살아갈 때에 소명자로 살기를 원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내가 할 수 있는 일, 신발 벗는 일을 할 수 있게 해주시고,

     신발 벗는 그 곳에서,

     하늘의 무한한 유전과 연결됨을 느끼는 복된 하루가 되게 하여 주시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 리더쉽, 목회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