www.youtube.com/watch?v=aPMU5l7XhRE&feature=youtu.be
만약 당신이 저처럼 탈출에 관한 책을 좋아한다면
아마 이 《출애굽기》를 아주 좋아하실 것입니다.
이것은 역사이래로 제일 크고 대규모인 탈출 사건이고
200만이 넘는 노예가, 그것도 방어가 아주 견고하고 튼튼한 나라에서
탈출한다는 것은 참말로 기적이지요. 사실 그것도 한 번이 아니라 일련의 계속되는 기적이지요.
여기서 우리는 참으로 놀라운 탈출 이야기를 보게 됩니다.
모세가 본 기적은, 아브라함, 이삭, 야곱이 본 기적을 합친 것보다 훨씬 더 많습니다.
이 기적은, 자기 백성을 위하여, 하나님의 초자연적인 개입이
하나의 끈처럼 계속 연결 지어져 일어난 기적들입니다.
여기 나오는 일부 기적은, 마치 마술 같지요.
예를 들면, 모세의 지팡이가 뱀으로 변했다가, 다시 지팡이로 변한 것입니다.
하지만 대다수의 기적은, 하나님이 자연계를 흔드신 기적들이지요.
사람의 상상이나 심리 작용으로 된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자신이 창조하신 대 자연을 통해 기적을 일으키셔서, 자기 백성들을 도와주셨습니다.
▶출애굽 사건은, 두 방면에서 중요한 의미를 가지고 있지요.
첫째, 이스라엘 나라적으로 볼 때, 아주 중요한 의미가 있는데,
바로 이스라엘 나라의 시작, 생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을 탈출하여 정치적인 자유를 얻었고
그때 당시 그들은 비록 땅은 없었지만, 주권을 가진 나라로 형성되었지요.
자기들만의 나라 이름이 생겼는데, 그것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
그 후로 이스라엘은 지금까지 매년마다 이 출애굽 사건을 경축하고 있지요.
그래서 매년 한 번 유월절을 경축하고 있습니다.
마치 미국이 독립기념일을 기념하듯이요.
(둘째) 하지만 한 나라의 의미 외에, 출애굽은 또 하나의 영적인 의미가 있지요.
그들은 출애굽하고 나서야, 자신들이 믿는 하나님이 우주 만물을 창조하신
‘창조주 하나님’이라는 것을 발견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대 자연을 이용하여, 기적적으로 그들을 도와 주신 것입니다.
그들은 결국 이 하나님이, 전 애굽의 모든 신들을 합친 것보다, 더욱 능력이 있다고 믿었지요.
심지어 그들의 하나님은, 온 우주에 유일하게 존재하는 하나님이라는 것을 믿었습니다.
이사야서에서 이 점에 끊임없이 강조하였지요. “나 외에 다른 신이 없느니라!”
하지만 이사야보다 앞서 이때 이스라엘 사람들은,
그들의 하나님은 어떤 다른 신보다 더욱 능력이 있고
그 분은 최고로 높으신 하나님이라는 사실을 발견하였습니다.
이런 의미를 가진 하나님이 이름이 있는데, 바로 ‘엘샤다이’입니다.
‘전능하신 하나님’이란 뜻입니다. God Almighty 창17:1, 28:3, 35:11등
▶그런데 《출애굽기》에서 하나님 진짜 이름을 알게 되었습니다. *출3:14 ‘스스로 있는 자’
하나님이 이스라엘 나라를 만드실 시점에 알려주신 이름입니다.
당신이 어떤 사람의 이름을 안다는 것은, 그 사람과의 관계가 더욱 친밀해지고,
개인적으로 아는 관계가 되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매 사람마다 이름표를 달고 있지요. *세미나 같은데 가면
“피터”하며, 서로 이름표를 보고 이름을 부르게 되면
서로의 거리를 더욱 가까이 하게 되지요.
성경에는 하나님을 지칭하는 많은 호칭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도 하나님의 ‘이름’을 들자면, 그것은 바로 “야웨”입니다.
제가 아직 유태인에게 이 단어(야웨)를 어떻게 발음하는지 듣지 못했기 때문에
저의 발음이 맞는지 모르겠습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이름을 절대 부르지 않습니다.
그들이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할까봐 두려워하기 때문이죠.
그래서 제가 ‘야웨’라고 발음한 것이, 정확하기를 제가 바랍니다. *아무도 정확한 발음을 모릅니다. 아예 발음을 안 하니까요
하지만 저는 야웨라는 이름을 들을 때, 어떠한 감동이나 불타는 듯한 마음이 오지 않아요.
이 단어가 참 신기해요. 영어에는 이런 글자가 없습니다.
그래서 한번은 제가 기도로 여쭈었어요. “주님, ‘야웨’라는 말의 의미를 잘 전달 할 뿐 아니라,
당신의 백성들이 들으면, 어떤 감동을 받을 만한 이름을 알려 주시옵소서”
이때 저의 마음에 즉시로, 단어 하나가 떠올랐어요. 바로 “always(항상, 영원히)”입니다.
저는 이 이름이 아주 아름답다고 느끼게 되었지요.
야웨는 히브리어 동사 ‘있다’의 분사형입니다. *‘있는, 존재하는’
그러므로 하나님을 ‘always(항상 계신)’ 이라고 부르는 것은,
‘야웨’라는 그 이름이 담고 있는 진정한 의미를, 잘 전달한다고 봅니다.
야웨가 바로 하나님의 대표 이름입니다.
그분은 또 많은 다른 이름을 가지고 있지요.
‘항상 계시는 제공자’, ‘항상 계시는 도움’, ‘항상 계시는 보호자’, ‘영원한 치료자’..
그후부터 저 파슨은, 계속 이 이름Always으로 하나님을 불렀지요.
하지만 히브리어로는 “야웨”라고 하지요.
이스라엘이 바로 이 출애굽 때, 하나님의 이름을 얻게 되었지요.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엘샤다이/전능하신 하나님”이라는 호칭을 주었을 뿐아니라 *창세기에서
이제는 자신의 이름까지 말씀해주었지요. *야웨
“나는 항상 너희와 함께 있고”, “나는 항상 여기에 있다” 그런 뜻입니다.
▶또 다른 각도에서 보면 《출애굽기》는 ‘만유의 창조주가 소수인의 구세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창조주”와 “구세주”라는 이중 신분이 있다는 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어떤 크리스천은 하나님은 다만 창조주로 생각하고, 그의 구속 능력만 생각하고,
또 어떤 크리스천은, 하나님을 구세주로만 보는 극단에 빠집니다.
하지만 이중 신분을 꼭 함께 보아야 합니다.
바로 온 우주의 창조주가, 한 무리의 노예들의 구세주가 되셨다는 것입니다.
《출애굽기》는 모세오경중의 한권의 책이지요.
이 5권의 책 중에 4권이 서로 비슷하고, 다른 1권은 완전히 다르지요.
그 다른 1권을 먼저 말씀드리면 《창세기》인데,
창세기만 모세 이전 시대의 일을 기록했기 때문이지요.
또 다른 4권의 책은, 모두 모세 시대에 발생한 것이기에
이 4권은 모세가 쓴 것이 분명합니다.
하지만 이 이스라엘 무리들은 애굽에서 400년동안 노예 생활하면서
자신들의 토지나 돈도 없었지요. 노예로서 어떠한 자신에 속한 물건이 없었다는 것이지요.
그 결과, 그들은 자신들의 뿌리(조상)를 구전으로 전해줄 수밖에 없었습니다.
알렉스 헤일리가 쓴 소설책 <뿌리>를 읽어 보셨는지요?
이 책에서 한사람의 조상을 이야기 하였는데, 그 조상이 아프리카에서 미국으로 노예로 팔려온 것이지요.
후에 그가 자기 뿌리를 거슬러 찾기 시작했고, 노예 되기 전의 근원을 찾기 시작했는데
마침내 아프리카에서 그 근원/뿌리를 찾았지요. 그 스토리가 사람더러 많은 감동을 주었지요.
모세도 이 이스라엘 노예 무리들을 위해, 반드시 지나간 역사를 써야 했습니다.
그래서 자기들의 조상이 누구인지를 알아야했고, 자신들이 어디로부터 이주해 왔는지.. 알아야 했습니다.
(그래서 창세기를 쓸 필요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모세는 사람들의 기억에 근거하여 두 가지 자료를 수집하였지요.
바로 그들의 가계 족보, 그리고 그들 조상의 이야기들이지요.
모세는 바로 이러한 자료에 근거하여 <창세기>를 쓴 것입니다.
▶하지만 《출애굽기》는 모세 자기 시대의 이야기로 시작합니다.
《출애굽기》, 《레위기》, 《민수기》 와 《신명기》의 내용은
당시 역사 속에 일어났던 이야기와,
하나님이 그들에게 어떻게 살아라고 말씀하신 율법이 뒤섞여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저는 여러분에게, 이 4권 책의 특색은
이야기narrative와 율법legislation이 뒤섞여 있다는 것을 알려주고 싶습니다.
《출애굽기》는 바로 이런 형식입니다.
전번부에는 역사를 이야기로 서술했고, 후반부에는 율법을 기록한 것입니다.
전반부에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기적을 행하셨고,
하나님께서 그들을 노예에서 탈출해내 구속한 것을 기록했지요. *1~18장
후반부에는, 하나님께서 그들더러 자유를 주신 후에
그들이 어떻게 인간답게 살 것인지에 대한 율법을 주셨지요. *19~40장
전반부에는, 하나님께서 곤경에 처해 있는 그들을 탈출하여 내시는
하나님의 구원의 ‘은혜’와 ‘은총’을 설명했고요,
후반부에는, 그들이 하나님의 은혜에 감사하리라 대기했고,
그래서 하나님의 분부(율법)대로 살기를 바랐지요.
◑구속이 먼저이고, 율법/언약은 나중입니다.
제가 이 점을 강조하는 것은, 많은 사람들이 모세 율법을 읽고
그들이 이러한 율법을 지켜서 하나님의 구원을 얻었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건 아닙니다.
그들이 먼저 하나님의 구원을 얻고 나서,
후에 이 율법을 잘 준수하여 감사를 표현하는 것인데, 이 순서가 매우 중요합니다.
(율법으로 구원받는 것은 아니지만, 구원 받은 백성은 율법을 지킵니다. 순서가 중요합니다.)
그들이 먼저 율법을 받은 것이 아니라,
먼저 구원을 받고, 그 후에 ‘어떻게 살 것인가’에 대한 율법을 받았습니다. *홍해가 먼저, 다음에 시내산
신약 성경도 마찬가지이지요.
하나님께서 먼저 우리를 구원하시고 후에,
우리더러 성결한 삶을 살라고 요구하시지요.
먼저 의롭게 살아서, 크리스천이 되는 것은 아닙니다.
먼저 은혜로 구속받고, 자유함 받은 후에, 의롭게/바르게 사는 것입니다.
그래서 출애굽기에, 먼저 자유를 얻었고, 다음에 율법이 주어졌습니다.
그들은 먼저 자유를 얻었고, 후에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이 자유를 남용/이용하지 말고, 대신에 잘 사용하라’고 분부하셨지요.
그래서 그들을 먼저 애굽에서 탈출해내시고
후에 시내산에서 하나님과 언약을 맺은 것입니다.
이 언약식은 마치 결혼식과 같았지요.
언약관계에서 하나님께서 ‘나는 이러하겠다’ 서약하셨고,
백성들도 반드시 ‘저희들도 이러하겠습니다’라고 서약했지요.
쌍방이 이렇게 결혼처럼 맺었는데, 이것은 결혼 관계와도 같은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신혼여행이지요.
혼인 생활은 반드시 하나님께서 선택하신 곳에서 해야 합니다.
그들이 노예 생활에서 탈출하여 구원을 받았는데
이는 그들더러 이젠 마음대로 하라는 것이 아니지요.
그들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광야로 갔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노예 생활에서 구출하여 낸 것은 (방종이 아니라)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였습니다. 이 점이 매우 중요합니다.
신약성경에서의 그리스도인도 마찬가지이지요.
우리가 구원을 받고 자유을 얻었는데, 이는 우리더러 마음대로 살라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만 섬기라는 것인데, 이것이야 말로 진정한 자유라는 것입니다.
▶여기서 제가 강조하는 한 가지 중요점은
먼저 구원을 얻고, 그 다음에 의로운 삶이 따라야 한다는 것입니다. *둘 다 필요합니다.
《출애굽기》가 그 점을 아주 명확하게 말하지요.
하나님께서 먼저 그들을 구원하고 나서 말하기를
‘내가 너희에게 자유를 베풀었기 때문에, 너희들은 의를 행하며 자유인으로 살라’고 하셨습니다.
◑출애굽기의 개요
출애굽기는 이렇게 크게는 전반부와 후반부,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지요.
그리고 더 세분하면 10단락으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저는 간단할수록, 잘 기억되기 때문입니다.
전반부 1~18장을 6개 단원으로, 그리고 후반부 19~40장까지 4개 단원으로 나누었습니다.
▶저는 <전반부의 6개 단원>의 소제목을 이렇게 붙였습니다. 출1~18장
1. “번성과 살해” 출1장
히브리 노예들이 생육하고 번성하여
400년 사이에, 한 가족에서 250만이라는 사람으로 번성하였지요.
이 속도가 사람을 매우 놀라게 하지요.
하지만 사실 한 세대에 아이 4명만 낳으면, 30세대 후에 이렇게 많은 사람으로 되지요.
당신이 스스로 계산해 보십시오.
그러니 사실 이러한 번식 속도가 아주 빠른 것은 아니지요.
그러나 그들의 인수가 확실히 많아진 것은 사실이지요.
하지만 후에 바로가 갓 태어난 남자 아이를 죽이기 시작했는데
이 사실에 대해 우리 뒤에서 다시 상세히 토론하도록 하겠습니다.
2. 두 번째 단원은 “갈대와 가시나무”입니다. 2~4장
모세가 갈대 상자에서 꺼내진 것을 모두 알고 있지요?
모세는, 히브리어 단어로 ‘건져내다’라는 뜻입니다.
왜냐하면 그가 나일강에서 끌어내었기 때문입니다.
당시에 남자 아이를 낳으면 모두 나일강에 던져, 악어에게 먹이로 주었지요.
하지만 모세는 이 나일강에서 건져내어 졌습니다.
3. 세 번째 단원은 “재앙과 온역”입니다. 5~11장
재앙이 바로의 마음을 더욱 강퍅케 하였지요.
4. 네 번째 단원은 “축제와 장자”입니다. 12~13장/유월절
우리가 뒤에 다시 상세히 다룰 것인데, 이는 유월절의 유래이지요.
5. 다섯 번째 단원은 “홍해의 구원과 덮음”입니다. 13~15장/홍해
그들이 홍해 건너는 이야기인데, 물이 그들을 덮은 것이 아니고
애굽 군대를 덮었다는 것이지요.
6. 여섯 번째 단원은 “공급과 보호”입니다. 15~18장/광야
그들이 애굽에서 시내산까지 가는 도중 하나님께서 어떻게 광야에서
그들을 보호하고 공급하였는가 입니다. *마라와 엘림 사건
그런데 ‘대 속죄일 전쟁’에서, *1973년 골란 고원에서 발생, 오일 쇼크 가져옴
애굽 군대가 광야에 들어가서 3일을 견디지 못하였습니다. *광야니까요
하지만 250만 이스라엘은, 광야에서의 40년을 버텨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기적을 수많은 행하셨기 때문이었지요.
▶<후반부 출19~40장의 개요>
1. 계명과 언약 19~24장/시내산
출애굽기의 후반부에서는 먼저 계명이 나오지요.
특히 십계명인데 이는 하나님께서 자기 백성들과 세운 ‘결혼 언약’이었지요.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이러하겠노라’고 언약하시니 I will
백성들이 대답하기를 ‘저희들도 이러하겠습니다’라고 약속하였지요. We will
쌍방이 서로 영원히 이 언약을 지키겠다는 약속이지요.
하나님은 절대로 언약을 무효화시키지 위반하지 않으십니다.
2. 장막 규례 25~31장
다음으로는 25~31장의 하나님께서 그들 중에 계시겠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그분이 처소가 필요했는데, 이는 바로 그 장막이었지요.
하지만 하나님의 장막은, 이스라엘 사람들이 사는 것과 다른 것이었지요.
이는 그들이 하나님의 장막을, 가볍게 보게 하지 않도록 하신 이유였지요.
그래서 이 단락에서, 장막/성막을 어떻게 지으라는 규칙이 세부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장인을 세워주셨지요.
그들은 원래는 벽돌 작업을 하던 사람들이라서 다른 일은 못했는데
이제 그들은 장인 중심으로 금, 은, 나무로 기구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친히 그들에게 이 기술을 가르쳐주었고,
성령께서 또한 각양 기술을, 원래는 벽돌 작업밖에 아무것도 할 줄 모르던 그들에게 가르쳐서
그들이 이 모든 것을 해 내었는데, 이것도 기적이지요.
3. 금송아지와 중보 32~34장
이 단락은 《출애굽기》중 제일 슬픈 이야기인데, 이는 금송아지 사건이었지요.
이스라엘이 이로 마음껏 향락하는데, 이때 모세는 그들을 위해 기도하지 않을 수 없었지요.
아니면 그들은 아마 모두 끝났을 겁니다.
4. 장막의 완성 35~40장 (성도의 구원의 완성)
《출애굽기》의 마지막에 장막 완성의 기록이 있어요.
하나님이 이렇게 주도하셨고,
하나님께서 이 완성된 장막을 거처 삼아 거하시고
하나님의 영광이 이 장막에 강림했습니다. *계시록의 마지막 장과 흡사하지요
▶히브리어로 이 성경책의 이름은 “그들의 이름은”이었습니다. (출1:1) 13:53~
이는 유대인이 매년 한 번씩 회당에 모여 이 책을 낭독했지요. 다른 《모세오경》도 모두 낭독된 것처럼요.
구약은 두루마리로 되어있어서, 읽으려면 감긴 두루마리를 펼쳐나가야 합니다.
이 책은 두루마리를 열면 처음 몇 글짜가 “그들의 이름은~”이라고 있지요.
(그래서 출애굽기의 히브리어 명칭은 ‘그들의 이름은’입니다.)
《모세오경》의 책명은 모두, 이렇게 책의 처음 몇 글자를, 그 책의 이름으로 불렀지요.
그래서 두루마리를 집어서 첫줄만 읽고는, 이 책이 무슨 책인지 구분해 내었지요.
하지만 구약성경을 그리스어로 번역할 때, *LXX, 70인역
비로소 구약의 각 권별로 이름을 만들었지요.
그때 이 책의 이름은 두 개의 그리스어로 구성되었는데,
헬라어 Ex는 ‘밖으로 나가다’를 가리키고, hodos는 ‘길’이지요.
(저는 잘 모르겠는데, 여기 근처 Hodoston라는 도로명이, 이 헬라어와 관계가 있지 않는지요..)
하지만 ex 와 hodos 두 개의 헬라어 단어가 합치니 “나가는 길”라는 뜻입니다.
그리스에 가면 예술극장 출입문 위에 (Exit은 라틴어고요)
그리스어로 Exhodos 라고 쓰여진 것을 보신 적이 있으실 겁니다.
그래서 이 책의 책명은 “출구, 엑소도스”라는 것입니다.
이 헬라어 단어를, 영어로 조금 수정하여 만든 것이 Exodus입니다.
하지만 이 책명 Exodus가, 헬라어로 ‘나가는 길’이란 것을, 이제 여러분은 아셨을 거고요,
영어로 “출구”를 exit 이라고 하는데, 발음이 비슷하네요.
◑출애굽기의 역사성 (진실인가, 거짓인가?)
이 단원에서 우리는《출애굽기》전반부를 논하겠는데 바로 1~18장까지입니다.
▶전반부에 소위 많은 문제(기적을 뜻함)가 나타납니다.
이 말은, 일상생활에서도 자주 나타나는 일은 아니라는 것이지요.
한 가지 또 한 가지의 (10재앙) 기이한 일이 발생하는 것을 보고
당신은 이렇게 생각하겠지요. 이 일이 다 진짜일까?
많은 사람들은 이 이야기가 진짜가 아니고, 모두 전설이나 신화라고 합니다.
얼마 전에 어떤 TV 시리즈 프로에서 이런 말을 하였어요.
이스라엘의 초기 (출애굽기) 역사 모두는 전설이라는 것입니다.
이러한 기록이 대체 신화일까 아니면 기적일까요? 왜 이러한 의심들이 생길까요?
1) 그 첫째 원인은, 이러한 사건이, 성경 외의 다른 세속 역사책에 어떤 기록이 없다는 것이지요.
성경 외에는, 예컨대 애굽의 문헌 중에는, 이런 사건을 전혀 기록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이는 당연히 이상한 일이지요. 애굽은 역사 자료를 아주 완전하게 유지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니 어떤 사람들이 ‘이 이야기 모두는 전설임에 틀림 없어!’라는 것입니다.
저는 왜 애굽 역사 자료에 이러한 일들이 기록이 되지 않았는지, 흥미롭게 상상됩니다.
당신도 이미 추측했으리라고 봅니다.
그들은 후대에게, 자신들의 이런 망신을 알게 하기를 원하지 않았던 것이겠지요.
자기들의 제일 뛰어난 전차와 군대가, 의외로 홍해에 몰살되었다니, 누가 이러한 망신을 좋아하겠어요?
그래서 어떠한 애굽 문서에도 이 방면의 기록이 없는데, 저는 아무런 상관이 없다고 봅니다.
2) 두 번째로 (전설이라는) 이유는, 인수가 너무 방대하다는 것이지요.
총250만, 인수가 매우 방대한 것이지요.
만약 5명씩 일렬횡대로 서서 앞으로 행진한다면, 전체 대열의 길이가 110마일입니다.
이렇게 홍해를 건넌다면, 아마 몇 개월이라는 시간이 걸려야 마지막 대열까지 건넜을 것입니다.
인수가 매우 방대하지요. 남녀노소 총 250만 명인데, 거기에 가축까지 있었던 것이지요.
더욱 재미있는 것은 성경에 말하기를, 일부 애굽 사람들도 그들과 함께 갔다는 것입니다. 출12:38
이 많은 사람들이, 물과 음식이 없는 광야에서, 40년이나 표류하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이런 방대한 사람의 숫자가 살아남았다는 것이,
출애굽기의 진실성을 의심하는 한 이유가 되지요.
3) 세 번째 이유는, 연대입니다.
성경외의 어떤 문서에도, 이에 대해 기록이 없기 때문이지요.
우리는 출애굽기가 기록된 당시가, 애굽의 어느 파라오의 통치 시대인지 정확히 모릅니다.
그래서 또 당시가, 몇 세기인지도 모릅니다.
학자들은 두 가지 년대의 가능성이 있다고 보지요.
하나는 BC15세기이고, 다른 하나는 BC13세기로 봅니다.
만약 BC15세기라면 당시의 바로는 투트모세일 것이고,
만약 BC13세기라면, 저는 이 시기를 믿어요.
모든 증거가 BC13세기를 가리키기 때문이죠. 그렇다면 당시의 바로는 이 바로일것입니다.
여기에 사진 한 장 있습니다. 한번 보십시오. 매우 강렬한 인상을 풍기네요!
그는, 하나로는 부족할 것 같아서, 심지어 자기를 위해 4개의 조각상을 만들었는데,
이것이 람세스 2세 조각상입니다.
여러분이 이 조각 밑에 있는 두 사람을 비교해서 보면
이 조각상이 얼마나 높은지를 짐작하실 것입니다.
그가 바로 이스라엘을 반대했던 인물입니다.
우리는 알기를, 바로(람세스 2세)는, 마치 어떤 일개 건달처럼 생각하는데,
사실 그는 아주 큰 권세를 잡은 황제이지요.
당시 그는 근동에서 제일 강한 군사력을 가지고 있었습니다.
그는, 그 견고하고 딱딱한 산에 깎아서 4개의 거대한 조각을 만들라고 명령할 정도로
그는 강력한 왕이었습니다. 그냥 평범한 인물이 아니지요.
하지만 하나님 눈에는, 그도 남보다 별 다를 게 없는 사람이고,
하나님이 아주 쉽게 그를 처리하시는 것이지요.
《출애굽기》의 바로는 바로 조각상과 같은 그러한 강력한 인물이었습니다.
▶다음은 출애굽의 경로에 대한 서로 다른 의견이 있지요. 3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하지만 오늘날 우리는, 당시 그들이 어느 선로로 갔는지, 확실하게 모릅니다.
총 3가지 가능성인데, 바로 북쪽 길, 중간 길, 남쪽길이지요.
우리 함께 이 3가지 루트/경로를 살펴봅시다. (출애굽기 2부에서 살핍니다.)
▶학자들은 이《출애굽기》가 도대체 진짜인지/아니면 소설인지,
아니면 faction(fact+fiction)처럼 절반은 진짜, 절반은 소설인지 의심합니다.
오늘날 우리는 TV에서 역사 다큐를 많이 보는데,
요즘은 대부분 faction(실화소설)이 유행입니다. 절반 진짜, 절반 소설을 섞는 기법이죠.
(그럼 출애굽기도 faction일까요? 물론 아닙니다.)
그렇게 의심하는 것은, 믿음이 없기 때문이며,
저의 믿음은 제게 《출애굽기》가 팩트/사실임을 알려줍니다.
믿음이, 이 책의 내용이 사실임을, 제일 합리적으로 설명해 줍니다.
그리고 보십시오.
무엇보다 첫 번째 팩트는,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고대에 존재했다는 것입니다.
여러분도 알다시피, 오늘날도 이스라엘이라는 나라가 확실히 있지 않습니까.
하지만 그들은 어디서 왔을까요? 그들 나라는 또 어떻게 시작된 것일까요?
당시 어떻게 해서, 노예들의 무리가, 하나의 나라가 된 것일까요?
성경 바깥의 세속 역사 자료에 의하면, 그들은 원래는 확실히 노예 무리였다는 것입니다.
그 노예들이 이스라엘 나라를 이룬 것은, 출애굽기 같은 드라마틱한 뭔가가 있었다는 것이고,
아니면 다른 설명을 해 보십시오.
▶또 다른 한 가지 팩트는, 현재 유태인 모든 가족들은 매년마다 유월절을 경축합니다.
유월절은 유태인들의 중요한 경축일이지요. 유태인들이 왜 이 절기를 경축할까요?
이러한 관습을, 그들은 몇 천년동안이나 유지해 왔는데
우리는 추측하기를, 여기에는 반드시 그 어떤 원인이 있을 것입니다.
이 《출애굽기》는, 이에 제일 합당한 설명을 제공해 줍니다.
(좋습니다. 우리 계속해서 보십시다.)
오늘날 우리가 사는 시대에서, 출애굽기가 팩트임을
여러분이 받아들일 수 있는 증거와 설명들이 계속 나타나고 있습니다.
저는 개인적으로 이 《출애굽기》 자체가,
이 모든 것이 사실임에 대한 제일 좋은 설명을 제공해 줍니다. *믿음으로 사실임을 믿습니다.
<좋습니다. 계속해서 이 책의 각 단원의 중점을 보십시다.>
전체 내용을 주석해서 설명 드리지는 못할 것 같습니다.
다만, 각 단원에서, 여러분이 의문 가는 점들을 지적해서
그 해답을 설명해 보겠습니다.
◑1. 우선 “번식과 살해” 단원을 보십시다. (출1장)
제가 묻고 싶은 것은 ‘그들이 왜 애굽에서 그렇게 오랫동안 4백년이나 머물렀을까요?’
기억나십니까? 그들이 요셉과 야곱 때에 애굽으로 내려 왔지요.
당시 이스라엘에 기근이 들어서 양식이 없었는데, 애굽에는 양식이 있었지요.
그들이 애굽으로 간것은 애굽에는 양식이 있기 때문이었지요.
그들은 자원해서 갔어요. 애굽 정부도 그들이 손님처럼 머무는 것을 받아 들였지요.
뿐만 아니라 그들에게 나일강 삼각주 위의 고센이라는 비옥한 땅까지 주었지요.
그들은 거기서 7년이라는 흉년을 지냈어요.
하지만 흉년이 끝난 이후, 그들은 왜 고향으로 돌아가지 않았을까요?
왜 애굽에 계속 머물렀을까요?
그들이 너무 오래 머물러서 나중에 환영 받지 못하게 되었지요.
이때부터 그들은 강제적으로 노예가 된 것입니다.
그렇게 되도록 왜 그들은 오래 머물렀을까요?
이는 사람의 시각과 하나님의 시각으로 대답해야 합니다.
제가 두 가지 답을 다 말씀드리지요.
왜냐면 모든 문제에는 다 양면성이 있기 때문입니다.
먼저 인간의 각도에서 보면, 당시 그들이 나일강 삼각주에서 살았는데
전에 유대 땅 산지에서 살 때보다 더욱 쉬웠고, 또한 그 삶이 너무 편안해졌던 것입니다.
나일강 삼각주는 전에 유대땅과 다르게 땅도 비옥하고 기후도 따뜻하며 눈도 내리지 않아서
당시 삶이 너무 편안한 거였지요.
마치 롯이, 당시 요단 계곡의 소돔과 고모라와 같이 편안했다는 것입니다.
소돔의 당시 기후가, 나일강 삼각주와 비슷하게, 살기에 안락했다는 것입니다.
사람은 모두 기후가 좋은 곳에서, 편안하게 살기를 좋아하지요.
그래서 거기에 계속 머물게 된 것입니다.
비록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주시고자고 약속한 땅은, 애굽이 아닌 가나안 산지였는데
그러나 그들은 애굽에 머물게 되었지요.
하지만 우리는 그들을 나무라면 안 되지요. 사실 우리도 그들과 마찬가지이기 때문이지요.
그들은 거기서 떠나기 싫어했고, 나중에 떠나자니 때는 이미 늦은 거였지요.
현재 많은 크리스천들이 먼저 자기 살 거처를 먼저 정하고 나서야, 근처의 교회를 찾거나
혹은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겠는지를 먼저 구하지 않고,
먼저는 자기가 살기 좋아하는 집을 찾고 나서야, 그 근처에서 하나님을 섬길 것을 고려하는 것을 보십시오.
(우리도 똑같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이 이렇게 했던 것이지요. 애굽에 오래동안 머물고 나서 나중에 떠나가고자 하니,
때는 이미 늦었고, 가고 싶어도 못가는 신세 되었던 것이지요.
후에 그들은 강제적으로 노예로 변했지요. 이는 인간적 시각에서 본 답입니다.
이때 그들은 하나님께 구했지요. 하나님께 부르짖기를 ‘왜 우리를 애굽에서 노예로 살게 하셨습니까?’
여러분 우리도 똑같습니다. 항상 자기 잘못으로 문제에 빠지게 되지만,
결국은 하나님이 왜 빨리 자기를 도우지 않았느냐고, 하나님을 원망하지요.
인간은 모두 이런가 봅니다. 하지만 그 400년 동안 하나님은 한 번도
그 문제에 개입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는 왜냐고 묻겠지요?
(이제는 하나님의 시각으로, 그들이 왜 애굽에 오래 머물렀는지 살펴봅시다.)
만약 당시 흉년이 끝나자, 그들이 이스라엘로 즉시 돌아갔다면
인수가 이렇게 많아지지 않았을 것이고, 또한 가나안 땅에
그들이 머물 만한 조그만 땅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애굽에서 오래 머무는 동안, 인수도 방대하게 변했고
가나안의 옛 땅도 이제는 그들이 가서 머물기에는 작았는데,
이는 그 곳에는 이미 다른 사람들이 살고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그 곳에 이미 살고 있는 사람을 쫓아내고, 그 땅을 주시려고 하셨지요.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악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렸는데
이는 그들이 다시는 거기서 살 자격이 없게 만들었던 것이지요.
하나님이 《창세기》에서 이미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셨어요.
‘너의 후손들이 애굽에 오래동안 머물 것인데,
이는 가나안에 사는 사람들의 악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려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그들을 쫓아내고 그 땅을 비게 해서, 이스라엘을 들여보내실 때까지
기다리셔야 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가나안에 이미 살고 있는 민족이 악이 가득 찰 때까지 기다리셨고,
그래야 하나님의 공의와 심판이 공평하기 때문이었지요.
그러고 나서 그들을 약속의 땅에서 쫓아내고, 모든 히브리 노예를 데려와서
그 곳에 돌아와서 거주하게 했던 것입니다.
(이것이 그들이 애굽에 오래 머물렀던 이유에 대한, 하나님의 시각에서 본 대답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400년이란 시간을 기다린 것은, 합당한 시기까지 반드시 기다려야 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400년을 기다려서 그 압제자(애굽)들을 치우셨는데, 참으로 긴 세월이었지요.
대대로 끊임없이 하나님께 구하면서, 장래 어느 날인가 하나님께서
우리를 이곳에서 데려 나갈 것이다 라는 것이지요.
얼마나 큰 인내가 있었기에 400년 동안 이런 기도를 계속 했을까요!
하지만 하나님은 그 기도를 계속 듣고 있었지요.
어느 날 하나님이 정하신 때가 되니, 그분이 행동하기 시작했던 것이지요.
당시 애굽은 3가지 법령으로 제정해서 이스라엘을 압박했지요.
첫째는, 그들을 억압으로 힘든 노동을 시켰고,
둘째는, 그들더러 볏짚도 주지 않으면서 벽돌을 만들어라 하지요.
이는 무슨 뜻일까요?
두 가지 벽돌로 비교해서 들어서 무게를 비교해 보면 이렇습니다.
하나는 짚이 섞인 벽돌이고, 하나는 짚이 섞이지 않은 벽돌인데
볏짚이 섞이지 않은 벽돌이, 볏짚이 섞인 벽돌보다 3배나 무거워요.
그러니 볏짚을 많이 섞을수록 벽돌은 더욱 가벼워지면서
운반하기도 가벼워서 더욱 쉽다는 것이지요.
하지만 볏짚이 섞이지 않는 벽돌을 아주 무겁습니다.
애굽인들이 생각하기를, 히브리인들이 이렇게 힘들게 일하고 나면
아이를 생산할 여유나 힘도 없을 것이라는 것이지요. 너무 지쳐서요.
이것은 애굽인들의 의도였지요.
그들이 생각하기를 히브리인들이 이렇게 힘이 빠지면, 잠자리를 갖지도 못하고
결국은 인수도 줄어들 것이라는 것이지요.
그러나 왠지 그들이 히브리인들을 힘들게 할수록, 그들은 아이를 더욱 많이 낳았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이 세 번째 법령을 내리지 않을 수가 없었지요.
명령하기를 그들의 모든 갓난 남자 아이를 나일강에 던져, 악어에게 주는 지시였지요.
나일강은 애굽인들의 생명수였지요. 애굽인들이 이 나일강이 없다면 살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이때 히브리인들에게는, 이 나일강이 죽음의 곳이 되었던 것입니다.
이것이 첫째 단원입니다.
◑2. 다음 단원은 “갈대와 가시떨기”입니다. (출2~4장)
이에 대해 제가 더욱 많이 설명할 필요가 없는 것 같네요.
다만 모세가, 요셉과 비슷하게 이들 모두 왕궁에서 좋은 교육을 받고 자랐지요.
만약 여러분이 런던의 템스 강둑에 가신다면, ‘클레오파트라의 바늘’이라는 별명의
뾰족한 높은 탑을 볼 것입니다. (오벨리스크)
이 탑이 총 2개인데, 하나는 로마에 있고, 하나는 테스 강둑에 있는데,
이것은 과거에 애굽 대학의 정문 입구에 서 있었던, 두 개의 기둥입니다. *빼앗아온 듯
그래서 오늘날 여러분이 템스 강둑에서 그 탑을 보시면,
당시 모세가 학생으로서 학교에 갈 때마다 쳐다본 그 탑을, 여러분이 똑같이 쳐다보시는 겁니다.
그는 그 탑을 사이를 지나서, 대학에 등교했던 것이지요.
모세는 대학 교육을 받았고, 그래서 그는 다른 히브리인 노예보다 더욱 높은 교육을 받았기에
모세오경을 쓸 능력이 충분한 것입니다.
성경에 말하기를, 그는 사건마다 자세히 기록하였다고 합니다.
사람들의 기억들을 수집해서 편집하여 이 5권의 책을 만들었다는 것입니다.
그가 애굽 왕자의 신분으로 얻은 교육이 헛되지 않았다는 것이지요.
그러나 이 모든 것이, 모세의 혈기가 한때 제어되지 못해서, 모든 것이 다 끝나게 되었지요.
그는 노예를 핍박하던 애굽인을 죽여서, 자기 목숨을 구하려고, 도망치지 않을 수 없게 되었지요.
재미있는 것은, 모세가 광야로 도망가서 40년 동안 거기에 살았다는 것입니다.
후에 또 이스라엘 백성들과 함께 광야에서 40년을 지냈는데
하나님께서는 이미 그를, 광야 생활의 지도자로 예비해놓으신 것이지요.
여러분도 동일한 경험이 있으신지 모르겠어요.
하지만 저는 제가 주님을 믿지 전 시절을 회상해보면
그때 벌써 하나님께서 저를 예비하셔서, 미래를 대비하게 하셨지요.
저는 기억하는 일이 있는데, 전에 제가, 청년 농부들의 강연 시합에 한번 참석했어요.
당시에 하나님께서 저를 예비해서, 오늘날 설교에 저를 이렇게 준비시킨 것이라곤, 당시에는 생각 못했지요.
하나님이 미래에 모세가 동족들 데리고 광야를 건너기 위해,
이 모든 것을 예비하였다는 것이지요.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모세더러 혼자서 광야에서 40년이나 몇 마리의 양과 염소를 목양하게 했습니다.
그가 실수로 애굽 사람을 죽였는데요.
(이 모든 것이 하나님의 예비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다음으로 “불타는 가시떨기나무” 인데 아주 재미있지요.
하지만 모세의 핑계보다는 재미없지요.
하나님께서 불타는 가시떨기 속에서 모세를 불르셨지요.
‘네 발의 신을 벗으라. 네가 서 있는 땅은 거룩한 곳이니라.’
또 말씀하시기를 ‘모세야, 나는 너를 애굽 내 백성에게로 보내서 나의 백성들을 이끌어내게 하겠다.’
‘전에 네가 나일강에서 건져진 것처럼, 오늘날 네가 애굽에 있는 나의 백성 모두를 건져 내게 하겠다.’
모세는 5가지 핑계를 만들어서 이 임무를 거절하지요.
그 5개 중 적어도 한 가지 핑계는, 당신도 똑같이 해보았을 겁니다.
1) 그는 우선 먼저 말하기를 ‘저는 그냥 보통사람인데, 누가 제 말을 듣겠습니까?’
혹시 여러분도 이런 비슷한 변명을 하지 않으셨습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는 너의 하나님이니, 내가 너와 함께할 것이고
내가 하나님이니 내가 중요하지 너는 중요하지 않다.’
2) 그러자 모세가 두 번째 핑계를 대지요.
그가 말하기를 ‘저는 아무것도 모르고, 무어라고 말할 줄도 모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한테 약속하는데, 네가 할 말 내가 알려 줄 것이다.’
3) 모세가 또 세 번째 핑계를 하지요.
‘저는 그들을 설득시킬 능력이 부족해서, 그들이 저의 말을 믿지 않을 겁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나의 능력이 너와 함께하시리니, 네가 기적을 행할 것이다.’
4) 그러니 모세가 또 하나님께 말하기를 ‘저는 유능하지 못합니다.
저는 말도 유창하게 못하며, 말도 더듬습니다.’ 사실 모세는 말을 좀 더듬었나 봅니다.
‘저는 말도 조리있게 못합니다.’
혹시 당신도 하나님께 이렇게 말한 적 있지 않으십니까?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좋다, ‘내가 너의 형 아론을 너의 선지자로 줄 테니,
그가 너를 대신하여 말 할 것이다.’ 그러니 선지자는 ‘말을 대변하는 자’입니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너는 하고 싶은 말을 아론에게 하고
아론이 너의 뜻을 파라오에게 전달할 것이다.
이것이 바로 선지자(대변인이란 뜻)가 전달해야 할 메시지의 의무이지요.
그저 말을, 있는 그대로 전하는 자입니다.
5) 모세의 마지막 핑계는 ‘저는 부적격자이오니,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제가 여기 있사오니, 저 사람을 보내십시오.’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의 이런 부르심이 있을 때 대답하기를
‘주님, 제가 아니고 다른 사람을 보내십시오’ 라고 합니다. (모세처럼요)
이때 하나님께서 동역자 한 사람을 붙여 주시지요.
◑3. 다음으로 “재앙과 온역”입니다. (출5~11장 )
어떠한 10가지 재앙이었지요? 나일강물이 피로 변하고,개구리, 이(+모기), 파리,
가축의 전염병, 독종(독한 종기), 우박, 메뚜기, 흑암 그리고 장자의 죽음이었지요.
여러분이 이 10가지 재앙에서 무엇을 보십니까?
제가 제일 먼저 깨닫는 점은, 하나님께서 (작은) 곤충의 세계까지 다스리신다는 점입니다.
여러분도 이런 점에 이렇게 생각해 보셨는지요?
<요나서>에서 제일 큰 기적은, 큰 물고기가 아니고 벌레입니다.
우리 일상생활에서 보면 큰 물고기가 훈련하긴 쉬워도, 작은 벌레는 훈련시키긴 쉽지 않지요.
하나님께서 곤충에게 명령하여 일을 맡기시니, 그는 가서 했는데
하나님이니까 되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이(+모기), 메뚜기와 개구리에게
너희들이 어디에 가서 무슨 일을 하고 오라고 명령하셨습니다. (그들이 순종했습니다.)
이 재앙들을 보면, 하나님은 그가 지으신 생물에 대해, 절대적인 주권이 있다는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몇 가지 점을 더 주의 깊게 보아야 하겠습니다.
첫째, 재앙들이 가면 갈수록 엄중해진다는 것입니다.
처음에는 그냥 불편함→ 다음에는 질병→ 그 다음은 위험→ 마지막 죽음까지,
재앙이 가면 갈수록 엄중해졌다는 것입니다.
왜냐 하면 파라오와 애굽 사람들이 이러한 경고에 아예 무시하고, 반응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제 생각에, 많은 크리스천 독자들이 간과하는 한 가지가 있는데
사실 이것은 종교 대결이고, 애굽의 많은 신들과의 대결이라는 것입니다.
이 10가지 재앙은, 각 재앙마다 애굽인들이 경배했던 신들이었고,
각 재앙은, 그 각각의 신들에 대한 하나님의 공격이었지요.
그래서 애굽인들에게, 이러한 재앙들이 실질적인 의미는, 종교대결의 패배였던 것입니다.
제가 애굽인들이 섬겼던 신/우상들을 거론해 볼게요.
“크눔”은 나일강의 수호신이었지요. “하피”는 나일강의 정령이었지요. *피재앙
“오시리스” 애굽인들은 아시리스의 혈액이 바로 나일강이라고 믿었습니다.
“헥켓”이라고 개구리 신이지요. 이것은 부활을 상징합니다.
“하솔”이라는 것은 암소이고, 또 여신이라는 뜻이지요.
또 몇 개의 숫소 신이 있는데 이는 “아피시”, “미나베스”, 이들을 소의 신이라고 하지요.
또 약medicine 신이 있었고, 또는 하늘의 여신, 생명의 여신,
그리고 “특색”이라고 있는데, 이는 오곡의 신이고,
또 네 개의 태양신이 있고,
마지막 그들이 제일 존중해야 하는 파라오지요. 그들은 파라오도 신이라고 생각합니다.
그러므로 이 10가지 재앙의 재앙마다 모두 애굽의 신을 겨냥하는 것이었지요.
하나님께서 전달하라는 메시지는 아주 간단하지요. 바로 그들에게 알려주기를
‘히브리 노예들의 신이, 너희들의 모든 신들보다 훨씬 더 능력이 있는 신이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애굽인들은 여전히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여기서 ‘바로의 마음’에 대해, 아마 어떤 분들은 오해할 수 있으므로,
제가 설명을 드릴 필요가 있습니다.
성경에 이르기를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는데
어떤 분들은 이 말씀을 너무 강하게 받아들여서
제가 보기에 이 말씀을, 예정론의 근거로 삼습니다. (그래서는 안 됩니다.)
특히 로마서9장에 보면, 바울이 말하기를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노라’고 하였습니다.
어떤 분들이 이것을 예정론이라고 하지요.
바로 ‘사람의 마음을 부드럽게 하든/강퍅하게 하든, 다 하나님이 결정/예정하는 문제’라고 하지요.
그건 하나님의 마음선택이고,
우리는 하나님이 무엇에 근거하여 이러한 결정을 하셨는지 모르지요.
다만 그분이 바로를 선택하였는데, 그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다는 것입니다.
이건 마치 빙고를 노는 게임과도 같은 것이지요. 저는 지금 진지하게 드리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예정론을 과도하게 부풀려서, 사람들이 지금 설교하고 있는데요.
하지만 많은 사람들이, 하나님을 마치 모자 속에서 이름 적힌 종이를 뽑듯이
누구는 구원하고, 누구는 지옥에 보내신다는 겁니다.
(예정론을 부정하는 것이 아니라, 과도한 예정론은 아니라는 뜻인 듯합니다.)
바로 하나님이 누구는 구해주고, 누구는 구해주지 않고,
누구의 마음은 강퍅케 하고, 누구의 마음은 부드럽게 해 준다고 결정한다는 것입니다.
성경의 가르침은 이렇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출애굽기를 자세히 읽으시면 발견하겠지만
성경에, 바로의 마음이 열 번이나 강퍅해졌습니다.
하지만 처음의 7번은 자기 스스로 강퍅하게 된 것입니다.
7번 이후에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그래 좋다, 만약 네가 계속 이 길로 가겠다면 내가 너를 도와주지’라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바로의 마음이 3번이나 더욱 강퍅케 하셨다’는 것입니다.
이 모든 사건을 통해 저는 다시 새롭게 보게 되었습니다.
하나님께서 바로의 마음을 강퍅케 하였는데
이는 먼저 바로가 고의적으로, 계속 반복해서, 스스로 강퍅하게 되었기 때문이었죠.
하나님은 확실히 이런 방식으로 사람을 징계하십니다.
‘만약 당신이 계속해서 이 길을 선택하여 가겠다면
하나님께서 당신이 그 길을 갈 수 있게, 도와주시는 것이지요.
이렇게 하시지요. ‘만약 이것이 네가 원하는 것이라면 내가 밀어주지’ 라고 합니다.
성경 마지막 권에 ‘더러운 자는 그대로 더럽고’라는 말이 있습니다.
즉 네가 계속 이 길을 선택하여 가겠다면 하나님이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 선택에 반응하십니다. 만약 우리가 끈질기게 잘못된 길을 선택하면
하나님은 우리가 그 길을 가도록 도우십니다.
그래서 그의 심판을 나타내는 도구가 되게 하십니다.
우리가 그 분의 자비를 나타내는 도구가 되기를 거부한다면요.
4 그 다음은 유월절 과 장자
이것은 열 번째 재앙과 관계있어요.
그건 이집트 가정의 모든 첫째 태생이 죽는 것인데
이것은 유대 가정에도 똑같이 일어날 수 있었어요.
그들이 뭔가 하지 않는다면
그들이 해야만 했던 일은 문설주에 피를 바르는 것이었어요.
피는 자주색 적갈색으로 컴컴한 밤에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아실지 모르지만 피는 어둠 속에서는 보이지 않아요 나중에 한 번 봐보세요.
그러나 천사는 피를 볼 수 있었고 죽음의 천사가 애굽으로 와서 그 밤에
흑암 속에서 문설주의 피를 보았을 때
그땐 가로등도 없었죠 그는 그 집을 넘어갔어요.
제가 말씀드리기 원하는 첫째는, 그들은 피를 얻어야 했죠.
문지방에 바르기 전에 피가 있어야지요.
이것은 무고한 생명이 죽여져서 그 피가 얻어짐을 의미하죠.
그 다음에 적용도 필요한데 그들이 문지방에 안 바르면 그건 효력이 없죠.
그래서 우리가 피를 얻어야 하고 그 다음에 적용해야 하는데
그들은 소위 말하는 ‘어린 양’으로부터 피를 얻었어요.
그건 보통 작고 예쁜 흰양으로 우리가 생각하는데 오해입니다.
그건 1년 된 뿔 가진 숫양입니다 그건 튼튼한 동물이에요.
우리가 예수님을 ‘하나님의 어린양’으로 부를 때
오해할 수 있어요 그건 하나님의 숫양이고 ‘유다의 사자’와도 같죠.
*창22장에 모리아 산에서 수풀에 걸린 양도 숫양
그들은 숫양, 장성한 숫양을 잡았어요.
한 살된 숫양은 (장성해서) 사람으로치면 30세에 필적합니다.
그들이 잡은 양은 이런 양이에요 그 피를 바깥 문설주에 발랐죠.
그들은 양의 몸은 안에서 구워서 먹었고
옷을 입고 서서 먹었어요. 즉각 떠날 준비를 한 채로!
그들은 앞으로 40년을 가게 되겠지요.
그들은 비상식량도 가져야 했는데 무교병(오래 보관)이지요.
이 모든 게 출애굽기에 나옵니다.
그들은 그때 이후로 매년 이 절기를 지킵니다.
집에서 가장 어린 사람은 물어야 해요. ‘이게 무슨 의미이죠?’
그러면 집에서 가장 연장자가 말합니다.
‘이것은 그 밤에 하나님이 행하신 것이다.
모든 첫째 남자아이가 죽을 때 우리는 구해졌다.
왜냐면 숫양의 피 때문에!’
*번역 LCY, 교정 KJY, 영타 Christine,
'분류 없음 > 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카테고리의 다른 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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