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분류 없음/David Pawson's Unlocking the Bible

에스겔 P3 / David Pawson

LNCK 2016. 1. 11. 17:38

 

 

에스겔 P3                                     영어 녹취록                      출처보기

   

자 에스겔서를 계속해서 열심히 공부해 보십시다.

지난 시간에, 에스겔 예언의 첫 부분인 4~24장을 살펴보았는데,

그것은 전적으로 예루살렘과, 그 도시의 소멸에 관한 것이었습니다.

유대인들은 벌어진 일을 믿지 못하였지요.

 

그러나 에스겔은 계속해서, 그런 일이 일어날 것이라고 예언했고,

실제로 그렇게 되어질 때 그때는 너희가 여호와인줄 알리라라고 말했습니다.

 

 

지금부터 그의 예언의 중간/두 번째 부분을 살펴보겠습니다. *3개 중에 두 번째 예언

 

이때는 그가 36~37세 때였습니다.

그러므로 첫째 예언과 둘째 예언 사이에는, 몇 년의 공백이 있습니다.

 

예루살렘이 패망하자, 모든 주변 국가들은 그것을 즐거워했습니다.

여러분이 힙 힙 후레이라는 말의 기원에 대해 아실지 모르겠는데요,

*, , 후레이 : 응원하는 소리. 한 사람이 hip, hip하고 선창하면 나머지 사람들이 hooray를 외침

 

여기서 은 예루살렘이 무너졌다는 말의 머릿글입니다. *Jerusalem Is Fallen.

그 응원 구호는, 반유대주의에서 기원한 말입니다.

예루살렘이 무너졌도다. 힙 힙 후레이!’

 

저는 그 구호가, 나를 망칠까봐 더 이상 말을 못하겠네요. *벌써 제가 두 번 말했지요,

그 구호의 기원이 예루살렘의 패망 입니다.

 

저는 염려스럽습니다. 예루살렘을 둘러싼 주위의 모든 나라들이 이렇게 말했을 거예요.

힙 힙 후레이, 예루살렘이 무너졌도다! 이제 우리가 이 유대인들을 제거해 버리자.”

 

그래서 그들은, 바벨론의 침공을 이용해서, 이득을 보려고 했지요.

그래서 에돔, 암몬은 패망 후 남겨진 유다 사람들에게 와서, 끔찍한 일들을 저질렀어요.

 

그 당시의 비통함이 일부 시편에 기록되어 있지요.

여러분은 시137편을 기억하실 겁니다. 그 시는 바벨론에서 지은 거예요.

*바벨론 말고도, 모든 지역에서 비슷한 느낌을 받았을 것입니다. 아래 7절에 에돔 자손을 치소서나옴.

 

   137:2. 그 중의 버드나무에 우리가 우리의 수금을 걸었나니

   우리가 이방 땅에서 어찌 여호와의 노래를 부를까

   그들은 바벨론에서 우리 노래를 듣기를 원하도다.

   그런데 우리가 어떻게 예루살렘과 멀리 떨어져서, 우리 노래를 부를까.

 

   그러면 내 혀가 내 입천장에 붙을지로다.

   내 오른손이 그의 재주를 잊을지로다.

   만약 내가 이방 땅에서 시온의 노래를 부르며 즐거워한다면.. *노래 부르며 즐길 수 없다는 뜻.

 

   그리고 시인은 다음과 같은 쓴 노래를 부릅니다.

   ‘네 어린 것들을 바위에 메어치는 자는 복이 있으리로다.’ 137:9

 

왜냐면 침략자들이 유대인 아이들의 발목을 잡고, 그 머리를 예루살렘 성벽에 메어쳤거든요.

그래서 시인이 그렇게 노래한 겁니다.

너희가 우리에게 대우한 대로, 누군가 너희들에게 그대로 대우할 것이다.’

 

에스겔 예언의 이 중간 부분은, 하나님이 이스라엘 주변국들에 대해,

그들이 예루살렘의 패망 때 덩달아 착취한 것을, 갚으시겠다는 내용입니다.

 

그 중에 어떤 예언은 아주 상세한데요. 한 예언을 살펴보겠습니다.

이것은 에스겔이 두로의 패망을 예언한 부분인데요. 26~28

 

두로는 원래 지중해 동쪽 연안에 위치한 어촌 항구였습니다.

해변에서 반 마일 떨어진 곳에 섬이 하나 있었지만,

두로 시가지는, 팔레스틴 육지에 형성되어 있었고, 어촌 마을이었습니다.

 

에스겔은 예언하기를, ‘날이 이르면, 두로는 땅에서 들려서

성읍 전체가 바다에 빠뜨려질 것이고, 원래 두로 성읍이 있었던 자리는

어부들이 그물 말리는 곳이 될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이 예언은 좀 특이했습니다. 왜냐하면 역사상 그 어느 도시도

바다로 던져진 예가 없거든요. 그런 일이 없었는데, 그러나 두로는 그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알렉산더 대제가 군대를 이끌고 애굽으로 진군해 내려갈 때,

두로 시민들은, 자기들의 고기잡는 배를 이용해서,

해변에서 반 마일 떨어진 섬으로 모두 도피해 갔습니다.

알렉산더는 육군만 있었지, 해군은 보유하고 있지 않다는 사실을 알았던 거지요.

 

그들은 알렉산더가 괜히 대제 the great로 불린 줄로 알았습니다. *진짜 위대한 줄 몰랐습니다.

그 섬으로 피난 간 사람들은, 자기들이 안전하다고 생각하는 것을 보고,

알렉산더가 명령했지요. ‘원래 두로 성읍을 바다로 던져서, 그 섬으로 가는 길을 만들어라.

우리는 그 길을 통해 섬으로 진입할 것이다.’

 

그래서 그들은 두로의 모든 벽돌과 돌과 목재들을 거두어서

바다를 메워서, 그 섬까지 미치는 길을 만들었지요.

그래서 두로를 치고, 그들을 정벌했습니다.

 

그래서 여러분이 지금 지도를 보시면,

두로는 섬이 아닙니다.

 

실제로 알렉산더가 만든 길 위로 모래가 더 모아져서, 육지와 완전히 붙어버렸죠.

그래서 해안선이 옛날처럼 직선이지 않고, 해안선이 혹처럼 솟아나와 있습니다.

두로가 그 곶에 자리잡고 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과거에 두로가 있었던 자리, 그 육지 지역에 가 보시면,

거기엔 돌무더기만 있습니다.

그 돌무더기 위에는, 오늘날에도 그물을 펼쳐놓았죠. *예언대로 되었습니다.

 

이런 일이 일어날 확률은, 75백만 대 1 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수 백 년 전에 그런 일이 일어나리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리고 그는 애굽에 일어날 일도 예언했습니다. 29~32

그는 유다의 모든 인접국에 대해 어떤 일이 일어날는지 예언했는데요,

실제로 그렇게 되었습니다.

 

유다 동쪽의 암몬, 모압, 에돔에 대한 예언도 나옵니다. 25

여러분이 만약에 페트라에 가 보셨다면, 아니면 페트라 사진을 보셨든지

거기 세일 산을 보셨을 겁니다.

 

여러분은, 에돔이 에서의 후손임을 아시죠?

이것은 먼 옛날 야곱과 에서의 관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그래서 유다와 에돔의 관계가 안 좋았죠.

마치 이스마엘과 이삭의 관계가, 오늘날의 아랍과 이스라엘의 관계가 된 것처럼요.

 

여러분이 역사를 아시면, 지금의 중동 사태도 이해하실 겁니다.

 

그의 예언은, 유다 나라 서쪽에 블레셋,

북쪽에는 두로와 시돈

남쪽에는 애굽을 언급합니다. *동쪽에는 모압, 암몬, 에돔

 

사실 그는 중간의 유다를 중심으로 해서, 컴퍼스로 박스를 원을 그리고 있습니다.

그리고 예언합니다. ‘이 모든 일이 일어날 때, 그들은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그의 예언의 중간 부분(두 번째 예언), 매우 직설적이기 때문에,

자세한 설명이 필요 없습니다.

다만 중간에 한 사람이 돌출되어 나오는데,

지극한 교만의 예로서, 두로 왕이 나옵니다.

 

많은 사람들은, 28 장에서, 두로 왕의, 즉 사탄의 교만을 알고 있습니다.

이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마귀와, 순전한 교만의 극치인 두로 왕 사이에는, 연관성이 있습니다.

 

두로 왕은 말하기를 나는 하나님이다28:2

애굽의 바로 왕도 같은 말을 했는데,

여기 에스겔서에서 바로가 말한 바는 놀랍습니다. ‘내가 나일 강을 만들었다.’ 29:3

 

바로가, 관계수로를 만들기 위해서, 땅을 좀 팠을 수는 있지요.

그러나 그는 말하기를 나일 강은 내것이다. 내가 만들었다.’ 28:2

 

보십시오. 사람이 교만의 정점에 올라가면, 자기를 창조하는 신으로 생각합니다.

그래서 자기가 모든 걸 다 만드는 줄로 알아요.

창조주 흉내를 내는 것, 그것이 교만의 정점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 앞에서, 절대 그런 교만의 티를 내면 안 됩니다.

오히려 그 자리에서 떠나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의 교만을 절대 참고보시지 않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하나님 행세를 한다면, 그건 큰 죄악입니다.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의 죄도, 하나님처럼 되려 했던 것이지요.

 

그들은 이미 이미지로는 하나님의 형상으로 만들어졌지만,

그러나 그들은 능력과 권세 면에서, 하나님처럼 되려했고,

하나님의 인격만 닮는 것으로는, 만족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벌 받았죠.

 

   이 단락은 그냥 빨리 지나갑니다.

   왜냐면 성경에 명확히 나오기 때문에 설명이 거의 필요 없습니다. *주변국의 징벌에 관한 부분

 

저는 이 강의에서, 지금 여러분께 성경공부를 시키는 것이 아니고,

여러분이 성경을 읽고 이해하도록 돕고 있습니다. *배경이나 줄거리를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때, 어려움을 만나게 되는데,

제가 그걸 설명해주고, 그래서 여러분이 성경을 읽을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이

이 강의의 목적입니다. 그래서 넘어갑니다.

 

 

예루살렘 회복의 기쁜 소식 예언                      

 

예루살렘은 587 BC에 함락되었습니다.

이때부터 에스겔의 선포는, 완전히 바뀌게 됩니다.

즉 비관주의에서, 이제 낙관주의로 바뀝니다.

 

주변국들이 벌 받는다는 예언은, 유다 나라에게는 꽤 좋은 소식이었습니다.

그렇지만 진짜 좋은 소식은, 이제 그들은 바벨론 포로에서 고국으로 돌아온다는 것입니다.

그런 내용의 예언이죠. 정말 흥분되지 않습니까, 그렇지요? ‘드디어 우리는 집으로 돌아간다.’

 

   여러분이 병원에 입원해서, 환자복으로 갈아입고 여러분의 옷이 치워지면,

   정말 기분이 꽝이지요? 여러분은 이제 나는 외부와 친구와 단절되었구나!’

   그러다가 의사가 말하기를 이제 오늘 집으로 가셔도 됩니다.’

   이렇게 집으로 돌아가는 일은, 얼마나 즐겁고 기쁜 일입니까!

 

자 지금부터 집으로 돌아온다는 기쁜 소식을 살펴보십시다.

이것은 매우 긍정적이고, 낙관적이며, 좋은 소식입니다.

 

그래서 에스겔서에서 33~39장은, 매우 인기가 좋습니다.

거기엔 좋은 소식들로 가득 차 있습니다.

 

그런데 그 중에 33, 매우 중요한 장입니다.

이 장은 파수꾼에 관한 내용입니다.

 

파수꾼이란, 도시의 성벽 위에 서서, 밤낮으로 지평선을 지켜보고 있습니다.

그의 임무는, 어떤 공격이 다가오면, 도시에 경고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경계 서는 일이 네 임무이다. 내가 너를 파수꾼으로 세웠다.’

 

파수꾼으로 임명된 자가 치를 대가가 있습니다.

만약 경계병이, 적군이 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고 잠을 자고 있으면

그 대가는, 자기 목숨을 잃는 것입니다. 이것은 아주 중대한 범죄입니다.

 

제가 들은 얘기인데요, 한 영국 군인이 진지에서 보초를 서다가,

그 초소에 선 채로 벽에 기대어 잠시 잠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눈을 떠 보니, 지휘관이 바로 자기 앞에 서 있었습니다.

그러자 그 군인은, 다시 눈을 잠시 감고는 아멘이라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 지휘관은 훌륭한 친구이군, 계속 근무하게나.’ 라고 말했다고 합니다.

제 생각에, 그의 순발력은 정말 메달 감입니다. 그는 정말 재빨리 대처했거든요.

 

만약 당신이 보초병이고, 당신이 잠들었거나

혹은 당신이 보초병인데 다가오는 위험을 전혀 보지 못하고 있었다면,

당신은 그 책임으로 목숨을 잃게 될 것입니다. *파수꾼의 책임이 그만큼 중요합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십니다. “파수꾼아, 만약 네가 내 백성에게 경고하지 않아서

문제가 생긴다면, 너는 네 피값을 치르게 될 것이다.

 

그러나 만약 네가 그들에게 경고하면, 너는 책임이 없다.

그들이 경고를 듣고도 대비하지 않았으면, 그들이 자기 피값을 치를 것이다.”

이것이 파수꾼이 되는 대가입니다.

 

에스겔서에서 가장 유명한 구절 중에 하나는, 하나님이 말씀하시기를

내가 틈을 막아설 한 사람을 찾다가 찾지 못하였다입니다. 22:30

 

에스겔이 바로, 그 틈을 막아 설 사람이었습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당시에 예루살렘에 없었습니다. 그는 바벨론에 와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는 파수꾼이었고, 그는 재난(예루살렘 함락)이 다가오는 것을 보았던 것입니다.

그걸 경고하는 것이, 그의 책임이었습니다.

 

만약 그가 그 경고를 하지 않으면, 그는 자기 피로써 그 값을 치러야 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보면, 그에게는 다른 선택이 없었습니다.

사람들에게 맞아 죽더라도 자기 파수꾼의 사명으로 계속 경고하는 것뿐이었습니다.

만약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책임을 져야 했습니다. *하나님께 맞아 죽습니다. 피값!

      

34장은 선한 목자와 악한 목자에 관한 예언입니다.

이스라엘에 악한 목자들이 있다는데, 그들은 선지자, 제사장, 왕들을 뜻합니다.

 

그들은 이스라엘을 돌봐야 하고, 돌보았으면 좋았을 것을

그렇지 않았던 악한 목자들입니다.

 

34장 끝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그들에게 선한 목자가 되어 주겠다.’

 

예수님도 똑같은 말씀을 하셨지요. ‘나는 선한 목자라

예수님이 나는 선한 목자라고 말씀하실 때,

그분은 자신과 악한 목자들을 대조하여 말씀하신 것입니다. *34장을 인용하셨다고 볼 때, 그렇습니다.

 

당신이 선한 사람이라면, 거기에는 주위에 악한 사람들이 있다는 것입니다.

10장에서 예수님은 선한 목자에 대해 말씀하실 때,

주님은 겔34장을 염두에 두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것이 실제적인 문제의 원인이었습니다.

성경은, 양떼의 상태에 대해서, 결코 양들을 비난하지 않습니다.

 

이 원리는, 오늘날의 교회에도 똑같이 적용되는 원리입니다.

목자들은, 양떼의 상태에 대해 책임이 있고, 양떼가 책임이 있는 게 아닙니다.

 

그러므로 유다 나라가 대한 망하게 된 전적인 책임은,

나라의 지도자들에게 있었습니다.

 

건너 뛰어 37장으로 갑니다. ‘마른 뼈들아, 마른 뼈들아로 유명한 장이죠.

*dem bones, <them bones <those bones에서 파생된 말/노래인데, 37장의 뼈들을 가리킵니다.

 

모든 사람들은 이 뼈들에 대해 압니다. 37:1~14

왜냐하면, 이 내용으로 노래가 지어져서 불리기 때문입니다. *한국에선 안 부름

 

그렇지만 소수의 사람들만 37장에 나오는 두 막대기까지 알고 있습니다.

이 예언의 내용도 중요합니다. 37:15~28

 

에스겔은 이런 말씀을 들었습니다.

두 나무 막대기를 취하여, 그 둘을 한 손에 쥐고서, 하나의 막대기가 되게 하라

 

에스겔이 그대로 했습니다.

그 직전에 하나님은 말씀하시기를 한 막대에는 에브라임이라 쓰고,’

에브라임은 북쪽 10지파를 대변하는 이름입니다.

다른 막대에는 유다라고 쓰라.’ 남쪽의 두 지파를 대변하는 이름입니다.

 

'그 두 막대를 네 손에 함께 쥐면, 그 두 막대기가 붙어서 하나가 되는 것을 보게 될 것이다.'

 

혹자는 생각하기를, 이걸 거저 환상이라고 여깁니다.

그러나 저 파슨은, 모세의 지팡이 기적처럼, 이것은 그대로 기적으로 붙었다고 생각합니다.

 

에스겔이 두 막대를 쥐자, 한 막대기가 되었고, 이때 하나님이 말씀하셨습니다.

내가 다시 한 민족으로 만들겠다. 그리고 내가 그들의 목자가 되겠다.’

 

이렇기 때문에, 예수님은 우리에 들지 않은 다른 양들이 있다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10:16 

내가 그들을 모두 데려올 것이다.그들은 한 무리가 되어, 한 목자아래 있으리라.’ 10:16b

 

이 모든 것이 37장에 나옵니다.

마른 뼈’(1~14)만 보지 마시고, ‘막대기’(15~28)까지도 읽으십시오.

이것을 꼭 기억하십시오.

 

 

몇 해 전에, 제가 작은 환상을 보았는데요.

제가 두 막대기를 보았습니다. 그들은 37장처럼 젓가락처럼 나란히 놓인 막대기가 아니라

두 막대기가 양손에 쥐어져서, 철사 줄처럼 길게 연결된 막대기였습니다.

 

그 한 막대기에는 은사주의적라고 써 있었고, charismatic

다른 막대기에는 복음주의라고 써 있었습니다. evangelical

저는 그 두 막대가, 하나님의 손 안에서 하나가 되는 환상을 보았습니다.

 

그 환상을 보고서, 제가 <4의 물결 Fourth Wave>이란 책을 쓰게 되었습니다.

그게 몇 해 전 일인데요, 제가 그 책의 집필을 끝내는데 몇 년 걸렸습니다.

그래서 이번 달 말에, 그 책이 드디어 출판됩니다. 방금 짧은 책 광고였습니다. 하하하

두 막대기가 하나님의 손에서 하나가 되는 환상이었습니다.

    

 

 

38장에는, 미래에 대한 이상한 예언이 나옵니다.

그건 아직 성취되지 않았는데요. *소위 곡과 마곡의 전쟁’ 38~39.

 

38장부터가, 우리의 현재와 미래 사이의 경계선인 것 같아요.

*38장부터 끝까지가, 지금 우리 시대부터 미래까지 이루어질 내용인 것 같아요.

 

이것은 곡과 마곡에 관한 예언인데요.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제게 묻지 마십시오.

저도 여러분께 상세히 설명하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예언대로 일어나면,

그때는 제가, 이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말씀드리겠습니다. *예언을 함부로 풀지 않겠습니다.

 

그런데 이 두 이름이, 계시록의 마지막에 다시 등장하는데요.

*20:8 나와서 땅의 사방 백성 곧 곡과 마곡을 미혹하고 모아 싸움을 붙이리니, 그 수가 바다의 모래 같으리라

 

그렇게 볼 때, 이 예언은 아직 성취되지 않은 것이 분명합니다.

북쪽으로부터 큰 군사적 충돌이 다가온다는 것이지요. *곡과 마곡이 북쪽에 위치, 38:15

 

우리는 마곡이 어디이며, 곡이 누구인지 모릅니다. *마곡은 땅 38:2, 곡은 인물 39:1

이것은, 우리는 알게 될 때까지 기다려야 하는 내용 중 하나입니다.

 

그러나 에스겔은 다시 망원경으로 미래를 바라보고서

그는 결코 이 예언이 성취되는 것을 보지 못했지만,

우리 역시 그 성취를 아직 보지 못하고 있지만,

 

그러나 언젠가는 반드시 성취될 것입니다.

세계 역사가 지금 점점, 최후의 충돌(전쟁)을 향하여,

잔뜩 준비 자세를 취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서에서 내내, 계속 반복적으로 나타나는 표현이 있는데,

모두 77번이나 나옵니다. 단 두 단어로 되어있는데요.

그게 무엇인지 여러분이 한 번 맞춰 보십시오.

 

그런데 두 단어는, 짧지만 영어에서 가장 긴 문장으로 말해집니다.

여러분들도 다 말했을 겁니다. 그것은 바로 내가 반드시 하겠다 I will’입니다.

 

 

이 문장 (I will) , 영어에서 가장 긴 문장입니다.

왜냐면 사람들은 죽을 때까지 종신형처럼 이 말을 계속 하거든요. *평생 말하며 산다는 의미에서 제일 긴 문장, 농담.

여러분, 방금 제 농담의 말을 이해하셨나요?

 

이 말은 결혼식 서약 때 하는 말입니다.

여러분은 죽을 때까지 'I will' 이란 말을 하고 싶지는 않겠지만,

결혼식 때는 즐겁게 'I will' 이라고 서약하잖아요.

이 말은, 언약할 때 선언하는 말입니다.

 

에스겔서에는 내가 반드시 하겠다 I will’는 말이 77번이나 나옵니다. *회복에 관한 장에서

내가 소망을 주겠다. 내가 너희 보호가 되겠다.

내가 선한 목자들을 주겠다. 내가 하겠다.. 내가 하겠다.. 내가 하겠다..’

 

여기서 하나님은 남편이시고, 다루기 힘든 아내에게 말씀하시는 겁니다.

우리는 여전히 결혼관계이고, 나는 내 편에서 언약을 여전히 지킬 것이다.

I will, I will, I will...’

 

저는 여러분이 성경을 읽다가 ‘I will’이란 부분을 찾으시면,

할 수 있으면, 성경에 표시를 해 두시길 바랍니다.

 

거기엔 하나님이 자기 백성에 대해전적으로 헌신하신다는

놀라운 감정이 담겨 있습니다.

그들은 범죄했고,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쓸어버리신 후에라도 말입니다.

 

여러분이 거슬러 올라가서, 시내산에서 하나님이 이스라엘과 언약을 맺으시던 때를 생각해 보십시오.

그때 하나님은 매우 흥미로운 말씀을 하셨습니다.

너희가 이 언약을 깰지라도, 나는 이 언약을 끝까지 지킬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신명기에 말씀하시기를

내가 너희를 약속한 이 땅에서 쫓아낼 때가 오더라도, 내가 항상 너희를 다시 데려올 것이다.’

 

그래서 오늘날 그들은, 그 땅에 되돌아 와 있습니다.

그러나 들어보십시오.

그들이 지금 되돌아 온 것이, 그들이 의롭게 살지 않아도 된다는 뜻은 아닙니다.

 

우리는 이스라엘을 무조건 적으로 지지하지 않습니다.

이스라엘은 여전히 하나님 앞에서 의롭게 살아야 할 책임이 있으며,

그들이 그들 접경 지역의 이방인과 나그네들을 어떻게 대할지 주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분의 속성은 변치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다시 던져버리실 수 있으십니다.

그러나 그들을 다시 되돌아오게 하시겠지만요.

 

이것이 바로, 에스겔서에서 하나님이 약속하신 내가 반드시 하겠다 I will’입니다.

하나님이 “I Will”이라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것은, 아주 소중한 것입니다.

'I will I will..' *성경에 많이 나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던져버리셨다가 다시 고국으로 데려오실 때,

그때 열방이 내가 여호와인줄 알리라

왜냐면 이 일은 매우 공개적으로 일어났고, 열방의 모든 사람들이

그들이 하나님의 기적으로 돌아왔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지금도 여전히 이스라엘의 주변국들은, 유대인들이 귀환하는 것을 좋아하지 않습니다.

하지만 유대인들은 돌아오고 있고요, 하나님은 그들을 돌아오게 하고 계십니다.

 

그들은 여전히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9~11장을 읽어보십시오.

그들은 혹시 하나님을 거부할 수 있지만,

그러나 하나님은 결코 그들을 거부하지 않으십니다.

 

하나님은 그런 하나님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이혼을 싫어하십니다. 2:16

이런 내용들이 아주 명확하게 에스겔서 이 부분에 예언되어 있습니다.

 

 

예루살렘에 성전이 회복되리라는 환상       

 

자 이제 마지막 부분을 살펴볼 터인데요,

어떤 의미로 보면, 가장 이해하기 어려운 부분입니다.

제가 대답을 드리기 보다는, 오히려 질문을 여러분께 남겨두겠습니다.

 

40~48장은 꽤 새로운 종류의 예언인데요.

포로로 잡혀온 지 25년째 되던 해인데, 40:1

에스겔은 자기가 예언할 때, 날짜를 기록해 두었습니다.

그래서 우리가 그 날짜를 보고서, 그의 예언을 재구성하고, 역사적 배경에 맞추어 볼 수 있게 됩니다.

 

성경이 예언을 기록하면서, 날짜까지 기록하고 있으면, 그건 매우 눈여겨봐야 합니다.

그것은 그 예언을, 역사에 맞춰보면서 이해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떤 예언들은 시간의 제약이 없습니다.

그러나 어떤 예언들은 시간에 드러맞는 예언들이며,

그래서 그 예언을, 역사에 맞추어 볼 수 있습니다.

 

그가 50세가 되었을 때, 그는 환상을 받게 되었는데,

이것은 전적으로 미래에 지어질 새 성전에 초점을 맞춘 환상이었습니다.

 

이 환상은 포로기의 후반기에 주어졌는데요. *포로 70년 중 33년 정도가 지난 시점에

그들이 고국에 돌아갈 때가 더욱 가까워졌을 때 주어진 것입니다.

 

이 부분(40~48)은, 모두 좋은 소식의 내용들입니다.

에스겔서의 첫 부분(4~24)이, 모두 안 좋은 소식의 예언들이었죠.

이 부분은 모두 좋은 예언이고, 그래서 그들에게 소망을 주었습니다.

  

   소망은 기독교인의 덕목 중에서 사실상 가장 무관심을 받는 영역입니다.

   믿음, 소망, 사랑이 같이 나오는데,

   그 중에서 가장 무관심한 부분이 바로 소망입니다.

 

   제가 믿음과 사랑에 대해서는, 오늘날 많은 설교를 듣습니다.

   그렇지만 소망에 대해서는 거의 설교를 못 듣습니다.

 

   그래서 제가 비디오 강좌를 만들게 되었는데요.

   그 제목은 최후에 일어날 사실들 The Final Facts”입니다.

 

지금 우리는 미래에 관한 측면을 놓치고 있습니다.

현재 일에 너무 사로잡혀 있기 때문입니다.

 

우리 기독교인은, 소망의 사람들이며, 내일을 지향하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에는, 장래에 대한 소망으로 가득 차 있습니다.

 

에스겔은, 포로로 잡혀온 사람들에게

그들에게 소망을 심어주지 않고, 뭔가 장래의 소망을 주지 않고

그의 예언 선포를 끝내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약속의 땅에서 쫓겨난 것이 확실한 것만큼

그들은 반드시 고국으로 되돌아갈 것입니다.. 라는 소망을 주었습니다. 

 

그들이 징계를 받았지만, 그러나 그들은 완전히 망한 것은 아니었습니다.

하나님은 결코 자기 백성 이스라엘을, 소멸되게 하지 않으실 것입니다.

 

하늘과 땅이 없어질지라도예수님이 말씀하셨죠. *'내 말이 사라지지 않는 것처럼'   24:35

이 족속은 결코 없어지지 아니할 것이다.’

 

, 이스라엘은 결코 사라지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의 하나님이 참되신 분이라는, 한 가지 증거입니다.

 

당신은 결코 성경을 없애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것은 하나님이 책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코 예수님을 없애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분은 하나님의 아들이시기 때문입니다.

당신은 결코 유대인들을 없애지 못합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보십시오. 하나님은 자기 영원성을, 자기가 택하신 자들(우리 각자)과 소통하셨습니다.

여러분은, 하나님께 속한 것(우리 각자 신자), 결코 없애지 못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장 뼈아프게 잃어버렸다고 생각한 것은,

특별히 에스겔 자신도 그랬는데, 그것은 하나님의 집인 성전의 상실이었습니다.

 

성전의 상실, 모든 것의 종말처럼 보였습니다.

왜냐면 그들은 생각하기를, 세상에 그 어떤 것들은 다 무너져도,

하나님은, 자기가 이 땅에서 거하는 곳인 성전을 무너지게 하지 않으실 것이라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성전이 무너졌고, 그건 아마도 모든 것이 다 끝난 충격적인 상황이라고 여겨졌습니다.

 

바로 그때부터, 제가 말씀드렸듯이, 그들은 회당에서 모여서,

그때부터 지금까지 회당 모임이 계속되고 있는데요,

왜냐하면 그들은 그때나 지금이나 성전이 아직 없기 때문입니다.

    

40-42, 성전 건물에 대한 설명입니다.

놀라울 정도로 상세하게 설명되어 있습니다.

 

성전의 재건축에 대해, 설계도가 주어진 것입니다.

제가 보여드릴게요. 여기 새 성전에 대한 설계도가 있습니다. *40~42장을 보고 그린 것

한 건축가가 제게 준 것입니다.

 

 

 

이것은 대단히 웅장한 성전입니다.

이 성전은, 영국의 13개의 대성당을 다 합친 것과, 비슷한 크기입니다.

 

여러분이 생각해 보세요. 이것은 거대한 설계도이고,

모든 방들과 현관들 porch 까지 있는, 아주 정교한 설계입니다.

 

이걸 그린 건축가에 의하면, 이것은 솔로몬의 성전과는 꽤 형태가 다르다고 합니다.

에스겔서의 성전은, 솔로몬 성전도 크지만, 그 보다 더 크다고 합니다.

 

그런데 더 흥미로운 것은, 이 성전에는

지성소도, 언약궤도, 떡상도 없다는 점입니다.

물론 그것들은 옛날에 없어졌고, 지금까지도 없습니다.

 

43에서, 에스겔은 영광이 성전으로 되돌아오시는 것을 봅니다.

그는, 빛나는 어떤 것(영광)의 환상을 다시 본 것입니다. 43:2

 

과거에 솔로몬이 성전을 완공했을 때,

그들은 기도했고, 그때 영광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성전 안이 모두 환해졌던 것처럼 말입니다. 대하7:1

성전이 너무 환했고, 그래서 천으로 그걸 덮어야 했습니다. ?

그 밝음이 사람들의 눈을 멀게 할 수도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은, 전에 영광이 성전에서 떠나는 것을 보았는데, 10:4, 18

이제 영광이 다시 돌아오신 것을 본 것입니다. 43:2

그래서 43장은 너무 흥분되는 장입니다.

 

 

44에는, 제단이 나오고 제사가 나오는데, 제사장은 나오지 않습니다.

이 점이 대단히 중요합니다.

 

왜냐면 유대인들이 바벨론 포로에서 돌아왔을 때,

그들은 대제사장도 있었습니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셨을 때도, 대제사장 가야바가 있었지요.

 

그런데 지금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는, 대제사장이 안 나옵니다.

대제사장은 왕으로 대체되었습니다. 이 점은 대단히 흥미롭습니다. 44:3

 

왕이 모든 높은 지위를 다 차지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상징

왕(예수님)은 제사장도 되시지만, 가장 근본적으로는 왕입니다.

 

에스겔의 환상 속에 나오는 제사장은, 오직 사독의 자손들입니다. 48:11

에스겔의 가문이 사독의 자손들이죠.

 

저는 여기 환상 중의 사독의 자손, 에스겔의 육적 혈통을 의미하지 않는다고 봅니다.

하나님이 말씀하셨거든요. ‘이 땅을 의로운 제사장에게 돌릴지어다’ 48:11참조

 

 

45, 모든 땅이 각 지파에게 분배되는데, 과거와 다른 방식입니다.

북쪽에서부터 남쪽까지 수평선으로 그어서 분배합니다. 과거와는 다른 방식의 분배죠.

 

그리고 제사의 회복이 나오는데,

레위기에 나오는 거룩한 절기와 날들이 회복됩니다.

 

다만 오순절의 회복은 안 나옵니다.

새로운 달력에는 오순절이 없습니다.

왜 그런지 여러분이 한 번 생각해 보시기 바랍니다. *이미 성취되었으므로

 

47에서는, 중동에 새 강을 보는 환상입니다.

약속의 땅에는 있는 진짜 강은,

유대 산지에서 지중해로 흐르는 2개의 큰 강이 있는데요,

 

에스겔이 본 강은, 요단강인데,

어디서 발원하는지도 모르고, 어디서 끝나는지도 모르는 강입니다.

 

요단강은 지구 표면에서 가장 깊은 골짜기로 흘러가는 강입니다.

동아프리카 지구대 the Great Rift Valley 라는 협곡인데,

이것은 요단계곡에서 시작해서 아프리카를 거쳐서 탄자니아까지 이르는, 깊은 협곡지역입니다.

요단강은, 그 지구대의 일부분이죠. *地溝帶 : 땅속 깊은 틈

 

그 지구대(깊은 틈) 중에서도 가장 깊은 지역, 즉 지표면에서 가장 낮은 지점이 여리고입니다.

거기에 사해가 있으며, 요단강은 사해로 흘러들어가며, 거기서 흐름을 마칩니다.

 

그 사해지역의 열의 증발은 엄청난데, 수면에서 1,600피트 아래 지역입니다. *500미터

그래서 열대기후 지역입니다. *적도부근이 아닌데도

그 증발이 너무 강해서, 물속 염분량이 무려 28%에 달합니다.

 

그래서 여러분은, 사해에서 물 위에 앉을 수도 있고, 책을 읽을 수도 있습니다.

여러분 거기서 그렇게 해 보신 적이 있나요? 매우 재미있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사해 물속으로 뛰어들면 매우 위험합니다.

또는 물을 향해 엎드려 있어도 위험합니다. *너무 짜서 눈을 다칩니다.

 

여러분은, 물속에서 발로 서지 못합니다.

여러분이 서려고 하면, 발이 탁구공처럼 물 위로 뜰 것입니다.

거기가 바로 사해입니다. *47:8절의 바다는 사해를 가리킴, 지중해가 아니라

 

제가 이런 말씀을 드리는 이유는, 에스겔이 본 환상에서

그는, 새 강(생수의 강)이 예루살렘의 성전 성소 아래에서 솟아나는 것을 보았고, 47:1

거기서 시작한 강물이 흘러서, 결국은 사해까지 들어가기 때문입니다. 47:8

 

예루살렘은 언덕으로 둘러싸여 있습니다.

다만 도시의 남서쪽으로만 틔여 있어서, 물이 거기서 사해까지 곧장 흘러갑니다.

 

거기가 바로 기드론 골짜기이며, 오늘날에는 대부분 말라 있습니다.

그러나 비가 오면,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서, 물이 사해로 빠져나갑니다.

 

에스겔은 한 강을 보았고, 그 강은 기드론 골짜기를 지나서

계속 지류들과 합쳐져서, 그래서 그 강은 더욱 깊어지고 깊어졌습니다.

 

그래서 강을 건너려던 사람은, 이제 헤엄칠 물이 되었습니다.

 

에스겔은 이렇게 새로운 강을 보았고,

그 강은 엔게디 지역에 있는 사해로 들어가는 것을 보았습니다.

 

엔게디는 서안의 중간 쯤에 있습니다. *Western Bank, 요단강의 서쪽, 6일 전쟁에서 점령.

엔게디는 다윗이 사울을 피해 다닐 때 숨었던 곳입니다.

여러분이 거기 가 보시면, 큰 폭포가 있고 그 주위에 동굴들이 있습니다.

여러분이 그 장소를 보시면, 즉시로 시편 구절이 그걸 보고 지어진 것임을 알게 될 것입니다. 42:7

 

에스겔은 이 신선한 강물이 사해지역을 소성케(살아나게) 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리고 어부들이 와서 즐겁게 고기 잡는 모습도 보았습니다. 47:10

엔게디에 어부들이 생긴다는 것입니다.

 

죽었던 모든 것이 다시 살아나게 될 것입니다.

사해는 이제 더 이상 죽은 바다가 아닐 것입니다.

신선하게 다시 살아나는 바다가 될 것이고, 거기서 어부들이 고기를 잡고,

사람들이 와서 살게 될 것의, 미래 환상을 본 것입니다.

 

그가 본 환상은, 꿈이라고 말해도 될 것입니다.

그 꿈은, 사람들에게 소망을 가득 채워주는 것이었습니다.

앞으로 미래는 달라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이전과는 완전히 달라질 것입니다.

 

이제 마지막 48장입니다.

예루살렘의 성문들이 다시 건축될 것이고,

그 땅은 평화와 번영의 땅이 될 것입니다.

모든 것이 놀랍게 될 것입니다.

 

이제 여러분이 성전이 언제 지어질 것인지 질문하기를 원하실 텐데요,

원하지 않을 수도 있겠죠.

 

한 가지 절대 확실한 것은, 이 환상에 나오는 성전은 아직 건축되지 않았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귀환했을 때, 그들이 근근이 지은 성전은 좀 작고 초라한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한 선지자가 말로 격려해야 했습니다.

시작이 미약하다고 비웃는 자가 누구냐?’ 4:10

 

그 성전은 작고 초라했습니다.

그들이 포로에서 돌아와서, 가난한 가운데서 근근이 지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은 결코 지어지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질문은, 이 성전이 언제, 어디서 지어져서, 이 예언이 성취될 것인가.. 입니다.

 

게다가 그들은, 귀환했을 때 왕을 가지지 않았습니다.

죄송합니다. 제가 스룹바벨이 대제사장이라고 말했는데,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이었습니다.

 

여호수아가 대제사장이었고, 스룹바벨은 총독이었습니다. *왕은 없었습니다.

그들이 귀환했을 때는, 여호수아는 대제사장이었죠.

그런데 그들은 왕을 다시 가지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한 때 마카비 때 독립전쟁을 했던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왕족과 비슷한 것을 만들기도 했습니다. 그러나 그게 지속되진 못했지요.

 

그러다가 예수님이 오셨을 때, 헤롯 말고는 왕이 없었습니다.

그는 에돔 사람이었고, 에서의 후손이었습니다.

 

헤롯은 유대인들의 환심을 사기 위해서, 그 작은 성전을 재건축했습니다.

그는 말하기를 내가 그보다 더 큰 성전을 짓겠습니다.’

실제로 헤롯은 꽤 큰 성전을 지었습니다. *46년에 걸쳐

 

여러분이 마사다에 가시면, 헤롯의 궁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는 건축광

그는 유대인을 달래기 위해서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방인이 유대인의 왕이 되었으니까요

 

여러분은 이런 작은 성전을 원치 않을 겁니다.

제가 솔로몬 성전보다 더 웅장한 것을 지어드릴게요.’ 그는 실제로 지었습니다.

 

우리는 그 헤롯성전 사진을 갖고 있지는 않는데,

오늘날 예루살렘 바깥에 그 모형을 만들어 놓았습니다.

 

여러분이 예루살렘에 가시면, Holy Land Marvelous라고 불리는 곳에 가 보십시오.

거기는 국회의사당에서 멀지 않은 홀리랜드 호텔의 마당에 있습니다.

 

여기서 여러분은, 예수님 당시에 돌로 지어진 예루살렘 전체도시의 모형을 볼 수 있습니다.

    

 

 

 

그건 아름다운 모습인데요, 여러분 중에 어떤 분들도 보셨을 것입니다.

거기서 성전 모형은, 여러분의 허벅지 정도의 높이로 만들어져 있습니다.

 

여기 성전 사진인데요, 솔로몬 행각이 보이고 *3:11, 지붕은 있는데, 벽은 트인 곳

여러분은, 성전과 성소와 지성소를 모형으로 보실 수 있습니다.

 

이것은 오래된 사진인데요, 성전의 모형을 정면에서 찍은 것입니다.

감람산에서 성전을 내려다보시면, 앞에 두 개의 큰 기둥이 보이고,

그 안으로 들어가면 장막이 쳐져 있겠죠. 그 모형들은 둘러 볼만한 가치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이 모형들도, 에스겔이 본 환상을 따라 만들어진 것은 아닙니다.

그것은 헤롯의 건축적 구상에 따라 만들어진 것의 모형입니다.

 

그것은 솔로몬 성전 모습을 일부 포함하고 있기는 하지만,

그래도 전혀 다른 것입니다.

 

(흑백)사진이, 진짜 성전의 모습인데요.

진짜 그 앞에 서면, 사람의 키는, 겨우 사진에서 이 정도입니다. *건물이 아주 높습니다.

 

그 성전은 아주 큰 규모이며, 예수님이 오셨을 당시에도 계속 짓고 있었습니다.

당시에도 아직 완공을 못하고 있었죠.

 

성전 건축에 사용된 돌은,

여러분 그 돌의 일부를 통곡의 벽에서 볼 수 있습니다. Wailing wall

 

그곳은 오늘날 서쪽 벽이라고 불리는데요. Western wall

만약 여러분이 유대인에게, 지금 통곡의 벽이 어디 있느냐고 물으면, 그들은 세무서를 가리켜 줄 것입니다. *농담

 

유대인들은 그 벽의 이름을 바꾸었고, 그래서 지금은 서쪽 벽이라고 부릅니다.

이 벽은, 옛날 성전의 벽이 아닙니다.

 

그건 그저 성전 터 토대(기초)의 벽입니다.

그건 산을 편평하게 만든 토대입니다. *그 위에 성전을 지었죠.

 

성전은, 경사진 산등성이 위에 지어졌고, 그래서 먼저 인위적으로 편평하게 기초를 만들어야 했죠.

그래서 이 통곡의 벽은, 그 토대의 한 면인 것입니다. *성전 벽이 아니라요

 

거기에는, 13미터 길이에 폭이 1미터, 높이 1미터 짜리 큰 돌도 있는데,

그 무게는 백톤에 달합니다.

그 큰 돌들이 망치나 정 소리가 나지 않게 잘라졌습니다.

 

만약 여러분이 그 언덕 아래로 가 보시면, 바로 그 아래에 큰 동굴이 있는데

거기서 이 돌들을 잘라 낸, 부드러운 바위를 보실 수 있습니다.

 

그 부드러운 바위(석회암), 여러분이 손톱으로도 작게나마 잘라낼 수 있는데,

여러분이 문방구용 칼로 잘라내어, 동굴 밖으로 가져나가면

그게 공기 중에 산화되어, 딱딱하게 굳어집니다.

 

성전이 이렇게 지어진 것입니다.

그들은 망치나 정 소리를 내지 않고도, 성전을 지을 수 있었습니다.

 

그 돌들은 모두 지하동굴에서 칼로 잘려져서, 밖으로 가지고 나오면 산화되어

딱딱해진 그 돌로,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건 정말 보기에 장관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말씀하시기를,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

어떤 사람들은 말합니다. ‘그런데 통곡의 벽을 보면, 여전히 돌 위에 돌이 있는데요?’

 

제가 말씀드렸죠. 그건 성전의 벽이 아니라고요.

예수님은, 성전의 돌이 돌 위에 돌 하나도 남지 않으리라고 하셨죠.

 

아주 최근에, 고고학자들이, 진짜 성전 돌을 발굴했는데,

그것은 남서쪽 구석이 큰 잔해더미 속에서 발굴했습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들었을 때, 제자들은 크게 놀랐죠.

아직 그게 완공되지도 않았을 때였거든요.

 

그러다가 헤롯 성전이 어렵사리 완공되었는데, *주전20~주후68년 공사 마침

그때 로마가 AD70년에 다 무너뜨렸죠.

예수님의 예언 그대로 된 것입니다.

 

그런데 에스겔의 성전이 미래에 지어질까요?

어떤 사람들은, 그건 문자적으로 보면 안 된다고 말합니다.

그것은 예언적 환상이며, 그건 실제로 짓도록 의도된 것이 아니라고 말합니다.

그걸 보여주신 것은, 그저 그들에게 희망을 심어주기 위해서라는데요,

이런 입장이 있고요.

 

다른 가능성은, 하나님이 그들에게 원하신 것은 그 성전을 짓는 것인데,

유대인들은 에스겔의 환상에 나오는 설계를 무시하고 *너무 크니까

자기들이 지을 수 있는 크기의 성전을 지을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제가 확신하기로는, 그들이 믿음으로 행하면 하나님이 크게 채워주시겠죠.

그러나 그들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되면, 하나님이 의도하신 뜻이 있지만, 그게 실행되지는 않게 되는 겁니다.

 

또 다른 가능성은, 에스겔이 본 성전이, 미래에 언젠가는 지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많은 크리스천들이 그 확신을 갖고 있지요.

예수님이 재림하시기 전에, 그것이 유대인들에 의해 다시 건축되든지,

혹은 그것이 다음 천년기 때 건축되든지.. 언젠가는 반드시 건축될 것을 믿습니다.

*이 강의는 아직 새 천년기가 오기 전인 1992년경 강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저도 잘 모르겠다는 것입니다.

저는 그저 기다리며 지켜보는 것입니다.

 

그러나 한 가지, 제가 절대 확신하는 것은, 바로 이것입니다.

저는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자기 거처를 마련할 계획을 갖고 계심을 확신합니다.

그래서 에스겔이 하나님이 주신 미래 성전의 환상을 본 것입니다. 맞습니다.

 

그러나 바로 아래 그림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이것(우리 각자가 성전이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계획입니다. 보이십니까?

 

 

 

이것 (우리 각자가 성전이 되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건축 계획이며,

여러분은 이에 대해 더 자세히 연구하셔야 합니다.

 

이것(성도, 교회)이 바로, 하나님이 이 세상에서 거주하기로 하시는 곳입니다.

제가 그림을 거꾸로 걸었네요. 바로 세우면 여러분이 잘 보시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계획이며, 이것이 바로 이 지상에 있는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이곳이 바로,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 가운데 거하는 곳입니다.

 

그런데 여전히 일부 사람들은, 이런 개념을 두려워하거나, 이해를 못합니다.

그러나 여러분들은 점점 이런 시각으로 성전 개념에 접근하고 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좋은 청사진입니다.

여러분이 지금 하나님의 성전입니다.

 

하나님은 손으로 지은 성전에 거하지 않으십니다.’

이 말씀은 신약에 두 번 나옵니다. 7:48, 17:24

 

하나님은 사람 가운데 거하십니다. 우리가 그분의 성전입니다.

에스겔이 본 성전이 미래에 지어지든지/ 말든지, 저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 문제는 여러분께 맡기겠습니다.

 

그러나 그 환상은, 포로로 잡혀온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산 소망을 갖게 했습니다.

언젠가 그들은 되돌아갈 것이고, 모든 게 놀랍게 되어질 것이라는 것입니다. *성전도 다시 세워지고요..

 

그런데 만약 이 환상이 문자적으로 실제로 이루어진다면, 그런 놀라운 일이 되겠지요, 그렇죠?

저는 그 날을 기다릴 것입니다.

 

솔직하게 말씀드리면,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이 문제를 두고서

너무 많은 잉크를 허비하고 있습니다. *중요하지도 않은 책을 많이 출판했습니다.

그래서 '우리 자신이 오늘날 하나님의 성전'이란 진리가, 오히려 잘못된 길로 벗어나고 있습니다.

 

  

그럼 우리가 왜 <에스겔서>를 읽어야 하나요?                             35:00~

 

이 내용을 논의함으로써 강의를 마치겠습니다.

에스겔서가 하나님에 관하여, 우리에게 말해 주기 때문입니다.

 

1) 첫째로, 에스겔서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자기 백성이라도 심판하신다>는 사실을 말해줍니다.

그래서 우리는 그 심판이 하나님의 집에서부터 시작된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9:6

 

너무 많은 크리스천들이, 예수님을 믿으면 즉시로 심판이 없어지는 줄로 생각합니다.

그건 사실과 거리가 멉니다.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것입니다.

하나님은 자기 친 백성이라도 심판하시며,

오히려 다른 사람들보다 엄격한 기준으로 심판하십니다. *많이 맡은 자에게 많이 찾으리라

우리는 그 사실을 기억해야 합니다.

 

 

2) 두 번째로 우리가 기억해야 될 사실은,

하나님이 복수해 주시고, 우리가 복수할 필요 없다는 사실입니다.

 

이것은 매우 중요합니다. 만약 사람들이 우리를 학대하면,

만약 우리에게 불친절하게 대하면, 만약 우리를 괴롭히고, 핍박하고, 심지어 죽이더라도

우리가 직접 나서서 그들에게 되갚아 주어서는 안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대신 갚아주실 것이고,

우리는 하나님의 손 안에서 그저 안전하게 살면 되는 것입니다.

 

꼭 기억하십시오. 만약 누가 여러분을 괴롭힌다면,

그들을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에 대하여 화를 내지 마십시오.

왜냐면 하나님이 친히 그들에게 갚아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은 그저 그들을 불쌍히 여기십시오.

너희를 핍박하는 자들을 위하여 기도하고, 너희를 저주하는 자들을 축복하라

 

그러면 하나님께서 친히 처리하실 것이고, 여러분이 처리할 필요는 없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크리스천들은 부드럽다고 생각합니다만,

우리가 원래 부드러운 사람은 아니고, 다만 하나님을 믿기 때문에 그런 것입니다.

 

 

3) 셋째로, 하나님은 언제나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십니다.

이스라엘이 역사상 결코 사라지지 않았던 것처럼,

교회 역시, 결코 사라지지 않을 것입니다.

 

여러분은, 영원히 존재하는 백성들에게 속했습니다.

이스라엘도 언제나 존재할 것이고, 교회도 언제나 있을 것입니다. *없어지지 않습니다.

장차 그들은 한 무리가 되어서, 한 목자 아래 있으리라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시는 하나님이십니다.

 

4) 넷째로, 우리가 에스겔서 보는 많은 내용들이, 신약의 요한계시록에도 많이 인용되어 나옵니다.

 

크리스천들이 계시록을 잘 이해하지 못하는 이유 중 한 가지는,

그들이 구약을 충분히 모르기 때문입니다.

 

계시록은 구약성경을 3백번이나 인용합니다.

여러분이 구약을 반드시 알아야 하는 이유는, 계시록을 이해하기 위해서입니다.

 

에스겔서도, 또 하나의 묵시책입니다. 매우 상징적입니다.

계시록은 에스겔서에 나오는 상징들을 많이 인용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당신이 에스겔서를 모르면, 계시록을 읽을 때 아리송해 집니다.

 

이 점이, 크리스천들이 이 놀라운 예언서인 에스겔서를 공부할 때,

추가로 얻는 혜택입니다.

 

5) 무엇보다도 에스겔서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을 줍니다.

그분의 전능하심, 그분의 능력, 무소부재,

보좌 아래 그 바퀴들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대로, 어느 방향으로든지 움직입니다.

또한 그분의 전지하신 능력인데, 하나님은 모든 것을 보시고, 모든 일을 다 아십니다.

 

이것이 바로, 여러분이 에스겔서를 읽을 때 얻는, 하나님에 대한 지식입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분의 거룩하심에 대해서 크게 느끼게 됩니다.

하나님이 자기 이름을 이스라엘에 묶어놓으셨다는 사실.

그분의 이름(명예)이 우리 손에 달려 있다는 것,

 

그러므로 물론 하나님은, 하나님의 이름을 위해서라도

자기 백성을 다시 데려오셔야 했습니다.

 

여러분이, 하나님께 기도로 호소할 근거 한 가지도, 하나님의 이름과 하나님의 명예입니다.

모세도 그렇게 하나님께 호소했습니다.

만약 하나님이 자기 백성을 멸하신다면, 세상 사람들이 하나님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겠습니까!’

 

이것은 하나님과 논의할 때, 우리에게 큰 도움을 줍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이름(명예)에 호소하십시오.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

 

아시다시피, 오늘날 그분의 이름은, 여러분과 제 손에 달려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높일 수도 있고, 망칠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언제나 자신을 스스로 보호하십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보호하십니다.

 

길게 보면, 하나님의 명예는, 자기 백성에게 달려 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은 그들을 회복시키십니다.

왜냐면 하나님은 자기 이름을 보호하셔야 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세상과 열방이

자기 백성이 망했으므로, 그 하나님도 망했다라고 생각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그래서 그분의 백성은 결코 망하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항상 자기 백성을 회복시키시고,

잠시간 망할 수는 있겠지만,

그러나 그 백성은 회복되어 다시 계속 이어질 것입니다.

왜냐면 그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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