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를 이기는 은혜 롬 6: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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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죄를 이기기 위해서 중요한 믿음
여러분 질문해 보겠습니다.
죄가 클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클까요?
죄가 강할까요? 하나님의 은혜가 더 강할까요?
(죄가 더 강할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의 은혜가 끄는 힘이 더 강합니다.
그 사실을 깨닫고, 그 은혜를 늘 사모하고, 추구해야 하는 것이.. 이 설교의 주제입니다.)
답은 다 알아요. 그런데, 실제 여러분의 믿음과 아는 것은 다를 수가 있어요.
롬5:20 “율법이 들어온 것은 범죄를 더하게 하려 함이라. 그러나 죄가 더 한곳에 은혜가 더욱 넘쳤나니”
롬6:14 “죄가 너희를 주장하지 못 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안에 있지 아니하고 은혜아래에 있씀이라”
롬8장1~2 “그러므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할렐루야
성경은 우리에게 명확하게 말씀하십니다. 죄보다 은혜가 더 크다.
죄가 더 역사하지만, 하나님에 은혜는 그것보다 더 역사한다.. 이것이 로마서 5:20절의 선포이구요.
“죄가 너희를 주장 하지 못하리니” 너희가 혹시 죄에 넘어졌어도
“그 죄가 너희의 주인노릇 하지 못하리니, 이는 너희가 법/율법아래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더 큰 은혜 아래 있기 때문이라”
이렇게 언제나 은혜가 더 크다는 거예요. 롬6:14
롬8:1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에 법에서 너를 해방시켰다”
이것이 진리의 결론인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가 죄를 이기기 위해서는요.
여러분의 감정, 여러분의 실패에, 경험에 의거해서는 죄를 못 이깁니다.
▲이것은 믿음의 싸움입니다.
우리가 경험적으로는 결국 실패해요. 내가 죄랑 싸워봤을 때, 죄에 진 경험들이 너무나도 많아요.
그래서 우리는 경험적으로 어떠한 믿음을 가지고 있는가 하면
'나는 죄를 못 이겨' 그런 생각들을 가지고 있어요.
'나는 어떻게 할 수가 없는 자야. 다들 그렇게 사는 거지'
이러한 진짜 진리가 아닌, 나의 경험위에 기초해서
죄만 오면 그냥 마음은 이겨야 되는데, 몸은 그냥 그렇게 가는 (굴복하는) 이러한 일들이
우리에게 너무나도 많이 벌어지고 있어요.
우리가 가져야 될 중요한 믿음이 있습니다.
우리는 죄를 정복하고 다스릴 수 있는 권능을 이미 받았습니다. 그게 진리의 결론이예요.
여러분의 삶에 어떠한 죄의 공격이 온다 할지라도
여러분의 삶에 세상 환란이 몰려온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그 세상권세와 죄의 권세를 이기셨습니다.
그 십자가의 권세가 결코 작지 않습니다. 세상 어떠한 것보다도 십자가의 능력은 더 커요.
이 믿음이, 제가 죄를 이기게 하는 큰 발판이 되었어요.
저도 부지기수로 실패를 했고, 지금도 역시 넘어지고 있고, 앞으로도 저는 많이 넘어질 거예요.
하지만 제게 다른 점이 하나있습니다.
저는 그렇게 넘어졌다가 일어날 때, 그냥 벌떡 일어납니다. 왠지 알아요?
그 전에는 거기에 눌려 하고, 힘들어 하고, '못 이기겠구나..' 했는데
지금은 제가 탁 뽑는 칼이 있어요.
"하나님 죄가 더하는 곳에 은혜가 더합니다."
그리고 그냥 담대하게 은혜의 법아래 들어가서, 십자가 앞에 들어가서 훌훌 털어 버려요.
◑제가 로렌스 형제의 책에서 발췌한 내용들을 읽어 볼게요.
"혹 은혜롭지 못한 생각이 일어나거나, 어떠한 유혹 같은 것이 생겨날 때
그는 결코 두려워하거나, 어쩔 줄 몰라 하지 않았다.
차분히 기다렸다가, 적시에 부르짖을 수 있도록 도우시는 하나님의 신실하심을 누차 경험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니까 어떤 죄가 밀려오고 실패했을 때, 그는 당황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 때 주님을 바라보면서, "하나님 하나님"하면
어느 순간에 '때를 따라 돕는 하나님의 은혜'가 갑자기 임하여
그때 "주여!" 하고 나아가면
죄를 탁 박차고 일어나는 경험을 수차례 했기 때문에
그는 당황하지 않고, 그렇게 어려운 상황이 오면, 주님을 기다렸다는 거예요.
또 하나 "혹시 그가 죄에 넘어 질 때면, 그는 절대 놀라지 않았다."
그는 언제나 이렇게 고백했데요.
"그러면 그렇지, 이게 나인걸! 내가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이 죄짓는 일이지"
어! 이게 무슨 말 이예요?
이것이 자신에 그냥 정직한 모습이라고 고백을 해요.
그리고 그는 하나님께 애걸하거나 변명하는 일 없이
단순하게 자신의 죄를 그분께 자백했데요.
그러고 나서 다시 평화롭게 하나님께 나아갈 수 있었답니다.
이렇게 고백 했답니다.
"주님 저는 당신 없이는 이보다 결코 더 나아질 수 없습니다.
주님 저를 넘어지지 않게 은혜로 지켜주시고, 제가 행한 죄로부터 돌이켜 주십시오."
그리고는 더 이상 그 죄로 인하여 죄책감을 느끼지 않고, 다시 하나님의 은혜를 붙잡고 쭉 나갔다는 거예요.
▲너무 쉬운 게 아닌가요?
목사님은 매일 애통해 하라고 하는 데.. 너무 쉬운 거 아닌가요?
물론 애통도 필요해요. 그러나 애통으로 끝나지 말고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그 풍성한 은혜를, 믿음으로 탁 붙잡을 때
그 주님의 생명의 역사가, 우리를 쉽게 죄에서 건져 낸다는 거예요.
이런 믿음을, 우리는 너무나 중요하게 갔고 있어야 해요.
저는 이 믿음 때문에, 정말 죄를, 로렌스 형제처럼, 쉽게 이겨요.
어느 때 제 안에 악한 생각들이 밀려오고 막 그럴 때, 저는 이렇게 고백합니다.
"오 주님, 이 죄가 나를 다스릴 수 없습니다. 나는 법아래 있지 않고, 하나님에 은혜아래 있는 자입니다."
할렐루야!
이러고 나면, 진짜 그 순간에, 진리가 더 큰 권위거든요. 툭 풀어지면서 쉽게 나와요.
그리고 내안에 뭔가 묻었던 것들이, 보혈 앞에 더 자백하면서 씻어내지만
그것은 실패의 자백이 아니라,
이미 벗어났지만, 내 맘에 뭍은 것을 씻어내는 작업들을 가지면서
하나님의 화평한 관계를 계속해서 유지 하고 있어요.
◑적용/ 태도와 자세를 점검합시다.
▲여러분도 진리 안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축복합니다.
오늘 하루 살아가면서 많은 유혹들이 밀려올 거예요.
그러나 그럴 때마다 주님에 은혜를 힘입어서 박차고 나가시라니까요.
지금 여러분을 묶고 있는 것이 있나요?
그것이 몇 달 됐나요. 몇 주 됐나요? 오늘 풀어질 수 있어요.
진리만, 믿음으로 뽑아내신다면, 그것으로 믿고 선포하시고 나가신다면
지금 여러분은 자유롭게 되실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고자 하는 평강과 기쁨을, 오늘 누리고
성령 충만한 열매 맺는 그 풍성한 생명의 삶을, 여러분은 오늘 누리며 살 수 있을 것입니다.
보라 지금이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이 구원의 때이고 지금이 회복의 날인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마지막 때에, 여전히 죄에 눌려서 실패하는 그러한 자들을 부른 것이 아니라
주님이 그 은혜의 능력으로 날마다 풍성함을 누려서
이 세상에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는, 하나님의 참 백성을 일으켜 세우기를 원하십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또 하나 가져야 되는 마음의 태도가 있는데요.
롬6:1~4절 말씀을 함께 읽겠습니다.
“그런즉 우리가 무슨 말을 하리요 은혜를 더하게 하려고 죄에 거하겠느냐
2 그럴 수 없느니라. 죄에 대하여 죽은 우리가, 어찌 그 가운데 더 살리요
3 무릇 그리스도 예수와 합하여 세례를 받은 우리는,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은 줄을 알지 못하느냐
4 그러므로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합하여 세례를 받음으로 그와 함께 장사 되었나니
이는 아버지의 영광으로 말미암아 그리스도를 죽은 자 가운데서 살리심과 같이
우리로 또한 새 생명 가운데서 행하게 하려 함이라”
여러분, 그리스도인들이 중요하게 가져야 될 마음의 태도가 무엇인가 하면
"나는 더 이상 죄가운데 사는 자가 아니라"고 하는 정체성입니다.
이게 왜 중요한가 하면, 제가 가만히 보니까, 신혼생활은 태도가 중요하더라고요. (중략)
물론 그 말을 다른 말로 표현하자면 믿음이 중요한 건데
너무 여러분들이 종교적으로 이렇게 많이 생각이 물들어서, 오히려 분별이 안 가요.
즉, '어떻게 내가 그렇게 철저하게 살아
저기 뭐 내가 알고 있는 김장로, 내가 알고 있는 누구도 보니까, 다 그냥 적당히 살던데 뭐!'
'너무 그렇게 과하게 신앙생활하면 안 돼!
적절하게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 없이, 적당히 세상에 한발.. 이렇게 해야지
너무 그렇게 치우치게, 그렇게 말씀대로만 살면 안 된다고!'
이렇게 (적당주의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아요.
여러분 치우치는 게, 그게 치우치는 것이 아니에요.
가만히 신앙생활이 이렇게 굉장히 변화되고 성장하는 분들의 특징이 무엇이냐면요.
태도가 달라요. 그러니까 딱 주님 만났을 때
오늘 이 사도바울의 고백을 보면, 진짜 예수님 만났을 때
'나는 주님과 함께 죽었고, 더 이상 나는 죄에게 종노릇 하는 자가 아니고
나는 이제 주님과 함께 죽고 살아서, 내안에 그리스도만 사시는 자다'라고 하는 중심의 태도가
사도바울의 태도였거든요.
그 중심의 단호한 태도 때문에, 사도바울의 삶에 성령에 권능이 나타나는 거예요.
많은 분들이 예수님을 믿지만, 이러한 바울적인 태도를 갔지 않으니까
그 허용된 틈을 통해서,
분명히 우리는 존재론적으로 죄를 다스리는 자고, 죄를 이기는 자임에도 불구하고
이 태도가 허용되니까, 사탄의 죄가 밀려들어와서 우리를 점령하는 거예요.
이것이 아이러니입니다.
성경에는 그런 아이러니가 많아요.
보세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에서 부르실 때
'가나안 주겠다. 너희에게 주겠다. 너희가 밟는 땅은 모두 너희 것이다.'
이게 하나님에 진리의 선포이고 또 그렇게 하시려고 했거든요.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을 보더니 너무 크니까
'우리는 못 들어가요. 우리는 그 앞에 메뚜기예요. 차라리 그냥 광야에서 죽이셔요.'
막 그렇게 진짜 재수없는 믿음을 가지니까
분명히 그들의 정체성은 가나안을 그 시절에 정복을 했어야 하는데
그들의 결과는, 말씀이 아닌, 본인의 생각대로 광야에서 죽어나자빠지는
그러한 말씀과는 다른 존재가 되어 버렸다는 거예요.
성경에 말씀하시는 것은, 그 배에서 생수에 강이 흘러나오고
목마르지 아니하는 샘물이 우리 안에서 터지고
죄를 정복하고, 성령 충만한 열매를 맺는 자가 되었다고 분명히 말씀을 하셨는데
우리는 죄에 실패하고, 기쁨도 없고, 우울하고 이렇게 살아가요.
왠지 아십니까? 태도가 문제인거예요.
정말 주님의 그 진리가 결론이고, 그 진리가 내 것이고,
'하나님, 나는 죄에게 종노릇하며 사는 자가 아니라
이제 그리스도와 함께 죽고 그리스도와 함께 사는 자가 되어서
내 안에 새 생명이 흘러넘치는 자입니다.'
그것을 처음부터 명확하게 인식하고 붙잡으면
그는 물론 싸움도 있고 어려움도 있지만
그가 추구하는 믿음대로, 그의 삶은 그렇게 변화 될 것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하나님에 말씀 앞에, 정확하게 우리을 생각을/ 태도를 정리 하셔야 되요.
가만히 보면 그 태도예요. (신혼생활도 마찬가지고요)
물론 목사님 안에 많은 싸움과 어려움이 있겠지만
처음부터 갖는 태도 예수 믿는 것은 자아가 죽은 것이고,
그리고 내안에 예수님이 사시는 것이니까, 24시간 주님과 동행하는 것이 결론이지
그리고 그 믿음대로 쭉 나가니까
하나님이 그렇게 살 수 있는 열매를 나타내셔요.
또 본인 안에서 뿐만 아니라, 많은 사람들에게 그러한 열매를 맺게 하시잖아요.
이것이 태도의 차이라는 거예요. 자세의 차이!
신앙생활을 일 년을 해도 진짜 십년 한 것처럼 성장하는 사람이 있고요.
신앙생활 삼십년 해도요. 일 년 한 것과 그냥 똑 같아요.
처음에 나올 때나 삼십년 지났을 때나 똑같아요.
가만히 보면 태도가 다르다니까요.
처음 주님 만날 때부터
'주님 나는 주와 함께 죽고, 십자가가 바로 나의 것이고,
이제 내 안에 예수그리스도가 사시는, 생명의 역사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진리를 붙잡고 죄와 싸우고 은혜를 누릴 때에
여러분 인생 안에, 하나님이 약속하신, 그 가나안땅 충만한 열매를 맺는 역사를
하나님이 이루어 주실 것입니다.
예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내 속에 있는 죄의 권세를 깨뜨리시고 나에게 자유를 주셨는데
하나님 내가 그 은총을 누리고 나도 죄를 이기는 자가 되겠나이다.
주님 지금 내 마음에 묶고 있는 것을, 은혜의 법으로 깨뜨리겠습니다. 십자가를 바라보고 나가겠습니다.
나는 주와 함께 죽었고, 내안에 예수의 생명이 살아 역사하십니다...
P.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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