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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창세기 1 / David Pawson

LNCK 2014. 12. 29. 16:52

◈창세기 1            영어 녹취록         *데이빗 파슨 Unlocking                          

◑성경

 

성경은 한권의 책이 아니라 여러 권의 책으로

구성되었습니다.

 

'성경'이란 단어는 라틴어 biblio에서 왔는데, 복수입니다.

이는 여러 권의 책을 묶은 것입니다.

 

성경은 모두 66권의 책이 모아져서

역사책을 이루었습니다.

우리 우주의 역사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성경에 기록한 시간의 범위는

다른 역사책 보다 먼저 시작되었고 늦게 끝납니다.

 

이는 우주의 시작부터 우주의 종말까지

심지어 영원까지 다루기 때문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각도에서 보신 역사입니다.

하나님이 중요하게 여긴 사건들을 기록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일반 정치사나

우주사나 문화사와는 다릅니다.

 

하나님은 사건들을 신중하게

선택해서 기록했습니다.

 

그분에게 가장 큰 영향을 끼친 일들을 기록하였습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다른 역사서와는 전혀 다릅니다.

  

▲성경은 두 가지 주제로 볼 수 있습니다.

 

첫째 : 이 세상에 무슨 문제가 생겼는가?

둘째: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할 것인가?

 

여러분들도 이 세상은 더 이상 우리가

거주하기에 합당하지 않다고 생각할 것입니다.

 

이 세상은 큰 문제가 생겼습니다.

 

창세기는 우리에게

무슨 문제가 생겼는지를 말해 줍니다.

 

그 후 성경의 각권은 하나님이 어떻게 이 문제를

해결하시는지에 대해 기록하고 있습니다.

 

오직 하나님만이 우주처럼 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습니다.

 

그 해결책은 사람을 구원하여

자아중심에서 벗어나게 하는 것입니다.

 

자아중심에서 벗어나는 것이

바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것입니다.

 

구속 redemption 이란 뜻은 구해냈다는 뜻입니다.

우리는 자아중심에서 구원받아야 합니다.

 

그러므로 66권의 책은 위대한

극본을 이루고 있습니다.

 

나는 이를 구속 극이라고 하며

창세기는 서막이라고 합니다.

 

나는 이 극본의 배우와

줄거리를 소개하려고 합니다.

 

◑창세기

 

여러분, 만약 창세기 앞부분의 몇 장이 없다면,

뒤의 성서들은 그 의미를 잃어버리게 됩니다.

 

이 책은 히브리 원어로

태초라는 두 글자로 되어 있습니다.

 

이는 히브리 성경은 모두

두루마리로 되어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성경 각권의 첫 글자로

각권의 이름을 지었습니다.

 

그러므로 성경각권의 첫 몇 글자만 보면

그 책의 이름이 무엇인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이 책의 본명은 태초입니다.

 

예수님이 오시기 약 250년 전에 구약

히브리어 성경은 헬라어로 번역되었습니다.

 

그 때 이 책의 이름이 창세기로 변경되었습니다.

그 뜻은 기원 및 최초라는 뜻입니다.

 

이 책의 이름은 아주 적절합니다.

 

이는 이 책에 우주와 해와 달과

별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사는 지구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 속에는 식물, 조류, 어류, 동물과 사람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그 성별과, 혼인과 가정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인류 문명과 정부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문화, 예술, 과학의 기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죄와 사망, 살인과 전쟁의 기원을 기록하고 있으며

심지어 제사의 기원과 동물과 산 사람을 제사로 드리는

기원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아주 놀라운 책입니다.

비록 50장으로서 매우 짧지만 위에서

말한 모든 기원들을 포함하고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가장 근본적인 의문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우주는 어떻게 왔느냐?

사람은 사는 목적은 무엇이냐?

심지어 사람은 왜 다 죽느냐? 라는 실제적인 문제도 다룹니다.

 

이 문제는 우리가 받아드리려 하지 않고

논하려 하지도 않고 생각하려 하지도 않습니다.

 

우리는 어떻게 하든지 사망의 공포를 위장하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람은 누구나 죽습니다. 왜 그렇습니까?

 

이 모든 것은 인생의 근본적인 의문입니다.

우리는 이에 대한 답이 필요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삶의 분주함에 매몰되어

이러한 근본적인 의문을 깨끗하게 잊어버리게 됩니다.

그러나 사람은 이 문제에 대해 해결책이 없습니다.

 

그들은 우주가 어떻게 왔는지를

우리에게 알려줄 수 없습니다.

 

이는 역사학자들은 그 현장에 없었기 때문에 모든

경과를 기록할 수도 없습니다.

 

과학자들도 우리에게 우주가 어떻게 왔는지를

알려 줄 수 없습니다.

 

그들은 시초까지 거슬러 올라갈 수 있으나

그 이상은 더 갈 수 없고 볼 수도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주는 어떻게 시작되었는지를

우리에게 말해 줄 수 없으며 더욱 우주가 왜 존재하는지에

대해서도 말해 줄 수 없습니다.

 

과학은 우주의 기원의 목적을 찾아 줄 수 없으며

다만 우주의 형성된 경과만 말해 줄 수 있으나

우주 형성의 목적은 우리에게 알려주지 못합니다.

 

철학자들도 이 근본적인 의문에 대답하지 못합니다.

그들은 유한한 사고력으로 추론하고 추측을 펼칠 뿐입니다.

철학자들은 죄악의 기원에 대한 해석은 항상 추측에 불과합니다.

 

마치 죄악은 어디서 왔는가?

왜 세상에는 이렇게 많은 죄악이 있는가?

철학자들은 머리를 쥐어짜며 우리에게 원인을 밝혀

주려하지만 다만 추측에 불과합니다.

 

아무도 진정한 원인을 밝혀주지 못합니다.

오직 한 분만이 이 모든 원인을 밝혀 줄 수

있습니다. 그분은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창세기를 펼칠 때 즉시

한 가지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이 책은 사람의 상상인가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인가? 하는 문제에 봉착하게 됩니다.

 

그 밖에 이 창세기의 내용은 다만

사람들의 의문에 대한 추측에 불과 한가

아니면 그 의문에 대한 정확한 답을 제시한 것인가?

 

답을 제시하신 분은 우주 창조에 참여하신 분이십니다.

모든 창조는 그분이 친히 주도하신 것입니다.

 

우주 기원에 관한 부동한 기록은 바벨론 서사시에서도

많은 사람에게 알려져 있습니다.

 

내용은 창세기보다 아주 복잡하나 신뢰도는

창세기보다 아주 미약합니다.

 

많은 사람들은 우주의 기원을 밝혀 보려고 합니다.

이는 다만 그중의 한가지 일 뿐입니다.

 

이런 야사에 비하면 창세기 1장은 아주 간단하면서도

신뢰도가 높음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창세기를 읽을 때 반드시 이는 사람의

상상인지 아니면 하나님의 계시인지를 결정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책을 읽기 전에

반드시 믿음의 한 보를 내 딛어야 합니다.

 

사실상 과학의 계시도 믿음을 기초합니다.

 

내가 대학을 다닐 때 과학을 전공하였습니다.

과학은 항상 한 개의 이론을 가정하고 그 후에

그 이론이 정확한지를 검증합니다.

반드시 믿음의 한보를 내 딛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하나의 이론을 가정하여 믿은 후 그것이

정확한지를 실험을 통해 검증하는 것입니다.

 

이로 볼 때 믿음으로 행하는 것은

과학적인 접근 방법입니다.

 

우리는 믿음을 가지고 창세기를 읽어야합니다.

 

하나님이 이 책에서 이 문제들에 대하여 말씀하시는 것으로

가정하고 그 후 그 가정한 것이 사실과 부합하는지를 한번

살펴보아야 합니다.

 

◑이제 창세기에서 두 가지 중대한 사실을 완벽하게

해석하는 것에 대해 살펴보겠습니다.

 

첫째: 우리가 사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참으로 신기합니다.

우주는 신묘막측 합니다.

 

그러나 지구는 우주 중에서도 가장 기묘합니다.

지구는 다 채 다양 하면서도 생기가 넘칩니다.

우리가 이렇게 아름다운 세계 속에 살고 있습니다.

 

TV에서 나오는 자연생태계 방송은 언제나 우리로

이 세계에 대하여 감탄케 합니다.

 

현대 촬영기술은 기이한 자연세계를 드러내고 있습니다.

이 모든 것을 볼 때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는

얼마나 아름다운지를 알 수 있습니다.

 

그 다음 한 가지 사실은 이 속에 살고 있는 사람들이

이 세상을 끊임없이 파괴한다는 것입니다.

 

이는 우리가 반드시 직면해야하는 두 가지 중대한 사실입니다.

 

사람들은 인위적인 자연 파괴에 신중한 관심을

보이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아십니까?

매일 백여 종의 생물들이 멸종위기에 있다는 것을..

 

우리는 우리가 살고 있는 세계를 파괴하고 있습니다.

이는 중대한 두 가지 사실입니다.

 

첫째: 우리가 살고 있는 이 세상은 얼마나 아름다운가?

둘째: 우리는 왜 이를 파괴 하는가?

 

나는 창세기 기록과 완벽하게 일치하는 이 두 가지 사실을

믿습니다.

 

이는 과학적인 해석에도 적합합니다.

 

◑그럼 이제 우리는 창세기가 성경 중에서 차지하는

비중을 살펴보겠습니다.

 

창세기는 단지 성경의 첫 번째 책 일뿐만 아니라

모든 성경의 기초가 되기도 합니다.

 

성경의 모든 진리는 대부분 창세기 중에서

발견 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 책은 성경 속에 온상의 종자라고도 불려 집니다.

 

창세기의 종자가 싹이 나서 성경의 뒷부분에 와서 결실합니다.

이 종자는 창세기에서 배아 역할을 합니다.

 

창세기의 계시는 전체 성경을 여는 열쇠입니다.

만약 성경의 시작부터 출애굽기라면 성경은 어떻게 될지를

생각해 보았습니까?

 

만약 창세기가 없다면 우리는 성경을 펼쳐 읽을 때

애굽에서 노예 생활하는 유대민족에 대해

아무런 흥미도 가질 수 없습니다.

 

우리가 왜 그들의 역사와 종교를 연구해야합니까?

오직 학술에 연구가 깊은 사람들만이 흥취를 가지고 읽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가 있기에 우리는 우리 자신을 읽게 되고

우리 인생을 읽게 되고 우리 자신을 더 깊이 알게 됩니다.

 

또한 왜 나는 더 좋아 질 수 없고 왜 더 완벽해 질 수 없는지를 알게 됩니다.

 

사람들은 왜 도덕에 메말라 몸부림치는지를 당신은 생각해 보았습니까?

많은 사람들은 자신이 더 좋아지기를 원합니다.

그러나 늘 실패합니다. 왜 그렇습니까?

 

출애굽기는 우리에게 답을 주지 못합니다.

그러나 창세기는 답을 줄 수 있습니다.

 

이는 창세기를 읽다보면 우리의 조상 아담을 읽게 됩니다.

그의 삶을 읽으면 거울로 나 자신을 보는 것과 같습니다.

 

구약성경은 창세기를 기초합니다.

 

성경 속 많은 곳에 창세기 인물들이 등장합니다.

아담, 노아, 아브라함, 야곱,

야곱은 훗날 이스라엘로 불려 집니다.

 

전체 구약성경은 창세기를 기초합니다.

신약성경은 더욱 창세기를 기초합니다.

 

신약성경이 창세기를 인용한 회수는

구약성경을초월합니다. 믿습니까?

 

창세기 1장부터 6장까지 신약성경에서 상세하게

서술하고 있습니다.

 

신약성경의 저자 여덟 명 모두가

창세기를 언급하고 있습니다.

 

예수님도 이 책에 대하여 언급하였으며 창세기에 대한

예수님의 견해는 모든 그리스도인들의

의혹에 해석이 되었습니다.

 

이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은 그를 신뢰했기 때문에

그가 말하는 것이 진리임을 믿었습니다.

 

의미 있는 것은 예수님은 창세기중의 모든 인물을

전설중의 인물이 아닌 실존 인물임을

말씀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분이 노아 홍수를 사실로 말씀하시기에

나도 그렇게 인정 합니다.

아무리 어려운 문제를 만난다 할지라도 인정합니다.

잠시 후 다시 나누겠습니다.

 

예수님이 노아를 실존 인물로 말씀하기에 나도

노아는 실존인물이라고 봅니다.

그 뿐만 아니라 여러분 아십니까?

예수님은 아브라함도 보았다고 합니다.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아브라함이 있기 전에 내가 있었고

그는 나를 보는 것을 기뻐했다고 말씀합니다.

 

유대인들이 듣고 예수께 묻기를

네가 아직 50세도 안되었는데

어찌 아브라함을 보았다고 하느냐? 라고 합니다.

 

그러나 예수께서 말씀하시기를

그때 내가 거기 있었다.’고 합니다.

거기 있었다.’

당신은 예수님을 믿습니까?

그 분이 하신 말씀은 다 진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언제나 창세기의 기록을 인정했습니다.

 

사람들이 예수께 이혼과 재혼에 대해 질문했을 때

예수님은 뭐라고 말씀하셨습니까?

 

예수님은 창세기 2장의 내용을

그들에게 보이며

그들에게 이르기를 답은 이 속에 있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창세기는 확실히 모든 성경의 기초입니다.

다른 성경의 문을 여는 열쇠가 되는 것입니다.

 

창세기가 없다면 다른 성경들은 의미가 없습니다.

예를 든다면

만약 창세기가 없다면

당신은 십자가를 이해할 수 없습니다.

믿습니까?

 

바울이 말하기를

십자가의 도는 한 사람의 범죄로 말미암아

사망이 모든 사람에게 이르렀고

마찬가지로 한 사람의 순종함으로 말미암아

모든 사람이 생명을 얻게 되었다고 합니다.

 

이것이 십자가의 핵심내용입니다.

 

그는 창세기 3장의 내용을 말씀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내 이렇게 말함은 틀린 것이 아닙니다.

 

당신이 만일 창세기가 믿어지지 않는다면

다른 성서도 믿을 수 없습니다.

만약 창세기의 내용이 진실하지 못하다면

창조는 우연에 불과하고 우리의 조상은 야수들이 됩니다.

 

창세기는 성경의 기초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이 책은 성경의 다른 책들보다

많은 공격을 받는 것은 우리는 볼 수 있습니다.

 

이런 공격은 두 가지 측면에서 옵니다.

 

먼저는 과학의 측면에서 옵니다.

그들이 제시하는 어떤 질문은 모든 사람이 아는 것입니다.

 

시간상 상세하게 설명은 못하겠으나

일정한 부분은 나눌 것입니다.

 

그 밖에 영상테이프를 통해

이 방면의 상세한 설명을 듣고

이런 문제에 주의를 높여야 할 것입니다.

 

특히 청소년들은 학교에서 생물학을 배웁니다.

 

만약 그들이 그 각도에서 창세기를 읽는다면

참으로 많은 문제들에 봉착하게 됩니다.

 

우리는 솔직하게 이런 문제들에 직면해야 합니다.

 

예를 들면 과학은 창조의 순서와

창조의 속도와 창조의 방법에 질문하며

과학은 지구의 연령에 질문하며 사람의 기원에 질문하며

홍수의 범위에 질문하며

홍수 전 인류의 수명에 대해 질문하고

그 밖에 많은 것들에 대해 질문합니다.

 

그러나 나는 이런 공격적인 질문의 배후에는

절대적으로 사단의 공격이 있다고 봅니다.

 

마귀는 성경 속의 두 권의 책을 아주 싫어합니다.

창세기와 계시록 입니다.

 

마귀는 창세기 시작장과 계시록의

마지막 부분들을 더욱 싫어합니다.

 

특히 사단이 어떻게 세상에 들어왔는지에

대한 기록과 또한 어떻게 부끄럽게 세상을 떠나게 되는

장면을 기록한 내용을 싫어합니다.

 

그러므로 사단은 창세기의 시작 장들과

계시록 마지막 부분을 읽지 못하도록 방해합니다.

 

그는 사람들로 창세기는 신화에 불과하고

계시록은 풀 수 없는 신비로 여기게 합니다.

 

그리하면 당신은 이 두 권의 책을 읽지 않기 때문입니다.

사단은 아주 잘 알기 때문입니다.

 

오직 창세기를 믿지 못하게 하면

모든 성경의 기초를 파괴한 것이나 다름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창세기가 많은 변론을 가져오게 된 것은

이상한 것이 아닙니다.

 

이는 창세기를 믿지 못하면 다른 성서들은 쉽게

믿어지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럼 창세기는 어떻게 왔을까요?

 

이는 다섯 권 중에 한권의 책입니다. 

우리의 성경은 이렇게 분류하지 않습니다.

이는 유대인들의 분류방법입니다.

 

이 다섯 권의 책이 모아져서 모세오경을 이루어

pentateuch. penta는 숫자 5라는 뜻입니다.

 

미국 워싱턴에 펜타콘 이라는 건물이 있습니다.

영문 첫 문자 중에 penta는 모세오경과 같은 말입니다.

 

유대인들은 이 다섯 권의 책을 율법 책이라고 합니다.

이는 지시하다라는 뜻입니다.

 

그들은 이 모아진 다섯 권의 책은

창조주 하나님의 지침서라고 믿습니다.

 

이 다섯 권의 책은 사람들로 멋진 인생을 살게 합니다.

그러므로 반드시 숙독해야 합니다.

 

그래서 유대인들은 매년 모세오경을

한번 씩 반드시 읽습니다.

 

매주 경배할 때마다 조금씩 읽습니다.

매년 한번 읽고 다음해에 또 읽고는 합니다.

일 년에 한번 읽고 매주 조금씩 읽습니다.

 

유대인, 그리스도인, 심지어 일반 역사학자들도

모세오경은 모세를 저자로 알고 있습니다.

 

이는 전통으로 알려져 있으므로 의심할 여지가 없습니다.

 

모세시대에 와서 상형문자는 알파벳으로 바뀌었습니다.

오늘날 아직도 애굽, 중국, 그리고 일본은 상형문자를 쓰고 있습니다.

 

그러나 모세시대는 이미 알파벳을 쓰기 시작했습니다.

한 가지 기억해야 할 것은

모세는 대학 교육을 받았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영국의 탬즈강 제방의 클레오파트라의

네모난 기념비를 보았을 것입니다.

 

그게 바로 애굽 대학교 입구에 있던

두 기둥중의 하나입니다.

 

다른 하나는 로마에 있습니다.

당시 모세가 매일 아침 등교 길에

이 기둥을 보았습니다.

 

그러므로 모세는 충분한 교육과 지식으로

이 다섯 권의 책을 편성 할 수 있었습니다.

 

비록 다섯 권의 책에 저자의 이름을 밝히지 않았지만

나는 전통의 관점을 믿습니다.

 

물론 모세가 이 다섯 권의 책을 썼다면 실로 두 가지

문제가 나타납니다.

 

첫째 문제는 크지 않지만 신명기의 마지막 부분에

모세의 죽음을 기록 하고 있습니다.

 

이걸 볼 때 모세가 이 부분을 기록하지 않았다고 해도

여러분은 동의 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혹은 여호수아가 이야기를

마무리하기 위해 보충했을 수도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중요한 문제는 모세가

창세기 역사 끝난 지 300년 후에 태어났다는 것입니다.

 

모세의 시절은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4권속에 기록되었으므로

이는 모세가 살아 있는 동안의 사건들입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이 4권의 책을 쓰는 데는 문제가 없습니다.

 

그러나 창세기의 사건이 끝난 지 300-400년 후에

모세가 태어났습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어떻게 창세기의 내용을 알 수 있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알다시피 초기 인류는 아주 독특한 특성이 있었습니다.

 

문자가 발명되지 않았을 때 그들은 뛰어난 기억력을 갖추었다는 것입니다.

 

오늘날 까지 문자 없는 부족들은 여전히 초 기억력으로

그들 부족의 역사를 서술해 낼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그들이 저녁 숯불 옆에서 부친이 자녀들에게 알려주는 것입니다.

 

이런 구전의 전통은 원시사회에서 아주 확고합니다.

당시 히브리인들도 그러했다고 봅니다.

특히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할 때

그들은 자녀들에게 자기의 출신과 조상들을

알게 하기 위하여 그러했습니다.

 

적어도 두 가지 사실만은 이런 방식으로 전달되었습니다.

하나는 족보입니다.

족보를 통하여 자신의 조상을 알아가는 것입니다.

 

창세기에는 참으로 많은 족보들이 있습니다.

아주 많습니다.

어떤 표현은 창세기에 10번 이상 등장합니다.

 

이 말씀은 전체 성경 속에 자주 나타납니다.

읽을 때 당신은 발견할 것인데 이런 일은 오직 뛰어난

기억력으로만 전승이 가능합니다.

 

다른 하나도 이런 구전의 방식으로 전달됩니다.

바로 영웅 이야기입니다.

조상의 영웅사적입니다.

 

그러므로 부족들은 이런 뛰어난 기억력으로

이 두 가지 사실을 전승합니다.

 

하나는 가문의 족보이며 하나는 영웅사적입니다.

우리로 하여금 흥분케 하는 영웅사적들은 구전 방식으로

전승되었다는 것입니다.

 

창세기 다수의 내용은 이 두 가지사실을 기록하고 있습니다.

많은 영웅들의 이야기 사이에 족보가 기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견해로 볼 때 모세가 애굽의 노예에게 이런 사실을 들었고

훗날 이런 것들을 책으로 엮어지게 되었습니다.

 

여러분들도 다 이 부분에 대해 발견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한 부분만은 예외입니다.

 

이는 창세기 중 한 부류의 구절들은 모세가 구전을 통해

들은 것이 아닙니다. 바로 창세기 1장입니다.

 

사실 계시성경이 장절로 나누어질 때 많은 부분의

단락들은 잘 나누어 지지 못했습니다.

 

창세기 11절에서 23절까지 의 말씀은

모세가 다른 사람에게서 들은 것이 아닙니다.

 

그 단락은 하나님이 친히 모세에게

말씀하신 것이라고 봅니다.

 

그 단락은 모세가 친히 하나님의 음성을 듣고

친히 기록한 것이라고 봅니다.

 

성경 대부분의 내용은 이런 방식으로 씌여진 것이 아닙니다.

 

우리는 성경의 저자를 문서작성기로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타자기로 사용하셨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은 성경작가의 개성, 기억, 깨달음 그리고 관점 등을 통해

그 분의 말씀을 나타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성령은 모든 계시를 주관하여 모든 결과를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게 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다른 부분들에서도 상경 작가의 특성이

들어 있습니다.

 

성경의 다른 부분에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신명기 등에서

우리는 선명하게 모세의 품격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창세기 1,2,3장은 완전히 다르지만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의 모든 특성을 나타냅니다.

 

잠시 후 우리는 완벽하게 드러내는

그 부분들을 살펴 볼 것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실 때 그 말씀은 완벽한 숫자로

드러나는 것을 찾아볼 수 있습니다.

 

히브리어는 숫자가 없고 문자만 있습니다.

오작 문자로 숫자를 대신합니다.

 

마치 A는 숫자1, B는 숫자2, C는 숫자3으로 등등..

이는 일반적인 계산법입니다.

 

만약 창세기1장의 첫 문자를 숫자로 변환시킨다면

우리는 깜짝 놀랄 것입니다.

 

내가 예루살렘에서 랍비들과 담화를 나눌 때

그들은 실제적으로 성경의 첫 자막들을

숫자로 계산해 냈습니다.

 

많은 시간들을 들여 토의한 끝에 완벽한

숫자를 드러냈습니다.

 

창세기의 첫 마디가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입니다.

 

이는 모두 일곱 글자입니다.

이는 단지 그 중에 한 숫자 일 뿐입니다.

잠시 후 다시 나눌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제 1장은 어느 모로 보나 아주

유일하면서도 독특한 작품입니다.

 

창세기 제 1장에는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시는

모든 특성들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저는 모세가 많은 사람들의 기억 속에 있는 족보와

영웅사적들을 모았을 때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이제 내가 서론을 말할테니 기록하라이렇게 생각해 보았습니다.

 

흥미로운 것은 성경의 마지막 부분에도

이와 비슷한 상황이 나타난다는 것입니다.

 

계시록은 요한이 쓴 것이 아닙니다.

그는 단지 본 이상과 들은 음성에 따라 분부한대로

받아썼을 뿐입니다.

 

성경의 시작부분과 끝부분은 사람이 상상해내서

쓸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는 그 내용이 상상을 초월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의 시작과 끝은 반드시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셔야 하는 것입니다.

 

시편 103편에 하나님은 모세에게 그분의 법규를

알게 하셨다고 합니다.

 

나는 창세기 1장을 읽을 때마다 내 신발을 벗고 싶습니다.

이는 내가 서 있는 땅은 참으로 거룩한 땅이고

내가 듣는 음성은 하나님의 음성이기 때문 입니다.

하나님은 모세로 그분의 법규를 알게 하셨습니다.

 

나에게 창세기 1장은 모세가 기록하였다는 증거가 있습니다.

이는 모세 이전의 사람들은 알지 못했던 것입니다.

 

그것은 모세 이전에 사람들은

안식일을 지킬 줄 몰랐다는 것입니다.

 

성경 속에 아담, 노아, 아브라함, 이삭과 야곱은 매주

하루씩 쉴 줄을 몰랐습니다.

그들은 심지어 한주라는 개념도 없었습니다.

 

오직 달을 통해 월분을 계산하고 태양을 통해 년분을

계산하였습니다.

 

우리는 성경 속 창세기 1장부터 아담은

안식일을 알고 있는 줄로 여기고

아담이 안식을 지켰다고 생각하며

그 후 모든 사람들이 안식일을 지켰다고 여겼습니다.

 

그러나 아닙니다. 이 부분은 아예 찾아 볼 수 없습니다.

 

우리는 창세기 2, 3장에서 아담은 한주 7일 동안

쉬지 않고 일했음을 알 수 있습니다.

 

그는 매일 에덴동산을 돌봐야 했고

저녁에 시간을 내서 하나님과 함께 교제하였습니다.

 

그는 매일 쉬지 않고 일을 했습니다.

한주동안 쉬지 않고 일했습니다.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은 목자였습니다.

소는 안식 안 해도 됩니다.

 

저는 젊었을 때 늘 새벽4시에 일어나 90마리 넘는

젖소의 젖을 짜야 했습니다.

 

저는 젖소들에게도 안식일이 있기를 원했습니다.

그러나 없었습니다.

당시 사람들은 안식일이 무엇인지 알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통해 우리에게 계시했습니다.

 

그분은 6일 동안 우주를 창조하시고

7일에는 안식하셨습니다.

 

그 후 안식일은 특별한 날이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모세가 백성들에게 안식일의 계명을 선포할 때

특별히 이는 하나님이 우주를 창조하셨기 때문이라고

설명했습니다.

 

이는 백성들이 전에 이 사실에 대해 몰랐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그들이 처음으로 들었습니다.

 

그러므로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이 친히 말씀하여

모세로 기록하게 한 것입니다.

 

모세 전에는 이것을 아는 사람은 없었습니다.

그 외에도 몇 곳에서 이 사실을 증명하고 있습니다.

 

이제 여러분 우리 함께 창세기를 살펴보겠습니다.

함께 놀랍게 시작하는 첫 장을 보겠습니다.

 

저는 많은 시간을 들여 2장을 나누려고 합니다.

그러나 오늘부터 몇 시간은

오직 태초에 하나님이라는 주제로만 나누려고 합니다.

 

◑창세기에는 태초라는 말이 많습니다.

 

하나님을 제외한 만물의 태초를 말하고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은 만물의 시작점에서부터

존재하시는 분이 아니라 성경이 시작하기 전에

하나님은 존재하시는 분이었습니다.

 

우주가 생기기 전에 하나님은 존재하셨고

하나님은 영원 전부터 존재하신 분이십니다..

 

반드시 영원한 분, 혹은 영원한 물체가 있어야

우주를 창조할 수 있습니다.

 

이는 무에서 유를 이루는데 반드시

필요한 조건이기 때문입니다.

 

우주 창조는 반드시 영원한 분,

영원한 물체가 있어야하는 것입니다.

 

혹시 이해하기 힘드십니까?

 

이는 아주 간단한 철학 이론입니다.

무에서 유는 있을 수 없습니다.

반드시 그 원인이 있어야 합니다.

반드시 영원한 분이나 영원한 물체가 있어야

창조가 가능합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우주는 영원한 그분이

창조하였음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만약 하나님은 누가 창조하였는가라고 묻는다면

이것은 아주 터무니없는 질문입니다.

 

마치 정방형을 이루는 원형이 있는가?

얼음을 볶을 수 있는가?라는 질문과 같습니다.

 

이런 질문은 터무니없는 질문입니다.

이는 이 두 가지는 근본적으로 다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피조물이 아니라

만물이 그로 말미암아 창조되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존재하셨고

존재하시고 영원한 존재이십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말하기를

그는 영원한 것이라고 합니다.

 

영원한 것, 이에 대하여 두 가지 선택이 있습니다.

둘 중 하나님 선택해야 합니다.

 

성경은 정확히 는 영원한 존재라고 말씀합니다.

성경의 가장 기본적인 전제는

하나님은 영원부터 영원까지 존재하시는 분이라는 것입니다.

 

그는 언제나 존재하셨고

영원히 존재하셨으며 언제나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분의 이름은 (있다)(being) ‘있다입니다.

몇 년 전 제가 기도할 때

주께 히브리어로 야훼와 동일한 영어 이름을 구했습니다.

 

이는 그 이름에 대해 더 깊은 의미를 느끼고 싶었습니다.

이때 제 머릿속에는

항상 always’라는 단어가 떠올랐습니다.

 

이 단어는 야훼라는 단어와 아주 가깝습니다.

항상’, 그분은 항상 존재하시며, 그분은 항상이십니다.

 

저는 이 영문 이름이

히브리어야훼와 아주 가깝다고 생각합니다.

 

다른 말로 하면 성경은 한 번도

하나님의 존재성에 대해 증명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은 시간만 낭비할 뿐입니다.

이는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며, 언제나 그곳에 계셨고

이것은 우리가 인정하는 바입니다.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증명하고자 하는 것은

시간 낭비에 불과합니다.

 

하나님은 그곳에 계셨으며 아무런 해명이 필요 없으며

해명이 필요한 것은 다른 각양 사물의 존재뿐입니다.

 

이는 현대인의 생각과 완전히 다릅니다.

그들은 다른 사물들은 처음부터 존재한 것으로 여기고

하나님의 존재만은 증명이 필요하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성경은 하나님은 처음부터 존재하시는 분이고

다른 사물들은 그 존재성에 대해 증명이 필요하다고 말합니다.

 

창세기는 바로 이런 각도에서

이런 질문들에 답을 주고 있습니다.

 

모세시대에 이르러 모든 사람들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알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애굽에서 구해 냈고, 홍해를 가르셨으며,

그분은 애굽의 군대를 매몰시켰으므로

그들은 하나님이 참으로 존재하심을 알았습니다.

 

만약 당신이 이런 기적을 경험한다면

더 이상 하나님의 존재에 대해 증명할 필요가 없습니다.

 

그러나 현대인에게는 증명이 필요합니다.

이는 이런 기적들을 경험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증명을 요구합니다.

 

히브리서 11장에서 하나님의 창조에 대해

두 가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는 우리는 믿음으로 우주만물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지어졌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눈에 보이는 우주만물은 보이는 나타난 것으로

말미암아 된 것이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 다음 몇 절이 지난 후 말씀하시기를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하나님이 계신 것과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심을

믿어야 할지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은 성경은 하나님의 존재를 인정하고 그분을 찾고 ,

그분을 알고, 그분을 사랑하고 섬기고

그 다음 결과를 기다리라고 합니다.

 

그러나 처음부터 먼저 하나님이 태초부터

이미 계셨음을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의 주제는 창조주이지 피조물이 아닙니다.

이는 우리가 우선 범하는 실수입니다.

 

중점이 이 세계가 어떻게 지음 받았느냐에 있지 않고

주가 이 세계를 지었느냐에 있습니다.

 

31절로 되어있는 1장 속에 하나님이라는

단어가 35번이나 등장합니다.

 

이는 처음부터 하나님, 하나님, 하나님

주역은 하나님이라는 것입니다.

 

핵심이 창조의 이야기에 있지 않고

창조주에 대한 이야기에 있습니다.

 

◑만약 창세기 1장을 보며 하나님의 특징들에 대해

언급하라면 이에 대한 답은 아주 많습니다.

 

제가 여기에 목록을 작성해 보았습니다.

 

창세기 1하나님

하나님: 1) 위격 (감정, 이성, 의지)

2) 큰 능력 (우주가 그분의 십계명에 복종함)

3) 피조물이 아님 (이미 있었고 영원이 존재함)

4) 창조력(상상력 풍부, 처변만화)

5) 질서 있음 (수학의 논리에 적합함)

6) 홀수 (동사)

7) 복수 (명사)

8) 아름답고 선하시다. (좋으신 하나님, 좋은 일)

9) 인애하시다.(피조물에게 복 주심)

10) 영원하시다.(지속적으로 일하심)

11) 지속적으로 말씀하심 (서로 교제함)

12) 사람과 같은 면 (하나님의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

13) 사람과 다른 면 (사람은 창조할 수 없다.)

 

첫째. 하나님은 사람의 특질을 가지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그분은 마음으로 느끼고 머리로 생각하고

마음의 뜻을 드러내고 하나님은 의지가 있으며

그분은 결정도 내리고, 일단 결정하면 행동하십니다.

 

이는 다 사람에게 있는 특질입니다.

하나님은 미생물이 아닌 생명의 개체입니다.

 

그분은 사람의 특질을 가지고 있으며 우리와 같습니다.

감각이 있고 생각과 동기도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은 능력이 넘치는 분이십니다.

저에게 이 세상을 떠난 딸의 어릴 적 일입니다.

 

한번은 내가 아동 성경 속의 창세기를 그에게 읽어주었습니다.

그는 잠잠히 듣고 이렇게 말했습니다.

(말씀하시니 다 이루었습니다.)

이는 그가 듣고 난 후의 결론이었습니다.

아주 멋진 결론이지요.

 

이는 얼마나 큰 권능과 능력이신가요.

말씀이 떨어지자 이루어지니...

오직 제일 높은 위치에 계신 그분만이 이런

능력이 있는 것입니다.

 

십계명이 모든 명령은

사실 모두 창세기 1장에 있습니다.

 

이 사실을 알고 계십니까?

함께 헤아려 보면 알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십계명을 우선 우주에 주었습니다.

그 후 우리에게 주었습니다.

 

그분은 언제나 계셨으며 영원히 존재하시는

분이십니다.

 

당신이 만일 이 세상에 6천여 종의 풍뎅이가 있는

줄 안다면 하나님의 창의력에 대해 알 것입니다.

 

그분은 진실로 위대한 예술가입니다.

상상력이 충만합니다.

 

그 창조에는 똑같이 생긴 풀이 없으며

똑같이 생긴 눈꽃이 없으며 똑같이 생긴 모래가 없습니다.

얼마나 상상력과 창의력이 넘칩니까?

 

우리는 똑같은 풍뎅이차를 7백만 대를 만들어 낼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창의력이 넘치고 상상력이 풍부하여

한사람도 그 모양이 똑같은 적이 없습니다.

다소 다르게 창조했다는 것입니다.

 

그분은 질사의 하나님이십니다.

우주는 조화를 이루어 수학적 논리에 부합됩니다.

한 유대인은 발견하기를 e= MC 평방,

이 공식은 온 우주에 적용이 됩니다.

수학의 각도에서 보면 우주는 아주 질서 적입니다.

 

하나님은 단수로 존재합니다.

이는 그 뒤에 나오는 동사들을 보면 모두가 단수입니다.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여기서 창조는 단수 동사입니다.

 

또한 그분은 복수로 존재합니다.

이는 하나님이라는 단어는 단수가 아닌 복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간단한 복수가 아닙니다.

 

여기서 세 가지 단어 중 ‘Allaha’ 는 한분의 하나님

‘Allahaim’ 은 둘을 가리키며

그러나 ‘Allohem’은 셋 이상을 가리킵니다.

창세기 1장에는 셋 이상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태초에 하나님이 천지 창조는 세분의 하나님을 드러내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한분이십니다.

 

참으로 놀라운 일이 아닙니까?

성경의 첫 시작부터 그분은 심위일체 하나님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그 다음 모든 성경은 삼위일체 하나님을

해석하고 있습니다.

 

창세기 1장은 세분의 하나님으로부터 시작되지만

동사는 단수입니다.

 

뿐만 아니라 창세기 1장은 하나님을

좋으신 분으로 소개합니다.

 

일반적으로 저는 강의 6개월 전에 주제를 장합니다.

더 일찍 정할 수는 없습니다.

 

그러므로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장했습니다.

이는 전하는 메시지가 주제를 떠나지 않기 때문입니다.

 

벌써 두 번이나 나의 못생긴 얼굴이 포스터에 올랐습니다.

거기에는 그 분은 좋으신 하나님이라고 적혀있었습니다.

이로 인해 집회는 사람들로 가득 찼습니다.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분이 지으신 모든 것이 좋은 것입니다.

 

이는 그분이 좋으시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창세기의 메시지입니다.

 

그러나 오해하지 말아야 할 것은

죄악은 하나님이 창조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분은 인자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은 창조한 사람들에게 복주시기를 원하십니다.

 

그분은 살아계신 하나님입니다.

 

지속적으로 세상 속에서 긍정적으로 행동하시는 분이십니다.

끊임없이 세상을 향하여 말씀하시며 끊임없이

세상 속에서 일하십니다.

 

그분은 말씀하시는 하나님이시며 우리와 대화하는 것을 즐겨하십니다.

그분은 그분의 형상대로 우리를 지었으므로

우리와 같은 부분이 많습니다.

 

또한 그분은 우리와 다릅니다.

이는 우리에게는 창조의 능력이 없습니다.

 

사람은 무에서 유를 만들어 낼 수 없습니다.

다만 있는 자원에서 재창조 할 수는 있습니다.

 

또한 우리는 한마디 말로 무엇을 이룰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이면에서 그분은 우리와 다릅니다.

 

여러분, 마지막으로 한마디 하고 싶은 말은

하나님은 처음부터 자신을 피조물과

동등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피조물을 경배하는 것은 우상숭배입니다.

창조주를 경배하는 것이 진리에 부합됩니다.

 

다음시간에는 여러분들과 창세기 1장 시작부분의 의미를 나누겠습니다.

 

 

 

 

성경은 처음부터 창조주와 피조물을 분명하게 분별해 놓았습니다.

우리는 이 부분을 혼잡케 해서는 안 됩니다.

 

뉴에이지 관점들은 흔히 이 두 가지를 동일시합니다.

창조주는 피조물과 동등 할 수 없습니다.

 

그분은 창조한 만물을 떠나서 하루 휴식할 수 있습니다.

창조주와 피조물을 동일시해서는 안 됩니다.

    

 

 

 

 

<중국어 - 한글 자막>  

 

 

 

 

 

 

 

 

<영어 - 중국어 자막>                                   

 

작업 예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