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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LNCK 2015. 10. 3. 10:00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20:1-3                   15.08.30.출처보기

 

 

20:1 하나님이 이 모든 말씀으로 말씀하여 이르시되

2 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3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

 

 

율법, 성화, 은혜

 

19장의 시내산 계약 체결 과정에서 가장 중요한 내용은, 바로 십계명 율법의 선포입니다.

계약이 유지되는 조건은, 바로 이 율법의 준수에 달려 있습니다.

 

십계명은 더구나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께서 직접 음성으로 들려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거룩한 음성을 견딜 수 없었던 이스라엘 백성은 19절에서

모세에게 이르되 당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소서 우리가 들으리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말씀하시지 말게 하소서 우리가 죽을까 하나이다고 하였습니다.

 

그래서 십계명 이후의 다른 율법들, 대표적으로 계약법전은 모세를 통해서 간접적으로 전해집니다.

 

신명기서에서는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돌판에 직접 손으로 새겼다고 전합니다.

여호와께서 그의 언약을 너희에게 반포하시고 너희에게 지키라 명령하셨으니

곧 십계명이며 두 돌판에 친히 쓰신 것이라”(4:13)

 

십계명은 율법의 핵심이며 그만큼 무겁게 대해야 합니다.

그렇지만 개신교에서는 은혜에 대한 강조 때문에 율법을 무시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율법은 몽학선생, 곧 유치원 교사처럼 그리스도에게 인도하는 기능만 가지고 있다,

율법은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폐기 되었다, 우리는 율법의 저주에서 벗어났다 등.

 

물론 율법에서 말하는 정결법이나 성전이나 제사나 절기 등은 지키지 않습니다.

그러면 십계명도 폐기해야 하는가? 아닙니다.

 

주님은 산상수훈에서 십계명을 더 깊게 해석하셨습니다.

십계명의 6계명인 살인하지 말라 정도가 아니라 형제를 미워하지 말라고 해석하셨고,

7계명의 간음하지 말라는 말씀은 마음속의 간음까지도 문제 삼으셨습니다.

 

이런 이유로 종교개혁자 칼빈은 율법의 제3의 용법이라 하여

성화의 기능으로서 율법을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1은 죄를 깨닫게 하는 기능, 2는 세상을 유지하는 기능)

율법은 폐기된 것이 아니라 신앙인들의 성숙과 성화를 위해서 필요합니다.

 

율법이 우리에게 충고하는 그 완전성은 우리가 도달하려고 일평생 애써야 하는 목표다.” 기독교강요』 Ⅱ.7.13

율법은 육에 대해서 마치 가지 않는 게으른 나귀를 가게 하는 채찍과 같다.

영적인 사람이라도 육의 짐을 벗지 못하고 있는 동안은,

율법이 여전히 부단한 자극이 되어 일시도 한 자리에 서 있지 못하게 한다.”기독교 강요』 Ⅱ.7.12

십계명은 우리 시대에도 지켜야 할 소중한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사실 율법은 지키기 힘듭니다. 율법은 마지못해 해야하는 윤리이고 강요인가?

아닙니다. 율법은 은혜입니다. 이미 구원받은 놀라운 은혜에 감사한 마음으로 행하는 순종입니다.

괴로운 의무가 아니라 기쁨의 순종입니다.

 

십계명 말씀을 주시기 전에 서문처럼 우리에게 주시는 말씀이 중요합니다.

2나는 너를 애굽 땅, 종 되었던 집에서 인도하여 낸 네 하나님 여호와니라

 

애굽에서 종 되었던 너를 해방시켜 당당한 한 민족으로 세우셨고,

이제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 하나님이 너의 하나님이 되었다는 은혜의 사건을 서술하고 있습니다.

그러니 내 말에 순종하라는 것입니다.

율법이나 윤리 전에 은혜가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이는 주님께서 예로 드신 1만 달란트 빚진 자의 비유에서 주는 교훈에서 잘 알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이 1만 달란트나 되는 엄청난 빚을 졌습니다.

헤롯 대왕의 한 해 세 수입이 9백 달란트였던 것을 생각하면 정말 큰 빚입니다.

 

주인이 불쌍해서 이 빚을 탕감해 주었습니다.

그런데 이 종이 밖으로 나가다 자기에게 1백 데나리온 빚진 동료를 만났습니다.

이는 1만 달란트의 60만분의 1밖에 되지 않는 작은 돈입니다.

그런데 이 종이 그 동료를 옥에 가두고 다 갚으라고 합니다.

 

이 소식을 듣고는 주인이 화가 나서 그 종을 다시 불러

악한 종을 책망하며 1만 달란트를 갚으라고 명령합니다.

 

다짜고짜 1백 데나리온 빚진 자를 용서하라고 하면, 용서하기가 힘 들 것입니다.

윤리나 의무가 주는 무거움입니다.

 

그러나 그전에 우리가 1만 달란트를 탕감 받았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1백 데나리온의 용서는 쉬워집니다. 이것이 은혜입니다.

 

율법이 의무가 아니고 은혜인 이유가 여기에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죽을 수밖에 없는 우리를 살리고 하나님 백성 삼으신 놀라운 은혜를 생각한다면

십계명은 무거운 율법이 아니라 즐겁게 순종할 은혜입니다.

 

더구나 십계명은, 사람이 사람답게 살 수 있는 길을 제시하고 있다는 점에서

우리가 마다할 이유가 없습니다.

윤리는 우리를 구속하는 것이 아니라 우리로 더 행복하고 능력 있는 삶을 살게 합니다.

 

그것은 마치 기차 레일과 같습니다. 기차가 레일 위로만 달리는 것은 부자유스러워 보입니다.

그러나 기차는 레일 위에 있을 때 가장 빠르고 안전하게 달릴 수 있습니다.

 

 

다른 신을 섬기지 말라

 

1계명은 너는 나 외에는 다른 신들을 네게 두지 말라입니다.

나 외에라 번역되었지만 본래의 뜻은 내 앞에서입니다.

 

모든 영어 성경들은 “You shall have no other gods before me.”로 번역하고 있습니다.

이제 우리는 하나님 외에는 다른 신은 없다는 유일신론을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고대 이스라엘 사회나 중동에서는, 수많은 우상과 신들이 있던 다신론 사회였습니다.

그래서 다른 신들을 섬기지 말고 나만 섬기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 점에서는 내 앞에서나 외에나 같은 의미라 생각합니다. 하나님이 지켜보고 계십니다.

 

우리 시대에 이 말씀은 어떻게 적용이 될 수 있겠습니까?

다른 종교의 신, 알라나 부처나 어떤 초월적 존재를 섬기지 말라는 뜻입니까?

물론 그렇습니다. 우리는 유일하신 하나님만 섬겨야 할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다른 종교를 믿지 말라는 말씀으로 단순화할 수 없습니다.

그것은 우리 마음 중심에 무엇이 있느냐는 문제이고,

그 중심에 하나님이 있기를 원한다는 말씀입니다.

 

그래서 종교개혁자 루터는 신에 대해서 이렇게 정의하였습니다.

당신의 마음이 매달려 있고, 당신의 모든 것을 지탱하는 대상,

그것이 바로 당신의 신()입니다.”(대교리문답 3)

 

내 마음을 온통 빼앗고 있는 것 그것이 우상이고 다른 신입니다.

그것이 물질입니까? 사람입니까? 이념입니까? 그러면 그것이 신/우상입니다.

사도 바울은 이미 골로새서에서 탐심은 우상 숭배니라”(3:5)고 선언했습니다.

다른 종교의 신이나 우상은 거부하면 됩니다.

그러나 이런 종류의 신은 교묘하게 우리 중심을 차지하며, 우리 영혼을 갉아먹고 있습니다.

 

저는 이 시간 루터의 대교리문답십계명 해설을 중심으로 나누려 합니다.

 

1. 다른 신, 맘몬

루터는 제1 계명을 설명하면서, 가장 먼저 언급한 것은 타종교의 신이나 우상들이 아니었습니다.

그것은 돈, 곧 맘몬이었습니다.

 

그런 사람들도 일종의 신을 섬기고 있습니다. 그 신의 이름은 맘몬입니다.

맘몬은 돈과 재물의 신입니다.

맘몬을 섬기는 이들은 모든 마음을 돈과 재물에 두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것이야 말로 이 땅에서 가장 흔한 우상입니다.”(6)

 

예수님도 산상수훈에서 하나님과 맘몬을 같은 위치에서 놓고

너희가 하나님과 재물을 겸하여 섬기지 못하느니라”(6:24)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을 대신하여 섬겼던 신은 바알 신이었습니다.

이 바알 신은 풍요의 신이요 농사의 신입니다.

본질은 재물에 대한 욕심 때문에 바알을 섬겼던 것입니다.

 

그러니 제1계명의 다른 신들 중에 맘몬이 가장 큰 대상임은 분명합니다.

이스라엘 시대나 루터 시대뿐만 아니라, 오늘날에도 가장 흔한 우상은 맘몬이라는 신입니다.

 

맘몬은 종교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습니다. 돈이 행복을 결정합니다.

돈을 가지고 있으면 행복하고 없으면 불행합니다.

 

동창회에 가서도 돈이 있으면 기가 살고, 돈이 없으면 기가 죽습니다.

돈은 권세입니다. 돈 있는 자 앞에서는 모든 권력이 숨을 죽이고 비굴해집니다.

 

돈의 능력에 대해서 유물론을 만들어낸 칼 맑스는 이렇게까지 말을 했습니다.

나는 못생긴 사람이다. 그러나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여인을 돈으로 얻을 수 있다.

그러므로 나는 못생긴 사람이 아니다.”

 

돈은 생명입니다. 돈을 벌기 위해 자기 목숨을 내어 놓기도 하고,

돈 때문에 다른 사람의 목숨을 빼앗기도 합니다. 돈은 부적과 같은 마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호주머니에 돈이 들어 있으면 힘이 있고 없으면 불안해집니다.

 

돈은 거룩합니다. 너무 거룩해서 사람들 앞에서도 자기가 가진 재산을 잘 말하지 않습니다.

심지어 자식들 앞에서도 말하지 않습니다.

돈에 관련된 이야기를 할 때는, 부부 단 둘이서 은밀히 상의합니다.

 

돈이 얼마나 위대한지 돈을 찬양한 시편 23편이 나올 정도입니다.

 

돈은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안락한 침실에 눕게 하시고 달콤한 술집으로 인도하시는도다.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호주머니에 돈이 있음이라.

돈의 권세와 보호가 나를 안전케 하는도다.

돈이 원수를 만들고 나를 괴롭게 하니

내 머리에는 항상 돈 생각으로 근심의 잔이 넘치는도다.

나의 평생에 욕심과 정욕이 나를 따르리니

내가 돈을 믿고 살다가 죽으리로다.”

 

이만큼 돈의 위력이 막강하기 때문에, 루터는 인간에게 세 가지의 회개가 필요하다고 하였습니다.

예수님을 믿기 위해서는 세 가지의 회개가 필요하다.

가슴의 회개(통회의 눈물), 정신의 회개(가치관의 전환), 그리고 돈지갑의 회개이다

 

어떤 분이 침례를 받으려하다가 자기 호주머니에 돈지갑을 그대로 둔 채 침례탕에 들어온 것이 생각났습니다.

그래서 목사님께, “목사님 돈지갑을 놓고 오겠습니다.” 하고 말하였습니다.

 

그러자 그 목사님이 정색을 하며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가만 두시오. 그 돈지갑도 세례를 받아야합니다.”

 

우리의 지갑이 하나님과 이웃을 향하여 열리는 순간

그제야 비로소 우리는 제1계명을 지키는 온전한 그리스도의 제자입니다.

 

2. 다른 신, 나의 관심사들

다음으로 루터가 지적하는 것은 우리의 관심사들입니다.

맘몬을 신뢰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위대한 지식, 현명한 처세술, 권력, 호의,

우정, 명예를 신뢰하는 자들도 똑같습니다. 이들 역시 일종의 신을 섬깁니다.”(10)

 

하나님은 질투하는 하나님입니다. 우리 마음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런 점에서 신명기의 쉐마는 제1계명의 온전한 적용입니다.

 

이스라엘아 들으라 우리 하나님 여호와는 오직 유일한 여호와이시니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6:4-5)

 

우리가 스포츠를 좋아할 수 있습니다. 우리가 일을 좋아하고, 지식을 탐하고,

권력을 추구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지나쳐서는 안 됩니다.

지나치면 매이게 되고 욕심이 되고 그래서 우리 생명을 해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관심의 첫 자리에 있기를 원하는 것은

사실 우리의 행복과 생명의 풍요로움을 위해서입니다.

모든 것은 하나님이 중심에 있어야 자리를 잡습니다.

 

절제는 하나님이 중심이 있을 때 생깁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 있을 때 우리가 추구하는 것이

욕심이나 교만이나 악의 도구가 되지 않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런즉 너희가 먹든지 마시든지 무엇을 하든지 다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하라”(고전10:31)

 

어떤 분들에게는 자녀가 우상이 될 때가 있습니다.

사실 우리 가계 지출의 가장 많은 부분이 자녀들을 위해서 쓰입니다.

이는 우리 삶의 우선순위를 잘 보여줍니다.

 

그러나 자녀보다도 하나님 사랑이 그 앞에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부모나 자녀가 매이지 않고 온전한 사랑을 이룰 수 있습니다.

서로 매이는 사랑은 모두를 불행하게 만듭니다.

 

3. 다른 신, 이념

인간의 중심을 차지하고 있는 것은 이념이라는 종교일 경우가 많습니다.

이념 숭배라 불려도 무방할 정도입니다.

민족주의, 인종주의, 공산주의, 반공주의 등 이념이 우리의 신이고 우상이 됩니다.

 

이는 독일 사회가 잘 보여주었습니다.

독일은 1차 세계대전에서 패한 이후 좌절과 경제적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여기에 1929년 대공황이 덮쳐 극심한 경제 침체와 공산주의의 위협에 처했습니다.

 

이때 구세주처럼 등장한 사람이 히틀러였습니다.

히틀러는 아리안 민족주의 (우월성)’를 들고 강력한 독재정치를 펴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때 독일 사회는 히틀러를 정말 정치적 메시야처럼 환영하였습니다.

교회 또한 마찬가지였습니다.

히틀러가 유태인들을 억압하는 법률들을 만들었을 때도, 대부분의 독일 기독교는 이를 지지하였습니다.

 

그때 소위 주류를 장악하고 있던 독일 교회는, 히틀러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선언을 하였습니다.

히틀러가 독일 국민에게 때를 가져다주었다.

그것은 구원자 그리스도가 히틀러를 통해서 우리들 가운데 강하게 임한 것과 같다.

나치스야말로 행동하는 적극적인 기독교도들이다.”

 

독일 교회에 그리스도가 아니라, ‘민족주의와 영웅이라는 우상이 주인이 되었습니다.

 

이때 소수의 그리스도인들이 저항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들을 고백교회라고 부르고 그들이 당시 교회와 독일 사회를 향하여 그 유명한 <바르멘 선언>을 합니다.

바르멘 선언 1절은 다음과 같습니다.

 

성서에서 우리에게 증언된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가 들어야 하며

사나 죽으나 신뢰하고 복종해야 할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이다.

우리는 마치 교회가 그 선포의 원천으로서 이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 이외에

그리고 그와 나란히 다른 사건들, 권세들, 형상들 및 진리들도

하나님의 계시로서 인정할 수 있고 인정해야 하는 것처럼 가르치는 그릇된 교설을 배격한다.”

 

단순한 신앙적 선언 같지만 엄청난 무게를 담고 있습니다.

당시 대두하고 있던 독일 민족주의를 향하여 그것은 아니오!” 하고 선언한 것입니다.

 

우리가 복종해야 할 절대적인 신은 이념이나 사람이 아니라

그리스도와 하나님 말씀뿐입니다. 십계명의 제1계명을 밝힌 선언이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제자이지 세상이나 이념의 추종자들이 아닙니다.

국가와 이념은 하나님 아래 있을 때 중심을 잡습니다.

 

이념보다 하나님이 그 중심에 있었던 본회퍼는, 다음과 같은 고백을 했습니다.

 

지금 독일에 있는 그리스도인들은, 독일 1차대전 패전에 동의하여 기독교 문명을 더 유지할지,

아니면 전쟁에 동의하여 기독교 문명을 파괴할지 결정해야 하는,

섬뜩한 기로에 서 있습니다.

나는 어느 쪽을 선택해야 할지 잘 알고 있습니다.”

 

본회퍼는 민족주의와 이념이라는 신을 숭배하던 조국의 패망을

바랄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우리 한국교회 또한 이념으로 범벅이 되어 있습니다.

그 안에 반공주의, 민족주의, 맘몬의 신앙이 또아리(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가히 바알우상을 섬기던 이스라엘과 방불합니다.

 

우리 마음 중심에 있는 것은, 우리의 행동으로 나타나게 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사랑을 잃었습니까? 거룩함을 잃었습니까? 겸손함을 잃고 교만합니까?

분열이 있고 갈등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편견과 거짓된 지식으로 가득 차 있습니까?

섬김은 없고 권력을 향한 탐욕만이 있습니까?

세상의 우상을 섬기기에 우상이 가진 더러운 것들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우리 중심에 있을 때 진리와 선함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참된 안식과 평화가 거기에 있습니다.

다른 신들이 아닌 하나님만 섬길 때 생명과 행복이 있습니다.

 

믿음이 무엇입니까? 하나님만을 섬긴다는 말이 무엇입니까? 루터의 설명입니다.

특별히 곤궁과 어려움에 처해 있을 때를 생각해보십시오.

그 때 오직 하나님에게만 좋은 것을 기대하고, 다른 모든 것을 거부하고 버릴 마음이 있다면,

당신은 바른 하나님을 섬기고 있는 것입니다.

 

반대로, 하나님이 아닌 다른 것에 매달려 좋은 것과 도움을 기대하고 있다면,

그리고 하나님의 피난처를 의지하지 않고 그분에게서 멀리 도망친다면,

이것은 당신이 우상을 섬기고 있다는 증거입니다.”(28)

 

위기 때에 우리의 본질이 드러납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을 섬기고 있습니까?

아니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지하고 있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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