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굴복된 자에게는 권세가 있다 롬6~16 스크랩글, 출처
너희 자신을 종으로 드려 누구에게 순종하든지
그 순종함을 받는 자의 종이 되는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혹은 죄의 종으로 사망에 이르고, 혹은 순종의 종으로 의에 이르느니라 롬6:16
내가 마귀에게 굴복하면, 내가 마귀의 권세 아래 놓이고,
내가 하나님께 굴복하면, 내가 하나님의 권세로 행하는 사람이 됩니다.
▲1. 하나님은 ‘굴복된 사람’을 사용하십니다.
주님께서 사용하신 그 구원의 통로는 항상 사람이었습니다.
주님은 번개나 벼락과 같은 것을 사용하셔서, 그의 백성을 구원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항상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그분의 손에 굴복된, 하나님의 사람을 사용하셨습니다. *영어로는 surrendered
그들의 외모는 우리와 똑같았습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사람’ 이라고 자기 이마에 써 붙인 것도 아닙니다.
그러나 그들은 하나님의 도구였으며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사람들이었습니다.
문제는 이것입니다.
그들은 외모로 보기에는 다른 평범한 사람들과 조금도 다르지 않았습니다.
그저 어디에서나 발견 할 수 있는 평범함 사람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들의 배후에 계시는 하나님의 능력에 대해서 알 수 없었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은 다윗을 보고 비웃었습니다.
다윗은 아직 젊은 홍안의 청년이었으며
그에게서는 장군의 위엄이 전혀 풍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윗은 외모에서가 아니라
그를 통해서 나타나는 하나님의 권능을 통해서
자신이 하나님의 사람임을 입증하였습니다.
그리고 그것은 모든 하나님의 사람들의 특성이었습니다.
외모는 전혀 탁월하지 않았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임재가 무엇인지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능력을 알고 있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손에 굴복된 사람이었습니다.
분명한 사실은 이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날 때부터 탁월한 사람을 사용하시는 것이 아니라
그분께 굴복된 사람을 사용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지혜자를 구하시는 것도 아니며
힘이 센 자를 구하시는 것도 아닙니다.
다만 그분의 뜻과 그분의 손에 굴복된 자를 찾기 원하십니다.
그리하여 그분의 뜻을 따라 마음대로 사용할 수 있는, 그러한 사람을 찾기를 원하십니다.
주님이 제자를 삼으셨던 12명의 사람들은
세상적으로 볼 때 탁월하고 유능한 사람들이라기보다는
그저 순박하고 굴복되어, 주님을 잘 따르는 사람들이었습니다.
▲2. 굴복에는 권세가 따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그의 도구로, 구원자로, 해방자로,
사역자로 사용하시기 전에
먼저 그 사람을
주님의 손에 굴복시키십니다.
그러므로 어떤 사람이 주님의 손 안에 다루어지고 엎드려진 만큼
그는 구원의 능력의 통로, 하나님의 통로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권능과 힘이란
곧 주님께 굴복된 분량과 같은 것입니다.
만약 어떤 사람이 제 멋대로 산다면
그는 자연적인 재능이 많이 있을지는 모르지만
영적으로는 전혀 무기력한 사람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이 외적으로 별로 탁월한 부분이 없지만
그가 하나님의 훈련과 손 안에 다루어지는 것이 무엇인지 알고, 순복/굴복한 경험이 있는 사람이라면
그는 영적인 권능과 생명의 도구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굴복에는 반드시 권세가 따릅니다.
예를 들어 마피아의 세계에서도 어떤 사람이 보스에게 굴복한다면
그는 그 세계의 보호와 권세를 힘입게 될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경찰이 되어, 그 조직의 질서와 권위 아래 있다면
그는 경찰의 힘과 권위의 보호를 받게 될 것입니다.
그가 악한 이들과 싸우게 된다면
그는 개인적인 힘으로 그들과 싸우는 것이 아니라
그의 배후에 있는 공권력의 권위와 능력으로 싸우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악한 자들은
공권력이 개인적으로는 연약한 자라 하더라도
그를 함부로 대할 수 없게 될 것입니다.
영적인 세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어떤 사람이 천국의 왕이신 주님께 굴복되고 지배된다면
당연히 천국의 힘과 권세는 그를 보호하며, 그는 천국의 권위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천국의 힘과 실상에 대해서 알지 못하고 경험하지 못하며
매우 피상적인 구원에 머물러 있는 것은
그들이 많은 분야에서
지옥의 쾌락과 즐거움에 굴복하여
그 어두운 영적 세계와 관련을 맺고 있으며
그리하여 그 어두운 영계의 지배 가운데서
고통을 당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어떤 세계에 굴복하느냐에 따라서
이 땅의 삶과 영원한 삶의 운명이 바뀌어지게 되는 것입니다.
굴복에는 반드시 권세가 따르기 때문에
주님의 손아래 굴복된 이들은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있습니다.
그것은 바깥으로부터 온 것이 아니고, 내면으로부터 온 것입니다.
그것은 신학교나 세상의 학문에서 주는 학위가 아니고
하늘나라로부터 오는 영적인 일종의 마패와 같은 것입니다.
고린도에서, 스게와의 일곱 아들들은, 사도바울을 좋아하지 않았지만
바울이 행하는 능력에 대해서는 부럽게 생각했습니다.
그리고 바울의 방법이 아주 쉬운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예수 이름을 부르는 것.. 명령하는 것..
그것은 마치 주문 외우는 것처럼, 아주 쉽게 보였습니다.
그래서 그들은 바울과 똑같이 ‘예수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시도해 보았습니다.
그러나 그 결과는 아주 비참한 것이었습니다.
바울에게는 통하던 것이 그들에게는 통하지 않았던 것입니다.
그들은 오히려 악한 영들에게 혼이 났을 뿐입니다. 행19:11~16
그들은 그러한 권능이 방법적이며 테크닉에 속한 것이 아니라
인격적인 것이며, 관계적인 것임을 이해하지 못했던 것입니다.
사도바울이 하나님께 굴복되어 있었음을,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영적 권세 - 그것은 어떤 방법이나 기술에서 나오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오직 주님과의 인격적 관계에서 나오는 것이며
주님의 지배와 인도하심 속에서 순복하고 굴복된 자에게
주님은 비로소 그와 같은 권능을 허락하시는 것입니다.
오늘날 우리들은 '크리스천은 하나님의 자녀된 권세를 가졌다'고 듣고 배웁니다.
그런데 그 말에는 '하나님께 굴복된' 이라는 전제가 따릅니다.
하나님께 굴복되자 않고서, 그저 자기가 크리스천이라는 사실만 갖고는,
실제로 하나님의 권세 아래 놓이기 힘듭니다. (이것은 우리의 경험으로 압니다.)
▲3. 강제로 굴복시키십니다.
주님은 그 손안에서, 당신의 종들을 강제로 굴복시켜서 사용하십니다.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애굽에서 벗어날 수 있게 되었고
모세를 통해서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의 살아 계심과 권능과 기적을 보게 되었습니다.
사역자가 하나님을 경험하면
성도들도 하나님을 경험하게 됩니다.
사역자가 경험한 하나님의 실재와 임재를 같이 누릴 수 있게 되는 것입니다.
모세가 살아계신 하나님을 경험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도 그 하나님의 살아계심을 체험할 수 있었습니다.
모세가 단순히 하나님의 개념에 대해서 가르쳤더라면
그들은 결코 애굽에서 벗어날 수 없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은 하늘에서 갑자기 굴러 떨어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모세가 평생을 통한 삶을 통하여
하나님께 대한 굴복이 이루어졌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습니다.
모세가 광야에서 낮아진 세월이 40년이며
그가 주님의 도구로서 이스라엘 백성을 인도하며 사역했던 기간이 40년인 것은
분명한 메시지를 줍니다.
그것은 그가 주님께 굴복되고 낮아진 분량만큼
그는 주님의 통로가 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는 어떤 사람을 사용하시기 전에
반드시 그 사람을 주님의 손에 굴복되도록 다루시고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온전한 굴복은.. 하루아침에 안 됩니다.
요셉이 애굽에서 죄수로 있었을 때
애굽의 왕 바로는 두려운 꿈을 꾸고 번민하였으나
그 꿈을 해석할 수가 없었습니다.
애굽의 모든 박사와 술객들도 그 꿈을 해석할 수 없었습니다.
이 때 등장한 요셉은 그 꿈의 의미를 선명하게 언급하며
어떻게 이를 대배해야하는지에 대해서도 분명한 정책을 제시합니다.
이에 대해서 바로 왕은
아주 인상적인 반응을 보입니다.
바로가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이와 같이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을
우리가 어찌 얻을 수 있으리요 하고
요셉에게 이르되
하나님이 이 모든 것을 네게 보이셨으니
너와 같이 명철하고 지혜있는 자가 없도다
너는 내 집을 치리하라
내 백성이 다 네 명을 복종하리니
나는 너 보다 높음이 보좌뿐이니라. 창41:38~40
바로는 아주 놀랐습니다.
그 지혜와 해석과 명철하고 예리한 대답에 대해서 크게 놀랐습니다.
그가 요셉을 '하나님의 신이 감동한 사람' 이라고 표현한 것을 주목해 보십시오.
당시 애굽은 우상 숭배가 아주 강한 나라였으며, 하나님을 믿는 신앙이란 존재하지도 않았습니다.
그러나 그러한 왕이 보기에도
요셉이 믿는 신은 온 세계에 뛰어난 하나님이시며
그러한 하나님의 영에 사로잡혀 있는 사람은
너무나 귀한 사람이라고 여겨졌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신으로 감동된 사람..
그러한 사람은 믿지 않는 이들, 이방의 세계에 사는 이들이 보기에도
경탄할 만한 사람이었습니다.
바로의 그 기대에 맞게 요셉은 총리가 되어
애굽을 다스리며 애굽의 위기를 구원하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이와 같이 요셉이 하나님의 신으로 감동된 것
그것이 과연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렇지 않았습니다.
요셉은 그 이전부터 계속 하나님의 다루심을 받고 있었습니다.
그는 갑자기 평지풍파와 같은 일을 겪으면서도
그 주님의 손을 놓지 않고 있었습니다.
그는 형들의 계략에 의해서
목숨의 위협을 겪으며 노예로 팔려가게 되었을 때도
주님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종이 되어 주인의 처로부터 유혹을 받았을 때도
그는 주님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감옥에 있을 때도
그는 주님의 손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 모든 과정이 주님께서 요셉을 사용하시기 위한 다루심이었으며
요셉은 그 모든 과정을 통과했던 것입니다.
그리고 마침내 이제 하나님의 사람,
하나님의 신에 감동된 사람이라는 평가를 받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4. 고난을 통해서.. 나를 굴복시켜 나가십니다.
오늘날 그리스도인들이
삶에서 겪고 있는 많은 아픔과 어려움들도
하나님께서 요셉을 다루시는 것과 같이
우리가 그 분의 손에 굴복되기 위해서
훈련을 치르고 있는 것들입니다.
요셉은 묵묵히 인내하고 순종하면서 그 훈련에 통과했으나
오늘날 우리들 가운데,
그 손에 굴복되어 그 훈련을 통과하고
진정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리어지는 이들은 별로 많지 않은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그 어떠한 대상이든지
굴복된 이들은 그에 속한 어떤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하나님께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님의 손에 굴복된 자들은 주님의 통로가 되며 권세를 가지게 됩니다.
오늘날 그 손에 굴복되고 훈련을 통과하여
하늘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이들은 너무나 적습니다.
그리하여 오늘날의 교회, 오늘날의 기독교는 너무나 초라하며
그 놀라운 권능과 생기를 잃어버리고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도 주님께서는
하늘의 부와 권세를 공급하시기 위해서
그분의 택하신 백성들을 훈련시키십니다.
굴복된 자들에게는 권세가 있으므로
이 훈련을 통과하고 그 손에 잡혀 있는 이들은
악한 영들을 깨뜨리고
모든 묶임을 깨뜨리는
도구로 쓰여질 수 있을 것입니다.
굴복은 권능의 비결입니다.
굴복은 하늘의 모든 풍성함과 아름다움을 가져오는 비결입니다.
그러므로 주님께서는
그러한 풍성함을 우리에게 주시기 위하여
우리를 더 깊은 순복/굴복을 향하여 이끌어가고 계시는 것입니다.
요셉처럼 고난과 환란을 통해서요..
'분류 없음 > 2008' 카테고리의 다른 글
내가 너와 함께 있고 싶어 한다는 것을 알아다오 - 로버트 멍어 (0) | 2011.05.21 |
---|---|
어린아이 와 어른 / 정원 (0) | 2011.05.11 |
성령의 열매 맺어야, 천국에 들어간다. 2990 (0) | 2011.05.08 |
유실수 크리스천 (0) | 2011.05.07 |
사역자의 구조적 위험 / 정원 (0) | 2011.04.2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