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도적 신앙의 전통 행2:14, 42 찰스 프라이스
The Marks of the Apostolic 13'~23'
사도행전의 첫 번째 설교는 행2:14부터 나오는, 베드로의 설교입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소리를 높여 이르되, 유대인들과 예루살렘에 사는 모든 사람들아
이 일을 너희로 알게 할 것이니 내 말에 귀를 기울이라. 행2:14
성경의 구절 구절들은, 어떤 빈칸을 채우기 위해, 의미 없이 쓴 것이 아닙니다.
성경의 모든 구절들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쓰여진 것으로서,
반드시 귀중한 의미가 있는데요... 그 중에 한 구절이, 바로 아래의 구절입니다.
▲베드로가 열한 사도와 함께 서서 :14a
베드로는 자신의 관점을 이야기하려고, 그들 예루살렘 사람들 앞에 선 것이 아닙니다.
그곳에서 있었던 일(십자가와 부활)에 대해,
자신의 생각과 해석을 이야기하지 않았습니다.
진정한 설교는,
사도들과 함께 서는 것을 말합니다.
사도들은 신약교회에 아주 중요한 역할과 지위가 주어졌습니다.
초대교회 시기에만 그런 것이 아니라, 2천년 교회 역사를 통틀어 그랬습니다.
행2:42를 보겠습니다.
저희가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서로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를 전혀 힘쓰니라
They devoted themselves to the apostles' teaching NIV
They continued stedfastly in the apostles' doctrine KJV
영어성경으로 보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아’ 구절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devoted, continued.. 이런 단어는, 사도의 가르침에 매우 주의를 기울였고,
그 일을 계속했다는 것입니다.
42절에 초대교회가 한 4가지 일이 나오는데, (가르침을 받아, 교제하며, 떡을 떼며, 기도하기)
그 중에 제일 처음으로 (가장 중요하게) 한 일은..
사도의 권위 있는 가르침을 받는 일이었습니다.
엡2:20은 교회를 이렇게 표현합니다.
너희는 사도들과 선지자들의 터 위에 세우심을 입은 자라. 그리스도 예수께서 친히 모퉁이 돌이 되셨느니라.
이 말씀이 우리에게 중요한 이유는,
사도들은.. 과거에 초대교회 때만 교회에 중요했던 인물들만이 아니라,
오늘날에도 여전히, 교회의 터 foundation가 되는 자들이라는 것입니다.
기독교란, 사도들의 기록과 사역에 보존된
예수님의 가르침을 전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줄여 말하면 ‘사도적 신앙 Apostolic faith’이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타임지에서는, 복음주의를 20세기에 일어난 현상이라고 했습니다.
그 기사를 보고 저는 이렇게 생각했습니다.
‘사실을 따지자면, 복음주의 Evangelicalism는
이미 사도들을 통해 신약에서 이루어진 것인데...’
20세기에 (자유주의, 신정통주의)의 움직임에 반대하여,
이 운동이 새롭게 일어나긴 했으나,
따지고 보면, 복음주의 운동은, 사실 초대교회에서부터 기인합니다.
-제 말은, 기독교는, 사도적 전통을 따라서, 지금까지 2천년 동안 내려왔다는 뜻입니다.
18세기의 존 웨슬리, 조나단 에드워즈도.. 다 복음주의자들이었습니다.
16세기의 종교개혁도, 사도적 전통을 따라가자/회복하자는, 복음주의 운동이었습니다.
사도들을 통해 전파된 예수님의 말씀과 가르침은,
지난 2천년 교회 역사를 계속 이어서,
드디어 오늘날 우리에게까지 전파되었습니다.
▲제가 다소 복잡한 설명을 길게 드린 이유는, 바로 아래 말씀을 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오늘날 일부 설교자들이,
‘사도적 신앙 Apostolic faith’의 전통 위에 서 있지 않고,
그 전통의 흐름에서 떨어져 나와서, 독자적인 노선을 걷고 있기 때문입니다.
쉽게 말하면, 지난 2천년 동안 해 왔던, 전통적인 설교를 전하지 않고,
20세기 후반부터 전혀 전통에 없었던, 새로운 설교를 하고 있습니다.
(번영신학, 성공주의, 기복주의적 설교가 바로 그것입니다.)
그러므로 오늘날 설교자들은, 정직하게 자신을 돌아보아야 합니다.
‘내 설교는, 사도적 신앙의 전통 위에 올바로 서 있는가?’
‘내 설교는 복음적이며, 복음주의적인가?’
※그런데 오늘날, 많은 설교자들이, 사도적 전통의 설교를 지루하게 생각하고,
또 듣는 사람들도, 처세술, 삶의 요령을 가르쳐주는 자기계발적 설교를 선호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노만 빈센트 필 이후(1970년대 이후)의 흐름이지, 그 전에는 없었습니다.
그런데 이런 자기계발적 설교가, 미국에서 방송을 타고, 점점 세계로 확산되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가 전하는 메시지는,
2천년 사도행전의 그 메시지와 동일해야 합니다.
오늘 우리가 전하는/듣는 메시지는,
초대교회의 그 메시지와, 사도행전에 나오는 19편의 설교 메시지와
동일한 것입니까, 전혀 다른 것입니까?
▲1954년에,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런던 집회를 하셨습니다.
목사님은 12주간 동안, 매일 저녁에 집회를 인도하셨는데,
이 집회는 당시 영국 전역에 지대한 영향을 미쳤습니다.
그 당시 영국의 주류 교단들은, 신학적으로 상당히 자유주의적이었고,
그 즈음에 목사님이 기자회견을 가졌는데, 어떤 기자가 말했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목사님이, 이번 집회를 통해서
영국의 기독교를 50년이나 후퇴시켰다고.. 말하는 목사들이 있습니다.
당신은 그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그러자 빌리 그레이엄은 이렇게 대답합니다.
‘만약 나 때문에 기독교가 50년이나 퇴보했다면, 제가 사과드립니다.
그러나 제 목표는, 기독교를 2천년 전의 시간으로 되돌려놓는 것입니다.’
우리는 성경으로, 사도적 신앙의 전통으로 되돌아가야 합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어떤 설교자들은, 사도적 신앙의 전통에서 벗어나 있습니다.
행2:42에 빗대어 말하면, ‘사도의 가르침을 받지 않는’ 것입니다.
행2:14에 빗대어 말하면, '사도들과 함께 서 있지 않는' 것입니다.
▲사도적 신앙의 전통은, 쉽게 말하면
구원의 메시지, 영생의 메시지, 죄용서, 믿음으로 의롭게 되는 메시지,
성화의 삶의 메시지, 그리스도를 주와 구세주로 고백하고 섬기는 메시지,
예수님의 구약 예언, 탄생, 생애, 십자가, 부활, 성령강림의 메시지 등입니다.
항상 기뻐하고, 쉬지말고 기도하고, 범사에 감사하고, 땅끝까지 복음전하고,
천국과 지옥, 심판과 종말을 대비하며, 이 땅에서 순례자의 길을 가는 메시지입니다.
사도적 신앙의 전통에서 벗어난 메시지는,
‘잘 되는 나’, ‘내가 믿은 대로 된다’, ‘성공적으로 사는 법’
‘부자 되고, 건강하고, 사업 잘 되고, 자녀가 성공하는 법’, ‘해방신학’ 등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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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도들에게 치유의 역사가 나타났지만,
치유를 주목적으로 사역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으면, 복을 받는 역사가 나타났지만,
어떤 현세적 복을 주목적으로, 복음을 전파한 것은 아닙니다.
‘예수 믿으세요, 부자 됩니다!’ 라는 복음을, 사도들은 전파하지 않았습니다.
노예를 해방시키는 것도, 정말 좋고 훌륭한 일입니다만,
성경은 ‘죄에서 해방, 마귀의 노예에서 해방’을 주로 말하는 것이지,
노예 해방, 어떤 정치적 해방을, 그 근본목적으로 하지 않습니다.
노예 해방, 해방 신학도 디테일(사소)한 것이지, 기독교의 근본목적이 아닙니다.
▲정리하면
사도적 신앙을 되찾으려고 애쓰십시다.
나의 설교가 ‘사도적 신앙의 전통’위에 서 있는지,
행2:14와 42절을 외우면서, 매일 기도하면서, 자기를 점검해 봐야 합니다.
※그런데 이런 복음적 주제, 사도적 신앙 전통을 설교하려면,
현실적으로 상당한 오랜 기간의 준비가 필요합니다.
사람들이, 복음적/사도적 전통의 설교를 안 하는게 아니라, 못 합니다.
그런 주제에 대해선, 별로 할 말도 없고, 설령 하더라도, 사람들이 다 지루해 합니다.
그래서 할 수 없이, 사람들이 재미있게 듣는 주제를, 들고 나갈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오랜 기간의 준비가 필요하다’는 뜻은,
자기 자신이 구도(제)자적인 자세로, 복음을 직접 5~10년 정도 살아내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 자기 체험을 나눌 때.. 비로소 복음적 설교에 힘을 얻게 되고,
듣는 청중들도 귀를 곧추 세우게 됩니다. 그 기간이 적어도 5~10년은 걸릴 것입니다.
내가 한 번 부활신앙으로 매일, 직접 살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한 번 십자가 신앙으로 매일, 직접 살아보는 것입니다...
내가 한 번 순례자 신앙으로 매일, 직접 살아보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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