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제가 질문드리기 원하는데요.
여러분 중에 혹시 <에스겔서>를 구약성경 중에서 제일 좋아하는 사람은
손을 들어서 표시해 주시기 바랍니다.
아무도 없네요. 여러분들은 그저 다른 분들과 비슷하네요.
실제로 제가 ‘당신이 가장 좋아하는 성경은 어떤 책입니까?’라는 질문을 받을 때면,
저는 항상 제가 가장 최근에 공부한 책이름을 댑니다. 사실이 그렇습니다.
제가 66권 중에 새 책을 한 권을 공부하면, 저는 그게 제가 가장 좋아하는 성경이 됩니다.
제 생각에, 그게 가장 최고의 책인 것 같아요.
그러다가 제가 또 다른 책 한권을 공부하게 되면,
그때는 그 책이, 66권 중에 가장 최고의 책인 것 같아요.
성경책은, 여러분이 일생동안 계속 읽는 유일한 책입니다.
여러분이 이 책을 읽을수록, 이전에 발견하지 못했던 전혀 새로운 것들을, 계속 발견할 것입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성경에 대해서 결코 싫증나지 않을 겁니다.
▲<에스겔서>는, 제 생각에, 구약 중에서 아마 가장 무시되는 책일 겁니다.
그런데 저는 이 책에 대해, 다른 책보다, 저 많이 설명할 겁니다. 다른 책은 P2까지, 에스겔은 P3까지 있음.
왜냐면 이 책은 낯설 뿐만 아니라, 이해하기에 좀 어렵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의 전반부는 읽기에, 거의 불쾌하고, 저주가 나오고, 침울하고, 꽤 우울해 집니다.
1~24장까지가 그렇습니다. 총48장
그래서 사람들은 더 이상 나아가지 않고, 포기하고, 다른 책으로 옮겨갑니다.
이 책은 분량이 길죠. 또 반복되는 내용도 나옵니다.
우리가 기억할 것은, 이 책은 에스겔이 20년 동안 설교한 것을
한 권의 책으로 압축한 것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이 책을 전부 한 번 만에 단숨에 읽지도 않았고,
또 한 번 만에 설교를 처음부터 끝까지 전체로 들어보지도 못했어요. 부분적으로만 봤지요.
이 책은 에스겔의 20년 사역이, 세 덩어리로 묶어져 있어요.
3개의 집약된 복용약으로 조제 되어 있는데, 각각의 세 덩어리 사이에는 긴 시간 간격이 있습니다.
이들 예언의 많은 부분은, 오늘날 우리 현실에 적합하지 않습니다.
이 책의 내용은 우리와 다른 세계요, 다른 환경입니다.
그래서 우리와 친근한 내용이 아닙니다.
또 여기 나오는 언어가, 가끔은 매우 거칩니다.
현대인들이 듣기에는 매우 공격적입니다. 제가 그 예를 들지 않겠습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모든 에스겔서는,
우리가 정말 생각하고 싶지 않는, 하나님의 성품의 측면이 무엇인지를,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그래서 이게 우리에게 중요하죠. 우리가 하나님이 누구신지 진짜로 알게 되니까요.
이 책에 ‘하나님의 엄위하심(두려우심)’이란 성품이 나오는데요.
이는 우리에게 바울이 롬11장에서 말씀한 것을 생각나게 합니다.
“하나님의 인자와 엄위를 보라” 롬11:22 *Behold then the goodness and severity of God.
사람들은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는 듣기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대해서는 듣기 싫어하죠.
흥미로운 것은, 여러분이 전형적인 라디오나 TV방송 설교를 들으시면,
그것은 보통 하나님의 인자하심에 대해서만 말하고,
하나님의 엄위하심에 대해서는 거의 말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하나님에 대해서, 한 면만 알게 되지요.
그런데 만약 여러분이, 오직 에스겔서만 읽으신다면,
여러분도 하나님의 한쪽 측면만 알게 되실 터인데, 그건 ‘엄위’ 측면입니다.
한 번은, 제가 에스겔서를 설교하고 나니까, 누가 제게 우편엽서를 보냈는데요,
그 엽서 전면에는, 자기들이 방문했던 남미의 은 채굴 광산 사진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엽서에 쓰기를 “박사님은 에스겔서가 은 광산과 비슷하다는 것을 아세요?
거기엔 분명이 은이 묻혀 있는데, 그걸 캐내서 얻으려면, 열심히 파야 한다는 겁니다.
그런데 은을 캐고 나면, 그 고생은 정말 가치가 있었다고 느끼지요.”
우리가 이 책 공부를 시작하면서, 그의 말이 도전이 되네요.
▶<에스겔서>는 우리에게 두 가지 질문을 던지면서, 우리가 대답하라고 도전합니다.
-‘당신은 왜 why 성경을 읽습니까?’
-‘당신은 어떻게 how 성경을 읽으십니까?’
이 두 질문은 서로 연관이 있는데, 왜냐면
‘당신이 왜 성경을 읽는가?’ 에 대한 대답이,
‘당신이 성경을 어떻게 읽는가?’를 결정짓기 때문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읽는 방법은, 당신이 성경을 읽는 동기에서 나올 것입니다.
성경을 읽는 데는, 여러 가지 다른 방식들이 있습니다.
한 가지 방식은, 제가 ‘약 먹기로 성경읽기’라고 이름 붙였는데요.
이게 뭔지 아세요?
‘내가 하루에 성경을 10절씩 읽는 것이, 마귀로부터 나를 지켜줄 것이다.’
여러분이 그게 뭔지 아실 겁니다.
매일 약을 먹듯이, 매일 일정 분량의 성경을 약효가 있다고 믿고 읽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한 단락씩 매일 조금씩 읽고서,
그 성경 한 권의 전체 메시지를 깨닫는 일은, 거의 일어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가 여러분께, 성경은 권 별로 한 번에 다 읽으시라고 권하는 겁니다.
여러분 중에도, 아가사 크리스티의 소설책을, 하루에 한 단락씩만 조금씩 읽고서,
그 책을 나중에 다 읽었을 때, 처음에 뭘 읽었는지 다 잊어버렸을 것입니다.
그 책의 전체 구성이 뭔지 전혀 모르실 것입니다.
성경을 매일 조금씩, 약 먹듯이 읽는 사람도, 그 책의 메시지가 무엇인지
알지 못할 것입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한 번에 전체를 다 읽으셔야 합니다.
물론 작은 부분을 세밀하게도 보아야 하지만요.
◑대체로 에스겔서와 같은 책을 연구하는 방식에 3가지 접근법이 있습니다. 5:30~
▶1. 제가 ‘요절 접근법’이라 부르는 방식인데요, verse approach
이것은 ‘자기를 위하여’ 성경의 단어를 또는 한 구절을 살펴보는 방식입니다.
저는 이 방법을 차라리 ‘점성술식 성경읽기’라고 이름 붙이고 싶습니다.
제가 무슨 말을 하는지 벌써 아시죠?
성경을 읽으면서, 어느 한 구절이 자기 상황에 딱 들어맞을 때까지 읽는 방식입니다.
성경으로 그 날의 점성술 운세를 보는 것입니다.
여러분이 그 날의 삶에 필요한 어떤 도움을 얻을지 모르나,
그러나 하나님은, 성경을 이렇게 사용하라고 주시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실제로 이런 식으로 성경을 읽는지요.
문제는 여러분이 만약 에스겔서를 그런 식으로 읽으신다면,
눈에 확 띄는 구절을 발견하기까지, 아주 길게 읽어야 합니다. 그런 맘에 드는 구절이 잘 안 나오니까요.
이런 식의 성경읽기를, 우리는 보통 ‘경건의 시간’으로 부릅니다. QT
이런 표현은 너무 모욕적인 표현은 아니죠. 점성술식 성경읽기.. 이건 모욕적이죠. 같은 방식,
그런 경건의 시간 방식의 성경 읽기는, 그 날에 내게 필요한 한 단어(구절)를 찾는 방식인데요.
한 편으로는 도움이 될지 모르나, 성경을 읽는 올바른 방식은 아닙니다.
당신은 성경 여기 저기서 자기에게 위로가 되는 한 단어를 찾을 수도 있고,
또 여기 저기서 인도함을 주는 한 구절을 찾을 수 있을지 모르지만,
이 방식이 잘못된 이유는 근본적으로 자기중심적으로 성경을 읽는다는데 있습니다.
당신은 성경을, 자기를 위하여 읽는다는데 있습니다. 하나님 중심적이어야 되죠,
▲2. 성경을 읽되, 다른 사람들을 위하여 읽는 사람들도 있습니다.
특별히 설교자나 성경 교사들이 그렇게 하죠.
그들은 성경을 읽되, 뭔가 설교꺼리가 없나.. 찾으면서 읽습니다.
근본적으로 그들은 성경을 쭈욱 읽지도 않고, 그저 유명한 몇 구절만 골라서 읽습니다.
설교자들이 <에스겔서>를 설교할 때, 잘 사용하는 유명한 4구절이 있습니다.
설교자들이 이 책을 설교했다 하면, 보통은 이 4구절 안에 다 걸립니다. 다른 구절은 안 합니다.
1) 가장 유명한 것은 37장인데요. ‘마른 뼈들아 일어나라’ 이죠.
♬ Dem bones, dem bones, dem dry bones♫ 이런 노래도 있습니다.
많은 설교자들이 이 마른 뼈들이 딸깍-댕그랑 소리를 내며 맞추어져 함께 행진한다는 설교를 합니다.
이 구절이 에스겔서에서 가장 잘 설교되는 구절이고요.
또 다른 3개도, 제가 자주 듣는 구절인데요.
2) 겔34장은, 새로운 목회자가 취임할 때 항상 설교 되는데요.
저 파슨은, 교회에 새로운 목회자나 사역자가 취임하는 날에,
겔34장이 설교되는 것을, 지금까지 많이 보아왔습니다.
이것은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에 관한 내용입니다.
선한 목자는, 잃은 양을 찾아 나서지만,
악한 목자는, 자기들만 배불리 먹습니다.
또한 목회자나 사역자의 역할을 살피는 예배 때에도 *목회자 주일 같은 날
종종 인용되는 구절입니다.
3) 다음으로 47장인데, 이것은 문맥을 무시하고 몇 구절만 빼내어
알레고리(우화)적으로 사용하는 잘못을 범하고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한 사람이 강물 속으로 들어가는데,
처음에는 발목까지, 다음에는 무릎까지, 허리까지, 마지막에는 헤엄칠 깊이가 되죠.
이 구절은 매우 많은 설교자들에 의해 사용되어집니다.
‘당신은 영적으로 어느 깊이까지 들어갔습니까?’
‘당신은 영적으로 헤엄치고 있습니까? 아니면 그저 물장구나 치고 있습니까?’
그렇게 하는 것은 전적으로 잘못 사용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이 구절은 알레고리적 설교로 매우 유명합니다. *발목 신앙 등이 알레고리란 뜻인듯
4) 또 하나는 18장인데, 이것은 ‘각자 개인의 죄에 대한 자기 책임’에 관한 내용입니다.
즉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다고, 자녀의 이가 시리지 않는다’는 것인데,
하나님이 죄를 삼대와 사대까지 연좌제로 벌주시지 않는다는 내용입니다.
에스겔 선지자는, 이 원리를 매우 중요하게 강조해서 소개합니다.
즉 ‘심판 날에 우리는 각자 자신의 죄만 책임지게 되며,
그래서 우리 각자는, 자기 죄에 대해서만 해명하면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들이, 에스겔서에서 설교자들이 자주 가르치는 주제들입니다.
그래서 이상의 4개 장만 살펴보고는, 그걸로 끝내버립니다.
설교자가 에스겔서를 읽고서 설교할 때는,
보통 위 4개 중에 한 개를 택해서 설교하고는, 나머지 모든 내용은 남겨둡니다. 총48장이잖아요.
▲3. 저는 사람들이 <에스겔서>를 전체 다 읽을 것을 권장합니다.
-다 읽되, 자기 자신을 위한 목적으로 읽는 것도 아니요, 큐티처럼
-다른 사람들에게 설교하기 위해서 읽는 것도 아니요,
-‘하나님을 알기 위한 목적으로’ 읽을 것을 권장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이 성경을 읽는 궁극적인 주된 이유이며,
그래서 당신이 하나님을 친밀하게 알게 되면,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지를 알게 될 것이고,
그리고 하나님이 우리를 어떻게 대하시고,
우리에 대해 어떻게 느끼시는지를..
또한 하나님이 우리와, 무슨 일을 같이 하실 지를.. 당신이 알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아는’ 것입니다.
당신이 ‘하나님을 알기 위해’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의 모든 부분들이, 당신에게 뭔가를 말씀할 것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자신을 위한 메시지를 받기 위해 읽으신다면 *큐티 방식
여기 한 절, 저기 한 절씩만 당신에게 살아있을 것입니다. *극히 일부만
만약 당신이 성경을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읽으신다면,
그래서 여기서 몇 구절들, 저기서 몇 구절들만 골라서 읽으신다면,
그 구절들만 당신에게 살아있을 것입니다. *극히 일부만
그러나 여러분이 성경을, ‘하나님을 알기 위해’ 읽으신다면,
성경의 작은 모든 부분까지도, 당신에게 생생하게 다가올 것입니다. *성경 전체가
자, 여기까지가 서론이었습니다.
◑성경을 재미있게 읽으세요. 9:40~
저는 사람들이 성경을 한 권씩 차례로 읽어나갈 때,
가장 처음 읽는 사람들에게는 <리빙 바이블>을 사용할 것을 항상 추천합니다.
이 영어성경책이 소리내어 읽기에 가장 쉽습니다.
*읽을 때의 운rhyme까지 고려한 번역, 실제로 읽어보면 술술 읽어짐. 비슷하게 NLT New Living Translation도 있음
우리 교회에서, 리빙바이블로 끝까지 성경통독을 했던 적이 한 번 있었습니다.
여러분들도 해 보시면, 84시간 정도 걸립니다. *논스톱으로 3일 8시간
우리는 성경을 큰 소리내어 읽었고요 *한 사람이 대표로 나와서 읽고 나머지는 눈으로
연인원 2천명이 모였지요. 그리고 반 톤의 성경책을 팔았어요.
사람들이 처음엔 30분 정도만 참석하려고 왔다가
몇 시간 동안이나 참석했었는데,
이유는, 그들은 이전에 성경을 권별로 전체로 들어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래서 그들은 ‘한 권만 더 읽자’ 하다가, 그 책이 끝나면 ‘한 권만 더 읽자’
그러면서 성경에 빠져들었고, 성경에 고리로 꿰이고 말았지요.
우리가 통독을 처음으로 할 때는, Living Bible을 사용했는데요,
그 책이 쉽게 읽혀집니다.
그리고 그 책이, 성경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번역했습니다.
그 책이 성경의 단어의 의미를 가장 정확하게 번역하지는 않았다 하더라도,
그 책은 지금까지 번역된 성경 중에, 성경의 감정을 가장 정확하게 번역한 책입니다.
▲당신이 성경을 읽을 때, 성경을 ‘느끼고’, 하나님을 ‘느끼고’ ↔생각하고
하나님의 ‘감성’을 당신이 이해하는 것은, 대단히 중요합니다.
그래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지만, 하나님이 직접 쓰시진 않았습니다.
사람들을 위해서, 사람들이 성경을 기록했지요.
그런고로 우리가 성경을 읽을 때, 영감을 받는 것도 필요하지만,
성경에 흥미를 가지는 것도 필요합니다. *흥미로운 감정, 느낌
이 성경 열기 unlocking 98강 시리즈에서,
저는 여러분이 둘 다 갖게 되도록, 도와드릴 것입니다. *영감과 흥미
저는 성경을 읽을 때 ‘인간적인 흥미’ 면을 발견합니다.
성경이 매우 재미있어요.
영감을 발견하는 것은, 거기에 더하여 얻는 것이지요. 일단 먼저는 재미있어야 합니다.
그래서 이 연속 강의에서, 저는 ‘인간적 배경’을 꽤 많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실제 사람들이, 실제 상황에서, 실제로 느끼는 감정이라는 식으로요.
먼저 이렇게 ‘인간적 측면’의 흥미를 갖게 되면,
‘신령한 측면’의 영감이 더욱 잘 이해되지요.
이것이 바로 ‘본문을 문맥 가운데서 연구하기’의 요점입니다. studying text in context
그런데 여기서 문맥은 먼저는 인간적인 것입니다.
보통 문맥으로 살핀다고 할 때는, 본문의 전후 구절을 살피는데, 그것만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그렇게 말씀하실 때의, 인간적 상황을 감정을 살펴야 합니다.
종종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본문으로 선택해서 설교하는데,
그 본문의 인간적인 배경 감정 을 무시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니까 설교나 성경공부가 지루하게 됩니다.
저를 우리를 사로잡는 것은, 우선은 성경의 인간적 측면입니다.
그 측면은 종종 유머스러운 것이기도 합니다.
제 말은, 성경에서 가장 재미있는 구절은
‘아침에 깨어나서 보았더니, 보라, 레아였더라’입니다.
야곱이 신혼여행 중에 첫날 아침에 깨어나서 보고 소스라치게 놀랐습니다.
못 생긴 자매를 아내로 얻은 것입니다. 회중들 하하하 웃음
만약 이런 일이 여러분 자신에게 일어났다면,
여러분은 결코 웃지 못하실 것입니다.
그러나 이런 일이, 여러분의 친한 친구에게 일어났다면, 여러분은 웃겠지요.
성경은 이렇게 재미있다는 것입니다.
이런 것이 바로 성경의 ‘인간적 측면’입니다.
여러분이 성경에서 인간적 측면에 이끌리시면, 여러분은 웃을 것입니다.
성경이 당신을 터치했고, 당신의 감정을 터치한 것입니다.
그때 신령한 말씀이 당신에게 다가오는 것입니다.
성경에, 모든 사람을 잘 속이고, 자기 아버지까지 속인 사람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이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둔다’고 말씀하십니다.
그런데 결국 자기가 속임을 받았습니다. 여러분도 아시죠?
그러면서 갑자기,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신령한 말씀을 받는 것입니다.
제 생각에, 성경은 이렇게 접근하는 것입니다.
먼저는 인간적인 흥미를 가지고,
그 다음에 신령한 말씀이, 그 인간적 흥미 위에 더해지는 것이지요.
이렇게 할 때, 성경이 우리에게 생생하게 살아있는 말씀으로 다가옵니다.
여러분이 성경을 한 구절만 빼내서 읽거나,
몇 구절씩만 골라서 읽어서는, 그런 살아있는 말씀으로 못 느낍니다.
여러분은, 성경을 한 권씩 통째로 읽어야 하며,
그 책을 쓴 사람을 읽어야 하며, *인간적 상황과 감정을
무슨 일이 진행되는지, 무슨 일이 일어나고 있는지,
그들의 당시 느낌이 어떠한지.. 마치 소설처럼 읽으면, 성경에 빠져들게 됩니다.
◑그럼 이제 에스겔서의 상황을 살펴봅니다. 13:50~
이스라엘 10지파가 앗수르로 포로로 잡혀간 지 오랜 후에, *약137년 후에
그 10지파가 선지자 아모스와 호세아의 예언을 무시했다가 그 땅에서 사라진지 약 백 여 년 후였습니다.
지금 우리는 남쪽 두 지파를 살펴보고 있는데, 당시 그들의 상황은 북쪽보다 더 나빴습니다.
사람들이, 동족 10지파가 징계로 없어지는 것을 보고서도,
똑같은 일을 그들이 행했다는 것을, 믿을 수 있겠습니까? 당신은 그런 일을 믿을 수 있습니까?
그건 사람의 본성 중에, 강퍅하고 완악한 면이 있다는 뜻이지요.
그래서 사람은, 교훈을 배우지 못하는 것입니다.
누군가 말하기를 ‘역사는 반복된다’고 했지요.
사람들이 귀를 막아버릴 때, 그렇게 반복되지요.
그리고 우리가 역사를 통해 배우는 한 가지는,
“사람들은 역사로부터 아무 것도 배우지 못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반복하지요.
만약 남유다가, 10지파를 보면서,
그들이 선지자의 경고를 무시하다가는
자기들도 망할 수 있다는 역사의 교훈을 배웠더라면 좋았을 것을.. 배우지 못했지요.
그래서 남유다도 계속해서 보내진 선지자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남쪽에는 두 작은 지파가 있었는데, 합쳐서 ‘유다’라고 불렀지요.
베냐민 지파는 작았고, 유다지파는 조금 컸는데, 예루살렘이 중심이었습니다.
그들 두 지파는 이사야의 예언을 무시했습니다.
사실 이사야가 선포할 때, 그들은 더욱 강퍅해 졌지요. 하나님의 예언대로
그래서 그들은 그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남유다 사람들은 ‘우리는 그 사람 이사야 에게 싫증났다’고 말하였지요.
그들은 또 한 사람, 미가 선지자를 무시했습니다.
(나중에 우리가 때가 되면 미가서를 보겠습니다만)
그들은 예레미야 선지자도 무시했습니다.
예레미야는 고난의 삶을 살았는데, 그들은 모두 말하기를
‘늙은 예레미야가 또 나타났네’ 하면서,
그의 이름은 말거리가 되었는데, 사람들을 우울하게 만든다는 것입니다. ‘오 그는 예레미야 같군!’
그것은 비극이었습니다. 사람들은 그를 빗자루로 쓸어서 내다 버렸습니다.
또한 그들은 하박국도 무시했는데, 그는 짧게 예언했지만 강력한 선지자였습니다.
그들은 그 역시 무시했습니다.
그 결과, 최후로 가장 무서운 일이 일어나고 말았습니다.
▲그 당시에 불쾌한 죄만 계속되었던 것은 아닙니다.
밝은 시절도 한 두 번 있었습니다.
요시야 라는 왕이 있었습니다. 그런 8살 때 왕이 되었는데요,
그때 놀라운 발견이 있었지요.
그는 성전 봄맞이 대청소를 명령했어요.
그동안 성전이 무시되어져서, 매우 더럽고, 칠이 벗겨져 있었어요.
그래서 그는 ‘우리가 예산을 책정해서, 성전을 새롭게 단장합시다.’라고 말했어요.
그렇게 청소하다가, 그들은 오래된 장롱 속에서, 모세 오경을 발견했어요. 정말 놀랍지요?
그들은 이제까지 제사를 드리고 있었지만, 음악 위주의 제사였어요.
성경은 장롱 속에 던져져 있었지요. 이런 일이 오늘날에도 똑같이 일어나고 있어요.
그들은 예배를 드리면서, 음악을 연주하고 춤을 추는데,
모세의 율법은, 먼지가 잔뜩 낀 장롱 속에 들어있었다는 겁니다.
누군가 그것을 발견하고, 왕에게 가져왔어요.
왕은 ‘내 앞에서 읽으라’고 하였지요.
그 모세오경이 읽어지자, 요시야 왕은 그걸 믿을 수 없다며 놀라며 이렇게 말했지요.
“우리가 재앙을 향하여 가고 있다는 것을, 여러분은 깨닫습니까?
우리는 지금 빨리 나라를 깨끗하게 해야 합니다.”
그래서 당시 행해지고 있던 모든 종류의 더러운 것들,
특별히 예루살렘 바로 바깥에 힌놈의 골짜기에서
그들은 자기 자녀들을 몰렉에게 제사하고 있었지요.
성경은 ‘요시야가 힌놈의 골짜기를 훼파했다’고 말씀하는데,
거기는 신약의 게헨나로 알려진 곳입니다.
예수님은 그 곳을, 그 후 영원히 지옥의 그림으로서 사용하셨습니다.
그래서 이런 밝은 시절도 있었고, 그 개혁은 트릭은 아니었습니다. 성공은 못했지만, 진실이었다는 뜻인 듯
사실 요시야는 큰 실수를 범했습니다.
그는 당시 세계의 교차지역인 므깃도에 나가서 전투를 했는데,
거기서 애굽의 바로에게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 선한 청년 왕은, 거기서 사라졌지요.
▲그 다음 왕은 여호아하스 입니다.
그는 석달만 통치했습니다. 그는 악한 왕이었어요.
결국 바로는, 그를 붙잡아서 립나로 데려가서, 그를 쇠사슬에 묶어서
이집트에 끌려가서 거기서 죽었습니다. 통치 후 석달 만에 그런 일이 있었지요.
▲그를 뒤이은 왕은 여호야김입니다.
그도 또 다른 악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요시야의 아들이었는데, 여호아하스의 아들이 아니라
그렇다면 뭔가 달랐어야 했는데, 선한 왕의 아들이고, 또한 여호아하스를 보면서
그러나 악한 왕이 되고 말았습니다.
그는 바로가 여호아하스를 폐위하고 대신에 세운 왕입니다.
실제로 여호아하스는 유다 백성들이 선택해서 세운 왕이었으나,
여호야김은 애굽에 의해 세워진 꼭두각시 왕이었습니다.
립나에서 사슬에 묶여서 애굽으로 끌려간 여호아하스를 대신해서 세워진 왕이었죠.
이때 느부갓네살이 침입했습니다. *애굽이 너무 좌지우지 하니까, 바벨론이 개입한 거지요
보십시오. 이 때는 동서의 큰 세력이 서로 힘겨루기 경쟁을 하던 시대였고,
바로 그 중간에, 유다가 끼어있어서 곤란을 겪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이때는 유다가, 특별히 애굽과 화친하고 있었습니다. 좋아서라기 보다는 어쩔 수 없이
그때 북동쪽의 강대국은 바벨론이었고, 바벨론은 애굽을 향해 진군해 오고 있었습니다.
그래서 작은 나라 유다는, 이 두 강대국 틈바구니 속에 점점 더 깊이 빠져들게 되었는데,
그것은 모두 그들의 잘못 때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 큰 강대국들을 저지시킬 수 있으신데도,
하나님은 유다를 위해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그들과 함께 하시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더 이상 그들에게 ‘임마누엘’이 아니셨습니다.
그래서 느부갓네살이 침략해 왔고, 유다를 3년 동안 컨트롤했고, 그러다가 다시 떠났습니다.
유다는, 사방에서, 연쇄적인 공격을 받고서 큰 고통을 겪었습니다.
바벨론이 다시 침입해 왔습니다. *아마 여호야긴 때? 2차 침공 597 BC, 이때 에스겔이 포로로 잡혀감
아람도 다시 침입했습니다. 모압도, 암몬도 다시 공격해 왔습니다.
그 결과, 이 당시 하나님의 백성들이게 오직 한 도시만 남게 되었습니다.
나머지 유다 족속, 베냐민 족속의 모든 지역이 다 점령당했습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남은 유일한 한 도시는, 예루살렘이었고
그 외 나머지 모든 지역은, 전부 침략자의 발에 짓밟혔습니다.
▲여호야긴은 석달만 통치했고, 이때 바벨론이 침략해서 매우 강력한 포위를 했습니다.
이때 처음으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주1)
(이 부분에 대해선 뒤에 좀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바벨론이 침입해서, 예루살렘을 포위했고요.
그러자 성안에 음식이 없었습니다. 그래서 2년 반동안이나 사람들이 굶었어요.
그러니 자연히 그 작은 성 안에 질병도 돌았지요.
결국 성은 적에게 넘어갔고, 모든 보물들이 바벨론으로 옮겨졌습니다.
여러분은, 히스기야 왕이 그 당시 작은 나라였던 바벨론 왕에게,
혹은 그의 친서를 갖고 온 사신에게, 보물을 다 보여줬던 일을 기억하시죠?
그때 이사야가 ‘당신이 그 사람에게 보여주었던 모든 보물들을 다 잃게 될 것입니다’라고 말했죠.
이사야가 말한 그대로, 이때 일어났던 것입니다.
게다가 포로로 데려갈 때, 상위층을 모두 잡아갔어요.
그건 피정복국의 국력을 감소시키기 위한, 당시에 잘 쓰던 전략이었습니다.
그 사회의 모든 상류층을 제거해 버리면, 그 사회가 힘을 잃게 되죠.
그래서 첫 번째 포로 송환이 발생해서,
7천명의 군 장교들과, 군인들을 잡아갔습니다.
그리고 모든 기술자들을 잡아갔는데, 약 1천명 정도 되었습니다.
그리고 많은 직공들도 약 1만명 정도 잡아갔고, 오직 가난한 빈민들만 남겨두었습니다.
이때가 다니엘이 잡혀간 때입니다. 이 부분은 나중에 다시 살피겠습니다.
이것이 첫 번째 포로송환 때이고
그 결과 이제 예루살렘에는 가장 가난한 사람들만 남게 되었어요.
그 모든 것은 하나님이 그렇게 행하도록 놔두신 것입니다.
마치 하나님이 모두 계획이 모두 수포로 돌아간 것처럼 보였지요. *구속사의 계획과 목적?
맨 마지막 왕은 시드기야입입니다. 예루살렘에서 왕으로 있었지만, 사실은 꼭두각시 왕입니다. *바벨론의
시드기야에겐 군사가 약간 남아 있었습니다.
그러나 다시 예루살렘은 포위되었고, 그 포위는 참으로 잔인했으며,
이것이 마지막 포위였습니다.
시드기야와 그의 몇 명의 군인들은 도망가기로 결정했습니다.
성의 모든 문들은 포위되어 있었고,
그래서 그들은 성벽에 구멍을 내고, 돌을 빼내어
밤에 한 사람씩 그 구멍을 통해 기어서 기드론 골짜기로 빠져나와 사해 방향으로 향했습니다.
그들이 여리고 평야 쯤에 도착했을 때, 느부갓네살의 군대는, 사태를 파악했습니다.
그들은 성벽에 구멍이 뚫린 것을 발견했고, 그들을 뒤쫓았습니다.
그리고 여리고에서 다 붙잡았습니다.
이때 그들은 시드기야 왕과 그의 아들들을 붙잡았고,
그 왕의 목전에서, 그의 아들을 하나씩 죽였습니다.
그래서 그는 왕의 후계가 끝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그들은 시드기야의 눈을 뽑아버렸습니다.
그래서 그가 마지막으로 본 장면은, 자기 아들들이 죽임을 당하는 것이었고,
결국 그는 끌려갔습니다.
그때 느부갓네살은 예루살람을 철저히 파괴하도록 명령했습니다.
그래서 모든 건물을 불에 탔고, 또는 무너져 내렸으며, 성벽도 무너져내렸고, 예루살렘은 황폐되었습니다.
◑이 모든 시간에, 에스겔은 살아있었습니다. 22:42~
이것이 에스겔서의 역사적 배경이었습니다.
그가 항상 예루살렘에 있었던 것은 아니지만,
그는 바벨론에서 2차포로로 먼저 잡혀와서 예루살렘의 상황을 환상으로 보았습니다.
그의 살아생전에 예루살렘이 벌거벗겨져 망해 버린 것입니다. BC586년경
그건 이미 예고된 것이었습니다. *재고목록에 든 것이었습니다.
에스겔서의 전반부를 읽으면, 그가 독자를 우울하게 만드는 선지자임은, 이상할 게 없습니다.
그렇지만 후반부에는, 그의 책은 흥미롭고 적극적으로 바뀝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지고 망하자, 그의 예언적 메시지들은 완전히 바뀝니다.
이전에는 멸망에 대한 경고이었던 것이, 이제는 위로와 미래의 희망으로 바뀌는데,
그래서 설교자들이 에스겔서를 설교할 때는, 항상 후반부에서 주로 합니다.
왜냐하면 후반부의 내용이, 낙관적이기 때문입니다.
▲이제 다 벌거벗겨져 망한 상황에 대응하는 에스겔의 생애를 살펴봅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모든 역사를 살펴보기 원하면,
열왕기하 22~25장을 함께 읽으세요. 그 부분이 이 시기의 역사적 배경을 알려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선지서를 읽을 때는, 열왕기서와 역사서를 같이 읽고자 하는 생각을 가져야 합니다.
그러면 당신이 배경을 이해할 수 있습니다. ‘이게 선지서의 역사적 배경이구나’ 하면서요.
저는 역사가 따분한 것인줄로만 알았어요.
제가 학교다닐 때, 제일 재미 없어 했던 과목이 ‘역사’였습니다.
그런데 지금은 제가 역사를 매우 재미있어 합니다. 정말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당신의 목적을 역사속에서 펼쳐 나가시니까요. 그걸 제가 보니까요.
학교에서 그런 걸 제게 가르쳐주지 않았어요.
학교에선 그저 전쟁과 왕들과 여왕들에 대해서, 우리가 배워야 한다고 했지요.
그러니 제가 지루하게 여겼던 거지요.
그런데 이제 에스겔서를 보십시오.
그는 하박국과 다니엘과 동시대 사람입니다.
다니엘은 사실 에스겔이 생각하던 영웅 중 한 사람이었어요.
여러분이 에스겔서를 읽어보면, 그가 다니엘에 대해 말하기를
‘그는 위대한 세 사람 중에 한 사람이다. 역사에서 가장 의로운 사람이다’라고 말합니다. 14:14, 20
노아와 욥이 다른 두 사람이었어요.
그들은 에스겔이 생각한,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세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항상 이 세 사람을 언급했어요. 노아, 욥, 다니엘,
역사 속에서 가장 최고의 세 사람이라고요.
▲이제 에스겔을 살펴보겠습니다.
에스겔이란 단어의 뜻은 ‘하나님이 힘 주신다’입니다.
그것은 정말 필요한 것이었습니다.
그는 이 책에서 또 다른 이름으로 83차례나 불리웠는데,
후에 예수님이 자신을 가리켜, 그 호칭을 사용하신 “인자”입니다. Son of man
다른 어떤 선지자도, 하나님에 의해 ‘인자’로 불리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 책을 통해서, 하나님은 83차례나, 에스겔을 ‘인자야, 인자야’하고 부르셨습니다.
이 호칭은, 에스겔을 제외하면 성경에 오직 예수님에게만 사용되었습니다.
이 호칭은 아주 흥미로운데요.
왜 이 호칭으로 그를 불렀는지는, 우리가 에스겔서를 공부해 나가면서 살펴보겠습니다.
그래서 에스겔은 주전 622~623년 경에 태어났습니다.
당시는 선한 왕, 소년 왕이 다스릴 때였는데, 그는 8세에 왕위에 올랐지요.
그는 예레미야와 동시대 사람입니다.
예레미야와 요시야 왕은 같은 나이입니다.
그들은 같이 자랐지만, 나이가 같으며
우리가 아는 한, 그 두 사람은 서로 언급한 적이 없습니다.
예레미야는 우리가 부르는 ‘요시야의 개혁’을 무시한 것 같습니다.
제 생각에 그 이유는, 예레미야가 그 개혁을 보니까, 피상적인 개혁이었습니다.
위에서 명령으로 내려오는 개혁이었지요.
위에서 명령으로 내려오는 개혁은, 길게 가지 않습니다.
사람들은 의회의 법령 제정으로 바뀌어지지 않습니다.
사실 예레미야가 보니까, 사람들은 바뀌어지지 않았습니다.
비록 왕이 모든 이방 제사를 금지해도, 사람들은 여전이 그걸 원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레미야가 요시야의 개혁을 비관적으로 본 이유입니다.
자기가 정부에 의해 개혁이 되어지는 그 시기에 살았지만 말입니다.
여기서 크리스천들이 배워야할 교훈이 있습니다.
그저 좋은 법안만 통과시킨다고 다 되는 것은 아닙니다. 그것도 필요하지만요
궁극적으로 개혁은, 사람들이 원해야 되고, 그래야 개혁이 되는 겁니다.
아무리 주일날 상거래를 불법으로 법을 정한다 하더라도,
만약 사람들이 주일날에 상거래를 원하면, 그들은 하게 됩니다. 제 말뜻을 이해하시지요?
위에서 아래로 내려오는 변화도 있겠지만,
진짜 개혁은, 아래에서 위로 올라가는 개혁입니다.
법을 통과시키는 것은 맨 나중이고요. 사람이 변하고, 법도 변하는 것입니다.
다른 방식으로는, 실제로 법이 작동되지 않습니다.
어쨌거나 에스겔은, 하박국과 다니엘과 동시대 인물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태어났고, 자기 나라에서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는 25세에 잡혀온 이후, 고국을 다시는 보지 못했습니다.
그는 다니엘과 함께 1차 포로 때 잡혀 왔습니다.
1차 포로 송환 때는, 상류층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 왔습니다.
그는 제사장 가정에서 태어났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독특한 사람 에스겔을 보는데,
그는 선지자의 역할과 제사장 직을 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아마도 그게 그가 ‘인자’로 불린 이유일 것입니다. son of man. *예수님을 예표해서, 겸직으로
여러분이 구약성경의 역사를 공부하시면, 3부분으로 크게 나눠져 있습니다.
-모세로부터 사무엘까지는, 선지자들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그 다음에 사울부터 시드기야 까지는, 왕들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그 다음에는 스룹바벨부터 안나스와 가야바까지, 제사장에 의해 다스려졌습니다.
이스라엘의 역사를 간단히 보면 그렇습니다.
이스라엘은 먼저 선지자에 의해 다스려졌지만,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다음에 왕들에 의해 다스려졌지만, 역시 제대로 되지 않았습니다.
그 후에는 제사장들에 의해 다스려졌지만, 역시 안 되었습니다.
그래서 이제 그들이 필요하게 된 분은,
선지자와, 왕과, 제사장 직을 합친 한 분이었습니다.
그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그렇지만 에스겔은, 선지자와 제사장직을 통합한 독특한 역할을
약간 미리 보여주었습니다. 예수님의 예표로
비록 그는 제사장 직을 한 번도 수행하지는 못했지만요. *제사장은 세습직
제사장은 30세가 되어야, 성전에서 제사장으로 섬길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25세에 포로로 잡혀왔으니까요. 바벨론엔 성전도 없었죠
여러분이 이 점에 흥미를 가지시기 바랍니다.
그래서 예수님도 30세에 공생애를 시작하신 것입니다. 대제사장이시니까
그 나이가 바로, 제사장이 직무를 시작하는 나이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목수 일을 하시면서, 하나님의 때 30세 가 되기까지 기다리셔야 했습니다.
에스겔은 한 번도 제사장 직을 수행하지 않았는데요,
왜냐면 그는 이스라엘에서, 성전에서 붙잡혀 와서 그랬습니다.
바벨론에서는 제사를 한 번도 드릴 수 없었습니다. 성전도 없었으니까요
그러나 대신에 그는 선지자가 되었는데,
그는 매우 좋은 제사장 집안 출신이었습니다. 바로 사독 제사장 가문이었죠.
아세요? 영국의 왕비나 왕이 웨스트민스트 대성당에서 대관식을 할 때는,
그들은 ‘제사장 사독’이란 음악을 연주합니다.
사독이 아직까지 존재해 내려오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이 사독 가문이고, 그러니까 매우 특별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25세에 그 사회의 상류층들과 함께 포로로 붙잡혀 왔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의 정착지에서 자유가 허락되었습니다.
그들은 어떤 문제도 일으키지 않아서, 그들 유대인 포로들은 자기들의 작은 마을을 세울 수 있었고,
에스겔도 그곳에서 ‘수로’ 근처에 정착했습니다. *canal : 수로, 운하
(제가 그 수로 사진을 가져왔는데요, 윗 그림은 무시하세요.
윗 그림은 좀 있다 살펴볼 것입니다.) *화면의 아래 그림이 수로 사진
그들은 이 수로 근처에 정작했는데, 이 수로는 티그리스와 유브라데 강과 연결된 것이었습니다.
당시 메소포타미아의 이 큰 두 강에는
관계시설 (수로 이용 물 대는 시설) 과 수로의 운항 시스템이 갖춰져 있었습니다.
메소- 중간, 포타미아-강, 그래서 메소포타미아는 ‘강 중간에’,
즉 ‘두 큰 강 사이에’ 라는 뜻입니다.
사진의 이 수로가 ‘그발 강’인데, 그들 유대포로들은 델아빕 이라는 지역에 정착하도록
허락받았습니다. 이곳은 유명한 지명이죠. *3:15
그들은 델아빕 이라는 곳에 정착했습니다.
지금 이스라엘에는 텔아비브 라는 현대적인 큰 도시가 있는데,
에스겔이 그발 강가에서 살았던 작은 마을 이름을 따른 것입니다.
그래서 그는 델아빕에 자기 가족과 함께 정착했습니다.
그는 결혼한 몸이었습니다. 제사장으로서 결혼할 때는,
반드시 처녀 또는 제사장의 미망인과만 결혼해야 했습니다. *율법에
제사장은 일반 과부 또는 이혼한 여자와는 결혼할 수 없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미 결혼한 몸이었고, 나중에 아내가 죽는 것을 봐서 알지요
그는 아마 상업을 했을 것입니다. 먹고 살아야 했으니까요
그러나 30살에, 그가 자기 제사장직의 시작을 선언해야 할 때,
그는 선지자로 부름을 받았습니다.
그는 가장 놀라운 하나님에 대한 환상을 보았고, 겔1장
우리가 다음 시간에, 그에 대해 살피겠습니다.
그러면서 그는 선지자 사역을 시작했습니다.
그가, 이사야처럼, 하나님을 보았는데요.
그러나 에스겔이 본 하나님의 모습은, 이사야가 본 것과는 많이 달랐습니다.
그건 정말 이상한 환상이었습니다.
그 후 3년 동안, 그는 자기의 주된 사역을 하게 됩니다.
그의 나이 30~33세 사이였지요.
이 시기에 그는 기적을 행하고, 말씀을 선포했습니다.
이 인자(에스겔)가, 자기 사역을 30~33세 사이에 주로 했습니다. 흥미롭지요?
▲그의 사역에는 중간에 긴 갭이 있습니다. 32:34~
그가 아무 것도 하지 않고 있을 때, 하루는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이렇게 말씀하셨습니다.
‘네게 좋지 않은 소식을 알려주겠다. 그런데 너는 절대 울면 안 된다.
네 아내가 아침에 죽을 것이다.’ *겔24:16~18, 저녁에
그래도 울지 말아라. 왜냐면 그녀가 죽는 그 순간에, 예루살렘이 함락될 것이다.
*지금 에스겔은 바벨론 그발 강가에 있고, 거기서 예루살렘 함락 예언 받음
‘에스겔아, 이것을 네 책에 기록하여라. 네 아내가 죽는 날짜를 기록해 두어라’
몇 주 후에야, 한 전령이 달려서 예루살렘에서 바벨론으로 왔습니다.
그가 말하기를 ‘예루살렘이 함락되었습니다.’
에스겔이 ‘언제요?’
전령은 ‘몇날 몇일에요’
보니까 그가 자기 아내를 잃은 날과 일치했습니다.
이런 일을 통해, 에스겔은, 예루살렘이 함락될 때,
하나님이 느끼신 감정을 이해해야만 했습니다. 놀랍지요! *신부를 잃은 감정
▲수년 후에, 혹은 3년 후에 그의 아내가 죽은 후에
그는 예언사역을 다시 시작했습니다.
그때 그는 내내 침묵했습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시기를 ‘네 혀가 네 입천장에 붙을 것이다.
내가 네 혀를 풀 때까지, 너는 말을 하지 못하게 될 것이다.
내가 네 혀를 풀어주면, 그 때는 말하고, 예언해야 할지니라.’ 3:26
그래서 몇 해 동안, 그는 말을 못했습니다.
그러다가 하나님이 그의 입을 열어 주실 때, 그는 다시 말을 할 수 있었고,
그는 다시 예언을 해야 했습니다.
이 선지자가 살아간 삶을 보면, 놀랍지 않습니까?
수 년 동안 그는 말을 할 수 없었고, 하나님이 그의 입을 열어주셨을 때,
그는 다시 말할 수 있었습니다. 그때 그는 다시 예언해야만 했습니다.
처음에 3년 사역하고, 혀가 붙었다가 풀려서 그 후 1년 동안 그는 예언하고,
다시 자기 혀가 입천장에 붙었고, 그리고 혀가 풀려서 마지막으로 예언했습니다. *총3차의 기간
그래서 그가 예언한 기간은 3년, 1년, 그리고 몇 달입니다.
이 모든 것이 에스겔서에 기록되어 있습니다. 놀라운 사람입니다.
그가 50세일 때, 그에게 마지막 예언이 임했습니다.
그 예언 직후에 그가 죽었는데, 그는 바벨론에서 무덤에 장례되었습니다.
그 무덤은 지금 이라크에 있습니다. 이 사진이 그의 무덤을 찍은 사진인데요.
그 무덤은 키피라는 곳에 있습니다. 여러분이 바그다드에 붙잡혀 가시면(우스개소리) 볼 수 있는데요,
거기서 멀지 않은 곳 키피에서, 여러분은 에스겔의 무덤을 보실 수 있습니다.
거기가 그가 죽은 곳입니다. 그는 고국을, 또한 예루살렘을 결코 다시 보지 못했어요.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는, 아주 아름답고 놀라운 성전의 그림을 그렸는데요, 환상을 봄, 40~48장
이 성전은 결코 건축되지 않았지요. 여기에 대해서는 다음 시간에 공부하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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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주1)
파슨 박사는 이때를 1차 포로로 보고 있습니다. 더 연구가 필요합니다,
그런데 단1:1~3절에 보면, 다니엘이 여호야김 때 잡혀왔다는 식으로 말씀합니다. 주전 6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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