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기도하노라. 뭘? 빌1:9∼11 출처보기
◑서론
오늘 본문을 담고 있는 빌립보서는,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낸 편지입니다.
바울은 로마의 감옥에 갇혀서,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에게 보낼 편지인 빌립보서를 기록했습니다.
빌1:3 말씀입니다. “내가 너희를 생각할 때마다 나의 하나님께 감사하며.”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러기에 바울은 그들을 생각할 때마다 하나님께 감사했습니다.
그의 감사는 자연스럽게 그들을 위한 기도로 이어지고 있습니다.
빌1:4 “간구할 때마다 너희 무리를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함은.”
바울은 옥에 매여 있었습니다. 따라서 그와 같은 상황에서,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할 수 있는 일은 그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간구하는 것이었습니다.
기도는 영혼의 호흡입니다. 기도는 의무적으로 해야 합니다.
그러나 바울은 의무감 때문에,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지는 않았습니다.
그의 기도는 자발적인 마음에서 우러났습니다.
그러기에 그는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간구했습니다.
오늘 본문은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며,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간구한 내용이 무엇인가를 구체적으로 밝히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바울은 그들이 영적으로 계속 성장해서, 영적으로 완전히 성숙해지기를 간구했습니다.
바울은 그들의 생업이나 건강을 위하여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바울은 교회의 부흥이나 예배당의 건축을 위해서도 간구하지 않았습니다.
그러한 간구가 옳지 못하다는 뜻은 아닙니다.
바울은 그런 것들보다 훨씬 더 중요한 일을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그러면 이제부터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한 내용을
세 대지로 나누어서 잠시 살펴보도록 하겠습니다.
◑1. 첫째로, 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기를 기도했습니다. 1:9
빌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내가 기도하노라.”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기도를 가르치셨습니다. 바울의 의도도 같았을 것입니다.
성령님의 감동하심에 따라, 바울은 그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는
내용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들도 같은 내용으로 기도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너희 사랑을.”
바울은 먼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을 위하여 기도하고 있습니다.
이는 전혀 놀라운 일이 아닙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모든 성경의 강령 곧 근본이 되는 말씀이 무엇인지를 잘 알고 있습니다.
마22:40 “이 두 계명이 온 율법과 선지자의 강령이니라.”
여기서 온 율법과 선지자는 성경을 가리킵니다.
그리고 두 계명은 위로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며,
옆으로는 이웃을 사랑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말하면 사랑하라는 말씀입니다.
요13:34∼35 “새 계명을 너희에게 주노니 서로 사랑하라
내가 너희를 사랑한 것 같이 너희도 서로 사랑하라
너희가 서로 사랑하면 이로써 모든 사람이 너희가 내 제자인 줄 알리라.”
예수님의 제자가 보여야 하는 가장 큰 특징은 서로 사랑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말로는 예수님의 제자라고 자처하면서도, 서로 사랑하지 않는다면 어떻게 되겠습니까?
이는 아주 심각한 문제일 수밖에 없습니다.
바울은 사랑장이라고 불리는 고전13장에서, 이 사실을 분명하게 말씀하고 있습니다.
고전13:1 “내가 사람의 방언과 천사의 말을 할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가 되고.”
여기서 소리 나는 구리와 울리는 꽹과리는 듣기 싫은 소리를 뜻합니다.
말하자면 사랑이 없으면, 남에게 유익을 주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고전13:2 “내가 예언하는 능력이 있어 모든 비밀과 모든 지식을 알고
또 산을 옮길 만한 모든 믿음이 있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가 아무 것도 아니요.”
내가 대단한 사람 같이 여겨져도, 사랑이 없으면 실상은 내가 아무 것도 아닙니다.
고전13:3 “내가 내게 있는 모든 것으로 구제하고 또 내 몸을 불사르게 내줄지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느니라.”
내가 아무리 대단한 일을 하더라도, 사랑이 없으면 내게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이렇듯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다른 사람에게 아무 유익을 주지 못합니다.
또한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나는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울러 내게 사랑이 없으면, 내게도 아무 유익이 없습니다.
그만큼 예수님의 제자인 우리에게 사랑은 절대적입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사랑장을 이와 같이 끝맺음합니다.
고전13:13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는 항상 있을 것인데,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
왜 바울은 믿음과 소망과 사랑 가운데서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이라고 말씀했을까요?
고전13:7 말씀과 같이, 사랑은 모든 것을 믿습니다. 사랑에는 믿음이 포함됩니다.
또한 사랑은 모든 것을 바랍니다. 사랑에는 소망도 포함됩니다.
그런즉 믿음, 소망, 사랑, 이 세 가지에서 그 중의 제일은 사랑일 수밖에 없습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빌1:9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기를 기도합니다.
물론 그들에게는 이미 사랑이 있었습니다.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은 바울을 몹시도 사랑했습니다.
그들은 바울을 위하여 여러 차례 선교헌금을 보냈습니다.
또한 그들은 바울이 옥에 갇힌 것을 알고서, 에바브로디도를 바울에게 보냈습니다.
그리고는 바울의 옥바라지를 성심껏 하게 했습니다.
이렇듯 빌립보 교회 성도들에게는 이미 사랑이 있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의 마음에 사랑을 심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사랑은 아무리 많아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바울은, 이미 그들에게 있는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기를’ 기도했습니다.
예수님이 우리를 사랑하시는 것 같이, 우리는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예수님은 사랑받을 자격이 없는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도 상대방의 자격을 따지지 말고,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선한 사마리아 사람처럼, 우리는 원수까지라도 사랑해야 합니다.
아울러 예수님은 우리를 사랑하시되, 끝까지 사랑하십니다.
우리도 끝까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사랑하다가 미워하면 안 됩니다. 끝까지 서로 사랑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우리도 우리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기를 기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여기서 우리가 한 가지 명심해야 할 점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처럼,
우리의 사랑에는 지식과 모든 총명이 더하여져야 한다는 사실입니다. 빌1:9
여기서 ‘지식’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것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온전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아울러 여기서 ‘모든 총명’은
하나님의 뜻을 아는 지식에 근거한 영적 분별력을 뜻합니다.
먼저 말씀을 통해 하나님의 뜻을 알아야 합니다.
그런 후에는 성경적으로 올바르고 순수한 사랑인지,
아니면 맹목적이고 감정적인 충동에 불과한 지를 분별해야 합니다.
▶예를 들어봅니다. 야곱이 그의 외삼촌 라반의 딸 라헬을 사랑했습니다.
야곱은 칠 년 동안 라반을 섬긴 후에, 라헬을 그의 아내로 맞이했습니다.
이 때 야곱의 사랑은 지식과 모든 총명을 겸했습니다.
그의 사랑은 하나님의 뜻에 어긋남이 없었습니다.
반면에 다윗의 아들 암논이 그의 사촌 다말을 사랑한 것은 달랐습니다.
암논은 계략을 써서 다말을 욕보인 후에 다말을 버렸습니다.
그의 사랑은 맹목적일 뿐, 지식과 모든 총명이 결여되었습니다.
결국 암논은 다말의 아버지 압살롬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이렇듯 사랑에는 지식과 모든 총명이 더하여져야 합니다.
아니면 건전하지 못한 사랑이 되고 맙니다.
초신자에게는 사랑이 있지만, 지식과 모든 총명이 부족한 경향이 있습니다.
반면에 오랜 신자에게는 지식과 모든 총명이 있지만, 사랑이 부족한 경향이 있습니다.
여러분! 우리도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되기를 기도합시다.
그리해서 우리도 예수 그리스도의 심장으로 위로는 우리의 모든 것을 다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며, 또한 옆으로는 뜨겁게 피차 사랑하기를 바랍니다.
◑2. 둘째로, 그들의 온전한 성화를 위하여 기도합니다. 1:10
빌1:10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이것을 신학적으로는 ‘칭의’라고 합니다.
그런 다음에는 계속하여 점점 더 거룩하여 집니다. 이것을 ‘성화’라고 합니다.
그런 후 맨 마지막으로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이것을 ‘영화’라고 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기도하면서,
먼저 그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여 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 다음 두 번째로 바울은 그들의 온전한 성화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온전한 성화를 이루기 위해서는 사랑이 우선되어야 함이 사실입니다.
바울은 기도하기를, 빌립보 교회의 모든 성도들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를 바랐습니다.
선한 것과 악한 것 정도는 누구나 분별합니다.
따라서 바울이 기도하는 바는 그들이 지극히 선한 것,
곧 선한 것 중에서도 최고로 선한 것을 분별하는 것이었습니다.
요14:15 “너희가 나를 사랑하면 나의 계명을 지키리라.”
예수님을 사랑하면, 예수님의 계명을 지킬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면, 하나님의 말씀을 행할 것입니다.
이를 위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읽으며, 또한 깊이 묵상하게 될 것입니다.
그러다 보면 자연스럽게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됩니다.
왜냐하면 언제나 하나님의 뜻이 지극히 선한 것이며,
또한 하나님의 뜻은 성경에 다 계시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이렇듯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면, 성화도 점점 더 온전히 이루어집니다.
빌4:8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빌4:8
여기에 우리가 생각해야 할 것들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이것들을 곰곰이 생각하면,
절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게 될 것입니다.
분명 바울 자신이 이것들을 생각하는 가운데,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빌4:9에서 바울은 이와 같이 말씀합니다.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 빌4:9
평강의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도록,
우리도 늘 하나님의 말씀을 묵상하며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기 바랍니다.
▶다시금 오늘 본문으로 되돌아옵니다.
우리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목적이 있습니다.
이는 우리가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기 위함입니다.
그리스도의 날에 우리는 영화롭게 되어,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날까지, 우리는 계속해서 성화의 길을 걸어가야 합니다.
우리가 말씀을 통해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는 목적은
우리가 온전한 성화를 이루기 위함입니다.
오늘 본문은 성화의 요소를 두 가지로 말씀하고 있습니다.
첫째 요소는 “진실하여”입니다.
헬라어로 진실이라는 말은 “햇빛”을 뜻하는 단어와
“판단하다”를 뜻하는 단어가 함께 쓰인 합성어입니다.
본시 이 말은 도자기를 만드는 데서 유래가 되었다고 합니다.
그 뜻은 덧칠을 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도자기는 흠이 없어야 합니다. 흠이 발견되면, 깨뜨려야 합니다.
그런데 깨뜨리기가 아까우니까, 진실하지 못한 상인은
도자기에 덧칠을 해서 흠을 감춥니다.
어두운 상점 안에서는 흠이 드러나지 않습니다.
그러나 햇빛에 비치면, 흠은 드러나고 맙니다.
히4:12 말씀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히4:12
말씀의 빛에 비추면, 우리에게 있는 흠은 여지없이 드러납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믿음은 덧칠이 없어야 합니다.
경건을 가장하여 우리에게 있는 흠에 덧칠을 하려 들지 맙시다.
흠이 있으면, 회개하고 고칩시다.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하나님 앞에서 늘 진실하게 사는 우리 모두가 되기를 바랍니다.
둘째 요소는 “허물없이”입니다.
본시 헬라어에서 이 단어는 부정의 뜻을 나타내는 접두사에
“비틀거리다”라는 뜻을 나타내는 단어가 합쳐져서 만들어진 형용사입니다.
그리고 그 본래의 뜻은 “넘어지지 않게 하는, 또는 실족하지 않게 하는”입니다.
예컨대 고전10:32 말씀입니다.
“유대인에게나 헬라인에게나 하나님의 교회에나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
여기에 “거치는 자가 되지 말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길게 번역을 했습니다만,
사실은 오늘 본문에 나오는 “허물없이”와 똑같은 단어입니다.
그러니까 앞서 말씀드린 “진실하여”는 하나님 앞에서 흠이 없음을 뜻합니다.
그리고 이 때의 “허물없이”는 남과의 관계에서 흠이 없음을 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여 바르게 서야 합니다.
나아가서 우리는 남들 앞에서도 허물없이 바르게 서야 합니다.
우리는 다른 사람을 예수님에게로 인도해야 할 예수님의 증인들입니다.
그런 우리가 다른 사람을 넘어지게 해서,
그로 하여금 예수님에게서 멀어지게 하는 일은 없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남을 실족케 하는 자에 대해 이와 같이 경고하셨습니다.
막9:42, “또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들 중 하나라도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맷돌이 그 목에 매여 바다에 던져지는 것이 나으리라.”
언제나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여,
늘 하나님 앞에서 진실하며 남들과의 관계에서도 허물이 없기를 바랍니다.
▶본문 빌1:10절 끝 부분에는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라는 말씀이 있습니다.
성경에는 앞으로 임할 “여호와의 날,” 또는 “주의 날”이라는 표현이 자주 나옵니다.
이는 불신자들에게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날을 뜻합니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날이 뜻하는 바는 다릅니다. 롬8:1 말씀처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날은 우리가 영화롭게 되는 날,
곧 우리가 그리스도와 함께 영광을 누리게 되는 날을 가리킵니다.
빌1:6 말씀처럼, ‘우리 안에서 착한 일을 시작하신 하나님은
그리스도의 날까지 친히 이루십니다.’
또한 로마서 8장 말씀처럼, 하나님은 우리를 미리 아시고, 미리 정하시고,
부르시고, 의롭다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우리를 반드시 영화롭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바라시는 바가 무엇이겠습니까?
우리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는 것입니다.
다시 말해서 우리의 성화를 온전하게 이루는 것입니다.
롬12:2,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
이 말씀을 시편에 있는 표현대로 하면 이와 같이 됩니다.
시편1:1∼2, “복 있는 사람은 악인들의 꾀를 따르지 아니하며 죄인들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
오만한 자들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며 기도에 힘씁시다.
그리하여 지극히 선한 것, 곧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며,
또한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도록 합시다.
이것이 우리의 끊임없는 기도가 되어야 하겠습니다.
◑3. 셋째로, 그들의 삶이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기도합니다. 1:11
빌1:11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예수님을 믿으면 의롭다 함을 받습니다.
의롭다 함을 받으면, 계속해서 온전한 성화를 향하여 나아갑니다.
그러다가 마지막에 영화롭게 됩니다.
바울은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이 영화롭게 될 날을 바라보면서,
마지막 세 번째 제목으로 그들을 위하여 기도합니다.
바울이 기도한 대로, 그들의 사랑은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될 것입니다.
아울러 그들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를 것입니다.
그 뒤에 자연히 따라오는 결과가 있습니다.
본문에 있는 말씀대로,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할 것입니다.
세상 사람들은 불의의 열매가 가득할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리스도의 심판대 앞에서,
그들은 그들의 행위대로 심판을 받아 영벌에 들어가야 합니다.
또한 빌3:9 말씀과 같이, 율법에서 난 의로는,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다시 말해서 인간의 힘으로는 의의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오늘 본문에 있는 말씀과 같이,
오직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있습니다.
요15:5 말씀입니다. “나는 포도나무요 너희는 가지라 그가 내 안에,
내가 그 안에 거하면 사람이 열매를 많이 맺나니 나를 떠나서는 너희가 아무 것도 할 수 없음이라.”
예수님을 떠나서는, 아무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의의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지금까지 바울은 빌립보 교회 성도들의 사랑이 점점 더 풍성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또한 그들의 온전한 성화를 위하여 기도했습니다.
아울러 그들이 그리스도의 날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기를 기도했습니다.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하여 이와 같이 기도한 궁극적인 목적이 있습니다.
오늘 본문에서 바울은 그의 기도를 이렇게 끝맺음합니다.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빌1:11
바울은 그들의 삶이 하나님께 영광이 되며 찬송이 되기를 바랐던 것입니다.
▶이는 요15:8에 기록된 예수님의 말씀과 같은 취지입니다.
“너희가 열매를 많이 맺으면 내 아버지께서 영광을 받으실 것이요 너희는 내 제자가 되리라.”
우리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를 가득히 맺는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함입니다.
우리의 사랑이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여,
우리가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고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러,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게 되는 것의 궁극적인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려 함입니다.
여러분! 오늘 우리는 빌립보 교회의 성도들을 위한 바울의 기도를 잠시 살펴보았습니다.
바울이 그들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기도한 것처럼,
저도 여러분을 위하여 기쁨으로 항상 기도합니다.
바울의 기도가 우리 모두의 기도가 되기를 바랍니다.
빌1:9~11 “내가 기도하노라 너희 사랑을 지식과 모든 총명으로 점점 더 풍성하게 하사
너희로 지극히 선한 것을 분별하며 또 진실하여 허물없이 그리스도의 날까지 이르고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의의 열매가 가득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찬송이 되기를 원하노라.”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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