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께 충성하는 자에게 왜 고난과 궁핍을 주시는가? 빌1:29~30
▶서론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너희에게도 그와 같은 싸움이 있으니
너희가 내 안에서 본 바요, 이제도 내 안에서 듣는 바니라” 빌1:29~30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비천, 배고픔, 궁핍, 빌4:12)에 함께 참예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4:14
위 구절을 토대로 볼 때 빌립보교회는
“고난 (affliction)”과 “물질적 궁핍”을 심각하게 겪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리하여 바울은 로마에서 감옥에 갇힌 제한되고 어려운 상황이었음에도 불구하고
빌립보교회를 위로하고 격려하고자, 빌립보서를 써서 보내게 된다.
빌립보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던 헬라 도시였다.
그러므로 기독교의 존립 자체가 쉽지 않은 지역이었을 뿐만 아니라
그곳에 거주하는 기독교인의 숫자도 매우 적었기에
빌립보교회는 고난이 많은 작은 교회에 불과하였다.
빌립보교회가 당했던 고난과 궁핍의 원인은
지속적으로 있었던 헬라인들과 로마의 박해였을 것이다.
그리스도인이라는 정체성으로
헬라 문화와 로마 황제숭배강요를 거부하는 상황 속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상상 이상의 고통과 외로움, 궁핍을 감당해야 했던 일이었다.
◑정말 모범적인 빌립보 교회
▶그런데 빌립보교회는 참으로 놀라웠으며, 참으로 신실하고 강인했다.
빌립보교회는 자신의 고난과 고통, 물질적 궁핍에도 불구하고
바울을 물심양면으로 후원하였다.
빌립보교회는 재정적으로 여러 차례 바울을 지원하였다.
바울의 고백에 의하면, 바울이 빌립보 지역에 들어간 첫날부터 행16장
바울이 로마감옥에서 빌립보서를 작성하던 그 순간까지 (10~12년 동안)
바울을 후원하며 동역하였다. 빌1:5
바울이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도움이 필요했지만
바울을 돕는 교회가 없었다.
그러나 오직 한 교회가 바울을 도왔는데, 그것이 바로 빌립보교회였다. (빌4:15)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서로 도움을) 주고 받은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 빌4:15
뿐만 아니라 바울이 로마 감옥에 갇히는 어려움을 당할 때는
에바브로디도를 파송하여 바울을 도왔다.
에바브로디도는 죽을 병에 걸리기까지 바울을 헌신적으로 돕고 섬겼다. (빌2:27)
▶바울은.. 그런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너무나 사랑했다.
자신이 얼마나 사랑하는지는
하나님께서 증인이 되어 주신다고 말할 정도였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너희 무리를 어떻게 사모하는지 하나님이 내 증인이시니라. 빌1:8
바울은 자신이 출옥하게 되면 빌립보 교회를 방문하기를 원하였는데
방문 하게 될 것을 확신한다고까지 할 정도로,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이 가득했다.
빌2:23 그러므로 내가 내 일이 어떻게 될 것을 보아서 곧 이 사람(디모데)을 보내기를 바라고
24 나도 속히 가기를 주 안에서 확신하노라
이와 같이 빌립보교회는 자신의 큰 어려움에도 불구하고
복음을 위해 헌신하는 교회였다.
빌립보교회는 주님께 대하여 착하고 충성된 교회였고,
선교사 바울에게는 너무나 감사하고
기쁨이 되는 교회였다.
빌1:4 각각 자기 일을 돌아 볼 뿐더러 또한 각각 다른 사람들의 일을 돌아보아
나의 기쁨을 충만케 하라
◑모범적이었는데도.. 고난과 궁핍을 겪다
▶문제 제기
그런데 하나님은 그토록 착하고 충성된 빌립보교회에, 왜 고난과 궁핍을 허락하셨을까?
하나님은 모든 것이 풍성하고 충만하신 분이요, 은도 금도 하나님의 것인데 말이다.
능력이 많으신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빌립보교회에 좋은 것들을 많이 허락하셔서
최소한 물질적 궁핍만은 면하게 하실 수 있었을 터인데,
왜 하나님은 고난과 궁핍을 그들 모범적인 교회에 주셨을까?
▶답1. 하나님께서 착하고 충성된 빌립보 교회에 고난과 궁핍을 주신 이유는 몇 가지가 있겠지만
무엇보다 “평안과 풍성함보다, 고난과 궁핍이 더 은혜일 때가 있기 때문”이다.
이에 대해 존 칼빈은 다음과 같이 권면하였다.
“우리는 평안의 때에 방종에 빠지고 지나친 행동을 하기가 더 쉽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회는 그토록 바라는 평안을 누릴 때보다
전쟁의 소용돌이 속에 있을 때가 더 낫습니다.
그러므로 먹고, 마시고, 나태함에 만족하면서
외적인 평안을 남용하지 않는 법을 배웁시다.
우리의 원수가 우리에게 더 많은 안식을 줄수록 그 기간 동안
더 깊은 경건 생활을 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독려합시다.
만일 어느 때든지 주님이 악인들의 재갈을 풀어 우리를 괴롭게 하시더라도
성령의 내적인 위로에 만족합시다.
전쟁 중에나 평화로운 때에나 늘 우리에게 상 주실 그분께
기쁜 마음으로 힘써 나아갑시다.”
칼빈 목사님의 말씀처럼
교회든 개인이든 생활이 안락하고 풍요로우면
나태와 안일, 그리고 각종 죄에 빠지지가 너무 쉽다.
지속적인 풍요와 안락 중에서는 나태와 안일에 빠지지 않는 경우는 거의 없다.
인간은 환경의 영향에 대해 거의 무저항적으로 연약하고,
그 마음이 간사한 본성의 특질상
편안의 때에 방종하고, 안일해지는 것을 피할 수 없다.
그렇다면 죄와 안일, 방종의 비참한 상태에 빠져 고통하는 것보다
차라리 고난과 궁핍 속에서 깨어 있는 것이 훨씬 유익한 일이다.
편안과 풍요로움은.. 내 마음속에 있는 하나님의 자리를 빼앗아 가지만
고난과 궁핍은.. 나를 하나님 앞으로 나아가게 하는 선지자 역할을 해준다.
그렇기 때문에 고난과 궁핍을 주신 것이다.
그러므로 고난과 궁핍 중에 있을지라도
이와 같은 것을 기억하면 감당할 힘이 생기게 된다.
지금 받고 있는 고난과 궁핍이 무의미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면
은혜가 된다.
그리고 더욱 적극적으로 고난과 궁핍에 맞서 싸워 나가게 된다.
최소한 고난과 궁핍에 힘없이 짓눌려서 낙심한 채 세월을 허송하지 않게 된다.
빌립보교회는 이와 같은 지식이 충분하게 있었을 것이다.
▶답2.
이에 더하여 기억해야 할 중요한 한 가지가 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빌립보교회에 고난과 궁핍만을 주신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그 고난과 궁핍보다 더 큰 위로를 함께 주셨다는 것이다.
그 위로 중에 한 가지는 “빌립보서”였다.
바울의 빌립보서를 통해서, 하나님께서는
빌립보교회 성도들을 넉넉하고도 확실하게 그리고 분명하게 위로하셨다.
하나님의 그 위로가 얼마나 크고 귀한 것인지는
빌립보서 내용을 구구절절 확인해 보면 알 수 있다.
세상에서 하나님의 위로를
빌립보교회와 같이 특별계시로 받은 교회는 지극히 적다.
하나님의 위로와 칭찬이 빌립보서에 얼마나 가득한지 모른다.
빌립보교회는 고난과 궁핍을 주신 하나님의 섭리를 헤아리는 믿음이 있었고,
하나님의 위로를 붙들었기에 승리하며 전진해 나갈 수 있었다.
▶마치는 말
하나님은 우리 삶에 방관자가 아니시다.
어떠한 것을 단순히 ‘허락’만 하시는 분도 아니시다.
하나님은 우리 삶의 주관자, 주권자이시다.
우리에게 고난과 궁핍을 허락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섭리이다.
물론 자신의 허물 (안일함 나태함)과 범죄로 말미암아 당하게 되는 고난과 궁핍은
자신에 대한 자신의 심판이지만,
착하고 충성된 종에게 주시는 고난과 궁핍은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이다.
질투하시는 하나님께서는 성도를 지극히 사랑하시기에
우리의 마음을 조금도 우상에게 빼앗기지 않으시고자
고난과 궁핍을 허락하시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므로 그의 특별한 보호하심과 섭리가운데 속해 있는
교회와 성도는 얼마나 복된가!
겉은 멀쩡해도 속에는 하나님의 사랑이 없는 교회와는
비교 할 수 없는 복이 되는 것이다.
빌립보교회는 겉으로 볼 때 작고, 고난당하며, 궁핍한 교회였지만
그 속은 어떤 교회보다도 경건하고, 튼튼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교회였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고난을 주실 때, 위로와 힘도 함께 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하나님은 우리를 고아와 같이 내버려 두지 아니하시고, 모른 척 하지 아니 하신다.
혹시라도 고난과 궁핍 같은 어려움 속에 있을지라도 하나님의 선하신 뜻을 바라보며
그것이 깊으신 사랑임을 기억하는 성숙한 믿음이 필요하다.
그 고난과 궁핍이 하나님의 사랑의 음성인 줄 아는 지혜가 있어야 한다.
또한 빌립보서 (하나님의 말씀) 속으로 들어가서
하나님의 위로의 음성을 듣기 위해 힘써야 할 필요가 절대적으로 있다.
그 위로가 없으면 이겨낼 수 없을 것이기 때문이다.
지금도 복음을 위하여 헌신하는 착하고 충성된 수많은 주의 종들에게
많은 어려움이 있을 것이다.
신실했던 종들은 헌신한 만큼 마음과 노력을 기울였기에
오히려 낙심하기 쉽고, 지치기가 쉽다.
그리고 헌신한 만큼 낙심 때의 충격도 비례하여 크다.
그러므로 주님께 충성하고,
복음에 헌신했던 빌립보교회도.. 고난과 궁핍을 당했던 것을 볼 필요가 있다.
고난과 궁핍은 단순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사랑이다.
하나님은 사랑이시요, 선하신 분이시다.
사랑이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사랑이요, 궁핍도 사랑이다.
선하신 하나님께서 주시는 고난은 선이요, 궁핍도 선이다.
하나님께서 빌립보교회를 어떻게 위로하시는지 바라보자.
그 하나님의 위로는.. 오늘도 동일하게 우리를 향하신 위로이기 때문이다.
오늘도 고난과 궁핍 중에도 복음을 위해 충성하고 헌신하는 주님의 착한 종들에게
하나님의 위로를 전합니다.
혹시라도 낙심하고 지치려는 그대의 마음을 다시 일으키기를 바랍니다.
그대의 고난과 궁핍을 주님께서 다 알고 계시는 것을 기억하기 바랍니다.
뿐만 아니라 당신의 충성도 다 알고 계십니다.
착하고 충성된 주님의 종이여, 주님께서 주실 부름의 상을 향하여
다시 일어나 달려갑시다!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 하였도다. 빌4:14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빌4:19 *글쓴 이: 학자의 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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